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집(a)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겠는가
【107-A-1】
하나님 말씀을 몇 단락 읽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 이 책을 펼쳐 보겠습니다.
“286. 하나님이 말세에 행하는 사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땅에서 하늘 위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비로소 두 번째로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비록 사람이 오늘날 보는 것은 사람과 다름없는 하나님이고 코와 눈이 있고 아주 보잘것없는 하나님이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은 너희로 하여금 이 사람의 존재가 없다면 천지가 크게 변하고 하늘이 어두워지게 되며, 땅이 혼돈하고 인류가 모두 기근과 온역 가운데서 살게 된다는 것을 보게 한다.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진작 사람을 모두 지옥에 멸했을 것이고, 이 육신의 존재가 없다면 너희는 영원한 괴수이고 시체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이 육신의 존재가 없다면 온 인류는 한차례 큰 재난을 피하기 어렵고, 말세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더 중한 징벌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이런 평범한 육신의 강생이 없다면 너희는 살래야 살 수도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다. 이 육신의 생존이 없다면 오늘날 너희가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 수 없으며 오히려 죄악이 깊은 탓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을 것이다. 너희는 알고 있는가? 만약 하나님이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느 한 사람도 구원받을 기회가 없고, 또한 이 육신이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옛 시대를 벌써 끝마쳤을 것이다. 이러한데도 너희는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 평범한 사람이 너희에게 이렇게 유익한데 너희가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287. 너희에게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육신 가운데 살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존할 기회를 얻은 것인데, 이 모든 복은 다 이 평범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만국이 모두 이 평범한 사람에게 경배하고 이 작디작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순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져온 진리와 생명과 길이 온 인류를 구원하였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모순을 완화시켰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켰고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이 소통되게 하였으며 또한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더 큰 영광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하나의 평범한 사람을 네가 믿고 앙모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는가? 이런 하나의 평범한 육신이 그리스도라고 칭함받을 자격이 없겠는가? 이런 하나의 평범한 사람이 사람들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발표로 될 수 없겠는가? 사람에게 재난을 면케 해준 이러한 사람을 너희가 사랑하고 만류(挽留)할 가치가 있지 않는가? 만약 너희가 그의 입으로 발표한 진리를 저버리고 또 그가 너희들 가운데서 생존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너희의 결말은 무엇이겠는가?” (≪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293.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하늘의 존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땅의 생존 역시 하나님의 생명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기를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주재를 초월할 수 없고, 활력을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권병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리하여 어떠한 인사든지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귀복(歸服)해야 하고 하나님의 주관 하에서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수중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294.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기에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다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순복(역주: 순종)하게 한다. 그는 만유로 하여금 다 그의 수중에 있도록 만유를 주관할 것이다. 무릇 피조물은 동물ㆍ식물ㆍ인류ㆍ산하ㆍ호수를 포괄하여 다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하늘 위의 만물과 땅 위의 만물도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하고, 어떠한 선택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두 그의 지배에 순복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규정한 것이고 역시 하나님의 권병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걷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308. 거룩함은 바로 그의 공의 성품의 대표이다. 그의 거룩함은 사실 역시 그의 공의 성품이다.” (≪제2단계 정복 사역은 어떻게 효과에 달하는 것인가≫에서 발췌)
“309. 나는 내게서 났어도 나를 모르는 모든 사람을 형벌하여 나의 진노의 전부를 나타내고 나의 큰 능력을 나타내고 나의 전지(全智)함을 나타내려 한다. 내게 있어서는 모두 공의이고 절대 불의가 없고 간사가 없고 교활이 없다. 누가 만일 교활하고 간사한 자라면 반드시 지옥의 자식이고 반드시 음부에서 살 것이다. 내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다 공개된 것이고 이루어지라고 하면 꼭 이루어지고 세워지라고 하면 꼭 세워지기에 아무도 변경시킬 수 없고 아무도 모방할 수 없다. 이는 내가 유일한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최초의 발표와 증거ㆍ제96편 말씀≫에서 발췌)
“310. 사람은 모두 그의 형벌ㆍ심판의 사역으로 인하여 그의 성품을 보게 되었는데, 이로부터 그에 대해 경외심이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하게 하고 순복하게 하는 하나님이다. 왜냐하면 그의 소시와 그의 성품은 피조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피조물보다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피조물이다. 오직 그만이 사람에게 경외받고 순복받을 자격이 있으며, 사람은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312. 공의는 바로 거룩함이고 역시 사람이 범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 성품이다. 무릇 부정한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는 모두 그가 혐오하는 대상이다. 공의로운 성품은 법률이 아니라 행정인데 하나님 나라의 행정이다. 이러한 행정은 진리가 없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 누구에 대해서도 다 공의로운 징벌인데, 구할 여지가 없다.” (≪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315.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더러운 사람이 성지(聖地)를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네가 비록 다년간 사역하였지만 결국은 여전히 더럽기 짝이 없으면서도 나의 나라에 들어가려 하는데, 그것은 이치로써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사적인 감정을 바치는 어느 한 사람에게도 이런 편리한 문을 열어놓은 적이 없다. 이것은 천규이니 누구도 타파할 수 없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걷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107-A-2】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까? “경(敬)”이란 바로 존경과 공경을 말하고 “외(畏)”란 바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말하는데, 합치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다”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거기에 도달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을 다년간 믿으면서 성경을 숙독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숙독했지만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진리를 어떻게 추구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만약 정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분명히 많은 일들을 경력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각종 수리와 대처, 실패와 좌절, 시련과 연단 등등을 포함하는데 부지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어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고서 직접적으로 생기는 효과는 바로 하나님에 대해 경외하고 순복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진리를 많이 깨달을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이 더욱 절대적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진실합니다. 진리를 적게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복하는 마음이 작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작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려면 무엇에 의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바울의 길을 걷고 즉, 바리새인의 길을 걸으면서 시종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다면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도 역시 소극적이고 연약한 것은 바로 진리를 조금도 추구하지 않아 진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20여 년 믿었습니다. 20여 년이면 사람의 반평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는 조금의 진리도 얻지 못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지도 못한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무엇에 의해 도달하겠습니까?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지금 일부 진리를 깨달았는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얼마 있는 것 같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복과 하나님을 진실되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당신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얕아 하나님을 아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혹은 깨달은 것이 도리여서 그것이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면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 사실 바로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며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일정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 성품도 진리를 깨닫는 것이 점차적으로 많아짐에 따라 참된 변화를 가져오고, 마지막에 진실한 효과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실한 효과가 곧 하나님 말씀의 진리가 사람의 생명으로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어떤 생명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이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생명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오래 믿어 끝내 성과가 있게 되었고 끝내 진리와 생명을 얻었으며 끝내 참된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진리가 끊임없이 쌓이고 진리가 사람의 생명으로 되어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생명이 어느 정도까지 자라나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데까지 자라야 합니다. 이것을 생명의 열매라고 합니다.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어 맺은 열매와 가져온 효과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상고하여 최종에 어떤 효과에 도달합니까?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는데 이때면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이 처음에 하나님을 믿을 때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긴 하지만 매우 낮습니다. “어떤 신앙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사람이 살면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안 믿으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저보고 무엇이든다 버리고 다 포기하라고 해도 되지만 하나님만은 안 됩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고 인성이 없습니다. 그러니 꼭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요만한 믿음으로는 아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아직 진리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점차적으로 경력하고 하나님의 많은 말씀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여 일부 효과에 도달하면 인류의 패괴 성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켰는지를 알게 되는데, 바로 사탄이 그런 무신론의 독소와 각종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 그리고 사람의 유전을 주입시킴으로써 사람을 세뇌시켜 결국 사람은 패괴되었고 갈수록 점점 더 깊어진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패괴되었겠습니까? 사람은 다 극도로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극도로 사악하고 간사하며 입만 벌리면 거짓말만 하는 인간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을 따랐으며 나중에 동물세계와 같이 약육강식하고 암투를 벌이고 서로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사탄에게 패괴되었습니다. 그 밖에 또 패괴된 인류의 마음속에 모두 사탄의 독소와 사탄의 그릇된 논리,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가득찬 것을 보면 사람이 그렇게 간사하고 비열하고 사악한 것은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도 사람이 아니라 다 짐승이고 마귀인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이방인들조차도 다 “귀신은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본 그 사람이 바로 귀신입니다. 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섭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함을 통해 우리는 사탄이 사람을 이렇게 패괴시켰고 이 지경까지 패괴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인류는 너무 가련합니다! 하나님을 믿고서 이 비밀을 꿰뚫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하나님 말씀의 드러냄이 아니었더라면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배워도 허사이며 이것을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경력한 후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진상을 알고 나서 세상의 흑암한 근원을 알게 되었고 사탄이란 놈이 너무나 가증스럽고 세상의 사악함과 흑암의 괴수이고 화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꿰뚫어 보게 되었고 어떤 것이 사탄에게서 오고 어떤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할 줄도 알게 되었으며, 나중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조물주의 권병(역주: 권세)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고 많은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본 것처럼 마음이 탁 트이게 하여 우리는 세계의 흑암한 근원을 보게 되었고 마지막에 하나님이야말로 조물주이기에 인류가 마땅히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인류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면 인류가 얻게 되는 축복은 너무나 크고 한량없을 것입니다!
【107-A-3】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사탄을 증오하는 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괴수이고 세상의 사악과 흑암의 총체적 근원임을 사람이 먼저 보았기 때문에 사탄을 몹시 증오하고 큰 붉은 용을 증오하게 됩니다. 사탄을 증오하고 큰 붉은 용을 증오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향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외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면을 많이 보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게 되면서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스를 수 없고 거스르면 징벌을 받고 심하게 거스르면 죽게 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이고 사람이 더럽히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도 생기고 진실한 두려움도 생기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두려워할까요? 그것은 사람에게 패괴 성품과 자기 뜻이 있고 많은 뒤섞임이 있어 때로는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노를 사지 않으려면 사람은 진리를 추구함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보호를 앙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씩 체험하다 보면 최종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최종에 이루시려는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 밖에, 이것 역시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여 최종에 도달하는 효과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어 생명으로 하기를 추구한다면 살아내는 것이 어떤 방면의 실제가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실제인데 이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씩 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진리를 조금도 추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을 10년, 20년 믿은 후에도 그에게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한쪽에 내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정말 거스를 수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간혹 며칠 진리를 추구하지 않거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속박을 받고 간혹 소극적이고 연약해져도 하나님의 긍휼은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시종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떠나 당신을 일깨워 주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한쪽에 버려져 흑암 속에 떨어지게 됩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머무른 것과 같습니다. 그 세대들은 거의 다 쓰러지고 그 다음 세대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아름다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지위와 명리를 추구하고 지위의 복을 누리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무시하여 나중에 갖은 악행을 저질러 드러나고 도태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고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지 않는다면 반드시 실패하고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품은 바로 사람이 진리를 사랑할수록,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할수록 하나님도 더욱 축복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가끔씩 과오가 있어도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고 당신에게 얼굴을 가리시지 않고 긍휼히 여기시므로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공의로우며, 사람이 만약 재삼재사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태도를 바꾸시고 노를 발하시기에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닥치는 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으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합니다. 한 가지 일, 두 가지 일, 세 가지 일…… 계속 이렇게 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공허해지고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서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셨다고 느끼게 되는데, 당신이 회개하지 않고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결국 죽게 됩니다. 나중에 사람이 깨달았을 때 빨리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 한동안은 또 상황이 조금 좋아집니다. 그런 후 한 가지 인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정말 거스를 수 없어요. 이번에 제가 하나님을 거스렸다가 큰일날 뻔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내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줄곧 회개하고 기도하고 죄를 자백해서야 겨우 회복될 수 있었어요. 더는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없어요. 어떤 일에서든지 하나님이 없으면 안 돼요!” 한 차례 이런 징계를 겪고 나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 생겼겠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어떻게 생기겠습니까?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한 차례 한 차례 경력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고, 하나님의 수리 대처를 한 차례 한 차례 받아들이고 순복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며, 한 차례 한 차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고, 한 차례 한 차례 거역하고 대적하고 방탕하여 징계를 받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생기고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이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갈수록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어느 정도로 자라나겠습니까? 악에서 떠날 수 있고 사람의 분량이 자라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별로 크지 않을 때 악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큰 악을 저지르지 않으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다’라고 여기는데, 사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서 제멋대로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이것은 작은 악행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악입니다. 작은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것은 악행입니다. 큰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여전히 제멋대로 한다면 이것을 큰 악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런 악은 어디서 온 것이겠습니까? 제멋대로 하는 데서 생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멋대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면서 스스로 큰 죄가 아니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것이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본분을 하는 것도 아니며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럼 어디에 속하겠습니까? 제멋대로 한 것에 속합니다. 이것은 진리에 어긋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이런 것은 악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는 아직 진리가 생명으로 되지 않은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가 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무엇이겠습니까? 악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곧 악을 행한 사람입니다. 인솔자 본분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늘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위해 말하는데, 겉으로 봐서는 어떤 큰 잘못을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근원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바로 악에 속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야 비로소 합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해야 하는데, 제멋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하지 않고 사심이 없이 다 하나님을 위하고 본분을 위하고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 해야 합니다. 일함에 있어서 이런 원칙이 있으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명실상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 있긴 한데 많은 경우에 악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런 마음이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했겠습니까?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너무 작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자라서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이 간단한 일입니까?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까? 도를 몇 번 듣고 마음으로 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년간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진리를 추구함에 의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이 있을 때에라야 이러한 성과가 있게 됩니다. 그것은 생명이 자라난 성과입니다! 이 사실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생명이 자라난 성과이고 성품이 변화되어 도달한 효과이며 진리가 사람의 생명으로 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간단하지 않으며 많은 고생을 해야 하고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107-A-4】
이전에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 실제에 진입하려면 적어도 7~8년 경력한 후에야 이 성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제가 늘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같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소질이 좋은 사람은 7~8년이 걸리고, 소질이 일반적인 사람은 7~8년이 아니라 10여 년, 20여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자라나는 이 과정에서 많은 일을 경력해야 합니다. 경력하고 나면 마음과 생각이 바뀌고 일을 판단하는 관점이 바뀌게 됩니다. 많은 시련 연단의 고통 특히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의 고통을 받음에 따라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화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 제멋대로 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누구에게도 불복하던 데에서부터 나중에 “진리에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사람한테는 순복하지 않아도 되지만 진리에 순복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더더욱 안 됩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전에 누구에게도 불복하다가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좀 바뀐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또 한동안 경력하여 “사람이 맞게 말했으면 그것도 들어야 합니다. 불복한다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하지 못했고 절대적인 순복도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은 또 한층 자라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처음에 실행할 때는 “사람이 맞게 말하면 들어야 하는데 누가 맞게 말할까? 인솔자 일꾼이 맞게 말하면 들어도 되는데 인솔자 일꾼이 아니고 일반인이면 들을 수 없어. 내가 깔보는 사람이면 진리에 부합되는 말을 해도 순복할 수 없어. 말을 한 이 사람이 적어도 내가 탄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말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되어야 들을 수 있어.” 이렇게 말했는데, 한동안 수리 대처와 시련 연단의 고통을 겪고 나서는 변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선택이 없어야 하고 누가 말한 것이든 진리에 부합되면 들어야 하고 3살짜리 아이가 말한 것이라도 진리에 부합되면 들어야 해.” 이것은 또 진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경력은 바로 이렇게 경력하는 것입니다. 경력한 일이 많고 받은 고통이 많아 진리를 터득하고 사람됨의 원칙도 터득하게 되면 그의 분량도 점차적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어느 정도로 자라나겠습니까? “이 사람을 내가 탄복하느냐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가 한 말이 진리에 부합되면 나는 순복하며 누가 한 말이 진리에 부합되면 나는 다 순복한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 쉽게 순복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분명합니다. “누가 말하든지 진리에 부합되면 나는 순복할 거야. 3살짜리 아이가 한 말이라 해도 진리에 부합되면 나는 탄복하고 순복하고 들을 것이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체면을 따지지 않고 순복만 할 거야.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나의 존엄이고 진리에 순복하는 것이 바로 나의 체면이고 진리에 순복하지 않고 존엄을 바라는 것은 빈 것이고 헛 것이고 쓸모없는 것이야!” 이러한 사람은 성품이 변화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성품이 정말 변화된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사람들 앞에서 이 일을 한 것이 진리에 어긋났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사죄하고 공개적으로 시인할 거야. 이런 경우에는 세게 맞아야 해! 스스로 진리를 어겼으니 누가 와서 뺨을 때려도 다 돼.” 이러한 사람은 진리에 순복함에 있어서 또 자라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누가 말하든 맞으면 나는 다 순복할 것이다. 내가 깔보던 사람이 말해도 맞으면 순복할 것이다. 나와 맞서던 사람 혹은 내가 제일 얕보던 사람이 말해도 진리에 부합되면 나는 순복할 것이다.” 진리에 순복하는 것은 조건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진리에 무조건 순복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으면 그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방면에 또 자라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것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나는 무조건 순복해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참 좋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심지가 조금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실행 원칙을 어떻게 확정합니까? 진리에 절대적으로 순복하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데에 자연히 도달하게 되는데 이렇게 원칙을 확정하면 됩니다. 이것은 경력해 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진리에 무조건 순복하는 것에 의해 도달하는데 누가 말하든지 간에 진리에 부합되면 다 순복합니다. “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대하든지 또 제가 그 사람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든지 간에 그 사람이 말한 것이 진리에 부합되면 저는 순복하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번엔 또 어떻게 그 사람 말을 듣게 됐어요? 어떻게 또 그 사람에게 복종할 수 있었어요?”라고 물으면 그는 “그건 그가 한 말이 진리에 부합되기 때문이죠. 비록 이전에 그 사람과 사이가 안 좋았고 좀 대립되는 면도 있었지만 그가 한 말이 진리에 부합되기 때문에 저는 순복합니다. 이것은 저의 사람됨의 원칙입니다. 어떠한 사람을 대하든 다 이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진리에 절대적으로 순복하여 하나님께 진실하게 순복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으면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으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하나님께 더더욱 순복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악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떻게 생길까요? “경(敬)”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 있는데, 하나님에 대해 더없이 공경하고 더없이 사랑하며 더없이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외(畏)”는 무섭고 두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뜻이 있고 패괴가 있고 뒤섞임이 있으면 매우 쉽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한 후 하나님에 대해 자연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두려움은 긍정적인 사물입니다. 만약 그것을 단지 두려움뿐이고 사람에게 공경과 존경과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 인성에는 뭔가 모자랍니다. 그는 양심이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끝입니다. 이것은 사탄에게 속합니다! 사탄에게 속한 사람은 징계와 징벌을 받으면 두려움만 있고 존경과 사랑은 없습니다. 이런 차이점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는 이 경로를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해야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효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피동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 심판 형벌 하시려면 심판 형벌하시고, 수리 대처하시려면 수리 대처하시고 여하튼 저는 반항하지도 않고 대적하지도 않으며 반대하지도 않고 악을 행하지도 않겠습니다. 저는 ‘죽은 돼지가 뜨거운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격’입니다.” 이러면 역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사람이 괜찮고 인성도 좋은데, 하나님 말씀을 아주 적게 읽어 보고, 진리를 아주 적게 상고하며, 하나님 말씀을 아주 적게 경력하고 실행하는데, 하나님 역사를 이런 방식으로 경력하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얻을 수 없습니다.) 전부 소극적이고 피동적이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진입이 없습니다. 긍정적인 것이 너무 적은데 악을 행하지 않고 죄를 범하지 않는 것에만 만족하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고 역시 좋은 사람이지만 효력만 좀 해서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런 좋은 사람은 기껏해야 충성된 효력자밖에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살아남을 수 있고 국도에 들어갈 수 있기에 작은 복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위로를 얻으시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을 온전케 하여 진리를 얻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십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효력자도 축복해 주십니다. 하지만 생명이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한 것에 속하는데 이러면 너무 아쉽지 않습니까?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다면 진리를 얻지 못하고 충성된 효력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20~30년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했다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107-A-5】
제가 이렇게 말하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면 반드시 어떤 심지가 있어야 하겠습니까?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아무도 충성된 효력자가 되기를 원치 않고 다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고 싶어 하는데 이런 마음 상태가 괜찮네요. 아주 좋습니다! 이건 맞는 겁니다. 하지만 고생을 좀 해야 하고 대가를 좀 치러야 하는데 한 가지 고비는 넘기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리 대처가 오면 정확하게 대할 수 있는가입니다. 만약 아직도 소극적이고 연약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심지가 있겠습니까? 진리에 순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면 안 됩니다. 이러한 일이 닥친 후 정말로 한두 번의 실패가 있었다면 아주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정리해 보고 교훈을 받아들여야지 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수리 대처하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원망합니다. ‘당신의 대처가 사실에 부합되지 않기에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의 대처가 완전히 사실에 부합되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가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는 원칙은 반드시 사실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의 “사실에 부합되다”가 100%인지 아니면 80%, 70%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사실에 딱 부합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조금만 틀려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도 틀리지는 않지만 이러한 실행 원칙이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맞지 않을까요? 당신이 이렇게 하면 진리를 얻지 못하고, 요구가 너무 높으며, 당신의 그 이유는 진리가 아닙니다. 당신을 대처하는 것도 사실에 100% 부합되어야 하고 또 말을 딱 들어맞게 해야 하고 단어도 적절하게 써야 하며 또 웃는 얼굴로 화내는 기색이 조금도 없어야 한다는 이 몇 가지 표준에 완전히 도달해야 당신이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는데 이 원칙이 좋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좋지 않습니까? 이것은 자기의 이치를 따지는 것이고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역함에 있어서, 본분함에 있어서 일처리 원칙을 찾지도 않고 자기 뜻대로 하며, 미움을 사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환심을 사고 찬성을 받는 일은 다 자기 혼자 합니다. 미움을 사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상면에서 알려 주신 겁니다. 우리 인솔자들이 말한 게 아니라 상면에서 말씀하신 거니까 어쩔 수 없어 그대로 전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본분을 하면 좋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좋지 않습니까? (인성이 음험하고 악독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좀 간사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마땅히 원칙대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미움을 사는 일을 다 “상면의 형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의 뜻대로 한다면 이렇게 처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한 마디로 대체하는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일함에 원칙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으며 다 자기 생각이고 다 사탄의 철학인데 매우 교활하고 간사합니다. 좋은 놈이 아닙니다! 만약 어떤 인솔자 일꾼들이 미움을 사는 일을 다 상면에 미루고, 환심을 사는 일만 하고 악인들만 사귀며, 기가 센 사람들 앞에서는 아첨하고, 연약하고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짓밟고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이러한 인솔자 일꾼은 악인이 아닙니까? 악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별이 없어 이런 일에서 하나님 집에 대해 관념이 생깁니다. ‘하나님 집에서 이렇게 사람을 대하고 처리하니 경계해야겠어. 일이 생기면 피해야지.’ 이러한 사람은 진리를 구하는 사람입니까?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이 일에서 한 가지 사탄의 철학과 법칙을 총결해 냅니다. ‘이제 방법이 생겼어.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는 것처럼 상면에서 그렇게 처리하면 나는 이렇게 처리해서 어쩔 수 없게 할 거야.’라고 여기는데, 그가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권병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가 이 일에서 진리와 원칙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경계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 (틀립니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을 경계합니까? 당신은 하나님 집에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처리함에 있어서 다 진리 원칙에 근거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 집에서 진리가 주권을 잡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까?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대하든지 다 공평하십니다. 하나님 집에서도 이렇게 실행합니다. 비록 어떤 인솔자 일꾼들이 인ㆍ사ㆍ물을 대함에 있어서 편차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그가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악인이고 조만간 도태될 것인데, 그가 하나님 집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보세요, 그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이 갖은 악행을 저지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드러나 도태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설마 이것이 하나님 집에서 진리가 주권을 잡고 공의가 주권을 잡고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단 말입니까? 하나님 집에서는 하나님이 주권을 잡으시고 하나님 말씀이 주권을 잡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만약 당신이 하나님 집에서 진리와 하나님 말씀이 주권을 잡고 그리스도께서 주권을 잡고 계신다는 것을 정말 보았다면 반드시 매사에 진리를 구해야 하고 당신의 그 사탄 철학과 법칙을 재빨리 거두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것에 의해 산다면 당신에게 유익한 점이 없습니다. 당신이 사탄 철학에 의해 살면 사람들이 보기에 당신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고,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당신은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고 아직도 사탄 철학에 의해 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드러날 것이고 도태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보았겠지요? (네.) 그러므로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너무나 관건입니다. 진리를 추구함에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100년이면 너무 길고 몇 십 년도 너무 길기에 분초를 다투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분초를 다투다”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빨리 매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진리를 구하며,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고 다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해야 하며, 몇 년 안에 합격되게 본분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실행한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추구와 간증, 당신의 성공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직도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확실히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회개하고 싶다면 먼저 어떤 일에서부터 회개해야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 집과 인솔자의 수리 대처에 순복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제멋대로 대하지 말고 이치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사람을 처리한 것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 집에서 일을 처리함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논단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데 악인과 진리를 조금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일찍이 교통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어떤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다 먼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고 다 원칙에 근거합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여태껏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대충대충 하여 속이며 줄곧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고 게을리하며 어떤 일을 하든 다 무책임하다면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필요치 않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서 많은 경우에 그래도 정상적으로 본분할 수 있고 진리가 없어서 자주 소극적이고 연약해질 뿐이라면 이런 사람은 남겨서 기회를 줍니다. 만약 10년 넘게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인성이 너무 간사하며 무엇을 하든 다 대충대충 하여 속이면 도태시킵니다. 믿은 지 1~2년 된 사람이면 남겨서 기회를 줍니다. 1~2년 된 사람은 다 이렇기 때문에 이것은 정상적입니다.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 확정되지 않은 사람은 처리하지 않고, 확실히 인성이 아주 나쁘고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은 도태시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할 리가 없습니다. 말해 보세요,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어떤 문제를 반영하든지 간에 저는 몇 가지 문제를 물어봅니다. “이 사람의 인성이 어떻습니까? 과오이고 패괴 유로입니까 아니면 상습적이고 본성 문제입니까?” “일시적인 과오가 아니고 패괴 유로에 속하지 않고 순전히 본성 문제이고 인성이 나쁩니다.”라고 말하면 저는 “도태시켜야 합니다!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원칙에 부합됩니까? (부합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원칙대로 각 사람을 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고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 집에 사랑이 없다고 논단합니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마귀 사탄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바로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과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도태시키시는데,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사랑이라 하는지 압니까? 당신의 그 말은 하나님을 논단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상과 관념에 의해 함부로 입을 놀리고 제멋대로 논단하는데 이러한 사람은 악독하고 바로 악인임에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걸핏하면 함부로 논단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했든, 진리에 부합되든 부합되지 않든, 그의 뜻과 관념에 맞지 않기만 하면 논단하고 정죄하고 부인하는데 이러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여러 해 믿어도 헛 믿는 것이고 최종에는 역시 도태되고야 말 것입니다.
【107-A-6】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최종에 하나님과 합심하는 한 무리 사람들을 얻으시려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에서 최후에 얻는 결정체입니다. 이러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곧 완성되고 큰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지금 진리를 추구하면 다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대우 하시지 않고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다 공의롭고 공평하신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당신이 만약 이것을 믿는다면 이유를 따지지 말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복하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추구하면 이는 매우 총명한 사람입니다. 만약 늘 자신의 짧은 생각과 잔꾀에 의하고 잔머리를 굴린다면 마지막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되는데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잔머리 굴리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사람의 잔꾀는 진리가 아니고 더욱이 원칙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산물에 속하는데 결국 자신만 해치고 망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곤경에 빠뜨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하나님 역사의 진전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둘째는 진리를 추구하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그 사람들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제가 어떤 때에 너무 엄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관념이 생겨 그 뒤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은 총명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총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당신이 믿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무엇 때문에 저에게 구속받습니까? 저에게 구속받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당신이 저에 대해 선입견이 있으면 저에게 순복하지 마세요. 저는 저에게 순복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정말 총명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고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저에 대해 선입견이 생겨 소극적이 되고 배반하게 된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당신이 믿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비록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당신이 믿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도 아니고 하늘의 막연한 하나님을 믿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다 공의로우십니다. 저는 피조물로서 본분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말은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진리에 부합되어 당신이 받아들이고 싶으면 받아들이고 순복하고 싶으면 순복하면 됩니다. 만약 당신이 보기에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틀리고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 아닙니까? 무엇 때문에 이로 인해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로 인해 소극적이 됩니까? 무엇 때문에 이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이것은 당신의 잘못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총명하지 못하고 매우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저의 말이 다 진리라고 제가 말했습니까? 저의 말이 다 하나님 말씀이라고 제가 말했습니까? 저에게 순복하라고 요구했습니까? 우리 사이는 어떤 관계입니까? 다 형제자매로서 높고 낮음이 없고 그저 제가 나이가 좀 많아 형이나 오빠와 같고 여러분은 동생과 같을 뿐입니다. 형이 동생에게 심하게 말하든, 가볍게 말하든, 두어 마디 하는데 또 어떻단 말입니까? 원수가 되겠습니까? 당신을 해치고 곤경에 빠뜨릴 수 있겠습니까? 그럼 당신은 집에서 형제들끼리 말할 때 서로 얼굴 붉힐 때가 없습니까? 그래도 당신이 이치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누가 말하는데 교과서 읽듯이 말하겠습니까? 저는 마음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직설적이며 다 마음속의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듣기 싫다고 느껴지면 저도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할 수 있고 당신의 귀에 거슬리지 않고 마음에 딱 드는 말을 골라서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떠한 말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형제자매들이니 그래도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정말 자신을 하나님의 자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일을 대함에 원칙을 중요시해야지 말꼬리를 잡지 말아야 합니다. 의의가 없습니다. 누가 완전한 사람입니까? 저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다 패괴된 인류입니다. 그저 제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좀 더 오래고 좀 더 경력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이 무거운 짐을 저에게 주셔서 여러분을 이끌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교제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이 본분을 할 따름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대처하는 것도 여러분이 한 일이 진리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솔자 일꾼에게는 좀 심하게 말하는데 그렇게 말해도 사람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으로는 이 사람이 빨리 진리를 깨닫고 짐을 짊어지고 사역을 좀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좋은 동역자, 협력자들을 찾아서 말세 역사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탁을 다 짊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하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다 진리 실제로 이끌어 들어가고 하나님 나라 복음 간증을 잘하면 일이 원만히 끝나고 우리의 본분도 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도 많이 급합니다. 무엇을 급해 하겠습니까? ‘어디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고 배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이러한 사람을 빨리 다 배양하고 훈련시켜 모두가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하여 다 독립적으로 한 부분 사역을 담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저는 어느 인솔자 일꾼이 진리를 교통할 줄 모르고 조금도 진리 원칙이 없으면 급해집니다! 당신이 일을 함에 있어서 우물쭈물하고 밀어주면 조금 움직이고 주동적이지도 못하고 적극적인 태도도 없는데 제가 급해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에게 말할 때 늘 머리를 숙이는데 마치 심문 받는 것과도 같습니다. 제가 당신을 심문했습니까? 얘기 나누고 마음속 말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다 형제자매가 아닙니까? 당신은 그저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이런 일에서 진리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정확하게 대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사람을 소극적이 되게 하고 관념이 생기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대인 관계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에게 정말 따진 적이 있습니까? 일부러 그 사람의 약점을 잡았습니까?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분량은 다 한계가 있고 할 수 있는 본분과 할 수 있는 사역은 다 너무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한결같이 이끌고 훈련시키고 진리를 교통할 뿐입니다. 그가 일이 있어 저에게 자꾸 물으면 저는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가 상세하게 많이 물어 볼수록 저는 그에 대해 만족해 하며 이 사람이 진리를 잘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만약 한 가지 일을 잘못하고 나서 인식하고 회개한다면 저는 대처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겠습니까? 저를 속이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뒤에서는 악행과 더러운 일을 하는데, 정말 말만 들어도 화나게 합니다. 저는 무척 화가 나는데 그때는 화를 심하게 냅니다. 뒤에서 어떤 일이든 다 저지르는데 제가 화가 안 나겠습니까? 화내는 사람은 당연히 분노를 띠게 되는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당신은 무슨 관념이 있습니까? 당신은 무슨 꼬투리를 잡는 겁니까? 설마 그가 그런 악행을 했는데도 당신은 분개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당신이 분개하지 않으면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주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하는데, 그럼 진리 추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합니까? 방금 전에 조금 말했듯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임하는 매 한 가지 일에서 다 진리를 구하여 마지막에 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원칙대로 대할 수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진실한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악에서 어떻게 떠나는 것입니까? 당신이 일을 함에 원칙이 없으면 자기 뜻대로 일을 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에 속합니다. 제멋대로 하고 자기 뜻대로 일을 많이 했는데 이것이 악에서 떠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많은 일이 닥쳐도 다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원칙 있게 일을 할 수 있고 원칙대로 대할 수 있고 원칙대로 처리할 수 있다면 당신이 한 일에 악행이 있겠습니까? 악행이 없습니다. 이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악에서 떠나는 것은 어떻게 도달합니까? 진리를 깨닫고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통해 악을 피하고 자신의 생각을 해결하고 자신을 배반하고 극복하는 것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사람이 진정으로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런 것입니다. 표현 방식이 다르지 뜻은 다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과정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과정이며,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역시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이고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다 사실에 부합됩니다.
【107-A-7】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추구함에 있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정상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에 의해 하나님과 진실한 교제가 있게 되고 마지막에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깊어짐에 따라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점차적으로 높아지는데,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일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 어떤 인ㆍ사ㆍ물의 속박도 받지 않을 정도까지 높아지면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완전히 왕권을 잡으시게 됩니다. 이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은 사람의 주인이 되십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피조된 인류와 조물주의 관계가 되고 사람이 진정으로 조물주께 순복하게 됩니다. 이때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정상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완전히 정상적이 됩니다. 조물주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이 바로 조물주이며 조물주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만이 아니라 만물을 주재하기도 하시는데, 당신은 이것이 조물주의 권병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이러한 인식이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존경하여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의 피조된 인류입니다. 특히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로서 하나님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서 이러한 마음이면 그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됩니까? 하나님은 조물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 마음속에서 마땅히 어떠한 지위가 있으셔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신분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 마음속에서 지위가 사람과 동등하고 그분을 형제나 부친으로 간주한다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것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임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며 사람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피조물과 조물주의 관계이며 종과 주인의 관계입니다. 만약 이 관계를 바로잡고 당신이 위치를 바로 서고 당신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지위가 조물주의 신분에 부합되고 하나님을 존경하여 지극히 높일 수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자라난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 되고 바로잡히고 당신 마음속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지위가 세워지고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할 적합한 위치가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피조물과 조물주의 관계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점차적으로 정상적이 될 때에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때 사람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지위는 바로 조물주께 있어야 할 지위이고 지고지상한 하나님의 지위입니다. 당신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존경하여 지극히 높이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조물주의 안배에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피조물이며 정상적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피조물입니다. 이 각도에서 이렇게 해석해도 합리적이고 또한 완전히 적합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지위이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사람보다 지위가 조금 더 높을 뿐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보다 많이 크니 지위도 꼭 사람보다 좀 높습니다. 이 밖에 때로는 또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므로 그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지위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성령 역사가 있으면 하나님의 지위가 단번에 높아지고, 어떤 때 소극적이고 연약해져 하나님이 안 보이고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면 하나님의 지위가 또 단번에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지위가 사람 마음속에서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는데 진리를 깨달았을 때는 하나님의 지위가 단번에 높아지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흐리멍덩할 때는 하나님의 지위가 또 단번에 낮아집니다. 어떤 때는 또 사람이 하나님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고 하나님을 지배하려고도 합니다.
무릇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겠습니까? 조금도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비정상적인 정형을 다 드러내면 사람은 몸 둘 바를 모르고 하나님을 볼 면목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돈과 지위 그리고 인정과 부모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우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도대체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부친의 말을 들을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그의 부친의 지위가 하나님의 지위보다 높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내(남편)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데,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 지위가 있겠습니까? 너무 낮습니다. 무릇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겠습니까? 너무 비정상적입니다. 이러한 실제 상황을 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고 나면 사람은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를 것입니다. 말하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모독으로밖에 안 되니 속으로 알고 있으면 됩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어서 하나님이 당신 마음속에 있어야 할 적합한 지위도 없다면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당신은 너무나 이지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일 수 없고 또 하나님의 지위를 그렇게 낮게 내려놓고 많은 인ㆍ사ㆍ물을 다 하나님보다 더 높게 보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말이 지나칩니까? (지나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제가 만약 매사에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고 사람도 아닙니다. 만약 제가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없다면 양심 이지가 없고 사람이라 불릴 자격도 없으며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심지와 관점이 있다면 그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 지위가 매우 높은 것입니다. 만약 매사에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겠습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일 수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어떻게 실행하는지 이제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매사에 기도에 의해 한다면 나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맞게 했습니다. 만약 정말 이렇게 실행할 수 있다면 점차적으로 꼭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매사에 기도를 하면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좀 깨닫고 원칙을 좀 장악하게 되는데, 그런 다음 다시 실행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매우 관건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과의 진실한 교제가 아니고 진리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도 아니라 종교 의식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곧 효과를 보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고 늘 종교 의식의 기도와 형식적인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인 줄 뻔히 알고 이렇게 하면 양심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줄도 뻔히 알면서 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의 마음은 마귀의 마음이지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 그가 만약 인성이 조금이라도 있고 최소한 양심이 있다면 양심의 표준대로 일을 할 것입니다. 양심의 표준대로 일을 하면 비록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악은 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비록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지는 않았지만 효력은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충성된 효력자이겠습니까? 양심에 의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민입니까? 바로 진리에 따라 일을 행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하는 사람이며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자민의 표준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국도 자민에 속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자민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자민과 효력자는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107-A-8】
어떤 사람이 악인입니까? 바로 일을 함에 있어서 진리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며 양심을 어기고 사람들이 몹시 증오하고 혐오하는 갖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악인입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진리가 없다 해도 양심의 기준에 부합되면 역시 최소한의 선행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제명되겠습니까? 바로 그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양심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양심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면 그것이 인성의 기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인성이 없는 것이며 짐승입니다. 짐승이면 일을 함에 있어서 양심을 따지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과 야심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악인이 일을 하는 원칙이 아닙니까? 악인이 하는 모든 일은 다 양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악행입니다. 그럼 선행인지 아니면 악행인지 어떻게 구분하겠습니까? 첫째는 양심 기준에 근거하고 둘째는 진리 기준에 근거합니다. 진리에 부합되는 것은 선행이라 하고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리 원칙에 닿지 못해도 양심의 기준에 부합되면 이것은 악행에 속하지 않으며 어떤 일은 선행에 속합니다. 만약 양심의 기준에 닿지 못하고 즉 양심을 어기고 일을 한다면 사람들이 양심적으로도 그가 한 일이 악이고 나쁜 일이라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악인에 속하며, 그가 한 일은 다 악행에 속합니다. 제물을 훔쳐먹는 것이 악행이 아닙니까? 하나님 선민을 잔혹하게 해치는 것이 악행이 아닙니까? 하나님 집의 사역을 파괴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실을 입히고 투기 거래를 하는 것이 악행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악행에 속하는 이런 것은 정죄받습니다. 그럼 갖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악인으로 확정되고 도태되고 저주를 받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한다면 이방인과 같이 직접 훼멸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을 내걸고 하나님 집에 와서 늘 하나님 집의 제물을 훔치려 하고 늘 지위를 얻어 하나님 선민을 통제하려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하나님 선민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공공연히 방해하고 엇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사람은 악마에 속하며 마지막에 다 징벌받게 됩니다. 지금 일부 인솔자 일꾼들이 드러났는데 적그리스도이며 악인입니다. 악인을 감싸 주면서 하나님 집의 제물을 훔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파괴하게 하며 악인과 손잡고 하나님 집을 기만하고 사기를 치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악인입니까? 이것은 극악무도한 악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패괴 유로에 속하지 않고 마귀가 정체를 드러낸 것에 속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람을 발견하면 증오합니까? (증오합니다.) 증오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증오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틀림없이 악인입니다. 마귀와 한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인을 증오하지 않고 상관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집의 일이 저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훔치고 싶은 사람 있으면 훔치라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와는 무관합니다. 제 것을 훔치면 몰라도 제 것을 훔치지 않는 한 저는 증오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를 증오하고 저주하면 그는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 집에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귀가 아닙니까? 이것을 마귀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제명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직접 제명하면 됩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예를 드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것을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없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최종에는 다 드러나 도태될 것이며,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최종에 생명이 자라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여 최종에 이루는 성과와 맺는 열매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고,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적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밖에 없다면 악에서 떠날 수 없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밖에 없다면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어떤 방면의 진리를 깨달았든지 도달하는 효과는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더한층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효과가 더욱 좋습니다. 만약 매사에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면 바로 완전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매 한 가지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교제하여 투철히 하고 나서 실행 원칙을 장악하면 된 것입니다. 생명이 자라남도 따라서 효과를 보게 되고 실행 방면에서도 효과가 있게 됩니다. 많은 일에서 다 진리 원칙에 따라 대하고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다면 악행이 점점 적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하는 모든 행실과 자기 뜻에 따르고 제멋대로 하는 행실이나 혹은 사람의 호의는 다 진리를 깨닫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해결됩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을 때는 자기 뜻대로 하면서 “제 생각엔 이렇게 하면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결과는 자기의 뜻이고 역시 악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어떻게 일을 처리할 줄을 모를 때는 ‘내 생각과 상상에 따라 일을 하면 틀림없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으며 사람의 뜻이고 역시 작은 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많은 진리를 깨닫고 많은 일에서 다 진리 원칙대로 일을 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적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것이 갈수록 적어지고 사람의 뒤섞임이 갈수록 적어집니다. 결과는 당신이 매사에서 다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다 진리를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에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다면 이렇게 일을 한 효과가 바로 간증입니다. 어떤 간증이겠습니까? 당신이 한 이 모든 일은 진리를 깨닫고 원칙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도달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실행 원칙에 대해 더 교통하겠습니다. 어떤 것은 원칙이라기보다 기본적인 상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을 어떻게 실행할지 모를 때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는 빨리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다는 것을 성찰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는 반드시 자신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섯째,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을 때는 반드시 자신이 대역무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여섯째, 사람이 자기 뜻대로 행할 때는 바로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하면서도 큰일이 아니고 악을 행한 것도 아니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곱째, 아직도 양심을 어기고 악을 행한다면 바로 마귀 사탄인데,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케 할지를 모르는 것은 바로 공허한 가운데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며,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대역무도한 것이고, 자기 뜻대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며, 아직도 양심을 어기고 악을 행하는 것은 마귀 사탄입니다. 이런 말을 마음에 기억해 두고 자신을 단속하면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상식으로 단속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정상적 궤도에 점차적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이렇게 심각합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럼 알아 보세요. 경력하다 보면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의 실질은 바로 이러합니다.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