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제2부분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떤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될까? 우선 나는 일부 성경 구절들을 찾아 놓았다. 다음 자료들은 성경에서 발췌한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이라는 주제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을 아는 데 있어 참고 자료로 삼으라고 내가 특별히 찾은 것들이다. 여기서 이 구절들을 함께 나누며 과거 하나님이 사역을 행하면서 어떤 성품을 나타냈는지, 하나님의 어떤 본질들을 사람이 모르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오래된 구절들이지만, 우리가 얘기하려는 주제는 사람이 알지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 노아를 언급하는 건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것 아닌가 싶어 의아하게 느낄 수도 있다.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이 성경 구절들은 오늘 나눌 주제와 관련해 매우 유익하다. 이 구절들은 오늘 나눌 주제의 교재이자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내 교제가 끝나면 너희는 내가 이 구절들을 선택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은 이 말씀들을 본 적이 있을 테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을 수 있다. 일단 말씀들을 대략적으로 훑어본 뒤 다시 구체적으로 교제해 보자.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선조다. 성경 속 인물을 말하라면 먼저 이 두 사람을 언급할 것이다. 그다음 인물은 노아다. 노아는 인류의 두 번째 선조다. 보았느냐? 세 번째 인물은 누구냐?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에 대해 너희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 아는 사람도 있고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인물은 누구냐? 소돔이 멸망한 이야기에서 누가 언급되었느냐? (롯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롯을 언급하지 않았다. 누구를 언급했느냐?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과 관련한 이 이야기에서는 주로 여호와 하나님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언급했다. 보았느냐? 다섯 번째 인물은 누구냐? (욥입니다.) 이 단계의 사역에서 하나님은 욥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언급하지 않았느냐? 그럼 너희는 이 이야기에 관심이 많겠지? 관심이 많다면 너희는 성경 속 욥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세히 읽어 본 적이 있느냐? 욥이 어떤 말들을 했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 아느냐? 많게는 몇 번이나 읽었느냐? 자주 보았느냐? 홍콩의 자매가 말해 보아라. (전에 은혜시대 때 한두 번 읽었습니다.) 그 뒤로는 다시 읽은 적이 없느냐? 참으로 안타깝구나!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욥을 수차례 언급했는데, 여기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수차례 언급했는데도’ 너희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너희는 좋은 사람이 되거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일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언급한 욥의 이야기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이야기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만 만족할 뿐, 욥에 관한 자세한 내용과 하나님이 욥을 수차례 언급한 의도에는 관심도 없고 알아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정한 이런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너희는 대체 무엇을 중시하느냐? 하나님이 언급한 이렇게 중요한 인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고 알아보려 하지 않는데,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태도인 것이냐?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니냐? 이는 너희 대다수가 실제적인 것에 힘쓰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 하나님이 언급하는 인물과 이야기에 대해 충분히 주목할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든 없든, 바로 알아본 다음 본받으려고 애쓸 것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태도다. 하지만 여기 앉아 있는 너희 중 많은 사람이 욥의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없다니, 문제를 잘 보여 주는구나.

우리가 방금 언급한 주제로 돌아가 보자. 구약의 율법시대와 관련된 성경 말씀 중 나는 주로 몇몇 인물의 이야기를 골랐다. 이 이야기들은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상당히 귀에 익을 것이다. 이 인물들은 대표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한 사역과 그들에게 한 말씀이 지금 사람들에게도 와닿고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이야기들과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하나님이 당시 어떻게 사역했고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구절들을 찾은 목적은 이 이야기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인물들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님의 행사와 성품을 알게 하여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하나님의 진정한 일면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너의 상상을 멈추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멈추며,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신앙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다. 아무 근거도 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 자신을 이해하고 알라고 하면, 너는 막막하고 무력하고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고, 이 방법과 경로를 통해 너희가 하나님을 더욱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진실하게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존재를 절실히 느끼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절실히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에게 유익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너희는 이제 이 이야기들과 성경 구절들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느냐? 내가 선별한 구절들이 쓸데없다고 느껴지느냐? 나는 방금 너희에게 언급한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너희에게 이런 인물의 이야기를 보라고 하는 목적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사역했고, 인류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어떤지 알게 하기 위함이다. 무엇을 통해 알게 하려는 것일까? 하나님이 과거에 했던 사역에 현재 하고 있는 사역을 결합하여 하나님에 관해 소상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 소상한 내용들은 진실들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다.

먼저 ‘아담과 하와’와 관련된 일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일단 성경 말씀을 읽도록 하자.

1. 아담과 하와

(1)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

(창 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와 관련된 말씀에서 너희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이 말씀에서 너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 왜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와 관련 있는 이 말씀을 골랐을까? 너희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아담의 그림이 떠오르느냐? 상상해 보아라. 너희가 그 입장이라면 너희 마음속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이 장면은 너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느냐? 이건 감동적이고 따뜻한 장면이다. 이 장면 속에는 하나님과 사람만 있는데, 양자의 친밀한 관계는 사람의 부러움을 자아낸다. 하나님의 차고도 넘치는 사랑이 아무 대가 없이 주어져 사람을 에워싸고 있다. 사람은 순진무구하고 근심 걱정 없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염려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고 있다. 사람의 모든 언행은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이후 사람에게 한 첫 번째 당부라고 할 수 있다. 이 당부에는 어떤 것이 담겨 있을까?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인류에 대한 그의 걱정이 담겨 있다. 이는 하나님의 첫 번째 당부이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걱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그 순간부터 인류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 책임은 무엇일까?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그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를 바랐는데, 이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바람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런 바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단순한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사람을 염려하기 시작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만물 중 오직 아담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생기를 가진 생령이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런 당부를 한 것이다. 이 당부에는 사람이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담겨 있었고, 하나님은 이 부분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했다.

이 단순한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어떤 마음을 볼 수 있느냐?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 있지 않으냐? 염려가 있지 않으냐? 이 말씀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염려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절실히 와닿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내 말을 듣고도 너희는 이 말씀이 단순하게 느껴지느냐?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겠지? 그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느냐? 만일 하나님이 직접 너에게 이 몇 마디 말씀을 했다면 너는 어떤 느낌을 받았겠느냐? 만일 네가 인성이 없는 사람으로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면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네가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너는 따스함을 느낄 것이고 하나님의 염려를 느낄 것이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이런 느낌을 받을 때 너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까? 하나님을 그리워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경애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느냐? 네 마음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사실, 하나님은 이 단계 사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말씀을 많이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지금의 사람 중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너희는 내가 방금 언급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느냐? 너희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진실하며 현실적인 하나님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로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교제하자.

(2)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창 2:18~20)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와 관련된 구절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말씀이 있다. 너희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어라.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말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준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만든 뒤 아담이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느냐? 글자를 알았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뒤에 아담은 각종 생물을 보고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았느냐? 하나님이 아담에게 각종 생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느냐? 물론 각종 생물의 이름을 짓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각종 생물들에게 어떤 이름을 어떤 식으로 지어 주어야 할지를 알았을까? 이는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 때 아담에게 어떤 것을 더해 주었냐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는데, 위의 사실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의 지혜를 더해 주었음을 증명해 준다. 이것이 핵심이다. 너희는 새겨들어야 한다! 또 한 가지 핵심이 있는데 이 역시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담이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으면 하나님 편에서는 그 생물들의 이름을 확정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내가 꼭 설명해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그의 지혜와 능력, 소유와 어떠함도 주었다. 하나님에게서 이런 것들을 받은 사람은 독립적으로 일을 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고 행한 것들이 하나님 보기에 좋으면 하나님은 열납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사람이 일을 올바르게 하면 하나님은 그 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각 생물의 이름을 고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부른 대로 하나님은 ‘인정’해 주어 그 생물의 이름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다른 의견이 있었을까? 없었다. 이것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준 지혜를 가지고 일을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이 긍정적인 일을 행했다면, 그 일은 하나님 편에서 긍정되고 인정받고 열납된다. 하나님은 아무런 평가나 비판도 하지 않는다. 이는 어떠한 인류도, 어떠한 악령이나 사탄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하나님이 나타낸 성품을 보았느냐? 사람이라면, 패괴된 사람 혹은 사탄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신 앞에서 자신을 대표해 일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을까? 절대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력과 그 지위를 놓고 다투지 않겠느냐? 반드시 다툴 것이다! 이때 패괴된 사람 혹은 사탄이 아담과 함께 있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아담이 한 일을 부인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있고 독창적인 견해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아담이 한 모든 일을 부정했을 것이다. “네가 ‘이것’이라고 부르겠다면 난 절대 그렇게 부르지 않고 ‘저것’이라고 부를 거야. 네가 ‘장 씨’라고 부르면, 난 ‘이 씨’라고 부를 거야. 반드시 내 우수함을 보여 줄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무슨 본성이냐? 교만이 아니냐? 반면 하나님은 어떠하냐? 이런 성품이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한 일에 대해 이상한 행동, 반대하는 행동을 보였느냐? 분명히 말하건대 없었다! 하나님이 나타낸 성품에는 고집이나 교만이나 독선이 없다. 이 점을 위의 대목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네가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고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나타내고 드러냈는지 볼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다면 내가 방금 해석한 내용들에 대해 너희는 인정하느냐? 아담이 한 일에 대해 하나님은 대놓고 “잘했다. 옳다. 찬성이다!”라는 말씀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인정했다. 그는 아담이 한 일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했다. 이는 창세 이후 인류가 하나님의 당부에 따라 하나님을 위해 행한 첫 번째 일로, 하나님을 대신해 행한 일이자 하나님을 대표해 행한 일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지혜에서 비롯된 일로, 좋고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때 아담이 한 일은 인류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선명히 나타내 보인 일이었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부 소유와 어떠함과 지혜를 더해 준 것은 사람이 그를 선명히 나타내는 생명체가 되게 하려 함이었다. 또한 그러한 생명체가 하나님을 대표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었다.

(3)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창 3:20~21)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제 세 번째 말씀을 보도록 하자. 이 말씀에서 아담이 하와에게 지어 준 이름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 이는 지음 받은 아담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고를 하는 존재임을 말해 준다. 그가 무엇을, 얼마나 아는지에 대해 지금 연구나 토론은 하지 않겠다. 그런 것은 내가 말하려는 세 번째 성경 말씀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는 부분을 살펴보자.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평생토록 이 말씀 속에 어떤 뜻이 내포돼 있는지 모를 것이다. 먼저 너희에게 약간의 단서를 줘 보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에덴동산을 떠올려 보거라.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 살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 봤다. 그런데 그들은 벌거벗었으므로 숨어 버렸다. 하나님은 그들이 보이지 않자 그들을 불렀고, 그들은 자신들이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나님을 뵙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므로 감히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느냐? 본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으로 옷을 지어 입혔는지 알겠느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혔다. 그 말인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들어 준 그 옷은 가죽옷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준 첫 번째 옷이다. 가죽옷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고급 옷으로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혹자가 너에게 인류의 선조가 최초로 입은 옷이 어떤 옷이냐고 묻는다면, 너는 “가죽옷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이 가죽옷은 누가 지어 준 것이냐고 물으면, “하나님이 지어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옷은 하나님이 지어 준 것이다. 이 부분은 거론할 가치가 있지 않으냐? 방금 나의 묘사를 듣고, 너희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떠오르지 않느냐? 분명 대략적인 윤곽이 떠오를 것이다! 너희에게 인류가 입은 최초의 옷이 무엇인지 알려 주려고 오늘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핵심은 가죽옷에 있지 않다.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이 일을 할 때 나타낸 성품, 소유와 어떠함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아담, 하와와 함께 있었느냐?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홍콩의 형제자매들이 대답해 보아라.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한국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이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느냐?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대만의 형제자매들이 말해 보아라.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이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모두 아주 적절한 대답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창조하여 그들을 동반자로 삼았고, 그들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의식주를 돌보았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부모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그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도 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신묘막측함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님의 낮춤과 자비,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근심과 책임과 보호만 보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흡사 자식을 두고 걱정하는 부모와 같았다.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진실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대한 지위를 가진 자라 자처하지 않고 가죽으로 직접 인류에게 옷을 지어 입혔다. 이 가죽옷으로 치부를 감추든 추위를 막든 어쨌든 하나님은 손수 그 일을 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생각이나 이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옷을 지어 사람의 몸을 가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실제로 한 것이다. 이 일은 단순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상상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낮춤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며 안하무인이었던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 한없이 높이 쳐들었던 머리를 떨구었다. 여기서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한층 느끼게 되었다. 마음속 ‘위대한’ 하나님, ‘사랑스러운’ 하나님, ‘무소불능한’ 하나님은 반대로 아주 미미하고 추하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이 일을 듣고 나서, 너는 하나님이 행한 이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얕보겠느냐? 어떤 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반대다. 그는 하나님이 진실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에 감동받는다.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볼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로 존재함을 더욱 느끼게 되고, 사람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비중과 늘 사람 곁에 있는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현재와 연결시켜 봐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에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위해 이처럼 소소한 일을 했고, 사람이 지금껏 감히 상상하지도, 예상치도 못한 일까지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지금의 사람에게 할 수 없을까? 어떤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본질은 꾸며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도 꾸며 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본질은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더해 준 것도 아니고, 시간이나 장소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한 일에서, 사람이 하찮거나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일, 심지어 하나님이 절대 할 리 없다고 여기는 아주 미미한 일들에서 진정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이 비로소 나타난다. 하나님은 위선적이지 않다. 그의 성품과 본질 속에는 과장, 가식, 거만, 교만이 없다. 그는 지금껏 큰소리친 적이 없다. 그는 신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돌보고 인도하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든, 얼마나 느낄 수 있든, 얼마나 볼 수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확실하게 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을 사람이 알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영향을 줄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영향을 줄까? 나는 네가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봄을 더 실감하길 바란다. 그와 동시에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추측도, 의심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묵묵히 모든 일을 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진실함과 신실함과 사랑으로 모든 일을 묵묵히 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떠한 주저함이나 후회도 없었고,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보답받거나 얻으려 한 적도 없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유일한 목적은 사람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얻기 위함이다. 첫 번째 주제는 여기까지 얘기하겠다!

이 주제가 너희에게 도움이 되었느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느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훨씬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제해 주시니,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이 당시 말씀하셨을 때의 심정과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고, 하나님의 참된 존재를 더 실감하게 되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존재가 공허하거나 막연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았느냐? 이런 느낌을 받으면 하나님이 사람의 곁에 있음을 느끼게 되지 않겠느냐? 어쩌면 너희는 지금 명확한 느낌이 없고 잘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감명받고 제대로 알게 되면, 하나님이 네 곁에 계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단지 네 마음이 여태껏 하나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을 뿐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교제 방식에 대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충분히 따라올 수 있겠느냐?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에 관한 주제를 교제하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느냐? 어떻게 느껴지느냐? (좋습니다. 감동적입니다.) 어느 부분이 좋은 것이냐? 왜 감동적인 것이냐? (마치 에덴동산으로 돌아간 것 같고 하나님 곁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무척 생소하다. 네가 평상시에 상상하고 책에서 본 내용이나 교제에서 들은 것들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듯한 내용들이나 다름없다. 그저 손으로 만져 보았을 뿐 눈으로는 보지 못한 것이다. ‘손으로 만지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 기본적인 윤곽뿐 아니라 정확한 개념조차도 잡지 못한다. 오히려 무수히 상상만 하게 되기 때문에 너는 무엇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본질인지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상상으로 도출된 불확실한 요소들은 늘 수많은 의심을 품게 만든다.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알고 싶은 일이 너의 마음속에 늘 모순을 만들고 충돌을 일으키며 심지어 때로는 교란을 일으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든다. 하나님을 추구하고 싶고, 알고 싶고, 제대로 보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답을 얻지 못할 때, 이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냐? 물론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려고 하는 사람에 한해서다. 이런 일들을 아예 외면하는 사람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하나님의 존재가 전설이나 꿈이었으면 제일 좋겠다고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제멋대로 굴 수 있고, 안하무인이자 유아독존일 수 있으며,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그 어떤 뒷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징벌받지 않아도 되고,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악인에게 한 말씀도 그들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알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일을 알기 싫어하며, 차라리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들이고, 도태될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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