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이상 3(상)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는데, 이는 그가 하려는 사역과 관련이 있다. 은혜시대는 예수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예수가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그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호와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고, 또 그를 위해 사역했다. 구약 율법시대의 종결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은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닌 예수라 불렸으며,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니 사람이 지금까지도 여호와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율법시대의 사역을 적용하는 것은 규례에 얽매이고 낡은 것을 지키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말세가 이미 도래했음은 너희도 알 것이다. 설마 예수가 다시 온다면 여전히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지난날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왔을 때는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자신이 다시 올 것이며, 갔던 그대로 올 것이라고 했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예수가 어떻게 갔는지 보았느냐?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갔다고 해서 설마 다시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오겠느냐? 그렇다면 계속 예수라고 불려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가 재림할 때는 이미 시대가 바뀌어 있을 텐데, 그를 계속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예수로만 불려야 한단 말이냐? 새 시대에는 더 이상 새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는 것이냐? 한 ‘사람’의 형상과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란 말이냐?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재림해서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는 없으며,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만 나타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 하나를 택해 한 시대 전체를 대변한다. 여호와의 시대든 예수의 시대든 모두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했다. 은혜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시대가 도래했으며, 예수는 이미 돌아왔다. 그런데 그를 어찌 또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그가 어찌 또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오겠느냐? 너는 예수가 단지 나사렛 사람의 모습일 뿐임을 잊었느냐? 너는 ‘예수’가 인류의 구속주일 뿐임을 잊었느냐? 그가 어떻게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말세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겠느냐?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떠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어찌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또다시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그가 정말 흰 구름을 타고 온다면,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리 있겠느냐? 세상의 그 누가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그렇다면 오직 ‘예수’ 자신만이 하나님 아니겠느냐? 그 말인즉,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유대인의 모습이고 영원히 바뀔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예수는 자신이 갔던 그대로 온다고 했다. 너는 그 말의 진의를 아느냐? 그가 너희에게 알려 주기라도 했단 말이냐? 너는 단지 그가 흰 구름을 타고 갔던 그대로 온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역사할 것인지 알 수 있느냐? 네가 정말 그것을 안다면 “말세에 인자가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르고 천사들도, 하늘의 사자들도 모르며 모든 사람 또한 모르고 오직 아버지, 즉 영만 아시느니라”라고 했던 예수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인자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그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알 수 있고 직접 볼 수 있다면, 그 말씀은 허사가 되지 않겠느냐? 예수는 당시에 어떻게 말했느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라고 하였다. 그날이 와도 인자조차 알지 못한다. 인자라 함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을 뜻한다. 인자도 알지 못하는 것을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예수는 떠난 그대로 올 것이지만 올 때는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너에게 미리 알려 주겠느냐? 그가 오는 것을 네가 볼 수 있겠느냐? 이것은 황당한 소리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땅에 올 때마다 이름은 물론, 성별과 형상, 그리고 사역도 바꾼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이므로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이전에 왔을 때 예수라고 불렸다 해서 이번에도 그대로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이전에 왔을 때는 남성이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남성이겠느냐? 이전에 은혜시대의 십자가 사역을 했다고 해서, 이번에도 사람을 속량하여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겠느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느냐? 그렇다면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모르느냐?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한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 년 경륜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또한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느냐?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 그의 성품을 사람들에게 점차적으로 나타내는데, 이는 다 그의 고유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었고,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적이 없었기에 사람은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자신의 성품을 조금씩 나타냈다. 그가 이렇게 사역한다고 해서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해서 그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역하는 시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성품을 전부 단계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내 그를 알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 특정한 성품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그의 성품 역시 조금씩 바뀐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특정 성품, 즉 자신의 어떠함을 사람에게 나타낼 때,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내지,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다’는 말은 그의 사역을 두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소유와 어떠함을 두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너는 6천 년 사역을 어느 한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일 뿐 사탄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은 영원히 사탄일 뿐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 공의, 그리고 위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영원불변하지만,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심화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사역을 하며, 피조물에게 그의 새로운 뜻과 성품을 보여 준다. 사람이 새 시대에 새로운 성품의 발현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아 놓지 않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 아니겠느냐? 가령 성육신한 하나님이 단지 남자라면, 사람은 그를 남자로 규정하고 남자의 하나님으로 대하지, 결코 여자의 하나님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같은 성별이라고 여길 것이며, 하나님은 남자들의 머리가 될 것이다. 그럼 여자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는 불공평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모두 자신과 같은 남자일 뿐일 테고, 여자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할 때 아담도 만들고 하와도 만들었다. 하나님은 아담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여자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말세에 하나님은 새로운 단계의 사역을 하여 더 많은 성품을 나타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 때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다. 새로운 사역을 하는 이상, 그 사역에는 새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만약 영의 역사라면 성육신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소리로 말할 테니, 사람은 그를 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겠느냐? 영의 역사만으로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을 통해,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 육신을 통해 그의 모든 성품을 발현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형체를 지니고 진실로 사람들 가운데서 살면서, 사람이 그의 성품을 실제적으로 접하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을 접해야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또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이자 여자의 하나님이다.”라는 사역을 완성하게 되고, 성육신의 모든 사역도 이루게 된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지금이 말세인 만큼, 하나님은 말세의 사역을 하고, 말세에 자신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려고 한다. 말세라 함은 또 다른 시대를 말한다. 예수는 “그때가 되면 너희는 반드시 재앙을 겪을 것이며, 지진과 기근, 그리고 온역을 마주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것은 낡은 은혜시대가 아니라 또 다른 시대임을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듯, 하나님이 영원불변한 존재이고, 그의 성품은 영원히 긍휼과 자비이며,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여 누구든 다 구원하고 또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의 사역에 끝이 있겠느냐?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죄인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제단에 바침으로써 구속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가 이미 은혜시대를 끝냈는데, 말세에 또다시 은혜시대의 사역을 행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계속 그렇게 한다면 이는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번에 온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때처럼 긍휼과 자비를 베푼다면, 시대를 끝낼 수 있겠느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 시대를 끝낼 수 있겠느냐? 시대를 끝내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으로 나타나며, 온갖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이라야 시대를 끝낼 수 있다. 말세가 되었으니 만물은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며,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나뉠 것이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는 모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결말은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서만 오롯이 드러나고, 사람은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만 본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은 악한 자는 악한 자끼리, 선한 자는 선한 자끼리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형벌과 심판을 통해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상선벌악하며, 그리하여 만인이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게 한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이 극도로 패괴되었고 사람의 패역은 너무나 심해서,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 있다. 이로써 모든 불의한 자들을 강하게 징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품은 모두 시대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모든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아무 의미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는 말세에도 여전히 끝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며 사랑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 없이 사랑하기만 하면서 관용을 베풀고 인내하고 죄를 사해 주며,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언제나 용서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지 않는다면, 전체 경영은 언제 마무리할 수 있겠느냐? 그런 성품으로 언제 사람들을 인류에게 적합한 종착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사람들을 언제나 사랑하기만 하는 재판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이 무슨 죄를 저지르든 사랑해 주고, 그 누구든 아껴 주고 감싸 준다면, 공정한 판결은 언제 할 수 있겠느냐? 말세에는 오직 공의로운 심판만이 인류를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있고, 사람을 더 새로운 경지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판과 형벌의 공의 성품으로 전체 시대를 끝내야 한다.

전체 경영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은 매우 분명하다. 은혜시대는 은혜시대이고, 말세는 말세이듯,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 때문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말세의 사역을 하려면 반드시 불사름과 심판, 형벌, 진노, 그리고 파멸로 시대를 끝내야 한다. 말세라고 하면 마지막 시대를 가리킨다. 마지막이라면 시대를 끝내는 것 아니겠느냐? 시대를 끝내려면 반드시 형벌과 심판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를 끝낼 수 있다. 예수는 사람이 계속 생존하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더 잘 생존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을 죄에서 구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계속 타락하여 음부나 지옥에서 살지 않게 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음부, 지옥에서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말세가 도래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멸절하고 인류를 완전히 멸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패역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으로는 시대를 끝낼 수 없고, 6천 년 경륜을 완성할 수도 없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특별한 성품이 있고,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그 자신이 나타내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그의 이름과 사역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에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사역을 했고, 땅에서 첫 단계의 사역을 전개했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으며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그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것은 땅에서 하나님이 사역할 근거지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 근거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 외부로 사역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은 점차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여호와가 천지 만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사역한 첫 성지이다. 하나님이 땅에서 처음으로 사역한 곳은 이스라엘 전역이었고, 그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었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은 바로 은혜와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그리고 관용이었다.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이유는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였다. 그는 자신의 긍휼과 자비에 따라 반드시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며, 그것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인류를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했고, 그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이 모든 사람과 함께했다. 사람은 오직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누리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극히 크고 많은 은혜를 받고, 그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다시 말해,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구약 성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역을 행했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의 사역은 끝이 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했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얻으며, 마지막에는 시대를 끝낸다. 각 시대와 각 단계의 사역에서 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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