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집(d) 간증을 굳게 서려면 하나님 말씀과 참된 믿음에 의지해야 한다

【107-D-1】

하나님 말씀 몇 단락 읽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 이 책을 펼쳐 보겠습니다.

“593.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면 이러한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데, 그가 살아 내는 것은 진리이며 증거하는 것 역시 진리이고 하나님의 소시와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에서 발췌)

“597. 하나님이 현재 하는 사역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 연단을 가져다준다. 연단 속에서도 여전히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얼굴을 가리든지 혹은 말씀하지 않거나 역사하지 않든지, 여전히 한결같이 추구할 수 있다. 설사 하나님이 너를 싫다고 해도 네가 여전히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증거를 굳게 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601.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가운데서 자기의 육체를 저주할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의 육체를 증오할 수 있고 절대 불평하지 않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는다면 간증을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어느 한 정도까지 연단을 받아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고분고분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다른 요구가 없고 관념도 없게 되면 그때 하나님이 너에게 나타난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602. 그러므로 너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위해 증거해야 한다.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끝까지 가야 하며, 설사 마지막 숨이 붙어 있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라 하며 굳세고 드높은 증거라 한다.”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607. 사람이 최후에 하나님을 위해 어떤 증거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을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그의 성품은 바로 공의이고 진노이며 역시 형벌이고 심판이다.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608. 매 단계에 성령이 역사하는 동시에 모두 사람이 증거를 해내야 한다. 매 단계 역사는 모두 하나님과 사탄과의 한 차례 싸움이다. 싸움의 대상은 사탄이지만 역사하여 온전케 할 대상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효과에 도달했는지의 여부는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한 것이 어떠한지를 보는 것이다. 이 증거가 바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 대한 모든 요구이고, 사탄 앞에서 하는 증거이다. 이 증거도 역시 하나님이 역사한 효과의 입증이다.”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609. 진정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해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 사람이 하는 증거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모가 있는 기초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충동적인 감정에 의하여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에 의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해야 하고 하나님의 실제를 알게 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 증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인 것이고 실제가 있는 것이고 실제적 의의와 가치가 있는 것이며, 피동적인 것이 아니고 텅 비고 의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에서 발췌)

“610. 최후에 너에게 어떤 간증을 하게 하는가? 말하자면 네가 더러운 땅에 태어났어도 성결하게 될 수 있고 더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 태어났어도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점유되지 않고 사탄에게 시달리지 않고 전능자의 수중에서 살게 된 것이 간증이고 사탄과 싸워서 이긴 증거이다.” (≪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107-D-2】

지금 어떤 때인지 사람들은 다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이고 역시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의 국도 복음 확장 시기는 바로 하나님 선민이 어떤 본분을 할 수 있는지 또 진실한 증거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가장 결정적인 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구원받기 위해서이고 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당신이 구원받은 사람이고 온전케 된 사람임을 무엇으로 실증할 수 있습니까? 관건은 당신에게 간증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에서 정말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해낸다면 이러한 사람은 틀림없이 구원받은 사람이고 틀림없이 온전케 된 사람입니다. 만약 어떠한 간증도 없고 이긴 간증도 없고 선행의 증거도 없다면 그가 구원을 받거나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심에 실제를 가장 중요시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한 사람을 축복해 주신다면 이 사람에게는 진실한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율법시대의 아브라함과 욥, 이 두 사람은 다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이 있었고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소돔이 하나님께 훼멸될 때 롯도 역시 선행과 의로운 행위가 있었으므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의 역사를 막론하고, 특히 시대를 끝마치는 역사에서 하나님께 구원받고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진실한 간증과 충분한 선행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모든 사람은 마음 속으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고 큰 죄도 짓지 않았으니 하나님 이름을 지키고 끝까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사람이겠지 뭐.”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말은 믿을 만합니까? 정말 믿을 만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 이 생각으로 산다면 구원받으려는 소망은 아마 수포로 돌아갈 것이고 당신은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의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 말씀에 의해 선행을 예비하고 간증을 서게 되면 마지막에 당신의 바람이 수포로 돌아갈 정도까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바람에는 근거가 있습니까? 하나는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이고 하나는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는 다 없고 그저 이 이름을 지키고 지금까지 따라올 수 있는 것만으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장담한다면 아마 타당하지 못하고 가망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기에 일을 하심에 다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이 없고 일을 하심에 있어 실제를 가장 중요시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감에 있어서 어떤 방면이 가장 관건이겠습니까? “말씀하면 꼭 그대로 하고, 그대로 하면 꼭 이루며, 이루면 꼭 영원까지이다” 천지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이 정도까지 말씀하신 대로 하시고 하나님이 이 정도까지 신실하신데 당신은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한 믿음이겠습니까? 당신은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100%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의 그리스도이심을 100% 인정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진실한 믿음이라고 여깁니까? 이러한 믿음을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가장 작고 가장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이는 최저 기준인데 이것마저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진실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성취하고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공의롭고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하신 매 마디 말씀은 다 말씀하신 대로 성취되고 실행됨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권병(역주: 권세)과 능력이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이 정도까지 믿을 수 있다면 곧 욥과 아브라함의 믿음보다 더 큰 것입니다. 만약 정말 이런 믿음이 있다면 진리를 추구함에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도 다 힘이 나게 되는데 이것은 진실한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동안 추구하다가 고생하거나 좌절을 좀 겪으면 힘이 빠지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믿음이 부족해서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상고하다 보면 “하나님 말씀은 너무 권병 있어요. 하나님 말씀은 정말 진리네요! 이 말씀은 다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고 다 응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저도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겠어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진리를 실행해야만 진정한 인생이고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며, 사탄 철학에 따라 살고 자신의 잔머리로 산다면 어리석고 수치스러우며 무능하고 나약한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또 힘이 생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저는 지금 늘 소극적인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저는 지금 진리를 실행하고 싶은데 힘이 나지 않아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안 되네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형제자매들을 인내와 포용으로 대하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라는 등등입니다. 개인적인 패괴(역주: 타락, 부패)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개인적인 패역을 배반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타산과 요구를 내려놓지 못하는데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믿음과 관계 있지 않습니까? 바로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함에 힘이 나지 않고 육체를 배반하는 것을 실행해 내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과 타산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의 믿지 않는 남편이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하는 것을 가로막는데 어떻게 할까요?” 저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주하고 그 사람과 이혼하세요. 그러면 해결되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자 자매는 등을 돌리고 가버렸는데, 이런 말을 듣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는 속으로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혼하지 않고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정상적으로 본분을 할 수 있어야 좋은 거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좋은 생각만 하네요.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한 쪽을 포기하지 않고서 되겠습니까?” 이 사람은 너무 어리석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웃기지 않습니까? (웃깁니다.) 진실한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기 싫어하면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원칙에 따라 실행하지 않고 오히려 사탄의 방법으로 서로 좋게 타협하려고 하는데 그런 길은 없습니다!

【107-D-3】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간증을 하려면 무엇에 의해 도달해야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역사를 통해 온전케 됨으로 도달하는 것이며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사탄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할 수 있어 실제로 살아 내는 것에 의해 도달하게 됩니다. 진리가 없으면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할 수 있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꿈 꾸는 것으로써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환상입니다. 간증을 아무렇게나 해낼 수 있는 줄로 생각합니까? 당신이 하나님께 “사탄의 손발을 묶어서 저를 학대하지 못하게 해 주시고 그것이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따르면서 본분을 할 수 있는 것을 허락하게 해 주시면 제가 간증을 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기도가 성립됩니까? 이러면 안 됩니다. 진실한 간증은 사탄과 싸워서 얻는 것입니다. 고생을 해야 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며 위험에 부딪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어도 굽히지 않고 때로는 피를 흘려야 되고 희생을 해야 합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타협하는 길을 가려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입니다. 분량도 없으면서 간증을 서려는 것은 환상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서려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여 어느 정도 갖춰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며 그 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단 시련과 환난이 임하면 꼭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지금 각 교회에서 일부 문제를 제출하였는데 어떤 문제들은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방금 제가 이러한 문제를 교제할 때 이미 분명히 다 말했습니다. 진리가 없으면 안 되고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간증을 서려면 그 칼을 들어야 했습니다! 자기의 독생자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보통 사람은 칼을 들 수 있습니까? 들 수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간증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남편(아내)이나 아들딸도 버리지 못하는데 아브라함처럼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나 외동딸을 바치라고 한다면 더더욱 바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없으면 큰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서약합니다. “저는 한평생 배우자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약속할 때는 결혼할 사람이 없었지만 약속을 하고 나서 결혼할 사람이 생기니 바로 자기가 한 약속을 거두어들이려 합니다. 이것은 진실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 허락될 때는 하나님을 위하여 화비(역주: 헌신, 소비)하고 좌절이나 환난이 있으면 낙담하고 후회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진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그를 버렸을 때는 하나님을 위해 화비했는데, 남편이 어느 날엔가 다시 재결합을 요구하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이런 것이 진실한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던 중에 좋은 일자리가 생기자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이것이 진실한 믿음입니까? 이것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면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솔자 일꾼이 되어 지위의 복을 추구하지 말고 실제 사역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고 해도 실행해 내지 못하고 늘 지위의 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형제 자매들이 무엇 때문에 나를 높이 보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나한테 열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그저 미지근하게 대할까? 무엇 때문에 나를 둘러싸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나를 거들떠보려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날마다 하고 이러한 일의 구속만 받는데 본분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요만한 일에도 그가 본분 하는 데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에 대한 충심과 사랑에 영향을 주는데 이것은 진리가 없고 분량이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만약 진리가 있다면 ‘이 일은 자연스런 일이야. 형제자매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보든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뿐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내 자신의 책임과 의무로 여겨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겠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람은 진실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존경하여 크게 높일 수 있으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없는 사람은 늘 육체의 정욕 속에서 살고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육체를 만족시키려 하고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데 이러한 사람은 차츰차츰 바리새인으로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를 잃기만 하면 가는 길은 자연히 치우치고 그가 한 모든 말과 행위는 자연히 모두 육체에 속하고 패괴된 인류의 행위 표현에 속하여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간증을 설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고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하려고 한다면 우선 먼저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진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반드시 자주 진리를 교통하여 진리의 실질과 진리의 권병, 그리고 진리의 존엄과 진리의 능력 및 진리가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고 무엇을 온전케 하며 무엇에 도달할 수 있는지 모두 꿰뚫어 보고 깨닫게 되면 자연히 진리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되고 진리를 사랑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탄의 철학들을 좋아할까요? 사탄의 철학과 육체에 속하는 물질세계의 것들을 무엇 때문에 포기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사람이 이러한 것들이 정말 쓸모가 있고 그것이 없으면 정말 살 수가 없고 무조건 형통치 못하고 사람도 우러러보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런 것들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배워야 되고 꼭 잡고 있고 꼭 지켜야만 세상에서 형통할 것이라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데 근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이 모든 진리의 가치와 용도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가 가져오는 효과, 사람에게 주는 구원과 변화 및 진리가 성취하는 것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의의를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돈은 참 좋은 거야.”라고 말하면서 진리가 참 소중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눈먼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진리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진리를 떠나면 바로 흑암이고 멸망이며 진리는 사람의 죄를 정합니다! 당신이 만약 진리를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진리도 당신을 멀리하고 당신이 만약 진리를 잡지 않으면 당신은 흑암 속에 빠지며 당신이 만약 진리를 얻지 못하면 당신의 결말은 곧 죽음입니다. 현재 사람은 마땅히 이런 문제들을 상고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꿰뚫어 보고 분명히 알게 되면 많은 일들은 자연히 해결됩니다. 당신은 “저는 돈을 내려놓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는데 큰 화재가 닥친다 해도 내려놓지 않겠습니까? 불이 집을 덮칠 때 당신은 목숨을 잃을까 봐 죽어라 달릴 것입니다. 돈과 생명 중에 당신은 어떤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까? 돈을 선택하고 생명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방인과 같고 생명을 선택하고 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나마 진보가 있어서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생명이 하나 있습니다. 진리를 얻으면 진정한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인데 당신의 기존의 육체 목숨보다 더 소중합니다. 진리의 소중한 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 일을 상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있습니다.)

【107-D-4】

우리는 왜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까? 왜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진리를 얻어야 합니까? 어떤 진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 사람을 마음에 안 들어하고, 저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고, 그 사람을 보면 유달리 화가 나고 어떤 사람들을 유별나게 미워하면서 진리가 소중한지는 못 보고 무엇이 영원한 생명인지 모르며 자신의 죽음이 경각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를 중시해야지 아직도 이 사람을 못마땅해 하고 저 사람을 눈에 차지 않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겠습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약 한쪽 팔다리가 당신을 지옥으로 가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한 쪽 눈이 당신을 지옥으로 가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의 그쪽 눈을 파내어 지옥에 던져 버릴지언정 온몸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럼 당신의 두 눈이 교회의 그 누구도 눈에 차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결해야겠습니까? 파내서 지옥에 던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두 눈은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영향을 주고 당신을 망치려고 하기 때문에 좋은 눈이 아니며 귀신의 눈이어서 골치 아픕니다. 진리에 공을 들이고 빨리 매일 진리를 종합하여 귀납해야 합니다. “진리를 종합하여 귀납한다”는 무슨 뜻입니까? 바로 “구원에 이르려면 반드시 어떤 진리를 갖춰야 하는가? 내가 어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추구하는 것이 가장 관건인가? 어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가장 관건인가? 어떤 중요한 진리에 대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잘 모르고 있는가? 그 부분을 빨리 깨닫고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러면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장악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만이 진리를 실행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귀납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엔가 진리를 깨닫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제가 끝내 진리를 좀 실행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좀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을 믿어 성과를 좀 얻고 실제가 좀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신 마음의 조그마한 진실된 위로가 됩니다! 지금 당신에게 몇 천, 몇 만 위안을 준다고 해도 위로를 살 수 없고 평안을 살 수 없으며 더구나 기쁨을 살 수 없습니다. 진실된 즐거움은 돈으로 사온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려면 날마다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어떤 가정 주부를 보면 살림을 정말 잘합니다. 집안을 얼마나 깨끗이 정리하는지 먼지 하나 안 보이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즉 부지런한 것입니다! 그녀가 공을 거기에 들였기 때문에 자연히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그가 만약 게으르다면 이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효과를 보려면 부지런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당신이 게으름을 피우면 효과가 없습니다. “할 일이 없으면 하나님 말씀 좀 보세요!” “안 돼요.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술 마시면서 고기를 먹으면 혹시 모를까 아니면 같이 수다 떨어도 돼요.” 이러면 끝장입니다. 이러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마땅히 본업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됐으니 “진리 추구할 좋은 기회를 잃지 말고 교통 좀 합시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교통이 깊든 얕든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공을 거기에 들여야 합니다! 소질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 교통해요. 진리 실제에 어떻게 진입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인식이 있는지에 대해 좀 나눌까요.” 이러한 주제로 나눈다면 진리에서 수확을 얻게 됩니다. 진리에서 나날이 수확이 있고 매사마다 수확이 있게 되면 세월이 쌓이면 진리를 깨닫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공을 들였습니까? 공을 다 어디에 들였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지 않고 잡담하는 데에 들였습니다. 이러쿵저러쿵 남의 흉을 보면서 함부로 말하고 수다를 떠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본분을 하면 자신을 단속하게 됩니다. 당신이 가정을 버리고 교회에 와서 본분을 하면 형제자매들과 접촉하게 되고 본분과 관계되는 일을 합니다. 이러면 당신의 마음은 본분에 있고 형제자매들한테 있게 되는데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고 생명 진입을 교통할 기회가 더 많아지기 때문에 효과도 더 좋은 것입니다. 만약 본분을 하지 않고 집에서 살림하고 출근하면서 여가 시간에 집회를 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세상의 일에 더 많이 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하는 것은 하나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가장 유리한 조건입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하는데 몇 년이 지나니 스스로 진보된 것 같고 재미를 보게 되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 참 좋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늘 흑암에 빠지고 이것의 통제를 받고 저것에 곤혹스러워하며 결박당하여 어떤 일에서도 길을 찾지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하고 사는 게 힘들기만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나면 다릅니다. 만사를 초월하고 해방받아 자유로운 경지에 들어가 진리의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데 모든 것이 간단하고 쉬워집니다. 진리는 바로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없을 때는 김○○가 한 마디 하면 멍해지고 이○○가 또 한 마디 대꾸하니 어리벙벙해지며 박○○가 또 한 마디 하면 어수선해지는데 누가 뭐라고 하든지 다 통제를 받습니다. 거짓 인솔자나 적그리스도가 미혹하면 따라갑니다. 악령이 역사해도 따라갑니다. 진리가 없으면 불쌍하지 않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10년, 20년을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면 다릅니다. 첫해에는 멍하고 진리가 없어서 갈피를 못 잡지만 이듬해에는 길이 생겨 쉬워지고 마음속이 비교적 분명해지고 3년째에는 환히 알게 되며 4년째에는 진리의 실제에 진입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빠릅니까! 진리가 있으면 참 좋지요? (그렇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면 무엇 때문에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 낼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 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진리가 없으면 지식과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게 되는데 이는 어떤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입니까? (흑암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추구하면 갈수록 흑암해지지요? (그렇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흑암해지지만 정치가들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니 마지막엔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원자탄을 꺼냈습니다. 그래서 세계 대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그렇게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재난을 일으키는데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어디로 도망가겠습니까? 도망갈 곳이 없으니 거기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덩달아 고생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전쟁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인류가 자멸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이런 결말뿐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어 세상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있으니 많은 평안을 느낍니다. 당신이 만약 진리를 얻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면 이것은 밑천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이 효과에 도달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이 당신에게서 효과에 도달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얻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환난ㆍ국도ㆍ인내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순복함으로 인해 당한 모든 고난이 당신의 간증이 되었는데, 당신은 바로 가장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런 환난과 재난은 당신의 간증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신에게 재난과 멸망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환난과 재난이 그의 간증이 되게 합니다. 재난과 환난이 없으면 당신이 어디서 간증을 하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진리가 없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재난과 환난은 당신을 무너뜨리고 멸망케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은 큰 붉은 용에게 잡혀간 후, 진리가 없고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바로 유다가 돼버렸습니다. 이는 사탄의 포로가 된 것과 같습니다. 사탄이 당신이 간증을 섰다고 인정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인정하시겠습니까? 사탄에게 당신을 참소할 꼬투리가 있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간증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사탄이 부끄러워 도망가야 하나님은 당신의 간증을 인정하십니다. 욥의 간증, 아브라함의 간증, 베드로의 간증을 보세요, 모두 사탄을 부끄럽게 했고 도망가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칭찬하셨고 사탄의 참소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107-D-5】

무엇에 의지하여 간증을 섭니까? 첫째는 믿음에 의지하고, 둘째는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러면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이 있게 됩니다. 당신에게 믿음만 있고 진리가 너무 적으면 안 됩니다. 진리가 없으면 드높은 간증도 없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함에 있어서 만약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간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한 본분은 효력을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효력은 간증이 아니므로 효력자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 일부분 사람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인성도 좋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달갑게 효력만 하고 있습니다. 그가 효력을 함에 있어서 말을 잘 듣고 효과도 있고 끝까지 효력했다면 이것도 충성된 효력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성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끝까지 효력도 견지하지 못하는데, 이건 확실합니다. 그가 왜 끝까지 견지하지 못합니까? 손해 볼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일의 경우 끝까지 효력을 했는데 국도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헛되이 효력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그의 효력은 늘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손해 볼까 봐 두려워하다 보니 끝까지 견지를 못하고 효력만 좀 할 뿐입니다. 그는 양심이 나쁜데 양심이 글렀으면 사람됨에도 꼭 실패합니다. 지식이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양심은 있어야 합니다. 양심이 없으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짐승입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효력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겠습니까? 인성이 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좋아요. 설사 평생을 효력하고 마지막에 죽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한 번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효력을 해도 저는 영광스러운 거죠.”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이런 사람은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거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효력할 수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한동안 믿다가 나쁜 짓을 하기 시작하고 본분을 한동안 하다가 나쁜 짓을 하며 나쁜 짓을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마치 나쁜 짓을 몇 번씩 해야만 마음이 편안해 할까요? 어떤 본분을 하든지 좀 오래 했다 하면 오만해져서 거들먹거리며 다 얕잡아 보고 자격이 있다고 여기면서 멋대로 지껄이고 공연히 트집만 잡으며 인솔자와 일꾼과 맞서고 자리다툼을 시작하며 못마땅한 듯 하나님 집과 이치를 따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무엇 때문에 본분을 좀 했다 하면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닙니까? 이것을 가리켜 본성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금방 본분을 시작할 땐 스스로 자격이 없고 아직 상황 파악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본분의 상황을 파악하고 뭐든지 분명하게 알면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는 그릇된, 엉터리 주장을 퍼뜨리고 그의 관점과 견해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좋은 사람은 한동안 본분을 하고는 “하나님 집은 이렇게 사역하고 이렇게 안배하네요, 맞습니다! 이것은 진리에 부합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니 저는 잘 순복하겠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고 진리를 교통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누가 하는 일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방해하고 교란하는 상황이면 “이 문제는 바로잡아야 하니 같이 도와서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집에 제기해서 이런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할 수 있게 해야 돼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양심 이지가 있는 사람이고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에게 이런 표현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기에 그의 관점은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한동안 하면 좋은 사람이든 악인이든 본성이 다 드러납니다. 사실 그가 드러나기 전에 사람의 생김새가 이미 사람의 본성을 30~50% 말해 줍니다. 어떤 사람의 생김새를 보면 바로 “악인이야, 나쁜 사람이야, 저 사람 별로예요.” 삐뚤고 일그러진 모습을 봐도 좋은 놈이 아닌 게 보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김새를 보면 단정하고 정직합니다. 어떤 사람은 생김새만 봐도 순한 양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김새를 보면 늑대, 맹호, 멧돼지, 들소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김새부터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무던하고 얌전하고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합니다. 어떤 사람의 생김새는 비교적 영리합니다. 척 봐도 긍정적인 인물이고 기품이 있고 소질이 있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사람과 사람은 이렇게 다릅니다. 생김새에서 일부분을 볼 수 있고 또 “오랫동안 지내면 사람 마음을 알기에” 완전히 드러나서 철저히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본분을 할수록 경력을 많이 하고 진리를 더 깨닫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힘을 낼수록 스스로 자격이 있어 보이고 더욱 오만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며 자신을 나타냅니다. 결국 한 가지 일에서 크게 드러나면서 어떤 사람은 악인으로 하나님 선민에게 간파되었는데, 너무 악해서 빨리 처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골칫거리로 되기에 빨리 내쫓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 하다가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크게 받고 회개하고 좀 인식을 하는데, 그러면 괜찮으니 계속 본분을 하게 합니다. 본분을 한동안 하더니 또 드러납니다. 아주 오만하고 자신을 높이고 사람을 괴롭히고 짓누르기를 즐기며 사람을 다 자신의 권력 아래에 두려 하고 자신에게 정복되게 통제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일부 하나님 선민들은 일어섭니다. “이건 악인이네, 이래서야 되겠는가, 빨리 폭로하고 적발해야 돼.”, 결국 하나님 선민들이 그를 다 버립니다. 사람은 교회 내에서 이런 사실을 겪은 후 모두 분별이 있게 되고 진보합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사역을 돌이켜보고 하나님께서 전에 하셨던 말씀을 돌이켜 보면 “전부 응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실제적이에요. 하나님의 사역 중에 정말 많은 악인과 불신파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드러났어요, 이러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 선민이 생명이 자라날 수 있도록 효력을 한 거예요, 하나님은 너무나 지혜로우십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면 꼭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꼭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할 수 있고, 사람은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을 믿고 갈수록 믿음이 커지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진리를 깨달아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집니다. 깨달은 진리가 적을수록 믿음도 따라서 작고 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첫 믿음은 바로 말씀을 보고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말세의 그리스도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것은 다 진리네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말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데 한 치도 틀림없어요! 확신합니다, 믿겠습니다!”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처음에 교회에 들어올 때 단지 이러한 믿음만 가집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정말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까? 시련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얼마나 많이 겪든 용감하게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요만한 믿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외에 하나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대해 인식해야 더 큰 믿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능력이 있고 모두 진리이고 권병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성취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다 응하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권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 진실한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하나님을 따라 끝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한 믿음입니다.

문제 해답

【107-D-6】

문제(1) 매번 환경이 임하면 허영심과 체면, 지위와 명예, 조화로운 협력이 없는 것 등이 드러납니다. 혼자서 상응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입하고 마음 상태를 조절하며 정형을 해결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패괴 성품만 인식하는 데에 그칠 뿐 실제적으로 실행할 길은 없고 사탄의 본성을 진실로 배반하여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늘 도달하지 못합니다.

아래와 같이 답함: 문제점은 다 아는데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에 부딪쳐 드러나고 실패하거나 패괴가 유로되면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시할 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거나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줄 모릅니다. 이것은 추구 상의 오류입니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대체할 수 있습니까? 대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알아가지 않는다면 제 자신을 평생 알아간다 해도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없다면 자신의 패괴 실질을 아무리 깊게 인식할지라도 성품 변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효과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 성품의 변화는 무엇에 의해 도달하게 됩니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통해 도달하게 됩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세 가지 마음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을 갖고 진리를 실행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없게 됩니다. 그럼 사람은 왜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는 진리를 참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리를 진실로 깨달았다면 하나님을 아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가 만약 진리의 도리적인 방면만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의 실질이 바로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자신이 진실로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과장해 말한 것입니다. 그는 다만 진리의 도리만 알았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기에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관점이 자연히 변화됩니다. 그가 자신의 패괴 실질과 사탄의 갖가지 독소 및 갖가지 그릇된 논리의 실질에 대하여 철저히 꿰뚫어 보게 되면 진실로 사탄과 육체를 증오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진실로 사탄과 육체를 배반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는 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만을 안다 해서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의 패괴만 인식해도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진리의 실행을 너무 간단하게 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해야만 악에서 떠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육체를 배반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순복해야만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려는 심지가 없이 진리를 실행해 내겠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문제(2)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면의 과제에 진입함에 있어서 아주 형편없습니다. 문제에 부딪치면 늘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어느 방면에서 과제를 배우라는 것인지 몰라서 여러 가지 인ㆍ사ㆍ물 가운데 늘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형제님께서 교통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래와 같이 답함: 무엇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시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든지 여기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구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그 속엔 모두 의의가 있습니다. 그 의의는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포함합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사람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시는데 그 뜻은 무엇입니까? 그 뜻인즉 오직 성실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에 맞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며 그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성실한 사람은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 뜻입니다. 그럼, 간증을 굳게 서는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충분한 선행을 예비함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큰 붉은 용을 증오하라는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때 쉬워집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하는 것인지를 알기에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고 힘이 생깁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말씀에서 왜 이렇게 요구하고 있지? 내가 왜 이렇게 실행해야 돼?”라고 생각하면서 마치 의의가 없는 것 같고 규례를 지키고 형식만 갖추는 것 같아서 힘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가 “공부 잘해야 돼!”라고 말하면, 여기에 어머니의 뜻이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공부를 잘하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대학에 가고 앞으로 좋은 직업을 찾아 출세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또 예를 들어, 어머니가 당신에게 좋은 옷 한 벌을 사 입히고는 “아껴서 입거라, 깨끗하게 입어야 돼.”라고 하면 무슨 뜻입니까? “우리 집은 곤란하니까 옷을 막 입어서 해어지면 계속 살 수 없어, 깨끗하게 입어야 사람답고 또 그래야 헛되이 살지 않게 되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다 크면 부모님은 “훌륭한 배우자를 찾거라”고 하는데,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그 뜻인즉 “절대 빈둥빈둥 노는 사람을 찾지 말거라. 그러면 나도 따라서 걱정하게 된단다. 좋은 사람을 구해서 평생 평안하게 살아야 내가 마음 놓을 수 있어.”라는 뜻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당신을 본분하러 보내면서 “잘 믿어야 돼, 본분 잘하고.”라고 말하면 그는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그 뜻은 “너는 구원을 받는 데에 도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야, 네가 만약 흐리멍덩하게 믿어서 도태된다면 의의가 없어지고 안 믿는 것보다도 못한 거야.”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줄 알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뜻도 찾을 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단지 심심풀이로 하나님을 믿으라 하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간단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먹고 마시라고 하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계속 우리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라고 당부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최종에 이 무리 사람들이 다 온전케 되기를 기대합니다. 당신이 지금 깨닫지 못한다면 말을 잘 듣고 꾸준히 진리를 추구하세요, 그러다 보면 차츰 변하게 되어 참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되면서 당신은 사람 몸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고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이런 말씀을 하신 뜻에 대해 다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십대에 학교에 다닐 때 부모의 깊은 정에 대해 다 알 수 있습니까? 서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애를 낳고 보면 “자식을 낳지 않으면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서 그제야 부모의 뜻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다 경력해 낸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도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때로는 어떤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좀 알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진리를 깨닫게 되어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낼 수 있을 때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 기본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럼 지금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면의 과제에 대해서 제가 이렇게 말하면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깨달아야 맞는 것입니다. 깨달은 후 다시 진리를 실행할 때 어떤 말씀은 그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말씀은 정확히 알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계속 훈련하면 됩니다. 매 한 마디 말씀, 매 한 가지 일에서 다 모를 수는 없습니다. 일부분을 알 수 있으면 당신의 경력이 깊어짐에 따라 차츰 더 많은 일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완전히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에 관해서도 모두 분명하게 됩니다. 큰 붉은 용의 박해를 당하는 것과 같은 것은 지금은 이치적으로만 알고 있으나 어느 날엔가 경력을 다 하고 변화되었을 때 큰 붉은 용이 형벌을 받는 것을 보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107-D-7】

문제(3) 본분을 함에 있어서 사람이 협력해야 할 부분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저는 협력할 때 일을 최대한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려서 결국 저 자신도 힘들어지고 효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협력해야 할 부분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되는지 이 방면에 대해 투철하지 못하니 형제님께서 교통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래와 같이 답함: 사람의 협력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입니다. 사람이 노력해야 할 부분과 도달해야 할 부분을 다 도달하면 나머지는 바로 성령이 역사하실 부분과 성령이 인도하실 부분입니다. 사람이 협력해야 할 부분은 첫째, 사람은 적극적이 돼야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면 안 됩니다. 둘째, 사람이 빨리 실행해야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령을 내리시기를 기다렸다가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책임ㆍ본분ㆍ의무입니다. 셋째, 좌절과 실패를 겪을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움이나 좌절 그리고 실패가 있어도 도망가지 말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실패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실패하여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넷째, 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해야 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당신이 알고 있는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해야 합니다. 이 몇 가지 방면을 사람이 만약 해냈다면 이 방면의 노력을 구비한 것이고 남은 것은 하나님의 인도나 혹은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고 또는 하나님의 때가 되면 전환점이 생기게 되고 사람에게 길이 있게 됩니다. 사람이 협력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다섯 가지입니다. 당신이 이 다섯 가지를 다 갖추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그것은 협력이 아니며 본분을 잃은 것입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듯이 요행만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만약 사람이 협력해야 할 부분에서 실행이 철저하지 못하고 인의(仁義)를 다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역시 본분을 잃은 셈이고 충심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고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첫 걸음을 떼게 해 주십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조금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100%의 힘이 있으면 40~50%만 쓰지 말고 최소한 80~90%까지 써야 합니다. 버티기 힘들어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말며 더욱이 도망치거나 배반해선 안 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람의 양심이 작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양심이 없으면 안 되고 자꾸 불평을 해도 안 되고 문제에 부딪치면 자꾸 힘들다고 하지 말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당신의 아버지가 중풍에 걸렸습니다. 몇 달간 보살피다가 시중들기 싫어졌을 때, 그때의 최저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능력껏 하면서 욕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며 내쫓지 말고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즉 효도를 못해도 듣기 거북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저 집 자식은 괜찮네, ‘긴병에 효자 없다’고 했는데 비록 얼굴이 좀 언짢아 보이고 도우미를 찾아 시중들어서 예전처럼 세심하진 않아도 끝까지 불평하거나 구박하지도 내버리지도 않았으니 그만하면 괜찮은 거죠, 양심이 있는 셈이에요.”라고 합니다. 이것은 최저 기준입니다. 만약 한동안 모셔도 낫지 않으니 바로 “뭐 이런 더러운 병이 다 있어요! 몇 달인데 낫지도 않고, 시중 못 들겠어요, 죽든지 말든지.”라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이것은 인성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아버지를 거리에 내버리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주변에서 “저 사람은 사람도 아니야!”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협력할 부분에서 최소한 인의를 다한 것이고 능력껏 한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조금도 하지 않고 “제가 협력을 해도 성령이 역사를 안 하시는데 제가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성립이 됩니까?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한 일을 보면 양심의 기준에 미치지도 못하는데, 능력껏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 자신의 일도 이것보다는 잘하면서 하나님 집 일을 하면 차이가 납니다. 힘을 좀 쓴 걸로 만족하는 그 태도부터 불합격입니다. 사람이 협력해야 할 부분에서 불합격이 되면 끝입니다. 간증이 없습니다. 대환난 때, 하나님이 당신에게 간증을 서라고 할 때는 성령의 역사가 없어서 당신의 양심과 깨닫고 있는 진리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당신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가 바로 당신의 분량이고 당신의 간증입니다.

문제(4) 자신에게 환경이 임하여 드러나게 되면 자신의 전망과 퇴로를 생각하면서 도태될까 봐 두렵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을 알긴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절제가 안 됩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인식하고 나올 수 있었지만 나중에 일이 임하면 또 두렵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님들도 다 이런 정형이 있는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와 같이 답함: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것인데, 이건 너무 유치하지 않습니까? 세 살짜리 아이가 넘어져 부모에게 “왜 넘어져요? 저도 사람이잖아요. 엄마 아빠는 왜 넘어지지 않나요?”라는 말을 한다면 부모가 이런 말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어리석구나.” 이 예가 이 질문과 관계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환경이 임했을 때 드러난 자신을 보며 전망과 퇴로를 생각하게 되고 도태될까 봐 두렵다고 하는데, 두려울 것이 뭐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끝났습니까? 무엇을 도태되었다고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넘어지면 도태되고 지옥에 갑니까? 무엇을 지옥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하고 무엇을 진실로 드러나 도태된 것이라 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과오를 범함으로 진리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도태된 줄로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결말을 제멋대로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말을 정해 도태시키셨습니까? 당신이 감기에 걸려 “몸이 많이 아픈 걸 보니 암인가 봐, 죽겠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의 판정입니까, 병원에서 내린 판정입니까? 사람이 참 유치하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과오가 조금 있고 패괴 유로가 좀 있는 것은 지옥의 문을 똑똑 두드린 것뿐이지 연 것이 아니니까 도태됐고 지옥에 떨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죄는 단번에 지옥의 문을 여는 것이고 다른 길이 없고 이미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지옥에 갈 정도는 아니고 도태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 아닌 죄는 정상적인 패괴 유로일 뿐입니다. 당신이 정상적인 패괴 유로를 가지고 드러나 도태된 것으로 판단한다면 이것은 사람의 무지몽매가 아닙니까?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제멋대로 규례에 맞추고 용어를 마구 사용합니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그에게 검정 옷 한 벌 사주니 앉아서 밥도 먹지 않으며 “끝장이야.”라고 합니다. “왜 끝장인데?” “이건 사람이 죽기 전에 입는 수의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저에게 입힌 걸 보면 좋은 일이 있겠어요? 저를 관에 넣으려는 겁니다.” 사람이 이 정도로 우매하면 약이 없지 않습니까? 너무 무지몽매합니다! 어떤 죄를 범해야 지옥의 문을 여는 것이고 정말 도태된 것입니까? 심하게 제물을 몇십 만 위안 훔쳐먹는 것이면 지옥의 문을 여는 것이어서 구할 약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모독하는 죄도 구할 약이 없습니다. 온갖 못된 짓만 하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선민을 심하게 해쳐서 적지 않은 사람의 앞길을 막았다든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를 발탁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제명하거나 억누르고 교회 생활을 방해한다면 끝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유다가 되어 팔아 먹는다면 이런 사람을 포함하여 모두 완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집에서 반드시 제명해야 할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도태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어떠한 과오나 패괴 유로가 있지만 제명되지 않았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봤을 때 단지 패괴 유로이고 분량이 너무 작고 방탕했거나 본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며, 또 아직 최후가 아니고 큰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면 도태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자기에게 죄를 덮어 씌우지 말아야 합니다.

【107-D-8】

문제(5)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발견하면 진리를 실행하여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하고 말투가 강한 데다가 장소와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니 형제자매들이 구속을 받습니다. 나중에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오만 자대한 본성이라고 지적해 주면 제 자신도 본성이 오만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발견하면 또 말하게 되고 말하지 않으면 또 괴롭습니다. 이 방면에서 잘 장악하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와 같이 답함: 우선 먼저 자신이 말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은 좋고 어떤 방식은 나쁘며 어떻게 말하면 효과가 좋은지 형제자매들이 지적해 준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인 후 차츰 변하는 것이지 한순간에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급하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되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말을 잘못했으니까 이번에는 잘 말해야겠어, 저번에 패괴 유로를 했으니 이번에 패괴를 유로하지 않거나 적게 유로해야겠어.” 이렇게 하다 보면 차츰 진보됩니다. 이건 단번에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패괴 유로를 해결하는 일에서 단칼에 자르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이 갑자기 오지만 병을 고치는 것은 실을 뽑는 것과 같이 오래 걸린다”란 말처럼 그것은 조금씩 해결하는 것이라 속을 끓여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패괴 유로를 단번에 해결하고 싶어서 스스로 뺨을 치고 이틀 동안 밥을 굶는다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안 됩니다. 그런 치우친 방법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진리에 공을 들여 기도로 성령의 빛비춤을 많이 구하여 자신의 이러한 패괴 행위의 비열함ㆍ무식함ㆍ어리석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꿰뚫어 본 후 자신의 이런 행위에 대해 역겨워하고 스스로 제 자신을 하찮게 보게 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자신의 행위를 폭로해 보세요. 언제 나가 설교나 교통을 할 때 스스로 녹음을 해서 며칠 후에 들어보세요. ‘글귀 도리가 심하고 어떤 부분은 이지가 없고 어떤 부분은 빈말만 했네. 어떤 부분은 태도가 너무 아니구나. 마치 자신은 거룩해지고 다 좋은 것처럼 말했구나.’ 이렇게 듣고 실수투성이인 것을 보게 되면 자신이 역겨워집니다. 그리고 나서 기도를 하고 자신을 인식하며 후회하게 되는데 그 뒤로 설교하러 나가면 많이 좋아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분명히 춤추는 특기나 은사가 없는데 기어코 추려고 한다면 표현하게 놔두세요. 사람이 많을 때 추게 하여 그 추한 모습을 나타내게 하고 녹화를 해서 그것을 보여 주면 다시는 안 할 거고 추라고 해도 안 출 겁니다. 한 번 수치를 당하면 많이 나아집니다. 이것이 방법이 아닙니까?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개의치 않고 한 번 제대로 추지 못하면 다음 번에 또 추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정신이 잘못된 것이고 좀 골칫거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할 때 늘 오만한 말과 빈말을 하는데 녹음을 해서 들으라고 하면 많이 괴로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자신이 스스로 정확한지의 여부를 보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면 좋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찾아서 녹음을 듣게 해보는 것입니다. “들어보세요, 이 설교가 어떻습니까? 어느 인솔자 일꾼이 교통한 것을 제가 녹음했어요.” 사람들이 듣고 평가한 것이 전부 공격하고 풍자하고 비꼬는 것이면 그는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끝이야, 사람들이 나한테 진리 실제가 없는 것을 다 알아보네.”라고 할 것입니다. 좀 쓴맛을 보고 교훈을 받으면 좋아집니다. 고생을 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자신의 그 행위가 비열한 것을 보고 나서 자신을 증오하고 혐오하게 됐을 때 다시 하면 많이 좋아집니다.

문제(6) 그리스도의 교통에서 “가장 간단한 한 가지 실행법은 바로 먼저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하고 어디서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며 자기의 사욕과 자기의 체면, 지위를 내려놓고 개인의 동기와 속셈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것이 최저한도로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자기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는지 아니면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사역하는지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가끔씩 자신이 개인의 명예ㆍ지위ㆍ이익을 위해 사역하지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사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고 싶지만 자꾸 명예ㆍ이익의 뒤섞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방면을 실행할 때 자꾸 속박을 받는데 형제님께서 교통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래와 같이 답함: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여 최종에 사람이 진리를 얻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여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습니다. 만약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위한다면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마땅히 저주받아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전부 다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위해 조금이나마 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자신의 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어떤 고생이든지 다 겪는데 그것은 가정 관념이 너무 심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은 후에는 만약 전부 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집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런 사람의 성품과 생명에는 변화가 있는 것이고, 더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매사마다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고려하고, 매사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고 하나님이 영광을 얻기만을 생각하며, 매사에서 자신이 마땅히 하나님의 복음 확장을 위해 자신의 몫을 해야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갈수록 적어집니다. 자신을 위하면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만약 구원의 사역을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모두 마귀 사탄이어서 다들 지옥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를 얻을 수 있고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까? 당신은 본분에서 늘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 집의 사역ㆍ영광ㆍ간증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그마한 은사와 재능을 발휘하여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바치고 제 자신에게 조금도 남기지 않겠습니다.”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빛나는 인생입니다. 이기심과 비열함이 조금도 없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당신이 늘 이렇게 자발적으로 더 향상하면 점차적으로 명예와 지위를 위하는 마음이 적어지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겠다는 마음은 갈수록 커집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이처럼 진보하려 하면 됩니다. 현재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향해 진보하고, 제가 어떻게 대처ㆍ수리하든지 자신을 인식하고, 불평을 하지 않으며 “당신은 저를 생각해서 이렇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한 것이니 저는 이해하고 순복합니다!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마음은 다 맞는 것이고 모두 진리를 향해 진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반드시 온전케 해야 하고 반드시 올바른 길로 인솔하여 진리를 얻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이 사람들을 온전케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면 해결되겠습니까? (해결됩니다.) 길이 생겼으면 천천히 경력해야 합니다.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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