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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리새인의 길로 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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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 쑤싱

저의 본성은 교만 자대합니다. 지위심(地位心)은 저의 치명점이다 보니, 여러 해 동안 계속 명예와 지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 번 발탁되었다가 교체되고 또 한 번 발탁되었다가 교체되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위에서 많은 좌절을 겪었고, 적지 않게 그릇된 길을 갔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책망과 연단을 받으면서 저는 자신이 지위에 대해 어느 정도 담담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예전처럼 오직 인솔자를 해야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인솔자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런 소망도 없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으며, 어떤 본분을 하든 오직 진리만 추구한다면 다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무슨 본분을 하든, 아무리 지위가 없어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기면서 피조물로서 본분을 하는 것은 천만 번 지당한 일이므로 저를 어디에 두든지 모두 하나님의 지배대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명예와 지위 방면의 패괴가 드러나면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본분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치든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대가를 치르더라도 협력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 자신이 이미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섰고, 인성과 이성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기에 저의 추구에 불순물이 너무 많고 아직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음을 잘 알고 계셨고, 더욱이 어떤 방식으로 저를 정결케 하고 구원해야 할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2013년 6월 말에 저희 구역의 한 인솔자가 교체되었습니다. 그 후 인솔자를 다시 선거하게 되었는데 그때 형제자매들이 저를 선출하니 하나님 집에서는 저에게 사역에 협력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큰 사역을 감당하라는 말을 들은 저는 저에게 진리 실제가 없기에 전혀 이 사역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위가 그렇게 크고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많은데, 내가 어떻게 잘 이끌어 갈 수 있단 말인가? 나보다 훨씬 소질이 좋은 사람들도 다 교체되고 도태되었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건 나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닐까? 이제 더 이상은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걸 체험하고 싶지 않아. 본분이 있기만 하면, 어떤 사역이든 상관없이 내가 필요하다면 있는 힘껏 협력하면 돼.’라는 생각에 저는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습니다. “안 돼요. 저는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어요…” 그러고는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 본분을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이성이 있는 것이고, 또한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형제자매들의 교통을 듣고 나서야 저는 제 자신이 마음속으로 고집하고 있는 것이 바로 “높이 기어오를수록 떨어질 때 더 비참하다.”, “높은 곳일수록 추위를 감당하기 어렵다.”라는 큰 붉은 용의 독소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지위에서 시련을 겪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도태된 그 사람들이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거나 본성이 너무 나빠 갖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도리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큰 인솔자만 하지 않는다면 악을 저지를 기회가 없기에 자신에 대해서는 보호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지금 나는 가정도 없고 앞날도 없는 데다가 큰 붉은 용에게 쫓기기까지 하는데, 만약 큰 인솔자로 되었다가 나중에 진리가 없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출교라도 당하게 된다면, 난 정말 살아갈 수가 없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관념과 독소에 사로잡힌 저는 흑암 속에서 시달림받으며 괴로워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런 본분이 임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높여주신 것임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임을 더더욱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사탄의 독소에 사로잡혀 살면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당해야 할 책임이 크고 저의 본성이 위험하기까지 하니 혹시라도 진리가 없어 큰 악을 저지르게 된다면 징벌받게 될까 봐 심히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곤혹스럽습니다.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의 말씀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나에 대한 너희의 인식은 어디 이런 오해뿐이겠는가? 하나님의 영에 대한 모독과 하늘에 대한 모욕은 더 많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의 이런 믿음은 다만 너희로 나와 더 멀어지게 하고, 나와 더욱 적대하게 할 뿐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의 역사로 너희는 많은 진리에 대해 식견도 있게 되었지만, 내 귀에 들리는 것이 다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는가?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너희들 가운데 몇 명이나 되는가? 너희는 자신이 진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른다고 여기지만, 진리로 인해 진정으로 고통받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가? 너희 속에 품고 있는 것은 다 불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누구나 다 똑같이 궤사하고 교활하다고 여긴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마치 천둥 소리처럼 귀에 들려왔는데 저로 하여금 곤혹과 고통 속에서 두려워 떨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영에 대한 모독”, “하늘에 대한 모욕”, “너희 속에 품고 있는 것은 다 불의이다.”라고 하신 이런 말씀들은 마치 저의 마음을 찌르는 날 선 검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진노의 성품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지금 저의 상태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 성질이 너무나도 심각했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되니 패역한 저의 마음이 좀 돌아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구하면서 제 안에서 드러난 것들을 성찰하고 해부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많이 겪었지만 하나님을 알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더 심하게 오해하고 경계하면서 마치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처럼 모든 불의를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여러 해 동안 체험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갈수록 가까워지고 갈수록 정상적이 된 것이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과 더욱 큰 간격과 거리가 생겨 저와 하나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깊은 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설마 이것이 내가 여러 해 동안 얻은 수확이란 말인가?’ 이때에야 저는 저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 때문에 양심을 배반하고 여러 해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치르신 심혈의 대가와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양성을 잊고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사탄의 독소로 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 그릇된 관점을 돌려세우기 원합니다.”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2013년 6월 15일 상면의 형제님 설교 교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가는 길이 전부 적그리스도의 길이기에 결국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오직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사역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악인은 모두 드러나 도태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각기 부류대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지위와 권력이 있게 되면 온갖 악을 행하여 드러나게 될까요? 지위가 사람을 해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 실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확실히 사람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라면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온갖 악행은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위가 없을 때는 악도 행하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지만, 만약 지위가 있게 된다면 온갖 악을 행하게 됩니다…”(<생명 공급의 설교 교통ㆍ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진리 실제를 체험하고 진입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저는 이 교통을 통해 제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관념이 얼마나 그릇되고 터무니없고 황당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진리를 추구하는 길로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지위가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지위가 있다고 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길로 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 진리를 사랑하느냐에 달렸고, 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좌절’을 겪고 이제는 지위에 대해 좀 담담해져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작은 풀이 될지언정 큰 나무가 되는 것도 추구하지 않으니, 자신의 분수를 지킬 수 있고 진리도 잘 추구할 수 있으며 본분도 잘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집에서 다른 사람을 발탁하고 저를 발탁하지 않아도 더 이상은 예전처럼 고통스러워하거나, 연약해지거나, 또는 소극적이 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표현들 때문에 자신의 성정이 좀 변화된 줄 여기고 이미 베드로의 길에 들어선 줄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런 사실과 진리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진면목을 분명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난 결코 지위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간사하고 교활해졌어. 여러 해 동안 책망을 겪으며 나는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진솔하고 진실하게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더욱더 자신을 보호하면서 항상 앞날과 운명을 염려하였고, 또 ‘지위가 높으면 위험하다’라는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어. 이게 어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인가, 어디 베드로의 길을 가는 표현인가?’

저는 또 저의 안에 있는 그릇된 관점에 비추어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함에 있어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의 131번 ‘자신의 본분과 위치를 정하는 원칙’과 155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원칙’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베드로가 기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당신이 아시고, 제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아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섭리대로 하기 원하고, 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오로지 당신만이 아시나이다. 비록 사탄이 저를 이렇게 우롱하여 제가 당신을 거역한 적도 있었지만, 당신은 그것으로 인해 저의 과오를 기억하시지 않고 그것에 따라 저를 대하지 않으시리라 믿나이다. 저는 저의 일생을 모두 당신께 바치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른 어떤 희망이나 타산도 없으며 오직 당신의 생각과 뜻대로 할 수 있기만을 구하나이다. 저는 당신의 쓴잔을 마시기 원하옵고 당신의 섭리대로 하기 원하나이다.』

『사람의 본분과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은 상관이 없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의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가 없어야 한다. 이것을 비로소 본분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복을 받는 것은 사람이 심판을 거친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 성정이 변화되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지 화를 입든지 피조물로서는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해야 하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갖추어야 할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해서는 안 되고, 또한 화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 본분하기를 거절해서도 안 된다. 내가 너희에게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기의 본분을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자기의 본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다시피, 베드로는 일생 동안 오직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하기를 추구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안배에 따랐고, 자신의 선택과 요구가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시든 그는 다 순종하였고, 결국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성공하게 된 이유는 그에게 높은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도였고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뭇 교회를 목양하는 중요한 부탁도 그에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도의 지위에서 사역을 하지 않고 다만 묵묵히, 근면 성실하게 피조물의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참으로 순종하는 것을 추구하였으며, 자신의 본분에서 전력을 다해 헌신함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데에 도달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성공한 비결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베드로의 기도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에 대조해 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을 두드려 저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불순종과 거역과 대적을 보게 하였고, 또 하나님을 믿으면서 항상 바라는 것과 타산이 있었던 것도 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믿으면서 줄곧 장래의 귀착지와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본본을 좀 하면 하나님과 거래하면서 제가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확정해 주기를 하나님께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와 같은 요구로 인해 저의 사탄 본성이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하며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인성이라곤 정말 조금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본성이 너무 궤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탁을 거절했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도 거절하고는 오히려 궤변을 늘어놓으며 핑계를 대고 하나님 앞에서 ‘이치’를 따졌던 것입니다. 정말로 사탄의 졸개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었습니다.

이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본분을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자기의 본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거역하는 것이다.” 저의 마음은 깊은 자책에 빠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체험해야 하는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안배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한번 또 한번 저에게 임한 것은 모두 저의 양심과 이성을 회복시켜 저로 하여금 진정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떻게 요구하시든 저는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려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역무도한 것이기에 마땅히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로 마침내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돌려세우게 되었고, 저의 양심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집의 부탁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어느 사람이 안배한 것이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그동안 추구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이었습니다. 오늘날 저에게 진리 실제가 없고 분량이 너무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부탁을 더해 주신 것은 제가 지금 능히 감당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저로 하여금 이 본분에서 갑절로 진리를 추구하고 훈련을 받아들이고 온 힘을 다 바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에 진입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념 속에 살면서 제 스스로 자신의 본분과 위치를 확정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 심리 상태와 배경에서 본분을 하게 되면 자신은 그렇게 큰 연단도 받지 않게 되고, 너무 큰 압박감도 받지 않게 되겠지만, 그런 것을 통해 제가 안일을 탐하고 현 상태에 만족하는 타락된 성정이 드러나게 되었고, 또한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하는 것은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거나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비열한 추구 관점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년간 난 스스로 자신이 이미 진리를 추구하는 베드로의 길에 들어섰다고 여겼었지. 하지만 오늘날 사실에서 드러났듯이 난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어. 난 조금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하나님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 하지 않았고, 내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헌신하려 하지 않았어. 이게 어찌 베드로의 추구와 조금이라도 부합되는 곳이 있단 말인가?’

저는 또 찾고 구하는 중에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체험하고 실행하여 진입해야 하는 100단락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피조물로서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없이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가장 정확한 추구 방식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고, 얻는 것이 성정의 변화라면, 네가 가는 길은 정확한 길이다. 네가 육체의 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관념 속의 진리를 실행하며, 성정의 변화는 전혀 없고, 육신의 하나님에게는 전혀 순복하지 않으며, 또한 막연한 삶을 살고 있다면, 지금 네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끌어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가는 길이 실패의 길이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다 네가 추구하는 것에 달려 있다. 즉,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 길, 생명입니다. 저는 또 자신의 실제 상태에 결부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는데, 그 말씀을 보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에서 베드로의 성공의 길과 성공의 길로 가는 표현들을 모두 명백하게 밝히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성공의 길은 단지 지위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나 본분에서 자신의 선택이 없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극적인 방면에서 정복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주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른길로 가게 되면 아주 많은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 점점 인식이 많아지고 갈수록 더 순종하게 되며, 더 이상 자신의 요구와 소망과 불순물이 없게 되어 성정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에 점점 더 진입할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진실해지므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친다 해도 아무런 요구가 없고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제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고 이미 일부분 진리 실제에 진입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에서 드러났다시피, 어디 조금이라도 진리를 얻어 성정이 변화된 표현이 있었나요? 어디 조금이라도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 있었나요? 만일 정말로 진입이 있었다면 검증을 이겨 낼 수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시든 다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참으로 진입이 있어 자신의 사탄 본성의 실질을 꿰뚫어 보았다면, 진실로 하나님의 구원임을 보게 되어 더더욱 자신을 바쳐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려 했을 것입니다. 사실과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중에서 저는 비로소 자신이 확실히 길을 잘못 가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는 길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소망을 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장래의 귀착지에 대한 보장이 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르면서 적당하게 대가를 지불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줄곧 추구해 왔던 것은 육체의 누림이었던 것입니다. 일시적인 안일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 진리를 얻는 것을 원치 않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속에서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은 관점은, ‘다만 평온하게 본분을 좀 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말고 마지막에 좋은 처소만 얻으면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서 바울이 실패한 근원은 그가 하나님과 거래를 한 것에 있는데 앞날의 상과 면류관을 위해 사역한 것이고, 그의 추구에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순종과 사랑이 전혀 없었으므로 결국 실패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었다고 거듭 지적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처소를 위해 지불하는 사람은 앞으로 마지막 실패를 맞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실패하는 것은 모두 기만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처소를 논하다>에서 발췌)

이런 지불은 참된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오로지 가식과 기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을 곧게 세우고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피해 자신의 길을 가면서 본성의 지배를 받아 실패한 사람의 길로 계속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임했을 때 좋고 나쁨도 모르고 배은망덕하여 하나님께 돌려 드린 것은 전부 오해와 대적과 배반이었습니다. 이때에야 저는 자신의 본성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음험하고 악랄한지를 정확히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줄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면서도 하나님과 계산하고 있었고, 언제나 하나님과 거래를 하다 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곤 아예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것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창조주를 위해 본분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보고서도 피하여 자신의 길을 가기 때문에, 늘 실패한 사람이 갔던 길을 따라 추구하기 때문에, 늘 하늘을 거역하기 때문에 항상 실패하고, 늘 사탄의 궤계에 빠지며, 자신의 올무에 빠진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나중에 저는 또 상면의 형제님 설교 교통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항상 이런 한 가지 우려가 있습니다. ‘전 지금 본분을 하면서 적그리스도의 길을 갈까 봐 두렵고, 혹시라도 일을 잘못 처리하여 하나님을 대적할까 봐 두렵습니다.’ 이런 우려가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특히 인솔자 일꾼을 하는 사람들은 예전에 누구는 그렇게 추구했고 은사도 있었고 머리도 좋았었는데 넘어졌고, 또 누구는 설교도 잘했는데 뜻밖에 넘어진 것을 보고는 ‘내가 재주를 피우기만 하면 역시 그들처럼 나중에는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두려워할까요?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런 속박을 받을까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어떤 것이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고, 어떤 것이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로 가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왜 적그리스도의 길을 갈까 봐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한다는 것은 당신이 아직도 그 길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아직도 잘못된 길을 포기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런 문제가 아닙니까?”(<설교 교통 (9)ㆍ하나님을 사랑하고 증거하기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형제님 설교 교통에서 드러낸 것처럼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가는 길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이라는 것을 더 분명히 보게 되었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실패의 근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사탄의 이유와 핑계도 더 정확히 보게 되어 사탄의 궤계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더 큰 부탁을 받아들이기 싫어한 것도 실패의 길로 가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는 저의 본성이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고, 또 제가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사탄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지위와 명예, 앞날과 귀착지를 추구하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증오하지 않고 진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상면의 형제님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인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두 사악한 성정이 있어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한 사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고, 자신의 본성 실질에 대해서도 좀 더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잘못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돌려세우게 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고, 정확한 추구 방향과 실행의 길이 있게 되어 더 이상은 이기적으로 비열하게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안배에 따르게 되었으며, 주저하지 않고 본분을 하면서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로 저의 추구 목표를 바로잡아 주시고, 저를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사탄 본성 실질에 대해 더 참된 인식이 있게 해 주셔서 저의 실패한 근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너무 많이 빚졌고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아프게 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온전케 된 것은 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더욱이 그에게 진리를 추구하는 심지와 굳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아직 부족하지만, 더 이상 비열하고 옹졸하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저의 추구 목표로 삼아 본분에 있는 힘을 다 기울이면서 고통받고 대가를 지불해 진정으로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며, 본분하면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에 진입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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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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