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어떻게 실행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는 여간 간단치 않다. 글자 표면으로 하나님 말씀을 그럴듯하게 해석한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글자 표면으로 아무리 해석해도 사람의 상상이고 사람의 사유이니 쓸데없다!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관건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매 마디 말씀을 할 때마다 그저 두리뭉실한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라 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 이 구체적인 내용은 틀림없이 하나님 말씀에 또 게시(揭示)가 있는데, 아마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하는 방식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은 특히 심오하여 사람의 사유 방식으로 측량하기 어렵다. 각 방면의 진리를 사람이 노력만 들이면 모두 완정한 뜻을 찾아낼 수 있다. 나머지 자세한 부분은 경력 중에서 성령이 너를 깨우치는 것에 의해 구체적인 정형을 깨닫게 하면 완전히 보충되는 것이다. 한 방면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찾는 것이며, 한 방면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성령의 깨우침을 받는 것에 의해 하나님 말씀의 함의를 깨닫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주로 이 두 방면으로부터 효과에 달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할 것이다. 그러면 더욱 골칫거리이다. 그렇지 않은가? 네가 만약 글자 표면으로 해석하거나 너의 사유 상상으로 해석한다면, 설사 그럴듯하게 해석한다 할지라도 참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얻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한 데서 성령의 깨우침을 받고 얻는 것이지 글자 표면상에서 좀 깨닫거나 해석한다 해서 진리를 얻은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글자 표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면 성령이 깨우칠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일정한 문화 수준만 구비하면 된다. 그러면 문화가 없는 사람이 또 문제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두뇌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요하게 그래도 성령의 깨우침을 통해야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진리를 얻는 과정이다.』
≪좌담 기요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말한 것이다. 네가 보기 좋아하면 너를 깨우쳐주고, 보기 싫어하면 너를 깨우쳐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깨우쳐주고 그를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 깨우쳐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보았어도 하나님이 깨우쳐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보았는가? 네가 말 타고 꽃구경하듯이 보고 실제를 중요시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깨우쳐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애(寶愛)하지 않는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애하지 않으면 진리가 없고 실제가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애하면 진리를 실행해낼 수 있는데, 이래야 실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바쁠 때든 한가할 때든, 환경이 있든 없든, 시련이 있든 없든, 어느 때든지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한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생존하는 토대이기에, 사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 세 끼니로 삼아 먹어야 한다. 온전케 되려 하고 하나님께 얻어지려 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겠는가? 네가 지금 알든 모르든,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보았든 보지 못하였든, 어쨌든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진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재빨리 실행하고, 진입할 수 없는 것은 먼저 놓아두어라.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네가 금방 보기 시작할 때에는 깨닫지 못하나, 두 달 석 달 후 심지어 1년 후에야 네가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그 원인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는 데는 하루 이틀에 온전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에 네가 그의 말씀을 당시에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시에 어떻게 보아도 글자대로이니 반드시 한동안의 경력을 거쳐서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였으니, 너는 능력껏 먹고 마셔야 한다. 그러면 부지중에 네가 깨닫게 되고 부지중에 성령이 너를 깨우쳐준다. 성령이 사람을 깨우쳐주는 것은 흔히 모두 부지중의 정황 하에서 네가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할 때에 너를 깨우쳐주고 인도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 원칙은 네가 먹고 마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 시대이다≫에서 발췌
『너희더러 90년대의 베드로 풍격을 만들라는 것은, 바로 너희 각 사람으로 하여금 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여 경력 중에서 진실로 진입하라는 것이고, 스스로 하나님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더 많고 더 큰 깨우침을 받아 자신의 생명에 더욱더 도움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만일 너희들이 하나님의 허다한 말씀을 보고도 하나님의 허다한 말씀에 대하여 글귀로만 깨달을 뿐 실제 경력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아니라 죽은 글귀이다. 만일 네가 죽은 글귀만 지킨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만일 네가 실제 경력 중에서 경력한다면, 그때에야 하나님 말씀 중의 영적 뜻이 너에게 풀리게 된다. 오직 경력 중에서만이 허다한 진리의 영적 뜻을 더듬을 수 있고, 오직 경력 중에서만이 하나님 말씀의 심오한 뜻을 풀 수 있다. 만일 네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명확하여도 너의 손에 가서는 텅 빈 글귀 도리로 되고 너의 종교 규례로 된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이 행하던 것이 아닌가? 너희들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기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들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것이다. 만일 실행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너에게는 마치 셋째 하늘의 전설과 같다. 실제상,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은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고 역시 하나님께 얻어지는 과정이다. 분명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고 깨달으며 체험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실제이다. 만일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영생만 얻으려 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자기의 소유로 하려고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모두 미련한 사람이다. 마치 사람이 잔치에 참석하여 잔치 자리에 무슨 맛있는 것들이 있는가를 보고는 마음속에 기억만 할 뿐 직접 맛보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미련한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람이 구비해야 할 진리가 있고, 사람에게 가장 이익되는 것이 있고 가장 도움되는 것이 있다. 이는 너희들 몸에 필요한 자양품과 영양품이고, 사람을 도와 정상 인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며, 사람이 장비(裝備)해야 할 진리이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너희들의 생명 진보가 더 빠르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진리를 더 잘 투득하게 된다. 너희들의 분량이 자라나게 되면, 영계의 일에 대하여 더욱더 꿰뚫어보게 되고 사탄을 이기는 데에 더욱더 유력하다. 너희들이 깨닫지 못하는 허다한 진리는 모두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에 의하여 투득하게 된다. 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표면상의 뜻을 알고 있음에 만족하고 도리상으로 장비하기를 중요시하지만 실행 방면에서 깊이 경력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리새인의 행실이 아닌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다”는 이 말의 실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 후에야 자라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 자라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생명이 있고 분량이 있다고 여길 뿐이라면, 너의 인식은 치우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참으로 깨닫는 것은 진리를 실행할 때에 달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에 의해야 달하는 것이다”라는 이 말을 너는 깨달아야 한다. 네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 기껏해야 너를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 뿐, 너를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절반만 맞고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네가 하나의 진리를 알기 전에는 모두 네가 아직 이 진리를 경력하지 못한 때인데, 도를 들을 때에는 깨달았다고 느껴져도 참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며, 진리의 글귀는 구비하였으나 진리의 참뜻은 구비하지 못하였다. 네가 진리의 겉면을 알고 있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것과 같지 않고, 진리를 인식한 것과 같지 않다. 진리의 참뜻은 모두 경력하는 가운데서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진리를 경력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경력하는 가운데서만 진리의 은밀한 부분에 대하여 더듬을 수 있으며, 깊이 경력해야만 진리의 내포된 뜻을 포착할 수 있고 진리의 실질을 깨달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깨달았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진리를 실행하려 하고 진리를 깨달으려 한다면 우선 너는 자기에게 닥친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자기 신변에서 발생한 일의 실질이 무엇인지, 어떤 문제인지, 어느 방면의 진리와 관련되는지, 이런 것을 찾고 구해야 한다. 즉 너의 이 실제 어려움을 통해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경력하면 너는 신변에서 발생한 매 한가지 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것이고 하나님이 하려는 것과 너의 몸에서 달하려는 효과를 볼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데는 먼저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 먼저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고, 교통을 많이 듣고, 많이 찾고 구해야 한다. 실컷 먹고 마시고 나면 너희가 빨리 자라난다. 너희에게 분량이 있을 때에 너희가 일을 얼마간 할 수 있고 시련과 시험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그때에 너희는 자신이 확실히 진리를 어느 정도 얻고 확실히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느낄 것이며, 하나님이 한 말씀은 정말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고 마침 사람이 얻어야 하는 것이며 역시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임을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교통 설교ㆍ진리를 추구하는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