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상)

하나님은 처음 성육신했을 때 땅에서 33년 반 동안 생활했으나, 직분을 이행한 것은 3년 반에 불과했다. 그는 사역을 행할 때도,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도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정상 인성으로 33년 반을 산 셈이다. 마지막 3년 반의 기간 동안 그는 언제나 성육신한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직분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정상 인성으로 나타났으며, 신성의 모습은 조금도 없었다. 정식으로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에야 신성이 드러났다. 29년 동안의 사역과 모든 삶은 그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자 인자이며, 육신이었음을 증명한다. 그가 29세 이후에 정식으로 직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자신이 만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무엇보다 먼저 육신, 특히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삶과 사역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전의 삶이다. 일반인의 가정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며, 정상적인 생활 윤리와 법칙, 필요(의식주 등), 보통 사람과 같은 연약함, 희로애락 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정상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의 삶이다. 이때도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닌 일반 인성으로 산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초자연적인 부분이 없어 보이지만, 직분을 이행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오로지 신성의 사역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직분을 시작했다는 것은 정상 인성이 이미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정상 인성으로 직분을 이행하는 삶이며,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첫 번째 단계의 삶이 온전히 평범한 인성으로 사는 삶인 이유는 그때의 인성이 신성의 모든 사역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성이 성숙해질 때까지,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육신인 이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의 삶은 그저 정상 인성의 삶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인성으로 사역을 충분히 담당하고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하나님이 직분을 이행하는 기간의 삶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태어나자마자 정식으로 직분을 이행하고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보인다면, 육신의 본질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의 본질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고,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간에 속한다. 이렇듯, 육신의 인성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성육신한 하나님께는 신성만 있을 뿐, 인성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성육신의 원칙과도 위배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옷을 입은 신성으로 살며 사역한다. 다만, 이때의 인성은 오로지 신성이 정상 육신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인성 안에 있는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즉,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지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신성은 인성에 가려져 있지만 그 본질은 인성이 아닌 완전한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단, 이 육신으로 사역하는데, 이 육신을 사람이라고도,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 되고, 사람의 외형과 본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즉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한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으니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땅에서 예수의 삶은 어디까지나 육신의 정상적인 삶이었다. 그는 육신의 정상 인성으로 살았다. 그가 직분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사역이나 말씀의 권능,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 등 비범한 일들이 기본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29세가 되기 전, 그러니까 직분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가 정상 육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정상 육신인 데다가 직분을 시작하기 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하나님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저 그를 정상적인 일반 사람이라고 봤을 뿐이다. 당시 일부 사람들이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래서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는 일반인의 아들이었으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고는 아예 알아볼 수 없었다. 직분을 이행할 때 그가 많은 이적을 보여 줬어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가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닌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그의 정상 인성과 그가 행한 사역, 이 두 가지는 첫 번째 성육신의 의의를 완성하기 위해 존재했다. 즉, 하나님이 육신에 완전히 임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해서였다. 사역을 하기 전까지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평범한 육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것은 그가 사역을 시작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보여 준 표적과 기사, 또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도 전부 정상 인성의 육신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가 기적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육신이 하나님의 권능을 지니고 있고 그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권능을 가진 것도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그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 중의 사역이었고, 인성으로 가려진 신성의 발현이었다. 어떻게 기적을 보이든, 어떻게 권능을 나타내든, 그는 여전히 정상 인성, 즉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고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부활하기 전까지, 그는 계속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고 있었다. 사람에게 은혜를 내리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모두 그의 직분이었고, 정상적인 육신으로 행한 것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 그는 무엇을 하든 정상 인성의 육신을 벗어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하나님 자신이고, 또 그가 행한 일들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고 해도 그는 성육신한 몸이었기에 사람과 마찬가지로 의식주가 필요했고, 정상 인성으로서의 필요한 것이 있었으며, 정상인의 이성과 사유를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이지 비범한 육신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가 행한 사역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으로 완성해야 할 사역, 첫 번째 성육신으로 마땅히 이행해야 할 직분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성육신의 의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한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하며, 이를 통해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성육신이란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것, 즉 하나님이 육신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에서 실체화되며, 육신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님이 거하는 육신 외에는 누구도 성육신한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 사역을 선포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하나님이 처음 성육신했을 때 29세 이전까지 정상 인성을 취하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세상의 모든 일을 꿰뚫어 보며, 말을 떼자마자 천상의 말씀을 하고, 사람의 생각과 품고 있는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었다면, 이런 사람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육신은 육신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성육신의 의의와 본질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성육신’한 하나님임을 증명한다. 그가 정상인의 성장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그의 육신이 평범했음을 말해 주며, 그의 사역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되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사역의 필요로 인해 육신이 되었다. 다시 말해, 그 단계의 사역은 반드시 육신, 즉 정상 인성을 통해 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다’를 실현하는 전제 조건이며, 두 차례에 걸친 성육신의 실상이다. 아마 사람들은 예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을 보였고, 땅에서의 사역을 마칠 때까지 정상 인성을 나타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정상 인성의 필요나 연약함도, 사람의 희로애락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의식주도 없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사람의 상상처럼 초자연적인 두뇌와 비범한 인성을 지녔을 뿐 정상인의 사유는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면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도, 정상 인성의 삶도 있어서는 안 되며,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사유와 삶을 소유하는 것은 정상인이나 진짜 사람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상상하는 것은 전부 사람의 뜻이고 사람의 관념인데, 이 관념은 하나님 사역의 원뜻에 위배된다.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있어야 정상적인 이성과 인성이 유지될 수 있고, 정상 인성이 있어야 육신의 정상적인 기능이 유지되며, 육신의 정상적인 기능이 있어야 육신의 모든 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육신으로 일을 해야 성육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성육신한 하나님께 오직 육신의 외형만 있고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없다면, 그 육신은 인성과 이성을 지니지 않았으며, 진정한 인성은 더더욱 없는 것이 된다. 인성이 없는 그런 육신으로 성육신이 해야 할 직분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겠느냐?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사람의 모든 생활을 유지한다.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없는 사람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두뇌의 사유가 없는 사람은 정신병자이며, 인성 없이 신성만 있는 그리스도는 성육신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 어떻게 정상 인성이 없을 수 있겠느냐? 그리스도께 인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정상인이 하는 모든 활동은 두뇌의 정상적 사유에 의해 유지된다. 만약 두뇌의 정상적 사유가 없다면 사람의 활동은 규칙이 깨질 것이며, 옳고 그름과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윤리까지 잃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성육신한 하나님께 정상적인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육신은 진정한 육신이 아니다. 즉, 정상적인 육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두뇌의 사유가 없는 육신은 신성 사역을 담당할 수 없으며, 정상적인 육신으로 해야 하는 활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고, 사람들과 함께 땅에서 생활하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성육신의 의미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본질도 잃게 된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인성은 육신 안에 있는 신성의 정상적인 사역을 유지시키며,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정상 인성과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시킨다. 그러니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유지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그 육신에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다면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가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은 영원히 완성할 수 없다. 성육신한 하나님께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있지만, 그의 사역에는 사람의 어떤 사유도 섞여 있지 않다. 그는 정상 사유를 하는 인성, 즉 사유하는 인성이라는 전제하에서 사역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발휘해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거하고 있는 육신의 사유가 얼마나 고차원적이든, 그의 사역에는 논리학도, 사고학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사역은 육신의 사유를 통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직접 나타낸 것이다. 그의 사역은 전부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이지, 그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그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십자가에 달린 것은 두뇌로 상상한 것이 아니며, 두뇌로 사유하는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복 사역도 마찬가지로 성육신한 하나님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직분이다. 그 사역은 전부 사람의 뜻이 아닌 신성이 해야 하는 일로, 육에 속하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반드시 두뇌의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 인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가 정상적으로 사유하는 인성으로 사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의 본질이자, 성육신한 하나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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