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10
2020.6.27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과 마주하고 있고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고 있는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욥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언급하겠느냐?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설명하기 전에 너희에게 하나 묻겠다. 욥은 하나님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일까?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깊이 패괴되었다’는 것은 문제의 표면적인 현상일 뿐 나는 절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너희들은 평소 ‘깊이 패괴되었다’, ‘하나님을 거역한다’,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없다’, ‘순종하지 않는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와 같은 도리와 글귀를 곧잘 말한다. 이런 실속 없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것으로 모든 문제의 본질을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실천법이다. 다른 성질의 문제들을 똑같은 답으로 해석하는 것은 진리를 모독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답을 듣길 원치 않는다. 잘 생각해 보아라! 이 일에 대해 너희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겠지만 나는 여기서 날마다 보고 느낀다. 그래서 너희는 행하고 있고 나는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가 행하고 있을 때 너희는 이 일의 본질을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이 일의 본질을 볼 수 있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면 이 본질은 무엇일까? 왜 지금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악에서 떠나지 못할까? 너희의 답은 이 문제의 본질을 전혀 해석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다. 그것은 여기에 너희가 모르는 근본 원인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너희가 무척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럼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려 주겠다.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고 그의 사역 대상으로 여겼으며 정복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할 대상으로 여겼다. 이것은 하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사람에 대해 가졌던 태도다. 그러나 당시 사람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대했을까? 사람은 하나님을 생소하게 느끼며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에 대해 갈피를 못 잡는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고,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대하고 행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있었을까?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관점도 없었다. 사람의 관점이란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을 말한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이면 받아들이고 부합하지 않는 것이면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극력 저항하고 반대했다. 이것이 처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낯선 사람으로 대했다. 그러나 일정 기간 하나님이 사역한 후,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참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때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여겼느냐? 생명줄로 여겼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받고 약속을 받기를 원했다. 이때 하나님은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검증하고 시련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할 수 있음을 보았고, 하나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는 종착지를 얻을 기회가 있음을 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은 조금이나마 진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표면적인 도리상의 인식도 조금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해 점차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한 도, 선포한 진리, 행한 사역에 대해서도 서서히 ‘익숙’해졌다. 그런 이유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이 낯설지 않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진리의 도를 많이 들었고 하나님의 사역도 무수히 많이 체험했다. 하지만 수많은 요인, 그리고 상황의 방해와 저지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은 진리를 실천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했다. 사람은 점점 태만해지고 믿음을 잃어 갔으며 점차 자신의 결말이 불확실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사치스러운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발전하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마지못해 따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사람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나님은 단지 진리와 그의 도를 사람에게 부어 준 뒤 여러 환경을 마련하고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시련하려고 한다. 그 목적은 말씀과 진리와 그가 행하는 사역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이루는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많은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도리와 글귀와 규례로만 삼아 지킬 뿐, 일을 처리하고 말하거나 또는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도를 자신이 지켜야 할 도로 여기지 않는다. 특히 크나큰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방향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나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극도의 반감과 혐오감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차례, 심지어 수백 차례 시련을 준 후에도 사람은 여전히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겠다!’라는 결심을 드러내는 그 어떤 명확한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이런 결심과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전처럼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 포용과 인내를 베푸는 대신 극도의 실망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실망’은 누가 초래한 것이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행한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적지 않은 요구를 했고 사람에게 많은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실천했고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목표에 따라 명확하게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로 종합한 말로 방금 우리가 언급했던, 사람이 왜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즉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해석해 보겠다. 이 말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대상이자 사역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원수이자 대립적인 상대로 여겼다는 말이다. 지금 이 사실에 대해 분명히 깨달았느냐? 사람의 태도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분명하다. 너희는 스스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는 것,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것,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과 같은 내용들을 종합해 냈다. 하지만 너희가 도를 얼마나 많이 들었든지 상관없이, 너희가 스스로 종합한 내용들은 내 입장에서 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도를 의식 있게 행한 것이 아니다. 그 내용들은 그저 너희가 어떤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경로일 뿐이다. 너희는 그런 목적들을 위해 억지로 규례들을 지키는데, 바로 그런 규례들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와 더욱 멀어지고 또다시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얘기하는 주제가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너희가 앞으로의 체험과 시간 속에서 방금 내가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해 필요할 땐 존재한다 느끼고 불필요할 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말기를 바란다. 네가 잠재의식 속에서 그렇게 인식할 때는 이미 하나님을 노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는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범위와 원칙 기준에 맞게 실천했지 제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실천 방식은 맞다! 하지만 일이 닥쳤을 때 너는 어떻게 생각했느냐? 일이 닥치면 어떻게 실천했느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때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여기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하나님은 공기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불쑥 드러내며 자신의 뜻대로 행하려 한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는 하나님이 존재해야 하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의 뜻대로 실행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하나님의 도를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지금 이런 상황과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은 위험한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제가 위험한 경계에 있든 어쨌든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믿어 왔으니 하나님은 저를 버리실 수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차마 버리지 못하실 테니까요.”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모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사오십 년간 주님을 믿었어요. 시간으로 따지면 저는 가장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가장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오십 년간 저는 가정과 직장,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돈, 지위, 향락과 가족의 단란함 같은 것도 버렸습니다. 오랜 시간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고, 재미있는 것도 즐긴 적이 없으며 좋은 곳에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일반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는 고통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너무 억울합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냐?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너희에게 실정을 알려 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상상으로 자기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 상상과 규정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대체했고, 하나님의 진실한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실한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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