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6) 제 6 부
이어서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사람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여러 일에서 항상 다른 사람의 계산적인 행위에 직면하게 된다. 너와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비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말 한마디 때문에 너와 언쟁하는 사람이나, 뒤에서 너를 판단하고 무너뜨리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네게 훼방을 놓거나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온갖 사람의 계산적인 행위에 직면할 때, 이를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한 가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남들이 아무리 계산적으로 대해도 난 그들을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고 멀리하겠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게 어떤 공과를 배우게 하시려는지 깨닫고, 내 입장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며 내 본분을 지킬 거야.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건 언제나 옳아. 나한테 손해도 아니고. 사람들이 아무리 높이 평가한들 그건 면류관도 상도 아닌걸. 그건 재앙일 뿐이야!’ 이 원칙을 지키면 악행을 저지르거나 하나님에게 정죄당하지 않게 자신을 지킬 수 있다. 평생 피조물의 지위를 굳게 지키고,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마음과 힘을 다해 할 수 있다면, 네가 침식을 잊든, 심혈을 기울이든 온 마음을 본분 이행에 쏟아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제대로 함으로써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한다면, 넌 값진 인생을 산 것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대단한 일, 사업 등을 하거나 기적 따위를 일궈 내는 것을 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닥친 일에서 진리를 깨닫기를 구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해야 할 일을 잘 해내야 한다. 모든 일이 진리 원칙에 맞고, 자기가 이행하는 본분이 사역지침에서 요구하는 원칙에 맞도록 말이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의 출발점과 목적, 원칙을 꼼꼼히 살펴서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맞고 문제가 없으며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매일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평안과 기쁨이 있으며,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 마음속에 하나님에게 할 말이 있으면 기도하고, 기도할 말이 없어도 마음으로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 기도하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 감동을 얻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으며, 당당하게 처신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좋으냐! 사람을 대하고 사람들과 왕래하며 교류할 때 기본적으로 오점과 과오가 점점 줄어들 것이고, 남들이 아무리 너를 계산적으로 대해도 혈기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겨 내기 힘겨울 때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연약할 때도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성령이 감동을 주어서 네게 힘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너는 극복하게 되어 그렇게 고비를 넘기게 될 것이다. 너에 대한 남들의 계산적인 행위나 공격, 보복 등에 직면할 때마다 고비를 넘기거나 난관을 돌파하는 것처럼 결국 그 계산적인 행위나 남들의 공격, 보복, 다툼을 이겨 낸다면, 혈기와 패괴 성품으로 대하지 않고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너는 진정으로 이기는 자일 것이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하지만 네가 맨날 혈기와 패괴 성품 속에서 살아간다면, 누가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거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할 때 마음에 두고 몹시 신경 쓸 것이며, 그러다 감정이 격해져 눈에 쌍심지를 켜고는 노발대발할 것이다. 혹여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불안한 마음이 들고 입안이 다 헐며 식음을 전폐하거나 밤잠을 설치며 하나님을 멀리할 것이다. 혈기가 아니면 기분에 따라 살아가니,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라 하나님 말씀을 정상적으로 먹고 마실 수 없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다. 또 마음속이 이런 시시비비에 관한 일로 가득하고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그런 것에 한 번 얽매이면 벗어나기 어려우며, 심지어 몇 달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결혼이나 송사와 같은 큰일이라면 더 심하게 계산적으로 굴다가 그 일에 얽매인 채 몇 달, 몇 년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가장 좋은 시기를 망쳐 버리는 것이다. 너는 일생을 모두 허비했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을뿐더러 진리도 얻지 못했으니, 끝장난 것이 아니겠느냐? 맨날 시비에 빠져 살고, 남들과의 계산적인 행위나 다툼, 실랑이에 빠져 사는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는커녕 계산적으로 대하고 다투면서 악행만 늘어날 것이다. 사람 간의 계산적인 행위와 다툼 속에 살아가면,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하게 될 것이고, 참람한 말이나 패역한 말, 진리에 어긋나는 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도 얼마나 많이 하게 되겠느냐? 그것은 모두 마귀적인 말이다. 비록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말도 있겠지만, 그 역시 네 머릿속에서 가공을 거치게 된다. 네가 속으로 남을 증오하고 욕하며 저주하는 것을 하나님은 빠짐없이 다 보고 있다. 하나님은 일이 일어났을 때 네가 어떻게 계획하고 계산하고 실행하는지 지켜본다. 너는 이런 계산적인 행위나 다툼 속에서 살면서 결코 반성하고 하나님에게 회개하며 죄를 시인하거나, 그 일에서 진리를 구할 줄 모르고, 오로지 ‘즐기기’만 한다. 몸과 마음이 지쳐도 결코 반성하거나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하나님의 징계와 인도를 받아들이는 법이 없고,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이 권세를 잡게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겠노라 마음먹지도 않는다. 이는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면 진리를 실행하여 사람다운 삶을 살아 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에게 칭찬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다툼과 계산적인 행위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 테니, 마음으로 하나님을 늘 가까이할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되어 결과적으로 본분 이행의 성과가 점점 좋아질 것이다. 또한, 마음속으로 이렇게 사는 것이 값진 삶이고 인류에게 기여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실한 평안과 기쁨이 깃든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기에 매일의 삶이 진실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온갖 다툼과 계산적인 행위 속에서 살아간다면, 네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그저 죄악을 쌓는 것일 뿐이다. 피조된 인류가 살아 내야 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앞날에 죄악만 쌓아 간다면, 하나님은 너를 점점 혐오하여 버릴 것이고, 네게 점점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기에 너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 네게 걸었던 하나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할 것인데,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네가 그런 행동을 해서 하나님을 점점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다면, 네가 언젠가 정말 뉘우치지 않아서 하나님이 너를 포기하려 한다면, 너라는 사람의 삶과 믿음에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겠느냐? 살아가는 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너는 남들이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고 판단했다고 해서 본때를 보여 주고 네 체면과 존엄을 회복하려 야단법석을 피우다가 해야 할 일을 그르친다. 심지어 때로는 남들이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거나 눈빛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혹은 체면이 구겨지고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끝도 없이 그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소중한 시간을 그런 일에 낭비해서 구원받을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되고, 진리는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은 너를 버리고 더는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완전히 끝장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무엇을 알려 주려 이런 것들을 교제하겠느냐? 어떻게 처신하고 어떤 방식으로 처신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늘 계산적인 행위와 다툼, 개인의 이익에 대한 득과 실, 온갖 칭찬과 비난, 판단과 정죄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된다. 누구든 이런 일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인간 세상에서 이 나이까지 진공 상태에서 산 것은 아니며, 똑같이 그런 일에 직면하지만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나를 보아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 그런 일이 내 삶과 사역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는다. 나는 매일 오직 내 사역을 하는 데만 집중하며, 지금까지 살면서 외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내 신분과 지위, 사람들 눈에 비치는 내 가치는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을뿐더러 나는 너희가 나를 대단하고 비범하며 남다르다고 오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돼서 너희가 나를 숭배하지 않게, 나에 대해 비현실적인 상상이나 관념을 갖지 않게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한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 주어야 할 필요까지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임을 알게 되어 냉담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난 개의치 않는다. 그저 내 말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된다. 다른 요구는 하지 않는다. 너희가 온종일 나를 지켜보고 연구하며 내 눈치만 살피면 되레 내가 자유롭지 않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숭배하거나 아첨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떠받드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난 조용한 게 좋다. 보아라, 나는 그동안 무척 잘 지내지 않더냐? 너희도 한번 이렇게 살아 보면 어떻겠느냐? 명예와 이익, 지위를 다투지 않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지 않으며 발언권 따위를 다투지 않고도 네가 살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아라.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대로 행동하고 살아가고, 또 처신하고 일 처리하며 본분을 이행한다면, 네 삶이 어떤지, 기쁨을 얻고 마음에 평안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삶의 방식을 바꿔 보고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며 목표가 분명해지면, 밝은 앞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항상 누가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는지, 누가 네 지위에 영향을 주는지, 누가 너보다 명성이 높은지, 누가 뒤에서 너를 험담하는지 등을 따지면서 이런 일에 빠져 산다면, 앞이 어두컴컴하고 길이 보이지 않아 늘 막막할 것이다. 그리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행복하지도 않고. 난 복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준 복을 누리지 않고 지옥으로 파고들기만 하는데, 네게 복이 있을 리 있겠느냐? 기쁨과 평안이 있을 리 있겠느냐?
이런 주제에 관해 교제하는 게 어떠냐? (좋습니다.) 어떤 점이 좋으냐?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표출되는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다른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사람과 일, 사물에 속박받지 않고 빛 가운데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길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 원칙들을 교제하는 가장 주된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단지 다른 사람과 다투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상 인성 속에서 정상 인성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면, 너는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네 생명이 되게 할 수 있고,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된다. 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단순히 사람들과 서로 계산적으로 대하고 다투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만약 단순히 계산적으로 대하고 다투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사람의 실행 목표가 무엇이겠느냐? 그러면 공허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이 사회, 사람들 가운데 살다가 일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늘 자기 사상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것처럼 아무 사상 관점이 없을 리 없다.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고 너와 다투지 않는다면, 너도 남들을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고 남들과 다투지 않을 수 있겠지만,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고 너와 다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네가 그저 “그와 싸우지 않고, 그를 계산적으로 대하지도 않겠습니다.”라고 구호만 외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어떤 사람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계산적으로 대하십니까? 하나님의 사역이 지금 어느 때인데, 아직도 계산적으로 대하시나요? 계산적으로 대해 봤자 무슨 소용입니까?”라며 구호를 외친다. 이렇게 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이 일어나면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며 그들과 다툰다.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의 사상 관점에 관한 문제, 사람의 패괴 성품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네가 올바른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면, 이런 일에 대한 관점과 태도, 입장이 변하고, 마음속에서 이런 일을 대하는 느낌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다투는 것은 무의미하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며 사역을 그르치고 괴로운 마음이 들며 기쁨과 평안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런 일에 대한 하나님 말씀의 정죄를 살펴보면, 이런 일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변하고 마음이 달라지며, 다른 사람과 다투려는 의욕이나 분노가 사그라들며, 혈기도 사라진다. 또 남들이 너와 다투면서 계속 도발해도 너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별일 아니라고, 남들과 다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답답해서 “그가 당신을 저런 식으로 대하는데, 어째서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죠? 바보 아녜요?”라고 하면, 너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엄청 심각하게 생각했어요.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죠. 그 사람에게 제 생각이 분명하게 전달되거나 그가 저한테 해명하기 전까지 가만있지 않았죠. 그런데 이젠 달라졌어요. 다른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거나 그와 다투지 않아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 속에서 인류의 패괴된 본질을 간파했기 때문이죠. 그의 저런 모습은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전형적인 악인, 적그리스도, 사탄의 표출과 모습이에요. 예전엔 제게도 그런 모습이 있었지만, 이젠 그것이 너무도 추하고 역겨운 몰골이고 성품이라는 것을 하나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혐오하신다고요! 이젠 저도 혐오스러워서 패괴 성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그가 또 덤비면 싫은 마음이 들고 역겨워져서 싸울 마음도 사라지고 싸우기도 싫더군요.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 원칙도 찾았고, 이런 부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하더냐? 한편으로, 이런 부류는 하나님 말씀에 폭로되고 규정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대하는 원칙에 있어 하나님은 ‘공평하게 대하라’고 알려 주었다. 만약 진정한 형제자매일 경우, 그가 패괴 성품을 표출하면, 우리는 그를 사랑으로 대하고, 진리를 교제해서 그의 과오와 패괴 성품을 해결함으로써 그가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과오를 범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의 문제가 우리의 도움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만약 그가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교회 사역도 교란하지 않는다면, 계속 교회에 머물게 해서 본분을 이행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남들과 다투고 남들을 계산적으로 대해서 교란을 일으킨다면, 하나님 집의 행정 법령과 사람을 대하는 원칙에 따라 그를 정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겠느냐? 무리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 집에는 원칙과 길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어떻게 분별하고 처리하며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 말씀 속에 원칙과 길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면 손쉽고 가뿐하게 처리할 테니,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마음에 아무런 교란도 받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만약 몇 년 전에 이런 일이 닥쳤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고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 년의 생명 체험을 겪자, 이런 일에 부딪혀도 어려워하지 않고 해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네 분량이 커졌고, 진실한 변화가 생겼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말해 보아라,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심정이겠느냐? ‘예전엔 늘 내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기까지 해서 구제 불능인 거 같았지. 그런데 이젠 이 일을 처리할 때 어려움이 없네.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희망이 생긴 거 같아.’ 어떤 희망이겠느냐? (구원받을 희망입니다.) 구원받을 희망이 보일 때 앞날이 환하겠느냐 아니면 어둡겠느냐? (환할 것입니다.) ‘광명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네 분량이 이런 수준에 도달하면, 진리를 실행할 때는 구호를 외칠 필요가 없음을, 이토록 손쉽고 가뿐하게 할 수 있음을 진정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진리 원칙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렇게 쉽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분량 또한 부지중에 이렇게 자란다. 네가 네 분량이 자라고 변화가 생겼다고 느끼고, 하나님을 믿은 지난 세월 동안 네 믿음에 수확이 생겼다고, 헛된 믿음이 아니라고 느낄 때, 누군가가 또 “제가 하나님을 믿어서 얻은 게 뭐가 있나요? 저는 20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렇게 고생하며 힘을 썼고, 또 그토록 많은 것을 버리고 헌신했는데, 아무런 복도 누리지 못한 채 고생만 실컷 했어요!”라며 참람한 말을 한다면, 넌 속으로 ‘양심도 없는 사람이네. 마귀적인 말을 늘어놓다니!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한 모양이야. 횡포랑 억지만 부릴 줄 알고, 참람한 말만 늘어놓고 있잖아!’라며 경멸할 것이다. 그는 늘 “하나님을 믿어서 제가 얻은 게 뭐가 있나요?”라고 한다.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물질적인 은혜와 축복을 받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진리를 얻어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냐?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택해야 하는 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대체 은혜와 축복을 추구하는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갈 것이냐?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깨달은 진리를 다 실행해 내어서 네 실제가 되게 한다면 너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네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체험한다면 네 믿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단순히 은혜를 누리는 데만 집중하고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해 “제가 얻은 게 뭐가 있나요?”라며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얼마나 많은 은혜를 누리든 진리를 하나도 얻지 못한다면, 네 믿음은 너무도 불쌍한 믿음이며, 이는 네가 눈먼 자임을 의미한다. 지금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며, 날마다 새로운 말씀을 하고 있다. 사람이 영원히 다 먹고 마시지도, 누리지도 못할 만큼 말이다. 실행하고 진입해야 할 진리가 너무나 많고, 많은 진리들이 평생 체험해도 다 체험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오래 믿고 진리를 추구한 사람은 너무도 많은 것을 풍족히 얻었다. 그런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생각만 한다. 진리를 누리는 사람은 그 말씀들이 정말 소화하기에 차고 넘칠 정도라고 생각한다. 지금 진리의 측면에서 보든, 물질적인 축복의 측면에서 보든 하나님은 사람에게 차고 넘치도록 내려 주니, 하나님 집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 때 먹고 마시는 하나님 말씀은 정말 차고 넘친다. 체험 간증, 영화, 찬양, 춤 등 다채롭고 풍요롭다. 물질적인 것인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 또한 차고 넘친다. 또 하나님이 배치한 큰 붉은 용의 봉사, 적그리스도와 거짓 리더의 모습,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사물이 날마다 사람 앞에 나타나 공과를 배우게 하고 분별력을 키우게 한다. 미처 한 번에 다 배우지 못하면, 또 환경과 사람, 일, 사물을 배치했다가 너희가 공과를 충분히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거두어 준다. 그렇기에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풍성한 잔치에 참석한 거라고 하는 것이다. 몇 년만 믿으면 큰 성장이 있을 것이고, 진실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민을 친히 목양하고 양육하며 이끈 지난 세월 동안,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으며, 어느 정도 진실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낄 것이다. 특히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그 변화가 더욱 커서 하나님을 따르는 길은 가면 갈수록 환하다는 사실을 느낄 것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진실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항상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속으로도 진리를 실행하기 원치 않는다면, 너에게 구원받을 희망이 있음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자꾸만 주변 사람에게 “제게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다 누가 “영적인 이해력이 없어 보여요.”라고 하면 ‘망했다. 희망이 없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너는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달은 다음 실행할 수 있다면, 차츰 영적인 이해력이 생길 것이고, 영적인 이해력이 생기면 깨닫는 진리가 점점 많아지고 어떤 측면의 체험 간증이든 다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네 내면이 풍족하고 충실해졌다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얻은 것이 너무도 많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리를 생명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그 내면은 늘 갈팡질팡하고 막막할 것이며 진실한 믿음도 없어서 항상 주위 사람에게 자기한테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지 묻기만 할 것이다. 또한, 자기한테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지 물으면서 영적인 이해력의 유무로 희망이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은 멍청하지 않으냐? (멍청합니다.) 영적인 이해력이 있든 없든 너는 진리에 다가가려 애써야 한다. 진리를 깨달으려 애쓰는 것은 물론, 진리를 실행하려 애쓰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진리를 깨닫고 또 실행할 수도 있다면, 구원에 이를 희망이 있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 문제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 교제는 여기까지 하겠다. 다음에 보자!
2024년 9월 7일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