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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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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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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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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에 대한 주제로 교통하였다. 교통 후에 너희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는 바가 생기지 않았느냐? 그 이해와 인식의 정도가 얼마나 되느냐? 너희는 속으로 알고 있지 않느냐? 지난 몇 차례의 교통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그런 이해가 있다고 해서 너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과연 너희가 하나님의 본질 전체와 속성까지 인식하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는 확실하다. 왜냐하면, 지난 몇 번의 교통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대해 이해한 것은 전부가 아닌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 몇 번의 교통을 통해 하나님이 일찍이 행했던 사역의 일부에 대해 이해하고, 또 그런 이해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 그리고 하나님이 매사에 취하는 태도와 생각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문자나 말로만 이해한 것일 뿐, 그 내용에 과연 실제적인 부분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 내용의 실제적인 부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주로 무엇에 의해 결정되느냐? 그것은 사람이 실제 경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체험했는지, 실제로 얼마나 보고 얼마나 알게 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들이 있느냐? “지난 몇 차례의 교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행한 사역, 하나님의 생각을 다 이해했고, 더 나아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사역의 출발점 그리고 일하는 원칙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전부를 이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느냐? 확실히 그렇지 않다. 왜 맞지 않다고 할까? 하나님이 행한 사역, 하나님이 한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며, 또한 하나님의 속성이 발현된다.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그저 그런 사역과 말씀으로 하나님의 일부 성품과 속성만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더 많이 더 깊게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더 많은 말씀과 사역을 체험해야만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그 일부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을 대표하지 않느냐? 하나님의 본질을 대표하지 않느냐? 물론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을 대표하며, 하나님의 본질도 대표한다. 이것은 확실한 것이다.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역하고 어떤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며, 어떤 방식으로 그의 마음을 표현하든, 그가 나타내고 보여 주는 것은 다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며, 다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속성으로 사역하고, 자신의 진정한 신분으로 사역하는 것은 더없이 확실하다. 하지만 사람이 현재 그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교통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일부를 이해하는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 이 일부는 이론적인 인식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실제 상황으로 볼 때, 사람마다 실제 경험 속에서 조금씩 체험해야 오늘 듣고 보게 된 것이나 마음으로 인식하고 깨달아서 얻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입증할 수 있다. 만일 내가 너희와 이러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체험만으로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겠느냐? 그것은 아마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만 사람이 어떻게 경험할지 알게 되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먹었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길을 이끌고 사람이 경험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번 몇 차례에 걸친 교통은 진실된 체험이 있는 사람이 진리를 더 깊이 깨닫고, 더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된 체험이 없는 자, 혹은 막 체험하기 시작한 자, 이제 막 실제적인 것을 접한 자에게는 커다란 검증이 될 것이다.

지난번 교통했던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이야기한 모든 내용 중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부분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지난 몇 번의 교통을 통해, 너희는 그러한 사역을 할 수 있고, 그러한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분은 만물을 주재하는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느냐? 만일 너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너희는 무엇을 통해 그것을 확신한 것이냐? 몇 가지 측면에서 인정한 것이냐?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지난 몇 번의 교통의 내용에서 확실히 너희 마음이 움직여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마음속에서 새롭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는 참 긍정적이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이전에 비해 장족의 발전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신분에 대한 너희의 정의는 여전히 율법시대의 여호와 하나님과 은혜시대의 주 예수의 이름에 머물러 있다. 또한, 하나님나라시대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라는 이 주제에 대한 교통을 통해, 너희에게 하나님이 이전에 했던 말씀, 행했던 사역, 나타내 보인 속성에 대한 일련의 이해가 생겼다 할지라도, 너희는 ‘하나님’이라는 이 명사에 대해 제대로 된 정의와 확실한 자리매김은 할 수 없다. 하나님 자체의 지위와 신분이 바로 전 우주와 만물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지위라는 것에 대해서도 너희는 제대로 된 자리매김과 정확한 인식이 없다. 왜냐하면 이전에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에 대해 교통한 모든 내용은 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일찍이 보여 주고 나타냈던 것에 기초한 것이고,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동시에, 혹은 이외에 하나님이 나타내고 보여 준 속성은 다 사람이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이 이전에 행한 사역에서 나타낸 속성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에 대해 너희가 내린 정의는 여전히 유일무이한 하나님,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과는 거리가 있고, 창조주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번의 교통을 통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는가? 만일 누군가 정말 안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일 것이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생각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만이 또 자신이 사역할 때의 자세와 출발점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가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하나님의 사역으로부터 그것이 확실히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고 사람의 사역이 아니며,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느냐? 또 이 모두가 하나님의 본질과 능력을 지닌 그분이 주재할 수 있는 것임을 볼 수 있느냐? 즉, 너희는 어떠한 특징과 본질로써 그가 바로 하나님의 신분을 갖고 있는 하나님 자신이고,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느냐? 너희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가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실을 말해 준다. 지난 몇 차례의 교통을 통해, 너희는 단지 하나님이 예전에 사역했던 그 기간의 역사(歷史)와 하나님이 이전의 사역에서 취했던 태도, 나타내고 보여 주었던 것에 대해 조금 이해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또한 그런 이해를 통해, 사람은 확실하게 그 두 단계의 사역을 행한 분이 바로 너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너희가 영원히 따라야 할 그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너희는 그가 바로 창세 이래로 존재하고 영원까지 존재하는 그 하나님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없으며, 그가 바로 전 인류를 인도하고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 또한 확신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너희는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도 좋고, 주 예수도 좋다. 너희는 어떤 측면의 본질과 구현을 통해, 그가 바로 너희가 따르려고 하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인류를 관장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더욱이 천지 만물을 주재하는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너희는 어떤 경로를 통해 너희가 믿고 따르는 분이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어떤 루트를 통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하나님과 함께 연관시킬 수 있느냐? 무엇을 통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천지 만물 가운데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하느냐? 이것은 바로 내가 이제 얘기할 주제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너희가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 혹은 생각할 수 없었던 문제는 아마도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사람이 짐작할 수 없는 진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가 너희 앞에 맞닥뜨리게 되어 너희가 직면해야 하고 선택해야 할 때, 만일 너희의 우매함과 무지함으로 인해, 혹은 너희의 경험 부족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들이 철저하게 해결되지 못하면, 그 문제들은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복병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이 부분에 대한 교통이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본다. 너희는 이제 너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느냐? 내가 말하는 문제를 확실하게 이해했느냐? 이러한 문제들은 너희가 직면해야 할 문제들이 아니냐? 너희가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 너희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문제가 아니냐? 이러한 문제가 너희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으냐? 진정한 문제가 아니냐? 너희 마음속에 이러한 일에 대해 모호하다는 것은 너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너희에게 그에 대한 진지한 태도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무엇을 증명할 게 있겠습니까? 설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해 봐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하나님 자신의 신분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 한단 말입니까?” 너희가 이렇게 생각하든 안 하든, 요컨대, 내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고자 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시험하게 함도 아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함도 아니다.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지위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자 함이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유일한 존재가 되게 하고, 또한 모든 피조물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지위(창조주, 만물의 주재자,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를 회복하고자 함이다. 이 또한 내가 다음으로 교통하고자 하는 주제인 것이다.

이제 다음의 성경 구절을 읽어 보자.

1.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다

1) (창 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2) (창 1:6~7)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3) (창 1:9~11)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4) (창 1:14~15)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5) (창 1:20~21)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6) (창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첫째 날, 인류의 낮과 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세워지다

우선 첫 번째 단락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3~5). 이 단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하면서 행한 첫 번째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낸 첫 번째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던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평범하지 않은 하루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위해 빛을 예비하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 이날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그의 말씀과 권능은 공존한다. 그의 권능은 만물 가운데서 나타났고, 그의 능력은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만물 가운데서 펼쳐졌다. 이날부터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권세,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권세,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운행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빛이 있으라”, 이 말씀이 있자 ‘빛’이 생겼다. 하나님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사람이 여전히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에 의해 낮이라 명명된 ‘빛’이다. 하나님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자신의 본질과 가치를 바꿔 본 적이 없다. 또한 사라진 적도 없다. 그것의 존재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고 있고, 또한 창조주의 존재를 알리고 있으며, 반복적으로 창조주의 신분과 지위를 입증하고 있다. 그것은 공허하지도 아득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진짜로 볼 수 있는 빛이다. 이로부터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모호함으로 뒤덮인 이 세계에 첫 번째 물질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빌어 만물이 만들어진 첫 장면에 출현하였다. 이어서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 …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변화되고 이루어졌다. …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명명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만들고자 한 세계의 첫 번째 저녁과 첫 번째 아침이 생겨났으며, 하나님은 이날을 첫째 날이라 칭하였다. 이날은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한 첫째 날이며, 또한 만물 창조의 시작이고,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이 그가 만든 이 세계에서 첫 번째로 나타난 날이다.

이 단락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고,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준다. 하나님만이 이러한 능력을 지녔으므로, 하나님만이 이러한 권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이러한 권세를 지녔기에 하나님만이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누가 그 어떤 것이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갖출 수 있겠느냐? 너희 마음속에 이에 대한 답이 있느냐? 하나님을 제외하고,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이 이러한 권능을 가지고 있느냐? 너희는 어떤 책이나 간행물에서 이러한 사례를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가 유사 이래로 천지를 창조한 기록이 있느냐? 이것은 책이나 어떠한 기록에도 없으며, 물론 성경에서도 이것은 유일한 기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 창조에 관한, 위세가 드높고 권능과 위력을 지닌 말씀인데, 이 부분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능을 대표하며,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신분을 대표한다. 이러한 권세와 능력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냐? 그것은 하나님 자신만이 지닌 권세와 능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권세와 능력은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며 대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만의 한 특징이 아니냐? 이것을 너희는 보았느냐? 이 부분의 말씀을 통해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권세와 유일무이한 능력을 가졌고, 지극히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졌다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상의 교통을 통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냐?

둘째 날, 하나님이 권능으로 물을 지배하고 궁창을 창조하사,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공간이 만들어졌다

계속해서 두 번째 단락의 성경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6~7).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말씀한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느냐? 성경에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뉘게 하시매”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일을 하자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바로 이 단락의 마지막 말씀이다. “그대로 되니라”.

짧은 이 두 구절에 기세가 웅장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인류의 생존 공간을 창조하였는지, 이 놀라운 위업, 멋진 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

이 장면에서 물과 궁창은 순식간에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갈라졌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위와 아래로 나누어졌다. 즉, 하나님이 창조한 궁창이 아래쪽 물 위를 덮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위쪽 물까지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여기서 창조주가 물을 움직이고 물을 다스리고 궁창을 창조한 장관이나 하나님이 보여 주는 권능의 위력은 놀랍고 찬미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말미암아 또 한 번의 위업이 달성되었다. 이것이 창조주 권능의 위력이 아니겠느냐?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행사를 해석해 보자.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물 가운데에는 그의 말씀에 따라 궁창이 생겼고, 아울러 이 공간에는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이 변화는 일반적 의미의 변화가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일종의 교체로서, 그것은 창조주의 생각으로 생겨난 것이다. 창조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인해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고, 그때부터 그것은 창조주를 위해 존재하고 세워지며, 창조주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며 새로워진다. 이 단락에서 기록한 것은 창조주가 행한 천지 창조의 두 번째 사건으로서,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이 또 한 번 발현된 것이자 창조주의 위업이다. 이날은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며 보낸 둘째 날이자, 창조주가 보낸 또 하나의 멋진 하루였다. 하나님이 빛 속을 거닐며 궁창을 가져오고 모든 물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날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능력이 운행되었다. …

하나님이 말씀하기 이전에 물 가운데 궁창이 있었느냐? 물론 없었다!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고 말씀한 후에는 어떠했느냐? 하나님이 원하던 것이 나타나 물 가운데 궁창이 생겼고, 물 또한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위아래로 나뉘어졌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만물 가운데에 신선하고 새로운 두 가지 사물이 출현하였다. 그러면 그 두 가지 새로운 사물의 출현에 대해 너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 창조주 능력의 위대함을 느꼈느냐? 창조주의 유일무이하고 비범한 기개를 느꼈느냐? 그러한 기개, 그러한 능력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권능은 하나님 자신의 대언이자,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징인 것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너희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감명 깊게 느끼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너무 부족한데,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그의 본질이 그 어떤 피조물의 본질과도 다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이 비범하고 무한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며 모든 것의 위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권능과 속성(원문: 所有所是)이 생명과 기적을 만들 수 있고, 멋지고 특별한 매 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주관하며, 자신이 만든 기적과 일분일초의 매 순간을 주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날,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겨났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생기로 가득 찼다

계속해서 다음 단락 〈창세기〉 1장 9절에서 11절 말씀의 첫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만 했을 뿐인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느냐? 빛과 궁창 이외에 그 공간에 또 무엇이 생겼느냐? 성경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는 바로 그 공간에 또 육지가 생기고 바다가 생긴 것, 다시 말해 물과 육지가 나누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 한마디에 ‘그대로 되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던 기간에 바쁘게 보냈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하나님이 손을 댔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한 것일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새로운 사물이 생겨나게 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루었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이상의 세 구절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큰 사건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나고 생겨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순차적으로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났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이루어지라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세워지라 명하면 그대로 세워진다.”라는 이 말씀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이 본질은 하나님의 생각이 시작되던 그 순간에 증명되었으며, 하나님이 말씀하는 가운데 충분히 구현되었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겨났다. 순식간에, 형태가 각각인 여린 작은 생명들이 흙 속에서 꼬물꼬물 올라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몸에 묻은 흙을 채 털어 내기도 전에 너도나도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 모두가 만물의 일원임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 각자의 생명을 바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땅에는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났고, 사람들에게 제공될 각종 채소가 흙을 뚫고 무럭무럭 자라났으며, 산과 들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숲이 울창하였다. …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밋밋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풀, 채소와 나무 등 각종 식물들로 둘러싸여 초록빛을 한가득 머금게 되었다. … 공기는 풀꽃 향기로 그윽하고, 흙 내음이 물씬 풍기며, 각종 식물들은 공기를 통해 숨을 쉬면서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에 따라 모든 식물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싹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일련의 생명 여정을 시작하였다. 각자 생명의 궤적을 지키며, 만물 중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 그들은 모두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고,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창조주에게서 계속 자양분을 공급받을 것이고,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 곳곳에서 강인하게 살아갈 것이며,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력을 영원히 세상에 알릴 것이다. …

창조주의 생명은 비범하고 그의 생각은 비범하며 그의 권능은 비범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이 있자 최후의 결과는 늘 “그대로 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손댈 필요 없이, 생각으로 지휘하고 말씀으로 명령하기만 하면 일은 곧 그대로 되었다. 그날 하나님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 뭍이 드러나게 한 다음, 뭍에 풀이 자라나게 하였고,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도 자라게 하였으며, 그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분류하고 열매마다 씨를 품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이루어져 계속해서 이 새로운 세상에 나타났다.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그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그 그림의 내용을 말씀으로 표현할 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의 권능을 어떻게 행사하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변화되었다. 그 모든 변화와 발전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고, 또한 창조주 생명력의 비범함과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단순한 구상도, 공허한 그림도 아니며, 생명력과 엄청난 능력을 지닌 권능이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소생시키고, 새롭게 하고, 소멸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다 그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동시에 그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만물이 아직 생겨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이미 완전한 구상과 아주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셋째 날 땅에 각종 식물들이 자라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계속 말씀으로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사물을 만들었다. 그는 말씀하고 명령하고 그의 권세를 행사하고 그의 능력을 보이고자 하였으며, 자신이 만들고자 한 만물과 인류를 위해 구상한 모든 것들을 예비하고 있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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