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13편 서신’을 어떻게 보느냐>(발췌문 182)

하나님의 사역은 어쨌든 사람의 사역과 다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 또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는 하나님만의 성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그의 사역에서 발현되고,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체험에서 체현되고 사람이 추구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람의 말인지는 사역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 자신이 밝힐 필요도,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증거할 필요도 없고, 나아가 하나님 자신이 누군가를 압제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모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일이지 강요할 일도,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체험을 통해 알 수 있으므로 사람이 따로 체험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고, 하나님은 역사하는 동시에 본디 지닌 성품을 나타낸다. 사람의 사역이라면 숨길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더더욱 그 누구도 하나님의 성품을 가릴 수 없다. 또한 그것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사역이나 말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거나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반면, 하나님은 육신을 입었으므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을 사람의 사역이나 본분으로 정의 내려선 안 되며, 하나님의 음성과 바울의 서신을 같은 선상에 놓고 논하거나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사람의 교훈과 동등하게 대해선 더더욱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은 원칙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본질에 따라 구분이 된다. 절대 사역의 범위나 사역의 단기간적인 효율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 측면에서 원칙적인 오류를 범한다. 사람이 보는 것은 사람이 이를 수 있는 겉면이지만, 하나님이 보는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보통 사람의 본분으로 여기고, 인간의 큰 사역을 사람의 본분이 아닌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으로 여긴다면, 원칙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은 자유롭게 서신과 전기를 쓸 수 있지만, 그것은 성령 역사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의 지혜와 사유로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탐구해서 밝히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희가 이 원칙적인 일들에 아무 느낌도 없다면 그것은 너희의 믿음이 참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너희의 믿음은 막연함으로 가득할 뿐이며, 원칙이 없고 어정쩡할 뿐이다.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양자의 본질적인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믿음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몰지각한 믿음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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