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하나님의 거룩함(2) (제3부분)

사탄은 위의 몇 가지 방법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킨다. 사람은 지식을 습득하고, 과학적 이론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전통문화에 물든 채로 살아간다. 모든 사람은 전통문화의 계승자로, 사명감을 가지고 사탄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전통문화를 이어 간다. 또한, 사람은 사탄이 만든 사회 풍조에 발을 맞춘다. 사람은 이렇게 사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탄이 하는 모든 일에 항상 협조한다. 그리고 사탄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사악함, 간사함, 악독함, 교만함을 받아들인다. 사탄의 이러한 성품을 갖게 된 후 이 인류 속에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행복하겠느냐, 슬프겠느냐? (슬플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런 것들에 결박당하여 그 속에서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안경을 쓴, 유식해 보이는 사람을 예로 들어 보자. 그는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드물고 입만 열면 청산유수이며 근거가 탄탄하다. 심지어 나이도 지긋하여 다양한 일을 두루 경험해 보았으니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경위와 근거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일의 진위와 이치를 판단할 수 있는 일련의 이론도 갖추고 있다. 심지어는 그의 외모, 행위, 됨됨이, 인격, 인성 무엇 하나 흠잡을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런 사람은 고루하지 않고 오늘날의 사회 풍조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사람, 나이가 들었음에도 사회 풍조에 뒤처지지 않고 평생을 배우는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외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의 내적 본질은 사탄에 의해 완전히 패괴되어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점잖으며, 유식하고, 윤리 의식과 인품을 갖추어 흠잡을 구석이 없어 보이고, 젊은 세대만큼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본성과 본질은 사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완전히 살아 있는 사탄의 모델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켜 거둔 ‘성과’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희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습득한 지식, 사람이 지닌 과학, 사람이 사회 풍조에 발맞추기 위해 선택한 방식, 이 모두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사람은 이렇듯 철저히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이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사람의 행위 역시 비정상적인 데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정상적으로 일하고, 생활하고,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공부하며, 말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언뜻 도덕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좀 익혀 인사를 잘하고, 예의 바르고, 공손하며, 이해심이 많고, 친절하고, 타인을 돕는다. 또 은혜를 베풀고, 계산적으로 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덕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은 내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 본질은 외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 사람은 이런 본질을 지녔기에 무엇이 하나님의 거룩함인지 알지 못한다. 설령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을 공개한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탄이 이미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의 마음과 생각, 관점과 사상을 완전히 점령했기 때문이다. 이 점령과 패괴는 일시적이거나 이따금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3~4년, 5~6년 믿고도 사탄이 주입한 사상과 관점들을 고수하며 보물인 양 끌어안고 내려놓지 못한다. 사람이 사탄에게서 비롯된 사악하고, 교만하고, 악독한 본성에 속한 것을 받아들였기에 사람들 사이에 언쟁과 싸움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고, 서로 마음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사탄의 교만한 본성이 초래한 것이다. 사탄이 사람에게 긍정적인 것을 가져다주었다면, 예를 들어 사람이 유교와 도교와 같은 전통문화를 수용했을 때, 그런 것들이 좋은 것이라면 이를 받아들인 사람들끼리 마음이 잘 통해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똑같은 것을 받아들이고도 더 심하게 분열하겠느냐?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러한 것들은 사탄에게서 비롯되었고, 사탄은 분열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사탄에게 속한 것이 겉으로 그럴싸하고 위대해 보여도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 그리고 살아 내게 한 것은 다 교만하고 간사하고 사악한 본성이다. 그렇지 않으냐? 아무리 위장에 능하고, 지식이 풍부하고, 가정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라도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을 감출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몹시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 네 생각에 성인(聖人) 같은 사람이나 완벽해 보이는 사람, 천사 같은 사람이라도, 네가 그를 아무리 깨끗하게 생각할지라도 그들의 삶 이면에서, 그들의 성품에서 드러나는 본질을 보면 다 무엇이더냐? 완전히 사탄의 사악한 본성으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주변에서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사람이나 우러러보았던 우상을 예로 들어 보자. 현재의 네 분량으로 보면 그를 어떻게 평가하겠느냐? 우선 너는 그에게 인성이 있는지, 정직하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언행이 사람들에게 덕이 되고 도움이 되느냐? (아닙니다.) 그가 드러낸, 소위 말하는 선량함, 사랑, 훌륭함은 무엇이냐? 모두 위선과 허상일 뿐이다. 그러한 허상 뒤에는 자신을 우상으로 떠받들게 하려는 은밀하고 사악한 목적이 숨어 있다. 이제 확실히 간파했느냐? (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이런 방법들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이냐? 거기에 긍정적인 것이 있겠느냐? 우선, 사람이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 이 세상의 위인이나 잡지 같은 것에서 언급한 선과 악이 정확하겠느냐? 올바르겠느냐?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겠느냐? 진리가 담겨 있겠느냐? 이 세상과 인류가 진리의 기준에 따라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가늠하고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왜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겠느냐? 그렇게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과학을 이해하게 됐으면 능력도 대단하지 않겠느냐? 어찌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도 분별하지 못하겠느냐? 무엇 때문이겠느냐? (사람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지식은 모두 진리가 아닙니다.) 사탄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사악함과 패괴일 뿐, 진리, 생명, 길이 없다. 사탄은 사람에게 이런 사악함과 패괴를 가져다주었는데, 사탄에게 사랑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이 인류에게 사랑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노숙자를 돕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 아닙니까? 선을 행하는 자선 단체도 있습니다. 그것은 선행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사탄은 온갖 방법과 학설로 사람을 패괴시킨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다는 것이 모호한 개념이냐? 모호하지 않다. 사탄도 이 세상과 사회에서 어떠한 관점, 학설을 제창하며 실제적인 일들을 하고, 각 연대, 각 시기마다 학설을 제창하며 사람에게 사상을 주입한다. 이런 사상과 학설은 사람의 마음에 차츰 뿌리를 내리고, 그러면 사람은 그런 학설과 사상들에 의존해 살게 된다. 사람이 그런 것들에 의존해 살아가면 사탄으로 변하지 않겠느냐? 사탄과 하나가 되지 않겠느냐? 사람이 사탄과 하나가 되면 결국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되겠느냐? 사탄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하지 않겠느냐? 이를 인정하기는 두려운가 보구나. 그렇지 않으냐? 더없이 무서운 일이다! 어째서 사탄의 본성을 사악하다고 하겠느냐? 사탄이 저지른 일과 드러낸 것에 따라 그것을 규정하고 해부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사악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저 말로만 사탄이 사악하다고 한다면 너희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사탄은 사악한 존재입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탄이 어떤 면에서 사악하냐?”라고 물으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니 사악하지요.”라며 얼버무릴 것이다. 지금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니 사탄의 사악한 본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이해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사탄의 사악한 본성을 정확히 간파하면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 너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말해 보아라.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에 대해 교통할 때, 사탄의 사악한 본질을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그렇습니다.) 왜 그러하냐? (사탄의 사악함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부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냐? 그 말도 반은 맞다. 즉, 사탄의 사악함 없이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 수 없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탄의 사악함으로 부각되어 드러난다고 한다면, 이 말이 옳겠느냐? 이렇게 변증하듯 하는 말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 고유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함으로써 무엇이 발현되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로, 줄곧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고, 하나님 자신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다. 다만 사람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은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거룩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지 더더욱 알지 못한다. 그러니 먼저 사탄의 사악한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왜 항상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법과 사탄의 사악한 본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런 의문이 해소되었느냐? 사람이 사탄의 사악함을 분별하고, 이를 정확히 정의하여 사악함의 구체적인 내용과 태도, 근원과 본질을 모두 똑똑히 본 후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논해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이고, 이것이야말로 거룩함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거나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사탄의 사악함을 언급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은 사회 안에서나 인류 가운데서 사람이 행한 일,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 중에도 거룩함과 연관된 것이 있다고 착각한다. 이는 잘못된 관점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나는 방금 이렇게 사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희는 지난 몇 년간의 체험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함으로써 그의 거룩함에 어떤 인식을 갖게 되었느냐? 이야기해 보아라. 듣기 좋은 것만 골라 말하지 말고 너 자신이 체험한 것을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거룩함이 하나님의 사랑만 가리키더냐?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 거룩하다고 할 수 있더냐? 그러면 지나치게 단편적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사랑 외에도 다른 본질을 가지고 있다.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명절, 풍속, 미신들을 혐오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것을 혐오한다는 의미이냐? 그럼 하나님의 거룩함은 도대체 무엇이냐? 하나님의 거룩함은 실질적인 내용이 없고 혐오뿐인 것이냐? 너희는 하나님이 사악한 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는 추리 아니더냐? 일종의 추론, 판단이 아니더냐?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을 알아 가는 데 있어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실제에서 벗어나 이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피해야 할 것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추리와 상상입니다.) 그 역시 가장 피해야 할 것들이다. 추리와 상상이 필요 없는 이유는 무엇이냐? 네가 추리한 것과 상상한 것이 실제로 본 것이더냐? 하나님의 참된 본질이더냐? (아닙니다.) 그럼 또 무엇을 피해야겠느냐?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의 본질을 나열하거나 묘사하는 것을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런 것은 허풍 아니겠느냐? 헛소리 아니겠느냐? 판단과 추리도 헛소리이고,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 것도 헛소리이다. 근거 없는 찬미도 헛소리 아니겠느냐? 그럼 하나님이 그런 헛소리를 들으면 즐겁겠느냐? (아닙니다.) 듣기 괴롭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이끌고 구원하는데, 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듣고도 그 의미를 모른다. 누군가 “하나님이 좋습니까?”라고 물으면 “좋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얼마나 좋습니까?”라는 물음에는 “너무너무 좋습니다!”라고 답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사랑하십니다!”라고 대답한다.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묘사해 보십시오.”라고 하면 “아주아주 사랑하십니다! 하늘만큼 땅만큼이요!”라고 대답한다. 이는 헛소리 아니더냐? 이 헛소리는 너희가 아까 이야기한 “하나님은 사탄의 패괴 성품을 증오하시기 때문에 거룩합니다.”라는 말과 비슷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럼 너희도 헛소리를 한 것 아니겠느냐? 헛소리는 주로 어디에서 비롯되느냐? (사탄에게서 비롯됩니다.) 헛소리는 주로 사람의 무책임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불경 아니겠느냐? 지식을 조금 습득했다고, 추리와 논리를 약간 알게 되었다고 여기에 모두 적용했다. 그것도 하나님을 아는 데에 적용했으니 하나님이 듣고 괴롭지 않겠느냐? 너희는 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이냐? 듣기만 해도 거북하지 않으냐?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을 언급할 때는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알게 된 것만큼 이야기하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며, 실제를 이야기해라. 빈말을 하지 말고 아부를 떨지 마라. 이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사탄은 성품이 교만하여 사람이 자신에게 아부하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인류가 배운 사탕발림을 총동원하여 비위를 맞춰 줘야만 만족하고 기뻐한다. 반면 하나님은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칭찬과 아첨을 원하지 않으며, 사람이 무턱대고 하는 허튼소리, 근거 없는 찬미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찬미와 아부를 혐오하여 아예 듣지도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은 일부 사람들의 가식적인 찬미, 터무니없는 서원과 기도를 전혀 듣지 않는다. 너는 네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인식하지 못했다면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고, 인식했다면 실제적인 말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실제로 어떤 내용이 포함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있느냐? (패역을 드러냈을 때, 과오를 범했을 때, 저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았습니다. 또한, 제 뜻에 맞지 않는 환경에 처하여 이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하나님은 대가를 아끼지 않고 저희를 구원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매우 실제적인 말이자 참된 깨달음이구나. 다른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제가 올바르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탄이 말로 하와가 죄짓도록 유인한 것과 예수님을 시험한 것에서 사탄의 사악함을 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일러 주신 것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매우 직설적이고, 깨끗하며,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들은 몇 사람의 말 중에 누구의 말에 아멘을 하게 되느냐? 누구의 교제가 오늘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주제에 더 가깝고 실제적이냐?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자매의 교제가 어떠하냐? (좋습니다.) 너희는 자매의 말에 아멘을 했는데 어떤 말이 핵심을 찔렀느냐? (방금 자매님이 한 말에서 저는 돌려 말하는 사탄의 화법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직설적이고 솔직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볼 수 있다는 부분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한 측면이다. 이 말이 맞는 말이냐? (네.) 아주 좋다. 너희가 두 차례 교제를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은 것 같구나.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것은 아주 깊은 공과여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도, 한두 마디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갖가지 패괴 성품, 지식, 철학, 사람의 사상과 관점, 그리고 사람에게 원래 있는 갖가지 측면은 하나님의 본질을 알아 가는 데에 굉장히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 주제를 들으면서 잘 모르겠거나 이해가 안 되거나 실제 상황과 연관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너희의 인식을 들어 보니, 너희가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관한 내 말과 교제의 내용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너희 마음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을 알고자 하는 소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더 기쁜 것은 몇몇 사람들이 이미 가장 간단한 말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인식을 묘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나도 언급한 적이 있는 매우 단순한 말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인정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마음속에 이 말을 새긴 이들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이는 바람직한 시작이다. 또한, 나는 너희가 심오하다고 느끼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 더 많이 묵상하고 교제를 했으면 한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향후 누군가 너희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줄 것이다. 일단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많이 교제해라. 교제를 함과 동시에 성령이 역사하여 더 많은 것을 일깨워 줄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알고 이를 이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생명 진입에 매우 중요하다. 이를 간과하지 말고 장난으로 여기지도 마라.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근본이고, 진리를 추구해 구원받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고 문구와 이치로만 살아간다면, 소위 말하는 진리의 표면적인 의미대로 행하고 살아간다고 한들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즉,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한다면 너의 믿음은 제로이고 실제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도록 하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2014년 1월 4일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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