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어린양이 펼친 책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제14편 말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본 사람은 역대에 없었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나라시대의 은혜를 누려 보지 못했고,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의 군왕을 보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영이 비추는 빛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광경을 예언한 적이 있지만, 그 겉면만 알 뿐 내적 의미는 알지 못했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가 땅에서 정식으로 이루어질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나라시대에 이루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사람을 어떤 경지로 이끌어 가는지를 모르고 있다. 이에 대해 아마도 모든 사람은 ‘혼돈’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실현되는 그날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어렴풋하게만 알 뿐 환히 알지 못한다. 내가 신성으로 행하는 사역이 하나님나라시대에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나라시대가 정식으로 시작됨에 따라 나의 성품을 점차 사람에게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때 신성한 나팔을 정식으로 울리며 사람들에게 선포한다. 내가 내 나라에서 정식으로 왕권을 잡을 때, 백성들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에 의해 온전케 된다. 세상의 각 나라가 분열될 때는 내 나라의 건축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출 때이기도 하다. 즉, 내가 형상을 바꾸어 전 우주를 마주할 때이다. 그때, 모든 사람이 나의 영광스러운 얼굴과 본모습을 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사탄에 의해 오늘날 이 지경으로 타락하기까지,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나는 사람에게 갈수록 감춰진 존재가 되었고, 갈수록 심오하여 헤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은 나의 본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나’와 직접 접촉한 적도 없다. 그저 신화나 전설 속의 ‘나’에 대한 상상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나’의 모습을 돌려세우기 위해 나는 사람의 상상, 즉 관념에 근거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나’를 상대하였다. 이것은 내가 사역하는 원칙이며, 그 누구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사람이 내 앞에 엎드리고, 내 앞에서 나를 경배했어도, 나는 사람의 그런 행동을 기뻐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내 형상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속에 나의 성품이 자리하지 않은 관계로 사람은 나의 본모습을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사람은 나를 대적했거나 나의 행정을 범했다고 생각했어도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나는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고 긍휼을 베푸는 하나님이거나 말한 대로 하지 않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일 뿐,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날마다 우주 위에 서서 살펴보고, 또 자신을 낮추고 내 처소에 은밀히 거하면서 인생을 겪으며 사람의 모든 행위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진정으로 나를 위해 내놓지 않았고, 그 누구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고, 내 앞에서 의지를 다지며 자신의 본분을 지킨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그 누구도 나를 자신의 마음에 거하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생명처럼 나를 중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도 실제 속에서 내 신성의 모든 속성(원문: 所是)을 보지 못했고, 실제적인 하나님 자신과 접촉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물이 사람의 온몸을 삼킬 때, 나는 사람을 죽음의 물에서 구해 내어 그들에게 다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었다. 사람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을 때, 나는 사람을 죽음의 벼랑 끝에서 끌어올려 삶의 용기를 주었고, 나를 생존의 근본으로 삼게 했다. 사람이 나를 거역할 때, 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역 속에서 나를 알게 했다. 나는 사람의 옛 성품으로 인해, 또한 나의 긍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고 개과천선하게 하였다. 사람이 기근에 빠졌을 때, 숨이 넘어가기 직전일지라도 사탄의 간계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그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빼앗아 왔다. 사람은 나의 손길과 나의 자비로운 얼굴과 웃는 얼굴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르고, 나의 위엄과 진노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사람은 나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사람의 연약함을 ‘트집 잡을 기회’로 삼지 않았다. 내가 인간 세상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있기에 나 또한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려 준다. 다만 사람이 패역하고 배은망덕하기 때문에 나는 사람에게 정도에 따라 합당한 형벌을 준다.

나는 사람이 바삐 보낼 때 감추고, 사람이 한가할 때 그들에게 나타난다. 사람은 내가 ‘만물박사’이고, 구하면 반드시 들어주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상상한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오는 이유는 단지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지, 내 앞에서 나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은 병세가 위중할 때는 지체할 세라 내게 도움을 청하고, 환난 속에 있을 때는 역경에서 벗어나려고 최대한 내게 고충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안일할 때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평안하고 행복할 때에도 자신과 더불어 즐기자며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안’에 행복이 가득할 때, 사람은 일찌감치 나를 한쪽에 내버려 두거나 문전박대하고서는 즐겁게 온 집안의 행복을 누린다. 사람은 옹졸하고 속이 좁아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이토록 사람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하나님인 나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즐겁게 웃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그들에게 버림 받았는지 모르고, 사람이 넘어졌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그들의 지팡이로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또한 사람이 병마에 시달릴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그들의 ‘의사’로 불려 갔는지 모른다. 얼마나 잔인한 인류인가! 그야말로 이성도 없고 도의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인정’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인간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가 어려웠다.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오늘날과 견주어 볼 때, 너희는 조금이라도 변화했느냐? 지난날의 성분들이 오늘날에는 줄어들었느냐? 여전히 새로운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더냐?

나는 온갖 모진 시련과 고난, 그리고 인간 세상의 모든 우여곡절을 겪었고, 사람들 가운데서 오가며 여러 해를 사람과 함께 생활했다. 하지만 사람의 성품은 얼마 변화된 것 같지 않다. 또한 옛 성품이 사람의 내면에 뿌리내려 싹트기라도 한 듯 사람의 옛 성품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았고, 그저 원래 상태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본질은 바뀌지 않고 방식만 많이 바뀌었다. 사람은 모두 나의 눈을 어지럽게 함으로 어물쩍 넘어가 나의 기쁨을 사려고 나를 속이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의 ‘수작’을 기뻐하지도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둘 뿐, 그 때문에 격노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어느 정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가 모두 한꺼번에 ‘처리’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천박한 존재이므로 본인조차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또다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단 말이냐? 사람은 모두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저울에 달아 보아야 한다. 사람이 나를 거들떠보지 않으니 나 역시 사람을 진정으로 대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를 중시하지 않으니 나 역시 사람에게 많은 공을 들일 필요가 없겠다. 이러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나의 백성이 된 너희 역시 이런 상황이 아니더냐? 내 앞에서 다짐을 했다가 폐하지 않은 자가 누가 있느냐? 그 누가 내 앞에서 잦은 다짐을 하지 않고 세웠던 다짐을 변함없이 오래 지키느냐? 사람은 상황이 순조로울 때는 내 앞에서 다짐을 세우지만, 역경에 처할 때는 그것을 백지화했다가 그 일이 지나고 나면 다짐을 다시 주워 내 앞에 내놓는다. 설마 내가 사람이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 온 폐품을 마구 받아들일 정도로 그렇게나 천하단 말이냐? 사람들 중에 자신의 다짐과 정절을 지키는 자는 매우 적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제물로 바치는 자도 매우 드물다. 너희 또한 이러하지 않더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한다면 내게 미움받고 버림 받을 것이다!

1992년 3월 12일

이전:제13편 말씀

다음:제15편 말씀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