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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 관한 설교 교통 (11)

『하나님의 시련에 대해 어떤 염려도 하지 말라

욥을 시련하여 욥에게서 증거를 얻은 후 하나님은 욥과 같은 이런 한 무리 또는 더 많은 사람을 얻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더는 사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내기해 욥을 시험하고 욥을 공격하고 욥을 잔혹하게 해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잔혹하게 해하지 못하게 하기로 작정하였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연약하고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의 몸에 다시 똑같은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욥의 몸에서의 한차례 시험으로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사탄이 함부로 사람을 잔혹하게 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욥, 한 사람이 사탄의 시험과 잔혹한 해침을 겪은 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사탄이 다시 이런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목숨과 사람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하나님이 지배하며 사탄은 제멋대로 하나님의 선민을 지배할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너희는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염려하고 사람의 무지몽매함도 알고 있다. 하나님은 비록 사람이 철저히 구원받게 하기 위해 사람을 반드시 사탄에게 넘겨야 하지만 결코 사람이 늘 사탄에게 우롱당하거나 해를 입는 것을 보기 원치 않고 사람이 늘 고통받는 것을 보기 원치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는 하나님의 책임이고 만유를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함부로 사람을 해하고 학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유인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탄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에 개입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사탄이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는 법칙을 짓밟고 파괴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이렇게 큰 사역이랴!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 사역의 핵심과 결정체이자 역시 하나님의 6천년 역사의 심혈 대가인데, 하나님이 어찌 이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사탄에게 넘길 수 있겠는가?

사람은 늘 하나님의 시련이 올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사탄의 올무 속에서 살고 사탄이 공격하고 잔혹하게 해치는 위험한 경지에서 살고 있으면서 두려운 줄도 모르고 걱정하지도 않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국한되어 있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아낌과 이해해 줌에 대해 사람은 조금도 터득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시련과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하나님의 위엄 진노에 대해 약간의 무서움과 두려움이 있는 것 외에 사람은 하나님의 고심에 대해 조금의 이해도 없다. 시련을 언급하기만 하면 사람은 마치 하나님께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여기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속마음은 헤아리기 어려워서 하나님이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리라”는 구호를 외치는 동시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극력 저촉하고 반대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이 만약 조금만 조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오도(誤導)”될 것이고 사람이 만약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경각에 달릴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탄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전혀 사탄이 사람을 잔혹하게 해할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고, 사탄에게 해를 입으면서도 전혀 사탄에게 노략당할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말끝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전혀 신임하지 않고 하나님이 진심으로 사람을 사탄의 마수에서 구원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이 만약 욥처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고 전인(全人)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다면 사람의 결말도 다 욥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겠는가?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다면 사람에게 어떤 손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너희의 신변에서 일어나는 매사를 신중하게 대하며 무례한 짓을 하지 말고 흥분하지 말며 혈기, 천성, 상상과 관념에 의해 하나님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안배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촉노해 하나님이 노하지 않도록 꼭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하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찾으라고 권한다. 기억했겠지!』

먼저 방금 읽었던 하나님 말씀의 첫 구절을 봅시다. “욥을 시련하여 욥에게서 증거를 얻은 후 하나님은 욥과 같은 이런 한 무리 또는 더 많은 사람을 얻기로 작정하였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욥을 온전케 하신 것처럼 말세에도 한 무리 욥과 같은 사람을 온전케 하시려 하므로 말세 역사를 시작하실 때 욥의 간증을 하나님 선민에게 게시해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은 이미 밝히 드러났습니다. 욥의 간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주로 두 단계로 경력(역주: 체험)하게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하는 것을 훈련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준비 단계이고 또 생명 진입의 초급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사람이 얼마간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간의 진실된 인식이 있으며 진실한 믿음을 구비한 후 시련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을 온전케 하는 단계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70세까지 믿었을 때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고 그런 후 시련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70세까지 믿은 것은 거의 일생 동안 믿었다고 볼 수 있는데, 곧 그가 만년이 되었을 때 진리를 많이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생겼으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이런 하나의 진리 실제를 구비한 후에야 비로소 시련이 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에서 우리는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없으면, 즉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 보통 하나님은 시련이 임하게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즉 이런 사람을 놓고 사탄과 겨루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적어도 몇 년간 경력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10년, 어떤 사람은 20년을 경력했는데, 이론대로 말하면, 우리는 이미 진리를 얼마간 깨달았고 하나님에 대해 약간의 믿음이 생겨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서 본분을 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얼마간의 시련이 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시련이 임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 선민에게 아주 많은 시련들이 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큰 시련이 임했고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시련이 임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각종 고난과 연단의 시련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최소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연단을 받는 시련이 임했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의 시련이 임했으며 생명 경력 속에서 연단을 받는 시련이 임했습니다. 어쨌든 각종 시련이 다 임했습니다. 분량의 다름으로 인해 임하는 시련도 같지 않고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도 역시 다릅니다. 하지만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시련이 임하도록 허락하신 것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안배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온전케 해서 마지막에 사람을 얻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과 같은 사람을 한 무리 혹은 더 많이 얻기로 정하셨습니다. 욥과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세 역사에서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려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제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 욥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비춰봐야 하고 또 욥과도 비교해 봐야 할 때입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면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인지 욥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데에 이를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대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가늠하는지 이제는 알았겠죠?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지금은 분명히 보았겠죠?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제가 여러 해 동안 목회를 해왔으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맞는 것이죠?”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 해 동안 목회를 했어도 헛된 것이고 당신도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가늠하면 맞지 않습니까? 이것은 완전히 정확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큰 악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큰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럼 당신은 무엇을 악이라고 생각합니까? 악에서 떠나는 것은 어떤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까? 지금 많은 목사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정죄하고 있는데 이것이 악이 아닙니까? 이것은 가장 큰 악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유일하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만이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께서 말세에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정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큰 악, 즉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입니다! 종교의 목사와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의 제물을 훔쳐먹는 것은 악이 아닙니까?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은 악이 아닙니까?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통제해 참 도를 구하지 못하게 하고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악이 아닙니까? 이것은 다 악입니다! 더 이상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몇십 가지, 몇백 가지라도 더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면 자신이 분명히 알 수 없는 일에서 기도하고 구해야지 마음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알지 못하는 일을 단정짓지 마십시오! 자기 생각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말하면 하나님께 쉽게 미움을 살 수 있습니다. 악을 멀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약 마음대로 죄짓고 논단하면 바로 악인에 속합니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오직 악을 멀리하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는 사람이 아니고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없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가 없으며 또한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가 악을 행할 수 있다면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증오하고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무릇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어떤 악이든 다 행할 수 있고 오직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만이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욥은 무엇 때문에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악을 행치 않은 것은 무엇에 의해 도달할 수 있습니까? 육체를 자제하는 것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로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의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조금의 인식도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릇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아주 큽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인식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지 막연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조금의 인식도 없는 사람은 진실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럼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믿음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도대체 어떤 관계입니까? 진실된 인식이 있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사람의 믿음은 어느 정도에 이른 것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어느 정도에 이른 것입니까? 지금 진리를 추구하고 욥의 믿음을 구비하는 데에 도달하려면 먼저 욥의 믿음에 대해 진실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다 진실한 믿음이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믿음이 있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도 몇 단계로 나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는 진실한 믿음을 10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10가지 등급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눕니다. 믿음의 가장 낮은 표준, 가장 낮은 등급은 그저 신(神)이 있다는 것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처럼 하느님을 인정하고 모호함 속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1점짜리 믿음 즉 가장 작은 믿음입니다. 이 기초에서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이는 조금도 틀림없으며 절대적으로 대자연에서 생긴 것이 아님을 믿는다면 2점짜리 믿음입니다. 종교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2점짜리 믿음인데 이방인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2점짜리 믿음으로 너무 작아서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줄곧 인류를 이끄시고 인류에게 공급해 주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를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3점짜리 믿음으로 또 1점이 올라갔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있는데 3점입니다. 이 믿음은 큽니까, 작습니까? (작습니다.) 종교계의 대다수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시대부터 줄곧 인류를 이끄시고 인류에게 공급해 주셨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를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종교인들의 믿음, 3점짜리 믿음입니다! 이 기초에서 또 1점이 올라가면 오직 조물주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고 다른 것은 다 가짜 하나님이고 악령이 인류를 패괴시키는 것임을 믿는데, 4점짜리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분별력이 좀 있는데 무엇이 참 하나님이고 가짜 하나님인지, 무엇이 악령인지 알고 있고 오직 조물주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고 사탄과 각종 악령은 인류를 패괴시키고 삼켜 먹을 뿐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4점짜리 믿음입니다. 종교인도 이런 믿음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5점짜리 믿음이 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유를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한 국가와 민족 및 개인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안배와 명정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믿음은 비교적 큰 5점짜리 믿음입니다. 종교인들의 믿음보다 크겠죠? 1점이 더 큽니다. “이 우주 만물은 정말로 하나님의 주재구나! 한 국가와 민족의 운명, 그리고 각 사람의 운명까지도 다 하나님 손의 안배에 있고 모두 하나님의 명정이 있어!” 하나님께서 만유를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5점짜리 믿음입니다. 다음은 6점짜리 믿음입니다. 인류의 모든 것은 다 하늘의 안배가 있고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사람이 얻은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는 것이 6점짜리 믿음으로 욥의 믿음과 비슷합니다. 욥의 믿음에서 우리는 그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이 얻은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보았고 사람이 땀만 흘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하나님의 베푸심이 있어야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지 않으시면 사람이 아무리 힘써 죽도록 일해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얻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믿는 토대 위에 또 1점이 올라가면 7점짜리 믿음인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범함을 용납치 않고,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랑이 있고 또 공의로움과 위엄이 있으며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을 수도 있고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믿음인데 7점짜리 믿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몇 점입니까? 7점짜리 믿음이 되었습니까? 이것은 믿음의 단계입니다. 욥의 믿음은 7점에 도달했습니다! 욥의 믿음보다 더 높은 8점 믿음은 어떤 것인지 계속해서 봅시다. 사탄은 인류를 패괴시키는 괴수이고 큰 붉은 용이 바로 사탄의 화신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영계 전쟁의 진실한 움직임을 분명히 보는 것이 8점짜리 믿음입니다. 영계 전쟁의 움직임을 분명히 보면 큰 붉은 용이 바로 사탄의 화신이라는 것을 보게 되고 또 집권자들이 바로 인류를 패괴시키는 사탄의 도구이고 사탄의 흑암 권세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크지 않습니까?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이고 욥의 믿음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이 기초에서 믿음이 1점 더 커지면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 길, 생명이고 말씀이 육신 되신 실제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실제 하나님을 무조건 따르고 진심으로 실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9점짜리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 길, 생명이고 바로 실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한순간도 떠나지 못하고 또한 진심으로 실제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9점짜리 믿음입니다. 최종에 10점짜리 믿음에 도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하고 또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임을 보게 되며 마지막에는 진리에 따라 살아가면서 완전히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10점짜리 믿음인데 베드로와 같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10단계 즉 10가지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이렇게 나누면 어떻습니까? 알아들었습니까? (알아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비춰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믿음은 몇 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어느 등급에 속하는지 확정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4점에조차 도달하지 못하는데 참 하나님과 가짜 하나님마저 분간하지 못하고 악령의 미혹까지 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너무 불쌍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유를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한 국가와 민족 및 개인의 운명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을 꿰뚫어 보았다면 천명(天命)을 알게 됩니다. 6점짜리 믿음이 되면 사람이 얻은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고 사람의 노동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농사는 사람이 짓지만 거두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모사는 사람이 하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이 일을 꿰뚫어 본다면 사람은 쉽게 하늘의 뜻에 따라 행할 것이고 더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늘을 거역하여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행하고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무릇 하늘의 뜻에 순복(역주: 순종)하는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서 하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이지(理智)가 있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고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무슨 본분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데, 이러면 성실히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데에 도달한 것입니다. 6점짜리 믿음이 있으면 이것을 구비하게 됩니다. 7점짜리 믿음에 도달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긍휼과 자비가 있고 또 공의로움과 위엄도 있으며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얻는 동시에 또 화도 입을 수 있음을 인식하였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욥의 믿음입니다. 사람이 욥의 믿음에 도달할 수 있으면 반드시 구원받는 데에 이를 수 있습니다. 7점짜리 믿음은 구원받는 표준이고 9점, 10점 믿음은 온전케 되는 표준입니다. 믿음의 단계와 등급을 이렇게 나누면 적합합니까? 완전히 적합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자신에게 비춰볼 줄 압니까? 비춰볼 수 있죠? 비춰볼 수 있으면 자신의 생명 진입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자신의 믿음이 큰지 작은지, 마땅히 어떻게 추구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만약 당신이 욥의 믿음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추구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일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평소에 말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이 말씀 속에 얼마큼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는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진리를 구할 수 있으며 진리를 장악하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이 자라나는 비결입니다. 진리를 추구해서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집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환해집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해 사랑이 생깁니다. 넷째,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인 순복이 생깁니다. 즉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수록 믿음이 점점 더 커지고 하나님에 대해 점점 더 분명히 알게 되며 진리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순복이 점점 더 절대적이며, 진리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진실해집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믿음을 욥의 믿음보다 크게 하려면 실행의 길은 무엇입니까? 바로 진리를 추구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은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실행의 길입니다.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수록 믿음이 점점 커지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믿음과 진리를 깨닫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간단하게 예를 들겠습니다. 종교계가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정죄하겠습니까?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고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해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계속 정죄하겠습니까? 그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즉시 복음을 받아들이고 들어올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을 보고는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왜냐하면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패괴된 인류를 심판 형벌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심판 형벌 뒤에 하나님의 고심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을 다시 읽게 될 때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쉽게 하나님의 역사를 논단하고 정죄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기 쉽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왜 믿음이 커질까요? 그 믿음은 어떤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만 시인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는지 모르며 사람에 대한 요구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런 것들을 다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많은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사람에 대한 요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최종에 도달할 효과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실행하는 것에 길이 생기고 순복하는 것이 쉬워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생기고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할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적으면 이런 진리 실제들을 실행해 낼 방법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어떤 관계입니까? 사람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여부를 뜻합니까? 이 일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뜻합니다! 5점짜리 믿음이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5점이고 7점짜리 믿음이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7점입니다.”라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습니까? 완전히 정확합니다. 믿음이 작으면 의심할 여지가 없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무조건 적고, 믿음이 크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식도 무조건 많습니다. 그러면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적다면 하나님께 많이 순복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는 것이 너무 적으면 순복도 많을 수가 없는데 아는 만큼 순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대함에 있어서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만큼 깨달으면 깨달은 만큼 효도할 수 있는 것과 같은데, 이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자라서 30대가 되어 스스로 많은 일들을 경력하면서 부모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될 때에야 정식으로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규칙이기도 합니다.

우리 계속 말해 봅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어느 정도까지 도달해야 합니까? 7점짜리 믿음인데 이 정도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욥은 율법시대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 정도가 되지 못했고 율법시대의 그 사도들, 모세마저도 욥만큼 되지 못했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신 사람은 오로지 욥밖에 없습니다. 만약 “율법시대의 성인(聖人)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욥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욥, 한 사람만이 성인이라 칭함을 받기에 합당한데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입니다. 진정한 성인은 반드시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사탄의 세계가 추켜세운 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즉 마왕이고 사람을 미혹하는 부류로 성인이라 부르지 않고 가짜입니다. 진정한 성인은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신 사람입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신 사람은 바로 욥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인식과 믿음이 율법시대에서는 제일 큰 것으로 7점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은혜시대가 되어서는 베드로가 큰 것으로 9점이었습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와서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는 한 무리 사람들은 10점에 도달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나라시대에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기를 원합니까? (원합니다.) 그럼 진리를 열심히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해 10점 믿음에 도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이상 반드시 행하시고, 행하시는 이상 반드시 이루시며, 이루시는 이상 반드시 영원까지 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큽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미 온전케 된 사실이며 곧바로 눈앞에 나타납니다. 두고 보세요, 몇 년 못 가서 큰 붉은 용과 이 세계 그리고 더러운 귀신들과 악령이 사라져 더는 존재하지 않고 연기와 구름이 흩어지는 것처럼 깨끗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말씀을 하시면 일이 곧 이루어지는데,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능자의 행하심입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당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저의 믿음을 온전케 하고 계십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야 옳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조급해 하지 마세요. 이후에는 생길 것이니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난 믿음이 커질 수 있어. 난 발전할 수 있어. 난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면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고 있어.”라는 자신감이 있다면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조금도 없습니까?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제가 설교하는 것을 듣기만 하면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워지며 진리 교통을 듣기만 하면 머리가 띵해집니다. 이러면 문제입니다!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워지는 이 병은 해결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교통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어떤 느낌입니까? (믿음이 생깁니다.) 이 말을 들으면 누림이 있고 밝히 깨달아지죠? 이 말은 실제적이고 모두 마음속의 말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들을수록 희망과 믿음이 생긴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길은 걸을수록 밝고 환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큰 붉은 용의 박해가 두렵습니까?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은 진리를 추구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날 수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다가 자기도 모르게 믿음이 자랄 수 있습니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이 자라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점점 작아집니다. 믿음이 작아질수록 쉽게 소극적이 되고 쉽게 뒤로 퇴보하고 제일 먼저 힘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데, 힘이 없어지면 믿음이 작아집니다. “믿음이 어때요? 힘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힘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믿음이 작아지지 않은 것이고, 만약 “힘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믿음이 작아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힘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온몸에 힘이 있다면 믿음이 큰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서 온몸에 힘이 가득한데 단단히 벼르기라도 한 듯 힘껏 해 봅니다! 자신의 모든 정력과 모든 재능을 다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쓰고 자기의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데 이런 사람은 믿음이 큽니다. 매년 경력할 때마다 당신의 믿음이 1점씩 자라난다면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1년을 경력해서 1점이 자라나고 3년을 경력해서 3점이 자라나면 하나님을 믿은 지 2년 6개월, 3년 6개월, 5년 6개월이 되었을 때 원래 3점이었던 믿음이 또 3년을 경력하면 6점 믿음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7점 믿음이 됩니다. 1년에 1점이 자라날 수 있는 것이 가장 빠른 것입니다. 경력을 잘하는 사람은 가장 빠르면 1년에 1점이 자라나고 좀 늦는 사람은 2년에 1점이 자라납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가난에 시달리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가난의 시달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계속 가난에 시달릴까봐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가난에 시달리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어서 마음이 충실해지고 위로를 받게 됩니다. 당신이 고통을 다 받고 나면 자신의 분량을 알게 되고 인내력을 알게 되며 의지력을 알게 됩니다. 본분을 하면서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심혈과 대가를 다 쏟을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을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고 시간이 가면 사람의 마음을 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나날 속에 있으면 당신은 자신의 힘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고 자신의 가장 큰 힘이 어느 정도에 이를 수 있는지 알게 되어 자신이 본분을 하면서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만약 당신의 역량이 한가지 본분을 했을 때 최고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당신은 능력과 진리가 있는 사람으로써 아주 쓸모있는 사람입니다! 진리가 있는 사람이 동영상 하나를 만들어내고 영화 하나를 만들어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가 있는 사람이 글 한 편을 써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얻고 깨우침을 받겠습니까! 진리가 있는 사람이 설교를 한 번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자라나겠습니까! 진리가 있는 사람은 능력이 있습니다. 당신이 본분을 함에 있어서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최고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당신의 믿음은 더 빨리 자라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빨라질까요? 1년에 1점씩 자랍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고통받는 것을 극복해 보세요. “난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난 고통을 감수할 거야. 내가 1년 동안 고통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 과연 죽을 수 있을지 두고 볼 거야. 하나님께서 날 어떻게 축복해 주시고 내가 얼마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는지도 두고 볼 거야.” 이렇게 경력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가난에 시달리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가난에 시달리면 어떡하지? 밥도 못 먹게 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어느 지경까지 가난해질 수 있는지, 하나님을 의지하면 도대체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살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 가난을 좀 겪어 보세요! 당신에게 이런 믿음이 있어서 이 난관과 치명상을 돌파하고 가장 연약한 점을 극복한다면 당신의 믿음은 1년이면 자라날 것입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많은 두려움이 생기는데, 이것저것 다 두려워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에 시달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어떤 사람은 옥살이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당신의 이런 몇 가지 두려움은 당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증명하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당신이 게으름뱅이이고 겁쟁이이며 무능하고 밥벌레임을 증명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끝까지 싸울 용기가 있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이렇지 않습니까? 그럼 당신은 지금 대가를 치를 용기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는 아직 배우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예 찾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목숨을 내걸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목숨을 내걸 용기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부모님께 미련이 남아있지만 그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어떻게 되기라도 하겠습니까? 제 자신이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 볼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대가를 치를 용기가 있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대가를 치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욥에게 임한 시련을 보세요, 모든 재산과 아들과 딸 그리고 종들이 전부 없어졌어도 욥은 실족했습니까? 변함없이 굳게 섰고 그의 온전함을 지켰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견지했습니다. 욥의 믿음이 어떻습니까? 그는 믿음의 위인이고 믿음의 거인이며 그 누구도 넘어뜨리거나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때 사탄이 그의 육체를 공격해서 그를 죽게 한다 해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믿습니까? 그가 자신의 생일도 저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죽을 준비를 다 했고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므로 무너질 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대륙의 일부 형제자매들이 큰 붉은 용의 혹독한 고문 아래에서 목숨을 하나님께 바치고 죽을지언정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유다가 되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현재 일부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가정과 직업을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혼인을 정리한 후 나와서 본분을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방향없이 사방으로 떠돌고 피난을 다니면서도 본분을 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이 아닙니까? 피난하면서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본분을 하면서 생사를 도외시하는데 이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에서 생긴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을 사람 안에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과 믿음을 성취했습니다. 즉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닫고 얻는 진리가 많아질수록 믿음이 커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도 커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룬 사실인데,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믿음은 자라날 방법이 없고 항상 고만한데 단지 믿기만 하고 시인만 할 뿐이어서 시종일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없고 진실되게 하나님을 따르거나 본분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이 자라지 못했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믿음이 자라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믿음이 부단히 자라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욥의 믿음에까지 자라났습니다. 가정을 버리고 직장을 버린 그 사람들은 남편(아내)과 이혼하고 부모님과 자식을 집에 두고 몇 년 동안 만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몇 년이 지나도 만나지 않습니다. 그가 밖에 있으면서 숨어지냅니까? 본분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합니다. 이런 믿음은 욥과 같습니다.

지금 진리를 깨닫는 것이 많아짐에 따라 각종 악행을 멀리하는 것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알게 되었고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며 영계 전쟁의 사실 진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형제자매들을 정확히 대하고 애증이 분명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원칙이 생겼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악인, 악령, 적그리스도에 대해 분별하고 버릴 수 있게 되었고, 과오가 있는 형제자매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줄 수 있게 되었고 더는 형제자매를 논단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일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또한 진실한 순복이 생겼습니다. 형제자매들 중 누구에게 장점이 있으면 본받아 본보기로 삼을 수 있고 배우고 협력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토론하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원칙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악행에서 더 많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커짐에 따라 악을 더 많이 멀리하여 조금씩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과오가 점점 적어지는데 과오가 적어지면 점점 거룩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는 분명히 보았겠죠?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에 의해 성결해지는 데에 이릅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과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 그리고 각종 시련과 연단으로 말미암아 최종에 많은 진리를 깨닫고 모든 악행에서 벗어나고 과오가 점점 적어지고 점차적으로 거룩해지는 데에 이르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으로 될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는 성자이고 의인인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성결해지는 도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전케 되어 의인으로 되는 참 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할수록 점점 더 정결함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거룩함에 도달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했을 때는 모두 성인이고 의인입니다! 그때면 우리는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게 됩니다!

그럼 지금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저것의 속박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가난에 시달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가정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자식의 불효와 남편(아내)의 논단과 통제를 두려워하며 어떤 사람은 또 직업을 잃고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비방을 받을까봐 두려워합니다. 이런 것을 두려워해서 쓸모있습니까? 설마 이런 속박을 받으면 성결해지는 데에 도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구원받는 데에 도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이 가난을 두려워하는 것은 가장 믿음이 없는 태도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밥 한 숟가락 먹는 것이 아닙니까? 밥 한술 먹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어떤 본분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옷을 몇 벌이나 입을 수 있습니까? 옷 한 벌을 사면 몇 년 동안 입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평범한 사람은 한평생 옷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밥 한술 먹는 일입니다. 당신에게 먹을 밥 한술이 있고 잠 잘 곳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면 전 세계를 두루 다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버리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늘 이것저것 포기하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는데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붉은 용의 경찰차가 뒤를 쫓자 모든 것을 내버리고 있는 힘껏 도망쳐 마지막에는 자기 고향을 떠나고 자기가 살고 있는 현(縣)을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에 나라를 떠납니다. 큰 붉은 용의 경찰차가 그렇게 쫓으니 어떻게 합니까? 점점 더 멀리 도망치면서 마지막에는 뭐든 다 버립니다. 이것은 어떻게 버린 것입니까? 자발적으로 버린 것입니까, 아니면 수동적으로 버린 것입니까? (수동적입니다.) 그럼 이 믿음은 어떻게 자라난 것입니까? 믿음은 뒤따라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시 버릴 때에는 고통스러워 매일매일 생각합니다. “집에 돌아갈까? 집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시간이 길어지니 “안 잊어도 별수 없으니 차라리 잊자!”라고 하면서 이겨 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수록, 진리를 교통할수록 밝히 깨우침을 받아 버리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에서 또 큰 붉은 용의 경찰차를 고마워해야 되겠죠? 그 경찰차가 한번 출동하면 정말 좋습니다! 사람이 집에서 밖으로 도망쳐나오고 도망쳐나온 후에는 감옥살이가 두려워 되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각종 환경을 이용해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큰 붉은 용, 이 받침물의 효력의 효과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우리의 좋은 일들을 적지 않게 이루어 주었습니다. 그렇죠? 지금 다시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만약 다시 육체의 안식처에서 생활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누림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육체의 안식처에서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육체의 얽매임이고 고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고 각종 외부 환경을 이용하고 또 사람이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교통하고, 본분을 하는 것을 훈련하고 성령의 깨우침을 받게 하심을 더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과 성결해지는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 길에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할수록 수확도 더 커져 매 년마다 다른데,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매 년마다 수확이 있게 됩니다. 몇 년 믿고 나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생기면서 천지만물, 세상만사,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다 분명하게 보고 알게 되며 눈앞이 밝아져 인생에서 하나의 참신한 최고의 경지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루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는 것이 진정한 영광이라는 것을 보게 되면서 믿음이 점점 커집니다!

또 말씀을 봅시다. “사람은 늘 하나님의 시련이 올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사탄의 올무 속에서 살고 사탄이 공격하고 잔혹하게 해치는 위험한 경지에서 살고 있으면서 두려운 줄도 모르고 걱정하지도 않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의 시련이 올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하”지만 사람의 실제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언제나 사탄의 올무 속에서 살고 사탄이 공격하고 잔혹하게 해치는 위험한 경지에서 살고 있으면서 두려운 줄도 모르고 걱정하지도 않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 수 있도록 지적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련을 사람은 인식하고 있습니까? 인식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탄이 공격하고 잔혹하게 해치는 위험한 경지에 살면서도 오히려 두려움을 모르고 염려하지 않는데 이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는 사람의 우매와 무지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시련은 사람에 대한 보호이고 구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탄이 공격하고 잔혹하게 해치는 위험한 경지에서 살고 있는데, 이것은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장 염려하시지만 사람은 여전히 깨어 있지 못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우리가 매일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위험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가장 큰 위험은 사람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에 잘못 빠질 수 있고 사탄의 박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아닙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보호와 사역이 있고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는데 사람은 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 줄 몰라 사탄의 시험을 불러오고 사탄의 시험에 잘못 빠지는데 이는 사람의 가장 무지하고 어리석은 부분입니다.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문제를 분명히 알고 해결하면 사람은 안전해집니다.

또 하나의 현실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가정과 육체의 환경에서 사는 것이 안전합니까, 아니면 교회 생활 속에서 사는 것이 안전합니까? (교회 생활입니다.) 본분을 하는 것이 안전합니까 아니면 육체의 편안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안전합니까? (본분을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을 만약 꿰뚫어 보지 못하면 우매한 것입니다. 당신이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 속하므로 하나님의 보호가 있게 되고, 가정 안에, 사탄의 환경 속에, 육체의 환경 안에 살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그렇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가장 안전하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고 수시로 하나님에 의해 사탄에게 넘겨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안전하고 어떤 것이 위험한지 사람이 분명히 볼 줄 압니까? 우리 율법시대를 봅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떠남으로 인해 애굽의 군병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뒤쫓았을 때, 겉으로 보기에 누가 제일 위험했습니까? 뒤에서 애굽의 군병들이 완전무장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뒤쫓았기 때문에 사람이 보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위험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누가 제일 안전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돌보심으로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심으로 바닷물이 애굽의 군병들을 수장시켰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안전합니까 아니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이 안전합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안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 여기에는 사람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어디가 위험합니까? 겉으로는 육체가 편안하지만 진정한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재난이 수시로 임하여 사탄 권세 아래의 사람들을 멸합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역사는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받아들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줄곧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 재난이 “쾅” 하고 내려오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재난에 삼켜져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모두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모두 생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 권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평안하든 그들이 가장 위험하고 수시로 재난에 삼켜질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살고 하나님을 따르는 이 사람들은 겉보기에 위험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 탈이 없고 가장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오로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가장 안전한 보호자가 되십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 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육체의 가정 환경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자라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회 생활, 진리가 있는 이런 환경에서 생명이 자라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너무나도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진리가 있는 교회 생활 환경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육체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가정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믿음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과 일을 보는 관점이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가난에 시달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고생하고, 돈을 벌며, 일을 하는데 마지막에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썩게 되는 것이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 생활 환경에서 살면 얻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진리이고 생명인데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가장 총명하고 어떤 사람이 가장 어리석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가장 총명합니까 아니면 육체의 편안함을 누리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가장 총명합니까? 모든 패괴된 인류 중에서 총명한 사람이 다수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다수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다수의 사람은 어리석고 소수의 사람이 총명합니다. 이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마지막에 전 인류 중에 진리를 얻은 사람이 다수입니까 아니면 소수입니까? (소수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세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다수입니까, 소수입니까? (소수입니다.) 맞습니다. 소수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영생의 도를 얻고 영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고, 다수의 사람은 멸망의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늘 사회의 유행을 따릅니다. 그들은 사회 조류만 보고 사람들이 무엇이 옳다고 여기면 그것이 옳다고 말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수의 사람이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정죄하면 그것을 저버리는데 이는 총명한 사람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우매하고 무지합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대단히 총명한 것입니다. 지식인들보다 훨씬 총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것이 자화자찬입니까? 오만입니까? 자화자찬도 아니고 오만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무슨 겸손이나 오만을 말하지 않고 사실만을 이야기하며 실제만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참 도를 대적하고 정죄하는 우매한 사람을 비천하게 여기십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욥과 같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욥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며 욥을 본받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므로 전력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절대적으로 순복하여 언젠가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할 때, 우리도 욥과 같이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신 대로 훗날 언젠가는 우리를 그렇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온전케 하시려고 뜻을 정하셨는데 이는 공개된 사실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추구하고 어떻게 대가를 치러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치르는 대가나 고통이 많을수록 당신의 생명이 빨리 자라나고, 치르는 대가가 너무 적고, 늘 내려놓을 수 없고, 고난도 받지 못하며, 특히 본분을 하면서 고난도 받지 못하고 성의 없이 대충대충하면 생명도 더디게 자라는 것입니다. 본분을 하면서 고통을 받을 수 있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당신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고통을 달갑게 받을 심지가 있으면 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가 아닙니까? “나는 지금 연약하고 나태해. 이젠 알겠어! 내가 육체만 돌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본분을 하면서 대충대충 하고 참답게 하지 않았으니 본분을 해도 효과가 없었던 거야.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실행해야 겠어.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고통을 받고 대가를 치를 거야. 하루에 8~10시간 동안 계속 본분을 하면서 내 육체를 매일 피곤하게 할 거야. 이렇게 하면 나한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복하기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사람의 정상적인 인성과 이지와 양심이 생겨나 내 마음이 위로를 받고 누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해 달갑게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될 때 자신의 인성이 성숙해졌고 성장했으며 철이 들었고 일을 하면서 책임을 질 수 있고 더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본분을 하면서 고통받지 못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은 다 어린 아이이고 철이 들지 못했으며 생명이 자라지 못했으므로 어른이 아닙니다! 많은 어른들, 특히 아내(남편)와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고생을 감수할 수 있습니까? 한 가족의 생활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가족을 위해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고생을 하든 머리를 조아려서라도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책임이 아닙니까?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 아닙니까? 사람이 만약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이 본분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면 지금 당신은 본분을 함에 있어 어른입니까 아니면 어린아이입니까? 어른은 사역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하며 독립적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한 일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감탄하며 마음에 들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어른이 된 것입니다. 그럼 당신이 본분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고 정상적인 인성이 없으며 어린아이이고, 무지하며, 어리석고, 놀기만 할 뿐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다 함에 있어 만약 정말 어른의 분량에 되어서 본분을 지키고 책임을 질 수 있고 효과에 이를 수 있으며 사람에게 인정받고 하나님을 만족케 한다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분량은 어떻습니까? 이 요구 기준에 도달했습니까? 고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사람이 그 어떤 고통도 받을 수 없다면 정상적인 사람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은 그 어떤 고통도 다 견딜 수 있고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고통을 받을 수 있고 또 어떤 고통을 받을 수 없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고 말해 보세요, 가난에 시달리는 것이 두렵습니까? 배고픈 것이 두렵습니까? 배고플 때 겨와 나물로 끼니를 때울 수 있겠습니까? 누더기 옷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누더기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지 못하는데 그럼 당신에게 누더기 옷을 입힐 테니 거리에 나설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그 어떤 고통도 다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라 칭함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고통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아마도 고통을 거의 받지 않았을 것이고, 50~60대의 사람들은 고통을 좀 받았을 것이며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고통을 그다지 많이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슨 고통이든 다 받아야 합니다! 제일 큰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바로 사람에게 저버림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모욕과 비방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고통이 임하면 자살하여 죽음으로 끝내고 싶어 하는데 이런 사람이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모욕의 고통을 받지 못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두 차례나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 이런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사람에게 비방과 정죄를 받으시고 온갖 모욕을 받으셨으며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최후에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는 천부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고통이든 다 받아야 합니다. 본분을 하면서 여러분들은 모두 어떤 고통을 받았습니까? 한 사람이 몇 가지 사역을 할 수 있습니까? 등잔을 켜서 기름을 태우듯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몇 년 견지할 수 있습니까? 3~5년 견지할 수 있습니까? 8~10년 견지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의지력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고 시간이 가면 사람의 마음을 안다.”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늘 자신의 미모와 이미지를 중시하는데 조금만 피곤해지면 얼굴이 검게 될까봐 서둘러 파우더를 바릅니다. 그렇죠? 가장 고생스러울 때, 가장 힘든 환경에서 2~3개월 동안 샤워도 한 번 못하면 여러분들은 견딜 수 있습니까? 만약 옷을 3개월에 한 번씩 갈아입어야 한다면 당신은 본분을 견지할 수 있습니까? 이 고생을 할 수 있습니까? 환경이 있으면 우리는 환경에 따라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그런 환경이 없으면 무슨 고통이든 다 받아야 하는데 받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어떤 환경이 임하든 다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며칠 동안 샤워를 못했으니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어떤 때는 맛있는 것이 없는데 밥을 먹겠습니까, 안 먹겠습니까?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꼭 먹어야 합니다. 그럼 밥을 먹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변함없이 본분을 해야 합니다. 겨와 나물로 끼니를 때워도 본분을 할 수 있고 어떤 고생도 감수할 수 있으며 무슨 고통을 받아도 당신을 하나님과 멀리하게 할 수 없고 본분을 그만두게 할 수도 없다면 이것을 비로소 믿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견지해 나가지 못합니다. 어쨌든 사람은 어떤 고통이든 다 받아야 합니다. 고통받는 환경이 임했을 때 늘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소극적이 되어 태만하게 본분을 다하지 않는데 욥의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악에서 떠날 수도 없습니다. 원망의 말을 하는 사람은 악에서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에 원망의 말만 하고 소극적이며 태만하고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큰 고통을 받아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욥의 제일 큰 고통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들과 딸 그리고 재산과 종들을 빼앗긴 후, 마지막에는 사탄에게 격타당해 온몸에 악창이 생겨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으로 자기의 몸을 긁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이것이 욥이 제일 고통받을 때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소극적이 되고 뒤로 물러섰습니까? 특히 그의 아내가 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을 때 그가 어떻게 말했습니까? 그는 아내를 질책하면서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욥은 여전히 그의 온전함을 지켰고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간증입니다.

만약 어느 날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정과 재산을 거두어 가심으로 세상 사람들이 당신에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릇된 길로 갔다고 비방하고 논단할 때, 당신은 간증을 설 수 있습니까? 이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방의 마귀 사탄과 각종 악령과 더러운 귀신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내일이면 존재하지 않고 사라지는데 그런 죽은 사람들의 소리에 신경 써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일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다른 데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헛소리에 신경 쓰지 마세요. 이렇게 마귀 사탄의 각종 논법을 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주 간단하죠? 이것이 바로 믿음인데 그 어떤 약간의 속박이나 고통도 받지 않습니다. 그 어떤 고통도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홀가분하고 유쾌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행한 것들이 조만간 어느 날에 하나님이 기억하실 것이고 후세 사람들에 의해 미담으로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일부 형제자매들이 그의 후대에게 예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교통하시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설교해 주어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조금씩 자라났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러면 미담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의 후대가 말할 것입니다. “와! 정말 행복하네요. 그때 우리도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일입니다. 모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는데 120년이 일식간에 지나갔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이것저것에 미련을 두고, 이 고통도 받을 수 없으며, 저것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느 날엔가 후회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우매했을까? 왜 그렇게 시야가 좁았을까! 내 믿음이 너무 작아.” 지금 자신의 믿음이 작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 없겠지만 얼마 지나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이 도는 너무나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이것이 원칙이고 기준입니다. 당신이 깨달은 모든 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면 하나님을 믿은 것이 성공한 것이고 이미 참 도를 얻었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서 도달하는 효과가 좋을수록 당신은 점점 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패괴된 인류 중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한 사람이 바로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완벽한 사람은 없다.”라는 이 말이 성립되겠습니까? 사탄의 이 철학이 하나님 말씀에 의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실에 의해 철저히 격파되어 산산조각이 나게 됩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지 못했습니까?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어떤 진리의 깨달음과 진입이 부족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지 못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좀 있는데 악에서 떠난 것이 너무 적어 아직도 모든 악에서 떠나는 것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10가지 악에서, 어떤 사람은 20가지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30가지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분량 문제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큰 악과 뚜렷한 악은 감히 행치 못하지만 숨겨진 악, 간파하지 못하는 악은 여전히 행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온전함에 도달한 것입니까?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30% 있어 양심에 걸리는 악을 행하지 않지만 진리가 없어서 분별하지 못하는 악은 여전히 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진리가 부족해서 초래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많은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의 깨달음이 너무 얕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미혹을 당할 수 있는데 사람을 미혹하는 것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고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까? 떠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사탄에게 미혹당할 수 있고, 속임에 빠질 수 있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사탄에게 통제당하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악에서 떠난 것입니까? 이런 사람은 분량이 너무 작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너무 작아 1점밖에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사람을 미혹하는 말은 겉으로는 다 맞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맞지만 그 속의 근원이 그릇되고 겉으로 하는 말은 옳은 것 같지만 속마음이 옳지 않습니다. 사람을 미혹하는 이런 말을 분별하지 못하면 사탄의 실질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당신이 사탄의 실질을 간파하지 못하면 사탄은 사이비한 말, 겉으로는 옳지만 근원이 틀리고 그릇되게 품은 속마음의 말로 당신을 미혹하여 점유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신이 여전히 사탄의 간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얕지 않습니까? 무릇 사탄에게 여전히 미혹당할 수 있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인솔자들을 간파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정도가 깊지 못합니다. 종교인들이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간파하지 못한 것처럼 유사한 도리와 사탄의 외식에 미혹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사탄과 적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쉽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구 소란을 피우며,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통제를 쉽게 받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혹형 앞에서는 간증을 설 수 있겠지만 사람을 미혹하는 자 앞에서는 사탄에게 노략당하고 패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을 얻었고 진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얕으면 사탄을 완전히 이길 수 없는데, 이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철저히 이기려면 반드시 많은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의 혹독한 고문 앞에서는 굳게 서고 큰 붉은 용의 세뇌에서 실족했는데, 이는 무슨 문제입니까? 큰 붉은 용의 세뇌에는 혹독한 고문과 감옥살이가 없고 전부 종교계의 목사와 무신론 학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각종 사이비한 그릇된 논리로 강의하여 사람을 포로로 만듭니다. 처음 듣기 시작할 때는 ‘틀렸어!’라고 분별해 들을 수 있지만 여러 번 듣고 나면 ‘맞는 것 같아. 도리가 좀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더 많이 들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도 틀린 건 아니야.’ 이렇게 조금씩 속아 넘어갑니다. 보세요, 진리가 없으면 마지막에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탄과 싸워 이기려면 의지력만으로 되겠습니까? 진리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에게 온갖 술수와 각종 간계가 있는데, 그것은 오직 공안 차, 감옥살이, 그리고 혹독한 고문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그릇되고 황당무계한 논리 그리고 영적인 듯한 유사한 이론으로 사람을 세뇌시켜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는 전술이 아주 지독해서 진리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사탄을 이겨 간증을 굳게 서려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때면 사탄이 어떤 간계를 부리든지, 어떤 방식과 수단을 쓰든지 당신을 이기거나 실족시키지 못하며 해치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때에야 사람은 사탄을 완벽하고 철저하게 이긴 사람이며 이런 사람이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로운 경지로 진입한 사람입니다. 이 점에서 보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의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은 진리가 없으면 굳게 설 수가 없고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진리가 없으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 도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경력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구원받고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전력을 다하여 추구해야 하는데 진리를 추구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진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고통을 받으면서 추구할 가치가 있고 목숨을 걸고 얻을 가치가 있으며 진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다 가치가 있습니다. 진리는 너무나도 귀하고 모든 것을 초월하며 진리는 곧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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