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하나님의 거룩 (3)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지 교통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교통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해 주겠다. 너희는 열심히 듣거라. 나는 도대체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지 바로 알려 주지 않겠다. 묵상할 시간을 준 후 너희에게 물어볼 것이다. 이런 방식이 어떤가? (좋습니다.) 그럼 너희는 주의 깊게 듣거라.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킬 때, 사람을 광포하고 잔인하게 해할 때, 하나님은 결코 수수방관했던 것이 아니고, 결코 택한 사람을 방치해 두거나 못 본 체 했던 것이 아니다. 사탄이 저지른 그 모든 짓을 하나님은 분명하게, 명확하게 알고 있다. 사탄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조류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며시, 조용히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사역을 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택할 때, 그는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어떤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단지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가 하려는 일을 하고 있었다. 먼저, 하나님은 너를 위해 가정을 선정했는데, 그 가정의 배경이 어떤지, 너의 부모와 조상은 누구인지 하나님은 이미 정해 놓았다. 그러므로 그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위해 가정을 정하고 네가 태어나는 날도 정한 후, 네가 응애응애 울며 태어나고, 옹알옹알 말을 배우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것도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너는 걷고, 뛰고, 말할 줄 알고, 마음을 표현할 줄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에 사탄은 각 사람을 호시탐탐 노려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을 할 때, 그 어떤 인ㆍ사ㆍ물이나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전혀 받지 않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려는 일을 하고 있다. 아마 너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의치 않은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고, 병으로 앓기도 하고 우여곡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어오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너의 생명과 미래를 아주 신중하게 돌보고 너의 일생을 참으로 보장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너의 곁에서 너를 지켜 주고 보살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는 성장하여 새로운 사물을 접촉하기 시작하고 이 세상과 이 인류를 알기 시작하였는데, 일마다 너는 아주 신선하게 느낀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흥미 있는 일을 하기 좋아하고, 자신의 인성대로 살고 자신의 생존 공간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존재는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한 걸음씩 성장하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며, 네가 지식을 배울 때, 과학을 배울 때조차 지금까지 한 발짝도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너는 다른 사람처럼 세상을 알아가고 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취미와 흥미가 생겼으며 원대한 포부도 품게 되었다. 너는 항상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려 본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하나하나 다 보고 계신다. 혹시 너는 네 자신의 지난날을 잊어버렸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너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너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살아가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이 기간에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어떤 사람도 느낀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알려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그 일은 무엇이겠는가? 너희는 알고 있는가? (사람을 하나님 앞에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떤 일로 사람을 하나님 앞에 오게 하는가? 언제 하나님 앞에 오게 하는가? 알고 있는가? 이것이 주요한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가장 중요한 그 일인가? 하나님이 하신 이 일은 한 사람을 구원하는 보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은 사람과 하나님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너희는 알고 있는가? 보아하니, 너희는 이 일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개념도 없는 것 같구나. 그럼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하나님은 네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너에게 많은 일을 하였는데, 그는 전혀 너에게 그런 것들을 일일이 알려 주지도, 알게 하지도 않았고 또한 알려 준 적도 없다. 그렇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한 많은 일들은 그것이 어떤 일이었든, 사람에게 있어서는 다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하려는 가장 중요한 이 한 가지 일은 또 너에게 한 많은 일들의 중요성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각 사람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아마 너희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아 “그 안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이 ‘안전’은 글자 그대로 보면 무엇을 가리키는가? 아마 너희는 그것을 ‘평안’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그것을 재앙도 화도 없이 잘 살아가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내가 말한, 하나님이 하려는 이 일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겠는가? 하나님에게있어서는 무엇이겠는가? 정말로 너희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인가? 지금처럼? 아니다. 그럼 하나님이 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안전’은 바로 네가 사탄에게 삼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일이 중요하지 않은가? 네가 사탄에게 삼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너의 안전과 관계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신변 안전에 관계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네가 일단 사탄에게 먹히면 너의 영혼과 육체는 더 이상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하나님은 더 이상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런 영혼을 포기하고 이런 사람을 포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려는 가장 중요한 일은 너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네가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너희는 왜 말하지 못하는가? 너희는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안전, 곧 사람이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보장한 것 외에 더 많은 사역을 하였다. 즉, 하나님이 한 사람을 택하고 구원하려고 많은 예비 사역을 하였다는 것이다. 우선 네가 어떤 성격일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너의 부모는 누가 될지, 형제자매가 얼마나 될지, 너의 가정 상황과 경제 상황이 어떨지, 가정 조건이 어떨지 하나님은 모두 너를 위해 세심하게 마련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님이 택하려는 사람은 거의 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너희는 알고 있는가? 지위가 높은 가정이 있는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절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적다. 매우 부유한 가정이 있는가? 억만장자나 천만장자가 있는가? 이런 가정은 거의 없다. 그럼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해 준 가정은 대부분 다 어떤 가정인가? (평범한 가정입니다.) 어떤 가정이 평범한 가정인가? 주로 근로자와 농민 가정이다. 근로자는 월급을 받아 생활하면서 먹고 입는 것은 해결할 수 있다. 어쨌든 너는 굶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높은 물질적 요구는 기대할 수 없다. 농민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데, 먹을 양식이 있어 어쨌든 굶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 좋은 옷을 입을 정도는 아니다. 또 작은 상업에 종사하거나 자그마한 장사를 하는 가정도 있다. 어떤 가정은 부모가 지식인인데, 이것 역시 평범한 가정이라 할 수 있다. 또 어떤 가정은 부모가 기껏해야 회사원이나 작은 공무원인데, 이 역시 대단한 가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이는 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다. 즉, 우선 네가 생활하고 있는 그런 환경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물질이 그렇게 풍족한 가정이 아닌데, 이것은 하나님이 너를 위해 선정한 가정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모두 이런 가정의 범위 안에서 살고 있다. 개별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럼 사회적 지위는 어떤가? 대다수 사람들의 경제 상황은 보통이고 큰 사회적 지위도 없다. 직업이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성장이 된 사람이 있는가?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과장급(원문: 小經理)이나 작은 가게의 주인(원문: 小老板) 정도이다. 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건은 보통이다. 또 한 가지는 바로 가정의 생활 환경이다. 우선, 부모의 영향을 아주 크게 받아 점쟁이가 되는 자녀는 없다. 있다고 해도 아주 적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래도 정상이고, 너희들과 비슷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는 동시에 사람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 아주 유익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일은 하늘이 놀랄만한 큰 일이 아니고 그저 살며시, 묵묵히, 조용히 매 한 가지 일을 하고 계시는 것 같지만 사실상,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네가 구원받도록 기초를 다지고 길을 예비해 놓고 여러 가지 조건을 예비해 놓는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은 각 사람을 서로가 다른 시기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그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때이고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된 때이다. 다만 그때, 어떤 사람은 이미 부모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아직 자식으로 있을 뿐이다. 즉, 어떤 사람은 이미 가정을 꾸려 자녀를 두었고, 어떤 사람은 아직 미혼으로, 가정을 이루기 전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은 너를 택하는 때와 하나님의 복음과 말씀이 너에게 임하는 때를 이미 정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을 정해 놓고, 사람을 정해 놓거나 또는 어떤 배경에서 누군가를 보내 너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너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한다. 하나님은 이미 너를 위해 모든 조건을 예비해 놓았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되었고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따라 한 단계 또 한 단계의 하나님 역사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 역사 방식 가운데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게 되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하신 것과 사람에게 주신 것 중에 일단 사람이 누리게 된 것은 최소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인데, 이것은 진실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식은 모두 어떤 것인가? 바로 각종 인ㆍ사ㆍ물을 배치하여 사람에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존재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집에 병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수님 믿으세요.”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각자 어떤 배경하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럼 그 배경은 누가 마련해 준 것인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병자로 인해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어떤 가정은 일가족이 다 믿고, 어떤 가정은 한두 사람만 믿는다. 그러면 믿게 된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병이 있는 것은 맞지만 사실, 병이 있게 된 그 일은 하나님이 하나님 앞으로 오도록 베풀어 준 조건이고 하나님의 은총이다. 어떤 사람은 가정이 늘 순탄하지 않고 평안하지 않은데, 우연한 기회에 누가 “가정이 순탄치 않네요! 예수 믿어 보세요. 예수 믿으면 평안이 있어요!”라고 복음을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자연스러운 환경하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이것이 한 가지 조건이 되지 않았는가? (맞습니다.) 그럼 그의 가정이 평안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아닌가? (맞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믿은 것이다. 네가 어떤 이유로 믿었든, 사실 그것은 다 하나님이 예비해 주고 인도한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다.

처음에, 하나님은 여러 방식으로 너를 택하여 그의 집으로 오게 하였는데, 그것이 시작이고 또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혜이다. 지금 말세 이 단계 사역에 이르러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처음처럼 은혜와 축복만으로 사람을 달래면서 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시대 역사의 기초가 있기 때문이다. 말세의 이 단계 사역에서, 사람은 하나님 역사의 각 방면을 경력(역주: 체험)하였는데, 거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형벌도 보았다. 또한 하나님은 이 기간에 공급하고 부축하며 깨우치고 인도하는 방식으로 사람에게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진리를 점차적으로 깨닫게 하였다. 사람이 연약할 때, 소극적일 때,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권면하여 분량이 작은 사람을 점차 강건하고 적극적이 되게 하며 하나님과 협력하고 싶어 하게 한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때, 사람의 패괴가 유로(역주: 흘러나옴)될 때, 하나님은 조금도 사정없이 사람을 채찍질하고 징계한다. 하지만 사람이 우매하거나 무지할 때, 어리거나 연약할 때에는 관용과 인내를 베풀어 준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여러 가지 역사 가운데서 점차 성장하고 성숙해 가며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또한 진리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되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고 사악과 흑암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계속 사람을 채찍질하거나 징계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관용하고 인내만 베푸는 것도 아니라 사람의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분량, 서로 다른 소질에 근거하여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에게 공급해 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수많은 일을 하였고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그런 대가와 일에 대해 사람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것은 실제로 각 사람에게 구체화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이 실제적이다. 곧,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은혜로 사람은 한번 또 한번의 재앙을 면케 되었고,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으로 인해 한번 또 한번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었다. 또 하나님의 심판 형벌은 사람에게 점차적으로 인류의 패괴를 인식하게 하고 인류의 패괴된 사탄 실질을 인식하게 한다. 이에 사람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공급과 깨우침, 인도로 진리의 실질을 점점 더 깨닫게 되고, 또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생존의 가치와 의의가 무엇인지, 앞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도 점점 더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는가? 하나님은 왜 이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역사하는가? 하나님이 이루려는 효과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보려 하고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 소생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한 이런 방식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과 영을 불러 깨워 사람에게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사람을 인도하고, 부축하고,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는지, 누가 사람을 지금까지 살게 하였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누가 조물주인지, 사람은 마땅히 누구를 경배해야 하는지,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마음을 점차 소생시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하며 구원 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의 애쓰는 선한 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소생할 때, 사람은 더 이상 타락된 패괴 성정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 한다. 사람의 마음이 깨어날 때, 사람은 사탄과 철저히 결별하고 더 이상 사탄에게 잔혹한 해를 받지 않으며, 더 이상 사탄에게 통제되지 않고 더 이상 사탄에게 우롱당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역을 하려고 했을 때 가졌던 처음의 마음이다.

방금 사탄의 사악함에 대해 말했을 때, 각 사람은 사람이 사는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고 아주 불행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말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이런 일을 말했을 때, 너희는 무엇을 느꼈는가?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것과 사람을 위해 세심하게 예비하신 이 모든 것에는 오차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에는 오차가 없다. 즉, 틀림이 없어서 그 어떤 사람이 바로잡을 필요도 없고 참모 역할을 하거나 고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하신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손을 잡아 이끌고 있고 시시각각 돌보면서 전혀 떠난 적이 없다. 사람은 이런 환경과 배경에서 자라난 것이다. 사람은 사실 하나님의 손안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그럼 너희는 아직도 낙담하겠는가? (아닙니다.) 아직도 누군가 소극적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미 인류를 버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인류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위해 애쓰는 선한 마음은 어떤 사람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치른 대가를 알고 하나님에게 감지덕지하라는 조건이나 요구를 하신 적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신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살아오면서 각 사람마다 일생 중에 거의 다 여러 차례 위험한 일이나 시험을 당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네 곁에서 시시각각 너를 노리고 있으면서 너에게 화와 재앙이 임하는 것을 좋아하고, 네가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좋아하며, 또한 너를 사탄의 그물 속에 놓아두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것은 어떤가? 하나님은 시시각각 너를 보호하여 한번 또 한번의 재해와 재난을 피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것, 즉 평안이든, 희락이든, 복이든, 신변 안전이든 사실상 모두 하나님이 장악하고 지배하고 있으며, 각 사람의 일생과 운명을 인도하고 주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사람이 말하는 그런 지위의 개념이 있는가? 너에게 “모든 사람 중에 내가 가장 크다. 내가 너희를 관할하고 있으니 모두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네가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라면서 인류를 이렇게 위협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어떻게 대해도 되고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으니 그렇게 좋게 예비해 줄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 이런 생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렇게 하였는가? (아닙니다.) 반대로 어떻게 하였는가? 하나님은 각 사람을 아주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대하는데, 네가 네 자신을 대하는 것보다 더 책임감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은 빈말을 하지 않고 지위에 앉아 관록을 내세우지 않고, 사람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속이지도 않으며, 실제적으로 묵묵히 그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복과 평안과 희락이고, 가져다주는 것은 사람이 지금 평안하고 즐겁게 하나님 눈앞에 있고 하나님 집에 있는 것이며, 또한 사람의 이지, 사유, 판단, 마음과 생각이 정상이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겉과 속이 다르게 행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식적으로, 듣기 좋은 몇 마디 말로 사람을 좀 속인 다음 내버려 둔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빈 약속을 한 후, 허풍을 떨거나 사람에게 “내가 너를 대신해 이것을 할 수 있고, 네가 저것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라고 말하고 나서 자취를 감춘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간사함이나 거짓도 없다.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다. 하나님이 하신 매사는 다 진실하고 실제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고, 사람이 자신의 일생과 모든 것을 다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하나님에게는 궤사함이 없다. 그럼 하나님을 가장 진실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렇지? 비록 이 단어를 지금 하나님께 적용해 보니 이 단어는 너무나 작고 너무나 인간적인 묘사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은 인류가 가진 언어의 한계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진실하신 분이라고 말하면 그리 적합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잠시 이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자.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진실하신 분이다.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가 말한 이 몇 가지 방면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나님이 인류와 다르고 사탄과 다르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그 어떤 사탄의 패괴 성정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말이 정확하지 않은가? 너희는 이 말에 “아멘”인가? (아멘!) 하나님에게서는 그 어떤 사탄의 사악한 유로도 볼 수 없다. 하나님이 하신 것과 유로하신 것은 사람에 대해 다 유익하고 도움이 되며, 또한 다 공급이고 다 생명이며,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길이고 방향이다. 하나님에게는 패괴가 없다. 또한 우리는 지금 보게 된,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것에서도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인류에게 있는 그 어떤 패괴도 없고 인류에게 있는 그 어떤 패괴 성정이나 사탄의 실질과 유사하거나 똑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이 관점에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패괴 유로도 없다. 하나님이 역사하면서 유로한 것은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다. 그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다는 것을 완전히 실증할 수 있다. 지금 너희는 인식했는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인식함에 있어 일단 먼저 2가지 면에서 보아야 한다. 한 면은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패괴 성정도 없는 것이고, 다른 한 면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사역의 실질로 인해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의 실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실질은 전부 다 긍정적인 것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 사역마다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모두 긍정적인 것이고 사랑이며, 모두 진리이고 실제이다. 우선, 하나님이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한 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닌가? 지혜가 있으라고 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선악을 잘 분별하라고 한 것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의 생존 의의와 가치를 알라고 한 것도 그렇지 않은가? 진리에 근거하여 인ㆍ사ㆍ물의 실질을 간파하라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이런 것으로 도달하게 되는 효과는 바로 사람이 더 이상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고 잔혹한 해를 입지 않고 더 이상 사탄에게 통제되지 않는 것이며, 사람을 사탄의 패괴에서 철저히 벗어나 점차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이 길을 얼마나 걸어왔는가? 말하기 어렵다, 그렇지? 그러나 너희는 지금 최소한, 사탄이 사람을 어떻게 패괴시키는지, 어떤 것들이 사악한 것인지,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것인지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요해가 있게 된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요해가 있으면 너희는 지금 최소한 이미 정확한 길에 들어섰고 이미 진리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고 인생의 광명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 커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에 관하여는 여기까지만 하자. 너희가 듣고 깨달은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말한 하나님의 거룩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묵상해 보아라, 무엇을 하나님의 거룩이라 하는가? 하나님의 진실은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신실은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무사는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낮추심은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을 값없이 베풀어 줬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유로하신 이 모든 것은 다 유일무이한 것이고, 패괴된 인류 가운데는 존재하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과정에서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도 사람이 전혀 볼 수 없는 것이고, 사탄의 실질과 본성에서도 전혀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런 소유소시는 다 유일무이한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만 이런 실질이 있고 하나님 자신만이 이런 실질을 구비하였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하는 말인데, 너희는 인류 가운데서 이렇게 거룩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인류 중에, 너희가 숭배하는 명인, 위인, 우상 가운데 이런 거룩한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절대로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방인들이 말하는 ‘성인(聖人)’은 다 세상 사람을 속이고 명예를 훔친 위군자들로, 가장 교활하고 음험한 마귀 사탄이다.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다. 우리는 지금 오로지 하나님만이 진실로 거룩하고 하나님의 거룩만이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명실상부한 것이고 또한 여기에는 그의 실제적인 면도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한 거룩은 너희가 전에 생각하고 상상했던 거룩과 차이가 있는가? (있습니다.) 그럼 그 차이는 얼마나 큰가? (매우 큽니다.) 너희의 말로 묘사해 보아라, 사람이 늘 말하는 거룩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겉면의 일부 행위입니다.) 행위나 혹은 어떤 것에 대해 묘사하거나 서술한 것을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서 묘사한 ‘거룩’은 도리적인 것이 아닌가? 보기에는 정결하고 아름답고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지만 거룩의 실제 내용은 없다. 사람이 상상하는 거룩은 아무런 실제가 없다. 그 밖에 사람이 생각하는 ‘거룩’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람이 상상하거나 판단하는 ‘거룩’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예컨대, 일부 불교도들이 수련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앉아서 자는 자세로 떠나니, 어떤 사람은 그들이 거룩해져 하늘을 날아다니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 역시 일종의 상상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는 거룩하다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평생 혼인하지 않고 좋은 것을 먹거나 입지 않고 한평생 고난받으면 거룩하다고 여긴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거룩’이란 이 단어의 개념에 대해 단지 일종의 공허한 상상과 이론만 있을 뿐, 실제 내용은 전혀 없고 거룩의 실제에는 더욱 관련되지도 않는다. 거룩의 실질은 진실한 사랑이고 진리, 공의, 광명의 실질이기도 하다. ‘거룩’, 이 단어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적용해야 적합하고 그 어떤 피조물도 거룩하다고 칭함 받을 자격은 없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진실한 거룩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거룩하신 이는 오로지 하나님뿐이다. 이것은 천만 번 지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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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장(省長): 한국의 도지사에 해당함.

②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③요해(了解): 인식하다.

④무사(無私): 이기적이지 않고, 사심이 없는 마음을 가리킴.

⑤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