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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와 하나님 역사가 도달할 효과≫에 관한 설교 교통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역사하셔서 도달하려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모른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할 수 없고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할지도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에 역사하여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 하시는지, 이 문제는 무엇에 관련됩니까?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비교적 총명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지 은혜를 받고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구원을 받는 것인지에 대해 사람이 만약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수 없고 어떻게 경력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는데, 그 원인은 그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어떤 방향으로 경력해야 하고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설령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하나님 역사가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 하는지, 하나님 역사가 도달하려는 효과와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이르는 것이 무슨 관계인지를 깨달아야 하고 먼저 이 문제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아마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이후에 하나님나라시대의 사람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들이고 이러한 인류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맞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분명히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이 효과에 도달한 사람이야말로 구원받은 사람이고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도대체 어떤 기준인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은 도대체 하나의 어떤 생명인지, 하나의 어떤 분량인지, 이런 일을 다 꿰뚫어 봐야 합니다. 당신이 꿰뚫어 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 역사에 협력하는지를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여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모릅니다. 예를 들면 일부 사람들은 “저는 일을 함에 있어서 맞는지 틀리는지, 합리적인지 아닌지에 따라 선택합니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기준입니다. 그럼 이 기준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요? 일부 사람들은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또 일부 사람들은 “저는 일을 함에 있어서 진리에 근거합니다.”라고 하는데, 그럼 도대체 무엇이 진리입니까?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제가 하나님을 믿고 지금은 악을 행하지 않는데, 이것이 곧 구원받은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럼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어떤 기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까?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당신의 그 악은 무슨 기준입니까? 당신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무슨 기준입니까? 또 어떤 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기준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성립됩니까? 어떤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당신이 함부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범죄하는 것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자기의 뜻에 따르고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깁니까?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간증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깁니까? 이런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 것입니까? 그것은 구원을 받는 기준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는 기준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다”를 어떻게 해석합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여 어떤 효과에 도달하시는 걸까요?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일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진실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바로 “저는 하나님께 노여움을 살까 두렵고 하나님을 거스를까 두렵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고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떠날 수 없고 그 외에 하나님의 말씀을 몹시 갈급해 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할 수 있다면 이것은 어떤 마음입니까? 이것을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바로 존경이 있고 두려움이 있는데, 이것을 합쳐야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마귀에게는 두려움만 조금 있습니다. 그것에게는 존경심이 없고 사모함이 없고 애모가 없기에, 함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숭경하며 또한 사모할 수 있고 떠나기 싫어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보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속에 두려움만 있습니까?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애모가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며 또 존경하는 마음, 숭경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을 떠나기를 원치 않으며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사람 마음속의 이러한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을 개괄해서 말하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확고하여 의심할 바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경력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어떠한 심판ㆍ형벌,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받아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을 논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데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이 목표를 향해 추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몇 년 믿고 나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문제가 바로 악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많은 일들, 진리와 합하지 못하는 일들, 육체가 좋아하는 일들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명리, 지위, 허영심 그리고 육체의 이익과 같은 것인데, 왜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고 진리에 맞지 않는 일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꼭 그렇게 하려고 하고 그렇게 추구하고 그런 것을 지키려고 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를 설명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잘 알았죠? 여러분이 보기에 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위와 명예 그리고 육체적 누림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을 수 없으며, 자기의 뜻을 배반할 수 없고 곧 달갑게 고통을 참고 사랑하는 것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며, 진리를 구할 때가 아주 적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주동적으로 하는 일이 매우 적으며, 육체를 배반하고 자기의 욕망을 배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일부 인솔자 일꾼들이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슨 일이든 다 저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인솔자 일꾼들을 선거할 때, 누가 그에게 아첨하고 잘 보이고 누가 그에게 유익하면 곧 그를 선거하여 인솔자 일꾼으로 세우고, 누가 무슨 일이든 다 그의 말만 듣고 그의 명예를 수호해 주고 그의 형상을 수호해 주며, 누가 그에게 수시로 상황을 알려주고 정황을 회보해 주면 그는 이런 사람이 곧 그의 지심인이고 그의 유능한 조수라고 여기면서 재빨리 그를 인솔자로 선정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자기 뜻에 맞는 사람을 인솔자 일꾼으로 선정하는 위해(危害)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역사의 효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 사람들은 진리를 교통할 줄도 모르고 그에게 경력의 간증이 없기에 하나님 선민의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르고 하나님 선민을 인도하여 실제에 진입할 수 없기에 그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사람들과 자신에게 상황을 귀띔해 주는 사람들과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인솔자 일꾼으로 선정하는데, 이것이 하나님 선민을 지체시키고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럼 이런 인솔자 일꾼들이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런 일을 행할 수 있고 이런 악행을 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으로 인해 초래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이런 악행을 행할 수 있으니 또 무슨 일인들 해내지 못하겠습니까? 함부로 남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함부로 음란을 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물을 훔쳐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위의 복을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선민의 이로운 점만 이용하여 하나님 선민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차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그 어떤 일도 다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이런 악을 행할 수 있고 하나님 선민에 대해 이런 불리한 일을 해낼 수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이 효과에까지 도달하게 하려 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되게 하려는 이 의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으로 하여 국도에 이끌어 들어가려 하시는지, 이 의의가 무엇인지 이제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마음속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100% 인정했으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직접 하나님의 말세 역사도 보고 하나님의 나타남도 보았으니 영원히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확신했습니다. 우린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국도에 들어갈 겁니다.’라고 여길 것입니다. 이 논법이 성립됩니까? 당신이 아무리 하나님을 100% 확신하고 또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 하더라도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다면 악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악에서 떠날 수 없다는 이 말의 뜻을 툭 터놓고 말해서 바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여전히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설사 하나님을 10년, 20년, 30년, 50년을 믿는다 할지라도, 설령 100% 하나님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진심으로 믿든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국도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국도에 들어간다면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할 것이며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구원받는 기준을 정하신 것입니다. 이는 아주 의의 있고 아주 실제적이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너무나 합당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진리입니까,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구원받는 기준이고 진리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몇 년간 믿어 왔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이 기준에 도달했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반성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만약 당신이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지금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이제는 당신이 구원받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겠지요. 우리는 더 이상 함부로 상상대로 말하지 말고 진리에 근거해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고 “제가 여러 해 믿으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본분도 많이 했고 많은 것도 버렸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아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여전히 많은 악을 행할 수 있기에 당신은 아직도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고 최소한 아직은 구원받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지금 하나님의 사역이 “덜컥” 끝난다면 당신은 아마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까? 첫째는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한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말함에 있어서 성실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그대로 말하고 기만하지 말고 말을 함에 개인의 속셈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으로 인해 비로소 성실한 사람이 되는 기준에 닿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쉽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의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의 지위가 있어서 말을 하거나 일을 함에 있어서 다 자각적으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가 또 거짓말을 하고 기만할 수 있겠습니까? 또 개인의 속셈에 의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말을 일부러 가식적으로 하고 과장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는지의 여부는 평소에 하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그가 일을 함에 있어서 책임을 지는가의 여부를 봅니다. 셋째는 그에게 양심과 이지가 있는가의 여부를 봅니다. 넷째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봅니다. 이 몇 방면으로부터 가늠해 보면 그가 도대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단정할 수 있고, 말을 함에 있어서 솔직하지 못하고 겉과 속이 다르며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며, 뒤섞임만 가득차 있어 보기만 해도 간사한 사람이고 추호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마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금도 사람 말다운 말이 없고 말을 함에도 솔직하지 못하므로 곧 마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듣기만 해도 알 수 있는데, 저는 이런 사람은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그가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어도 아무것도 아니고 생명이 없어서 구원받는 데에 이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을 함에 솔직하지 못하고 사람이 됨에도 정직(역주: 정의롭고 솔직하다의 뜻)하지 못하니 이는 좋은 놈이 아닙니다. 최종에는 굳게 서지 못하고 조만간에 도태될 것인데 30%는 사람 같고 70%는 귀신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본분을 함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한 것은 다른 사람이 봤을 때 혐오하게 되고 분개하게 됩니까? 그가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고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귀신 본성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이 저와 한동안 지내면서 한 번 또 한 번씩 기만하고 한 번 또 한 번씩 하나님의 집을 모해하려 한다면 저는 한 발로 그를 차버릴 것입니다. 당신이 이런데 무슨 본분을 한단 말입니까? 당신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불길한 놈이고 집안을 망치는 놈입니다. 당신이 하나님 집에 그릇 하나를 벌어들였다면 결과는 쟁반 하나를 깨뜨리는 격이고 창문 하나를 벌어들였다면 문 한 짝을 훼손시킨 것과 같은 격이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으니 당신을 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재수없는 놈입니다! 하나님 집에는 가치를 창조하고 이익을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집의 건축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조금의 손실도 가져다줘서는 안 됩니다. 인솔자 일꾼으로서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생명 경력이 있는 사람을 인솔자로 선거하지 않고 아첨이나 하고 글귀 도리만 말하는 사람을 선거한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행위가 아닙니까? 무릇 인솔자 일꾼들이 선용한 사람 중에 2~3명이 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글귀 도리만 말하면서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인솔자 일꾼들은 반드시 인책 사직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에 당신은 인솔자 노릇을 할 수 없고 자격이 없습니다. 어떤 곳에서 인솔자 일꾼들이 하나님을 믿은 지 1년 밖에 안 되는 17살 된 어린 형제님을 교회 인솔자로 선정했는데, 이 젊은이가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교회 인솔자로 지정하다니, 이는 무슨 인솔자입니까? 이것이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의 행위가 아닙니까? 이런 인솔자들은 당장 인책 사직하세요. 당신이 인책 사직하지 않으면 제가 당신을 제명시키겠습니다. 또 어떤 인솔자 일꾼들은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패괴 성품이 좀 있는 사람이 일어나면 자기의 지위에 위협이 될까 두려워 그를 적그리스도로 정하여 제명시키고 그를 짓밟으려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터무니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드러내놓고 탄압하려 하는데 이것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고 바로 적그리스도의 악행입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누차 이런 악행을 저지른다면 반드시 제명시키고 하나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아래에서 다년간 사역하며 사람을 미혹했을 것입니다. 만약 제 옆에 있었다면 벌써 그를 제명시켰을 것입니다. 제가 발견하지 못했으니 망정이지 제가 발견했더라면 한 발로 그를 차버렸을 겁니다. 제 주변에 있던 일부 적그리스도와 악인은 일찍이 1~2년 전, 3~5년 전에 제명을 당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일부 목회 구역 사무원, 구역 인솔자들이 책임감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악마를 오늘날까지 남겨두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역사가 그물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물을 쳐서 각종 물고기들이 다 그물 안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물을 걷기 시작하여 나쁜 것은 밖으로 내던지고 없애버립니다. 최후에는 오직 일부분 좋은 고기만 남게 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람들을 정결케 한 후 천국으로 이끌어 들어갑니다. 지금 하나님 역사가 곧 그물을 거두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즉 전에 말했던 말일에 키질하는 단계이기에 지금이 바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와 불신파 그리고 각종 악령들을 깨끗이 정리할 때입니다. 이런 것을 다 깨끗이 정리하고 나면 하나님의 사역도 철저히 끝나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럼 교회 안의 사람이 얼마나 남겠습니까?”라고 묻는데, 얼마나 남든지 상관없습니다. 절반이 남든, 3분의 1이 남든, 어쨌든 악인은 반드시 제거하고 제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교회 사역입니다. 다음 한 단계는 제거를 시작하는데, 그것도 한 번 크게 제거해야 합니다. 특히 인솔자 일꾼들을 한 무리 대체해야 하는데, 적어도 절반 정도는 됩니다. 이번에는 가차없이 절대 간단하게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아래에서 사람을 속이고 억누르며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고 있는데, 그들을 전부 처리해야 합니다! 그들은 다 흑암속에 떨어져 통곡할 것입니다. 어쨌든 성령 역사가 없는 인솔자 일꾼들은 전부 교체해야 되고 적그리스도는 전부 제명하되 하나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 얼마나 오랫동안 인솔자로 있었든, 그가 어느 급의 인솔자로 있었든지를 막론하고 제명해야 할 것은 반드시 제명해야 하고 조금도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됩니다. 목회구역 사무원이라 해도 제명해야 한다면 제명하고 전부 처리할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는 자격론이 성립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자격이 있다고 할수록 더 적그리스도이고 바로 극악무도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즉 말을 함에 있어서 진리와 실제에 근거해 말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진리의 원칙에 근거하며 교회에서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무릇 말을 함에 있어서 진실한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실속있는 일을 하며 전혀 기만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바로 좋은 사람이며 간사한 사람은 악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무런 악도 행하지 않지만 말을 함에 있어서 특히 간사하고 교활해 어느 누구에게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잘 드는 칼로 두부를 베듯이 처세에 뛰어나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이 마귀가 아닙니까? 겉으로 보기에 악인은 아니지만 실질은 가장 교활한 마귀입니다. 사탄의 철학이 너무 심해 추호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가장 교활하고 가장 음험한 마귀여서 사람이 아주 쉽게 그의 속임수에 빠지고 아주 쉽게 그에게 기만을 당하고 미혹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행위가 괜찮고 사람에게 작은 선심을 잘 베풀며 말을 함에 특히 번지르르해 듣기에 감동적이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지만 조금도 진리 실제가 없고 말하는 것이 전부 본심에 어긋나는 말이며 눈치를 봐가며 행동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앞에서는 사람이고 뒤에서는 귀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사람들은 사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그는 저녁에 잠잘 때 ‘오늘 하루 거짓말만 했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봐가며 말했고 어떻게 말할까 궁리하면서 말했고, 한 마디를 말해도 머리를 쥐어짜서 말했구나’라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습니다. 설사 그가 힘든 줄 안다고 해도 왜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이는 본성의 지배를 받아서인데, 본성이 바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만약 정말 진리를 사랑한다면 틀림없이 진리를 실행할 것이고 한동안 진리를 실행하면 “진리를 실행하니 말을 해도 힘들지 않고 참된 말을 하니 홀가분하고 마음속이 확 트이는구나. 아! 역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사는 게 얽매이지 않고 홀가분하고 해방되고 자유로워. 설사 어떤 때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어떤 사람은 듣기 싫어하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느낌이 어떻든, 결론적으로 우리가 성실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되니까”라고 느끼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만약 성실한 사람이 되는 단맛을 보게 된다면 또 사탄 본성으로 되돌아가 계속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는 단맛을 본 것입니다. 사람됨에 있어서 마땅히 이렇게 사는 삶이 가볍고 힘들지 않고 자유롭고 누림이 있으며 또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빚지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한 말을 하는 이것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진실한 말속에는 해침이 없고 기만이 없으며 양심도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이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제가 여러분과 말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다 마음속 말을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제가 말을 하는데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까? 이렇게 궁리해 보고 저렇게 다듬어 보고 하는 이런 것이 있습니까?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사역을 함에 힘들지 않고 가뿐하기에 제가 설교할 때 입만 열면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입만 열면 시작할 수 있을까요? 늘 궁리할 필요가 없고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머리를 좀 쓰면서 생각한다 해도 무엇을 생각할까요? 이 말을 어떻게 말해야 분명히 말할 수 있을지,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지, 말을 수다스럽게 하지 않고 어떻게 간결하게 말할까, 저는 이런 것을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말을 돌려서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을 어떻게 해야만 사람들이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하면서 사람을 기만하여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라고 궁리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속셈이 없습니다. 제가 왜 말하는 방식을 궁리해야 됩니까? 가식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다 좋다고 말하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실행하지 못합니까?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자매님의 남편이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믿지 않는데 당신이 그에게 “자매님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 아니면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그에게 물으면 부부 정이 있어서 “제 남편이 비록 믿지는 않지만 아직도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지지해 주고 있으니 그래도 좋은 사람이죠!”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궁리를 해가면서 말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당신 남편, 밖에서 외도하는 거 알고 있어요?”라고 말해 주자 그가 듣고는 화가 나서 “그 사람, 마귀인지 일찍부터 알아봤어요. 하나님을 안 믿으면 다 마귀니까.”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이것을 말하니 그는 또 남편을 마귀라고 합니다. 말하는 것이 어쩌면 자기 뜻에만 근거해 말합니까? 왜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까? 이는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이 성실한 사람입니까? 그가 말하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어떻게 유리하면 그렇게 말하고 자기 면목에 어떻게 유리하면 그렇게 말하고 감정에 따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을 하게 되면 쉽게 스스로 모순되면서 어떤 때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부류 사람들은 사탄의 철학이 안에서 지배하고 있기에 말하는 것이 매우 힘든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면 사는 삶이 자유롭고 담대하며 가볍고 해방되어 일부 사람들은 살아갈수록 더 젊어집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것은 그가 진리를 실행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면 영원히 젊어집니다. 진리를 실행하면 왜 젊어질까요? 그는 그리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그리 많은 속을 태울 필요도 없어서 마음이 힘들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쓰임받고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을 위해 마음을 쓰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 한 가지 사역만은 힘이 듭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된 짓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뭐겠습니까? 권력을 잡기만 하면 여전히 마귀이기에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 마귀입니다. 기억하십시요! 마귀에 대해 어떻게 하면 합당할까요? 그로 하여금 고분고분 경력하게 해야지 지위와 권력을 줘서는 안 되며, 날마다 수리(역주: 교훈)하고 대처(역주: 질책)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되면 그때에야 지위를 좀 줄 수 있고 비로소 권력을 좀 줄 수 있으며 그에게 일을 좀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단속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반드시 이렇게 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러면 사람을 사람 대우 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당신이 아직도 사람이 되지 않았는데, 제가 어떻게 당신을 사람으로 대하겠습니까? 제가 당신에게 권력을 준다면 더 문제가 될 것이고, 당신은 지금 패괴가 매우 깊은 마귀 사탄이기에 반드시 좀 눌러놔야 하고 좀 제한해놔야 하며, 반드시 좀 수리 대처를 가해 자주 해부를 하고 파헤쳐야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필요한 것이자 역시 사람을 구원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권력과 지위가 좀 있기만 하면 못된 짓을 하기에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는 행정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그렇게 많은 적그리스도가 다 제명됐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추호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도 인성 이지가 없어서 반드시 제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다 사람이지만 일을 하고 말을 하면 맛이 다릅니다. 정말 불가사의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지,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다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얻어지지 않은 사람은 어느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까? 누가 성경의 한 단락 말씀을 찾아서 이 문제를 설명해 보겠습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중에 어떤 사람일까요?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는 무슨 뜻일까요? 첫째, 이 사람들은 분명히 악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주님이 그들을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어 왔든지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믿어 왔는데, 하나님은 왜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게 아닙니까? 이치대로 하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고 또 허다한 악을 행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정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이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악을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은 무엇에 근거할까요? 어떤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일까요?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 또 한 가지 진리와 관련됩니다. 즉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이 진리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 진리를 사람이 만약 깨닫지 못한다면 아주 위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는 나를 믿는 자가 아니다. 나는 그가 나를 믿는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그가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일방적인 소망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방적인 소망은 근거가 없기 때문에 법률상에서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하나의 진리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면 당신의 믿음은 성립되지 못하고 폐기될 것입니다. 즉 당신이 하나님을 다년간 믿었다 하더라도 헛될 것이고 헛수고로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데 또 무슨 절차가 있습니까? 어떻게 믿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데, 당신이 이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없다면 정말 문제가 됩니다. 지금 이 진리를 교통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무엇에 근거하십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둘째는 성령의 역사에 근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증거입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진리를 구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얻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분을 믿는다고 인정해 주시는지의 여부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근거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시인하고 하나님 말씀이 바로 사람이 진입해야 할 진리의 실제이고 바로 사람이 얻어야 할 생명임을 시인한다면 당신은 마땅히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대해야 할까요? 당신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몹시 갈급해야 하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진실로 순복하며 진실로 실행할 때 성령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시면서 당신에게 하나님 말씀을 깨닫도록 깨우쳐 주고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도록 인도해 주며 당신을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이 이렇게 당신을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실때, 당신이 만약 시종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고 시종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견지하면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한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됨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 말씀에서 만약 실행하지 않고 경력하지 않는다면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이 사람 몸에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정하시지 않음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정하시지 않고 당신을 멀리하고 당신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통속적인 말로 하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거들떠보시지도 않고 당신을 한쪽에 밀어뒀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성령 역사를 잃게 될 때는 여기에 틀림없이 이 몇 방면의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싫어해서 버리셨을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한쪽에 밀어두셨거나,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들떠보시지 않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내버리셨을 수도 있는데, 당신에게 역사하시지 않고 당신을 포기하고 당신을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고 성령이 바로 하나님이며, 성령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곧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대표하기에 성령이 이렇게 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하나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며, 하나님이 당신을 멀리하고 당신을 포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는 바로 성령의 역사와 성령이 드러내시는 데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이 사람을 떠나셨고 그에게 이미 오랫동안 성령 역사가 없음에도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어떻게 할까요? 그를 B조에 두어 그가 회개할 수 있는지를 봅니다. 만약 B조에 한동안 두었다가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를 제명시킵니다. 이것이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하는 근거입니다. 알았겠죠! 하나님 집에서 모든 사람을 처리함에 바로 성령이 이 사람을 대하시는 태도에 근거하는데, 성령이 어떻게 이 사람을 드러내시면 하나님 집에서 그렇게 이 사람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합당합니다.) 만약 인솔자 일꾼들에게 성령 역사가 없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성령 역사가 없는 인솔자 일꾼은 거짓 인솔자, 거짓 일꾼에 속하기에 반드시 대체해야 합니다. 만약 성령 역사가 없으면서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면 어떤 사람에 속합니까? 적그리스도에 속합니다. 그가 갖은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고 단지 성령 역사가 없는 것이라면 거짓 인솔자로 정해지는데, 거짓 인솔자는 반드시 대체하고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인정하시는지에 대해 알았겠죠! 즉 성령의 드러내심에 근거하여 결정되는데 이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가 악을 멀리할 수 있겠습니까? (악을 멀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입니까?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사람은 또한 틀림없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며,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투기하려 하고 복을 얻기 위해서이며, 사탄의 간계를 품고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곧 외식하는 사람들이며, 투기파에 속하고 불신파라고도 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고 많은 고통을 받았고 많은 것도 버렸지만 성령 역사가 없음으로 인하여, 갖은 악행을 저지름으로 인하여 제명을 당했는데, 제명한 것이 맞습니까? 완전히 정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성령 역사도 없으면서 갖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에 속하고 악인에 속하기에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은 악인을 증오하시고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많은 것을 버렸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왜 또 악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악을 행하면 구원받기는커녕 도리어 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터놓고 말하자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약 악을 행한다면 복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또 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알면서 왜 또 악을 행할까요? 하나님을 이제 막 믿은 사람이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화를 받기 위해서입니다.”라고 계획해 놓을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그는 왜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악을 행할까요? 본성이 바로 악인이기에 그는 억제할 수 없고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아내)이 있으면서도 기어코 외도하려 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이 좋아보이고 음란을 행하려 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는 성품이 사악한 것에 속합니다. 성품이 사악한 사람은 시험을 이겨 낼 수 없고, 적합한 배경이 있고 사탄의 유혹이 있으면 곧 죄를 범하게 되고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한두 번은 과오지만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 말씀의 해부, 양심의 가책을 경력하면서 이것이 악행이고 과오임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한 번의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만약 세 번째로 또 거듭 범한다면 이것은 과오입니까? (아닙니다.) 세 번째는 옛병이 도진 것인데 이러면 처리해야 합니다. 가정도 있고 사업도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제멋대로 합니까? 이것을 비천하다고 합니다. 과오가 있는 사람이 만약 정말로 회개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많은 일에서도 다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춘 것입니다. 당신이 조그마한 악에서만 떠날 수 있으면 안 되고 허다한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즉 섬기는 방면에서 자기 뜻이 없어야 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악의가 없어야 하고 육체를 대함에 있어서 사치한 욕망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래가 없어야 하며, 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어야 함을 포함합니다. 그다음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착실하고 모든 힘을 다 기울이고 죽도록 충성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면 온전한 사람의 정도에 이른 것입니다. 악에서 떠남에는 아주 많은 방면이 있지만 사람에게 더는 과오가 없으면 이것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럼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악에서 떠났습니까? 몇 방면의 악에서 떠났습니까? 정말로 모든 과오에서 떠났습니까? 조심하지 않게 되면 또 어떤 악들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일단 권력이 있고 지위가 있게 되면 또 어떤 악을 행할 수 있습니까? 이런 방면에서 모두 다 확실하게 반성해야 당신은 자신의 진실한 분량을 알게 됩니다. 사람의 분량이 큰지 작은지를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지 이제는 분명하겠죠!

지금 일부 사람들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늘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지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또 악을 행할 수 있고 남몰래 악을 행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하고 신뢰할 가치가 없게 하며 사람됨됨이도 다 문젯거리이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착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려면 최소한 어떤 분량과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 딱 알맞고 명실상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최소한 다른 사람이 지켜보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의 감독도 필요없이 착실하게,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마음놓으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볼 필요가 없으면 바로 성실한 사람이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당신이 그를 어디에 두어도 다 됩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인솔자를 자주 바꾸고 있는데, 왜 자주 바꾸어야 할까요? 어떤 인솔자는 책임감이 없습니다. 인솔자가 책임감이 없으면 어떤 일들이 생깁니까? 어떤 사람들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고 좋은 인솔자들이 압력을 안 주면 안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늘 그와 진리를 교통해 줘야 힘이 나서 일을 하고 진리를 교통해 주지 않으면 곧 드러눕고 소극적이고 태만하며 슬그머니 그만두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일부 사람들을 선용했는데, 며칠에 한 번씩 물어봐야 하고 진리도 교통해야 하고 늘 대처도 해야 사역을 좀 합니다. 제가 하나님께 “많은 사람들은 계속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3분의 열정이고 3일의 열심이어서 닷새만 지나도 본분을 잘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의 분량이 너무 작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효력자이고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제가 며칠만 집회를 하지 않아도 아래에 일부 사람들은 또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고, 어떤 사람은 또 못된 짓을 하기 시작하고 일부 사람들은 야심이 생기고 가시가 돋기 시작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자민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자민의 기준에 닿을 수 있습니까? 진리를 좀 실행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힘이 듭니까, 약을 먹기보다 더 어렵습니까? 어린애에게 약을 먹일 때면 어른이 구슬립니다. “약 먹자, 먹으면 예쁜 옷 사줄게, 응? 약 다 먹고 놀러 나가자.” 이렇게 거래도 하고 조건도 말해야 어린애가 기뻐서 약을 제깍 먹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본분을 하는 데에도 구슬려 가면서 “본분을 잘 하세요, 본분을 하면 상을 받고 선행을 많이 예비하면 국도에 들어갈 수 있어요. 당신이 본분을 잘하지 않고 선행이 없으면 좋은 결말이 없어요. 결말을 위해서라도 본분을 잘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좋아요, 그럼 본분을 해 볼 게요!”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과는 아직 거리가 너무 멀어서 더 말할 나위도 없고 그야말로 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방인의 말로 하면 “이 인식이 너무도 낮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굳이 다른 사람이 감독할 필요가 있습니까? 굳이 다른 사람이 수리 대처하면서 앞으로 밀고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까?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앞으로 나아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이 진리를 교통해 줘야 본분을 좀 할 수 있고 선행을 예비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입니까? 언젠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도태시키실 때에, 당신은 눈물을 짤 것입니다. 그러기에 평소에 왜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선행을 예비하지 않고 본분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기술이 괜찮아서 동영상이나 영화를 다 만들 수 있는데, 집을 버리지 못하고 부모와 자식을 버리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남편을 버리지 못하고 아내를 버리지 못해 모든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본분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 실제 일을 할 수 없는데, 이 사람들은 조금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만약 복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이 조금이라도 없었더라면 그는 본분을 아예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복을 얻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본분을 좀 하고 힘을 좀 낼 뿐입니다. 때가 되어서 만일 구원받지 못한다면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하게 욕을 퍼부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이런 사람은 양심이 있습니까? 너무 양심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좀 하면 허세를 부리면서 무엇을 써도 제일 좋은 걸로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본분을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제일 좋은 고품질의 장비를 쓰게 해 줘야 합니다.”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좋습니까? 이는 이지가 없습니다. 쓸 수 있으면 되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본 어떤 형제자매들은 자기 집을 팔고 값진 물건들을 다 팔아 장비를 좀 사서 스스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 집의 돈을 쓰지 않고 자기의 돈을 하나님을 위해 씁니다. 이것은 무슨 정신입니까? 어떤 것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떤 일이든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요구하시는지, 우리 사람은 어떤 이지가 있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합당한지를 좀 고려해 보게 됩니다. 이러면 사람이 보기에도 합당하고 하나님께도 통과될 수 있으며 자신의 양심도 평안하고 동시에 또 본분도 잘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가늠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진정 원칙이 있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처리해도 다 원칙이 있고 모두 진리에 부합된다면 이런 사람은 바로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며, 장래에 국도 자민으로 될 수 있습니다. 진정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보호받으며 어떤 재난도 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정말 병이 나서 마지막 한 숨이 남았다 해도 당신은 죽지 않을 것이며, 당신에게 정말 재난이 임했다 해도 당신이 기도만 하면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께 축복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사람이며, 어떤 재난이 임한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이런 실제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인정된 것이고 틀림없는 국도의 자민이며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재난 중에서 어떤 사람이 보호를 받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열두 편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바로 구원받는 데에 이르는 기준이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한 사람 몸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지 없는지, 진정한 하나님의 자민인지 아닌지는 바로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고통도 받을 수 있고 대가도 치를 수 있고 진리도 실행할 수 있지만 하나님 뒤에서, 영의 앞에서는 흉악하게 날뛰면서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바로 악을 행하는 사람에 속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럴듯하게 꾸미지만 영의 앞에서는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는데, 앞에서는 사람이고 뒤에서는 귀신이며 외식하고 기만합니다. 이는 바로 전형적인 간사한 사람이며 마귀 사탄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 앞에서는 말을 잘하지만 뒤에서는 사람다운 일을 하지 않는데, 이것이 마귀가 아닙니까? 저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쓸 때, 다 설명해줍니다. “지금 당신에게 이 기회를 주고 사역을 맡기려고 하는데, 잘할 자신이 있습니까?”라고 하니 그가 말하기를, “자신이 있습니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이 만약 잘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어떤 사람은 대담하게 “잘하지 못할 때는 저를 어떻게 처리하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마음에 어떤 자신감도 없기에 섣불리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잘하지 못하면 스스로 사직하고 얼른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라고 하니, 그가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기에 제가 “그러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뒤에서는 어떻습니까? 3~5일의 열심이고 어떤 사람은 한 기간의 열심이고 한 주일이거나 보름 동안의 열심인데 시간이 길어지니 본성이 나왔습니다. 놀기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고 먹는 것만 밝히고 일은 게을리하면서 육체만 누리고 본분은 한쪽에 버려두고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중에 제가 “당신을 안 쓰겠으니 빨리 돌아가세요. 당신은 말한 대로 하지 않고 앞에서는 사람이고 뒤에서는 귀신이니, 가고 싶은 데로 가세요.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더는 쓰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바로 이런 원칙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쓰든지 저와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사람이 아주 좋으면 등용해 계속 쓰지만 이 사람이 인의(仁義)적이지도 않고 착실치도 않고 늘 기만하면서 앞에서는 사람이고 뒤에서는 귀신인데, 이는 어떤 놈입니까? 당신이 새신자라면 패괴를 유로(流露)하는 것은 정상이니 더 경력하게 해 살펴보고 좀 더 수리하고 대처하고 지적도 해 줘서 나중에 회개하면 됩니다. 만약 당신이 누차 되풀이하면서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면 저는 곧 지겨워져 이런 사람과 사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보았겠지요? 제가 이전에 일부 사람들을 좋게 대했습니다. 금방 그 사람들을 쓰기 시작해서 그들에게 잘 대해줬는데, 나중에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 제명됐습니다. 그가 저에 대해 아무런 원한은 없지만 제가 왜 그를 제명했겠습니까? 그가 조금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선민을 곤경에 빠뜨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그르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그럼 저도 이전의 우정을 고려하지 않고 사정두지 않고 빨리 제명해 버립니다. 제가 사람에게 감정이 있습니까?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제가 당신을 잘 대할 것이고 어떻게 중용해도 괜찮고 당신의 소질과 분량 그리고 능력에 근거해 어떻게 등용해도 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추호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님을 제가 일단 간파하게 되면 저는 즉시 당신을 한 발로 차버릴 것이고 당신을 영원히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대함에는 바로 이렇습니다. 그가 진리를 추구하면 저는 인내심 있게 부축하고 도와주고 지도해 주지만 일정한 시간을 양육한 후에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상이고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고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저는 그에게 좀 우롱당하고 기만당한 느낌이 들어서 그에 대한 원한이 커져 그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을 대합니다. 어떻습니까? 합당합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저는 싫증을 내지 않고 양육하고 부축하며 힘들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30년을 하루같이 장기간 시련을 겪었기에 저에게는 그런 인내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저를 속인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저는 분한 나머지 격노해 그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그 어떤 사랑의 마음도 쓸 필요가 없으며 좀 더 교통해 주는 것만 해도 이미 모든 성의를 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여러 번 물어보셨습니다. “각처의 교회마다 진정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만한 비례를 차지하고 얼마나 될까?” 제가 “많아서 3분의 1 정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아마 3분의 1도 안 될 것 같다, 어쩌면 많아 봐야 5분의 1정도밖에 안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런 교회는 아마 다수를 차지할 겁니다.”라고 말했는데, 나머지 대부분은 다 효력자입니다. 그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본분을 하고 있고 버리는 것은 바로 복을 얻기 위해서이고 복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좀 버리고 효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정 아닙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왜 이렇게도 힘이 들까요? 사람이 진리만 받아들이고 진리를 실행하면 힘들지도 않고 피해가 갈 일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도 힘이 들까요? 성실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는 왜 성실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기에 또 비밀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몇 년을 믿고 어떤 사람은 몇십 년을 믿어 왔어도 여전히 간사한 사람입니다. 전혀 진실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솔직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데, 솔직한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마치 솔직한 말 한 마디라도 하면 18층 지옥에 떨어지기라도 할 것 같은데, 이런 사람은 마귀 본성이 아닙니까? 바로 마귀 사탄이어서 교육시켜도 변화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인류가 극도로 패괴되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하나님 말씀을 올리고 하나님을 믿은 간증을 좀 올렸더니 그 마귀 사탄들이 공격하고 비방하고 논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의 사악함이 어느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까!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거나 욕하지 않고 아무도 저주하거나 평론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사물이 나오기만 하면 다 함부로 제멋대로 말하고 논단하며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공격합니다. 특히 큰 붉은 용의 집권당은 더 말할나위도 없습니다. 이는 무슨 문제입니까? 이 세상에 마귀 사탄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전 인류 가운데서 거의 90%가 다 마귀 사탄이고 다 악마입니다! 지금 이 패괴된 인류는 바로 사악을 숭상하기 때문에 그 어떤 사악한 일이라 해도 그것을 증오하는 사람이나 평론하는 사람 그리고 욕하는 사람이 몇 안 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사물일수록 공격하고 논단하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이것은 흑백을 전도하는 사회이고 사악을 숭상하는 사회이며 사탄의 세상입니다! 분명히 보았겠죠? (보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이 세상을 미워합니까? (미워합니다.) 진실로 미워합니까? 미워한다면 왜 진리를 실행하지 않습니까? 왜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까? 진실로 미워한다면 당신에게 간증이 있어야지 입으로만 미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너희는 진실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당신은 진리를 실행해야 하고 본분을 잘해야 합니다. 이래야 당신이 진실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본분으로써, 당신의 선행으로써 당신이 큰 붉은 용을 배반했음을 증명하고 당신이 큰 붉은 용과 맞서 싸우고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본분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지켜보지 않아도 되고 재촉하지 않아도 되며,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 할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 심지가 있습니다. 비록 심지가 있다 해도 꼭 잘한다고 보증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에게는 이 심지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잘하지는 못해도 좋은 쪽으로 할 것이고, 잘못하면 진리를 구하여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고 또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본분을 잘해 하나님을 만족케 하겠습니다.” 당신에게 만일 이 심지가 없다면 당신은 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본분을 해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실패해도 안 된다면 저는 본분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본분을 잘할 수 있을까요? (잘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모든 것을 버린 것만 해도 다행인데, 요구가 그렇게 높아서 뭘 합니까?” 이 말이 성립됩니까?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 성립되지 않습니까? 당신의 이런 것은 간증이 되지 않기에 사탄의 참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본분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케 하거나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뒤섞임이 너무 많아 복을 얻기 위해서이며 도태될까 두려워서 겨우 힘을 좀 내고 마지못해 본분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사탄도 시인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사탄으로 하여금 탄복하게 해서 당신을 참소할 수 없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인정해 주실 때에도 사탄이 시인한 후에야 확정하신 것이 아닙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가 70세가 되어서야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 일찍이 60세 때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임을 인정해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만 인정하셔서는 안 되고 반드시 사탄도 시인해야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욥을 축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은 사탄이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 이 기회를 빌어 사탄과 내기를 하셔서 시련이 욥에게 임했는데, 이 시련의 배경이 바로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였습니다. 물질세계에서는 재난이 욥에게 임하였고 사람이 보기에 욥이 화를 입은 것은 틀림없이 그가 착오를 범해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것 같지만 사실 진상은 하나님과 사탄과의 내기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관념으로 사물을 본다면 쉽게 틀리지 않겠습니까? 너무 쉽게 틀립니다. 결과는 이 시련이 임한 후에 욥이 간증을 굳게 서서 사탄이 줄행랑을 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욥을 인정하고 축복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축복은 어떤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까? 욥이 사탄을 수치당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간증을 굳게 선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만약 이 간증이 실패했다면 사탄이 바로 옆에서 웃었을 것입니다. 사탄이 “내가 이겼어요, 하나님이 그를 잘못 봤고 내가 말한 것이 맞았어요.”라고 할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은 욥에 대해 축복하시지 않았을 것이고 욥은 이 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지금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하고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힘을 바칠 수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니 간증을 굳게 서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받을 수 없습니다.) 왜 받을 수 없습니까? 그것은 그가 화비(역주: 들이다, 바치다, 쓰다, 지불하다의 뜻)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에 뒤섞임이 너무 많아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편에 참소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에는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그럼 사탄은 왜 인정하지 않습니까? 사탄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누가 보았습니까?”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사탄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무엇으로 실증하면 되겠습니까? 패괴된 인류 대부분이 사탄을 대표하기에 그 인류로써 실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패괴된 인류가 어떻게 사탄을 대표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본분을 하는데 역시 모든 것을 버리며 하나님을 위해 화비했습니다. 일부 형제자매들이 말합니다. “그가 본분을 하는 것은 복을 얻기 위한 거예요. 믿어지지 않으면 그에게 시련이 임할 때 한번 보세요, 틀림없이 굳게 서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이 말이 진실한 것입니까, 아닙니까? 신뢰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사람이 그의 실제 상황에 근거해서 말한 것이라면 그에게 정말 이런 문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믿을 만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본다면 사탄은 더욱 그렇게 봅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진리는 없지만 그 사람의 상황을 알고 있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복을 얻기 위해 버린 것입니다. 그가 버릴 때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곧 끝나가는데 우리가 더 이상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하나님께 도태되고 복을 얻지 못할 거야. 사실은 세상도 곧 끝날 것이니 거리낌없이 버려야지 버리지 않으면 바보지.’” 이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데에 뒤섞임이 있지 않습니까? 그에게 뒤섞임이 있는데 왜 시련이 임하지 않죠? 그에게 그만한 분량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아직 그를 시련하실 때가 안 된 것입니다. 만약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어느 정도에 이르고 일부 큰 시련을 감당할 수 있을 때면 시련이 곧 임하게 됩니다. 시련이 임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그럼 그가 하나님을 믿는 본심이 순수하고 올바르다고 해도 시련이 필요합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성립됩니까? 그렇게 순수하고 올바른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뒤섞임이 있기에 다 시련을 경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세 역사는 곧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드러내며 시련으로 사람을 온전케 합니다. 지금 각 사람이 경력하는 시련은 다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경력하는 시련은 비교적 작고 그리 크지 않지만 모두 시련에 속합니다. 예를 들면 질병의 시련이나 가정이 파괴되는 시련이나 교회의 저버림을 받는 시련들입니다. 제일 처음의 시련은 세상에 저버림당하는 시련과 친인들에게 훼방당하는 시련들이며, 하나님을 믿은 후의 엄중한 시련은 붉은 용에 잡혀 박해받는 시련과 고문당하는 시련이며 그리고 긴 시간의 심판 형벌의 시련과 연단입니다. 이런 것은 다 시련에 속하는 것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 경력한 것입니다.

시련이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는 것입니까? 하나는 당신을 정결케 하고 다른 하나는 당신을 드러내는데, 당신이 진리를 추구할 줄 알게 되면 시련은 또 당신을 온전케 합니다. 최후에 당신이 시련을 많이 경력하여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거룩함을 보고 나면 더는 함부로 하나님을 거스르지 못할 것입니다. 시련이 많아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온전케 하심을 경력한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 몸에 하신 시련이 일정한 효과에 도달한 것임을 설명하며 일정한 분량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마치 한 아이가 고난의 생활 환경을 많이 겪다 보면 사리를 알고 어른들의 부담도 생각할 줄 알고 가정을 위해 마음을 쓰고 일을 할 줄 알아 철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무릇 인솔자 일꾼들이 하나님의 선민을 위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생명을 공급하는 사역을 하고 이끌고 부축하는 사역을 할 수 있고 늘 인내성있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부축하고 진리의 실제로 들어가게 할 수 있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아주 타당하고 정확하게 안배할 수 있다면 하나님 선민은 이런 교회 생활 속에서 경력할수록 힘이 생기고 경력할수록 믿음이 커질 것입니다. 이런 인솔자 일꾼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며 그가 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열납되고 모두 실제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인솔자 일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기의 누림만을 위해 일을 하고 자기의 지위만을 위해 일을 하며 자기의 체면과 허영만을 위해 말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만약 시간이 길어지고 죽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고 또 조금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곧 드러나게 되고 도태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역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약 몇 년 경력하여 조금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는 희망이 아예 없고 철저히 도태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어도 큰 악은 저지를 수 없기에 당신은 온전케 될 희망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늘 큰 악을 저지를 수 없고 내일은 작은 악도 저지르지 않으며 모래에 가서는 당신이 정말로 성결케 되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은 범사에 다 자신을 성찰하고 범사에 다 자신을 반성합니다. ‘내가 한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까? 진리에 어긋나지는 않을까? 도대체 진리에 부합될까?’ 그는 무엇 때문에 늘 이렇게 자신을 성찰할까요? 어떤 지배를 받아 자신을 성찰하는 걸까요? 하나님께 노여움을 사고 버림받을까 두려워서이며 성령의 사역에 도태되고 하나님과 멀어져 하나님께 버림당할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이런 사람에게는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얼마간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는 조금도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어떤 악을 행하든 어떤 잘못을 범하든 반성하지 않으며 늘 한마디로 “제가 한 것이 맞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뭘 반성합니까? 저는 반성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언제나 “저는 반성할 것도 없고 아무런 잘못도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소리가 아닙니까? 사탄의 소리가 아닙니까?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쓸모없게 되어 도태될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수리 대처가 임하기만 하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을 증오하면서 하나님 앞에 돌아와 기도하고 자신을 반성합니다. 반성하고 나서 스스로 자신의 뺨을 치면서 “저는 사람이 아니고 정말 마귀입니다. 저주를 받고 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를 형벌하시지 않으면 밥을 굶어서라도 제 자신을 반성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이 자라남에 있어서 빠르지 않을까요? 이러다 보면 천천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는 육체를 증오하고 뭔가 일을 잘못했으면 자신을 메스꺼워하며 다른 사람이 미워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미워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큰 잘못을 범해도 수치를 모르고 그렇게 큰 잘못을 범해도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고 그렇게 큰 잘못을 범해도 전혀 뉘우침이 없는 것을 바로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완고한 마귀 사탄입니다. “한 번 대처를 받았으니 다음에는 이 일에서 꼭 회개하고 일어설 거야, 어떤 일에서 넘어졌으면 꼭 그 일에서 일어날 것이고 꼭 하나님을 만족케 해드릴 거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심리상태가 있는 것은 정상이고, 이것을 심지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의 이유를 말하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놈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지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무릇 어떠한 심판 형벌이 임하든, 수리 대처가 임하든 시종 자신을 증오하지 못하고 시종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며, 어떤 일이 임하든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진리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려 한다면 이것은 다 꿈이고 환상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려고 추구하는 것이 의의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일을 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겠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악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이 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범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행하고 영화롭게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왜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하여금 유익한 점을 얻게 하고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으로 하여금 유익한 점을 얻게 할 수 있는지만 고려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그는 한 가지도 할 수 없으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처리하든지 다 원칙이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사람에게 이로운 점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처리하든지 모두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기 때문에 어떤 본분을 하든지 어떤 사역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함에 있어서 유익한 것입니다. 최후에 한 가지 결론을 얻었는데,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본분을 하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축복받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받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틀림없이 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받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의 몸에서 어떤 것들이 가장 소중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어떤 사람은 학력이 높고 아주 총명하고 말재주도 있고 말을 능란하게 하며 일처리도 잘 하지만 단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능력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별로 지식도 없고 무식쟁이어서 말할 줄도 모르고 일처리도 잘할 줄 모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며 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습니까? 진리의 실제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아닐까요? (제일 좋은 사람입니다.) 그럼 만약 교회 인솔자를 선거한다면 이 두 부류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을 선거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을 선거해야 합니까 아니면 은사와 말재주가 있고 말을 능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선거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인데, 이것이 곧 인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간단치 않습니다. 이것은 학력이 높고 얕음에 관계없고 머리가 어떠냐에도 관계없습니다. 그의 마음이 바르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가 바로 구원받은 사람이고 국도의 자민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재주가 아주 좋고 학력이 아주 높으며, 글도 쓸 줄 알고 문제도 볼 줄 알며 일도 처리할 줄 알고 밖의 일에서는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을 정도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무슨 일이든 다 저지를 수 있으며 마귀 사탄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래도 사랑스럽습니까?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또 미신하고 숭배하겠습니까? (숭배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이 있고 머리가 좋고 말재주가 있는 사람만 숭배하고 지위가 있는 사람만 숭배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이 사악을 숭상하는 것이 아닙니까? 완전히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런 냄새가 좀 나는데, 어쨌든 좀 비정상입니다. 그를 보고 인솔자 일꾼을 선거하라고 하면 그는 곧 은사가 있고 지식이 있는 그런 사람을 선거하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선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마음이 있으면 그는 고통을 참을 수 있고 얼마간 육체의 누림을 배반할 수 있으며, 범사에 기도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힘을 더해 주시기를 구하며, 항상 기도하면서 조금씩 얼마간의 고통도 견뎌낼 수 있고 육체를 배반하는 것을 배울 수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지도 훈련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좋은 옷이나 쓸만한 것들을 사라고 돈을 많이 주지 않았다 하여 소극적이 되고 본분도 하기 싫어하며 며칠만 고기를 먹지 않아도 그만두려 합니다. “너무나 고생스러워, 세상에 있을 땐 날마다 고기를 먹었는데! 차라리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만도 못해.” 보세요,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고통을 받을 만한 심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고통을 받을 심지가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늘 소극적이고 연약하며 늘 원망하게 되는데 조금만 고생스러워도 원망하고 연약해지면서 오늘은 이 구속을 받고 내일은 저 구속을 받게 됩니다. 이전에 어느 감독이 “이런, 비디오 카메라가 좋지 않은데 좋은 걸로 바꿀 수 없을까? 좋은 비디오 카메라로 바꿔주지 않으면 촬영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제 컴퓨터가 좋지 않은데, 저에게 좋은 컴퓨터로 바꿔주시지 않으면 저는 본분을 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당신과 대응할 겁니다.”라고 했는데, 이런 사람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당신이 오늘도 소극적이고 내일도 소극적이면서 하나님 집의 득을 본다고 득의양양해 하는데 어느 날 도태되면 눈물 코물 짤 것입니다. 당신의 오늘의 득의양양함이 바로 내일의 통곡을 위해 준비한 것이고 스스로 자기의 관을 예비한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고르면서 “왜 그에게는 좋은 컴퓨터를 사주고 저에게는 사주지 않습니까?”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바로 당신이 드러난 것이고 당신의 심리상태가 어떠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만 사주고 당신에게는 사주지 않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리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당신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늘 궁리하면서 ‘그가 나보다 좋지도 않은데 어떻게 인솔자가 될 수 있지? 그의 지위가 어떻게 나보다 높지? 왜 난 써주지 않지? 그래서 내가 소극적이고 본분하지 않는 거야.’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본분을 잘하지 않고 소극적이고 태만합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도태될 것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이 아니고 조건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는 본분을 하지 않고 소극적이고 태만하며 대충대충 속이고 하나님 집을 좌지우지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마귀 사탄이고 좋은 놈이 아니며 너무 이지가 없고 양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그렇게 많이 주었어도 그는 하나님께 보답하려 하지 않고 육체만 만족시키며 하나님 집의 어떤 일을 하든 다 그의 뜻에 맞게 해야 하고 다 그의 눈에 들어야 그가 본분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사탄의 참소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은 무슨 일이든 다 그의 뜻에 맞아야 본분을 할 수 있으니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도 이렇게 정해 놓았고 사람도 그를 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틀림없이 칭찬하시지 않고 “너에게 문제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는데, 사탄의 참소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너의 그 이유는 간증이 아니고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얻든지, 무엇을 누리든지 상관없이 저는 하나의 피조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안배대로 살아야 하고 무조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저에게만은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 해도 저는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면서도 역시 사랑스러운 분이시니 하나님의 이름은 칭송을 받아야 합니다.” 당신이 이러한 실제를 갖추었다면 사람도 인정할 것이고 사탄의 참소도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당신에게 지금 이러한 실제가 있습니까? 당신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조건이 있습니까? 당신의 눈은 왜 늘 이것을 노려보고 저것을 노려봅니까? 왜 늘 이유만 말합니까? 당신이 본분을 하는 데에 거래할 조건이 있습니까? 또 요구할 조건이 있습니까? 또 무슨 최저 기준이 있습니까? 당신은 왜 이렇게 까다롭습니까? 양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데에 조건이 있고 거래가 있으니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몸에 이런 문제들이 존재합니까? 당신이 그리 공평하지 않은 일들을 발견했을 때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길이 있습니까? 진리를 구해야 하고 정확하게 대해야 하며 이런 일의 구속을 받지 말고 이런 생억지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필요없습니다.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는 겁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이지 이런 조건들이 당신이 본분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등용하는데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당신은 진리만 추구하면서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자신의 본분을 잘 하는 것이 당신에게 있어야 할 이지입니다. 뭘 그리 비깁니까? 일부 사람들은 아무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면서 함부로 원망합니다. 당신이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이지 하나님 집에서 하는 것은 완전히 정확합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문제를 제기해 보세요, 제가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하면 모두가 다 탄복할 것이고 할 말을 잃을 것입니다. 상면에서 어떤 사람들은 만날 수도 없고 알 수 없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부 적그리스도, 거짓 인솔자를 상면에서 압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상면에서는 아래에 틀림없이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대대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환경이 허락되지 않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언젠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것입니다. 이런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면서 무슨 도리를 따지려고 합니까? 교통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어떤 지방에 또 적그리스도가 존재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경력하겠습니까? 만약 어떤 지방에 거짓 인솔자가 아직 존재하고 도태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경력하겠습니까?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이런 말을 다 해 주지 않았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그가 굳게 설 수 없는 것은 조만간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겉면의 일에서 소극적이 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불만이 있고 원망이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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