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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들어서다≫에 관한 설교 교통 (8)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매우 긴밀하여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는데, 그 사이의 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다. 만약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가 있어야 하고, 만약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가 있는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어야 하며, 만약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으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고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를 경력하고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고 하나님과 마주해야 하며 하나님께 인ㆍ사ㆍ물과 여러 가지 환경을 배설해 너에게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기회가 있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려면 반드시 먼저 단순하고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한 마음을 구비해야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구비해야 하며 고통받을 심지를 구비해야 하고 악에서 떠나려는 결심과 용기를 구비해야 하며 진정한 피조물이 될 소망을 구비해야 한다…… 이렇게 한걸음씩 앞으로 매진하면 너는 하나님과 갈수록 가까워질 것이고, 너의 마음은 점점 순결해질 것이며, 너의 인생과 삶의 가치는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에 따라 더욱더 의의 있고 더욱더 광채를 발할 것이다. 어느 날, 너는 조물주가 더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아니고 조물주가 여태껏 너를 향해 숨은 적이 없고 조물주가 여태껏 너를 향해 얼굴을 가린 적이 없으며 조물주가 결코 너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조물주가 더는 너로 하여금 밤낮으로 생각하게만 할 뿐 느끼게 할 수 없는 그 한 분이 아니라 그가 분명하게 너의 곁을 지키고 있고 너의 생명을 공급하고 있고 너의 운명을 주관하고 있으며, 그가 아득히 먼 하늘가에 있지 않고 구름 사이에 숨어있지 않고 바로 너의 곁에서 너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으며 그가 너의 전부이자 너의 유일한 분임을 느낄 것이다. 이런 한 분의 하나님은 너로 하여금 마음에 애모(愛慕)가 생기게 하고 너로 하여금 그리워하게 하고 가까워지게 하며 앙모하게 하며 너로 하여금 잃을까봐 두려워하게 하고 너로 하여금 더는 포기하고 싶지 않게 하고 더는 거역하고 싶지 않게 하고 더는 멀리하고 피하고 싶지 않게 한다. 너는 그를 생각하려고만 하고 그에게 순복하기만을 원하며, 너는 너에게 준 그의 모든 것에 보답하기만을 원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귀복하기만을 원한다. 너는 더는 너에 대한 그의 인도와 공급, 보살핌과 보호를 거절하지 않고 더는 너에 대한 그의 주재와 안배에 항거하지 않으며, 너는 오로지 그의 곁을 따르고 함께하기만을 바라고 오로지 그를 너의 유일한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너의 유일한 주, 유일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만을 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매우 긴밀하여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는데, 그 사이의 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관계”는 하나님 선민이 아마도 얼마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관계입니까? 우리가 늘 쓰던 한 마디 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로 해석하겠습니다. 즉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또 가장 중요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에 의해 도달하는 효과이다.”, 이 말씀을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즉 오직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추구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까? 이제는 문제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바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진전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든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으면 바로 진실한 경외가 없는 것인데,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지금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어떻게 추구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만약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에서 떠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의 관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의 관계, 이 2가지 관계를 반드시 먼저 꿰뚫어 봐야 합니다. 꿰뚫어 보았다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꿰뚫어 보았다면 당신이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실행할 길이 있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또한 욥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기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추구해야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단락 하나님 말씀을 잘 읽어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해야 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가 있는 데에 어떻게 도달해야 할까요? 우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진실한 경외가 있게 됩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저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얼마간 있는데 왜 저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뚜렷하지 않을까요?”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일부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유를 주재하시며 참으로 전능하신 것도 보았는데 왜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가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일을 하심에 있어서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곧 있게 되고 세워지라고 명하시면 곧 세워지며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고 있고 다 이루어질 수 있음도 보았으나, 그에게는 경외함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당신이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성품을 인식해야 하고 어느 방면의 실질과 소유소시를 인식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길이 있어야 합니다. 길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래에 또 “만약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가 있는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어야 하며, 만약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으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길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 진입해야 할까요? “만약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으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또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습니까? 매번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그런 후에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지요.”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일까요?

우리 먼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과의 관계를 말해 봅시다. 한 가지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고 다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으며 다년간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였고 심지어 일부 인솔자 일꾼들은 다년간 설교하며 사역했는데 무엇 때문에 진리의 실제가 없습니까? 무엇 때문에 생명 경력 간증문을 써낼 수 없을까요?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경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바로 경력입니다. 우리는 먹고 마신 후에 또 교통합니다. 몇 년 교통하고 먹고 마셨으니 우리에게도 인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경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럼 제가 당신에게 또 한 가지 문제를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생명 경력 간증을 써내지 못합니까? 아마도 당신이 다년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면서 경력이 조금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조금의 경력이 당신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진리의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한 사람입니까? 이렇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생명 진입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통을 많이 듣고 도리상에서 진리의 표면적인 것을 많이 깨달았고 어느 정도 말할 줄도 알지만 실행할 줄은 모릅니다. 그럼 이런 사람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습니까? 이 외에 구체적인 문제가 생기면 진리로 해결할 줄 모릅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교회에서 누구에게든 다 얼마간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생명 진입의 어려운 점이라든가 또는 패괴 본성 문제라든가 또는 사상 인식 문제라든가, 어쨌든 많은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것에 의해 해결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도 자신의 문제와 맞춰볼 줄 모르기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이 진리에 대해 진실로 깨달은 것입니까? 진실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가 교통하는 것은 다 도리이고 그의 인식도 역시 도리이며 실제와 관계없고 실제 문제와도 관련되지 않으며 변두리에도 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떻게 먹고 마시고 어떻게 교통해도 자신의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수 있겠습니까? 경력할 수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려면 먼저 어떤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까? 이것은 생명 진입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데는 우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서 하나님 말씀의 실제적인 부분과 실제적인 가리킴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데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 하시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시는지,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 하시는지, 여기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고 틀림없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 거야. 하나님은 쓸데없는 일을 하시지 않고 필요 없는 말씀을 하시지 않을 거야. 하나님께서 매 구절의 말씀을 하시는 것에는 모두 의의 있는 거야.’ 당신이 이것을 시작으로 이 실마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다 보면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얼마간의 실제적인 인식이 있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얼마간의 실제적인 인식이 있을 때, 당신이 다시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다 보면 당신은 점차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다 진리가 있습니다. 매 구절의 말씀마다 모두 한 방면의 진리를 서술했는데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의 진리는 사람이 두뇌에 의해 상상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경력을 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함에 있어서 길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 말씀을 상고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여 사람의 어떤 문제를 폭로하시는지, 사람의 어떤 문제를 드러내시는지, 사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시는지,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고 하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후 당신이 다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면 길이 명확해집니다. 이때 당신은 몇 가지 방면을 깨달았기에 계획 있고, 목적 있고, 원칙 있고, 목표 있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며, 규례에 맞추지 않고 텅빈 글귀를 지키지 않는데, 이러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효과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럼 지금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경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길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우리 예를 들어봅시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경력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을 하셨는지, 이 말씀을 하신 목적은 무엇인지,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고 하시는지, 사람의 어떤 패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시는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시는지, 성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어떠한 사람일지 당신이 이런 문제들을 다 투철하게 상고하고 명백하게 교통하고 나서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면 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비교적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원칙이 있지 않겠습니까? 규례만 지키는 것이 아니고 비교적 실제적이지 않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이 말씀에 대하여 투철하게 상고하지 않고 투철하게 교통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은 단지 글귀만 지키고 규례만 지키는 데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경력하는 것입니까?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대해 상고하지 않고 교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함에 있어서 원칙이 없고 진리를 찾을 수 없고 원칙을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찾을 수 없으면 그것이 바로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글귀를 실속없이 지키면 하나님 말씀의 진리의 실제를 잃게 됩니다. 그것을 자기의 길로 치우친다고 하고 잘못된 경력이라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경력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 중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데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다년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다년간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 왔지만 최후에는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문제의 근원을 찾아냈습니까? (찾았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의 글귀만 실속없이 지키고 하나님 말씀의 규례만 지키며, 진리의 원칙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편차적인 것이어서 영원히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영원히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압니까? 틀림없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모릅니다. 그는 규례만 지킬 줄 알고 글귀만 지킬 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상고해야 하고 교통해야 하며, 성령의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깨우침이 있은 후, 하나님 말씀 중의 진리를 파악하고 실제적으로 실행하고 경력해야 합니다. 이러면 경력 중에서 더 많은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어서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대해 더욱 많은 인식이 있게 하는데, 당신은 점차 하나님 말씀 중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대해 깨닫는 것이 비교적 정확해지고 투철해질 때면 진리의 원칙을 틀어쥐고 실행하게 됩니다. 이때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 아주 진보가 클 것인데, 어느 정도로 진보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던 데에서 나중에 진리를 실행하는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함에 있어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던 데에서 진리를 깨닫는 데로,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직접 진리를 실행하는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기 시작해서부터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생명 경력 중에서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 아닙니까? “양적 변화”란 바로 진리에 대해 인식이 있고 깨우침이 있기 시작해서부터 갈수록 인식이 있고 나중에 진리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에 대해 조금 인식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매우 깊은 인식이 있습니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에 도달해 나중에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원칙을 찾아 진리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기만 하면 바로 직접 진리를 실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해서부터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과도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과정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 한 마디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을 몇 년 실행했습니까? 진실한 인식이 있습니까? 만약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다면 당신이 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때, 원칙을 장악했습니까? 만약 정말 원칙을 장악했다면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 이미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되었고 당신이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이미 성실한 사람이 되는 효과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이미 성실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라면 사람됨에 있어서 원칙이 있습니까? 틀림없이 원칙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성실한 사람이고 사람됨의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실한 사람의 사람됨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사람과 진실한 말을 해야 하고 기만해서는 안 되며 공평하게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당신이 누구와 거짓말을 하고 누구를 기만하면 그것은 사람에 대해 불공평한 것이지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교제함에 있어서는 더욱더 기만이 있어서는 안 되며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마음속 말을 해야 하고 거짓과 과장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면 당신은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이기에 말을 함에도 아주 적합해야 합니다! 이런 원칙을 다 정확하게 장악했다면 당신이 살아내는 것은 성실한 사람의 모양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여 최종에 도달해야 할 효과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데에서 진리를 깨닫기까지, 진리를 깨닫는 데에서 진리를 실행하기까지 원칙이 있다면 그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가 되면 그의 생명 단계는 곧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무릇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는 사람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에게는 진리의 실제가 있습니다. 즉 그의 생명 경력 중에서 이미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즉 진리의 열매를 맺은 것인데 그는 진리를 실행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가 진리를 실행할 줄 알면 맺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그의 몸에서 직접 살아낸 것이고 직접 실행해 낸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말을 함에 정확하고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으며, 공평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고 진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선민에 대해 모두 사랑으로 대해 주고 모두 포용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의 열매가 그의 몸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사람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이 진리의 실제를 어떻게 경력해 낸 것입니까? 즉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데에서 실제에 진입하는 효과에 도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효과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한 인솔자나 일꾼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인솔자 일꾼을 몇 년 했습니까? 어떤 경력이 있습니까? 몇 년간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에 대해 좀 인식이 있습니까? 무엇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섬기는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특히 당신은 다년간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니 하나님의 지기로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지기입니까? 당신이 만약 아직도 하나님의 지기가 아니라면 당신의 섬김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섬김에 도달하려면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서부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경력해야 하겠습니까? 여기에는 모두 세부적 문제들이 있습니다. 지금 보니,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할 줄 모르고 규례만 지킬 줄 아는데,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실행해야 할 많은 진리를 많은 규례로 총괄해 놓았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저런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전부 몇몇 방면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 어떠한 일밖에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 어떠한 일들을 할 수 있고 반드시 어떤 일을 해야 하며, 하나님을 믿으면서 신중히 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이고 접촉해야 할 사람은 몇 부류이며 절대 접촉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몇 부류’라는 것을 총괄해 놓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규례가 아닙니까? 이런 규례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와는 추호의 관계도 없습니다.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해야 합니다. 그럼 지금 무엇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경력해야 하는지 인식이 좀 있겠죠?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고 하나님과 마주해야 하며”, 이 말씀이 관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조건이 아닙니까?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기 전에 먼저 2가지를 “마주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전제는 먼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먼저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성령의 깨우침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상고할 줄 모르고 기도도 할 줄 모른다면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없는데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보는 것이 그저 백지에 쓴 검은 글자이고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며, 하나님 말씀의 본뜻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찾지 못하며, 하나님 말씀 속의 실제적인 가리킴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찾지 못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이 그에게 어떤 일을 분부했는지 그는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결국 그에게서 일이 그르쳐졌고 일이 잘못 처리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경력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해야 합니다. 즉 먼저 하나님 말씀을 잘 읽어보고 잘 상고하면서 다시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얻어야 하며, 깨우침을 얻고 나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하나의 진실한 이해와 진실한 인식, 진실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3가지 진실한 효과에 도달한다면 바로 하나님 말씀과 마주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너희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신이 이 구절의 말씀을 경력하려면 먼저 이 구절의 말씀과 마주하여 이해가 있고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투철히 인식하여 “너희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어떻게 성실한 사람이 되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원칙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다 투철히 상고한 다음 계속 실행하고 계속 경력하다 보면 정확해질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여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이해가 있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을 하셨는지, 이 말씀을 하셔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고 하시는지, 이 말씀이 우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 말씀이 무엇을 온전케 하려고 하는지, 우리의 몸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우리의 생명 실제로 될 수 있는지 진실로 환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여 도달해야 할 효과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마주했다면 당신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하고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요구를 투철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 말씀과 마주한다고 하는 것인데, 마주한 후 계속 실행하고 계속 경력하다 보면 정확해지고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당신이 하나님 말씀 속의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깨달은 후, 다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때는 기운이 납니다. 당신이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글귀만 좀 알고 실행한다면 힘이 나겠습니까? 힘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힘이 없겠습니까?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그 속의 실제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꿰뚫어 보지 못했기에 더욱 진리의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밖에 그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의와 뜻과 요구에 대해 꿰뚫어 볼 수 없어서 이 말씀을 실행하기가 정말 힘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까?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이 말씀의 진리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말씀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실행해도 되고 실행하지 않아도 돼.’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경력할 리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다”와 “하나님과 마주하다”는 것은 어떤 관계입니까? 일부 사람들의 이해는 아마도 별로 정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고 하나님과 마주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아.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지, 그 사이에 또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내가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읽으며 하나님 말씀과 마주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어디에 계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을 하는 사람에게 경력이 있을까요? 경력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경력이 없다면 정말로 하나님 말씀과 마주했었을까요? 그는 마주해도 눈 뜬 장님이어서 하나님 말씀의 진리의 실제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의 글귀만 본 것이며, 백지에 검은 글씨로 씌어진 하나님 말씀만 본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있겠습니까? 확실히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구약 시대의 욥을 봅시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는 그가 하나님을 마주하여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고 하나님과 마주하다”와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정말 관계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만 들었고 하나님도 자신의 본체를 욥을 향해 나타내지 않으셨는데, 그는 어떻게 하나님을 마주하여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바로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에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욥이 그 한차례의 시련을 겪을 때, 나이가 70세였습니다. 그때는 상당히 성숙되고 노련되었습니다. 그는 말을 함에도 상당히 분수가 있었는데, 그저 아무 생각없이 함부로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거나 상상에 근거해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여호와 하나님의 그 한차례의 말씀을 듣고 나서 그 말씀 속의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전능,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을 다 체험했던 것입니다. 마치 직접 겪은 것과 같이 깊이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담대하게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중의 소유소시를 듣자마자 깨달은 것입니다. 욥의 소질과 터득하는 능력은 참으로 높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느 정도로 터득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은 다 새로운 것이고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단어도 다 새로운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또 일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은 정말 심오합니다! 저는 듣고서도 왜 이해하지 못할까요?”라고 말하며,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은 참으로 좋습니다. 저는 왜 말할 수 없을까요?”라고 합니다. 이런 느낌과 이런 생각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이 몇 가지 느낌만 있다면 10년을 듣는다 해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씀을 몇십 번 읽는다 해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터득 능력이 너무 낮아 이해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력이 좋은 사람이 읽으면 효과가 다릅니다. 성령의 깨우침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더욱 다른데, 몇 년을 경력하고서 다시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또 다릅니다. 우리에게 정말 성령의 깨우침이 있고 몇 년을 경력한 후이면 하나님 말씀 중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인데, 마지막에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와 위엄이라는 것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참으로 아름답고 선하다는 것을 보았으며 거룩한 실질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전능 지혜는 심오하여 측량할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 말씀에서 이 정도까지 경력해 하나님에 대해 이러한 인식이 있다면 “저는 오늘 하나님 말씀 속에서 이미 하나님을 마주하여 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려면 몇 년을 경력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욥의 그런 이해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는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럼 우리가 만약 8~10년을 경력한다면 이러한 간증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자신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자신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기 전에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여 하나님 말씀을 잘 상고하면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 후 다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면 길이 있게 되고 실제가 있게 되며,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닫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경력해야만 어느 날엔가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여 성령의 깨우침이 있은 후이면 하나님과 마주하는 데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마주한 것은 성령 역사를 통해 도달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에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은 후 영이 감동을 받고 나서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지고 하나님이 너무 좋다고 느껴지겠습니까? 그때 하나님 앞에 엎드러질 수 있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아닙니까? 그때에 당신이 “제가 눈으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저는 하나님이 바로 저의 앞에 계시고 하나님이 저를 지켜보고 계심을 느꼈기에 저의 마음은 하나님과 마주한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러한 경력이 많아지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인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다 이러한 경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좀 많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좀 적을 것인데 단지 당신이 잊었을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을 믿는 힘이 갈수록 더 커질까요? 무엇 때문에 큰 붉은 용이 그렇게 억누르고 백방으로 핍박하고 박해하며 심지어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하고 온갖 능욕을 다 당하게 하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하게 하는데도 결연히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모두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있어서입니다! 경력이 없었던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 감동을 받고 눈물을 줄줄 흘린 적이 있었는데, 그가 잊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큰 붉은 용이 궁금해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힘이 왜 이렇게도 클까? 이렇게 본분을 하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며 한 푼도 안 줘도 목숨을 내걸고 믿으니,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 큰 붉은 용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하나님 선민에게 모두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있고 마주한 인식이 있어서이며, 하나님 선민의 영이 모두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을 때가 있었고 모두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었고 맹세를 다졌었으며, 영 안에서 모두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모두 이러한 믿음이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경력이 있는데, 당신은 왜 말할 수 없습니까?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적은 것과 관련있지 않습니까? 이것과 관련있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것이 많으면 이런 일은 당신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그 힘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그것은 진실한 믿음이 가져온 힘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을 버리고 남편과 아이를 버렸는데 그것이 보통 힘이겠습니까? 보통 힘이 이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 사람들은 그렇게 수리 대처를 경력하고 심판 형벌을 경력해도 포기하지 않고 소극적이 되지 않고 연약해지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진실한 믿음은 어떻게 온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에서 곧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마주하는 경력이 많아지면서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알게 되고 진리를 깨닫게 되며 실제에 진입하게 되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생길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경외하던 데에서 악에서 떠나는 데에까지 이르는데, 하나님 선민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사가 최종에 도달할 효과는 무엇입니까?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이 철저히 구원받는 데에 이르게 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효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자민이며 하나님 나라의 자민입니다! 누가 만약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자민이 아니며 기껏해야 효력자입니다. 효력자는 어떤 원인으로 되는 것입니까? 바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최종에는 효력자로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효력자로 될 수 있는 것만 해도 괜찮습니다. 이방인은 거기에 닿지도 못합니다! 당신이 이방인을 보고 말세의 대재난 속에서 죽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남는다고 말해 보세요. 그는 효력자라도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격도 없고 하나님 역사를 받아들이지도 않았기에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효력자로 되는 것이 쉽습니까? 효력자도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큰 붉은 용이 이렇게 백방으로 박해하는데, 믿음이 없다면 벌써 달아났을 것입니다. 효력자가 무엇 때문에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려죽여도 나는 달아나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말해도 달아나지 않을 거야.” 현재 일부 사람들은 진리의 실제는 없지만 기꺼이 효력합니다. 당신이 그보고 가라고 해도 그는 가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그를 제명시키면 그는 훌쩍거리면서 떠나기 싫어할 것입니다. 그럼 왜 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떠나면 죽음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떠나면 사망이고 멸망임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재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교회 내부에는 또 심판 형벌, 수리 대처가 있고 또 본분도 해야 하지만 교회에서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하더라도 그는 세상으로 나가기 싫어합니다. 그가 세상으로 나가면 바로 죽을 것이고 세상이 바로 인간 지옥이며 세상의 사람들은 다 더러운 귀신 악령이고 악인이기에 그 사람들 속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없을까요? 그것은 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다 비교적 착한 사람들이고 모두 마음속에 정의감이 좀 있으며 세상의 사악한 것을 차마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사악하고 너무 불결해서 이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가 없어. 그런 마귀 사람들 속에서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그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같이 있을수록 더 망쳐지고 더 더러워지니까. 계속 이대로 있다간 그들에게 시달려 죽을지도 모르니 빨리 하나님을 믿어야지. 하나님 집을 떠날 수 없어!” 지금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를 제명시킨다면 그는 살길이 없습니다. 그가 “당신이 저보고 세상으로 나가라고 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뭐라고 말해도 세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세요, 이방인은 무엇 때문에 세상의 흑암과 사악을 느끼지 못할까요? (광명을 보지 못해서입니다.)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광명이며 무엇이 행복인지를 모르고 있고 체험해 보지도 못했기에, 세상의 흑암과 사악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몇 년 생활한 사람들은 체험해 봤습니다. “하나님 집에는 정말 사랑이 있고 진리가 있어! 정말 광명이 있어! 교회가 바로 진리가 있는 환경이야.” 제일 안 좋은 교회여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도 세상보다 훨씬 좋습니다. 제일 안 좋은 교회에 있을지언정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고 제일 좋은 교회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세상의 천국인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다고 하는 것은 그 교회 대부분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여 악인을 다 제명해 버리고 좋은 사람만 남았다는 것인데, 야! 이 교회는 정말 좋습니다. 육체의 가정보다 훨씬 좋습니다. 육체의 그 가정은 단지 육체 관계일 뿐이고 겉으로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그 속에는 공통의 언어가 없습니다. 이 참된 교회에는 어느 누구와 말을 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고 어느 누구도 경계할 필요가 없으며 정말 진리가 있는 환경이어서 참으로 사람에게 이롭습니다. 사람은 이런 환경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되고 인성도 있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지내다 보면 차츰차츰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알게 되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마주하게 됩니다. 참된 교회에서 몇 년을 생활하면서 이런 경력이 있게 된 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기만 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면 하나님께 온전케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고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를 경력하고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고 하나님과 마주해야 하며 하나님께 인ㆍ사ㆍ물과 여러 가지 환경을 배설해 너에게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기회가 있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이것은 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내용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려면 반드시 먼저 단순하고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한 마음을 구비해야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구비해야 하며 고통받을 심지를 구비해야 하고 악에서 떠나려는 결심과 용기를 구비해야 하며 진정한 피조물이 될 소망을 구비해야 한다…… 이렇게 한걸음씩 앞으로 매진하면 너는 하나님과 갈수록 가까워질 것이고, 너의 마음은 점점 순결해질 것이며” 교회 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알게 된 후에는 당신에게 경력할 줄 알고 실행할 줄 아는 진리가 갈수록 많아질 것인데, 바로 이런 하나의 효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당신의 마음은 점점 순결해질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할수록 성령의 감동을 받을 기회가 더 많아지고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기회가 더 많아지면 진리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게 되고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더 사모하게 되는데 ‘진리를 생명으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조금이나마 살아낼 수 있어. 이런 사람이 되니 아주 좋고 아주 의의가 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에게 이러한 사모함이 있기만 하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힘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를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살면서 꼭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는 허튼소리이고 마귀의 소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후,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되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당신에게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하면 못살 것 같을까요? 큰 붉은 용이 당신을 잡고 박해할 때 당신은 그래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얼마나 고통을 받든 믿어야 하고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한 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그분의 소유소시, 그분의 성품을 모두 우리에게 나타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시는데, 인생의 목표, 인생의 비밀, 인생의 의의가 다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누구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생김새가 어떠한지 누가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어떠한지 당신은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도 못했는데 당신은 왜 이렇게 굳셉니까? 비밀은 하나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면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성품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위엄,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시고 하나님의 전능 지혜는 측량할 수 없음을 보았으며, 최종에는 하나님이 바로 조물주이시기에 피조물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떠나면 바로 죽음이고 바로 멸망이며, 하나님을 떠나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비밀을 꿰뚫어 보게 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서 눈이 점점 밝아지겠습니까? 하나님을 보았고 진리를 보았으며 인생의 광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제 하나님을 얻지 못한다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얻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재난으로 인하여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눈물을 흘립니다. 무슨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저는 아직 하나님의 영광의 그날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얼굴도 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도 얻지 못했기에 죽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음속 말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어찌 되었든 간에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너무도 사람의 신뢰를 받을 만하시고 사람의 사랑을 받을 만하시고 사람의 찬미를 받을 만하시며, 사람의 경배를 받을 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아주 의의가 있습니다. 인생의 비밀이 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에 있고 모두 하나님 말씀 속에 있기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바로 죽음이고 바로 멸망이며 바로 침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어찌 된 일인지도 모르면서 왜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것일까요? 큰 붉은 용이 “당신은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그가 ‘그렇기도 하지, 나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니. 그럼 보지 못했는데 왜 하나님을 떠날 수 없을까, 믿지 않으면 왜 안 될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 비밀이 열렸죠? 이것은 생명 영 안의 일이기에 누구도 언어로써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바로 이렇게 된 일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무엇이 하나님과 마주하는 것인지 지금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분명합니다.) 당신의 그 큰 자신감은 어디서 왔습니까? 영 안에서 이미 하나님과 마주한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저는 마치 하나님을 본 것 같고 마치 하나님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마치 이미 하나님의 전능을 체험한 것 같고 마치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권병을 본 것 같으며 마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마주한 것 같아요. 제가 비록 하나님의 형체는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얼마큼은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 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욥처럼 ‘제가 이제는 이미 하나님을 마주하여 보았습니다’라고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라는 이러한 간증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육안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본 것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욱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영 안에서, 심령의 깊은 곳에서 이미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비밀이 존재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력하게 하고 인식하게 하는 분이시지 사람으로 하여금 눈으로 보게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함에 있어서 길이 있게 된 후, 사람은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게 아주 의의 있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날마다 진보하고 날마다 새로운 빛비춤이 있고 날마다 새로운 인식이 있고 날마다 영 안에서 하나님과 접촉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으며 며칠에 한 번씩 하나님과 마주하는 경력이 있게 되어 너무 좋다.’라고 느낍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게 된 후로는 그의 기도도 달라집니다. 자기를 위해 무엇을 구하지 않고 바로 진리를 얻기 위해서만 간구하며, 하나님께 빨리 온전케 되기만을 위해 간구합니다. 그가 무엇을 간구합니까? “하나님께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 여러 가지 환경을 배설하여 저에게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무엇을 구합니까? “하나님의 형벌 심판이 저의 일생에 동반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 무엇을 구합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더 많은 심판 형벌의 경력이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더 많은 시련 연단을 경력하여 최종에 정결함을 얻어 성결케 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과 마주할 뿐만 아니라 그의 심령이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있으며 영 안에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았고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 사랑스러움을 보았으며 하나님이 정말로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심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전망을 위해 뛰어다닐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섭리와 안배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만 하면 충분하며, 더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 말씀 이외에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하든지 다 헛수고이고 아무런 의의도 없으며, 고통만 더 늘어날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전망과 운명을 위해 하는 것이 많을수록 더 어리석어지며, 자기의 전망과 운명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할수록 더 미련해집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큰 붉은 용이 지금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리석기 그지없지 않습니까? 진리와 대항하고 하나님과 대항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고 죽으면 18층 지옥에 떨어질 것이며 또 유황불 속에서 천만년 불에 탈 것입니다. “천만년”이란 어떤 개념입니까? 영원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바로 영원한 침륜이고 멸망이며 영원한 고통입니다! 우리가 지금 받는 고통은 잠시의 경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3년, 5년, 10년 옥살이가 잠시의 경한 것이 아닙니까? 20년 옥살이가 잠시적이고 경한 고생이 아닙니까? 20년 역시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감옥살이 하는 사람들이 형을 선고 받을 때, “10년 유기 징역을 선고한다.”라고 들었을 때, 마음이 덜컥 하면서 낙담합니다. “10년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 10년이면 하나님의 역사도 다 끝나고 하나님도 다 영광을 얻을 것이며 국도도 다 실현될 것인데, 그럼 나는 끝장이야. 아무것도 없어.” 그는 풀이 죽고 기가 꺾여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마치 무저갱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후 기도를 좀 하고 나서 또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차츰 다시 하나님의 함께함을 찾게 되며 다시 하나님의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이제 보니 그때 생각한 것처럼 그런 것도 아니었구나.’ 나중에는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10년이 차서 출옥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의 대문 밖에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니 그래도 이전과 마찬가지입니다. 한잠을 자고 나니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여전하구나, 변하지 않았어, 아!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지났구나!” 이때 ‘시간이 어쩌면 이렇게도 빨리 지나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지나갔구나’라고 느낍니다. 무엇을 눈 깜짝할 사이라고 합니까? 그 일이 지나갔고 시간이 지나갔으니 다시 돌아보면 바로 눈 깜짝할 사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일이 아직 닥치지 않았고 아직 경력도 하지 않았고 상상에 의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휴! 그 시간이 아득히 멀고도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네. 고해가 끝없어!’ 이러면 문제가 크게 됩니다. 사람의 머리가 이렇게 상상을 하는데 어떻게 문제가 되겠어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곧 하나님 행사의 기묘함을 보게 되는데, 그 결과 우리가 받은 이 모든 고통은 다 잠시적이고 경한 고생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는 것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수리 대처를 한바탕 받고서 당시에 마음이 매우 고통스러워 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이번에는 고해가 끝없을 것이니 이후엔 더 고통스러울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한잠 자고 깨어나 보니 아무 일도 없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지나간 후에는 ‘괜찮구나! 수리 대처를 다 경력했어도 나를 어떻게 하지 않았어! 대처(역주: 질책)를 받은 후에 나에게도 좀 변화가 있게 되었으니 이것도 그리 큰 고통은 아니야! 보아하니 수리(역주: 교훈) 대처에 순복한 뒤에는 또 자신을 알아갈 수 있고 자기를 낮출 수도 있으며 그리 오만하지도 않고 더는 함부로 대충대충 해서 속이지 않게 되니 정말로 변화가 조금 있게 되었구나.’라고 느끼고 나중에 “수리 대처가 더 많이 와야 해!”라는 이러한 믿음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수록 하나님 행사의 기묘를 더 보게 되는데, 어떤 고통을 받든지 지나간 후에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생명 진입인데, 나중에 경력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명 성품이 변화되고 생명이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행사의 기묘입니다.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세상에서는 이런 고통을 받아도 변화가 없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이런 고통을 받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이런 고통을 받으면 그에게 진리가 없고 하나님 말씀이 없으며 성령 역사가 없기에 그것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서 고통을 받으면 소중한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 속에 있습니다. 둘째는 성령 역사가 있습니다. 셋째는 도달하게 되는 효과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갈수록 진리를 깨닫게 하고 갈수록 진리를 얻도록 합니다. 이 몇 방면의 효과가 간단치 않은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당신이 하나님 집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이것이 진리가 있는 환경입니다. 진리가 있는 이 환경에 또 성령 역사가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사람의 생명 안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바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동영상을 만들고 영화를 만드는 여러 분야의 인재들이 대부분 다 80년대, 90년대의 젊은이들인데, 80년대, 90년대 젊은이들은 세상에서 점점 타락되고 점점 사람답지 못하고 세상의 조류를 따라 점점 악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집에 온 후에는 점점 좋게 변화되면서 모두 실속있는 것을 배우고 모두 진리를 추구하고 다 진실한 재능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전능이고 성령 역사의 효과입니다. 이 점을 꿰뚫어 보았겠죠? 나이가 어떻게 되든, 그가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가 진리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 집에서 모두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있고 모두 생명이 자라나고 성품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나중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됩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동영상을 만드는 사람, 영화를 만드는 사람, 또 여러 분야의 번역 인재, 글 쓰는 인재들 다수가 모두 젊은 사람들인데, 주로는 이런 젊은 사람을 배양합니다. 젊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터득하는 것이 빠르고 소질이 좋아서, 각 방면에서 진보가 빠릅니다! 젊은 사람들이 큰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잘 양육하면 10년 후에는 다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10년 후에 당신이 다시 보면 이 사람들이 경력 간증도 쓸 수 있고 영화도 만들 수 있으며, 감독도 할 수 있고 대본도 쓸 수 있으며, 설교자도 할 수 있고 인솔자도 할 수 있습니다. 10년 후이면 다 변화될 것인데, 추구하기만 하면 바로 인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 대우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매우 공평하십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연령이 어떻게 되었든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전에 저를 포함해 일부 사람들이 관념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은 세상에서 반평생을 경력하면서 세상에 대해 꿰뚫어 보았고 취미도 없어졌고 사람이 침착해져 하나님을 믿으면 한결같을 것이기에 진리를 잘 추구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또한 이러합니다. 연로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안정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가 너무 어려우며, 기술을 배우지 못하고 재능이 빨리 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젊은 사람들은 간단치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빨리 기술을 배우라고 합니다. 동영상 만드는 것을 배우며 글 쓰는 것을 배우고 감독하는 것을 배우며, 촬영하는 것을 배우고 연기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다. 적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집에 있는 이것 저것을 팔고 심지어 집까지 팔아서 설비를 사서 기술을 배웁니다. 이것은 무슨 정신입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드리기 위해 기술을 배우고 일을 배워서 하나님을 위해 잘 화비(역주: 들이다, 바치다, 쓰다, 지불하다의 뜻)하고 자신의 본분을 잘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잘 보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이런 생각이 가장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정신은 칭찬할 만합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하나님도 특별히 감동을 받으시고 “이 젊은 사람들은 상당히 좋다! 하나님이 그들을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서는 진심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다 배양받을 기회를 주어 인재가 되게 합니다. 누가 어떤 기술을 배우든 관계없이 하나님 집에서는 다 그에게 되도록 편리하게 해 주고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각급 인솔자 일꾼들은 모두 젊은 인재를 배양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젋은이들이 동영상 만드는 것을 배우려 하고 영화 만드는 것을 배우려 하며 글짓기를 배우려 하고 감독 수업을 하려 하는 것을 보고도 사람에게 훈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이런 인솔자 일꾼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것인데, 하나님 선민의 지심인이 아닙니다. 무릇 인재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 심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집에서는 그런 조건이 없었지만 지금은 하나님 집에 이러한 조건이 있으니 당신이 인재가 되기를 추구하려고만 한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당신에게 훈련할 기회를 주고 적당한 본분을 하게 하여 훈련할 수 있게 합니다. 만약 정말 훈련이 다 되었는데, 당신이 추구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 개인의 일입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그래도 제공해 주고 도와주면서 많은 인내로 부축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기술을 좀 배우고 늘리는 것이 앞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유익한 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진정한 재능과 건실한 학문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진리를 조금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본분을 잘할 수가 없고 할 수 있는 본분이 너무 유한한 것입니다. 만약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 왔어도 마지막에 어떤 본분도 잘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바로 불학무식한 것입니다. 불학무식한 사람은 다 폐품이고 다 도태될 것입니다! 지금 일부 인솔자 일꾼들은 간증문을 쓰지 못합니다. 이것은 결점이 아닙니까? 인솔자 일꾼을 하면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소질이 너무 낮아서가 아니라 바로 경력이 없어서입니다. 또 어떤 인솔자 일꾼은 하나님 집에서 촬영한 동영상과 영화에 대해 어떻게 봐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한나절을 봐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모릅니다. 눈이 멀었습니까? 그는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진리 실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눈이 멀었는데, 영 안의 눈이 먼 것입니다. 당신이 영화를 보고 동영상을 보고서도 문제를 발견할 수 없는데, 하나님 선민이 어떤 패괴를 유로(流露)하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무슨 문제가 생기고 심령의 깊은 곳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볼 줄 압니까? 당신이 발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어떻게 교회의 사역을 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폐품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어느 날엔가는 도태될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지금 저희들의 인솔자가 바로 이러합니다. 아무런 실제 사역도 할 수 없는데 왜 도태시키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급해 하지 마세요, 지금은 일손이 모자라니 기다렸다가 일손이 생기면 제가 그를 해임시킬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을 3~5년 더 배양한 후에는 일부 사람들이 도태될 것입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하나님 집에서 고려하지 않겠습니까? (고려합니다.) 일부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도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네요. 이곳에도 거짓 인솔자가 있는데, 왜 처리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럼 당신이 거짓 인솔자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아보세요. 당신이 찾으면 그를 교체하고, 찾지 못하면 일단은 교체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까? 한번 잘 찾아보세요.” 한참 동안 물어도 없습니다. 없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교체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이 “이제 보니 아직 교체할 수 없네요.”라고 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교체하지 않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의 그 교회가 가난한 것입니다. 가련한 거죠! 좋은 사람이 없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해야만 한걸음씩 앞으로 매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생명 진입에서 한걸음씩 앞으로 매진할 때면 하나님과의 거리가 갈수록 가까워지면서 그의 마음도 갈수록 성결해지는데, 이것이 법칙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사람의 패괴 유로가 너무 많으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가깝겠습니까 아니면 멀겠습니까? (멉니다.) 무엇 때문에 멀겠습니까? 그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에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으며 틀림없이 불의를 좋아하고 사악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엇을 사랑하면 마음속에 그것밖에 없으며 그것과 거리가 가까운 것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갈수록 진리를 실행할 줄 알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점점 원칙이 있고 긍정적인 것이 점점 많아지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아주 가깝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하나님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것을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그는 틀림없이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고 틀림없이 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가까울수록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더욱 힘이 생겨나며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점점 순결해지고 뒤섞임도 점점 적어집니다. 그럼 이 효과는 무엇으로 인해 생긴 것입니까? 바로 그가 하나님과의 거리가 아주 가깝고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수록 진리를 실행하는 힘이 더 커지고 일을 함에 있어서 뒤섞임이 점점 적어지면서 더는 함부로 악을 행하지 못합니다. 무릇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갈수록 원칙이 있고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더욱더 정확해지며 점점 악을 적게 행하고 부정적인 것들이 점점 적어지며 소극적인 것이 점점 적어지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러면 된 것입니다! 효과에 도달했습니다. 누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갈수록 원칙이 있고 말을 함에 있어서 갈수록 신중해지면서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속으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여 진리를 구하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특징이 있습니까? 첫째는 간이 점점 커집니다. 둘째는 성품이 갈수록 오만 자대해집니다. 셋째는 일을 함에 있어서 갈수록 속박을 받지 않습니다. 넷째는 말을 함에 있어서 점점 방탕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기 시작하고 늘 하나님과 마주하는 경력을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 말씀을 경력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에 이를 때면 바로 마음이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점점 성결해집니다. 이러면 자연적으로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모든 악에서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때에는 우리의 생명 경력이 완전히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면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때에는 늘 영 안에서 하나님과 마주할 수 있고 늘 영 안에서 하나님과의 진실한 사귐이 있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 빛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데까지 경력했을 때는 늘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다.”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바로 욥의 경력,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를 가리키는데, 즉 하나님 말씀 속에서 늘 마주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이런 경력을 말합니다. 이전에 많은 경우에 모두 하나님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하나님이 곧 나의 곁에 계시고 하나님이 곧 나의 앞에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 같아.”라고 느끼긴 했지만 마주한 경력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어느 날까지 경력하여 당신이 하나님을 마주하여 보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 정도에 이를 때면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때면 곧 하나의 효과, “너의 인생과 삶의 가치는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에 따라 더욱더 의의 있고 더욱더 광채를 발할 것이다.”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정도에 이를 때, 당신은 “조물주가 더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아니고 조물주가 여태껏 너를 향해 숨은 적이 없고 조물주가 여태껏 너를 향해 얼굴을 가린 적이 없으며 조물주가 결코 너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조물주가 더는 너로 하여금 밤낮으로 생각하게만 할 뿐 느끼게 할 수 없는 그 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경력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과 마주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사탄 앞에서, 큰 붉은 용 앞에서 추호도 두려워하지 않고 추호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기에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탄이 그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믿으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저는 보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날마다 뵙고 있으며 늘 하나님과 마주하고 있지요! 이것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이 정도에 이르면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얻어질 때, 그의 생명과 그의 살아냄은 어떠한 모습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진정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이 사람의 마음속에 갖추어졌고 살아낸 것인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시작한 것이며 이후에는 늘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나타나심은 영 안에서의 나타나심인데, 그는 ‘조물주는 수수께끼가 아니고 비밀이 아니며 날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날마다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날마다 그분의 얼굴 빛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분은 저의 곁을 동반해 주십니다.’라고 느낍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절정에 이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하나님을 얻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런 인생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당신은 어떻게 그의 행복을 묘사하겠습니까? 이 의의를 당신은 어떤 언어로써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도 이 비밀, 이 누림, 이 행복을 투철히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굳셉니까?”라고 묻는다면 누가 한 마디로 분명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분명히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주 의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고 진리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한 마디 말로 충분합니까? 당신이 아무리 한 마디로 말해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그럼 제가 좀 많이 말하면 안 됩니까?”라고 하는데, 많이 말해도 당신은 투철히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한 편의 글을 쓴다 해도 투철히 말할 수 없고 100편의 간증을 쓴다 해도 투철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만약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마주하여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마주하여 알아가는 데에 도달한다면 그 의의는 아주 깊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이 말을 해석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조물주는 비밀이 아니며 조물주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숨긴 적이 없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얼굴을 가린 적이 없으며, 우리와의 거리가 아득히 먼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 곁을 동반하고 계십니다.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심령으로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진실로 살아계시는 실제적인 한 분의 하나님이시며 너무나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어서 사람이 볼 수 없지만 영으로써 느낄 수 있는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을 이 정도까지 믿게 된다면 이는 확실히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욥이 경력한 간증에서 보다시피, 욥이 받은 이 시련이 어느 경지에 도달했습니까? 그의 모든 것이 박탈당했습니다. 재물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그의 수십 년의 심혈 대가가 하루 사이에 전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고 자식도 다 잃었습니다. 그런 후에는 겨우 몸 하나만 남았는데, 또 사탄의 격타를 당해야 했고 온몸에 악창이 나고 그를 동반하던 한 명밖에 남지 않은 마누라까지도 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권했습니다! 시련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면 그것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고 앞길이 막힌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면서 무엇 때문에 또 이렇게 큰 시련을 경력해야 합니까? 이 시련이 욥에게 있어서 의의 있지 않습니까? 매우 의의 있습니다! 어떤 의의가 있습니까? 욥의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믿어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를 향해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은 본래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뜻밖의 한차례의 큰 시련이 닥친 것입니다. 이 한차례의 큰 시련이 그의 모든 것을 박탈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본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봐야 옳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기는커녕 도리어 사탄을 보게 된 것입니까? 한 무리 강도떼들이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도대체 복을 받는 일입니까 아니면 화를 받는 일입니까? 일반인들은 정말 분명히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 축복받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려고 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사람에게 나타나시는데, 사람이 시련을 경력함에 있어서 간증을 굳게 선 후에야 사람에게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타나심에 있어서의 조건입니다. 욥의 이 사례에서 이 비밀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여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쉽게 사람을 향해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나타나시기 전에 사람에게 먼저 큰 시련이 닥쳐야 했는데, 이 한차례 시련이 바로 욥을 시험하여 욥이 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나중에 욥이 굳게 섰습니다. 굳게 선 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나타나셔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을 하신 후 욥에게 어떤 태도가 있었습니까?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내가 오늘에야 보게 되었고 직접 느끼게 되었구나.’ 그러므로 그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믿은 것을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라는 이 한 마디로 개괄하였고 그 당시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는 이 한 마디로 표현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서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것은 사람 가운데서 아주 드뭅니다. 다시 말해서, 전 인류의 역사(歷史)에서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셔서부터 말세에 이르기까지 욥, 단 한 사람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다 듣고 나서 마주하여 하나님을 본 효과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의 전환점으로 되었는데, 재산이든 수명이든 모두 갑절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욥은 또 140년을 살았습니다. 이전에 그가 얻은 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일부 은혜였고 그가 정식으로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을 안 후로는 하나님의 갑절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한번의 빼앗김과 한차례의 시련이 그에게 그렇게 큰 축복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합니까? 만사만물이 다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얼마큼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얼마큼의 복이 있을 수 있는지는 다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큰 복을 얻으려고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버림도 없고 대가도 없고 마지막에 간증도 없다면 하나님의 복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아야 하고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욥의 경력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길을 총결해 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길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추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조건인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기 전에 반드시 큰 시련을 겪어야 하고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심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럼 이 진심을 무엇으로써 실증해야 합니까? 시련 중에서 간증을 굳게 서야 하며 하나님의 시험을 견뎌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사람을 시험합니까? 이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안 됩니다. 큰 붉은 용을 통해, 받침물과 효력자를 통해 사람을 시험합니다. 지금 큰 붉은 용이 받침물이 아닙니까? 그것이 한사코 추적하고 박해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선민을 시련하시고 하나님 선민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붉은 용이 일으키는 이런 환경에는 모두 하나님의 안배가 있고 하나님의 명정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큰 붉은 용이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너지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데,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것이 무너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하루라도 끝나지 않으면, 큰 붉은 용, 이 받침물이 하루라도 그것의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것이 하루라도 무너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역사가 끝날 때면 큰 붉은 용을 형벌할 때인데, 그때면 그것이 무너집니다. 큰 붉은 용이 지금은 미쳐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미쳐날뛸수록 그것의 사명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큰 붉은 용이 지금 도처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따르지 않아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럴수록 더 미쳐 날뛰는데, 어느 정도까지 미쳐 날뛰어 하나님 선민을 다 시련하고 다 온전케 하면 그것이 곧 무너지고 재난이 곧 떨어집니다. 이런 일들은 다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셨고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큰 붉은 용이 어느 때에 무너지든 역시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니 급해 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 많은 하나님 선민이 모두 “휴! 우리는 언제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면 평안한 환경에서 살까?”를 신경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역사를 다 경력하지 못했는데 집에 간다면 큰일입니다. 만약 지금 큰 붉은 용이 없다면 당신이 가정 환경에서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을 경력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그 낡은 육체의 집을 만약 깨뜨리지 않는다면 당신이 어떻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살림살이 할 궁리만 하고 돈 벌 궁리만 하고 집안 식구를 부양할 궁리만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모두 하나님이 안배하고 배설하신 환경입니다! 당신이 집 생각만 해서 되겠습니까? 당신은 왜 하나님을 생각해 보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뜻을 깨달았겠죠? 큰 붉은 용이 무너지는 그날이면 하나님 선민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끝내는 자유를 얻고 해방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하나님 선민은 “제가 이번에 집으로 가서 육체의 가정을 회복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면 더 성가시게 된 것이 아닙니까? 또 어떤 사람은 “저의 생명이 아직 자라나지 않았는데 시련이 끝나면 어떡합니까? 큰 붉은 용이 무너지면 저의 생명이 자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큰 붉은 용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지금 이런 환경이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유리하지 않습니까? 아주 유리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부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정을 멀리할수록 마음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사람이 고생할수록 마음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그의 느낌은 더 깊어지고, 인식이 있을수록 하나님과 마주하여 경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며, 영 안에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고난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가장 유익한 점이 있고 가장 유리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력이 많이 있을 때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당신을 향해 숨긴 적이 없고 지금까지 당신을 향해 얼굴을 가리신 적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조물주가 결코 너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조물주가 더는 너로 하여금 밤낮으로 생각하게만 할 뿐 느끼게 할 수 없는 그 한 분이 아니라 그가 분명하게 너의 곁을 지키고 있고 너의 생명을 공급하고 있고 너의 운명을 주관하고 있으며, 그가 아득히 먼 하늘가에 있지 않고 구름 사이에 숨어있지 않고 바로 너의 곁에서 너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으며” 이 말씀이 아주 관건입니다! 그분이 바로 당신의 곁에 계시니 당신이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때,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감찰하고 계셔! 하나님께서 마치 나를 지켜보고 계신 것 같아!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계신 거야!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 나를 징계하고 계신 거야!’라고 느끼는데,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손이 그의 몸에서 역사하는 것을 봅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아주 가깝지 않습니까? (가깝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새신자는 보편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당신이 말한 것이 정말입니까? 저는 왜 느끼지 못합니까? 저는 왜 하나님이 저를 지켜보시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왜 하나님이 저를 감찰하시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왜 하나님이 누구를 통해 저를 징계하시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왜 하나님이 제 주위에 여러 가지 인ㆍ사ㆍ물을 안배하셔서 저를 대처하고 수리하시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다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 역사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 역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며, 어떤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어떤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며, 어떤 사람은 영 안에서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육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바로 이런 구별이 있는데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하나님이 당신과 점점 가까워진다고 느껴질 때, 나중에 당신의 행위는 언제나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나님의 눈을 회피할 수 없고 하나님의 감찰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감찰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것이 다 당신의 눈앞에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에 대해 경력이 있지 않습니까? 경력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감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의 마음이 당신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경력이 있습니까? 경력이 얼마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 저는 당신의 징계를 보았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환경의 뒤에는 모두 당신의 안배와 지배가 있음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사람에게 경력이 있고 깨달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과 생각을 당신이 다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도 경력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다 감찰하고 계심을 알고 있고 체험해 본 것입니다. 경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은 정말 다릅니다. 만약 사람의 경력이 깊어지면 하는 말이 욥과 같습니다. “저는 마주하여 당신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성품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이것은 경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각 부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 경력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을 아는지 알지 못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당신이 한 말은 상당히 좋습니다!” 그는 사람이 책에서 보고 그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그에게 경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아주 깊은 경력이 있을 때, 그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지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너무 좋고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너무 소중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생이고 인생의 비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곧 아래의 말씀을 응했는데, 그의 몸에서 다 살아낸 것입니다. “이런 한 분의 하나님은 너로 하여금 마음에 애모(愛慕)가 생기게 하고 너로 하여금 그리워하게 하고 가까워지게 하며 앙모하게 하며 너로 하여금 잃을까봐 두려워하게 하고 너로 하여금 더는 포기하고 싶지 않게 하고 더는 거역하고 싶지 않게 하고 더는 멀리하고 피하고 싶지 않게 한다. 너는 그를 생각하려고만 하고 그에게 순복하기만을 원하며, 너는 너에게 준 그의 모든 것에 보답하기만을 원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귀복하기만을 원한다.”라는 이 효과에 직접 도달했습니다. 사람이 금방 하나님을 믿을 때는 늘 소극적이고 패역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려고도 했었지만 현재 하나님 역사를 여러 해 경력하고 나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된 후로는 하나님이 그를 떠나실까봐 두려워합니다. “하나님, 저를 멀리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제가 너무 깊이 패괴되었고 사람의 모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시고 저를 구원하시고 또 저를 정결케 해 주시고 저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왜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온 것일까요? 하나님에 대해 그리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그리워하고 앙모하며 몹시 사모하고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져야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 수준에까지 경력했으니 자신의 패괴 정도에 대해 인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너무 사악하고 너무 불결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저도 제가 너무 불결하고 패괴되어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저를 온전케 해 주세요! 저를 성결케 해 주시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은 저의 바람입니다.” 여러분이 보세요, 하나님을 향해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또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하나님을 쉽게 배반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너무 깊이 패괴된 사람임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너무 거룩하시고 너무 전능하시며 너무나 사랑스러우심을 보았을 때, 잿더미에 앉아 후회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이전에 한 그런 말은 너무나 실제적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으니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기만 하면 이렇게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던 데에서 자기를 혐오하고 메스꺼워하며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흠모하고 몹시 사모하는 데에 이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이르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고 새로운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기를 원합니다. 180도로 돌변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정한 인생을 가져다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하나님이 발표하신 진리가 사람에게 진실한 회개를 가져다줄 수 있지 않습니까?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면 언제나 성령 역사가 있게 되는데, 이런 효과에 아주 쉽게 도달하게 되며 일반적으로 몇 년 내에 모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경력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사람이 한 가지 일에서 패역이 좀 있어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게 되면 하루나 이틀 고통스러워하겠습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왜 이렇게 슬퍼합니까? 당신에게 아무 일도 없었는데 웬일이죠?”라고 물으니 “제가 하나님을 거역했어요, 제가 일을 하나 잘못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해드렸어요. 그 일 때문에 고통스럽고 괴로워요!”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한 가지 일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해드렸거나 한 가지 일에서 하나님을 거역했으면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한바탕 얻어 맞은 것보다 더 괴로운데, 당신이 그를 때리지 않아도 웁니다! 그가 돈을 얼마나 많이 잃었건 물건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건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한 번 괴롭게 해드리면 그는 고통스러워하고 자신을 증오하고 자신의 뺨을 때립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한 번만 패역이 있어도 심령에 극히 큰 상처를 받은 느낌입니다. 극대한 고통이 생긴 사람이 악에서 떠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악에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만 패역이 있어도 이렇게 큰 고통을 받고 마음속에 그렇게 큰 자책감과 그렇게 큰 뉘우침이 있으니 그가 악에서 떠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패역이 갈수록 적어지고 악행도 갈수록 적어지면서 마음이 점점 성결케 됩니다. 만약 그의 마음속에 이성 친구를 사귈 일만 궁리한다면 ‘이러면 잘못된 거야!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아! 마음속이 왜 이렇게 더러운지!’라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자기의 두 뺨을 때립니다. ‘이런 추잡한 일을 생각하니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나 있는가? 뺨이나 맞아!’ 다른 사람의 득을 좀 보고 남몰래 기뻐하다가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이런 사람이 사람이야? 인성이 어디 있어?”라고 말하면서 뺨을 칩니다.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면서 자기를 증오하며 “난 너무 비열하고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심령 깊은 곳에 어떤 사악함이 있든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어떤 일을 했든지 각성하기만 하면 즉시 후회하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행위상에서만 점점 성결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생각도 점점 성결해집니다. 행위상에서 악행이 없으면 이것은 이미 악에서 떠난 것이고 마음과 생각에도 불결함과 패괴와 사악함이 없으면 완전히 성결케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의해 도달한 것입니다.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얼마간의 진리도 깨달았는데, 무엇 때문에 늘 과오가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악한 짓도 행할 수 있습니까? 문제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현재 답이 있습니까? 바로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무슨 악이든 다 저지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일단 하나님을 경외하면 악행이 점점 적어지고 패괴 유로가 점점 적어지며 마음과 생각도 갈수록 성결해지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의해 다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좀 있기에 어떤 악은 제가 저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악은 특별한 환경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너무 작으면 그래도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잘 추구하여 완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특히 온전하게 되면 그때는 모든 악에서 다 떠날 수 있고 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결함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까? 성결함에 도달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면 사람이 성결해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그런 사람은 온종일 기도하고 죄를 자백해도 영원히 성결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함을 통해, 하나님 알아가기를 추구함을 통해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서 마지막에는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고 성결함에 도달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진리를 얼마간 깨달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다면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모든 악에서 떠날 수 있으며 성결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얼마간의 그리움과 애모의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떠나면 바로 흑암이고 사망이며,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이 있으면 당신은 사람이고 당신에게 하나님이 없으면 당신은 귀신인데,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나중에는 인간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으며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면 바로 하나님께 얻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얻어질 때면 더는 영원히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됩니다. 매사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이 분량에 도달할 때면, 이 실제를 살아낼 때면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도대체 멀어졌습니까 아니면 더욱 가까워졌습니까?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더욱더 하나님을 떠날 수 없을 때 그것은 어떤 경지입니까? 인생의 최고 경지이며 생명의 최고 경지인데, 생명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서 체현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해 살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곁을 함께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으며 그 밖에 또 하나님 곁을 함께할 수 있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며 또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데, 바로 피조물의 최고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의의 있지 않습니까? 의의가 너무 깊어 언어로써 분명히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본분이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본분을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입니다. 본분하는 것을 통하여 경력하고 훈련하며 우리의 패괴를 드러내고 역시 본분하는 것을 통하여 생명의 진입에 이르는 것입니다. 피조물로서 본분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으로 온 증거이며 하나님 앞에 살고 있는 간증입니다. 당신이 본분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고 하나님을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함에 있어서 도대체 진심이 있는지,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있는지, 순복이 있는지는 사람을 아주 잘 드러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저는 집에서만 믿을래요. 본분할 조건이 되지 않으면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보세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이 효과는 무엇에 의해 도달하게 됩니까?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에 의해 도달하게 됩니다. 당신이 본분을 하지 않으면 한평생 믿는다 하더라도 도달하지 못합니다. 본분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럼 본분을 하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온전케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는가에 달렸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본분을 하면서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약간의 규례만 지킵니다. “어쨌든 제가 본분도 했고 모든 것도 버렸으며 하나님을 위해 화비했고 고생도 많이 했고 힘도 썼으니, 당신이 저를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이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본분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본분을 잘 할 수 없고 무슨 본분을 하든지 그저 힘만 낼 뿐인데, 불합격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간증문을 쓸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동영상을 잘 만들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잘 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은 뭘 해도 다 안 됩니까? 그것은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일을 함에 있어서 규례에만 맞추고 규례만 지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저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데, 저는 왜 그래도 본분을 잘하지 못합니까?”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제가 당신보고 경력 간증문을 쓰라고 하면 자신의 실제 경력을 써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써야 합니다. 당신은 쓸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제가 당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실행하기 쉽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의 마음속에 실속이 없으니 제가 어떻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당신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에게 “편지 한 통을 쓰십시오.”라고 하니, “어떻게 써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가 요점을 알려 줄 테니 제 말에 근거해 쓰십시오. 문법과 문장부호를 수정해서 표준적인 편지로 작성해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하면 됩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몰라 합니다. 반나절을 보고 나서는 저에게 “어떻게 수정합니까?”라고 묻기에 제가 “수정하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또 수정해야겠군요. 답답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잠깐 사이에 제가 수정을 다 하고서 그를 보고 “다시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상당히 좋습니다!” 제가 “그런데 당신은 왜 하지 못합니까?”라고 하니 “저에게 진리가 없어요. 진리가 없으니 하지 못하는 겁니다.”라고 그가 인정했습니다. 진리가 없으면 본분을 잘할 수 있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당신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는 데에 도달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으며, 진리가 없으면 대본도 잘 쓰지 못합니다. 지식만 있어서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첫째로 진리가 있어야 하고 진리가 있는 것이 제일 관건입니다. 둘째로 문화가 좀 있어야 하지만 진리가 있으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지금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본분을 잘할 수 없습니다. “본분을 잘할 수 없다”면 무엇입니까? 효력인데 힘을 좀 낼 뿐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본분 즉 인솔자 본분을 하게 하고 당신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겠습니다. 즉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진리를 교통해 주고 진리를 좀 깨닫기는 하나 본분을 제대로 하지 않고 늘 대충대충 하고 속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수리 대처를 실행하고 늘 엇나가고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 말씀으로써 그를 심판 형벌하면 됩니다. 당신이 해 보세요,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아무리 피곤하게 교통해도 효과가 없을 겁니다. 진리가 없으면 어떻게 하라고 알려 줘도 할 줄 모릅니다. 당신보고 가서 복음을 전해 사람을 얻으라고 하면 얻을 수 있습니까? 진리의 실제가 조금도 없고 얼마 안 되는 글귀 도리만 말하기에 다른 사람이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면 당신은 어리벙벙해 하고 다른 사람이 실제 문제를 말하면 당신은 환히 말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탄복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한 가지 일도 이룰 수 없고 한걸음도 내딛기 어려우며, 진리가 없으면 바로 폐품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으면 설사 본분을 한다 해도 역시 효력입니다. 당신이 합격된 본분을 하는 데에 도달하지 못하면 효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면 나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그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을 것이고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일 것이며 그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간의 인식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오로지 그의 곁을 따르고 함께하기만을 바라고 오로지 그를 너의 유일한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너의 유일한 주, 유일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이런 것에 다 도달할 수 있으며 다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서는 빈말이 아니고 도리가 아니라 모두 생명의 실제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좋은 점이 어디 있습니까? 최소한 더는 하나님을 멀리하려 하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또 모든 악에서 떠날 수 있고 성결케 될 수 있고 하나님께 열납되며 하나님께로부터 기쁨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정 사람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으며, 진리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고 하나님의 요구를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느 날엔가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조된 인류의 최고의 영광이며, 그 영광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지금 누가 과감히 이것을 구하겠습니까?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된 후에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칭찬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나타나시리라 뜻을 정하신 것입니다. 나타나시기 전에 먼저 그를 시험(試驗)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욥을 놓고 사탄과 내기를 하여 시련이 온 것인데, 전례없는 시련이었습니다! 욥이 매우 큰 고통을 받았지만 이것도 욥의 일생에서의 전환점이었고 역시 하나님이 그를 향해 나타나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절차였는데, 반드시 먼저 이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환점이 오자 욥은 한차례의 큰 고통을 더 받게 되었고 인생의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욥이 간증을 굳게 선 후, 생각지도 않은 때에, 하나님이 그를 향해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욥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본 후, 본래 고통을 받았던 마음과 슬프던 마음이 단번에 얼마나 큰 위로를 얻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이 한차례의 나타나심을 보기 위해 제가 이 모든 것을 잃고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은 너무나 가치 있습니다! 어떤 고통을 받는다 해도 다 가치 있고 무엇을 잃는다 해도 다 가치 있으며 하나님만 얻으면 만족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 얻으면 만족입니다!”, 이 말 속에 무슨 뜻이 있습니까? 피조물의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황제를 보고 그들의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즉 피조물이 조물주를 보는 것,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은 최대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지금 오직 영 안에서만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며 하나님의 성품을 보고 하나님의 권병을 보며 하나님의 전능 지혜를 보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는데 마음속이 매우 흥분되고 감격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대단히 감복하여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본체가 나타나시는 것을 본다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육체에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본다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영계에서 보는 것입니다. 영계에 그렇게 많은 영체들이 있지만 누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습니까? 죽은 성도들, 그 영혼들도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이래로 그 어떤 사람에게도 나타나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정확하지 않습니까? (정확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본체가 그 어떤 사람에게도 나타나지 않았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일부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셨는데, 어떤 때에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말씀하셨고 어떤 때에는 불꽃 속에서 말씀하셨으며, 어떤 때에는 하늘 공중에서, 구름 속에서 사람을 향해 말씀하셨는데, 말씀만 사람을 향해 나타나고 하나님의 본체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진실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닙니까? 금생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는데, 그 의의가 아주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