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0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4) 제2부분

하나님은 어떻게 영계를 주재하고 관리하는가

1. 이방인의 생사윤회

이런 이해를 통해, 하나님이 이방인의 생사윤회를 치밀하고 엄격하게 검사하고 관리하는 것을 보았느냐? 우선 하나님은 영계에서 각종 규율과 법령, 제도를 제정하고 반포했다. 영계의 여러 직위에 있는 생령들은 하나님이 정한 대로 엄격히 집행하며 누구도 감히 이를 위반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세계에서 인류의 생사윤회, 동물 혹은 사람으로 교차 윤회하는 데에는 분명한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감히 이 법칙을 깨뜨리려는 사람도, 깨뜨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나님의 이런 주재가 있고 이런 법칙이 있기에 사람 눈에 보이는 이 물질세계가 일사불란하고 질서 정연한 것이다. 또, 하나님의 이런 주재가 있기에 인류는 아예 보지 못하는 다른 세계와 평화롭게 공존하며 화목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한 사람의 육의 생명이 끝난 후 영혼이 아직 살아 있는데, 이 영혼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영혼은 여기저기 떠돌며 아무 데나 쳐들어가고, 심지어는 인류 세계의 생물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인류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에게도 해를 끼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를 입는 것은 인류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즉 이런 영혼이 관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짜 인류에게 해를 끼치고 나쁜 짓을 했다면, 영계에서는 이런 영혼에게 합당한 처분을 내린다. 심각하다면 이 영혼을 머지않아 소멸하여 없앤다. 혹은 가능하다면 이 영혼을 한곳에 두었다가 다시 윤회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영계에서는 각종 영혼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질서 있게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관리가 있기 때문에 인류의 물질세계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이 물질세계에 사는 인류가 정상적인 사고와 이성이 있고 질서 있는 육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인류가 이런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육체 속에서 사는 사람이 대대로 번성할 수 있는 것이다.

방금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떠냐? 꽤 신선하지 않으냐? 오늘 이 주제를 교제하니 소감이 어떠냐? 신선하다는 것 외에 또 다른 느낌이 있느냐? (사람은 정직하고 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두려운 분이시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방금 하나님께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어떻게 안배하시는지에 대해 얘기하신 말씀을 듣고 나니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상당히 원칙 있게 일한다는 것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원칙은 무엇이냐? (사람의 행위에 따라 사람의 결말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방금 말한 이방인의 여러 결말이다. 이방인에 대해 하나님이 일하는 원칙은 상선벌악이 아니냐? 이 범위를 벗어났느냐? (아닙니다.) 그럼 너희가 보기에 하나님이 일하는 데에 원칙이 있지 않으냐? 사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도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더 심각하게는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취하는 태도는 적대적이다. 그들이 이런 태도로 하나님을 대해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리는 하나님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성품에 따라 그들을 이렇게 질서 있게 관리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적대적인 태도를 무엇으로 간주할까? 무지로 간주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즉 이방인 중의 대다수 사람들을 동물로 윤회하게 했다. 그럼 하나님의 눈에 이방인은 어떤 존재이냐? 다 짐승인 것이다. 하나님은 짐승을 관리하고, 인류를 관리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도 하나님은 똑같은 원칙으로 대한다. 이런 사람에 대한 관리와 행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법칙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방금 말한 이방인을 관리하는 하나님의 원칙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보았느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았느냐? (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만물 중의 무엇을 대하든지 하나님 자신의 원칙과 성품에 따라 일을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짐승으로 간주한다고 해서 자신이 정한 천상의 규율과 법령을 함부로 깨지 않는다.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원칙이 있어 절대 함부로 행하지 않으며, 어떤 요인에도 방해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든 자신의 원칙을 고수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하나님 본질의 일면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만물 중 어떤 사물이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생물이든 다 진지하고 책임 있는 태도로 처리하고, 대하고, 경영하고, 관리하고, 주재한다. 여태껏 무책임하게 대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 선한 사람은 은혜롭게 후하게 대하고, 악한 사람은 인정사정없이 벌준다. 또한, 모든 생령을 각 시기의 인류 세계의 요구에 맞춰 제때에 정기적으로 적절히 안배한다. 그러면 모든 생령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규칙적으로 윤회하며, 물질세계와 영계 사이를 규칙적으로 오가게 된다.

한 생령의 죽음, 육체 생명의 마감은 이 생령이 물질세계에서 영계로 들어감을 의미하고, 새 생명의 탄생은 이 생령이 영계에서 물질세계로 넘어와 자신이 맡고 담당한 역할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가는 것도, 오는 것도 모두 영계의 사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사람이 오는 것, 한 사람이 어떤 가정, 어느 시대, 어느 시각에 와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는 모두 영계에서 하나님이 적절히 안배하고 정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일생,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은 영계의 안배대로 조금도 어긋남 없이 전개된다. 그리고 이 육의 생명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디서 끝나는지도 영계에서는 분명하게 알고 꿰뚫어 보고 있다.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주재하고 영계도 주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 영혼의 정상적인 생사윤회를 그르치지 않고, 한 영혼의 생사윤회를 잘못 안배하지도 않는다. 영계의 각 직위에 있는 일꾼은 하나님의 지시와 하나님의 규정에 따라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며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류 세계에서 사람에게 보이는 모든 물질 현상이 아무 혼란 없이 질서 정연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법칙에 따라 만물을 주재하기 때문이자 하나님의 권병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재하는 모든 것에는 인류가 살아가는 물질세계는 물론, 인류 뒤에 있는, 사람이 볼 수 없는 영계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인류가 좋은 생활과 좋은 생존 환경을 원한다면 사람이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세계의 공급 외에, 인류를 위해 생령을 관리하는 영계의 질서 있는 공급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했는데, 이 ‘만물’에 대해 오늘 한 가지 더 알게 되지 않았느냐? (네.)

2.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생사윤회

방금 우리는 첫 번째 부류인 이방인의 생사윤회를 이야기했다. 이제 두 번째 부류인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생사윤회를 이야기해 보자.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생사윤회’라는 주제도 아주 중요하고, 너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이다. 먼저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신앙’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해 보자. 유대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등 5대 종교가 있다. 이방인을 제외하고 이 5대 종교를 믿는 사람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높다. 이 5대 종교에 성직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일반 신도는 많다. 이 각 종교의 신도들은 죽은 다음에 다른 곳으로 간다. 여기서 말한 ‘다른’은 누구와 다르다는 말이냐? 우리가 방금 이야기한 아무 신앙도 없는 이방인과 다른 것이다. 그들은 죽은 후 다른 곳으로, 이방인이 죽은 후 갈 곳과 다른 곳으로 간다. 순서는 똑같다. 영계는 그들이 생전에 한 행위에 따라 그들을 판단하고 각각 달리 처리한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을 다른 곳에 두고 처리하느냐?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예를 들어 설명해 주겠다. 내가 말해 주기 전에 너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들이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믿기 때문이겠지! 적어도 완전한 불신자는 아니잖아.’ 그런 이유가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불교를 예를 들어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겠다. 한 불교도가 있다. 일단 그는 불문에 귀의한 자로, 자신의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불교도가 삭발하고 승려나 비구니가 되면 그것은 속세를 떠나고 인간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그는 매일 독경ㆍ염불하며, 채식을 하고, 등잔불과 함께하는 청빈한 생활을 하며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살아간다. 그의 육의 생명이 끝날 때 그는 자신의 일생을 정리해 볼 것이다. 하지만 죽은 후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모른다. 그는 그냥 맹목적으로 한 가지 신앙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고, 또 맹목적인 소망과 이상(理想)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난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 그의 육의 생명은 그렇게 끝난 것이고, 그런 다음 영계의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 사람이 환생하여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그 사람의 생전 행위와 수행에 달렸다. 평생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곧 인간 세상으로 보내져 두 번째로 윤회하고, 다시 승려나 비구니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육의 생명은 첫 생과 같은 법칙에 따라 수행을 하고, 육의 생명이 끝나 영계로 돌아가면 영계의 검증을 받는다. 검증 후 문제가 없으면 계속해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다시 불문에 입문해 수행을 계속한다. 이렇게 세 번에서 일곱 번의 윤회가 끝나고 다시 영계로, 그러니까 육의 생명이 끝날 때마다 갔던 그곳으로 돌아갈 때, 그의 여러 조건과 인간 세상에서의 행위가 영계의 계율에 부합하면 그때부터는 영계에 남는다. 더는 환생하여 인간이 되지도 않고, 인간 세상에 돌아가 나쁜 짓을 하고 벌받을 위험에 노출되지도 않는다. 다시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영계에 남아 그의 상황에 따라 직무를 하나 맡게 된다. 직무를 맡는 것이 바로 불교 쪽 사람들이 말하는 ‘열반에 든다’는 것이다. 열반에 든다는 것은 주로 영계에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더는 환생하지 않고, 더는 벌받을 일이 없으며, 환생하여 인간으로 살면서 생기는 번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그들이 또 환생하여 동물이 될 가능성이 있느냐? (없습니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윤회하지 않고 영계에 남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관한 하나의 예이다. 그럼 열반에 들지 못한 사람은 어떻겠느냐? 열반에 들지 못한 사람은 영계에 돌아간 후 영계 일꾼의 검증과 확인을 거친다. 그 사람이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불교에서 규정한 대로 성실히 독경ㆍ염불하지 않고 오히려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면, 영계에서는 그의 악행에 따라 판결을 내릴 것이고, 그는 분명 벌을 받게 된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럼 이런 사람은 언제 열반에 들 수 있겠느냐? 어느 생에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봐야 한다. 영계에 돌아가 그 사람이 생전에 나쁜 짓을 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되면 다시 환생하여 독경ㆍ염불하는 청빈한 삶을 보낸다. 살생하지도 않고, 육식하지도 않고, 세상사에 참견하지도 않고, 인간 세상의 번뇌도 멀리하며, 사람들과 어떤 분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아무런 악행도 저지르지 않고 나중에 영계로 돌아가면, 영계에서는 그가 행한 모든 행실을 검증한 후 다시 인간 세상으로 보낸다. 이렇게 역시 세 번에서 일곱 번의 윤회를 거치게 된다. 중간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그는 아무 지장 없이 열반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생사윤회는 이렇게 특별한 부분이 있다. 그들은 ‘열반에 들’ 수 있고, 영계에서 직무를 맡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과 다른 점이다. 우선, 영계에서 직무를 맡을 수 있는 이런 사람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살인이나 방화를 저지르지 않고, 간음하거나 약탈하지 않아야 한다. 남을 속여 재물을 빼앗고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하면 열반에 들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악행에 관련되면 영계에서 내리는 벌을 피할 수 없다. 영계는 열반에 든 불교도를 적절히 배치할 것이다. 어쩌면 불교나 천지신명을 믿는 것 같은 사람을 관리하게 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일정한 범위를 정해 주어 관리하게 한다. 또 어쩌면 이방인만 관리하게 할 수도 있고, 아주 작은 일꾼으로 배치할 수도 있다. 이는 각 영혼의 성격에 따라 분배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한 예이다.

우리가 말한 다섯 가지 신앙에서 기독교는 좀 특별하다. 기독교는 어떤 점에서 특별하겠느냐? 그들은 참하나님을 믿는다. 참하나님을 믿는데 왜 여기에 분류되었느냐? 기독교를 일종의 신앙이라고 한 이상, 그것은 단순히 신앙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의식만 행하는 것이고, 일종의 종교일 뿐이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신앙과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를 5대 종교 범주에 넣은 것은 기독교가 이미 유대교, 불교, 이슬람교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종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한 대다수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는 더욱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성경으로 신학을 가르치고, 신학으로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고생하고 좋은 일을 하라고 가르치기만 한다. 바로 이런 종교이다. 신학 이론만 중시하는 종교이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사역과 아무 관련이 없는 종교이다. 하나님을 따르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종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대하는 데에도 원칙이 있다. 이방인을 대하듯이 임의로 처리하거나 처분하지 않고, 불교도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대한다. 기독교 신도가 생전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엄격히 십계명, 율법과 계명에 따라 행하면서 일생을 보내면, 그들도 똑같은 윤회를 거친 후에야 그들이 말하는 소위 ‘휴거’될 수 있는 것이다. ‘휴거’되면 영계에 남아 직무를 맡고 영계의 일꾼이 된다. 마찬가지로, 만약 살아 있을 때 악행을 저지르고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면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징벌이나 처벌을 받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든다’는 것은 극락세계에 간 것이다. 그럼 기독교에서는 뭐라고 말하느냐? ‘천국에 들어간다’, ‘휴거된다’라고 말한다. 진짜 ‘휴거’될 수 있는 사람도 세 번에서 일곱 번의 윤회를 거친 것이다. 죽은 후 잠든 것처럼 영계로 돌아가는데, 합격이면 남아서 직무를 맡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는 세상 사람들처럼 단순하고 일반적인 윤회를 겪지 않는다.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결말, 그들이 추구하는 결말은 불교의 열반과 표현만 다를 뿐 다 비슷하다. 하나님은 이 몇 개 종교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엄격히 종교적 규율에 따라 행한 사람에게 적절한 종착지나 갈 곳을 마련해 알맞게 처리한다. 이는 극히 합리적이지만 사람의 상상과는 다르다. 그렇지 않으냐? 기독교인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듣고 나니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드느냐? 그들을 위해 불공평함을 호소하고 싶거나 유감스러운 느낌은 없느냐? (조금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들도 자업자득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진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고 실제적이며, 하나님의 사역은 전 인류, 각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거부하는 것이냐? 왜 미친 듯이 대적하고 박해하는 것이냐?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 정도의 결말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 것이다. 너희는 왜 유감스럽다고 생각하느냐? 그들에게는 이런 처분도 이미 관대한 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정도에 따르자면 그들을 멸해 버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을 평범한 종교로 간주해 처리한다. 그럼 다른 종교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모든 종교의 근본 취지는, 많이 고생하고,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좋은 말을 하고, 선한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욕하지 말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시비를 멀리하고,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리가 이러하다. 그러니 신앙을 가진 사람, 즉 모든 종교인들이 엄격히 종교적 규율에 따라 행동하고 사는 동안 과도한 잘못이나 죄를 저지르지 않으며 세 번에서 일곱 번의 윤회를 거치면,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영계에 남아 직무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이 많으냐? (많지 않습니다.) 무슨 근거로 많지 않다고 하느냐? 사람이 좋은 일을 하기란 어렵고, 규칙이나 계율을 지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고기를 먹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너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하면 지킬 수 있겠느냐? 너에게 회색 도포를 입고 온종일 불당에서 독경ㆍ염불하라면 할 수 있겠느냐? 쉽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에는 십계명이 있고 계명과 율법도 있다. 그것들을 지키기 쉬우냐? 쉽지 않겠지? 욕하지 말라는 그 한 가지도 사람은 지키지 못한다. 참지 못하면 욕한다. 뱉은 욕은 주워 담지 못하니 어떻게 하겠느냐? 저녁에 죄를 자백하겠지? 가끔 욕을 하고도 마음속에 계속 증오심을 품고 있고, 더 나아가 언젠가 다시 혼내 주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요컨대, 사람이 죽은 교리대로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나쁜 짓을 하지 않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종교에서 수행하여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너는 각 종교에 사람이 그렇게 많으니 영계에 남아 직무를 맡을 수 있는 사람도 너무 많지 않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의 생사윤회는 대충 이렇다. 특별한 점은 그들이 ‘수행하여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이방인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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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직(正直): 여기서는 정의롭고 솔직하다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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