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인류의 패괴 폭로 | 발췌문 346

2020.8.25

이렇게 많은 사역과 많은 말씀이 네게서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하고, 사역을 확장할 때 네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너는 부끄러움에 수치까지 당하게 된다. 그때 너는 하나님께 너무 죄스러우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얄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이 사역 기간에 알려고 추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추구하려고 해도 늦고 만다. 결국 머릿속에 든 것이 없고 아무런 인식도 말하지 못할 텐데, 네가 하나님께 무엇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볼 낯이 있겠느냐? 지금 열심히 추구하여 최종적으로는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 크게 이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없으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고, 이 더러운 땅에서 수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아귀다툼을 벌이고, 서로 짓밟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었다. 사람은 패역이 너무 크고, 관념이 너무 많아 전부 사탄에 속한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난다면 사람은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될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에서 나타내는 것은 바로 영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고, 그가 한 사역은 영이 하는 대로 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사역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너는 너무 어리석은 것이고 또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너의 믿음은 종교적인 신앙이고 너는 종교적인 기독교 신자이다. 너는 죽은 규례를 붙잡고 지키는 바람에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잃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추구함으로써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지만, 너는 자신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칭찬받기는커녕 도리어 악을 행하는 사람,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사람, 또 사탄의 웃음거리이자 사탄의 노획물이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신앙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추구하고 경배해야 하는 대상이다. 지금 추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 저는 왜 하나님을 잘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생명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을까요? 그때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네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왜 추구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정말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을 아주 증오하게 될 것이다.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을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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