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 |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목차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천경지의(역주: 천경지위라고도 함)이다. 특히 오늘날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이 시대는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초에서 시작하여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할 이상(異象)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의 토대이다. 사람이 만일 이런 인식을 잃어버린다면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있고 텅 빈 도리 가운데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설령 따르려는 심지(心志)가 있다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무릇 이 흐름 가운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장래에 도태될 대상이고 밥만 축내는 사람이다. 네가 어느 단계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든지 모두 아주 큰 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런 한 단계 한 단계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새 사역은 모두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이고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목자의 목양이 없고 이상에 대한 목자의 교통이 없다면 사람은 모두 이런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이상을 터득하지 못하면 새로운 사역에 대해서도 터득할 수 없고, 새로운 사역에 순복(역주: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깨달을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 또한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확히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구하는 각 사람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바이고,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각 사람이 반드시 경력해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인식하는 것도 도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을 인식하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所是)를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이다. 맨 처음 하나님을 믿고서부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이르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믿음’은 실제가 없고 순결해질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아간다면 사람의 성품은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사람의 믿음 또한 갈수록 ‘참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과’에 도달할 때에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도달하게 될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 증거를 위해, 또한 인류가 최후에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으려고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경외 그리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에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은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나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역을 매우 많이 하였고 사람의 관념이 아물기 어려운 말씀을 매우 많이 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 어려운 점이 매우 많다고 해서 여태껏 그의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으며 줄곧 역사하고 말씀하고 있다. 비록 한 무리 또 한 무리 ‘용사’들이 넘어졌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그의 새로운 사역에 순복하려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사람들을 부단히 택하고 있다. 그는 결코 넘어진 그 ‘영웅호걸’들을 애석해 하지 않으며 그의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한 단계씩 역사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왜 늘 사람을 도태시키고 또 사람을 택하는가? 왜 늘 이와 같은 방식인가?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여 그에게 얻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가 역사하는 원칙은 바로 그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역사하고, 어제의 역사에 순복했으나 오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을 도태시키는 원인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공과(功課)는 하루 이틀만에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경력과 고생, 진실한 순복이 필요하다. 우선 하나님의 역사로부터 착수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착수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모두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깨달아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어떻게 경력 가운데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각 사람이 인식하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짧은 시간 내에 하나님의 전부를 인식하는 데에 도달할 수 없으며 모두 필요한 경력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못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많을수록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성분도 더 많아지며,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더욱 사람에게 그에 대해 더 새롭고 더 깊은 인식이 있게 한다. 만일 하나님의 역사가 고정불변하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율법시대에 한 것은 무엇이고, 은혜시대에 한 것은 무엇이며, 국도(國度)시대에 한 것은 또 무엇인지 이런 이상에 대해 너희는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반드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를 따르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의 몸에 행한 영의 많은 사역에 대해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사람의 경력으로는 완전한 인식에 이르지 못하며 하나 님 역사의 많은 새 사물이 우리를 도와서 하나님을 알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사도와 같은 분이라고 알았고 그리스도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가 예수를 따를 때, 예수가 그에게 “바요나 시몬아, 너는 나를 따르기 원하느냐?”라고 묻자 그는 “천부께서 보내셨으니 제가 꼭 따를 것이고 성령께서 증거하셨으니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당신을 따르기 원하옵나이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에서 보다시피, 그는 예수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자신을 대처(역주: 질책)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고통도 받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인식하지 못하였다. 베드로는 한동안 경력한 후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많은 행사와 사랑스러운 점을 보았고, 예수에게 하나님의 많은 소시가 있는 것을 보았으며, 예수가 한 말씀은 사람이 말할 수 없고 예수가 한 사역도 사람이 대 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과 행사에서 하나님의 많은 지혜와 신성의 사역을 보았다. 베드로는 경력 가운데서 결코 자신만을 안 것이 아니라 예수의 모든 행사를 중요시하며 관찰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베드로는 많은 새로운 사물들을 발견했는데, 즉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의 몸에 실제 하나님의 많은 표현이 있었고, 예수가 한 말씀과 행한 일 그리고 뭇 교회를 목양한 것과 행한 사역은 보통 사람이 행한 것과는 달랐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에게서 배워야 할 많은 공과를 배웠고, 예수가 곧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을 때에는 예수에 대해 인식이 좀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그가 일생 동안 예수에게 줄곧 충성하고 예수를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토대가 되었다. 비록 그도 관념을 좀 가지고 있었고 처음에는 예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지만 이런 것은 모두 패괴(역주: 부패, 타락)된 사람에게 필연코 있는 것이다. 예수는 떠나게 될 즈음에 베드로에게, 그가 와서 하는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고 그는 반드시 그 시대에 버림받고 더러운 그 낡은 시대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며 그가 와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고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한 후이면 그의 직분이 다 끝나게 된다고 알려 주었다. 베드로는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괴로워했고 예수와 이별하기 더욱 아쉬워했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는 뒤에서 통곡하였다. 이 일이 있기 전에 그가 예수께 “내 주여, 당신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하시는데, 당신이 떠나신 후에 또 언제 우리와 만나리이까?”라고 물었는데, 그가 한 말에 뒤섞임이 있지 않는가? 관념이 있지 않는가? 그는 예수가 일부분 사역을 완성하는 분이고 떠난 후에는 영이 그와 함께하며, 비록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승천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에 그는 예수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인식이 있었는데,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영이 보낸 분이고 하나님의 영이 바로 예수의 몸에 있으며 예수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그리스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그의 사랑으로 인하여, 또한 사람의 취약함으로 인하여 그는 이런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매 단계 사역 가운데서 관찰할 줄 알고 세심하게 경력할 줄 알면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무엇을 이상(異象)으로 하였는가? 예수가 그에게 나타났을 때, 그가 “내 주여, 당신은 누구시니이까?”라고 말하니 예수가 “나는 바로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니라”고 말했는데, 그는 이것을 이상으로 하였다. 베드로는 예수가 부활하여 40일 동안 나타난 것과 예수의 생전의 가르침을 이상으로 하여 길 끝까지 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력하고, 자신을 알아가며, 자신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생명이 자라나기를 추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자신의 패괴된 성품을 대처하는 것만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무엇이고 얼마나 큰 구원이 있는지 그리고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력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는지 이런 것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다면 너는 바로 어리석게 경력한 것이다. 네가 단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다 하여 생명이 자란 것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라면 아직 생명의 진정한 함의(含義)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취지는 깨닫지 못하였다. 어느 날, 네가 종교 예배당에, 후회파에, 생명파(역주: 중국의 교파들)에 가면 경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인데, 그들은 기도에 ‘이상’이 있고 생명을 추구함에 감동이 있고 말씀의 인도가 있으며 또한 많은 일에서 인내할 줄 알고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며 자기의 육체를 따르지 않는다. 그때면 너는 분별할 줄 모르고 그들이 한 것이 다 옳고 모두가 생명의 자연적인 유로(역주: 밖으로 흘러나옴)인데 애석하게도 믿는 이름이 옳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관점이 아닌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고 생명도 없다고 말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이 하는 매 단계 사역에 대해 투철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면 너는 이렇게 경력해서는 역시 안 된다. 예수 그 단계에는 어떻게 했고 이 단계에서는 또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은혜시대에는 어떻게 하고 무슨 사역을 했는지, 이 단계에는 또 무슨 사역을 하고 있는지, 만일 네가 이런 것을 투철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항상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실제적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만일 한동안 경력하고서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의 매 단계 역사 절차에 대해 인식할 수 있고, 하나님이 무슨 목적으로 말씀하였는지, 그렇게 많은 말씀을 했어도 왜 응하지 않는지 이런 것을 철저히 인식했다면 너는 안심하고 담대하게 앞길을 추구할 수 있으며 걱정하지도 않고 연단받지도 않을 것이다. 너희는 마땅히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무엇에 의해 많은 사역을 이루는가? 바로 말씀에 의해 이루는 것이다. 여러 가지 말씀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관념을 돌려세운다. 너희가 받은 고통, 경력한 연단 그리고 안에서 받은 대처와 경력한 깨우침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도달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따르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따른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오한 비밀이 끝없으며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드러내며 사람으로 하여금 이전의 일을 알게 하고 이후의 일을 꿰뚫어 보게 한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된다고 한다. 이때서야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을 따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온전케 되든 연단을 받게 되든 관건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고 또한 오늘날 사람이 인식해야 할 이상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는가?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가? 그의 성품에는 무엇이 내포되어 있는가? 이런 것을 너희가 다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 최종에는 하나님을 아는 기초에서 생명 성품이 변화되는 데에 도달한다. 사람은 대처와 연단을 겪을수록 힘이 커지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 절차가 많을수록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온전케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경력 가운데서 보다시피, 하나님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고 모두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 못하며 모두 사람의 예상을 벗어난다. 하나님이 사람의 필요를 공급함에 있어 모든 면에서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다. 네가 연약할 때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는데 그래야 비로소 너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 하나님은 너의 관념을 반격함으로써 너로 하여금 그의 대처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그래야 너의 패괴를 벗겨 버릴 수 있다. 하나님이 오늘 말씀이 육신 되어 한 편으로는 신성에서 역사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정상 인성에서 역사한다. 하나님이 한 모든 사역을 네가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상 인성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어떻게 행하든 네가 순복하며, 그가 어떻게 정상적이든 네가 순복하고 인식하며 너에게 실제 경력이 있어야만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어떠한 관념도 생기지 않게 되며 끝까지 따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는 지혜가 있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사람의 치명상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가 한 말씀이 너의 치명상을 건드릴 수 있지만 그는 또 자신의 위엄 있는 말씀과 지혜로운 말씀으로써 너로 하여금 그를 증거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에 속한 사람에게 어떤 패괴가 있는지, 사람의 본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드러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게 한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과 형벌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기 위해, 모두 그를 증거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을 새로운 인식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를 증거하기 위해,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많은 사람에게 그의 모든 것을 공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개적인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자신의 성품이 변화되게 하며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하게 한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여러 가지 역사 중에서 변화된다. 사람이 만일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과 합할 수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바로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참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형ㆍ표본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고 참으로 하나님의 뜻과 합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오늘날 도성육신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고 있는데,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그에게 순복하게 하며 그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역사를 알게 하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역사에 순복하게 하며,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역사와 사람을 정복하는 그의 모든 행사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증거라야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이러한 증거라야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ㆍ형벌과 대처ㆍ수리(역주: 질책ㆍ교훈)를 경력하여 그를 알게 된 사람을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며, 성품이 변화되어 그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원하지 않고 또한 그의 구원을 거치지 않은 사탄의 종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고,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할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