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갈수록 부흥되고 은혜시대의 교회는 다 그렇게 황폐합니까?

하나님 말씀 답:

『성령 역사의 가장 뚜렷한 표현은 바로 현실적이고 수구(守舊)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의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 오늘의 실행과 어긋나는 사람은 모두 성령 역사를 대적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비록 이전의 빛을 지키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라고는 부인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늘 실행의 변화를 말하고, 이전의 실행과 현재의 실행의 구별을 말하고, 이전의 그 시대에 어떻게 실행한 것인가를 말하고, 현재의 이 시대에 또 어떻게 실행하는 것인가를 말하는가? 늘 이런 실행의 구분을 말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사역이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사람에게 요구한 실행도 부단히 변화된다. 사람이 만약 어느 정도에 정지되어 있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과 새로운 빛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불변하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그 사람들이 늘 그들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데, 사실은 그들 몸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이 벌써 정지되어 그들 몸에는 성령 사역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벌써 다른 한 무리 사람들의 몸에 옮겨졌는데, 그는 이 사람들 몸에서 그의 새로운 사역을 이루려 한다. 종교 안에 있는 그 사람들이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이전의 옛 사역만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저버리고 그의 새로운 역사를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들 몸에서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그의 새로운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그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줄곧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사람의 실행도 부단히 제고되며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하고 있고 사람에게도 늘 필요가 있으므로, 양자가 모두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결합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큰일을 이룩한 하나의 표현이고 전체 경영의 최종 결과이다.

매 단계에 역사하는 동시에 사람에 대하여 상응한 요구가 있다.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함께함과 징계가 있으며, 성령의 흐름 속에 있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모두 사탄의 주관 아래에 있으므로 아예 성령의 역사가 없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 만일 협력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이 시기에 요구한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면 징계를 받고, 심각하면 성령께 저버림받는다.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인 이상, 성령의 흐름 속에서 살면서 성령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깨우침이 있으며, 진리를 실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있고 심지어 징벌이 임한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의 연고로 인하여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 각 사람에 대하여 책임을 질 것이다.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기꺼이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의 축복을 받으며, 그를 거역하고 그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징벌을 받는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바로 새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이상 하나님과의 상응한 협력이 있어야 하지, 본분을 하지 않는 패역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요구이다. 그러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들이니, 그 무슨 성령의 징계거나 책망이라고는 아예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사람들은 온종일 육체 속에서 살고 있고 두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자기의 두뇌에 의하여 분석하고 연구해낸 도리이지, 성령의 새로운 사역 중의 요구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과 협력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함께함이 없고, 더욱이 그 무슨 축복이나 보호라고는 말할 수도 없다. 그들의 언행은 다수가 모두 이전의 성령 역사 중의 요구를 지키는 것이고, 진리가 아니라 도리이다. 그러나 이런 도리와 규례로는 그들의 집합이 다만 종교이지 선민이 아니고 또는 하나님의 역사 대상이 아니라고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의 모든 사람들의 집합을 종교의 집대성이라고 칭할 수 있을 뿐 교회라고는 칭할 수 없다. 이 사실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령의 새로운 역사가 없으며, 그들의 모든 행위는 종교적 냄새가 가득하고 살아내는 것은 모두 다 종교 색채를 띠고 있다. 그들은 성령의 함께함과 역사가 없고 더욱이 성령의 징계거나 깨우침을 받을 자격도 없다. 이 사람들은 모두 생명이 없는 시체이고 영성(靈性)이 없는 구더기이다. 그들은 사람의 패역과 대적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의 모든 악행을 인식하지 못하며 더욱이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알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무지한 소인들이고 ‘신도’로 불릴 자격이 없는 인간쓰레기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경영에 관계되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할 수도 없다. 그들의 언담과 행동거지는 메스껍고 또 가련하기에,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무엇 때문에 교당에 있는 그 사람들이 실행하는 것을 낡았다고 말하는가? 바로 그들이 실행하는 것이 현재의 사역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 그들이 실행한 것은 옳기도 하였지만 시대의 전이와 사역의 변천에 따라 그들의 실행도 차츰차츰 시대에 뒤떨어졌고,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빛에 의하여 멀리 뒤떨어지게 되었다. 성령의 사역은 원래 기초에서 또 몇 단계나 심화되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원래 상태에 정류되어 원모양 그대로 있고 여전히 낡은 행실과 낡은 빛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3년이나 5년 내에도 아주 큰 변화가 있을 것인데, 더더구나 2천년 동안의 시간에는 더 큰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 사람에게 새로운 빛이 없고 새로운 실행이 없는 것은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따르지 못한 것이고 사람의 실수이다. 본래 성령 역사가 있던 사람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낡은 행실을 지킨다 하여 새 사역의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다.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변화되어야지, 한 지경에만 정지되어 있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그 사람들만이 원래 사역에 정지되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직 그 패역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사람의 실행이 만일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따르지 못한다면, 사람의 실행은 꼭 현시의 사역과 어긋난 실행일 것이며, 이런 실행은 꼭 현시의 사역과도 서로 엇나갈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와 같은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고 더욱이 최후에 하나님의 간증을 굳게 서는 사람으로 될 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 경영 사역도 이런 한 무리 사람들 몸에서 끝마칠 수 없다. 이전에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 그 사람들, 이전에 십자가를 위하여 고통받은 그 사람들이 만일 마지막 때의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들이 한 모든 것은 다 헛수고이고 다 쓸데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은 이 사실을 이루려 하는바, 전 우주 아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와서 하나님을 찾아뵙게 하고 땅에 있는 하나님을 경배하게 한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의 사역을 다 정지하였으니, 사람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참 도를 찾게 된다. 마치 요셉 때처럼 사람마다 먹을 것을 가지려고 그가 있는 곳에 가서 그를 경배하였는데, 그에게 먹을 식물이 있었기에 기아의 재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두 어쩔 수 없이 참 도를 찾고 구한 것과 같다. 온 종교계에 엄중한 기근이 나타났지만,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생수의 원천이고 사람에게 누리도록 하는 끊임없이 흐르는 원천이 있기에 사람은 모두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 ……어느 날이 되면 환갑에 이른 노목사도 전보를 쳐서 생수의 원천을 찾고 구할 것이다. 그들은 나이가 많아도 그들이 업신여기던 이 사람을 경배할 것이고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속으로 믿을 것인데, 이것이 표적과 기사가 아닌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천년하나님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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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37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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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착한 일을 해서 덕을 쌓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솔이 없으면 설사 통치자거나 사회학자가 모두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도 인류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울 수 없다. 그것은 어느 한 사람도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없고 어떠한 사회 논조도 사람의 공허함의 괴롭힘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ㆍ지식ㆍ자유ㆍ민주ㆍ누림ㆍ안일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잠시적인 위안뿐이다. 인류는 이런 것이 있어도 여전히 불가피하게 범죄하고 있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하고 있으며, 이런 것이 있어도 인류가 탐색하는 동경과 욕망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아무런 의의도 없는 희생과 탐색은 다만 갈수록 사람에게 많은 고뇌를 가져다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황공하여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인류의 미래에 어떻게 직면하겠는가를 모르게 하고 이후의 길에 어떻게 직면하겠는가를 모르게 하며, 심지어 인류로 하여금 과학을 두려워하고 지식을 두려워하고 더욱이 공허한 느낌을 두려워하게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필경 사람이다.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생명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배부르게 먹고 사람마다 평등하고 사람마다 자유로운 공평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다. 오직 이래야만이 인류의 필요와 인류의 탐색 욕망과 인류의 심령의 공허함이 해결될 수 있다. 만약 한 국가나 민족의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 또는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면, 이 국가와 민족은 몰락으로 나아갈 것이고 흑암으로 나아갈 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께 훼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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