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3단계 사역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

나의 전체 경륜, 즉 6천 년 경륜은 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구속시대), 최후의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 총 세 시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나의 사역 내용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탄과 싸울 때 사탄이 꾸민 간계에 따라 행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물리쳐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사탄의 간계를 드러내 사탄의 권세하에서 살아가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또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고, 추하기 그지없는 사탄의 몰골을 드러내는 동시에, 나아가 피조물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다. 즉, 나는 피조물로 하여금 내가 만물의 주재자임을, 사탄은 인류의 원수이자 변절자이고 악한 자임을 분명히 알게 하는 한편,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뚜렷이 구분하게 하려 했다. 나는 이 무지한 인류가 나를 증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인류를 패괴시킨 건 ‘내’가 아니며, 오직 창조주인 나 자신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것들을 베풀어 준다는 사실을, 또한 내가 바로 만물의 주재자이며, 사탄은 창조된 후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6천 년 경륜을 세 단계로 나누어 사역한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피조물이 나를 증거하고, 나의 뜻을 깨달으며, 내가 진리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6천 년 경륜의 첫 사역을 율법 사역으로 시작했다. 이는 여호와가 백성들을 인도한 사역이었다. 두 번째 단계인 은혜시대에는 유대의 각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예수는 은혜시대의 모든 사역을 대표한다. 그는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또한 은혜시대를 열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완성했고,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열었기에 ‘사령관’, ‘속죄 제물’, ‘구속주’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예수와 여호와가 행한 사역의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원칙은 동일한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열어 땅에서 사역할 근거지, 즉 발원지를 세웠으며 율법과 계명도 반포하였다. 이는 여호와가 행한 두 가지 사역으로, 율법시대를 대표한다. 한편 예수가 은혜시대에 행한 사역은 율법을 반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은혜시대를 열면서 2천 년간 지속된 율법시대를 끝냈다. 그는 은혜시대를 열러 온 개척자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뭐니 뭐니 해도 구속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행한 사역 또한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새 시대를 연 것과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사역을 완성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떠났다. 그때부터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속시대 사역의 실상>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

6천 년 경영 사역은 율법시대, 은혜시대, 그리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의 3단계로 나뉜다. 이 3단계 사역은 모두 인류, 즉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탄과 싸우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구원 사역이 3단계로 나뉘고 사탄과의 싸움도 3단계로 나뉘며, 이 두 부분의 사역은 동시에 진행된다. 사실,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한 단계 사역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사탄과의 싸움도 단계와 시기를 나누어 진행되며, 인류의 필요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정도에 따라 사탄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싸움’이라고 하면 사람은 두 군대가 맞붙어 싸우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탄 간에 벌어지는 전쟁을 상상한다. 이것은 그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구상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은 바로 사탄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은 3단계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은 3단계로 나뉘며, 이를 통해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게 된다. 하지만 사탄과 싸우는 모든 사역의 실상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등의 몇 단계 사역을 통해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탄과의 싸움은 사탄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생명을 만들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함으로써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즉,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켜 사탄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사탄을 물리치고 나면, 그러니까 사람을 철저히 구원하고 나면 수치당한 사탄을 단단히 결박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완전히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의 본질은 사탄과 싸우는 것이고, 사탄과의 싸움은 대부분 사람을 구원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사람을 정복하는 최종 단계 사역은 사탄과 싸우는 마지막 사역, 즉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하여 창조주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사탄을 저버리고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면 철저히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사탄과 싸우는 마지막 사역이자 사탄을 물리치는 마지막 단계의 경영이다. 이 단계의 사역이 없다면 최종적으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할 수도,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도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영 사역의 핵심은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과 패괴로 사람은 사탄에게 속박당해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로 인해 사탄은 경영 사역에서 물리칠 대상이 되었다. 사탄이 사람을 점령했고, 사람은 또 전체 경영의 밑천이기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야 한다. 즉, 사탄에게 사로잡혀 간 사람을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켜 본래 이성으로 회복시킴으로써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로잡혀 간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와 결박에서 벗어나면 사탄은 수치를 당한다. 결국 사람을 빼앗아 오고, 사탄은 패하게 된다. 사람은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남으로써 모든 싸움의 전리품이 되겠지만, 사탄은 싸움이 끝난 후에 징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사역도 끝을 맺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사탄을 물리치는 것뿐, 피조물에 대해서는 어떤 악감정도 없다. 형벌이든 심판이든 그의 모든 사역은 사탄을 겨냥해 하는 것이고,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이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목표는 단 하나, ‘사탄과 끝까지 싸운다! 꼭 사탄을 이기고야 말 것이다! 사탄을 이길 때까지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모든 사역은 사탄을 겨냥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통제되어 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과 싸워 끝을 내지 않으면 사탄은 사람들을 풀어 주지 않으며, 사람들은 하나님께 얻어지지 못한다. 사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사탄을 물리치지도, 사탄과 싸워 이기지도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6천 년 경륜 중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율법의 사역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은혜시대의 사역, 즉 십자가의 사역을 했으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인류를 정복하는 사역을 한 것이다. 이 사역들은 모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정도에 따라 한 것이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어느 단계 사역이든 다 사탄을 물리치는 데 목적이 있다. 6천 년 경영 사역의 본질은 큰 붉은 용과 싸우는 것이고,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은 사탄을 물리치는 사역이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6천 년 동안 싸우면서, 즉 6천 년 동안 사역하면서 마지막에는 사람을 한 경지로 인도하는 것이다. 사탄이 패하면 사람은 완전한 해방을 얻는다. 지금의 사역이 바로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 사람을 모든 것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며, 그 어떤 규례에도 속박받지 않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통제받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사역 추세이다. 모든 사역은 너희의 분량과 필요에 맞춰 진행된다. 다시 말해, 너희가 닿을 수 있는 만큼 공급하지, 건목수생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역은 너희의 실제 필요에 맞춰 진행된다. 각 단계의 사역은 다 사람의 실제 필요와 요구에 따라 하며,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사실 처음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간격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초래한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교란하고 패괴시켜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은 피해자이자 기만당한 자이다. 사탄을 물리치면 피조물은 창조주를 볼 수 있고, 창조주도 피조물을 보며 친히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 있어야 할 삶이다. 그러므로 주 사역은 역시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라 하겠다. 사탄을 물리치면 무슨 일이든 다 해결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4)

하나님은 전체 경륜의 사역을 모두 친히 행한다. 세상을 창조한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인류를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온 인류를 구속한 두 번째 단계도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끝을 맺는 사역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더더욱 그가 친히 해야 한다. 모든 인류를 속량하고, 정복하고, 얻고, 온전케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친히 행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직접 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신분을 대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를 얻기 위해, 또 인류가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다. 모든 경륜과 사역을 위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행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은 그저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인식은 아무런 가치도, 의의도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얄팍한 인식이다!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행해야만 이 사역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한다면 그를 대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설사 한다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첫 번째 성육신은 속량을 위한 것, 즉 인류를 죄에서 속량해 정결케 하고 죄를 사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복 사역 역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행한다. 이 단계에서 하는 것이 예언뿐이라면 예언가, 그러니까 은사가 있는 사람을 찾아서 시켜도 그만이다. 예언만 한다면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사역,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사역이라면 사람이 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하고, 성육신하여 친히 행해야 한다. 말씀의 시대에 예언만 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할 필요 없이 이사야나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 시키면 된다. 그러나 이 단계의 사역은 예언에 그치지 않으며, 말씀 사역으로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사역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이 직접 해야 한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일부 사역만을 행한 후, 선지자를 통해 약간의 말씀과 사역을 했다. 사람이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가는 하나님을 대신해 예언을 말하고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당시의 사역은 직접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의 죄와 무관했으며, 사람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여호와는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직접 모세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그들이 하나님이 하려는 말씀과 행하려는 일을 하게 하고,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게 했다. 첫 단계 사역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으로, 사탄과의 싸움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탄과 본격적으로 싸운 것은 첫 번째 성육신 때부터 지금까지이다. 첫 번째의 싸움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탄을 물리치고 첫 번째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직접 사람의 생명을 만들게 되면서부터 사람을 되찾아 오는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여호와가 처음에 행한 사역은 그저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인도한 것으로, 사역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그 어떤 싸움이나 큰 사역과도 관계가 없었지만, 훗날 싸울 사역을 위한 기반 다지기였다. 두 번째 단계인 은혜시대의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 즉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했고, 반드시 직접 성육신해야 했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육신한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직접 사탄과 대결하는 사역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그 사역을 대신하여 하게 하면 사탄과 마주했을 때 사탄이 굴복하지 않으므로 물리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하나님이고, 또한 사람의 생명이자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신분과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사역하여 사탄을 철저히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사람에게 맡겨 직접 말씀을 선포하라고 해도 사람은 하지 못한다. 예언만으로는 사람을 정복할 수 없으므로 성육신을 통해 사탄을 물리치고 철저히 굴복시켜야 한다.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고 사람을 완전히 정복한 후 얻으면, 이 단계 사역은 끝이 난다. 즉, 대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경영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특히 시대를 이끄는 사역과 새로운 사역을 여는 일은 더더욱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사람에게 계시와 예언을 주는 것 등은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 사탄과 직접 싸우는 사역은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다. 사탄과 싸우지 않은 첫 단계 사역에서 여호와는 선지자를 통해 예언을 전했고, 또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사탄과 싸우는 두 번째 단계 사역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성육신하여 육신을 입고 사역했다. 사탄과의 싸움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성육신과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에게 시킬 수 없으며, 사람은 싸워 봤자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아직 사탄의 권세하에 있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힘이 있겠느냐? 사람은 본래 중립적인 존재로, 사탄 쪽으로 기울면 사탄에 속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면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니 이런 싸움의 사역을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한다면 할 수 있겠느냐? 그랬다면 진작에 목숨을 잃지 않았겠느냐? 이미 오래전에 황천으로 가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없기에 사탄과 싸우면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일부 사역을 할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을 구슬릴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싸우기도 전에 사탄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다. 사람은 그것을 기초로 따르고 순종해야만 하나님께 얻어져 사탄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은 지혜와 능력, 그리고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한계가 있기에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을 인도하지 못하며 사탄을 물리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의 총명과 지혜가 사탄의 계략을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5)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 그러니까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총 세 단계로 나뉜다. 이 세 단계의 사역에는 창세 사역이 포함되지 않으며, 율법시대의 사역과 은혜시대의 사역, 그리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의 사역만 포함된다. 창세 사역은 온 인류를 탄생시키는 사역이지 구원하는 사역이 아니며, 인류의 구원과 무관하다. 창세 때의 인류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기에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할 필요가 없었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뒤에야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 또한 인류가 패괴된 뒤에야 시작된 것이다. 즉, ‘경영’은 구원 사역의 시작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지, 창세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은 아니다. 경영 사역은 인류가 패괴 성품을 갖게 된 후 비로소 생겨났다. 그러므로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에는 세 부분만 포함되며, 네 단계나 네 시대가 존재할 수는 없다. 이야말로 정확한 설명이다.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 경영 사역은 이미 모두 끝났다. 경영 사역이 끝났다는 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이 이미 완전히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인류는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이 없다면 경영 사역은 물론, 3단계 사역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타락한 데다가 구원이 시급한 상태였기에 여호와는 창세 사역을 끝내고 율법시대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로써 비로소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 즉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인류를 경영한다’는 말은 막 창조된(패괴되지 않은) 사람이 땅에서 살도록 인도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패괴된 인류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 경영’에 내포된 뜻이다. 창세 사역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은 창세 사역을 제외한 3단계 사역만 포함한다.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에 대해 알려면 반드시 3단계 사역의 역사(歷史)를 알아야 한다. 이는 구원받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피조물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인류가 패괴된 기원을 알고, 나아가 인류가 구원받는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몇몇 규례만을 지키며 하나님의 환심을 살 생각만 할 뿐,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지, 인류가 패괴된 기원은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것은 피조물로서 부족한 부분이다. 실행할 수 있는 일부 진리를 알고 있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경영 사역의 큰 범주 안에 있는 일들을 하나도 알지 못하면 너는 너무 교조적이다. 3단계 사역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의 실상이자 온 세상에 임한 복음이며, 온 인류의 가장 큰 비밀이자 복음 전파의 근거이다. 네가 외곬으로 너의 생명과 관련된 간단한 진리만 알고자 하고, 이 가장 큰 이상(異象)과 비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면, 너의 생명은 빛 좋은 개살구와 다름이 없지 않겠느냐?

사람이 실행만 중시할 뿐,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를 썩히는 것과 같지 않겠느냐?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실행해야 할 것은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언젠가 네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공의롭고 위대하시며 지고지상하신 분이다. 그 어떤 위인도 하나님과는 견줄 수 없고, 하나님보다 더 높은 분은 없다.”라며 중요하지 않은, 입에 발린 소리나 하면서 중요하고 실질적인 말은 전혀 꺼내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하며, 또한 진리를 명확하게 교제하지도 못하고 다른 이들의 내면에 부족한 것도 공급해 줄 수 없다면, 이는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너는 먼저 진리와 깨달아야 할 이상을 갖춰야 한다. 네가 하나님 사역에 관련된 각 부분의 이상과 진리를 분명하게 알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인식을 갖춘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행해도, 공의로운 심판이나 연단이 임해도 가장 큰 이상을 기반으로 하여 알맞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든 그 근본 취지와 사역의 중심, 사람을 향한 뜻은 변함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그의 말씀이 아무리 엄하고 환경이 아무리 열악할지라도 그가 사역하는 원칙과 사람을 구원하는 뜻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드러내는 기간이 아니라면, 또 마지막 사역이나 전체 경륜을 끝내는 사역을 하는 기간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어 가는 기간이라면, 그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는 사역의 중심은 언제나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너희 믿음의 토대여야 한다. 3단계 사역의 근본 취지는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 다시 말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인류를 완전히 구원하는 것이다. 3단계 사역은 각 단계마다 목적과 의의가 서로 다르지만 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의 일부이다. 그것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다르므로 각기 다른 구원 사역을 행한 것이다. 네가 3단계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면 각 단계 사역의 의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또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을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가장 큰 이상은 곧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의 토대가 된다. 너는 일부 간단한 실행이나 심오한 진리만 추구해서는 안 되며, 실행과 이상을 결합해야 한다. 실행 부분의 진리도 갖추고 이상 부분에 대한 인식도 갖춰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전면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6)

3단계 사역은 전체 경영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이 모두 3단계 사역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는 방식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이 사역하는 지혜도 모르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다양한 방식과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모른다. 3단계 사역은 인류 구원 사역을 오롯이 나타내므로 3단계 사역을 모르면 성령이 역사하는 다양한 방식과 원칙도 알 수 없다. 한 단계 사역에서 남겨진 규례만을 고수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규례에 국한하는 자들이자 막연한 신앙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은 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만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구원의 전 과정을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얻은 증거이자 하나님이 승리한 증거이며, 또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발현이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의 사역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 알 뿐이다. 그나마 알고 있는 그 한 단계도 사람의 관념 속에서 규례로 변질되어 하나님을 규정하기 쉽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체하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까지 가득 뒤섞어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 지혜와 사역의 원칙을 유한한 범위에 단단히 국한시킨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한 번 그리한 것은 영원히 그러할 것이며, 영세까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3단계 사역을 알고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정확하고 전면적으로 알 수 있으며, 최소한 하나님을 이스라엘인의 하나님이나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단계 사역으로만 하나님을 안다면, 그런 앎은 그야말로 백사장의 모래 한 알과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원로 종교가들이 왜 하나님을 무참히 십자가에 못 박았겠느냐? 하나님을 한 범주 안에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냐?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지식과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했기 때문이 아니냐? 그들은 체험이 얄팍하면서도 천성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성령의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성령의 징계를 등한시한다. 또 자신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낡은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입증’하고, 스스로 학식이 높다고 믿으며 온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런 자는 모두 성령께 혐오받아 버림받는 자이자 새 시대에 도태되는 자임을 어찌 알지 못한단 말이냐? 하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얄팍한 지식으로 경망을 떠는 소인배들 아니냐? 얼마 되지도 않는 성경 지식으로 세상의 ‘학술계’를 휘어잡으려 하고, 겨우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돌려세우려 하고 자기 생각대로 주무르려는 야심을 품으며, 좁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6천 년 사역의 풍모를 한눈에 다 꿰뚫어 보려고 한다. 그런 자에게 무슨 이성이 있다고 하겠느냐! 사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역을 쉽사리 평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을 좀 말할 뿐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분수를 모르며, 또한 하나님의 어떠함에 대해 실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론만 멋대로 떠벌릴 뿐이다. 이런 사람은 가장 무가치한 자이다. 성령의 역사를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모두 경박한 자들이다! 이들은 성령의 새 역사를 마주하고도 신중하게 대하기는커녕 함부로 지껄이고 멋대로 평가하며, 자기 성미대로 성령 역사의 정확성을 부인하고, 모욕적인 말과 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오만불손한 자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알지 못하고, 천성이 거만하며 방자한 사람이 아니냐? 그런 자는 언젠가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관용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그런 악당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사함 받지 못할, 영원히 지옥에 멸할 대상이다. 그 오만하고 방종한 자들은 또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일수록 하나님의 행정을 더 쉽게 거스른다. 천성적으로 방종하고 복종할 줄 모르는 교만한 자들은 모두 그런 길을 가지 않더냐? 모두가 이렇게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을 끊임없이 대적하지 않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7)

3단계 사역은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과 인류 구원의 실제 기록이지, 지어낸 것이 아니다. 너희가 정말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이 행한 3단계 사역을 알아야 하며, 한 단계도 빠트려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식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앎은 사람이 스스로 지어내거나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며, 성령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푼 결과는 더더욱 아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얻은 앎이자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을 체험한 후에야 생겨나는, 하나님에 대한 앎이다. 이런 앎은 아무렇게나 얻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완전히 개인의 체험과 관계되는 일이다. 이 3단계 사역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지만 이 구원 사역에는 또 여러 가지 사역 방식과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는 방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발견하기 가장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것이다. 시대가 나뉘고, 사역이 달라지고, 사역의 장소와 대상이 바뀌는 등등은 모두 3단계 사역에 포함된다. 특히 성령 역사의 방식 차이,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 이름, 신분 또는 다른 변화들은 모두 3단계 사역 안에 있다. 한 단계의 사역은 그저 한 부분만 대변하고 한 범주에만 국한되기에 시대의 구분은 물론, 사역의 전환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그 밖의 다른 부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3단계 사역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전체 사역이다. 사람은 구원 사역에서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알아 간다는 것은 근거 없는 헛소리이자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그런 앎은 사람을 설득할 수도, 정복할 수도 없으며, 실정에 맞지도 않고 진리도 아니다. 설령 네가 아는 것이 많고 게다가 다른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라도 그 앎이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앎을 칭찬하기는커녕 그를 모독한 죄를 물어 보응을 받게 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앎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네 언변이 뛰어나 청산유수 같은 말로 죽은 것을 산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고, 산 것을 죽은 것이 되게 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앎을 얘기할 때면 너는 바로 문외한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마음대로 평가하거나 칭찬할 수 있는 분도, 네가 마음대로 폄하할 수 있는 분도 아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라도 칭찬할 수 있지만, 적당한 단어로 하나님의 ‘크나큰 은덕’을 함부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모든 실패자의 깨달음이다. 수많은 언어 전문가들이 하나님을 한바탕 묘사할지라도 그 묘사의 정확성은 오히려 언어가 풍부하지는 않지만 체험이 풍부하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설명하는 진리의 1%밖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앎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성과 실제에 있는 것이지, 언어의 교묘함이나 단어의 풍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사람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이 공과는 인류의 그 어떤 자연 과학을 배우는 것보다 높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모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개구쟁이 어린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어쩌면 너는 가정이나 사업 또는 결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을 수도 있지만, 진리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이 공과에서는 백지상태로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에게 있어 진리 실행은 큰 난제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보다 더 큰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너희의 애로 사항이자, 모든 인류의 애로 사항이다. ‘하나님을 아는’ 이 사업에서 성과를 거둔 사람 가운데 합격한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지, 도대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인류의 난제이자 가장 큰 수수께끼로서 그 누구도 답하지 못하고, 또 답하기를 원치 않는 문제이다. 인류 중 지금까지 이 일을 연구하여 성과를 거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3단계 사역’의 수수께끼가 인류에게 공개되고 나면 하나님을 아는 인재들이 잇달아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게다가 지금 그 사역에 착수하고 있다. 나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러한 인재가 더 많이 나와 3단계 사역의 증인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되길 바란다. 다시 말해, 그들이 3단계 사역을 증거하는 창시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역이 끝나는 날까지 그런 인재, 즉 성육신 하나님에 의해 직접 온전케 된 사람이 없거나 한두 명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정말 가슴 아프고 애석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쨌든 나는 진심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천고에 없었던 사역이고, 인류 발전의 역사에서도 없었던 위업이다.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 창시인이 된다면, 그것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높은 영광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바로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께 가장 칭찬받는 피조물 아니겠느냐? 이 사역을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이 되면 성과를 거둘 것이다. 성별이나 국적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가장 높은 영광을 받는 사람이자 유일하게 하나님의 권병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사역이자 이후의 사역이고, 6천 년 사역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루려는 최고의 사역이며, 또한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는 사역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통해 각 부류 사람들의 등급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는 자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거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기(知己)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지기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지기는 하나님의 어떤 축복이든 다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지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사역도 감당할 수 없다. 환난이든 연단이든 심판이든 모두 사람이 마지막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마지막에 거두어야 할 유일한 성과이다. 3단계 사역을 모두 공개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나아가 하나님을 더 전면적이고 철저하게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모든 사역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8)

하나님 자신이 행한 사역은 사람이 알아야 할 이상(異象)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사람이 할 수 없고, 사람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3단계 사역은 하나님 경영의 전부이자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가장 큰 이상이다. 사람이 이 가장 큰 이상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알아 가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어려우며, 또한 이 길을 간다 할지라도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사람에게 이상이 없다면 오늘날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상이 사람을 오늘날까지 지켜 주었고, 이상은 사람에게 최대의 보호막이 되었다. 너희는 앞으로도 더욱 깊이 알아 가야 한다. 3단계 사역에 담긴 하나님의 모든 뜻과 그의 지혜로운 사역의 본질을 알아야만 그것이 너희의 진실한 분량이 된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앞 두 단계 사역과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 사역만으로는 구원 사역을 전부 완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으로 사람을 철저히 구원할 수 있다 할지라도, 앞 두 단계의 사역 없이 마지막 단계 사역만으로 인류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3단계 사역 중 어느 단계의 사역도 단 하나만 가져와서 온 인류가 유일하게 알아야 할 이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구원 사역은 총 3단계로 이루어진 사역이지, 그중의 어느 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 사역이 하루라도 완성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경영은 절대로 끝날 수 없다. 하나님의 어떠함과 성품, 지혜는 모든 구원 사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미리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의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구원 사역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님 성품과 어떠함의 일부를 발현하는 것이지, 매 단계에 곧바로 하나님의 모든 어떠함을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이 완성되어야 구원 사역이 모두 끝나는 이상, 사람이 하나님의 전부를 알아 가는 것 역시 3단계 사역을 떠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한 단계 사역에서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부 사역에서 발현된 성품에 불과하므로 그 전이나 그 후에 발현된 성품과 어떠함은 대변하지 못한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한 시기나 한 장소에서 되도록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인류의 발전 상황에 따라 점차적으로 심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 사역은 한 단계씩 하는 것이지 한 단계에서 바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닌 모든 지혜의 결정체는 어느 한 단계가 아닌 3단계 사역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모든 어떠함과 지혜는 3단계 사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단계마다 하나님의 어떠함이 있고, 하나님 사역의 지혜가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3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모든 성품을 알아야 한다. 이 어떠함은 온 인류에게 실로 중요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이런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그런 사람은 불상을 경배하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은 모두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3단계의 구원 사역을 행한 이상, 사람은 이 3단계의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춘 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개한 것이라면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자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 3단계 사역 중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 사역을 바탕으로 행한 것이지, 구원 사역 이외의 다른 사역을 따로 행한 것은 아니다. 시대나 사역의 내용이 크게 다를지라도 사역의 핵심은 변함없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구원 사역을 점차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9)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은 모두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3단계의 구원 사역을 행한 이상, 사람은 이 3단계의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춘 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개한 것이라면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자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 3단계 사역 중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 사역을 바탕으로 행한 것이지, 구원 사역 이외의 다른 사역을 따로 행한 것은 아니다. 시대나 사역의 내용이 크게 다를지라도 사역의 핵심은 변함없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구원 사역을 점차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각 단계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의 사역을 폐하지 않은 기초에서 계속 이어진다. 이로써 하나님은 늘 새로운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드러낸 적 없는 성품을 계속 나타내고, 언제나 그의 새로운 사역과 어떠함을 공개한다. 원로 종교가들이 극력 대적하고 공개적으로 반대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처럼 그가 해야 할 더 새로운 사역을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늘 바뀌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의 반대에 부딪힌다.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 시대, 사역 대상도 언제나 바뀐다. 또한 하나님은 항상 이전에 행한 적이 없던 사역을 행하며, 심지어는 사람이 보기에 이전과 모순되거나 상반되는 사역도 행한다. 사람은 모두 한 가지 사역과 한 가지 실행만 받아들일 뿐, 그것과 대립되거나 그것보다 더 높은 사역이나 실행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성령은 언제나 새로운 사역을 한다. 그로 인해 새로운 사역에 대적하는 종교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전문가’가 된 까닭은 바로 하나님이 ‘늘 새롭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다양한 방식은 더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역인지, 하나님 자신이 행한 사역인지, 사람에게는 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견해와 맞으면 받아들이고, 과거의 사역과 다른 점이 있으면 반대하거나 거절하는 태도를 고수한다. 지금까지 너희의 원칙은 다 이런 것 아니었느냐? 구원 사역의 3단계 사역은 너희에게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은 앞 두 단계의 사역을 그야말로 알 필요가 없는 짐으로 여기며 그것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알리지 말고 속히 거두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많은 사람이 앞 두 단계 사역을 공개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긴다. 이것이 너희의 관점이다. 지금 너희는 모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지만, 언젠가는 내가 행한 사역의 중요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의미 없는 사역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3단계 사역을 모두 너희에게 공포한 이상, 그것은 분명 너희에게 도움이 된다. 3단계 사역이 전체 경영의 핵심인 이상, 반드시 전 우주 아래의 모든 사람이 다 눈여겨보게 될 것이며, 언젠가 너희 모두 이 사역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적하거나 자신의 관념으로 오늘날의 사역을 판단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모르기 때문이며, 또한 성령의 역사를 너무 건성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이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관념과 태생적인 교만, 그리고 너무도 패역한 천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감히 공개적으로 성령 역사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이야기하며, 또 성령의 새 역사가 있는 사도들을 훈계하고 이래라저래라 불손하게 말하니, 참으로 저급한 인성이요,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자들은 언젠가 성령 역사에 의해 버려지고 지옥의 불에 불살라질 대상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하고, 나아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며 지휘할 생각까지 하는데, 이렇게 비이성적인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은 모두 찾고 구하며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지, 제멋대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너의 관념과 옛 성품, 인성, 품성, 도덕 사상은 모두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밑천’이다. 또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품성이 악랄하며 인성이 저급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원수인 것이다. 관념에 심각하게 사로잡힌 자와 성품이 독선적인 자는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로, 이런 부류의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네가 관념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관념은 영원히 하나님과 적대될 것이며,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어긋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0)

3단계 사역은 하나님 한 분이 행한 것으로, 최대의 이상이자 하나님을 알아 가는 유일한 길이다. 3단계 사역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오로지 하나님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3단계 사역은 시대도, 장소도 다르고, 행한 사역도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이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이상 가운데 가장 큰 이상이다. 사람이 이것을 철저히 깨닫는다면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각 종교 각 교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며, 어떤 것이 성령 역사고 어떤 것이 성령 역사가 아닌지 분별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번 단계의 사역이 앞 두 단계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이 행한 것인지 더더욱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따르면서도 이 길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이 길이 정말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는 길인지, 말씀이 육신 된 것이 사실인지 걱정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런 사실들을 분별하기 위한 실마리가 별로 없다. 따르는 사람이 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면 그 도는 그런 사람에게 일부 효과만 낼 뿐, 100%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이 3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세 단계의 사역을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했음을 깨닫는다면 사역의 내용은 서로 다를지라도 하나님 한 분이 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인 이상, 분명 어떤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 한 분이 한 일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임을 확신한다면, 사람의 관념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소한 것이 된다. 이상에 대해 불분명하기에, 즉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예수가 주라는 것만 알 뿐, 오늘날의 성육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에, 많은 사람이 여호와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에 미련을 둔 채 오늘날의 사역에 대해 수많은 관념을 갖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오늘날의 사역을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다. 사람은 볼 수 없는 앞 두 단계 사역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념도 없다. 그것은 사람이 앞 두 단계 사역의 실정을 전혀 모르고, 또 직접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볼 수 없기에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상상하든 입증할 수 있는 사실도, 바로잡아 줄 이도 없었다. 사람이 자신의 성향대로 대담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지라도 입증할 사실이 없었기에 그 상상은 성립 여부와는 무관하게 ‘사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머릿속으로 자신이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을 뿐, 실제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을 갖고 있다면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생겨난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실제적인 사역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단지 귀로만 들었을 뿐 눈으로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며, 전설과 이야기로만 들었지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에 대한 인식은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1년 믿은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 역시 관념 속에서 믿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들어갔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모두 관념이자 떠도는 소문이라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사람은 모두 자신의 관념이 정확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겼지만, 오늘날 이 사역을 마주하면서 오랫동안 지녀 온 관념을 분출하게 되었다. 지난날의 상상과 생각이 이번 사역의 장애물이 되었건만 사람은 모두 이 관념들을 내려놓기 어려워하고, 이전의 생각들을 뒤엎기도 힘들어한다. 오늘날까지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은 한 걸음씩 진행되는 이 사역에 대해 관념이 점점 심해져 성육신 하나님과 풀기 어려운 원한을 맺게 되었다. 그 원한의 근원이 바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사실’은 사람이 멋대로 펼치는 상상을 용납하지 않으며 사람이 제멋대로 뒤집으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반면 사람은 관념과 상상 때문에 존재하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으며, 사실의 정확성과 진실성은 무시한 채 한결같이 자신의 관념만 분출하고 상상의 나래만 펼친다. 이렇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오늘날의 모든 사역과 원수가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한 단계는 고사하고 조금도 뒤엎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너는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고, 심지어 여호와와 예수 사역의 정수를 모아 편찬할 수도 있지만, 여호와와 예수가 행한 사역의 사실들을 뒤엎지는 못한다. 이것은 원칙이자 행정이다. 너희는 모두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이번 단계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지만 앞 두 단계의 사역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앞 두 단계의 사역은 절대 지금처럼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의 사역 원칙은 모두 똑같고, 그의 사역은 어쨌든 다 실제적이며, 어느 시대의 사역에서든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무리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 오늘날 이 단계 사역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자는 분명 이전에도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3단계 사역을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으로 여기고, 또 자신의 관념을 버릴 수 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진실로 따르는 사람이다. 전체 경영이 끝날 때 하나님은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것이다. 사람은 창조주의 손에서 창조되었으므로 마지막에는 철저히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이 3단계 사역의 종결이다. 이스라엘과 유대에서 행한 앞 두 단계의 사역과 말세의 사역은 곧 전 우주에서의 하나님의 경륜이므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이다. 사람은 많은 사역을 체험하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니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전 우주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 3단계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다. 네가 어느 한 단계 사역만 알 뿐, 나머지 두 단계 사역과 과거의 하나님 사역을 알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전체 경륜의 모든 실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을 단편적으로 알 뿐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다. 지금 이러한 것에 대해 깊게 알든 얕게 알든, 결국 마지막에는 너희가 모두 깨닫고 철저히 인정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전체 사역을 보고, 또한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면 모든 종교가 하나가 되고,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이 참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며, 모든 사교가 사라져 더는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1)

어째서 늘 3단계 사역을 언급하겠느냐? 시대의 변천과 사회의 발전, 자연의 변모는 모두 이 3단계 사역의 변화에 따라 바뀐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행한 사역에 따라 바뀔 뿐, 스스로 발전하지 못한다. 3단계 사역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피조물과 각 종교 각 교파, 각계의 인사들이 다 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어느 교파에 속하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순종해야 한다. 이 사역은 오직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교주도 행하지 못한다. 세상이 몇 개의 큰 종교로 나뉜다고는 하나 종교마다 교주와 통솔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 또한 지구상의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 국가에도 여러 종교가 존재한다. 대국이든 소국이든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지만, 세계 각지의 종교 종류가 얼마나 되든 결국 전 우주의 모든 사람은 한 분의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어떤 종교의 교주나 통솔자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류를 이끄는 이는 어느 교주나 통솔자가 아니라 천지 만물과 인류를 창조한 창조주이다. 이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몇몇 큰 종교가 있지만, 그 종교가 얼마나 크든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며, 그 어떤 종교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발전과 사회의 교체, 자연 과학의 발전은 다 창조주의 안배를 떠날 수 없다. 이 사역들은 어느 한 교주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주는 어느 종교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도, 천지 만물을 창조한 이를 대표하지도 못한다. 교주는 그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교주는 통솔자일 뿐이므로 하나님(창조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만물은 창조주의 수중에 있기에 마지막에는 모두 창조주의 수중으로 돌아올 것이고, 인류는 본디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기에 어느 교파든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가운데 지극히 높은 분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인류를 적합한 종착지로 인도할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없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여 각기 부류대로 나눴으니 마지막에도 그가 자신의 사역을 행하여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행한 3단계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한 것이고, 또한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다. 3단계 사역의 사실은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인도한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단계 사역이 끝나면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전 우주 위아래에 오직 이 하나님 한 분만이 존재하며 다른 종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창조할 수 없는 자는 세상을 끝낼 수 없고, 세상을 창조한 이는 틀림없이 세상을 끝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시대를 끝낼 수도 없으면서 다른 이에게 심신을 수양하고 교양을 쌓으라고만 말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도, 인류의 주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는 이처럼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행하는 이는 오직 한 분뿐이며, 이 사역을 행할 수 없는 자는 분명 하나님이 아닌 원수이다. 사교(邪敎)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다. 모든 사역은 다 이 참하나님 한 분이 행하고, 온 우주도 다 이 하나님 한 분이 주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든 중국에서 사역하든, 영으로 사역하든 육신으로 사역하든, 모두 그 자신이 행한 것이며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전 인류의 하나님이기에 그 어떤 조건의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 이상이다. 피조물로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사역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야 하며 나아가 하나님이 사역하는 모든 의미까지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합격된 피조물이 아니다! 피조물로서 자신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인류의 역사(歷史)와 하나님의 모든 사역도 모르며, 더욱이 인류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누가 전 인류를 다스리는지도 모른다면, 본분 이행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나님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해 왔고, 땅에서 사람을 창조한 이래로 사람을 떠난 적이 없다. 성령은 끊임없이 역사하고 사람을 인도하며 한시도 사람과 떨어진 적이 없으나,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일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인도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깨닫지 못한다. 피조물인 네가 자신의 역사(歷史)를 모르고,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누가 이끌어 주었는지도 모르며, 하나님이 행한 사역도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모른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다! 오늘날 창조주가 또 친히 모든 사람을 이끌어 주면서 그의 지혜와 전능, 구원과 기묘함을 보여 주었는데도 결국 네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너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 아니겠느냐? 사탄에게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사람이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도태될 대상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사역을 알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자는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려거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3단계 사역이 모두 끝날 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을 만들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인성과 이성을 갖춘 사람들이고, 3단계의 구원 사역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는 마지막에 이루려는 사역이다. 그들은 6천 년 경영 사역의 결정체이자 최후에 사탄을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마지막에 살아남을 자들이다. 너희 모두가 이 사람들 중의 일원이 될 수도 있고, 절반 혹은 몇 명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너희의 의지와 추구에 달려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2)

6천 년 경륜은 3단계 사역으로 나뉘는데, 어느 단계든 한 부분만 대변할 뿐, 세 시대의 사역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할 수는 없다. 또 그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율법 아래의 하나님일 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율법을 제정해 주고 계명을 반포했으며 사람이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게 했다. 그가 한 사역은 율법시대만 대변한다. 그가 그런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게만 하는 하나님, 성전에만 거하는 하나님, 제단 앞에만 있는 하나님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율법 아래의 사역은 한 시대밖에 대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사역만 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성전 안에만 거하는 하나님이니 하나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하나님을 규정할 것이다. 만약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율법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사람은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속량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만 하는 분이라고, 그는 거룩하고 무고한 분이며,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는 분이라고만 알았을 것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시대는 하나님의 성품 중 일부만을 대변한다. 율법시대를 대변하는 성품이 있고, 은혜시대를 대변하는 성품이 있으며, 이번 단계를 대변하는 또 다른 성품도 있다. 이 3단계 사역을 종합해야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나타나며, 사람은 3단계 사역을 알아야 비로소 전면적으로 알게 된다. 3단계 사역 중에 어느 한 단계도 빠져서는 안 된다. 너는 3단계 사역에 대해 알아야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율법시대의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구속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영원히 인류를 속량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전부 사람이 규정한 것이다. 은혜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속하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에서 하나님은 주로 말씀 사역을 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긴 적이 없이 형벌과 심판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말세의 사역은 여호와가 했던 사역, 예수가 했던 사역, 그리고 사람이 알지 못했던 모든 비밀을 사람에게 밝혀 주고, 나아가 인류의 종착지와 결말을 드러내며, 인류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구원 사역을 끝낸다. 말세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으로, 반드시 사람이 모르는 비밀을 다 열어 분명히 깨닫고 완전히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있다. 사람은 6천 년 경륜이 끝난 뒤에야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게 된다. 그것은 그의 경영이 끝났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3)

6천 년 경륜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사역이 지금에야 끝나게 되었다. 모든 사역을 사람에게 일일이 나타내고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뒤에야 사람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을 알게 된다. 이번 단계 사역을 완성했을 때면, 사람이 알지 못했던 비밀이 모두 밝혀졌을 것이며, 사람이 알지 못했던 진리를 모두 알게 했을 것이고, 사람이 앞으로 가야 할 길과 인류의 종착지도 모두 알려 주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단계에 하려는 모든 사역이다. 지금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도 십자가의 길이자 고난받는 길이지만, 실행하는 것과 오늘날 먹고 마시며 누리는 것은 율법 아래 사람이나 은혜시대 사람들과 크게 다르다. 오늘날 사람에 대한 요구는 예전과 다르며, 율법시대 사람들에게 했던 요구와는 더더욱 다르다.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율법 아래 사람들에게 어떻게 요구했더냐? 그저 안식일을 지키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충분했다. 안식일이 되면 아무도 일하지 않았고, 누구도 여호와의 율법을 어길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안식일이 되어도 평소처럼 일한다. 예배를 해야 하면 예배하고, 기도를 해야 하면 기도하며, 조금도 통제받지 않는다. 은혜시대 사람들은 세례받고 금식하고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발을 씻어야 했다. 지금은 이런 규례들을 모두 폐했고 사람에게 더 높은 요구를 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깊어지고 사람의 진입도 끊임없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예수가 안수기도를 했지만 지금은 말씀을 다 했는데 안수를 해서 뭐 하겠느냐? 말씀으로 직접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때는 안수로 사람을 축복하고 사람의 병도 고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성령이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성령이 그렇게 하지 않고 말씀으로 사역의 성과를 거둔다. 너희에게 모든 말씀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말씀이 바로 그의 뜻이고 그가 하려는 사역이다. 그가 한 말씀을 통해 그의 뜻을 알고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안수받을 필요 없이 곧바로 실천하면 된다. 어떤 이는 “안수를 해 주십시오! 당신에게 받을 분깃이 있도록 안수로 축복을 해 주십시오!”라고 하지만, 이는 다 과거의 낡은 실행 방법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성령은 무턱대고 역사하거나 규례에 맞추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역사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새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새 사역이 동반된다. 모든 단계의 사역이 다 그렇다. 그래서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중복된 적이 없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안수기도를 하고, 사람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적지 않게 행하였다. 오늘날에도 또 그렇게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때는 성령이 그렇게 했다. 은혜시대였기 때문에 사람은 충분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고, 어떤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이 믿기만 하면 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누구든 지극히 선대했던 것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하나님의 사역도 발전하여 형벌과 심판으로 사람의 패역과 사람 내면의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없앤다. 과거에는 속량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사람이 충분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베풀어 주어야만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고 은혜로 죄를 사해 줄 수 있었다. 이번 단계는 형벌과 심판, 말씀의 채찍질, 말씀의 징계와 폭로로 사람 내면의 불의한 것들을 드러낸 뒤 구원받게 하는, 속량보다 더 깊어진 사역이다. 은혜시대의 은혜는 이미 사람이 충분히 누렸고 체험했으므로 더 이상 누리게 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역은 시대에 뒤떨어졌기에 이제는 하지 않는다. 지금은 말씀의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이 심판과 형벌, 연단을 받아 성품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모두 내가 한 이런 말 때문이 아니겠느냐? 모든 단계의 사역은 전 인류의 발전 상황과 시대에 따라 행한다. 이는 다 의미 있는 사역이며, 최종적인 구원을 위한 것이다. 또 훗날 인류가 아름다운 종착지로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최종적으로 사람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4)

각 단계마다 성령이 역사하는 동시에 사람 또한 이를 증거해야 한다. 각 단계의 사역은 전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다. 싸움의 대상은 사탄이지만, 사역의 대상과 온전케 하는 대상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성과를 거둘지는 사람이 그를 어떻게 증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증거가 바로 하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한 모든 요구이며, 사탄 앞에서 해야 하는 증거이다. 그 증거는 또한 하나님의 사역 성과를 실증한다. 전체 경영은 세 단계로 나뉜다. 하나님은 단계별로 사람에게 합당한 요구를 하는데, 시대가 달라지고 발전함에 따라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도 갈수록 높아진다. 그리하여 경영 사역도 점차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고, 모든 사람이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이 사실을 알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요구는 더 높아졌고, 사람에게 요구하는 증거 역시 더 높아졌다. 사람이 하나님과 진정으로 협력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영광을 받는다. 사람의 협력은 바로 사람이 해야 하는 증거이고, 사람이 해야 할 증거는 바로 사람의 실행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이 상응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진실한 증거가 있을지는 사람의 협력, 증거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사역이 끝날 때, 즉 전체 경영이 모두 끝날 때, 사람은 더 높은 수준으로 증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이 종결될 때, 사람의 실행과 진입 또한 절정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과거에는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준수하고 인내하며 겸손해질 것을 요구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 요구는 사람이 환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단계의 요구는 전체 경영에서 사람에게 단계적으로 제시되었다. 사역은 단계별로 더 깊어졌고, 사람에 대한 요구도 단계별로 더 높아졌다. 전체 경영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사람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사람의 성품이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에 점점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전 인류는 사탄의 권세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며, 나아가 사역이 완전히 끝날 때는 전 인류가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게 된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고, 사람이 성품 변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협력하는 일 또한 없어지면서 전 인류가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다시는 거역하지도, 대적하지도 않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과 하나님의 협력은 더 조화로워질 것이다. 그 협력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삶이고, 하나님의 경영이 모두 끝난 후의 삶이며,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사탄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구원받은 이후의 삶이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그러한 삶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어둠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따르지 않은 자들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의 모든 사역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5)

전체 경영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사람을 구원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핵심 사역은 패괴된 사람을 철저히 정복하여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원래 갖고 있던 경외심을 되찾게 하고 정상인의 생활, 즉 정상적인 피조물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며 경영 사역의 핵심이다. 이 세 단계 구원 사역 중 1단계인 율법시대의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과 큰 차이가 있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구원 사역의 겉모습만 조금 갖추었을 뿐이며,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는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다. 1단계 사역을 영이 직접 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알았을 뿐 더 많은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사람의 성품 변화와 거의 관련이 없고, 사람을 어떻게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하는지에 대한 사역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패괴 성품과 관련되지 않는, 극히 간단한 사역만 완성한 것이다. 그 단계의 사역은 경영의 핵심과 그리 큰 관계가 없었고, 본격적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과도 그리 큰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친히 사역할 필요가 없었다. 영이 하는 사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측량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무서워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므로 직접 구원 사역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역시 영의 사역을 사람과 가까운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평범한 정상인이 되어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영의 사역을 대신해야 한다. 이 사역 방식이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다. 이 세 단계 사역 중 두 단계 사역은 육신이 행한 것이며, 또 이 두 단계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두 번의 성육신은 서로 보충하며 완전케 한다. 첫 번째 성육신은 두 번째 성육신을 위해 기초를 다졌다. 두 차례 성육신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단계 사역을 성육신의 신분으로 행한 것은 전체 경영 사역에서 이 두 단계 사역이 실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이 없었다면 전체 경영 사역이 정체되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도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역의 중요성은 인류의 필요성, 인류의 타락 상황, 사탄의 거역과 사역을 방해하는 정도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적임자는 사역자의 사역 성질과 사역의 중요성에 따라 결정된다. 사역의 중요도를 놓고 볼 때, 사역 방식을 택함에 있어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역하는 것, 성육신하여 사역하는 것, 또는 사람을 통해 사역하는 것의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 가운데서 제일 먼저 탈락된 것은 ‘사람을 통해 사역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는 사역의 성질,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성질에 근거해 최종적으로 육신이 사역하는 것이 영이 직접 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더 이로울 뿐만 아니라 장점이 훨씬 더 많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영이 사역할지, 육신이 사역할지를 결정할 때의 하나님의 생각이었다. 각 단계의 사역은 터무니없는 상상도 아니고,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행하는 것도 아니라, 모두 의의가 있고 근거가 있으며 어느 정도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의 실상이다. 특히 성육신하여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이렇게 중대한 사역을 하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계획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모든 어떠함은 그가 사역할 때의 일거수일투족, 마음과 생각 속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어떠함이다. 사람은 이런 세밀한 마음과 생각을 상상하기 어렵고 믿기도 어려우며 더욱이 깨닫기도 어렵다. 사람이 사역할 때는 대체적인 원칙이 있다. 사람에게는 이것도 이미 상당히 만족스럽겠지만, 하나님의 사역에 비하면 실로 격차가 크다. 하나님의 행사는 위대하고 그의 사역 규모 역시 매우 거대하지만, 이런 사역들의 이면에는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세세하고 정밀한 계획과 안배가 많이 들어 있다. 그가 하는 각 단계 사역에는 원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언어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사람에게는 이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영의 사역이든, 성육신의 사역이든 모두 하나님의 사역 계획이 있다. 그는 근거 없이 사역하지 않고 무의미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영이 직접 사역하는 데에는 그의 목적이 있고, 사람이 되어(그의 외형을 바꾸어) 사역하는 데에는 더더욱 그의 뜻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쉽게 신분을 바꿀 리 있겠느냐? 그가 어떻게 그리 쉽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핍박당하는 사람이 될 리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6)

지금 하는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이 앞으로 나아간 것이자, 전체적인 6천 년 경륜에 포함된 사역이 앞으로 발전한 것이다. 은혜시대는 끝났으나, 하나님의 사역은 앞으로 나아가며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을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율법시대 사역의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은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단계 사역을 예수가 행한 사역의 기초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겠느냐? 예수의 사역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면 이번 단계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앞 단계의 구속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사역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발전한 것이며, 이에 따라 지금의 사역 또한 예전보다 더 발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의 사역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 그리고 예수가 이룬 사역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세워진 것이지, 이 단계 사역이 따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을 종합해야 비로소 6천 년 경륜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이 두 사역에 연관성이 없다면, 어째서 이 단계 사역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겠느냐? 어째서 사람의 죄를 담당하지 않고 곧바로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겠느냐?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고 또한 이번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어 온 것이 아니라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할 자격이 없다. 나는 예수와 하나이기에 친히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전부 앞 단계 사역의 기초 위에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한 걸음씩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와 나는 같은 영에서 왔다. 육신은 서로 관련이 없지만 영은 하나이며, 사역의 내용과 담당하는 사역이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서로 다른 모습의 육신을 취한 이유는 시대가 다르고, 사역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직분이 다르기에 가져온 사역도 다르고, 사람에게 보여 주는 성품 역시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이 보고 깨닫는 것 역시 예전과 다르다. 이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차이이다. 두 육신은 성별도, 모습도 다르고, 같은 가문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며, 같은 시기에 태어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하나이다. 둘의 육신은 어떤 혈연관계도, 육적인 관계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서로 다른 시기에 입은 육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둘 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둘은 같은 혈통도 아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한 사람은 유대어를 쓰는 남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어만 쓰는 여자임). 이 때문에 둘은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자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둘은 하나의 영, 그러니까 같은 본질을 지니고 있으나, 육신의 겉모습은 닮은 부분이 전혀 없다. 똑같은 인성을 지녔을 뿐, 육신의 생김새나 출생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각자의 사역이나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결국 하나의 영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둘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들의 영이 그들의 전 존재를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육신은 같은 혈통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이 예수 영의 아버지가 아니고, 예수의 영 또한 여호와 영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국 하나의 영이다.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과 예수 역시 그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 그러나 둘의 근원은 하나이다. 이는 둘의 영이 원래부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사역을 할 수 있고,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사람을 형벌하거나 저주하는 사역도 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는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 또한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직접 하는 것 아니더냐?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이 아니더냐? 그는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할 수 있을뿐더러,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고, 그들을 이끌어 성전과 제단을 쌓게 했으며, 모든 이스라엘인들을 그의 권세 아래에 두었다. 그의 권병으로 인해 그와 이스라엘인들은 땅에서 2천 년 동안 살아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감히 거역하지 못했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계명을 지켰다. 이는 모두 그의 권병과 전능으로 행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이르러 예수가 와서 타락한 전 인류(이스라엘인에 국한되지 않음)를 속량했다. 그는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었다. 사람의 눈에 비친 은혜시대의 예수는 자비로 가득했으며, 늘 사랑으로 사람을 대했다. 그는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죄에서 완전히 속량하기까지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 시기의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즉, 그는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고 사람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영원히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준 것이다. 그는 긍휼과 자비를 지니고 있었고, 인내할 줄 알았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 주었다. 예수를 따른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범사에 인내와 사랑을 강조하고, 계속 고난을 받았으며, 다른 이가 욕하고 때리고 돌로 쳐도 반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마지막 단계는 다르다. 이는 예수와 여호와가 비록 영은 하나지만, 행한 사역이 완전히 똑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여호와의 사역은 시대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이끄는 것이었다.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을 펼쳤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없이 패괴된 이방의 인류를 정복하고, 중국에 있는 하나님 선민만이 아닌, 전 우주와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을 한다. 네가 보기에는 중국에서만 사역을 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사역은 중국 밖에서도 확장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왜 계속 참도를 찾겠느냐? 그것은 영이 일을 시작했고, 지금 하는 말은 전 우주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이미 반은 진행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큰일을 해 왔으며,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사역을 하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사역을 했다. 각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각기 다른 성품을 볼 수 있는데, 물론 그것은 그가 하는 각기 다른 사역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자비와 긍휼이 넘치는 하나님이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자 목자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사람에게 심판이자 형벌이며, 저주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2천 년 동안 이끌었고, 패괴된 인류를 죄에서 속량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그는 그를 알지 못하는 인류를 그의 권세 아래 정복하여 모든 사람이 완전히 순종하게 한다. 최종적으로 그는 전 우주의 사람들 속에 있는 불결하고 불의한 것들을 모조리 깨끗이 불사를 것이며, 그것을 통해 그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자, 지혜롭고 기묘하며 거룩한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사람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는 전 인류 가운데 악한 자들을 불사르고 심판하며 징벌할 것이다. 또 온전케 될 사람들에게는 환난과 연단, 시련을 주면서도 위로해 주고 붙들어 주며 말씀으로 공급하고 책망하고 훈계할 것이다. 그리고 도태될 사람들에게는 징벌을 내리며 그에 따른 보응을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7)

지금까지 6천 년에 걸쳐 사역을 하고 하나님의 행사도 많이 나타냈는데, 가장 주된 목적은 사탄을 물리치고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늘의 만물, 땅 위의 만물, 바닷속의 만물, 더 나아가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보여 준다. 또 사탄을 물리침으로써 그의 모든 행사를 사람에게 보여 주며,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송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그의 지혜를 찬미하게 한다. 땅 위, 하늘, 바닷속의 만물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전능과 모든 행사를 찬미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 외칠 것이다. 이것이 사탄을 물리치고 정복했으며 더욱이 인류를 구원했다는 증거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가 원수를 물리쳐 승리하고 돌아왔음을 찬미하며, 그를 가리켜 승리를 거둔 위대한 왕이라고 찬미할 것이다. 사탄을 물리치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에 그의 사역이 6천 년 동안 지속된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을 물리침으로써 인류를 구원하고, 사탄을 물리침으로써 자신의 모든 행사와 모든 영광을 나타낸다. 그는 영광을 얻을 것이고, 모든 천사들이 그의 모든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하늘의 사자, 땅의 인류, 땅의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가 하는 사역이다. 하늘과 땅의 피조물은 모두 그의 영광을 볼 것이며, 그는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고 승리해 돌아와 인류의 찬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일거양득의 사역이다. 결국에는 인류 전체가 그에게 정복될 것이며,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마지막에 모두 멸망될 것이다. 다시 말해, 사탄에게 속한 모든 것을 멸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온 인류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아야 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8)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행한 사역은 하나님이 땅에서 할 사역의 발원지, 자신이 거할 성지를 인류 가운데 세우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역 범위를 이스라엘 사람으로 한정하였다. 이스라엘 밖에서는 사역하지 않았는데, 사역 범위를 줄이기 위해 적합한 사람을 택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곳이다. 여호와는 그 땅의 흙으로 사람을 창조했고, 그곳은 그가 땅에서 사역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아의 후손이자 아담의 후손이며, 여호와가 땅에서 사역하는 데 기반이 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당시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의의와 목적, 그리고 절차는 온 땅에서 그의 사역을 펼치기 위함이었으며, 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방까지 사역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점에서 면으로 확장하는 방식은 그가 온 우주에서 사역하는 원칙이다. 이런 식으로 확장하여 온 우주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최초의 이스라엘 사람은 노아의 후손이었는데,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여호와가 준 생기뿐이었다. 물론 의식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인지, 사람에 대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으며, 창조주를 경외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욱 알지 못했다. 규례나 율례가 있는지, 피조물이 창조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담의 후손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남편은 땀 흘려 일하며 가족을 건사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여호와가 창조한 인류를 위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밖에 몰랐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생기와 생명만 가진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창조주를 흡족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러므로 교활하거나 간사한 마음도 없고, 시기하거나 분쟁한 적도 매우 드물었지만, 창조주인 여호와에 대해서는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인류의 선조는 여호와의 것을 먹고 누릴 줄만 알았지, 여호와를 경외할 줄도, 여호와가 그들이 경배해야 하는 분인 줄도 몰랐다. 이런 자들을 어찌 피조물이라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여호와는 창조주이다.”, “그가 인류를 창조한 이유는 자신을 나타내고 영화롭게 하며, 대표하게 하기 위함이다.” 등의 말씀이 빈말이 되지 않겠느냐?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자가 어찌 여호와의 영광을 증거하는 존재가 되겠느냐? 어찌 여호와의 영광을 빛내는 존재가 되겠느냐? 그렇다면 사탄, 그 악한 자가 “나는 나의 형상대로 인류를 만들었다”라는 여호와의 말씀에 트집을 잡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한 것을 모욕하는 표시가 되지 않겠느냐? 여호와는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인류를 창조한 후,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기까지 어떤 지시나 인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부터 노아의 후손이자 아담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을 본격적으로 인도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역과 말씀으로 이스라엘 전역 모든 백성들의 삶을 이끌어 주었다. 나아가 여호와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의 생명을 갖추게 하고, 사람을 흙에서 소생시켜 창조된 인류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불태우고 저주할 수 있고 그의 채찍으로 인류를 다스릴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낮과 밤의 시간에 맞춰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사역함으로써 인류의 삶을 인도해 줄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그저 피조물로 하여금 사람은 본래 여호와가 땅에서 취한 흙에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여호와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먼저 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이유는 이스라엘 외의 나라들과 족속들(사실은 이스라엘 외의 나라들과 족속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과 족속들이다. 그들의 조상 역시 아담과 하와이다.)이 이스라엘을 통해 여호와의 복음을 받게 함으로써 온 우주 아래의 모든 피조물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높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여호와가 처음에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지 않고, 인류를 창조한 후 그들이 땅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게 했다면, 육적 본성(여기에서 본성이란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영원히 알지 못한다는 것, 즉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한 이유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킴)을 지닌 사람으로서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했다는 것도, 여호와가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한 후, 그들을 한동안 인도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전 인류는 무(無)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니, 인류뿐만 아니라 창조된 천지 만물까지 모두 무로 돌아갔을 것이며, 이 땅은 사탄에게 짓밟혔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여호와가 바라던 ‘이 땅, 그의 창조물 가운데서 설 자리, 즉 성지를 갖는’ 소망은 깨지고 만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한 후 그들의 삶을 인도해 주고, 그들에게 말씀한 이유는 모두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그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이유는 단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세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먼저 사역한 것은 만물을 창조한 것과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 그의 경영과 그의 사역,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인류 창조의 의의를 더 깊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와는 노아 이후, 땅의 인류의 삶을 2천 년 동안 이끌어 주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만물의 주인 여호와를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어떻게 여호와를 증거하고 순종하고 경외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윗과 여호와의 제사장들처럼 악기를 연주하며 여호와를 찬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율법시대의 사역>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

여호와가 2천 년의 사역을 행하기 전까지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계속 타락해 갔다. 그리하여 홍수로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사람은 모두 음란하고 패괴되어 마음에 여호와가 없었으며, 그의 도는 더더욱 담아 두지 않았다. 그들은 여호와가 행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식견은커녕 이성조차 없던 그들은 그저 숨만 쉬는 기계 같아, 사람, 하나님, 만물, 생명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땅에서 독사처럼 유혹하는 일을 많이 했고, 여호와를 거스르는 말도 수없이 많이 했다. 하지만 그들이 무지했기에 여호와는 어떤 형벌도,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노아가 601세가 되던 해에 정식으로 노아에게 나타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인도해 주었을 뿐이다. 즉, 여호와는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노아와 그의 후손들을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끌어 주었는데, 그 기간은 총 2천 5백 년에 달했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으로 사역한 기간이 2천 년이었고,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 밖에서 동시에 사역한 기간이 5백 년이었다. 두 기간을 합쳐 2천 5백 년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자신을 섬기려면 성전을 짓고, 제사장 의복을 입어야 하며, 새벽부터 맨발로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는 그들이 신발로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혀 성전 위에서 떨어지는 불에 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서 여호와의 안배에 순종했고, 성전에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여호와의 계시도 받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여호와가 말씀한 후에 백성들을 이끌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또한 여호와는 그들에게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아야 하며, 여호와의 때, 즉 여호와의 유월절에 미리 준비해 둔 초태생의 송아지와 어린양을 제단에 바쳐 여호와를 섬겨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를 통해 그들을 단속하고, 여호와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했으며,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가늠했다. 이 밖에도 여호와는 그들을 위해 안식일을 정했다. 자신이 만물을 창조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 날을 첫날로 정했는데, 그날은 그들이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치고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미하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여호와는 제사장들을 모두 소집하여 제단 위의 제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먹게 함으로써 여호와 제단 위의 제물을 누리도록 했다. 또한 여호와는 그들을 복이 있는 자, 자신과 더불어 분깃이 있는 자, 자신의 선민이라 했다(이것 또한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과 맺은 언약이었음).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여호와는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율법시대의 사역>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수많은 계명을 정했고 모세를 통해 그를 따라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포했다. 그 계명은 여호와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것으로, 애굽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 계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하는 여호와의 요구였다. 안식일을 지키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우상을 숭배하는지 등을 원칙으로 죄와 의로움을 판단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임했고, 어떤 이는 돌에 맞아 죽었으며, 어떤 이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다. 그런 것들은 모두 계명을 지켰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일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돌에 맞아 죽었고,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불이 임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인정하는 바였다. 여호와가 계명과 율법을 정한 것은 사람의 삶을 인도하는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말에 순종하며, 그를 거역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율법으로 갓 난 인류를 통제한 것은 앞으로 행할 사역의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행한 사역을 근거로 첫 시대를 율법시대라 부르는 것이다. 여호와는 수많은 말씀과 사역을 했지만, 사람을 긍정적으로 인도하기만 했다. 즉, 그 무지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고, 생활할 줄 알며, 여호와의 도를 깨닫도록 이끌어 준 것이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 대부분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도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준행하게 한 것이었다. 이는 패괴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므로 성품의 변화라든가 생명의 성장 등을 논할 수는 없다. 그는 다만 율법을 통해 사람을 단속하고 통제했을 뿐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 여호와는 단지 성전에 거하는 하나님이자 하늘의 하나님이었으며, 구름 기둥이자 불기둥이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하라고 한 것은 오늘날의 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과 계명뿐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규례라고도 할 수 있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이 갖춰야 할 것들을 많이 베풀어 주고 친히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지음 받은 후, 사람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사람이 땅에 살면서 갖춰야 할 것들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었으며, 그것을 통해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인류를 그들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보다 낫게 하였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베풀어 준 것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은 단지 사람을 인도해 주고,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주를 인정하게 한 것뿐이다. 정복하는 것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라 그저 인도해 준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행한 사역의 전부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행한 사역의 배경이자 실상이며 본질이다. 또한 이는 모든 사람을 여호와의 수중에서 다스리는 6천년 경륜의 시작 사역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6천년 경륜에 더 많은 사역이 생겨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율법시대의 사역>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

처음에 구약 율법시대의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과 비슷했다. 최초의 인류는 여호와가 처음 만든 인류,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고,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여호와가 인류, 즉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지만,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하고 땅에서 여호와의 법도를 따라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관(器官)은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이다. 여호와가 직접 인도해 주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이를 직접 알 수 없다.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런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는 것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해야 그를 경외하는 것인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그를 경외하는 것인지, 여호와를 위해 무엇을 바쳐야 그를 경외하는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람은 여호와가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피조물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인류를 아무도 이끌지 않고, 직접 인도해 주지도 않는다면, 인류는 영원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저 사탄에게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여호와는 인류, 즉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많은 총명과 지혜를 베풀어 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땅에서 생활했지만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인류를 창조하는 여호와의 사역은 전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반만 완성되었다. 여호와는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빚고 그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을 뿐, 사람에게 그를 경외하고자 하는 충분한 의지는 주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만 알았지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과 보편적인 법칙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여호와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고 7일간의 일을 완성했지만,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껍데기만 있었을 뿐, 사람으로서의 실제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했다는 사실만 알았지, 어떻게 그의 말씀과 법도를 따라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므로 인류가 생겨났음에도 여호와의 사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여호와는 또 인류를 그의 앞으로 철저히 인도하여 땅에서 무리 지어 살면서 그를 경외하게 하고, 그가 인도한 후에도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역이 모두 끝나게 되는 것이었다. 즉, 여호와의 창세 사역이 모두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인류를 창조한 이상, 그들을 인도하여 땅에서 수천 년을 살게 하고, 그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게 해야 했다. 또한, 인류가 땅에서 정상적으로 그들의 모든 활동을 하게 해야 했다. 그렇게 되어야 여호와의 사역이 모두 끝나는 것이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

예수의 사역은 그 시대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이뤄졌다. 그는 그의 사역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해 겸손, 인내, 사랑, 경건함, 포용, 긍휼 그리고 자비의 성품을 가져왔으며,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와 축복, 그리고 온갖 누릴 것들을 베풀어 주었다. 사람이 누리는 모든 것은 평안과 희락이었고,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으며, 그의 긍휼과 자비였다. 당시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함, 영적인 위로, 예수에 대한 의존감 등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런 것은 다 그들이 살던 시대와 관련이 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있었다.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행하고 그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풍성한 은혜와 한없는 포용, 인내, 나아가 사람의 죄를 충분히 사해 줄 수 있는 속죄 제물이 있어야 했다. 은혜시대의 사람은 죄를 사해 주는 속죄 제물, 즉 예수만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포용한다는 것만 알았으며, 그들이 본 것 또한 예수의 긍휼과 자비뿐이었다. 이는 다 그들이 은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속되기 전에 반드시 예수가 베풀어 주는 수많은 은혜를 누려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은혜를 누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예수가 베풀어 준 포용과 인내를 누림으로써 속죄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인해 사람은 죄 사함 받을 자격을 얻었고, 그가 베풀어 준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예수가 ‘의인을 구속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러 온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성육신한 예수가 심판과 저주의 성품을 지니고 와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영원히 구속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영원히 죄에 속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6천 년 경륜은 율법시대에서 정지되고, 그 상태로 6천 년 동안 지속되면서 사람의 죄는 갈수록 많아지고 깊어졌을 것이고 따라서 인류를 창조한 의의도 사라졌을 것이다. 사람은 율법하에서만 여호와를 섬기게 되지만 인류의 죄는 최초로 지음 받은 인류의 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줄수록, 사람에게 충만한 긍휼과 자비를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예수에게 구원받을 자격이 더 생기고, 예수가 비싼 값을 들여 사 온 길 잃은 양이라 일컬어지게 된다. 반면 사탄은 그 사역에 끼어들 수 없다. 예수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아기를 대하듯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했기에, 노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진노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고 그들의 죄를 포용해 주었고 나아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그의 마음으로 감화시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의 포용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속시대 사역의 실상>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

성육신한 예수에게는 감정이 없었지만, 늘 제자들을 위로해 주고 공급해 주며, 도와주고 붙들어 주었다. 그는 많은 사역을 행하면서 수없이 고통을 겪었지만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았고, 사람의 죄를 한결같이 인내하며 포용해 주었다. 이에 은혜시대 사람들은 그를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당시의 모든 사람이 본 예수의 소유와 어떠함은 긍휼과 자비였다. 그는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았고, 그 과오를 잣대로 사람을 대하지도 않았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그는 늘 풍성한 음식을 베풀어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했고,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죽은 자를 다시 살려 주었다. 사람들에게 그를 믿고, 그가 행한 모든 것이 진실함과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 그는 심지어 썩은 시체를 살리기까지 하였다. 이를 통해 죽은 자도 그의 손에서 부활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처럼 그는 언제나 사람들 가운데서 묵묵히 참으면서 구속 사역을 행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의 속죄 제물이 된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십자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자신의 긍휼과 자비, 거룩함을 모두 인류에게 베풀어 준 것이다. 그는 언제나 관용으로 사람을 대하고 보복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회개하도록 가르쳤다. 또한 사람에게 인내와 포용과 사랑을 갖고, 그가 걸은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넘어섰다. 그가 행한 사역은 사람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냄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사역은 모두 그의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는 어디를 가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다. 가난한 자를 풍족하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했으며, 눈이 먼 자를 보게 하고 귀가 먼 자를 듣게 했다. 심지어는 가장 비천하고 가난한 자, 즉 죄인을 멀리하지 않고 불러 모아 그들과 동석하며 늘 참아 주었다. 나아가 “목자는 양 백 마리 중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아다닐 것이다. 그러다가 찾으면 몹시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기까지 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자를 사랑하기를 어미 양이 새끼를 사랑하듯 했다. 우매하고 무지한 그들은 예수의 눈에 모두 죄인이었으며, 사회에서 가장 낮고 비천한 자들이었지만, 예수는 도리어 남들이 무시하는 그 죄인들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여겼다. 예수는 그들을 사랑했기에 제단에 바쳐진 어린양처럼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그들의 종이 된 것처럼, 그들에게 마음대로 사용되고 죽임 당할지라도 무조건 순종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였다. 하지만 그는 높은 곳에 서서 사람을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은 긍휼과 사랑이 아닌, 혐오와 반감으로 대했다. 그가 바리새인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때로 훈계하고 질책했을 뿐, 그들 가운데서는 구속 사역을 행하지 않았고 이적과 기사도 행하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그는 그 죄인들을 위해 끝까지 참고 십자가에 달려 온갖 모욕을 받은 후에야 온 인류를 완전히 구속했다. 이것이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이다.

예수가 사람을 구속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계속 죄 속에서 살면서 죄의 자손과 귀신의 후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 땅은 사탄이 기거하고 살아가는 곳으로 변했을 것이다. 구속 사역을 행할 때는 반드시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어야 했다. 그래야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최종적으로 온전케 되어 완전히 얻어질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그 단계의 사역이 없었다면, 6천 년 경륜도 전개될 수 없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의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기만 했다면, 사람의 죄는 온전히 사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땅에 와서 3년 반 동안 사역하며 구속 사역의 반만 완수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었고, 그 악한 자에게 넘겨진 후 십자가의 사역을 완수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관했다. 그는 사탄의 손에 넘어간 뒤에야 인류를 속량할 수 있었다. 예수는 세상에서 33년 반 동안 비웃음, 비방과 버림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머리 둘 곳도 안식할 곳도 없이 고난을 겪었다. 그러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로 인해 온전한 자기 자신, 즉 거룩하고 무고한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온갖 고난을 다 겪었던 것이다. 집권자들은 그를 희롱하고 채찍질했으며, 병사들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끝까지 참으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구속했다. 그러고 나서야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행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변할 뿐, 율법시대는 대변하지 못하며 말세 사역도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이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한 사역의 본질이며, 인류가 겪은 두 번째 시대인 구속시대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속시대 사역의 실상>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 이후에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였다. 그의 사역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역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를 끝내고 행한 새 시대의 사역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사역이 끝난 후에도 하나님은 다음 시대의 사역을 계속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경영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낡은 시대가 지나가면 새로운 시대로 대체해야 하고, 옛 사역이 끝나면 새 사역으로 하나님의 경영을 이어 가야 한다. 이번 성육신은 예수의 사역을 이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이다. 물론, 이번 성육신 역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뒤를 잇는 세 번째 단계의 사역이다. 하나님이 새 사역을 펼칠 때마다 늘 새로운 시작이 있고, 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역 방식, 하나님의 사역 장소, 하나님의 이름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생긴다. 이러니 사람이 하나님의 새 시대 사역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대적하든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항상 전 인류를 인도하여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수는 인간 세상에 와서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열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였으며, 이번 성육신은 은혜시대를 끝내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를 열었다. 두 번째 성육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하나님나라시대로 들어갈 수 있고, 또한 직접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며,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

사람이 은혜시대에만 머무르면 패괴 성품을 영원히 벗어 버릴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고유 성품을 알 수도 없다. 늘 풍성한 은혜 속에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생명의 도를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얻지 못한다. 이런 신앙은 너무도 가련하다. 네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성육신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 행한 사역들을 하나하나 체험하고 나면, 너는 오랜 소망이 드디어 실현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또 이제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마주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이 직접 발한 음성을 듣고, 하나님 사역의 지혜를 알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며, 하나님이 이토록 실제적이고, 이토록 전능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낄 것이다. 또한 이전 사람이 보지 못하고 얻지 못한 많은 것을 얻었다고 느낄 것이며, 이때 너는 도대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네가 이전의 관점을 고수하면서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사실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 수확 없이 빈손으로 끝나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죄명을 얻을 수밖에 없다. 진리와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두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 전능자의 이름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고, 더 많고 더 높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진정한 인생을 얻을 수 있고, 이전 사람이 못 봤던 이상(異象)을 볼 수 있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계 1:12~16) 이 이상이 바로 하나님이 지닌 모든 성품의 발현이며, 또한 이 모든 성품의 발현이 바로 이번에 성육신한 하나님의 사역의 발현이다. 계속되는 형벌과 심판 속에서 인자는 음성을 발하여 말씀하는 방식으로 고유 성품을 나타냄으로써 형벌과 심판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인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모습이 바로 요한이 본 인자의 진실한 모습이다(물론 하나님나라시대의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이를 전혀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은 사람이 언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 성품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그의 본래 모습을 사람 앞에 나타낸다. 다시 말해, 인자의 고유 성품을 알게 된 사람은 인자의 본래 모습을 본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해서 사람이 언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나라시대의 하나님 사역을 하나하나 체험한 후에는 요한이 말한 촛대 사이의 인자의 모습, 즉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라는 말의 진정한 함의를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이처럼 많은 말씀을 한 이 평범한 육신이 확실히 두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이라고 완전히 확신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너무나 큰 축복을 받았다고, 최고의 행운아라고 진정으로 느낄 것이다. 너는 이런 축복을 받고 싶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6)

마지막 사역은 말씀 사역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크게 변화할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은 변화는 은혜시대 사람들이 이적과 기사를 통해 얻은 변화보다 훨씬 크다. 은혜시대에 안수기도를 하면 귀신이 사람 몸에서 나갔지만 사람 안의 패괴 성품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병 고침을 받고,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 안에 존재하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없애는 사역은 없었기에 그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죄 사함을 받았을 뿐, 죄짓는 본성은 그대로 남아 사람 안에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것이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속죄 제물로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죄를 짓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벗어 버리며, 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패괴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하며,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도,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가 사역할 때, 예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막연하고 모호했다. 사람은 줄곧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겼고, 대선지자이자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인자한 주님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고, 소경도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은 자도 부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품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것을 어떻게 벗어 버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 육체의 평안과 즐거움,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는 것, 병이 낫는 것과 같은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 외에도 선행을 하고 경건한 겉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신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었다. 그런 신자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생전에 생명의 도를 전혀 알지 못했고, 그저 죄를 짓고 자복하기만을 반복할 뿐, 성품이 변화되는 길은 없었다.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상태였다. 사람이 완전히 구원을 받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그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 또 한 단계의 심판과 형벌 사역이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이 실행할 길을 얻게 한다. 이 단계에서도 귀신을 쫓아낸다면 아무런 성과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죄성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그저 죄 사함을 받은 기초에만 머물러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속죄 제물을 통해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십자가 사역이 끝났고 하나님이 사탄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패괴 성품이 아직 존재한다. 사람은 여전히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인류를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번 사역은 말씀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어 사람이 적합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이전 단계의 사역보다 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성과도 더 크다. 지금은 말씀으로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더 철저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성육신은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하였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확실히 완성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7)

말세 사역에서 말씀의 위력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위력을 넘어섰으며, 말씀의 권병은 이적과 기사의 권병을 능가하였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모든 패괴 성품을 다 들추어냈다. 너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어도 말씀으로 들추어내면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진심으로 탄복하게 된다. 이것이 말씀의 권병 아니겠느냐? 이는 모두 오늘날의 말씀 사역으로 얻은 성과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완전히 구원할 수 없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완전히 만들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병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데 그친다. 하지만 사람의 육은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며,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이 남아 있다. 즉, 정결케 되지 못한 사람은 계속 죄에 속하고 더러움에 속한다. 오직 말씀으로 정결케 되어야만 하나님께 얻어지고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고 사람을 속량해 온 것은 그저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하나님께 돌려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패괴된 사람이다.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더러움이 남아 있고 대적과 거역이 남아 있다. 다만 속량받아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이 속량받기 전에 이미 사탄의 많은 독소가 사람 안에 심어져 있었다. 사람은 수천 년 동안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고, 내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것은 그저 속량받은 것에 불과하다. 즉, 비싼 값을 치르고 사람을 사 온 것이다. 하지만 사람 내면에 있는 독성은 제거되지 않았다. 이렇게 더러운 사람은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을 섬길 자격을 가질 수 있다. 심판하고 형벌하는 이번 단계의 사역으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패괴된 본질을 완전히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주어진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며, 말씀의 심판과 형벌, 연단으로 패괴를 벗겨 정결케 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구원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 이번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이자 두 번째 구원 사역이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이는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들춰내며,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개인적인 소망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은 속량되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문제 삼지 않고 사람을 과오에 따라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으로 살며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계속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사함을 받는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한다. 이러면 속죄 제물이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한 것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여전히 패괴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신이 모압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을 때 원망했고, 생명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완전히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는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의 권세에 완전히 순종하지는 못한다는 뜻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탄의 패괴 성품 아니겠느냐? 너는 형벌받지 않았을 때 누구보다 높이 손을 들었다. 심지어 예수보다도 더 높이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겠습니다! 저희는 죽을지언정 사탄에게 굴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탄을 내치겠습니다! 큰 붉은 용을 저버리겠습니다! 큰 붉은 용을 철저히 무너뜨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겠습니다!” 누구보다도 크게 외쳤지만 결국 형벌 시대가 오자, 사람의 패괴 성품은 또 드러났다. 사람은 외치지도 않았고 의지도 없어졌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패괴로, 죄보다 더 깊고, 사탄이 사람 안에 심어 놓은,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들이다. 사람의 죄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는 본성을 사람은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씀의 심판을 통해 성과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그때부터 차츰 변화될 수 있다. 사람이 예전에 그렇게 외친 것은 모두 원래 가지고 있는 패괴 성품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람 안에 있는 불순물이다. 오랜 심판과 형벌로 사람은 모두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다 말씀으로 이룬 것 아니더냐? 너는 봉사자가 되기 전까지 크게 외치지 않았더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됐어! 이 이름을 받아들인 자는 모두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거야! 누구나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 있다고!” 하지만 봉사자의 시련을 주자 더 이상 외치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은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어디에 두시든 저는 당신이 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외쳤다. “누가 내 바울이냐?”라는 하나님 말씀을 봤을 때 그는 “제가 바울이 되겠습니다!”라고 했고, 또 “욥의 믿음이 어떠하냐?”라고 했을 때는 “제가 욥의 믿음을 갖추겠습니다. 저에게 시련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하지만 봉사자의 시련이 닥치자 그 즉시 쓰러져 일어서지도 못할 뻔했다. 그 후 사람 마음속의 불순물도 차츰 줄어들었다. 이것은 모두 말씀으로 이룬 것 아니더냐? 그러므로 오늘날 너희가 체험한 것은 모두 말씀으로 이룬 성과다. 그것은 심지어 예수가 지난날 이적과 기사를 나타냄으로써 얻은 성과보다도 크다. 너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권병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권병을 보았다. 이는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기적을 보이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이 아니며, 말씀의 심판은 더더욱 하나님의 권병을 대변하고 전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열고, 말씀으로 사역의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행한다. 이것이 말씀 시대에 하나님이 사역하는 원칙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각기 다른 위치에서 말씀함으로써 사람에게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진정으로 보게 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을 보게 한다.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며 도태시키기 위한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 시대에 말씀으로 사역하는 진정한 함의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을 알고, 사람의 본질을 알며,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 시대에 행하려는 모든 사역을 이루는 한편,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고 사람에게 시련을 준다. 사람은 말씀을 보고 들었기에 말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 나아가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게 된 것이다. ‘말씀’이라는 단어는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천지를 진동시키고, 사람의 마음과 고정 관념, 그리고 옛 성품을 변화시켰으며, 온 세상의 낡은 면모를 변화시켰다. 지금까지 이렇게 사역하고 말씀하며 사람을 구원한 분은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밖에 없다. 이로부터 사람은 말씀의 인도 아래에서 살고, 말씀의 양육과 공급으로 살게 되었다. 또한 말씀의 세계에서 살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러한 말씀과 사역은 다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옛 창조 세계의 원래 모습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말씀으로 온 우주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구원하며, 마지막에는 말씀으로 옛 세상을 끝낸다. 이렇게 해야 전체 경륜의 모든 부분이 완성된다. 전체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역하고, 말씀으로 사역의 성과를 거둔다. 이적이나 기사를 나타내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만 사역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양분을 얻고 공급을 받으며, 인식을 얻고 진실한 체험을 하게 된다. 말씀 시대의 사람은 육체적 고통도 겪지 않고 풍성한 하나님 말씀을 누리기만 하면 되니 참으로 크나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찾을 필요도, 뛰어다닐 필요도 없이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현현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공급을 받고, 그가 친히 행하는 사역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역대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던 것이고, 얻을 수 없었던 축복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

인류는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되어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을 때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영광과 증거가 따랐지만 사람이 패괴되자 영광도 증거도 사라졌다.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은 모든 증거와 영광을 되찾아 옴으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피조물 가운데 증거가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이 단계에 하려는 사역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인류를 정복하겠느냐?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을 통해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고, 폭로, 심판, 형벌과 무자비한 저주로 철저히 인정하게 한다. 또 사람의 패역을 폭로하고 사람의 대적을 심판하여 인류의 불의와 더러움을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킨다. 주로 이런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한다. 말씀은 궁극적으로 인류를 정복하는 경로이다. 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말씀의 매와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말씀하고 있는 과정이 바로 정복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겠느냐? 너는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정복될지는 사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오직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신 것을 기초로 자신의 패괴와 더러움, 패역과 불의를 깨달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 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 실행해야 하며, 또한 이상(異象)도 갖춰야 한다. 네가 어떤 선택도 없이 이런 말씀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면 정복된 것이며, 그것도 말씀으로 인해 정복된 것이다. 인류는 왜 증거를 잃었겠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마음속에 하나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인류가 이 ‘믿음’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늘 세상을 좇는다. 소망이나 미래에 대한 바람, 사치스러운 요구가 너무 많고, 늘 육에 신경 쓰며 육적인 것을 고려할 뿐, 하나님을 믿는 길을 찾으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또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존재인데도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한사코 사탄만 위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증거를 잃게 되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잃게 된 것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영광을 되찾기 위함이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손꼽을 정도로 적다. 사람은 무엇보다 앞날을 걱정할 뿐 생명은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다. 거역하고 대적하고 뒤에서 판단하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지금 일단 차치할 것이며, 이 부류의 패역한 자들에 대해서는 일단 어떤 처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중에 어둠 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너는 빛 속에서 살면서도 빛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살게 되면 빛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후회할 것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어둠이 찾아오고 빛이 영영 사라질 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지금 네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직 현재의 사역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우주의 사역이 전개되면, 즉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다 이루어지면 많은 사람이 대성통곡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둠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 아니겠느냐? 진정으로 생명을 추구하여 온전케 된 사람은 모두 쓰임 받을 수 있다. 쓰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패역한 자식들은 모두 어둠 속에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성령 역사가 조금도 없으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징벌 속에 떨어져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이 단계 사역에서 네가 진리로 잘 무장하고 생명이 성장한다면 너는 쓰임 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잘 무장하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 사역에서 너를 쓰고 싶어도 쓰기에 적합하지 않을 테니, 그때 가서 무장하려고 해도 기회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떠나면 네가 어디 가서 지금과 같은 이런 사역 기회를 찾겠느냐? 네가 어디 가서 하나님의 훈련을 직접 받겠느냐? 그때는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지도 않고 음성을 발하지도 않을 텐데, 지금 한 말씀만 보고서 어떻게 잘 깨달을 수 있겠느냐? 이후의 생활이 어찌 지금과 비교가 되겠느냐? 그때가 되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면 생고생하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너는 복을 주어도 누릴 줄 모르고 복 가운데서 살면서도 복인 줄 모르니, 고생할 팔자인 것이다! 지금 어떤 이들은 대적하고, 어떤 이들은 거역하며, 어떤 이들은 이런 짓, 저런 짓을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너희가 저지른 그 짓거리들을 내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내가 너희의 본질을 모를 리 있겠느냐? 구태여 계속 나와 맞설 필요가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너 자신을 위해 생명을 추구하고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더냐? 너는 너 자신을 위해 믿는 것 아니더냐? 지금 나는 그저 말로써 정복 사역을 할 뿐이다. 정복 사역이 끝나면 너의 결말도 드러날 텐데, 굳이 내가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0)

지금의 정복 사역은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이다. 왜 지금의 형벌과 심판이 바로 마지막 날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라고 하겠느냐? 이것도 꿰뚫어 보지 못했느냐? 왜 마지막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이겠느냐? 바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형벌과 심판의 정복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본모습을 드러낸 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인류를 정복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다. 다시 말해, 사람의 죄를 심판함으로써 각 부류의 사람들을 드러내고, 그것으로 악한 자인지 의로운 자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정복 사역 다음은 상선벌악의 사역이다.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로 확장하는 다음 단계 사역 가운데 놓일 것이고,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어둠 속에 놓여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되는데, 악인은 악으로 돌아가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하며, 의인은 선으로 돌아가 빛을 얻고 영원한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고 사람의 결말도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인데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을 때 드러나고, 또 전 우주의 정복 사역(지금부터 시작되는 모든 정복 사역 포함) 가운데서 드러난다. 모든 인류의 결말은 심판대 앞에서, 형벌 가운데서, 말세의 정복 사역 중에서 드러난다.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것은 사람이 원래 속했던 부류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지을 때 사람은 한 부류, 즉, 남자와 여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람의 부류가 많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수천 년간 패괴되면서 부류가 생겼을 뿐이다. 어떤 부류는 더러운 귀신의 권세 아래, 어떤 부류는 악귀의 권세 아래, 어떤 부류는 생명의 도를 추구하여 전능자의 권세 아래 속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에게 점점 부류가 생겼고, ‘사람’이라는 대가족이 각각의 부류대로 나뉘어 저마다 서로 다른 ‘아버지’를 갖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다 전능자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패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공의로운 심판이 각 부류 사람의 진면목을 숨김없이 들춰내 모든 사람은 빛 속에서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때 사람은 이미 태초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의 조상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 가운데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미 오래전에 사탄에게 사로잡혀 하늘해(원문: 天日)를 알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의 내면은 사탄의 여러 가지 독소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적합한 종착지가 생겼고, 모두가 저마다 지닌 서로 다른 독소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되었다. 즉, 오늘날 정복된 후의 정도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것이다. 사람의 결말은 창세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한 부류밖에 없었는데, 그들을 통틀어 ‘인류’라고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았으며, 어둠이 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에는 각종 사람, 즉 남자, 여자의 통칭인 ‘인류’라는 이 대가족에서 갈라져 나온 각종 사람이 온 땅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조상에게 이끌려 그들의 가장 오래된 조상인 남자와 여자(최초의 아담과 하와, 그들의 가장 오래된 시조), 그 인류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 여호와의 인도를 받으며 땅에서 생활한 사람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뿐이었다. 이스라엘 온 땅(최초의 대가족)에서 갈라져 나온 각 부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인도를 잃게 되었다. 처음 난 인류는 인간 세상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조상을 따라 그들이 차지한 땅에서 지금까지 살았다. 그리고 여호와를 떠나 오늘날까지 온갖 더러운 귀신과 악령에 의해 패괴되기에 이르렀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에 이르러 심하게 패괴되고 중독된 사람들, 즉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 그러니까 그들을 패괴시킨 더러운 귀신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인류의 적합한 종착지에 들어갈 것이다. 이는 구원받고 정복된 사람의 결말이다.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최선을 다해 구원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마비되어 구제 불능이 된 사람은 그들의 조상을 따라 사람을 형벌하는 무저갱에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너의 결말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오늘에야 드러난다고 생각하지 마라. 태초에 인류를 만들 때는 아담과 하와, 그 두 사람만 만들었고(남자와 여자만 만들었음), 사탄과 같은 부류의 인류는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잊었느냐? 만약 네가 처음부터 사탄의 후예였다면,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 때 사탄과 같은 부류의 사람도 만들었다는 말이냐? 그가 그렇게 할 리가 있겠느냐? 그가 사람을 만든 것은 그의 증거를 위해서이고 그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가 일부러 사탄의 자손과 같은 부류를 만들어 자신을 대적하게 할 리 있겠느냐? 여호와가 그렇게 할 리 있겠느냐? 그렇다면 누가 그를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지금 너희 중 일부를 가리켜 결국 사탄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네가 처음부터 사탄에게 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심하게 타락했기 때문이다. 설령 너를 구원한다고 해도 너는 이 구원을 얻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너를 사탄 부류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너를 공의롭게 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네가 구제 불능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너를 사탄의 화신으로 정한 다음 사탄에게 주어 고통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복 사역의 실상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의 인식이 너무 단편적인 것이다! 마지막 때의 정복은 구원을 위한 것이고, 또한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심판으로 사람의 타락을 들춰내고, 이를 통해 사람이 회개하고 분발하고 생명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추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무감각하고 우둔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심판으로 사람 내면의 패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인생의 바른길을 추구하지 않으며 이런 패괴를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사탄에게 삼켜질 구제 불능인 자다. 이것이 정복의 의의다. 정복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좋은 결말이든 나쁜 결말이든 다 정복 사역을 통해 드러난다. 사람이 구원받는지 저주받는지도 정복 사역에서 드러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1)

말세에는 정복을 통해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한다. 정복은 말세의 사역이다. 즉, 각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말세의 사역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있겠느냐? 너희들 가운데서 하는,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은 전 우주에서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의 시작이다. 이후에는 각 지역, 각 민족도 다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창조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될 것이고, 모두 심판대 앞으로 돌아와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사물도 이 형벌과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한 각기 부류대로 나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부류에 따라 나뉜다.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고 온 천지가 끝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어찌 생존이 끝나는 날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의 패역한 행위가 얼마나 오래가겠느냐? 너희의 마지막 날이 다 눈앞에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는 날을 보지 못할 수 있겠느냐? 어찌 마지막에 선행에 대한 상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악을 행하는 사람이냐? 너는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들여 순종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들여 저주받는 사람이냐? 너는 빛 속의 심판대 앞에서 살고 있느냐, 아니면 어두운 음부에서 살고 있느냐? 네가 마지막에 상을 받을지 벌을 받을지는 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너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너의 행위와 너의 마음은 대체 어떠하냐? 지금 내가 너를 정복함에 있어, 너의 행위가 악인지 선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는 나를 위해 얼마나 포기했느냐? 너는 나를 얼마나 깊이 경배하느냐? 네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너의 결말이 과연 어떨지, 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대로 알려 주겠다. 나는 인류를 만들고 또 너를 만들었을 뿐, 너희를 사탄의 손아귀에 넘겨주지 않았고, 일부러 너희로 하여금 나를 거역하고 대적하게 해서 나의 징벌을 받게 하지도 않았다. 그런 재앙을 당하는 것은 모두 너희 자신의 마음이 너무 강퍅하고 너희의 행동이 너무 비열하기 때문 아니겠느냐? 그럼 너희의 결말 역시 너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너희의 결말은 너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내가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사람을 드러내기 위함이고 또 네가 더 잘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지, 너에게 악을 행하라고 하는 것도, 일부러 너를 멸망의 지옥에 들어가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가 되어 심하게 고통받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면 그것은 전부 너의 죄 때문 아니겠느냐? 그러니 너 자신의 선이나 악은 너에게 가장 좋은 심판 아니겠느냐? 너의 결말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증거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2)

하나님은 말세에 와서 주로 말씀을 하는데, 영의 위치에서 말하고, 사람의 위치에서 말하고, 제3자의 위치에서도 말하는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씀한다. 일정한 기간마다 말씀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며, 말씀하는 방식으로 사람의 관념을 돌려세우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을 없앤다. 하나님은 주로 이 사역을 한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이 오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이적을 행하고 물질적인 축복을 베풀어 준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여 사람 관념 속에 있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없애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실제적이고 정상적임을 알게 하고, 사람 마음속의 예수 형상을 제거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형상이 사람을 점유하게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의 내면에서 오래되면 우상에 속하게 된다. 예수가 와서 행한 사역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적과 기사를 어느 정도 행하고, 약간의 말씀을 하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는 하나님의 일부를 대변했을 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을 대표하여 일부 사역만 행했다. 하나님은 너무나 기묘하고 위대하여 측량할 수 없는 데다가 하나님은 한 시대에 일부 사역만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사람에게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고, 사람의 본성, 본질과 패괴 성품을 폭로하며, 사람의 종교 관념, 봉건적인 사상과 낡은 사상을 없애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 문화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말씀으로 드러내야 정결하게 된다. 하나님은 말세에 이적과 기사가 아닌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하며, 형벌하고, 온전케 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말씀으로 모세를 인도하여 출애굽 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간의 말씀을 했으며, 그때 하나님의 행사를 일부 나타냈다. 사람의 자질은 제한적이어서 어떻게 해도 전면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고 사역했던 것이다. 은혜시대에 사람들은 또 하나님 행사의 일부를 보았다. 예수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육신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뿐이었다. 하나님이 어디까지 보여 주면 사람은 거기까지 알게 되고, 하나님이 더 이상 보여 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그 정도 차원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속 사역하여 사람의 앎을 더욱 깊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너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실제로 너의 종교 관념을 대체한다. 하나님은 말세에 성육신하여 주로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으로 오며,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다”라는 말을 이룬다. 이 부분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굳게 설 수 없다. 하나님은 말세에 주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이루는데, 이것은 하나님 경륜의 일부 사역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 결국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규정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과, 하나님이 말세에 이 사역을 행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앎이 어느 정도에서 그치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다든가, 소돔을 멸할 수 있다든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베드로에게 나타났다든가 이런 것들만 알 뿐,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사람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만 이러한 앎을 얘기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많이 체험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어, 하나님을 자신의 관념으로 규정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알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유일하면서도 정확한 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3)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말씀으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수많은 비밀을 알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사역을 알게 된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얻고, 지금까지 사람이 풀지 못한 비밀을 알게 되며, 역대 선지자와 사도가 한 사역과 사역의 원칙을 알게 된다. 또 사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거역과 대적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본질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과 모든 말씀을 통해 영의 사역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한 사역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성품도 알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을 알게 된 것도 역시 말씀을 통해서이다. 과거에 네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깨닫고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예수의 사역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지만 이번 단계 사역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한 말씀은 역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한 사역을 능가한다. 선지자가 한 예언일지라도 이런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선지자가 한 말은 예언에 불과하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지, 당시 하나님이 하려고 했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것도 아니며, 또 사람에게 진리를 베푸는 것도 비밀을 풀어 주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베풀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번 단계에서 한 말씀에는 예언도 있고 진리도 있지만, 그 말씀은 주로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말씀은 선지자의 예언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고 사람의 생명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첫 단계 사역은 여호와의 사역이었다.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해 주는 것이었고, 땅에 사역의 발원지를 마련하기 위한 시작 사역이었다. 당시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으므로 첫 단계 사역에서는 반드시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어야 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알려 준 것은 인류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고, 사람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이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예언을 하게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예언을 했지만, 이는 그저 하나님 사역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첫 단계 사역에서는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으므로 선지자를 통해 각 나라와 족속을 효유했다. 예수가 사역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는 않았다. 말세에 하는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은 역대에 행한 적이 없다. 비록 이사야, 다니엘, 요한이 많은 예언을 했지만, 그들이 한 예언은 지금 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말은 예언에 그쳤지만 지금 하는 말은 예언이 아니다. 내가 모든 말을 예언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너희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한 말이 모두 내가 떠난 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말씀 사역은 예수 시대에 한 적이 없고, 율법시대에도 한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난날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한편,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 말씀이지만 말씀에도 차이가 있다. 여호와가 한 말씀의 본질은 무엇이더냐? 그는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끌어 주었을 뿐, 그 말씀이 생명과 영적인 일에 관련되지는 않았다. 어째서 여호와가 말씀한 것을 각 지역에 효유했다고 하겠느냐? ‘효유’라는 두 글자는 분명히 알리고 직접 지시한다는 뜻이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직접 가르쳤을 뿐, 비유 같은 것도 없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은 사람을 책망하거나 징계한 것이 아니었고 심판하거나 형벌한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는 그저 인도하기만 했다. 여호와는 모세를 시켜 그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라고 일러 주면서 날마다 해 뜨기 전에 주워 담으라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까지 두면 썩어 버리니 그날 먹을 양만 넉넉히 거두라고 했다. 여호와는 사람을 꾸짖거나 사람의 본성을 들추어내지 않았고, 사람 내면의 생각과 마음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여호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아 단순히 기계적인 행동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율법을 반포해 백성들을 이끌어 주기만 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

하나님이 하는 말씀과 사역은 모두 시대에 따라 다르다. 시대가 달라지면 하나님이 하는 말씀도 달라진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고, 같은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며, 지나간 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또한, 그는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기에 날마다 새 말씀을 한다. 너는 오늘 지켜야 할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책임이자 본분이다. 실행을 할 때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빛과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고, 다양한 위치에서 말씀하면서 자신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낸다. 영의 위치에서 말씀하든, 사람의 위치에서 말씀하든, 또는 제삼자의 위치에서 말씀하든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다. 그가 사람의 위치에서 말씀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말씀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관념이 생기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항상 같은 위치에서만 말씀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규정하도록 하나님이 놔두겠느냐? 그가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든 거기에는 그의 목적이 있다. 만일 하나님이 늘 영의 위치에서만 말씀을 한다면 네가 접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그는 때때로 제삼자의 위치에서 말씀하고 공급함으로써 네가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한다.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것은 다 적합하다. 어쨌든 모두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니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하나님이라면,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든 여전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어떻게 사역하든 그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했어도 하나님은 그가 주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본질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사역 방식을 통해 성과를 내고, 사람이 그를 더 잘 알게 한다. 그의 사역 방식은 하나하나 다 사람이 그를 알아 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역하든 그 목적은 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 있다. 어떨 때는 한 가지 사역 방식이 오랜 기간 계속될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사람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니 의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역 절차이므로 너희 모두 순종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주로 말씀을 한다. 네가 접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보고 듣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지키고 체험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번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 말씀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으며, 특히 예수가 했던 사역은 하지 않는다. 둘 다 하나님이고 육신을 지녔지만 그들의 직분은 전혀 다르다. 예수 또한 땅에서 일부 사역을 행하고 말씀을 했다. 하지만 그가 완성한 사역은 주로 무엇이냐? 십자가의 사역이었다.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해 전 인류를 속량했다. 즉, 전 인류의 죄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된 것이다. 그는 주로 이 사역을 이뤘으며, 궁극적으로 이후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명확히 알려 주었다. 예수가 온 것은 주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전 인류를 속량하고, 사람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해 주었으며, 천국에 들어가는 길도 가져왔다. 그러므로 예수가 떠난 후에 사람들은 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고, 십자가를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라고 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도록 다른 사역들도 하고 말씀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직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3년 반 동안의 전도도 나중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예비한 것이었다. 예수가 몇 차례 기도한 것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이었고, 정상인의 생활을 하며 33년 반 동안 이 땅에서 생활한 것도 주로 십자가의 사역을 이루고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십자가의 사역을 완전히 그에게 맡긴 것이다.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은 어떤 사역을 이룰까?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유는 주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이루기 위한 것이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들이 말씀의 책망과 연단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공급을 받고 생명을 얻으며, 그의 사역과 행사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너를 형벌하고 연단하므로 네가 받는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실이 아닌, 말씀으로 사역한다. 말씀이 너에게 임한 뒤에야 성령이 너에게 역사하여 고통을 받거나 달콤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말세에 행하는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모든 사람을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는 말씀으로 모든 사역을 행한다. 사실로 너를 형벌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고통을 주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그들은 육체적 형벌도 받지 않고, 고통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의 말씀이 너에게 임하여 연단하면 너는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더냐? ‘봉사자’ 그때, 하나님은 사람을 무저갱에 던졌다고 말씀했는데, 정말 무저갱에 떨어졌을까? 그저 말씀으로 사람을 연단시켰을 뿐인데, 사람은 무저갱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말세에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오직 그의 말씀에서 그의 어떠함을 볼 수 있고, 그의 말씀에서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볼 수 있다.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온 그는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말씀만 한다. 그러므로 사실이 필요 없이 말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가 온 주요 목적은 이 사역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씀에서 그의 큰 능력과 지고지상함, 낮춤과 감춤을 보게 하며, 그의 모든 것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떠함과 소유는 다 그의 말씀 안에 있고, 그의 지혜와 기묘함도 다 그의 말씀 안에 있다. 여기서 너는 하나님 말씀의 다양한 방식을 보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 행해진 하나님의 사역은 대부분이 사람에게 공급하거나 들춰내거나 책망하는 것이었다. 그는 쉽게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며, 설사 저주할지라도 말씀의 저주에 그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 시대에서는 그가 또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모습을 보려고 하지 말고, 자꾸 이적을 보려고 하지도 말라. 그래 봤자 소용없다! 그런 이적들은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오늘날 성육신한 실제 하나님은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만 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 그는 말씀으로 너를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너를 양육하며, 말씀으로 사역하고, 말씀으로 사실을 대체하여 그의 실제를 알게 한다. 네가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꿰뚫어 보았다면 쉽게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소극적인 것에는 신경 쓰지 말고 적극적인 것에만 신경 써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사실이 임하든 임하지 않든,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씀에서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큰 이적이자 확실한 사실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가장 좋은 증거이자,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이다. 이런 말씀만이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가 시작되자 하나님은 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말씀들은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는 사람의 생명이 성장한 때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실제적이고 더 필요하다. 오직 말씀으로 하기만 하는 것도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말씀 시대라서 사람의 믿음과 의지, 협력이 필요하다. 말세에 성육신한 하나님의 사역은 말씀으로 사람을 섬기고 공급하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끝나야 사실로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말씀하는 기간에는 말씀이 사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가 육신에 거하는 단계에 말씀이 사실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이 아닌 육신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사람이 육안으로 직접 하나님의 실제를 보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의 사역이 끝나고, 땅에서 해야 할 말씀을 다 하면, 말씀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그의 말씀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직 땅에서 말씀을 할 때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지 말라. 언젠가 하나님이 말씀을 하지 않고 땅에서의 사역이 완성되면, 그때 그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땅에서 한 말씀은 한 면으로는 생명의 공급이고, 다른 한 면으로는 예언이다. 즉, 앞으로의 일과 해야 할 일과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가 한 말씀에도 예언이 있다. 그는 생명을 공급하면서 예언도 했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행하는 사실 간에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지금은 말과 사실이 병행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의 사역이 완성된 뒤에 그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사실은 말씀 뒤에 온다고 말할 뿐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세에 이 땅에 온 것은 말씀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말씀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말씀만 하는 것이니, 다른 일은 그와 관계가 없다.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면 말씀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먼저 이 말씀들로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그가 전 우주에서 영광을 받을 때는 그의 사역이 완성되었고, 해야 할 말씀도 다 했으며, 모든 말씀이 다 사실이 되는 때이다. 하나님은 말세에 이 땅에 와서 말씀의 직분을 수행함으로써 사람들이 알게 하고, 그의 말씀에서 그의 어떠함을 보게 하며, 그의 지혜와 모든 기묘한 행사를 보게 한다.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모든 사람을 정복한다. 장차 하나님 말씀이 각 종교, 각 분야, 각 나라, 각 교파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정복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말씀이 권병과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지금 너희들이 마주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한 말씀은 율법시대에 한 말씀과 전혀 다르고, 은혜시대에 한 말씀과도 다르다. 은혜시대에는 말씀 사역을 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전 인류를 속량하는 것만 언급했다. 성경에서도 예수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 십자가에 못 박혀 어떤 고통들을 겪었는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것은 모두 십자가 사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성육신 하나님이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말씀으로 정복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을 한다. 바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의 실제 의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는 말씀만 할 뿐, 사실이 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의 본질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이자, ‘말씀’이 ‘육신’에 온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말씀이 육신 되었도다’,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사역)을 이룰 것인데, 이는 전체 경륜의 마지막 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이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다 육신으로 나타낼 것이다. 오늘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할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마지막 시대 사람의 종착지는 어디인지,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고 어떤 사람들이 멸망하는지 등과 같이 마지막에 해야 할 사역들을 모두 분명히 말씀한다. 이 모든 것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의 실제 의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이전에 반포한 행정과 법도,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멸망하고 어떤 사람들이 안식에 들어갈 것인지 하는 말씀들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말세에 주로 이 사역을 완성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어디로 가고 예정하지 않은 사람은 어디로 가며, 백성들과 아들들은 어떻게 나뉘고,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고 애굽은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한다. 앞으로 이 말씀들은 하나하나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다. 하나님은 각 시대에 해야 할 일, 말세에 성육신 하나님이 해야 할 일, 수행해야 할 직분을 모두 말씀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이 말씀들은 모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의 실제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7)

하나님은 전 우주 아래에서 사역을 행한다. 그를 믿는 사람은 모두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먹고 마셔야 한다. 하나님이 행하는 이적과 기사를 보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해 왔다. 그러니 항상 마음을 이적과 기사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구약 율법시대에 일부 말씀을 했고, 은혜시대에는 또 예수가 많은 말씀을 했다. 그 뒤에는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가 선포한 계명에 따라 사람들이 실행하도록 이끌었으며, 예수가 한 말씀과 원칙들에 따라 체험하게 했다.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이적과 기사로 사람을 억압하여 믿게 하거나 복종하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이적과 기사만 행한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나타낼 수 없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양육하고 목양한 뒤 사람이 순순히 순종케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사역하고 말씀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다양한 사역 방식으로 온전케 한다. 말씀으로 연단하든, 책망하고 훈계하든, 공급하든, 여러 위치에 서서 말씀하여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과 지혜, 기묘함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한다. 말세에 하나님이 시대를 끝내려 할 때 사람이 온전케 되면 그때 사람은 이적과 기사를 볼 자격을 갖게 된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순종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너는 이적과 기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의 너는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어떠한 관념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너는 패괴된 사람이므로 아직 순순히 순종하지 못한다. 그런 네가 이적과 기사를 볼 자격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이적과 기사를 행할 때는 사람을 벌할 때이고, 세상을 바꿀 때이며, 시대를 끝낼 때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때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는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목적도 아니다. 사람들이 다 이적과 기사를 보고, 하나님의 영체까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다 ‘믿지’ 않겠느냐? 동방에서 얻는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은 대환난 속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 얻어진 이 사람들은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온갖 연단을 겪고 나서야 진정으로 순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의 믿음은 막연하지 않고 실제적이다. 그들은 어떤 기적이나 기사도, 어떤 이적도 본 적이 없으며, 대단한 도리나 이치를 말할 수도 없고, 높은 깨달음을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실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더 분명히 나타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실제적인 사역이다. 예수의 시대에 그는 사람을 온전케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인류를 속량하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했다. 그가 온 목적은 주로 십자가 사역을 이루는 것이었으므로 이적을 행하는 것은 그의 직분 범주 내에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적과 기사들은 모두 사역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한 일이고 부가적인 것이었으므로 결코 시대 전체의 사역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구약 율법시대에도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실제적인 사역이므로 그는 절대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는다. 일단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 실제적인 사역을 교란하게 되므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고 하고는 도리어 또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면, 사람이 진실로 믿는지를 분명히 드러낼 수 있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 안에는 종교적인 것이 너무나 많다. 하나님이 말세에 온 목적은 사람 내면의 모든 종교 관념과 초자연적인 것들을 없애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제를 알게 하며,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지금 네가 실제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보배로운 것이다! 진리는 모든 것을 압도한다. 지금 너는 진리를 얼마나 갖추었느냐? 이적과 기사를 행하기만 하면 그가 하나님이란 말이냐? 악령도 이적과 기사를 보일 수 있다. 그럼 그것들 역시 하나님이란 말이냐?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고 생명을 추구해야지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8)

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전 인류를 속량하는 것이었다.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았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받았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것은 조금씩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 함은 사람이 예수에게 온전히 얻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하지 않고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게 된다. 당시 예수가 했던 수많은 사역은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예수가 한 수많은 말씀을 사람은 깨닫지 못했다. 그 당시 예수가 해석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가 떠나고 몇 년 후, 마태가 그를 족보에 올렸으며, 다른 사람들도 인의적인 많은 사역을 했다. 그때는 사람을 온전케 하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사역을 하기 위해 천국의 복음을 가져오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그의 사역은 모두 끝났다. 반면, 이 단계의 정복 사역은 반드시 더 많이 말씀하고 더 많이 사역하며,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예수가 이전에 행한 사역이나 여호와가 행한 사역의 비밀을 모두 열어 모든 사람이 확실하고 분명한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이것은 말세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말세는 마무리하는 사역을 하고, 사역을 끝내는 시기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네가 여호와의 율법과 예수의 속량에 대해 명확히 알게 할 것이다. 그것은 주로 6천 년 경륜의 모든 사역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네가 6천 년 경륜의 모든 의의와 본질을 이해하고 예수가 행한 수많은 사역을 알게 할 것이며, 그가 한 수많은 말씀의 의도, 나아가 성경에 대한 네 맹목적인 숭배까지 모두 명확히 깨닫게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예수가 당시에 행한 것과 오늘날 하나님이 행하는 것들도 알게 할 것이며, 모든 진리와 생명과 길을 다 깨닫고 보게 할 것이다. 예수는 왜 그 단계에서 마무리하는 사역을 하지 않고 떠났겠느냐? 그 단계의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의 말씀도 끝났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 그의 사역 또한 모두 끝났다. 그 단계의 사역은 반드시 할 말을 다 하고 모든 사역을 마무리해야만 끝나는 이 단계의 사역과는 다르다. 예수는 그 단계의 사역에서 많은 말씀을 다 하지 않았고 밝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예수의 직분은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떠났다. 그 단계 사역은 주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으로, 이 단계의 사역과는 달랐다. 이 단계 사역은 주로 마무리를 하고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며 모든 사역을 끝내는 것이다. 말씀을 끝까지 다 하지 않으면 사역을 끝낼 수 없다. 이 단계는 말씀으로 모든 사역을 끝내고 이루기 때문이다. 지난날 예수가 행한 수많은 사역을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그는 조용히 떠났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그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잘못 이해했으면서도 옳다고 여기고, 틀린 것을 알지 못한다. 마지막 이 단계에서는 사역을 철저히 끝내고 마무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알게 한다. 사람 내면의 관념과 속셈, 잘못된 이해 방법, 여호와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에 대한 관념, 이방인에 대한 견해 등 치우치고 그릇된 모든 것을 되돌리고, 사람에게 인생의 바른길과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 그리고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면 이 단계의 사역은 끝난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세상을 창조한 서막이었고, 이번 단계의 사역은 사역을 끝내는 종막이다. 시작은 이스라엘 선민들 가운데서 행하여 가장 성결한 곳에서 천지를 열었고, 마지막 단계는 가장 더러운 나라에서 행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시대를 끝낸다. 첫 단계는 가장 밝은 곳에서 사역했고 마지막 단계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사역하여 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광명을 가져오며, 이 사람들을 모두 정복한다. 가장 더럽고 어두운 곳에서 사람을 정복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와 참하나님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함으로써 이 사실로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행할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대표적인 의의가 있다. 이 시대의 사역이 완성되면 6천 년 경영 사역은 완전히 끝난다. 가장 어두운 곳의 사람들이 정복되었으니 그 외의 곳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하는 정복 사역만이 대표적 의의를 갖는다. 중국은 모든 흑암 세력을 대표하며, 중국인은 육체와 사탄, 그리고 혈기에 속한 모든 자를 대표한다. 중국인은 큰 붉은 용에 의해 가장 심하게 패괴된 자들이며, 또한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가장 천하고 더러운 인성을 가진 자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든 패괴된 인류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이 괜찮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관념은 모두 똑같다. 자질이 좋을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들 역시 대적할 것이다. 유대인이 왜 대적하고 거역했겠느냐? 바리새인은 또 왜 대적했겠느냐? 유다가 왜 예수를 팔았겠느냐? 당시 많은 제자들은 예수를 알지 못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뒤에도 사람은 왜 그를 믿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패역은 다 같은 것 아니겠느냐? 단지 중국인을 모델로 삼았을 뿐이다. 또한 정복한 후에는 본보기와 표본으로 세워 참고 대상이 되게 할 뿐이다. 어째서 늘 너희를 가리켜 내 경륜의 부속물이라고 하겠느냐? 사람의 패괴와 더러움, 불의, 대적, 패역 같은 것들이 중국인에게서 가장 전반적이고 다양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자질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삶과 사상이 뒤처졌으며, 생활 습관, 사회 환경, 출생 가정 전부 열악하고, 모든 것이 가장 뒤떨어졌다. 또 이들은 지위도 낮아서 이곳에서 사역하면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시범 사역을 전면적으로 행하면 이후에 사역을 전개할 때 행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이 단계의 사역이 이루어지면 이후의 사역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이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여 대업이 완벽히 이루어지면 온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 또한 완전히 끝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2>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9)

은혜시대는 예수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예수가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그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호와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고, 또 그를 위해 사역했다. 구약 율법시대의 종결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은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닌 예수라 불렸으며,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니 사람이 지금까지도 여호와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율법시대의 사역을 적용하는 것은 규례에 얽매이고 낡은 것을 지키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말세가 이미 도래했음은 너희도 알 것이다. 설마 예수가 다시 온다면 여전히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지난날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왔을 때는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자신이 다시 올 것이며, 갔던 그대로 올 것이라고 했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예수가 어떻게 갔는지 보았느냐?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갔다고 해서 설마 다시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오겠느냐? 그렇다면 계속 예수라고 불려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가 재림할 때는 이미 시대가 바뀌어 있을 텐데, 그를 계속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예수로만 불려야 한단 말이냐? 새 시대에는 더 이상 새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는 것이냐? 한 ‘사람’의 형상과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란 말이냐?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재림해서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는 없으며,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만 나타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 하나를 택해 한 시대 전체를 대변한다. 여호와의 시대든 예수의 시대든 모두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했다. 은혜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시대가 도래했으며, 예수는 이미 돌아왔다. 그런데 그를 어찌 또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그가 어찌 또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오겠느냐? 너는 예수가 단지 나사렛 사람의 모습일 뿐임을 잊었느냐? 너는 ‘예수’가 인류의 구속주일 뿐임을 잊었느냐? 그가 어떻게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말세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겠느냐?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떠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어찌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또다시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그가 정말 흰 구름을 타고 온다면,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리 있겠느냐? 세상의 그 누가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그렇다면 오직 ‘예수’ 자신만이 하나님 아니겠느냐? 그 말인즉,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유대인의 모습이고 영원히 바뀔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예수는 자신이 갔던 그대로 온다고 했다. 너는 그 말의 진의를 아느냐? 그가 너희에게 알려 주기라도 했단 말이냐? 너는 단지 그가 흰 구름을 타고 갔던 그대로 온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역사할 것인지 알 수 있느냐? 네가 정말 그것을 안다면 “말세에 인자가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르고 천사들도, 하늘의 사자들도 모르며 모든 사람 또한 모르고 오직 아버지, 즉 영만 아시느니라”라고 했던 예수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인자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그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알 수 있고 직접 볼 수 있다면, 그 말씀은 허사가 되지 않겠느냐? 예수는 당시에 어떻게 말했느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라고 하였다. 그날이 와도 인자조차 알지 못한다. 인자라 함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을 뜻한다. 인자도 알지 못하는 것을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예수는 떠난 그대로 올 것이지만 올 때는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너에게 미리 알려 주겠느냐? 그가 오는 것을 네가 볼 수 있겠느냐? 이것은 황당한 소리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40)

하나님은 땅에 올 때마다 이름은 물론, 성별과 형상, 그리고 사역도 바꾼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이므로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이전에 왔을 때 예수라고 불렸다 해서 이번에도 그대로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이전에 왔을 때는 남성이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남성이겠느냐? 이전에 은혜시대의 십자가 사역을 했다고 해서, 이번에도 사람을 속량하여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겠느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느냐? 그렇다면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모르느냐?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한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 년 경륜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또한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느냐?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 그의 성품을 사람들에게 점차적으로 나타내는데, 이는 다 그의 고유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었고,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적이 없었기에 사람은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자신의 성품을 조금씩 나타냈다. 그가 이렇게 사역한다고 해서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해서 그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역하는 시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성품을 전부 단계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내 그를 알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 특정한 성품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그의 성품 역시 조금씩 바뀐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특정 성품, 즉 자신의 어떠함을 사람에게 나타낼 때,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내지,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다’는 말은 그의 사역을 두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소유와 어떠함을 두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너는 6천 년 사역을 어느 한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일 뿐 사탄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은 영원히 사탄일 뿐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 공의, 그리고 위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영원불변하지만,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심화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사역을 하며, 피조물에게 그의 새로운 뜻과 성품을 보여 준다. 사람이 새 시대에 새로운 성품의 발현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아 놓지 않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 아니겠느냐? 가령 성육신한 하나님이 단지 남자라면, 사람은 그를 남자로 규정하고 남자의 하나님으로 대하지, 결코 여자의 하나님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같은 성별이라고 여길 것이며, 하나님은 남자들의 머리가 될 것이다. 그럼 여자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는 불공평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모두 자신과 같은 남자뿐일 테고, 여자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할 때 아담도 만들고 하와도 만들었다. 하나님은 아담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여자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말세에 하나님은 새로운 단계의 사역을 하여 더 많은 성품을 나타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 때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다. 새로운 사역을 하는 이상, 그 사역에는 새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만약 영의 역사라면 성육신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소리로 말할 테니, 사람은 그를 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겠느냐? 영의 역사만으로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을 통해,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 육신을 통해 그의 모든 성품을 발현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형체를 지니고 진실로 사람들 가운데서 살면서, 사람이 그의 성품을 실제적으로 접하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을 접해야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또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이자 여자의 하나님이다.”라는 사역을 완성하게 되고, 성육신의 모든 사역도 이루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41)

전체 경영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은 매우 분명하다. 은혜시대는 은혜시대이고, 말세는 말세이듯,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 때문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말세의 사역을 하려면 반드시 불사름과 심판, 형벌, 진노, 그리고 파멸로 시대를 끝내야 한다. 말세라고 하면 마지막 시대를 가리킨다. 마지막이라면 시대를 끝내는 것 아니겠느냐? 시대를 끝내려면 반드시 형벌과 심판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를 끝낼 수 있다. 예수는 사람이 계속 생존하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더 잘 생존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을 죄에서 구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계속 타락하여 음부나 지옥에서 살지 않게 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음부, 지옥에서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말세가 도래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멸절하고 인류를 완전히 멸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패역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으로는 시대를 끝낼 수 없고, 6천 년 경륜을 완성할 수도 없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특별한 성품이 있고,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그 자신이 나타내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그의 이름과 사역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에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사역을 했고, 땅에서 첫 단계의 사역을 전개했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으며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그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것은 땅에서 하나님이 사역할 근거지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 근거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 외부로 사역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은 점차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여호와가 천지 만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사역한 첫 성지이다. 하나님이 땅에서 처음으로 사역한 곳은 이스라엘 전역이었고, 그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었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은 바로 은혜와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그리고 관용이었다.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이유는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였다. 그는 자신의 긍휼과 자비에 따라 반드시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며, 그것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인류를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했고, 그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이 모든 사람과 함께했다. 사람은 오직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누리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극히 크고 많은 은혜를 받고, 그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다시 말해,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구약 성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역을 행했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의 사역은 끝이 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했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얻으며, 마지막에는 시대를 끝낸다. 각 시대와 각 단계의 사역에서 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4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를 지닌 예수라는 이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전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예수라고만 불려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말이야말로 모독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의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중에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이 많은 이름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많아서 사람이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을 개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류는 그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위대함, 존귀함, 기묘함, 측량할 수 없음, 지고지상함, 거룩함, 공의로움, 그리고 지혜로움 등 몇 안 되는 한정된 어휘로 개괄할 뿐이다. 참 많기도 하구나! 한정된 이 몇 개의 어휘로는 하나님의 성품 중 사람이 본 그 얼마 안 되는 부분조차 묘사해 낼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이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다!’와 같이 마음속의 격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지어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와 같은 언어 표현은 절정에 이르렀지만, 사람은 아직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아주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에게는 또 어떤 이름도 없다. 하나님의 어떠함은 너무나 많은데, 사람의 언어는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그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친히 사역할 때,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해당 시대의 성품을 대변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체험을 했거나 하나님을 직접 본 많은 사람은 특정한 이름 하나만으로는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에 사람은 할 수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바로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충만한 듯하지만 모순도 심한 것 같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어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성품을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으로도 그의 소유와 어떠함을 다 묘사할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대체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알려 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좋은 이름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잘 개괄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 따지고 드느냐? 이름 하나 때문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굳이 머리를 싸매 가며 궁리할 필요가 있겠느냐?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은 여호와로도, 예수로도, 메시야로도 불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바로 ‘창조주’이다. 그때가 되면, 그가 땅에서 불렸던 이름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가 땅에서 하는 사역이 끝나면서 그의 이름도 함께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물이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왔는데, 그가 아주 적합하기는 해도 완전하지 않은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하나님의 이름을 따지고 있느냐? 아직도 하나님을 여호와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아직도 하나님을 오직 예수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다. 단지 사역을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으므로 한두 개, 혹은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이다. 그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택하는 것 아니겠느냐? 피조물인 네가 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의 수용 능력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지만, 사람이 이 이름을 개괄할 수는 없다. 너는 단지 “하늘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능력이 무한한 하나님 자신으로서 참으로 지혜롭고 너무나 위대하시며, 더할 나위 없이 기묘하고 신비롭고 전능하십니다.”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 더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다. 네가 알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다. 그러한데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님 자신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말세가 와도 여전히 하나님이 사역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그의 이름도 바뀌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43)

지난날 예수는 성령이 그에게 지시하고 성령이 행하려는 대로 사역했지, 구약 율법시대나 여호와가 행한 사역에 따라 사역하지는 않았다. 예수가 와서 한 사역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른 것도, 여호와가 정한 계명을 따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근원은 하나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예수라는 이름을 대변한 것이자 은혜시대를 대변한 것이었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여호와를 대변한 것이자 율법시대를 대변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한 분의 영이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행한 사역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변하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변할 뿐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인도했고, 이스라엘 외의 족속들도 인도했다. 신약의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한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하며 시대를 이끈 것이었다. 만약 네가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을 바탕으로 사역했을 뿐,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지 않고 완전히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행하였으며, 또한 여호와가 행한 사역과 이사야가 말한 예언에 따라 사역했다고 말한다면, 예수는 성육신이 아니다. 그가 그런 사역을 했다면, 그는 율법시대의 사도나 일꾼에 불과하다. 네가 말한 대로라면, 예수는 시대를 열 수 없고 다른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이는 성령은 반드시 여호와를 위주로 사역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여호와가 아니라면 성령이 더 새로운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사람이 예수의 사역을 이렇게 알고 있다면 모두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예수는 여호와의 말씀과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사역을 했다고 여긴다면, 예수는 성육신 하나님이냐, 아니면 선지자이냐? 이런 논리대로라면 은혜시대는 존재하지도 않고, 예수를 성육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행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변할 뿐 은혜시대를 대변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가 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전개해야만, 그리고 이전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에서 여호와가 한 사역에 따라 하지 않고, 여호와의 낡은 규례대로 하지 않으며, 어떤 규례에도 맞추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사역을 해야만, 새로운 시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와서 스스로 시대를 열고 시대를 끝내지만, 사람은 시대를 여는 사역도 시대를 끝내는 사역도 행할 수 없다. 예수가 와서 여호와의 사역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는 와서 여호와의 사역을 끝냈고 여호와의 사역을 이었으며, 그 자신의 더 새로운 사역을 전개했다. 이는 새로운 시대임을 증명하고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한다. 그들은 전혀 다른 두 단계 사역을 했다. 한 단계의 사역은 성전 안에서 했고 다른 한 단계의 사역은 성전 밖에서 했다. 또한 한 단계의 사역에서는 율법으로 사람의 생활을 인도했고 다른 단계의 사역에서는 속죄 제물로 바쳐졌다. 전혀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이 곧 구시대와 신시대의 구분이며, 틀림없는 두 시대이다! 그들이 사역한 장소와 내용, 그리고 목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두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신약과 구약은 곧 신시대와 구시대를 가리킨다. 예수가 와서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여호와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성전 안에서의 여호와 사역이 이미 끝나 더 이상 그 사역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 하게 되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오직 성전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야만 하나님의 사역을 절정에 달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성전에서 나오지 않고 사역했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영원히 성전의 바탕에 머물러 새로운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성전에 들어가지도, 성전 안에서 사역하지도 않았고, 성전 밖에서 사역하면서 제자들을 인도하며 자유롭게 사역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전에서 나와 역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또 새로운 계획이 있음을 의미했다. 그는 성전 밖의 사역을 하고자 했으며, 성전 밖의 더 새로운 사역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하려고 했다. 그는 오자마자 구약시대에 여호와가 행했던 사역을 끝냈다. 비록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는 한 분의 영이 두 단계의 사역을 행한 것이며, 그 사역은 계속 이어진 것이었다. 이름과 사역의 내용이 다르기에 시대 역시 다르다. 여호와가 오면 여호와의 시대이고, 예수가 오면 예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한 번 오게 되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그 단계의 새로운 길이 하나의 이름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함을 의미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6천 년 경륜을 끝내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길과 새로운 기원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역이 나타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44)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 제물임을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변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변할 뿐이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 제물을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한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었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 제물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되었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또한, 은혜시대의 사람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과 은혜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 대표적 의의가 있다. 즉, 각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표하며,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다.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표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 이름이다. 사람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소망하고, 유대인의 모습 그대로 강림하기를 소망한다면, 전체 6천 년 경륜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속시대에 머물 것이다. 또한 말세가 영영 도래하지도 않고, 시대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 ‘구주 예수’는 단지 인류를 속량하고 구원하는 분이고, 내가 택한 ‘예수’란 이름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해 생겨난 이름이지 온 인류를 끝내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 예수 그리고 메시야는 모두 나의 영을 대표하지만, 이 이름들은 내 경륜 중의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할 뿐, 나의 모든 것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땅의 사람들이 부르는 나의 이름이 나의 모든 성품과 어떠함을 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시대마다 나에 대한 호칭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시대, 즉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면 나의 이름은 또 바뀌게 된다. 여호와라고도 예수라고도 칭하지 않고, 메시야라고는 더욱 칭하지 않는다. 대신 크나큰 능력을 지닌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하는데, 이 이름으로 전체 시대를 끝낸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예전에 알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과 권병, 존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후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45)

말세에 강림한 구세주가 여전히 예수라 불리고 그때처럼 유대에서 태어나 사역한다면, 내가 이스라엘 사람만 만들었고 오직 그들만 속량하며 이방과는 무관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말한 “나는 천지 만물을 창조한 주인이다.”라는 말과 모순되지 않겠느냐? 내가 유대를 떠나 이방에서 사역하는 까닭은 내가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세에 이방에 나타난 것은 내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인 여호와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이방 모든 선민의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스라엘과 애굽 그리고 레바논은 물론, 이스라엘 외의 모든 이방 족속까지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다. 다만 나는 이스라엘을 내 사역의 발원지로 삼았고, 유대와 갈릴리를 구속 사역의 거점으로 삼았으며, 이방을 전체 시대를 끝내는 사역의 근거지로 삼았을 뿐이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두 단계의 사역(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사역)을 행했고, 이스라엘 외의 온 땅에서도 두 단계의 사역(은혜시대와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을 행했다. 또한 이방에서 정복 사역을 함으로써 시대를 끝낼 것이다. 사람이 늘 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내가 말세에 새 시대를 개척했고 새 사역을 전개한 것을 알지 못한 채 구주 예수의 강림만 하염없이 기다린다면, 나는 그런 자들을 나를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며 거짓으로 나를 믿는 자라고 할 것이다. 그런 자들이 어찌 ‘구주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나의 강림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의 강림이다. 또한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내가 이 더러운 옛 세계를 철저히 멸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다시 강림하여 그들을 속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가 온 인류를 다시 속량하여 더럽고 불의한 땅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소망한다. 그런 자들이 어찌 나의 말세 사역을 성취하는 인류가 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원하는 것으로는 나의 바람을 이룰 수 없고, 나의 사역을 성취할 수도 없다. 사람은 내가 행했던 사역만 앙모하거나 그리워할 뿐, 내가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오직 내가 여호와이자 예수라는 것만 알 뿐, 인류를 끝내는 말세의 그이라는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소망하고 아는 것은 그들의 관념 속에 있는 것으로, 단지 사람의 육안에만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행한 사역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대로 행한다면 나의 사역이 언제 끝나겠느냐? 인류는 언제 안식에 들어가겠느냐? 나는 또 어떻게 일곱째 날인 그 안식일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나는 나의 계획대로, 나의 근본 취지대로 행하지 사람의 계획대로 행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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