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종착지와 결말 | 발췌문 599

2020.10.29

전혀 믿지 않는 자녀나 친족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은 다 사심이 너무 많고 선심을 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녀나 친족이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든 상관 않고 오직 사랑만을 강조한다. 아내나 부모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는 사람도 있는데, 성령의 동의나 역사 여부 등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결같이 하나님을 위해 ‘인재를 영입한다’. 네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그 불신파들이 마지못해 따를지라도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와 시련, 성육신 하나님의 온전케 함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름만 걸어 놓고 하나님을 따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성령은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건과 실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들은 만들어질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 역시 그들에게 지나치게 공을 들일 마음이 없으므로 어떤 깨우침이나 인도 없이 그저 그들 마음대로 따르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마지막에 결말을 드러낼 뿐이다. 사람의 열의와 뜻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므로 성령의 역사를 이뤄지게 할 수 없다. 어찌 됐든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한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겠느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냐? 자녀는 무엇을 위해 부모에게 효도하느냐? 부모는 또 무엇을 위해 자녀를 사랑하느냐? 사람의 본심은 어디에 있느냐? 모두 자신의 타산과 욕심을 충족시키는 데 있지 않느냐? 진정 하나님의 경륜에 있느냐? 하나님의 사역에 있느냐? 피조물의 본분 이행에 있느냐?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그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멸망의 대상이다. 사람이 아무리 그들을 사랑할지라도 성령의 역사를 대신하지 못한다. 사람의 열의와 사랑은 사람의 뜻을 상징할 뿐, 하나님의 뜻을 대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지도 못한다. 사람이 이름만 걸고 있는 자들과 거짓으로 따르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최고의 사랑과 긍휼을 베푼다 한들 그들은 하나님의 동정도, 성령의 역사도 얻을 수 없다. 진심으로 따른다면 자질이 떨어져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때로는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면 결코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다. 그런 자는 구원받을 여지가 조금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때때로 설교를 듣거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할지라도 최후의 안식에서 살아남지는 못한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추구하는지 여부는 사람들의 평가와 그에 대한 주변인들의 관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고 함께하는지, 일정 기간 성령 역사로 인해 그의 성품이 어느 정도 변화했는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등에 달려 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성품이 점점 변화할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한 인식 또한 갈수록 순수해질 것이다. 따른 시간이 길든 짧든, 변화가 있다면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가 없다면 성령의 역사 또한 없는 것이다. 이런 자는 힘을 쓰더라도 복을 받으려는 속셈을 품고 있다. 가끔 힘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성품의 변화를 대신하지는 못하므로 결국에는 멸망의 대상이다. 하나님나라에는 힘쓰는 자가 필요하지 않고, 성품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온전케 된 사람을 보살피는 일 또한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는다’는 옛말은 은혜시대에나 적용되는 것일 뿐, 사람의 종착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지 은혜시대 그 단계에만 적용될 뿐이다. 이 말의 함의는 그저 사람이 누릴 평안과 물질적 축복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주를 믿는다고 해서 온 가족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도 아니고, 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해서 온 가족이 덩달아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은 모두 자신의 본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자신의 공통적 본질에 근거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에는 아예 이런 견해나 규정이 없다. 누군가 마지막에 살아남았다면 그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했기 때문이고, 살아남아 안식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적합한 종착지가 있다. 그 종착지는 본인의 본질에 근거해 정해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녀의 악행을 부모에게 더할 수 없고, 자녀의 의를 부모가 공유할 수도 없다. 또한 부모의 악행을 자녀에게 더할 수도 없고, 부모의 의를 자녀가 공유할 수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죄를 감당하고 각자의 복을 누릴 뿐, 그 누구도 다른 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이것이 공의이다. 사람은 부모가 복을 받으면 자녀도 복을 받을 수 있고, 자녀가 악을 행하면 부모도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람의 생각이자 일 처리 방법일 뿐,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행한 일의 본질에 따라 합당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짊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대신해 징벌받을 수 없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자녀를 대신해 의를 행할 수 없고,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해도 부모를 대신해 의를 행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라는 말의 참뜻이다. 그 누구도 자녀를 넘치게 사랑한다고 해서 악을 행한 자녀를 데리고 안식에 들어갈 수는 없다. 또한 그 누구도 자신이 의를 행한다고 해서 그의 아내(또는 남편)를 데리고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것은 행정의 규정이므로 그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의를 행하는 사람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악을 행하는 자이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살아남을 사람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마지막에 멸망될 대상이다. 거룩한 자는 거룩할 뿐 더럽지 않다. 더러운 자는 더러울 뿐 거룩한 부분이 전혀 없다. 설령 악을 행하는 자의 자녀가 의를 행하는 사람이고 의인의 부모가 악을 행하는 사람일지라도, 악인은 다 멸망할 것이고 의인은 다 살아남을 것이다. 믿는 남편과 믿지 않는 아내, 믿는 자녀와 믿지 않는 부모는 서로 맞지 않는 두 부류로서 본래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혈육의 정이 있겠지만, 안식에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혈육의 정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분을 이행하는 자와 그러지 않는 자는 본래 원수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하나님을 증오하는 자는 본래 적대되며, 안식에 들어가는 자와 멸망하는 자는 서로 합할 수 없는 두 부류의 피조물이다. 본분을 이행하는 피조물은 영원토록 살아남겠지만, 그러지 않는 피조물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네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너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함이냐? 네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하기 위함이냐? 믿지 않는 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하기 위함이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정말 올바른 것이냐? 너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너는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냐? 너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느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 멸망의 대상이다. 지금 사람과 사람 간에는 육적인 관계와 혈연관계가 존재하지만, 나중에는 전부 깨질 것이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본래 합하지 않고 서로 적대된다. 안식을 얻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패역한 자들이 모두 멸망하면 땅에는 더 이상 가정이 존재하지 않을 텐데, 부모가 어디에 있고 자녀가 어디에 있으며, 부부 관계는 또 어디에 있겠느냐! 이런 육적인 관계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본래 합할 수 없으므로 단절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사람의 본질에 따라 결말을 정하시는 하나님

1. 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했기 때문이라. 최종의 안식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 자녀의 악행을 부모에게 더할 수 없고, 자녀의 의를 부모가 공유할 수 없으리. 부모의 악행을 자녀에게 더할 수 없고, 부모의 의를 자녀가 공유할 수 없으리. 사람에게는 저마다 적합한 종착지가 있는데 이 종착지는 그 본인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이라.

2. 저마다 각자의 죄를 담당하고 복을 누릴 뿐, 그 누구도 누구를 대신할 수 없으리. 의를 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의를 행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악을 행함이라. 의를 행하는 자는 최종에 살아남고, 악을 행하는 자는 최종에 멸망할 대상이니라. 거룩한 것은 거룩한 것이며 더러운 것이 없고,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일 뿐 거룩함이 없음이라. 사람에게는 저마다 적합한 종착지가 있는데 이 종착지는 그 본인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이라.

3. 악인은 다 멸망하고, 의인은 다 살아남으리. 악을 행하는 자의 자녀가 의를 행하고, 의인의 부모가 악을 행할지라도 말이다. 믿는 남편과 믿지 않는 아내는 본래 아무 관계가 없고, 믿는 자녀와 믿지 않는 부모는 관계가 없고, 이들은 서로 맞지 않는 두 부류니라. 사람에게는 저마다 적합한 종착지가 있는데 이 종착지는 그 본인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이라.

4. 안식에 들어가기 전에는 혈육의 정이 있지만 안식에 들어간 후에는 더 이상 혈육의 정이라는 말이 없음이라. 본분을 이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본래 원수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하나님을 증오하는 자는 본래 적대적이니라. 안식에 들어가는 자와 멸망하는 자는 서로 합할 수 없는 두 부류의 피조물이니라. 사람에게는 저마다 적합한 종착지가 있는데 이 종착지는 그 본인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이라.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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