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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196.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은 본래 같은 뜻이다. 만일 하나님께만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는 순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순복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만일 진심으로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아첨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순복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얻는 것이 좀 있고 또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 새로운 역사 가운데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변화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칭찬받는 사람이고 온전케 되는 사람이며 성정이 변화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에서 발췌

197. 사람이 종교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오늘날의 말씀과 역사를 머리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고 직접 순복할 것이다. 설령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가 지난날의 역사와 뚜렷하게 다를지라도, 너는 지난날의 관점을 버리고 직접 오늘날의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이 지난날 어떻게 했는지를 막론하고 오늘날의 하나님의 역사를 주된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너는 관념을 내려놓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을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난날의 사역을 ‘잊었듯이’ 너도 ‘잊어버린다’. 현재는 현재이고 과거는 과거인 만큼, 하나님이 오늘날 이전에 한 것을 버렸으니, 너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종교 관념을 내려놓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에서 발췌

198. 하나님의 성육신 기간에 사람에게 요구한 순복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논단하거나 대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을 삶의 원칙과 생존의 토대로 하고, 절대적으로 그의 말씀의 실질을 실행하고 절대적으로 그의 마음을 만족게 하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성육신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 방면으로는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한 방면으로는 그의 정상과 실제에 순복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게다가 이것은 모두 절대적인 것이다. 이 두 방면에 도달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며, 모두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199. 지금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바로 옳은 것에 순복하고 진리에서 온 것과 진리에 부합되는 것에 순복하기를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너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인사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에서 발췌

200.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는지의 여부를 보아야 한다. 너에게 요구가 있으면 순복이 없는 것이고, 요구가 있으면 네가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너는 자신의 뜻을 선택하고 있고 자신의 뜻에 따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배반이고 순복이 없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자체가 바로 이지가 없는 것이다. 네가 정말 그를 믿고 정말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감히 그에게 요구를 제기하지 못하고, 이치가 있든 없든 그에게 요구를 제기할 자격도 없다. 만약 너에게 참된 믿음이 있고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너는 다른 선택이 없이 오로지 경배하고 오로지 순복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에서 발췌

201. 순복이 첫 번째 공과인데, 각 사람에게 임하는 첫 번째 공과이다. 네가 순복하지 못하면, 너는 진리를 찾고 구하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 안정하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 앞에 안정하지 못하면, 너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되고, 순복하는 태도가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지 못하면, 너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왜 너에게 그런 환경과 인ㆍ사ㆍ물을 배치해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네가 알지 못하면, 너는 흐리멍덩하게 된다. 네가 흐리멍덩하여 이겨 내지 못하면, 너는 쉽게 소극적이 되고, 쉽게 얽매이고 속박을 받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맴돌 뿐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순복해야만 패괴 성정을 해결할 수 있다>에서 발췌

202. 만일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이 오늘날에 하는 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서도 구하지 않고 의혹하거나 논단하거나 연구, 분석한다면, 이런 사람은 모두 순복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오늘(원문: 現時)의 빛이 나왔는데도 네가 여전히 어제의 빛을 소중히 여기면서 새로운 역사를 대적한다면, 이런 사람은 순전히 그릇된 놈이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새로운 빛을 터득할 수 있고 또 받아들여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비로소 진실한 순복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에서 발췌

203. 네가 만약 간단한 역사와 말씀에만 순복하고 더 깊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낡은 것을 지키는 사람이므로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다. 하나님이 각 시대마다 역사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만약 이 기간의 역사에 네가 잘 순복했어도 다음 기간의 역사에 잘 순복하지 못하거나 혹은 순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버릴 것이다. 하나님이 이 단계로 나아갈 때 네가 따랐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에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께 순복하는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시종일관 순복해야지, 기분이 좋으면 순복하고 기분이 나쁘면 순복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런 순복을 인정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에서 발췌

204. 너의 순복은 확실히 선택이 있는 순복이다. 설령 이 사람에게는 순복할 수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순복하기 어렵고 사람의 관념에 맞아도 참으로 순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게 되었으나 죽기까지 순복하면서 어떤 조건도 없었고 어떤 이유도 없었으며 아버지의 뜻이라면 달갑게 순복하였다. 오늘 너의 순복은 너무나 유한하다. 내가 너희에게 알린다. 순복은 겉으로 사람에게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생명에 순복하는 것이고 하나님 자신에게 순복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20편 말씀>에서 발췌

205.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또 실행하라고 요구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너의 속마음이 정말로 이렇다면 하나님은 꼭 너를 높여줄 것이고 반드시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 줄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고 변경할 수 없다. 만일 너의 속마음이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면 너의 언행,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의 너의 기도, 심지어 너의 일거일동마저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속한다. 설사 너의 말이 온유하고 태도가 온화하고 너의 일거일동과 표정이 사람이 보기에 다 적합하여 마치 순복하는 자 같을지라도, 너의 속마음과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놓고 말하면, 네가 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에서 발췌

206. 너는 매일 자신의 생활에 규칙이 있게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안배할 수 있고, 매일의 본분을 잘 하고, 시시각각 하나님 앞에서 살며, 자신이 매일 한 일과 지나친 것 그리고 깨달은 것을 반성해 볼 수는 있지만, 내일이나 모레 무엇을 해야 하고 장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계획할 수 없다. 너에게는 단지 하나의 소망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하나님이 준 생활에 순복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돼.’ 너에게 이런 마음 상태가 있다면 부지 중에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존엄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에서 발췌

207.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 아래에서, 그 어떤 일에도 다 자연법칙이 있다. 너에게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하고 주재하게 할 결심이 있다면, 너는 마땅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찾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병에 순복하기를 원하는 각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이자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기 원하는 각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너희는 이런 태도와 소양을 갖추는 데에 공력을 많이 들여야만 진정한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08.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기 원하며, 하나님의 권병에 순복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데, 이런 사람은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니 반드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어떠하든, 사람의 선택이 소용없고 하나님 사역의 길고 짧음도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은 그래도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복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지 않겠다면, 네가 또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에게 손해가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지 않고 자기 주장대로 하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맨 마지막에 손해를 보는 것은 너 자신뿐이다. 오직 사람이 하루빨리 하나님과 협력하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을 인식해야만, 사람은 희망이 있게 되고, 일생을 헛살지 않게 되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09. 만약 한 사람이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소극적이라면, 그는 하나님이 그를 위해 안배한 모든 것에 대항하고 있고, 그에게 순복하는 태도가 없음을 실증한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라면,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참으로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에 순복하려는 더 참된 소망이 생기게 되고, 더욱더 하나님으로 그의 운명을 지배하게 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믿음도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운명에 대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모를 때, 스스로 자기의 성미대로 짙은 안개 속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그 노정을 걷는 것이 매우 고생스럽고 또 매우 슬프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사람이 인식하게 될 때, 총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하여 ‘자기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드는’ 고통스러운 날들에서 떠나고, 계속해서 운명과 맞서 싸우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이른바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없는 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날,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의의가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10. 사람의 비애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고, 명리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며, 짙은 안개 속에서 운명과 맞서 싸우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이미 창조주의 존재를 보고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줄 모르고, 수렁에서 두 발을 빼내지 못하고,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고, 강퍅한 마음을 품고 있고, 계속 수렁에서 발버둥치며, 완고하게 창조주의 주재와 겨루고 끝까지 대항하면서 회개의 태도가 조금도 없다가 여지없이 참패를 당할 때에야 포기하기를 택하고 뉘우치기를 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의 진정한 비애이다. 그러므로 나는 순복하기를 택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고, 벗어나기를 택하는 사람은 오히려 우매하고 완고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11. 노아가 하나님의 분부대로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몰랐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부탁을 하나 하면서 노아가 해야 할 일을 분부하기만 했을 뿐, 별로 많은 설명은 해 주지 않았다. 노아는 그 분부대로 하였지 몰래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에게 대항하지도 않았고, 딴 마음을 품지도 않았다. 노아는 그저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그대로 하였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그대로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따르는 것은 노아가 일을 하는 신념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부탁을 그렇게 솔직하고 단호하고 단순하게 대했다. 노아의 실질, 즉 그의 행위의 실질은 순복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의심도 없었고 대항도 없었으며, 더욱이 자신의 이익과 득실을 고려하는 것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다고 말씀했을 때, 노아는 시간을 묻지 않았고, 이유를 알아보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하나님께 세상을 어떻게 멸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노아는 그저 하나님의 분부대로 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짓고 무엇으로 지으라고 하면, 노아는 일일이 하나님의 분부대로 했다. 또한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면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노아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분부대로 했던 것이다. …노아는 단순하게 순복하고 따르고 그대로 행했을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에서 발췌

212. 욥은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시인하고 순복하는 이런 주관적인 추구하에서 살아갔고, 또한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시인하고 순복하는 전제하에서 그의 인생의 중요한 몇 관문을 거치고 인생의 말년을 보내면서 인생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했던 것이다. 욥이 일생 동안 무엇을 체험했든, 그의 추구와 인생 목표는 그에게 행복한 것이었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복은 창조주의 축복이나 칭찬으로 말미암은 것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추구와 인생 목표로 말미암은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창조주의 주재에 대한 그의 점차적인 인식과 참된 깨달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더욱이 그가 창조주의 주재를 체험하는 동시에 직접 체험한 창조주의 기묘한 행사와 그 기간에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지내고 서로 알아가고 서로 이해하면서 마음에 깊이 새긴 한 차례 한 차례의 따뜻한 체험과 기억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창조주의 뜻을 깨달아 얻게 된 위로와 즐거움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창조주의 위대함, 기묘함, 사랑스러움과 신실함을 보고 난 후에 갖게 된 경외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욥이 아무 고통도 없이 죽음에 직면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이 죽으면 곧 창조주의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의 일생의 추구와 수확이 그로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하게 하였고, 그로 담담하게 그의 생명에 대한 창조주의 거두어 감에도 직면하게 하였으며, 더욱이 그로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성결하게 창조주를 대면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13. 욥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달라고, 무엇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하나님을 그렇게 경배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지나친 욕망도 품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토색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 것은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신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바뀔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이름은 당연히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에게 화를 입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고 있으며,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의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며, 어느 각도에서 보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것은 욥이 한평생 체험하고 인식한 것이다. 욥의 그런 모든 마음과 행위는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하나님 앞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귀히 여겼다. 하나님은 욥의 그런 인식을 소중히 여겼고, 욥에게 있게 된 그런 마음도 소중히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임하게 될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욥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없었다. 욥이 자신에게 요구하여 행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순복하는 것이었다. 욥은 이것을 자신의 직책으로 여겼는데,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14. 한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 수십 년 동안 생존하면서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운명이 누구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면, 사람이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수십 년의 인생을 겪으며 창조주의 주재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올바른 터득이 있는 사람이고,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에 대해 깊은 인식이 있는 사람이며, 또한 창조주의 주재에 대해 진정한 깨달음과 체험이 있는 사람이고, 더욱이 창조주의 권병 아래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창조주가 사람을 만든 의의를 깨달았고, 사람이 마땅히 창조주를 경배해야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이 창조주에게서 왔으니 또 반드시 머지않은 어느 날 창조주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도 깨달은 것이다. 이런 사람은 또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창조주의 안배이고, 사람이 죽는 것이 창조주의 주재이며, 살든 죽든 다 창조주의 권병 아래에 명정되어 있다는 것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이런 것을 진정 깨달을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연히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할 것이고, 몸 이외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내려놓고 머지않아 임할 모든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순복하면서 창조주가 사람을 위해 안배해 놓은 인생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할 것이며, 무턱대고 거부하지 않고 무턱대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창조주의 주재를 체험하고 창조주의 권병을 인식하는 기회로 삼고, 피조된 인류의 본분을 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얻기 어려운 한 번의 기회로 삼는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정확한 인생관이 있을 것이고, 틀림없이 창조주의 축복과 인도 아래에서 살 것이며, 틀림없이 창조주의 빛 속에서 다닐 것이고, 틀림없이 창조주의 주재를 인식할 것이며, 틀림없이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 귀복할 것이고, 틀림없이 창조주의 기묘한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한 틀림없이 창조주의 권병을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15. 너희는 땅에서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복을 누리기를 원하느냐? 나에 대한 인식과 내 말을 누리고 나를 알아가는 것을 너희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로 삼기를 원하느냐? 정말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 나에게 순복하기만 할 수 있느냐? 너희는 정말 자신을 양으로 삼아 내가 마음대로 죽이고 끌고 다니게 할 수 있느냐? 너희 중 누가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겠느냐? 설마 나에게 열납되고 나의 약속을 받은 자라면 모두 복을 얻은 자란 말이더냐? 너희는 나의 이 말에서 뭔가 깨닫지 못했느냐? 내가 너희를 시련한다면, 너희는 정말 내가 지배하는 대로 따르고, 시련 속에서 나의 뜻을 찾고 나의 마음을 살필 수 있겠느냐?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입에 감동적인 말이 얼마나 되고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가 얼마나 되느냐가 아니다. 나는 네가 나를 위해 아름다운 간증을 하고, 모든 면에서 실제에 깊이 들어가기를 요구한다. 내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네가 자신 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내게 맡겨 쓰도록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정녕 내가 요구하는 실제가 아니더냐? 누가 내 말 속의 뜻을 알 수 있느냐? 하지만 나는 너희가 내 말을 오해하고 내 뜻을 깨닫지 못하여 나의 행정을 범하지 않도록, 더 이상 염려하지 말고 적극적인 방면에서 진입하여 내 말의 실질을 알라고 요구한다. 나는 너희가 내 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겠다’고 세운 심지(心志)와 같이, 내 말에서 너희에 대한 나의 뜻을 찾고 더 이상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 집에서 굳게 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다하여 땅에서 하는 나의 마지막 부분의 사역을 위해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바쳐야 한다. 너는 정말 이렇게 실행하기 원하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4편 말씀>에서 발췌

216.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간증을 하는 것은 주로 너에게 실제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네가 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 앞에 순복할 수 있는지, 심지어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는지에 관련된다. 네가 정말로 이런 순복으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하였다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설명한다.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고, 그의 앞에서 원망이 전혀 없으며, 논단하지 않고 훼방하지 않으며, 관념이 없고 다른 속셈이 없으면, 하나님은 영광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얕잡아 보는 평범한 사람 앞에 순복하고, 게다가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고 관념이 전혀 없으면, 이것은 진실한 간증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하는 실제는 하나님이 한 말씀에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한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실제의 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자신의 패괴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 것이다. 네가 이런 말씀에 정복되어 하나님 앞에 완전히 순복하게 되면,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사탄을 수치당하게 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끝마친다. 네가 성육신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관념이 없다면, 즉 그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너는 간증을 제대로 한 것이다. 만약 어느 날 네가 실제의 하나님에 대해 완전한 인식이 있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게 된다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지게 된 것이다. 즉, 하나님께 온전케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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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②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③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④귀복(歸服): 돌아와 복종함.

⑤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이전:(7) 어떻게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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