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과 신분에 관하여(발췌문)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모두 하나의 흐름 안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한 단계 한 단계 맞물려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길을 닦는 사람이 없었다면 뒤에 온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뒤에 올 사람이 있었으니 길을 닦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사역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씩 전해 내려오고, 한 단계 한 단계씩 이어질 수 있었다. 길을 여는 자가 없다면 사역은 전개될 수 없고, 하나님은 사역을 계속 앞으로 진행시킬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단계든 어긋나지 않고 전부 순서대로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한 분의 영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길을 연 자든, 길을 이은 자든, 결코 신분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렇지 않으냐? 요한은 길을 열었고 예수는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신분이 요한의 신분보다 낮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여호와는 예수보다 먼저 역사했다. 그렇다고 여호와가 예수보다 크다고 할 수 있겠느냐? 길을 닦거나 잇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의 본질과 대변하는 신분이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려는 이상, 그는 반드시 길을 닦는 사람을 일으켜 사역하게 해야 했다. 요한은 처음에 전도할 때,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외쳤다. 그는 처음부터 이 도를 전했다. 왜 그는 이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 말을 한 전후를 따지자면 요한이 먼저 천국의 복음을 말했고, 그다음에 예수가 말했다. 사람의 관념대로라면 요한이 새로운 길을 열었으니, 그가 예수보다 당연히 커야 한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길을 열고 주의 길을 예비했을 뿐이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닦았지만, 예수의 사역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사람의 사역 또한 전부 성령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여호와가 길을 이끈 시대였다. 여호와의 사역은 구약의 모든 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에서 행한 모든 사역을 대표한다. 모세는 그저 땅에서 그 사역을 지켰을 뿐이다. 그의 사역은 인성 협력에 속한다. 당시 여호와는 음성을 발해 모세를 불렀고,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 모세를 일으켰으며, 모세가 사람들을 광야로 인도해 가나안에 들어가게 했다. 그것은 여호와가 친히 지시한 일이지, 모세가 스스로 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율법도 정했다. 하지만 그 율법은 여호와가 친히 반포한 것으로, 단지 모세에게 전하게 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도 계명을 정했다. 게다가 구약의 율법을 폐하고 새 시대의 계명을 정했다. 어째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겠느냐? 이는 같은 맥락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모세가 한 사역은 시대를 대변한 것이 아니며, 새로운 길을 연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가 앞에서 길을 이끌고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한 것이었다. 그는 그저 쓰임 받는 사람에 불과했다. 예수가 왔을 때, 요한은 이미 길을 닦는 단계의 사역을 마치고 천국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성령이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와서 바로 그 자신의 사역을 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모세의 사역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도 그렇게 많은 예언을 했는데, 어째서 그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겠느냐? 예수는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하나님 자신이겠느냐? 당시 예수가 했던 사역이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아무도 단언할 수 없었고, 또한 전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한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이 분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역과 예언들도 직접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고, 여호와의 묵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그리 많은 사역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말씀도, 매우 많은 예언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보기에 그렇게 높은 도를 전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는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요한이나 이사야, 다윗을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들을 신이라고 부른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다윗 신이나 요한 신이라고 그렇게 부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오직 예수만을 그리스도라고 불렀다. 이는 하나님의 증거와 그가 담당한 사역, 그리고 그가 이행한 직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아브라함, 다윗, 여호수아, 다니엘, 이사야, 나아가 요한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나오는 큰 인물들이 행한 사역을 통해 너는 누가 하나님 자신이고, 누가 선지자에 속하고, 누가 사도에 속하는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이고, 누가 하나님 자신인지는 그들이 행한 사역의 본질과 유형에 따라 구분되고 확정된다. 네가 이러한 것들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하나님인 이유가 그렇게 많은 말씀과 사역을 하고 더욱이 수많은 이적을 나타냈기 때문이라면, 요한도 그렇게 많은 일과 많은 말을 했고, 모세도 마찬가지인데 왜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하느냐? 아담은 하나님이 친히 만들었는데, 왜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고 그저 피조물이라고 불리겠느냐? 다른 사람이 너에게 “오늘날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사역과 말씀을 하셨다고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면, 모세도 그렇게 많은 말을 했으니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겠죠?”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은 왜 당시에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셨으면서 요한을 증거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요한은 예수님 앞에 있지 않았습니까? 요한이 한 사역이 큽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큽니까? 사람이 보기에는 요한이 한 사역이 크고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작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요한을 증거하지 않으셨을까요?”라고 반문하여라.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그 자신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구름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고 직접 이끌었다. 이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다. 모세에게는 그런 영과 어떠함이 없었고, 그는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과 예수가 한 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행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인지, 선지자인지, 사도인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지는 사역의 성질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너는 의문이 없어질 것이다. 성경의 기록에는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역대로 수많은 큰 인물들이 성경을 해석했다고 해서 너는 그들을 전부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해석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그저 성경 해석가일 뿐, 그들에게는 어린양의 신분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일곱 인을 뗄 수 있겠느냐?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일곱 인을 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 사역은 별로 필요가 없는 것이며, 하는 김에 곁들여 하는 사역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사역을 똑똑히 알고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 굳이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겠느냐? 6천 년 사역에 굳이 ‘어린양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를 더해야겠느냐? 그는 새 사역을 하기 위해 왔다. 다만 과거의 사역에 대해 조금 풀어 주어 사람이 6천 년 사역의 실정을 알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구태여 많은 성경 구절을 해석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하는 사역이다. 너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곱 인을 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을 하기 위해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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