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무엇 때문에 영의 방식으로 하시지 않고 말씀이 육신 된 방식으로 하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써, 영의 신분으로써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로써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으며, 만일 하나님이 입은 하나의 피조된 사람의 외각이 아니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을 접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은 전혀 그를 접근할 수 없으며,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으로 되어야만, 즉 그가 그의 ‘도’를 그가 되려는 육신 중에 담아야만 이 ‘도’를 친히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의 몸에 만들 수 있으며,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들을 수 있고 그의 도를 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의 도를 얻을 수 있으며, 이것으로써 사람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다면, 무릇 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또한 어느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 당할 것이고, 또는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음으로 인하여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될 것이다. ……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에게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음성’ 앞에 순복하게 되고, 말씀하여 드러낼 필요없이 사람은 모두 엎드러지게 된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의 길에서 빛 중에 엎드러진 것과 같다. 만일 하나님이 여전히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말씀의 심판에 의해 자기의 패괴를 인식하고 구원을 받는 목적에 영원히 달할 수 없다. 오직 성육신만이 말씀을 친히 각 사람의 귀에 전할 수 있어 귀 있는 그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그의 말씀을 듣게 하고 모두 그의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래야만 말씀이 달한 효과이다. 영이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실제적이고도 비범한 사역에 의해야만 사람의 깊은 곳에 다년간 숨었던 그런 옛 성정을 완전히 폭로해낼 수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고 변화가 있을 수 있게 하는 데에 달한다.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육신이 권세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고 또한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수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고 더듬을 수 있게 하며, 이러한 역사가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영의 직접적인 역사보다 훨씬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 효과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말씀으로 된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할 수 있고 실제적으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고, 육신의 외각은 또한 권세를 지니고 있지 않아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의 실질은 권세를 가지고 있으나 사람은 누구도 그의 권세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말씀하고 역사할 때에도 사람은 그의 권세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그의 실제 역사에 더욱 유리하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역사는 모두 효과에 달할 수 있는데, 비록 사람이 모두 그가 권세를 지니고 있음을 모르고 사람이 또 그의 범할 수 없음과 그의 진노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은밀한 권세, 은밀한 진노, 공개한 말씀에 의하여 그의 말씀하는 효과에 달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말투, 말씀의 준엄, 말씀의 모든 지혜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이 모두 권세가 없는 듯한 성육신인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순복하게 된다. 이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에 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다른 한 방면의 의의인데,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한 것이고, 역시 그의 말씀의 실제로 하여금 사람 몸에서 효과에 달하게 하여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그의 역사하는 대상이 사탄에게 패괴된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이 아니고 육체에 속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의 육체가 패괴되었기 때문에, 그가 육체에 속한 사람을 그의 역사 대상으로 한 것이다. 더욱이 사람은 패괴된 대상이기 때문에, 그가 어느 단계의 구원 사역을 하든지 모두 사람을 선용(選用)하여 그의 유일한 역사 대상으로 한 것이다. 사람은 속된 인간이고 혈기에 속하지만 하나님은 또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데는 더 좋은 역사 효과에 달하도록 사람과 같은 속성을 가진 육신이 되어 사역을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또한 죄를 이기는 능력과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되어 역사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 성육신의 실질ㆍ신분은 사람의 실질ㆍ신분과 크게 다르지만 그의 외모로부터 보면 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정상 사람의 외모가 있고 정상 인성의 생활이 있는데, 사람이 보기에는 그와 정상 사람과의 다른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단지 이 정상적인 외모와 정상적인 인성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정상 인성에서 하는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다. 그의 육신은 그가 정상 인성에서 사역하는 데에 유리하고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데에 유리하다. 그의 정상 인성은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구원 사역을 하는 데에 더욱 유리하다. 비록 그의 정상 인성이 사람들 가운데서 적지 않은 풍파를 일으키지만 이런 풍파는 그가 역사하는 정상 효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쨌든, 그의 정상 육신의 역사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그래도 크나큰 유익한 점이 있는 것이다. 비록 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정상 인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역사는 여전히 효과에 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효과는 정상 인성에 의하여 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그가 육신 중에서 역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얻게 한 것은 사람이 그의 정상 인성에 대하여 갖고 있는 관념의 십 배, 몇십 배를 훨씬 초과한다. 그러나 이런 관념은 최종에 이르러 그가 한 사역에 의해 모두 파묻힐 것이다. 사역이 달한 효과 즉 그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그에 대한 관념의 수량을 훨씬 초과한다. ……
……성육신인 하나님이 육신에 온 까닭은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로 인한 것인데, 사람의 필요이지 하나님의 필요가 아니다.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득실과 보수(報酬)라는 말이 없다. 그가 얻는 것은 후에 수확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원래부터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인류를 위하여 한 전부와 치른 모든 대가는 그가 더 많은 보수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단지 인류를 위한 것뿐이다.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데는 비록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곤란이 있지만 최종에 육신이 역사하여 달하는 효과는 그래도 영이 직접 역사하는 효과를 훨씬 초과한다. 육신이 역사하는 데는 비록 상당히 많은 애로가 있고 영과 같은 위대한 신분이 있을 수 없고 영과 같은 비범한 행사도 있을 수 없고 더욱이 영과 같은 권세도 있을 수 없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이 육신의 역사 실질은 영이 직접 역사하는 실질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이 육신 자체를 놓고 말하자면 모든 사람의 필요이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영의 사용 가치는 육신의 사용 가치보다 훨씬 못하다. 영의 역사는 전 우주에 보급되고 산천 호수에 파급될 수 있으나, 육신의 역사는 그와 접촉하는 각 사람과 더욱 효과적으로 관련될 수 있고, 또한 형상이 있는 육신은 더욱 사람의 이해와 신임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더욱 깊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한 인상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다. 영의 역사는 신비 막측하여 범속한 사람이 예측하기 어렵고 보아내기 더욱 어려우며, 다만 근거없이 상상할 뿐이다. 육신의 역사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또한 풍부한 지혜가 있으며, 범속한 사람이 직접 목도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완전히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이다. 영은 다만 사람들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얼마간의 일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의 깨우침, 영의 감동, 영의 인도이다. 하지만 대뇌 사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자면, 영의 이런 역사는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줄 수 없고, 다만 하나의 감동이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수 있을 뿐 언어로 지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역사는 이와 크게 다르다. 육신이 역사하는 데는 정확한 말씀의 인도가 있고 명확한 뜻이 있고 명확한 요구 목표도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없고 상상할 필요도 없으며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육신이 역사하는 명확성인데, 영의 역사와 크게 다르다. 영의 역사는 다만 일부 유한한 범위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육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 육신이 역사하여 사람에게 요구하는 정확한 목표와 사람이 인식을 얻는 실제 가치는 영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를 훨씬 초과한다. 패괴된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오직 정확한 말씀,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더듬을 수 있는 역사만이 가장 가치 있는 역사이다. 오직 현실의 역사와 적절한 인도만이 사람의 비위에 맞을 수 있고, 오직 실제적 역사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성정에서 구원해낼 수 있다. 이런 것은 오직 성육신인 하나님만이 달할 수 있고, 오직 성육신인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옛 성정에서 구원해낼 수 있다. 영은 비록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지만 이러한 사역은 오직 육신에 의해야만 할 수 있다. 단지 영으로 하여금 단독으로 역사하게 한다면 역사 효과에 달할 수 없다. 이것은 환히 밝혀져있는 사실이다. ……
……하나님은 패괴된 사람을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역이다. 이 육신은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자 완전한 신성이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또한 영과 크게 다르더라도, 사람을 구원하는 이는 여전히 성육신인 하나님 자신이고, 영이자 육신이다. 어떻게 칭하든지 간에, 어쨌든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과 육신은 갈라놓을 수 없고, 육신이 한 사역이자 하나님의 영이 한 사역이며, 다만 영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이 직접 해야 할 사역은 말씀이 육신 될 필요가 없고,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은 영이 직접 할 수 없으며, 다만 말씀이 육신 된 방식으로써 역사할 뿐이다. 이것은 모두 사역의 필요이고 패괴된 인류의 필요이다. 3단계 역사 중에서 오직 한 단계 역사만 영이 직접 한 것이며, 그 외의 두 단계 역사는 모두 성육신인 하나님이 한 것이지 영이 직접 한 것은 아니다. 영이 한 율법의 사역은 사람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련되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도 관련되지 않는다. 육신이 한 은혜시대와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정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관련된다. 육신이 한 사역은 모두 구원 사역 중에서 중요하고 관건적인 사역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는 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고, 성육신인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가 더욱 필요하다. 인류는 성육신인 하나님의 목양ㆍ부축ㆍ부어줌ㆍ양육ㆍ심판ㆍ형벌이 필요하고, 성육신인 하나님의 더 많은 은혜와 더 큰 구속이 필요하다. 오직 육신 중의 하나님만이 사람의 지심인(知心人)이 될 수 있고 사람의 목자가 될 수 있고 사람의 수시로의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오늘이나 이전에 말씀이 육신 된 필요성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패괴된 것이며, 육체는 가장 심하게 속임을 받았고, 육체는 심히 피해를 입은 대상이다. 하나님이 친히 육신에서 역사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구원의 대상이 육체에 속한 사람이고 또한 사탄도 사람의 육체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탄과의 싸움이 사실은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이지만 사람은 동시에 또 구원받을 대상이다. 이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하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다. 사탄이 사람의 육체를 패괴시켜 사람도 곧 사탄의 화신으로 되고 하나님이 패배시킬 대상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사탄과 싸우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모두 땅에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이 되어 사탄과 싸워야 하는데, 이것은 가장 현실적인 사역이다. 그가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것은 사실 역시 육신 중에서 사탄과 싸우는 것이며,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것은 그의 영계에서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영계에서의 사역을 전부 땅에 실제화하였다. 정복하는 것은 그를 거역하는 사람이고, 패배시키는 것은 그를 적대시하는 사탄의 화신이며(물론 역시 사람이다), 최종에 가서 구원을 받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 이리하여, 사탄과 실제적인 싸움을 하여 그를 거역한 그와 같은 외각이 있는 사람을 정복할 수 있도록, 사탄에게 피해를 입은, 그와 같은 외각이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도록, 그가 하나의 피조물의 외각을 가진 사람으로 되는 것이 더욱 필요하였다. 그의 원수는 사람이고 정복할 대상은 사람이며 구원할 대상도 역시 피조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사람으로 되어야 하였다. 이러면 그의 사역은 매우 편리하게 되고,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정복할 수도 있고 더욱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육신’은 비록 정상적이고 실제적이지만 평범한 육신이 아니고 인성만 있는 육신이 아니라 인성도 있고 신성도 있는 육신이다. 이것은 그와 사람과의 다른 점이며, 이것은 하나님 신분의 표징이다. 이러한 육신이라야 그의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있고, 육신의 하나님 직분을 다할 수 있으며, 사람들 가운데서의 그의 사역을 철저히 완성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 가운데서의 그의 사역은 영원히 일편 공백일 것이고 영원히 하나의 빈틈일 것이다. 설사 하나님이 사탄의 영과 싸울 수 있고 또한 이긴다 하더라도, 패괴된 사람의 옛 성정은 영원히 해결되지 못하고,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의 권세 아래에 진실로 복종할 수 없다. 즉 그가 영원히 인류를 정복할 수 없고 영원히 전 인류를 얻을 수 없다. 땅의 사역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의 경영은 끝날 수 없으며, 전 인류는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안식에 들어갈 수 없으면, 이러한 경영 사역은 영원히 결과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도 따라서 소실될 것이다. 비록 그의 육신은 권세를 지니지 않았지만 그가 한 사역은 효과에 달하였다. 이것은 그의 사역의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가 권세를 지니고 있든 권세를 지니고 있지 않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기만 하면 하나님 자신이다. 육신이 얼마나 정상이고 보통이든지 간에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하나님이지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육신이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의 내부 실질이 어느 한 사람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분이 어느 한 사람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육신이 인류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까닭은 그는 사람이고 더욱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며, 그는 평범한 육신 중의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는 그와 함께 땅에서 생활하는 패괴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지만 성육신인 하나님은 인류에 대하여 말하자면 가치가 있는 어느 한 사람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영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으며, 그가 하나님의 영보다 더욱 하나님 자신의 증거를 할 수 있으며, 그가 하나님의 영보다 더욱 철저하게 인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이 비록 보통이고 정상이지만 그의 인류에 대한 공헌과 인류 생존에 대한 의의를 말하자면 아주 보배로운 것이다. 이 육신의 실제 가치와 의의는 어느 한 사람도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이 비록 직접 사탄을 멸할 수 없지만 그는 역사하는 방식으로써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패배시켜 철저히 그의 권세 아래에 굴복시킬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었기 때문에 그는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고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그는 사탄을 직접 멸하지 않고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하면서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정복한다. 이러면 피조물 가운데서 그 자신의 증거를 더 잘 할 수 있고 또한 패괴된 사람을 더 잘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탄을 멸하는 것보다 더욱 증거가 있고 더욱 설득력이 있다. 육신 중의 하나님은 사람이 조물주를 아는 데에 더 유리하고, 피조물 가운데서 그의 증거를 더 잘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