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발췌문 129)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에는 모두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예수는 예전에 왔을 때는 남성으로 왔었지만 이번에는 여성으로 왔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해서이며,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영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육신을 취할 수 있고, 그 육신은 하나님을 대표한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면 모두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말이다. 설령 예수가 여자의 몸으로 왔더라도, 즉 당시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가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였어도 똑같이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단계의 사역은 남자가 하게 됐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할 것이다. 사역은 어느 단계든 모두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의 사역은 중복되지도,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 예수는 사역할 당시에 독생자라고 불렸다. 독생자의 ‘자(子)’는 남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독생자라고 하지 않느냐?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성별이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으며, 그의 사역은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매우 자유롭지만, 모든 단계에 다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두 번 성육신했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말세에 성육신한 것이 마지막이며, 그는 자신의 모든 행사를 보여 주기 위해 왔다. 만약 이번 단계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직접 사역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이 여자가 아닌 남자일 것이라는 관념을 가질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은 남자여야만 하고, 여자는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여자에 대한 권병이 있으며, 그 권병은 남자만 담당할 수 있고 여자는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기에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지 남자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말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에게 해당할 뿐, 여호와가 처음 만들었던 남자와 여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여자는 마땅히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남편은 가족을 부양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여호와의 율례이자 법도이다. 여호와는 여자에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을 한 이유는 다만 인류(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고, 상규를 지키며 질서 있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남자와 여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규칙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는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에 해당하는 것일 뿐,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된 인류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창조된 인류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별에 따른 규칙을 만든 것이다. 여호와는 태초에 사람을 만들면서 남자와 여자, 두 부류로 나누었다. 그러므로 그가 입은 육신 또한 남자와 여자로 구분됐을 뿐이지, 그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 자신의 사역을 규정한 것은 아니다. 그의 두 차례 성육신 또한 태초에 사람을 만들 때의 생각대로 결정되었다. 즉, 패괴되지 않은 남자와 여자를 통해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만약 당시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와 아담에게 여호와가 했던 말씀을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에 적용한다면, 예수 또한 마땅히 사모해야 할 아내를 사모해야 하지 않았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이겠느냐? 또한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겠느냐? 하나님이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한 것이 잘못이라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 것부터가 크나큰 잘못 아니겠느냐? 또한, 하나님이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한 것이 잘못이라면, 아내를 맞이하지도, 사모하지도 않은 예수 또한 사람의 말대로 오늘날의 성육신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른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가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일을 평가한다면, 은혜시대에 성육신한 주 예수에 대해서도 여호와가 아담에게 한 말씀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예수를 뱀에게 유혹당한 적 없는 남자로 본다면,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을 뱀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로 보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불공평하다! 그런 평가는 너에게 이성이 없음을 뜻한다. 여호와가 두 차례 입은 육신의 성별은 뱀에게 유혹당한 적 없는 남자, 여자와 관련된다. 즉, 뱀의 유혹을 받지 않은 남자와 여자로 두 번 성육신한 것이다. 예수를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와 ‘아담’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둘은 성질이 전혀 다른 남자다. 예수가 남자라고 해서 그가 모든 여자의 머리일 뿐,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느냐? 그는 모든 유대인(남자와 여자 포함)의 왕이 아니더냐? 그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는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며,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자 머리이다. 너는 어째서 예수의 성별을 여자의 머리라는 상징으로 규정하느냐? 그것은 모독이 아니겠느냐?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자이며, 그는 하나님이자 그리스도이며 주님이다. 그가 어떻게 패괴된 아담과 같은 남성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 예수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취한 육신이다. 네가 어찌 그를 아담의 남성성이 있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도 모두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남성성을 예수에게 더했을 리 있겠느냐? 오늘날의 성육신은 예수와 성별은 다르나 성질은 똑같은 성육신의 또 다른 사역이 아니겠느냐? 그럼에도 너는 여자가 먼저 뱀에게 속아 넘어갔으니 하나님은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하면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여자는 가장 더러운 존재이자, 인류의 패괴를 초래한 기원이니, 하나님이 여자로 성육신할 리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또한 “여자는 언제까지나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변할 수도 없다.”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전에는 몰랐다지만, 지금에 와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더욱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모독하겠느냐? 잘 모른다면 함부로 말하지 말라. 너의 어리석음과 무지함, 추태가 드러나지 않도록 말이다. 네가 무엇이든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게 알려 주겠다. 지금까지 네가 보고 체험한 것으로는 내 경륜의 천분의 일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도 너는 왜 그리 오만하게 구느냐? 네가 가진 보잘것없는 재능과 인식은 예수가 행하는 사역에 1초도 이용될 수 없다! 너의 체험은 얼마나 되느냐? 여태까지 네가 본 것에 네가 평생 듣고 상상한 것을 더해도 내 한순간의 사역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흠잡을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네가 아무리 교만하게 굴어도 개미만도 못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네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은 개미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보다도 적다! 네가 체험이 많고 관록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지껄여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 체험과 관록 또한 다 내가 한 말에서 비롯된 것 아니더냐? 설마 그게 너의 성실과 근면의 대가라 생각하느냐? 너는 오늘날 나의 성육신을 보았기에 그렇게 풍부한 상상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관념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내가 성육신하지 않았더라면, 너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그렇게 많은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의 관념 또한 그로 인해 생긴 것 아니더냐? 만약 예수의 첫 번째 성육신이 없었다면, 성육신에 대해 네가 알기나 했겠느냐! 너는 첫 번째 성육신을 알게 됐다고 그렇게 방자하게 두 번째 성육신을 평가하는 것 아니더냐? 너는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망정, 또 무엇을 따지는 것이냐? 네가 이 흐름에 들어와 성육신 하나님 앞에 온 이상 네가 연구하는 것을 그가 용납하겠느냐? 네가 네 집안의 가족사를 따져 보는 것은 상관이 없겠지만, 하나님의 ‘가족사’를 따져 보고자 한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이 그것을 용납하겠느냐? 너는 눈이 먼 것이 아니냐?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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