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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들어서다≫에 관한 설교 교통 (1)

이 한 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최신 말씀으로 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경로와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최종에 도대체 무엇을 얻어야 하겠습니까? 즉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하겠습니까? 이 말씀에서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말씀의 제목,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들어서다”인데, 이것이 가장 관건입니다! 이 말씀이 있음으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진실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이끌어 주셔서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게 하고 진리에 진입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에게 진리가 없고 당신은 하나님의 칭찬을 얻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안중에 당신은 불신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다년간 믿고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되었다면 이는 당신이 완전히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했고 진리를 얻었으며 생명을 얻은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이 점을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는 가장 주된 일입니다. 우리 먼저 하나님 말씀 첫 번째 단락을 읽어봅시다.

각 사람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에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앎과 진정한 이해와 진정한 인식이 있는가의 여부,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참으로 아는가의 여부, 하나님이 너에게 한 일과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定義)를 참으로 이해하는가의 여부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너의 곁에서 너를 동반하고 너의 앞길의 방향을 인도하고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너의 필요를 공급하는 이 한 분의 하나님에 대해 너는 도대체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는가? 너는 그가 매일 너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그가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원칙과 취지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가 어떻게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어떤 방식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너에게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아는가? 너의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아는가? 네가 그가 기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가? 그의 희로애락의 유래와 그 배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그의 실질을 아는가? 너는 네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아는가? 등등 이런 문제들은 네가 지금까지 알아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체득과 경력(역주: 체험)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푼 적이 있는가? 너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을 받고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역주: 순종)과 헤아림이 생긴 적이 있는가?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중에서 사람의 패역과 사람의 사탄 본성을 인식하고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었는가? 너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깨우침 하에 새로운 인생관이 생기기 시작했는가? 너는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과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구원을 느꼈는가? 만약 네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인지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푸는지도 모른다면 너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가 없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아본 적도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너는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네가 무엇이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인지 모른다면 너는 틀림없이 무엇이 순복과 헤아림인지 모르고, 적어도 너는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순복과 헤아림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한 적이 없다면 너는 결코 무엇이 하나님의 거룩인지 모를 것이고 더욱이 무엇이 사람의 패역인지도 모를 것이다. 만약 네가 전혀 참되고 정확한 인생관이 없고 정확한 인생 목표가 없고 여전히 앞으로의 인생길에 대해 막막해 하고 방황하며 심지어 주저하며 나아가지 못했다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은 적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지금까지 진정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보급을 얻은 적이 없다. 만약 네가 아직 하나님의 시련을 겪지 못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이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사람을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떠한 경력과 터득도 없다면 그는 분명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에 분명 실제 내용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인식도 분명 제로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각 사람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에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앎과 진정한 이해와 진정한 인식이 있는가의 여부……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무엇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지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참으로 아는가의 여부”,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내용이고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너에게 한 일과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定義)를 참으로 이해하는가의 여부”입니다. 네 번째는 “너의 곁에서 너를 동반하고 너의 앞길의 방향을 인도하고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너의 필요를 공급하는 이 한 분의 하나님에 대해 너는 도대체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는가?”이고 다섯 번째는 “너는 그가 매일 너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이며 여섯 번째는 “그가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원칙과 취지가 무엇인지 아는가?”이고 일곱 번째는 “그가 어떻게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입니다. 여덟 번째는 “그가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는 것인지 아는가?”이고 아홉 번째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이며 열 번째는 “그가 네 몸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아는가?”이고 열한 번째는 “너의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아는가?”입니다. 열두 번째는 “네가 그가 기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가?”이고 열세 번째는 “그의 희로애락의 유래와 그 배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그의 실질을 아는가?”이며 열네 번째는 “너는 네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아는가? 등등 이런 문제들은 네가 지금까지 알아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이고 열다섯 번째는 “네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체득과 경력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푼 적이 있는가?”입니다. 열여섯 번째는 “너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을 받고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헤아림이 생긴 적이 있는가?”이고 열일곱 번째는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중에서 사람의 패역과 사람의 사탄 본성을 인식하고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었는가?”이며 열여덟 번째는 “너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깨우침 하에 새로운 인생관이 생기기 시작했는가?”이고 열아홉 번째는 “너는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과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구원을 느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이 모두 19개 문제임을 보았는데, 이런 질문은 모두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며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19개 문제에 대해 당신이 만약 경력이 조금도 없다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이 19개 문제는 너무나 관건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시,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 모두 이론적 인식은 어느 정도 있는데,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이 문제에 대해 이전에 사람들은 다 분명히 알지 못했었습니다. 다들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여겼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시면서 이 19가지 문제를 우리 앞에 내놓으시니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바로 이 19가지 문제에 대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19가지 문제에 대해 당신이 다 경력이 있고 다 인식이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이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19가지 문제에 대해 대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진실한 경력과 인식도 없다면 당신이 이전에 논하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다 이론이고 다 빈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하나님 선민에게 제기하신 이 19가지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경력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며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었는데, 이 문제에 지금은 답안이 있게 되었습니다. 답안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이 19가지 문제에 있습니다. 당신이 이 19가지 문제를 잘 깨닫고 분명히 알며 정확한 답이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곧 진실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추구함에 길이 있게 되었고 마음이 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 이 19가지 문제를 잘 교통해 봅시다.

“각 사람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생애”란 바로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시간과 경력, 효과를 통틀어 “하나님을 믿는 생애”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앎과 진정한 이해와 진정한 인식이 있는가의 여부”, 일반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3~5년 믿은 후이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첫 두 해는 흔히 이상(異象) 방면의 기초를 닦을 때여서 이상 방면의 진리를 확신하고 하나님을 확신하는 과정이기에 하나님을 안다고 논할 수 없으며 3년째부터 여러 일들을 경력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3년 이상 되는 사람들은 10년이 되었든, 20년이 되었든 하나님에 대해 도대체 “진정한 앎과 진정한 이해와 진정한 인식”이 있는지를 모두 성찰하고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여기에서 “자세히 살펴보다”를 성찰이라고도 하고 반성이라고도 하며 돌아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어떻게 자세히 살펴봅니까? 어떻게 돌아봅니까? 어떻게 성찰합니까?” 그럼 당신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에 대해 도대체 진정한 이해와 인식이 있습니까? 이것을 총정리한다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하는지 모르고 무엇을 하나님을 이해한다고 하는지도 모른다면 틀림없이 무엇을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문제에 대답할 줄 모르고 속이 텅 비었다면 그에게 인식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정말 인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고 돌아보면 얼마간의 인식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저는 여러 차례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저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믿다가 좌절을 좀 겪게 되었는데, 나중에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교회 생활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저를 징계하여 불행한 일이 임하게 된 것을 마음속으로 느꼈고 나중에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음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진실한 경력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런 일을 경력한 것이 많다면 그 사람은 이전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적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비교적 추구하고 비교적 열심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경력했을까요? 자신의 열심, 자신의 은사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다가 결국 징계와 채찍질을 받고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좀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부 사람들은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징계와 채찍질을 조금 겪었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복을 얻으려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 집을 떠나지 않고 이렇게 끝까지 견지하면 구원받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아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하나님 마음을 찾을 수 없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믿음이 없어졌어. 하나님께서 나를 거들떠보시지 않고 상관하시지도 않으니 일이 심상치 않아! 진리를 추구해야겠어. 더 이상 추구하지 않으면 위험해! 이게 믿지 않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어?’라고 생각하고는 또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람의 경력이 어떻습니까?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을 경력해도 여전히 패역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당신을 한쪽에 내버려 두고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은 날 좋아하시지 않아. 하나님은 날 칭찬하시지 않고 싫어하시는구나.’라고 느낍니다. 이런 인식이 있는 것도 조그마한 경력인데, 실패의 경력에서 얻은 인식입니다. 이런 인식이 있는 사람도 적지는 않죠? (네.)

일부 사람들이 본분을 함에 항상 충심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건 내 자유야. 어떻게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고 어떻게 본분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본분을 할 거야. 나는 힘들게도 하지 않고 급하게도 하지 않고 효율도 따지지 않겠어. 이렇게 천천히 하다가 될 대로 되라지. 어쨌든 나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거니까.’라고 여깁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도 한쪽에 두고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이 길면 드러나고 도태될 것인데, 이런 사람은 위험 속에 처해 있습니다.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성경의 어떤 말씀을 응한 것입니까?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인식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에 시간이 지나면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은사가 있든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새신자이면 당신에 대해 좀 긍휼이 있어 당신을 이해할 수 있고 당신에게 공급해 줄 수 있지만 당신이 만약 몇 달 간 시종일관 미지근하게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며 자기의 성미대로 한다면 사정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노하시고 당신을 도태시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본분을 제 일처럼 하지 않고 부담이 없이 일을 질질 끄는데, 아무런 효율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며 절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늘 저에게 물으십니다. “이 사람들 중에서 누가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지 발견했는가?” 제가 “몇 사람 발견했지만 아직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중요한 본분을 하고 있지만 사역에서 아무런 효율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자 하나님은 “더 관찰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효율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런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는지, 본분을 함에 하나님께 충심이 있는지, 그에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이런 것이 다 의문인데, 이런 사람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 관찰해 보면 결론이 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제가 하나님을 1~2년 믿은 사람에게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 말은 너무 일찍 물은 것입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을 3~5년 믿은 사람에게 이 말을 묻는다면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그러나 만약 7~8년, 10여 년간 믿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다면 이것은 슬픈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도대체 “진정한 인식”이 있는지, “진정한 이해”가 있는지, 당신이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맞는지 이런 문제를 모두 마땅히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없다면 이런 사람은 다 도태될 대상인 것입니다! 재난이 내릴 때면 이런 사람들은 온역과 질병이 임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척 보면 “아, 온역에 걸리고 병에 걸려 본분을 할 수 없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도태시키시는 것이고, 그 사람은 위험하겠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교회에서 처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처리하실 것인데 이러면 아주 위험합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 역사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시는지 모르며 하나님의 성품도 모르고 자신은 괜찮을 거라고 여깁니다. ‘난 징벌도 받지 않을 것이고 도태되지도 않을 거야. 이것을 “편승”한다고 하지.’ “편승”하는 믿음법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미지근하여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며 최종에는 도태될 대상입니다. 기억했겠죠?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앎과 진정한 이해와 진정한 인식이 있는가의 여부”, 이 말씀은 각 사람에게 빨리 자신을 반성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다면 당신이 걸은 길은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 아님을 증명하며 도태될 위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사람은 위험 속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다년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해 약간의 인식과 앎, 이해가 있다면 본분을 함에 있어서 충심이 있을 것이고 고생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이 급해 하시는 것을 급해 하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까? 당신의 진실한 태도는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한 가지 본분을 맡기면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완성하지 못하고 사역을 아무리 오래 해도 효율이 조금도 없기에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모두 안타까워하고 실망합니다. 당신의 분량이 작고 새신자이기에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질까봐 미안해서 당신을 대처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고 당신과 같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몇 년 믿었는데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이것은 확정할 수 있어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잘 알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전에 어떻게 믿었습니까? 당신은 앞으로도 그렇게 믿겠습니까? 여전히 옛길을 걷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이전처럼 그렇게 몇 해를 더 믿어도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인식이 없다면 당신은 도태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전에 어떻게 믿었습니까? 다년간 믿었는데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단 말입니까? 당신은 총결할 줄 압니까?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이전에 모든 것을 버리고 고생도 했습니다! 집까지 다 버렸고 가정도 깨지고 옥살이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고생을 얼마 했든지 상관하시지 않고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지, 이 성과만 보십니다. 당신은 이 성과를 내놓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저는 10여 년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네가 고생한 것을 말하지 말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지를 말하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또 “저는 하나님을 위해 3년 동안 옥살이도 했습니다.”라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는 너에게 옥살이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느냐고 물었다.”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또 “저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을 버렸기에 가정이 다 깨졌습니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난 너의 가족이 깨졌든 안 깨졌든 상관하지 않고 너에게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지를 물어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꼭 이 성과를 요구하신다면 저에게는 없습니다.” “너에게 진리가 없다면 미안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국을 정하시는 것은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의 여부에 근거하십니다. 당신에게 진리가 없으면 고생을 얼마나 하든 쓸모없습니다! 헛고생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길이 틀렸음을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입니다! 당신이 몇 년을 따랐든지 당신이 고생을 얼마 했든지 더욱이 당신이 얼마를 버렸든지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과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했는지의 여부, 이 결과를 요구하십니다. 이 결과와 이 답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당신이 걸은 길은 틀린 것이고 당신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며 당신이 걸은 길은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이 고생한 것을 자본으로 삼아 고참 티를 내면서 ‘나는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 많은 것을 버렸어.’라고 생각하고 또 ‘나는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 많은 고생을 했어. 또 옥살이도 하고 고문도 받았었고 큰 붉은 용의 심한 박해도 받았었는데, 이런 것이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자본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무엇에 근거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 역사의 효과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서 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당신은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의 여부에 근거하여 사람의 결국을 정하십니다.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일까요? 바로 당신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효과에 도달했는지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참으로 아는가의 여부”, 이것은 아주 관건이며 하나님 성품을 인식하는 하나의 중요한 화제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징벌을 받고 어떤 사람이 국도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등 각 부류 사람의 결국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모두 본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한 번만 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말씀에서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보면 가장 정확할까요? 사람이 만약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모른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없겠죠?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를 아주 좋게 보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축복만 주시고 저주가 없으며 모두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사람의 관념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인식이 없고 자신을 정확히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려면 우선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관건입니다.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이러면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어떠한지 분명해집니다. 이것이 길입니다. 당신이 만약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를 모른다면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당신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 먼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즉 진정한 하나님 자민 부류의 사람에 대해 말해 봅시다. 우선 당신은 어느 부류의 사람이 이후에 틀림없이 하나님 선민이 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답안은 아주 분명합니다. 즉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럼 당신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까? 당신이 만약 자신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정할 수 있다면 이후에 당신은 틀림없이 하나님 자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자신 있게 확정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자신을 하나님 자민으로 정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지금 다수의 사람들이 충성된 효력자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충성된 효력자는 본분을 함에 있어서 대충대충 해서 속이지 말아야 하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원칙을 어기지 말아야 하며 본분을 함에 있어서 악을 행하지 않고 효과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최후까지 견지해야 합니다. 만약 중도에서 도망가고 떠난다면 마찬가지로 도태될 것이고 충성된 효력자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충성된 효력자의 조건입니다. 그럼 당신이 본분을 하는 것이 이 표준에 도달했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본분을 함에 있어서 충심이 있는 데에 도달해 충성된 효력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본분을 함에 대충대충 해서 속이는데,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일반 효력자입니다. 일반 효력자는 어떤 개념입니까? 마치 직장에서 일을 하듯이 직장에서 어떻게 일했으면 하나님 집에서도 그렇게 하고, 직장에서 그럭저럭 나날을 보냈다면 하나님 집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일반 효력자입니다. 일반 효력자가 충성된 효력자로 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역 효율이 너무나 제한되어 있기에 그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조금 효력하는 것도 가치가 얼마 없기에 이런 사람은 충성된 효력자의 자격에도 닿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이 부류에 속합니다. 그럼 이 부류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을 해결해야 할까요?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만약 회개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후에는 충성된 효력자마저도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속여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허용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처리하심에는 원칙이 있고 표준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모두 계획이 있고 절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요구도 있습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따지지 않으셨지만 하나님나라시대에는 각기 종류대로 하기에 표준과 원칙에 따라 도태시킬 사람은 도태시키시고 온전케 될 사람은 온전케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이고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입니다. 가라지이면 도태될 것이고 밀이면 창고에 거두어들여지고 국도에 이끌려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며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지 이미 20여 년이 되었기에 곧 키질할 때가 되었습니다. 현재 재난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재난이 어느 정도로 커지면 일부분 사람들은 재난에 훼멸될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이 한창 죽음을 자초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초할수록 더욱 빨리 무너지는 것입니다. 각종 악령, 각종 마귀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하고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를 논단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의 결국은 이미 정해졌으며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재난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심하게 대적할수록 세상은 더욱 빨리 훼멸될 것입니다. 최후에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하나님께서 모든 마귀를 다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으실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지금 한창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대적하면 곧 죽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기만 하면 즉시 죽는 것을 왜 보지 못합니까?”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한 사람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기만 하면, 특히 모독하는 말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은밀히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죽은 사람 더미 속에 놓으시는데 이러면 틀림없이 죽어야 하는 사람임을 다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대적하면 곧 죽는다”의 참 뜻입니다. 즉 최고 법관인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미 사형을 선고하셨기에 누구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그가 죽는 것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어느 날, 전 우주의 사역이 끝날 때면 보게 될 텐데, “아! 하나님을 대적한 자는 정말 다 죽었구나! 대적한 그 당시에 육체는 죽지 않았었지만 최종에는 정말 다 죽었구나! 하나도 살아남지 않았네. ‘대적하면 곧 죽는다’라는 말씀이 응했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면 다 보게 되어 당신이 탄복할 것입니다. “아! 하나님 말씀의 마디마디가 다 응했구나. 오늘에야 보게 됐구나.” 이것은 당신이 영이 통하지 않기에 마지막에야 보게 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일은 곧 이루어지는데 당신의 영이 너무 무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이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이며 효력자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이고 온갖 악을 행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이며 거짓 인솔자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인지, 이런 것에 모두 정확한 논법이 있어야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한 논법은 바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꼭 징벌하시고 어떤 사람을 이방인을 대하는 것처럼 도태시키며 어떤 사람을 한쪽에 내버려 두어 사역이 끝날 때 도태시키고 어떤 사람을 최종에 온전케 하고 얻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만약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보지 않고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보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대충대충 속이면서 지나가고 참답게 대하지 않으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믿고 따르는 것으로만 만족한다면 어느 날엔가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당신은 정말로 도태되어야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휴!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국을 정하시는 것은 정말로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가의 여부에 근거하시는구나!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진리를 추구했을 텐데!” 그때 이런 말을 해서 소용있을까요? 그때 가서 당신이 이 일을 명확히 알았다 해도 늦은 것입니다! 후회약을 살 곳이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 기회에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안 다음 당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될 것이고 어떻게 진리를 추구할 것인지,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이후의 결국과 운명에 대해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며 이 일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인성이 좋고 악을 행하지 않으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인성이 좋아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인성이 좋아도 진리가 없이 본분을 하면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본분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인성이 좋아도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따르고 다년간 하나님을 따랐어도 하나님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고 나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아니라면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인성이 좋다고 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인성이 좋아도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니 “인성이 좋다”는 말은 모호하고 막연한 말입니다. 무엇을 좋다고 합니까? 진리가 없으면 다 좋지 않습니다. 진리가 없으면 아무 데도 쓸모없고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인성이 좋다고 하는데, 양심과 이지가 있습니까? 당신이 “제가 인성이 좋은데, 양심과 이지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지만 당신에게 양심과 이지가 있다면 왜 진리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습니까? 이 몇 가지를 할 수 없으면서 인성이 좋다고 한다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늘 자기가 괜찮다고 여기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인성이 좋다고 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최후에는 더욱 후회하게 될 것이고 인성이 좋다는 이 표면 현상에 속아 망쳐질 것이고 자기 자신을 심하게 해칠 것입니다. 당신이 얌전하고 악을 행하지 않고 인성이 좋으면 아마 교회에서는 당신을 도태시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에게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태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지 무골호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서 무골호인을 인솔자로 선거합니까? 무골호인은 폐물이고 진흙을 벽에 바르지 못하듯 쓸모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인솔자를 선거하는 것은 진리가 있고 실제가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선거하지 무골호인을 선거하지 않습니다. 이 일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은사가 좀 있고 재간이 좀 있고 게다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좋아하실 거야.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나를 좋아하실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성립됩니까? 이런 사람은 너무나 무지몽매합니다. 사람이 이쁘게 생기고 은사가 있다고 해서 진리가 있고 마음씨가 선함을 뜻하지 않으며 정상적 인성이 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진리가 없으면 최종에 하나님은 마찬가지로 당신을 도태시키실 것이고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해야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하며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 번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한 일과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定義)를 참으로 이해하는가의 여부”,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어도 “어떻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몸에서 어떤 사역을 하셨습니까? 어떤 효과에 도달했습니까?” “모릅니다. 흐리멍덩하게 지내왔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렸다고 느껴지는데, 정말 보았습니다. 어떤 일은 매우 순조로웠는데, 하나님의 은총이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당신 몸에서 징계와 수리,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는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고 성령 역사를 경력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몸에서 어떤 사역을 했고 어떤 효과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면 이런 사람은 성령 역사가 없는 것이기에 아주 위험합니다!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진정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불신파가 된 것입니다. 이름만 건 불신파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위험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역사를 알고 있다면 그에게 성령 역사가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어떤 효과에 도달했고 어떤 실제에 진입했는지 말하지 못한다면 그가 성령 역사에 대해 경력이 너무나 적음을 증명합니다.

또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定義)”, 이것이 관건입니다. 일반인은 이 일에서 모두 분명히 알지 못하거나 분명히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함에 시종 대충대충 해서 속입니다. 그는 “내가 이렇게 본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도대체 칭찬하실까 아니면 정죄하실까? 좋아하실까 아니면 혐오하실까?”에 대해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이해가 없고 흐리멍덩합니다. 누가 “당신이 한동안 사역을 하면서 당신의 모든 행위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혐오하시고 무엇을 칭찬하시고 무엇을 긍정하시는지 명확히 알고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사람이 이런 것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설명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세심하지 않아서 여태껏 그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으려면 이런 세부적인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태도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관건입니다.

그럼 제가 또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생애에서 당신이 했던 일 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대해 혐오하고 증오하시는지 당신은 확정할 수 있습니까? 이런 일이 있던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어떤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하나님이 당신을 징계하셨습니까?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당신이 어떤 일을 해서 성령 역사를 잃었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해 얼굴을 가리시고 당신을 거들떠보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일을 하나님을 등지고 하고 목을 곧게 세워 해서 당신이 감히 기도도 하지 못해 나중에 얼마 동안 성령 역사를 잃었고 하나님이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습니까?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당신이 한 이런 일들을 정리해서 다시 성찰해 보고 그 속에서 당신이 한 매 한 가지 일과 당신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앞으로 생명이 자라나고 구원받는 데에 있어서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정리해서 자신을 다시 반성하면서 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새로이 인식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이런 세부적인 일에 공을 들여 효과에 도달해야지 흐리멍덩하게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도대체 아직도 어떤 패역과 대적이 있는지, 당신이 한 이런 일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그분의 태도를 나타내셨는지 발견했습니까? 의식했습니까? 당신이 만약 발견하고 의식했다면 그것을 일기로 써서 기록하십시오. 이것이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생애의 역사 기록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대충대충 하고 속이다가 나중에 엄한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받고 나서야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이 엄한 수리 대처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노하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이 쓰시는 사람이나 인솔자 일꾼을 통해 당신에게 그분의 노기, 그분의 혐오, 그분의 미움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의식했습니까? 만약 당신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고도 영이 통하지 않는다면 의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 영이 있고 정말 영이 통한다면 마땅히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흐리멍덩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믿어도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아닙니까? 만약 이런 결론이라면 당신은 위험합니다. 당신이 앞으로 계속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지낸다면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당신이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이전의 방식대로 계속 믿겠습니까? 당신이 계속 그렇게 믿는다면 꼭 구원받는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이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길을 다시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전의 믿음법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 성립되지 않을까요? 이전에 당신이 흐리멍덩하게 여러 해를 믿었어도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고 진정한 이해가 없으며 특히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 생애에서 당신이 했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이렇게 다년간 믿으면서 시종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흐리멍덩하게 믿었음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수확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믿는다면 몇 년을 더 믿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수확은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의 이전의 믿음법이 도대체 성공한 것입니까 아니면 실패한 것입니까? (실패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실패했습니까? 수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난 이전에 괜찮게 믿었어. 난 어떤 악도 행하지 않았고 교회 생활을 떠나지도 않았거든.’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교회 생활을 떠났는지를 상관하지 않으시고 악을 행했는지도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수확이 없기에 당신이 걸은 길이 틀린 것입니다. 아시겠죠? 당신에게 수확이 없다면 최소한 한 가지 문제는 확정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앞으로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면 마찬가지로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인식이 없을 것이며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는 이전에 버리기도 했고 많은 고통도 받았어요.”라고 하거나 “옥살이를 한 적도 있고 큰 붉은 용의 박해를 받아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당신이 고통을 얼마나 받았는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당신에게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가? 너는 진리를 얻었는가?”를 물으시고 당신의 가장 큰 수확이 무엇인지를 물으십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그럼 제가 이전에 믿은 건 헛믿은 것입니까?” 헛믿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믿으면 아마 위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당신이 가는 길이 좀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길이 치우쳤다”고 하는지 지금 명확해졌죠? 바로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실수입니다. 당신은 고통받는 것만 중요시하고 화비(역주: 들이다, 바치다, 쓰다, 지불하다의 뜻)하는 것만 중요시하고 사역만 중요시하고 설교만 중요시하고 본분하는 것만 중요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것이 “치우친 것”이 아닙니까? 당신의 이 “치우침”은 무엇으로 초래된 것일까요? 당신은 ‘하나님을 따르려면 하나님을 위해 고통을 받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고통받는 것이 클수록 더욱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며 고통받는 것이 클수록 받는 상이 더욱 크다.’라고 여기는데, 이 “치우침”은 이 관념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큰 고통을 받으면 내가 너를 칭찬하고 고통받는 것이 많을수록 더 칭찬한다. 고통받는 것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 당신의 그 이해는 무엇에 근거한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상상, 당신의 관념,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오해, 당신의 작은 총명이 당신을 망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 몸에서 역사하여 도대체 어떤 효과를 이루려고 하시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수확하려고 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는지 이것을 분명히 안 다음 다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을 정해야 합니다. 이 일을 명확히 깨닫지 못하면 당신은 자신의 관념으로 자기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것은 맹목적이지 않습니까! 당신의 맹목적인 추구가 잘못된 선택을 가져와 잘못된 길을 걷게 하여 결국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진실한 수확이 없게 된 것인데, 이는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계의 지도자와 목사들이 무엇 때문에 나중에 징벌을 받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너무나 보애하여 하나님 선민을 놓고 하나님과 쟁탈하기에 화를 자초한 것이고 쌤통이며 운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의 적그리스도는 그들보다 더욱 가련합니다. 이 사람들은 참 도를 받아들이고도 지위를 추구하고 더군다나 하나님과 하나님 선민을 쟁탈하고 권력을 쟁탈하면서 늘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적그리스도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들이 갖은 악행을 다하기에 반드시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하면서 허영과 체면을 따집니다. ‘어떤 본분이 나 자신을 나타낼 수 있으면 그 본분을 해야겠어. 열심히 해도 사람들이 볼 수 없고 나를 나타내지 못하고 숨어서 무명영웅이 되는 본분이라면 안 할 거야. 난 사람들이 겉으로 볼 수 있고 체면이 좀 설 수 있는 일을 할 거야.’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고 자신을 나타낼 수만 있으면 고생을 얼마나 하든, 힘을 얼마나 들여야 하든 좋아합니다. 그는 늘 자기의 허영을 만족시키는 것을 추구하는데,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안배하든 모두 하나님의 허락이 있기에 당신은 모두 마음으로 순복해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복할 수 있다면 당신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당신이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복하지 않으면 당신이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것은 빈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직접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분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오늘 사역의 필요에 근거해 당신에게 이 본분을 하고 저 본분을 하도록 안배하는데, “저는 선택하겠습니다. 제가 어떤 본분을 하고 싶으면 그 본분을 하고 제가 좋아하지 않는 본분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이렇게 본분을 한다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까? 이런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본분을 하면서 골라서 하고 소극적으로 태만하게 하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진리의 실제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진실한 순복이 없고 완전히 개인의 취향에 따라 본분을 하는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어떤 사역이 관건이고 중요할수록 자발적으로 담당하고 자발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급해 하시는 것을 급해 하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또한 사역을 하고 본분을 함에 효율을 제고하려고 하고 가장 빠른 시간에 효과에 도달하며 일을 질질 끌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며 대충대충 해서 속이지 않으며 자기의 성미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본분을 함에 있어서 고통을 받아야 할 때면 고통을 받고 바쁘게 보내야 할 때면 바쁘게 보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때는 하루에 10여 시간을 사역해야 하고 급할 때는 몇 시간을 더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곤해 죽기야 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고생해야 할 때는 고생해야 합니다. 이것을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통받으시기에 우리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고통을 좀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 사랑에 보답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성미대로 하지 말고 이유를 따지지 마십시오. 무슨 이유를 따집니까? 누가 말합니다. “직장에 다녀도 8시간 근무제인데 왜 저에게 10시간, 12시간 일을 시킵니까?” 이 말은 마치 이치가 있는 것 같지만 당신은 인간미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도리를 들이대지만 당신에게 진리가 있습니까? 무엇이 진리인지 압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인지 압니까? 이때 이런 도리를 따진다면 이 한 가지 일로 당신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네 번째 문제입니다. “너의 곁에서 너를 동반하고 너의 앞길의 방향을 인도하고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너의 필요를 공급하는 이 한 분의 하나님에 대해 너는 도대체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는가?” 여기에서 또 “도대체”를 한 번 언급했습니다. 이 “도대체”가 아주 중요합니다. 무엇을 “도대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표명하고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캐묻는 것입니다. “너는 도대체 얼마나 이해하고 인식했는가?” 그럼 이 한 마디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서 우리를 다년간 인도하셨는데, 그분이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는지, 그분이 가장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에 대해 도대체 얼마나 인식했는지, 하나님은 이것에 가장 관심을 두십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역사하시면서 하나님 선민에게 이것을 물어보신 적이 없습니다. 단지 말세 역사에서만 이 말씀을 하신 것인데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말씀하시지 않았고 또한 외계인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았으며 오직 우리에게만 말씀하셨고 오직 우리에게만 이런 사역을 하십니다. 사역을 다 하신 다음 우리 몸에서 어떤 효과에 도달했는지에 관심을 두시기에 우리에게 “너는 도대체 나를 아는가? 내가 누구인가? 너는 분명히 아는가? 너는 지금 나에게 어떻게 지위 규정을 내리겠는가?”라고 물으십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이 문제를 대해야 하겠습니까? 당신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거듭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살겠습니까? 당신은 양심상 하나님께 죄송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요구를 하시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우리에 대한 희망이 너무나 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역사가 끝날 때에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너는 도대체 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가?”라고 물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혈 대가가 우리 몸에서 바꾸어 온 하나의 효과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를 가장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다년간 역사하시면서 우리에게 치르신 심혈 대가가 도대체 어떤 효과에 도달했는지, 실제 효과가 있는지를 보려고 하십니다. 지금 이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하셨는데, 당신은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몇 년간 따랐어도 이 문제를 대면할 수 없고 이 문제에 어떠한 답도 내놓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대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심혈 대가를 대하겠습니까? 당신의 양심에 죄송한 느낌이 없겠습니까? 후회와 가책이 없겠습니까? 당신은 이 몇 년간 본분을 하면서 어땠습니까? 하나님을 만족케 했습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큰 심혈 대가를 치르신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이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배설하셔서 우리를 그분 앞으로 이끌어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그분의 역사를 경력하고 자신의 본분을 하게 하십니다. 그럼 이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이런 효과를 이루시려고 얼마나 큰 심혈 대가를 치르셨는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물어보시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 그리고 기대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종교인에게 묻지 않으셨고 더욱이 이방인에게 묻지 않으셨으며 바로 우리에게 물으셨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이것이 하나님의 높임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만약 지금 당신이 할 말이 없고 자신이 하나님을 다년간 따르면서 정말 아무런 수확도 없다고 느껴진다면 이후의 길을 도대체 어떻게 걸어야 하겠습니까? 여전히 이전처럼 그렇게 믿겠습니까? 만약 이전의 당신의 믿음이 아무런 수확도 없다면 그런 믿음이 맞는 것입니까? (틀립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믿겠습니까? 지금 이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걷고 어떻게 믿어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어 최종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지 당신은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박하게 우리를 온전케 하려고 하십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따르겠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문젯거리입니다.

지금 하나님 선민에게 간증문을 쓰라고 하니 다수의 사람들이 펜을 들었는데 쓸 내용이 없고 어떻게 써도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것입니까? 당신에게 하나님을 믿은 경력을 쓰라고 하면 쓸 것이 없어서 쓰지 못하고, 외적인 일, 큰 붉은 용을 들춰내고 종교계를 들춰내는 글을 쓰라고 해도 쓰지 못하며, 본분을 하면서 경력한 생명 경력 간증을 좀 쓰라고 해도 내용이 얼마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이 걷는 길이 틀리고 편차가 있기 때문에 효과가 없고 수확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집의 어느 방면의 사역이 진전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간증문을 쓸 수 있는지, 어떤 정도로 쓸 수 있는지, 각지의 영화 촬영을 어느 정도로 했는지, 지금까지 편집이 끝났는지 성과를 보려고 합니다. 합창단이 지금 매우 바쁩니다.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 있고 이제 막 기초를 닦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두들 너무 수고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은 우리가 좀 바쁘게 보내고 고생을 좀 하면 앞당겨 끝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만약 마음을 다잡아 자신을 재촉한다면 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런 부담이 없기에 그는 그의 성미대로 합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새신자라면 우리도 따지지 않고 어떻게 믿든지 봐주지만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믿고 흐리멍덩하다면 아주 위험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계속 믿는다면 도태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을 도태시킬 때에는 하나님 집에서 사정을 두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이 전에 고통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전에 어떠했든 일단 제가 너무 열 받아 화나게 되면 당신은 아주 위험할 것인데, 저의 마음속에서 일락천장(一落千丈)이 되어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고 한쪽에 가 있게 할 것이며 사정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인솔자 일꾼들은 제가 화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일반 형제자매들에게는 그러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중요한 사역을 담당하면 저는 살펴봅니다. 만약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당신이 착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제가 사정을 두지 않는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본분에서 도태되었습니다. “당신은 필요 없으니 반성이나 하십시오! 본분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당신이 본분하는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억지로 본분을 시키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떤 본분을 하든지 어떤 장점이 있든지 태도가 틀리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미안합니다! 돌아가십시오! 당신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말해도 안 되기에 도태시키면 그만입니다.

지금 “너의 곁에서 너를 동반하고 너의 앞길의 방향을 인도하고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너의 필요를 공급하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을 당신이 모르고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무엇인지 당신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년간 역사하셨는데, 당신이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무시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다면 최후에 어떤 결과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노하실 때, 당신은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떤 사람은 경력했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그를 호되게 대처 수리하고 정죄하니 그가 속으로 어떻게 말하는지 압니까? ‘당신이 정죄하고 대처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다.) 어디가 틀립니까? 그는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을 보지 못하며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손이 그에게 임한 것이고 그가 위험해진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그를 처리했습니다. 보세요, 최종에 그는 이런 결국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그를 처리한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뜻임을 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병을 보지 못하고 눈이 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도태되어 내버려졌고 성령이 그의 몸에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고 하나님의 노기를 보지 못했으며 눈이 먼 것입니다. 그의 뜻은 ‘그리스도가 친히 나에게 노하셔야 하나님이 나에게 노하신 거야. 어느 한 사람이 나에게 노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아.’입니다. 이 말은 무지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봐줄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성령의 지배가 있을 때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당신이 함부로 말할 수 있습니까? 구약 율법시대에 선지자가 사람에게 말씀을 전달했는데,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함부로 말할 수 있습니까?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을 전달할 때,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선지자가 전달했지만 하나님은 그 말씀에 따라 사람을 징벌하셨고 사람의 결말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만이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직접 당신에게 노하시는 것을 기다리는데, 자격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으며 하나님은 모두 간접적으로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통해 그분의 노기를 나타내십니다. 이것도 모르면서 당신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함부로 말하다니요! 참으로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다음 문제입니다. “너는 그가 매일 너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이 말씀은 관건입니다! 이것은 성령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성령 역사의 세부적인 방면에 대해 모두 체험한 것입니다. 어느 방면에서 당신을 징계하시고 어느 방면에서 당신을 깨우쳐 주시는지, 그리하여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엇을 하시는지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무엇을 하시는 것에도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생활 테두리 안에서 당신에게 한 가지 일이 임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이 한 가지 일을 통해 당신을 깨우쳐 주시고 당신에게 닥친 일에서 배울 과제를 배우게 하십니다. 갖가지 일이 임하기만 하고 말씀하시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당신은 이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어떤 때 하나님은 일을 통해 사람에게 말씀을 하시기에 겉으로 음성을 듣지 못하고 언어도 없지만 당신의 영은 하나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시는지 압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영이 통하는 사람은 다 알고 다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됩니다. 당신이 만약 영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임해도 배우지 못하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행사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듣기 싫은 말로 하면 바로 짐승입니다. 짐승이면 영이 통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매일마다 성령이 무엇을 하시는지 대부분 느끼지 못합니다. 며칠에 한 번쯤은 우연히 좀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말은 아주 객관적이고 아주 진실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 역사에 대해 경력이 너무 적은 사람은 이렇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느끼지 못하는데, 1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과제가 아주 적습니다. 실제상 당신이 경력할 줄 모르고 느낌에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초자연한 일과 뚜렷한 일은 성령으로부터 온 일이라고 느끼고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면서 뚜렷하지 않은 것은 흐리멍덩하게 지나치는데, 이런 경력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당신이 매일 임한 모든 일에서 만약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모두 배울 과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성령이 특별히 깨우쳐 주시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저는 배울 과제가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디가 틀렸습니까? 당신이 평소에 마음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 역사는 항상 초자연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만약 주동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주동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닥친 모든 일에서 다 진리를 구하고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다시 말해서 매일마다 배워야 할 과제와 배울 수 있는 과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최소한 매일 두세 가지 일에서 모두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제가 말한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당신이 너무나 세심하지 못하고 항상 초자연하고 뚜렷한 성령의 사역과 느낄 수 있는 사역에만 관심을 갖고 일부 간단한 일과 작은 일을 다 홀시했기에 온전케 될 많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이 말을 이제 깨달았겠죠? 사실 사람은 매 한 가지 일마다 모두 배울 과제가 있으며 배우는 과제가 많을수록 당신의 진보가 더욱 빠르고 배운 과제가 적을수록 진보가 늦습니다. 예컨대, 당신이 매일 복음을 전한다면 복음 전도에 대해 경력이 있을 것입니다. 경력한 후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진리가 부족하고 진리가 없어서 사람을 정복하지 못하고 사람을 만족케 하는 데에 이르지 못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경력, 자신의 부족함을 본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한 악령을 만나게 되었는데 척 보니 악령인 줄 알고 ‘이 사람은 전하면 안 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과제를 배우게 되었습니까? 분별을 배웠습니다. 악령에 대해 분별이 생기고 인식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생명의 진보에 유익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당신이 어떤 터무니없는 사람에게 전했는데, ‘이 사람은 터무니없어, 영이 통하지 않아.’라고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의 이 터무니없음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진리로써 그를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그를 탄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도 배워야 할 과제를 배울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사람을 반박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매일마다 모두 이렇게 경력하면 됩니다. 하나는 복음을 전할 때 각가지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과제를 배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이 매일 해야 할 본분도 아주 많기에 매 한 가지 본분을 할 때마다 상응한 진리를 찾을 수 있고 실행 원칙을 찾을 수 있다면 당신은 일부분의 진리에 대해서도 더욱 깨닫고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매일 교회에서 형제자매를 접촉하고 그들과 진리를 교통하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이 경력하지 못한 진리와 깨닫지 못한 진리를 얻을 것이며 이밖에 또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과 교통하고 누린다면 당신은 그 속에서 진리에 대해 더욱 깊게 인식하고 또 한 걸음 진보하게 됩니다. 이런 과제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매일마다 본분을 하면서 이렇게 훈련하기만 하면 많은 진리를 깨달을 것이며 많이 경력하면 효과에 도달할 것입니다. 어떤 효과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매일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성령이 나에게 어떤 사역을 하시고 어떻게 나를 깨우쳐 주셨고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으며 어떻게 나를 인도하셔서 어떤 진리를 실행하게 하셨으며 어떤 원칙을 깨닫게 하셨어.” 이러면 이 일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이렇게 경력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하는 일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는 본분이 적을수록 당신이 얻는 것은 적고 당신이 하는 본분이 많을수록 당신이 얻는 것은 더욱 많습니다. 당신이 얻는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매일마다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완전히 분명히 알 수 있으며 당신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 수 있고 성령이 어떻게 당신을 깨우쳐 주시고 빛비춰 주시는지, 당신에게 얼마나 큰 수확이 있고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당신은 너무나 잘 알게 됩니다. 당신이 매일마다 본분을 많이 하고 일을 많이 경력한다면 생명이 자라나는 데에 대해 유익한 점이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당신이 매일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긴다면 유익한 점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그것을 “그럭저럭 죽기를 기다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본분도 안 하려고 합니다. “오늘 어떻게 하면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얼굴을 치장하고 거울에 비춰보면서 멋을 부리고 옷도 이쁘게 차려입고 밖에 나가 잘난 척을 하고 와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여전히 공허한 것입니다! 누가 좋은 옷을 입은 것을 보면 “나도 하나 사 입어야지.”라고 하면서 밖에 나가 자랑을 하고 왔지만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맛있는 것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사서 먹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공허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매일마다 그의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가 본분하는 것을 경력하지 못했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본분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 수 있습니까? 한 어리석은 여자가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릴 줄만 안다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를 달랠 줄만 안다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 수 있겠습니까? 잘 먹고 잘 입고 향락 생활만 한다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하나님이 매일마다 그녀에게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가 시간에 하나님을 믿는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다년간 믿어도 여전히 아무런 수확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법칙이니 다른 사람을 탓할 것이 없습니다. 당신이 교회에 와서 본분도 하지 않는데,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집에서만 하나님을 믿고 주방에서만 하나님을 믿고 옷장 앞에서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쓸모없습니다! 그것은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믿지 않고 입으로만 믿는 믿음입니다. 여가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매일 그에게 무엇을 하시는지 압니까? 모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을 느낄 수 없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너무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매일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이 있습니까? 본분을 해야 합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자신의 모든 본분을 해야 하나님이 날마다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경력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본분을 할 때, 마음으로 진리를 구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수확이 있습니다. 이 일을 당신이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매우 바쁘게는 보내지만 본분을 할 줄 모릅니다. 공연히 바쁘기만 했지 본분을 할 줄 몰라 헛수고만 하는데,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항상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 형제자매 앞에서 무엇을 나타내서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높게 보이려고 궁리합니다.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너무 허영에 빠졌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당신을 아무리 높게 보아도 하나님이 당신을 높게 보시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까? 외모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허영을 추구해 봤자 쓸모없습니다. 본분을 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일을 좀 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실제적인 일을 좀 한다면 마음속에 위안이 있습니다. 당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매일마다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당신이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라면 매일마다 어떻게 영화를 잘 만들지를 생각해서 되도록 빨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이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람이라면 매일마다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동영상을 만드는 데에 효과가 있고 당신을 증거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본분을 하든지 하나님께 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해 본분을 잘해야 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선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은 제가 오늘 사역한 효과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한 것이고 저의 보잘것없는 성의입니다.” 완성품을 내놓으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오늘 하나님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좀 하고 빈말을 하지 않았다. 아주 좋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도 만족스러워하시고 당신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분을 하고 대충대충 해서 속이지 말아야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시간이 길어져 진리를 얻으면 당신이 받는 위안은 더욱 커집니다! 당신이 진리를 얻지 못하면 마음이 항상 공허하고 평안이 없으며 재난이 오면 당신은 두려워 공포감을 느끼면서 죽기를 두려워합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알면 두려움이 없게 되고 죽든 살든 다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하나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즉 사람이 죽으면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라 영혼이 다른 하나의 세계로, 다른 하나의 경지로 살아서 가는 것이기에 사람에게 영혼이 있음을 시인한 것입니다. 조물주께서 영혼을 지배하시고 영혼의 마지막 거처, 영혼의 오고감을 안배하고 주재하십니다. 지금 대재난이 곧 닥치게 되고 세계의 말일이 오게 되었는데, 당신이 인간 세상에 한 번 온 이상, 당신의 영혼은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떤 거처일지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날마다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야 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해야 하며 하나님이 날마다 당신에게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은 당신의 이후의 거처가 어디인지를 알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성령이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경력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결국은 아주 위험합니다. 당신은 바로 산송장이고 영혼이 없고 그럭저럭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럭저럭 죽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루 종일 밥만 먹고 본분을 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엔가 때가 되면 곧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돼지와 마찬가지입니다. 돼지가 날마다 꿀꿀거리며 먹기만 하다가 연말이 되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돼지의 나날이 바로 그럭저럭 살면서 죽기를 기다리는 나날인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돼지처럼 산다면 결국이 무엇이겠습니까? 재난이 임하면 바로 훼멸됩니다. 지금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본분을 하는 것이 흐리멍덩합니다. 즉 제멋에 좋아서 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만족스러워하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그에게 “무엇을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는지 알아요?”라고 물으면 “모릅니다. 본분을 하면 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흐리멍덩한 것 아닙니까? 흐리멍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노래하든지 춤을 추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제가 추는 이 춤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춤과 어떤 동작을 좋아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노래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까? 어떻게 노래하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노래하면 사람들이 듣고 나서 누림이 있고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 앞으로 올 수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까?” 당신이 이렇게 기도하면 당신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본분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본분을 하는 것이지 단지 먹고 마시며 놀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노래하는 것도 본분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춤을 춰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 뜻을 구하지 쓸데없이 제멋에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제멋에 좋아합니다.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면 노래하든 춤추든 다 만족해. 난 다른 건 바라지 않아. 이것이 바로 본분을 하는 거야. 노래하고 춤도 추고 즐겁기도 하고 마지막에 또 국도에 들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좀 흐리멍덩하기에 하나님께서 매일마다 사람에게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고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흐리멍덩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본분을 함에 원칙이 있는지,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하는지 이것은 아주 관건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본분을 하면 진리를 구할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매일마다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분명히 알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매일마다 기도도 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본분을 함에 항상 흐리멍덩하다면 하나님이 매일마다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이 모른다면 합격되게 본분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피조물의 본분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의심해 볼 만합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하는 것이 마음을 쓰지 않고 맹목적으로 하고 진리를 전혀 구하지 않으며 원칙도 전혀 찾지 않습니다. 이방인이 말하는 “손수레만 끌고 길을 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본분을 몇 년 한다 해도 수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를 너무 적게 해서는 안 되며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안 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매일마다 당신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분명히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여태껏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실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아주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본분을 하면 진정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힘만 쓰는 것이 아닙니까! 효력하는 것이 아닙니까! 효력자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바로 본분을 함에 있어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이 바로 효력자입니다. 당신이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한다면 그것이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지막에 힘을 많이 쓰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왜 효력자라는 결국을 얻게 됩니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 자신을 탓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업자득입니다! 누가 당신보고 진리를 추구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당신 자신이 선택한 길입니다. 당신이 바른 길을 걷지 않았고 잘못된 길을 고집해 걸은 것입니다. 당신에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는데,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원칙을 가지고 본분을 하며 본분을 하는 것이 합격됐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효력만 하고 일을 함에 원칙이 없는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길은 사람이 스스로 걸은 것이니 자신이 흐리멍덩한 것을 탓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 문제, “그가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원칙과 취지가 무엇인지 아는가?”, 이 문제는 아주 깊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진지하게 묻고 계시지만 사람은 모두 “덜렁꾼”이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죠? 당신이 정말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일부 일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취지와 원칙은 무엇인지 즉 어떤 효과를 이루려고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수리 대처하신다면 원칙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효과를 이루려고 하시겠습니까? 그분이 당신을 인도하고 이끄시며 깨우쳐 주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은 그분이 원칙없이 함부로 하신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것은 모두 원칙이 있고 일정한 목적이 있으며 모두 하나의 효과를 이루기 위해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일을 하는 것이 원칙이 없고 흐리멍덩하니 하나님도 그렇다고 여깁니다. 그럼 당신은 바로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깨우쳐 주시는데, 왜 사람이 순복해야 합니까? 순복은 효과에 도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마음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이끄시고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든지 당신은 순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순복한 다음 당신이 또 하나님의 뜻을 찾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중에 일부 진리를 깨닫는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역사가 도달하려고 하는 효과입니다. 당신에게 일부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에 대해 일부 인식이 있게 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입니다. 당신을 인도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그분은 책임지려고 하시고 한 가지 효과에 도달하려고 하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징계하시는 것도 하나의 효과에 도달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화를 내시면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한바탕 얻어 맞고 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이제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원래 너무나 흐리멍덩했습니다.” 보세요, 이렇게 때리니 효과를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옥살이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이 옥살이가 내 믿음의 전환점이 됐어. 이제야 무엇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알겠구나. 전에는 내가 흐리멍덩했었어.’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든지 모두 원칙이 있으며 최종의 취지는 바로 하나의 효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 몸에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마이동풍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가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원칙과 취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당신은 매사에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모른다면 진실로 순복할 수 없으며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오해한다면 오히려 자칫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서 하나님의 취지와 하나님 역사의 원칙을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잘 기도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하나님 앞에서 구해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3~5일 혹은 한 주일을 구해야 깨닫고 어떤 때에는 기도를 하루 이틀 기도하면 깨닫게 되며 어떤 때에는 하룻밤 자고 나면 깨닫게 됩니다. 금방 기도하고 나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대해 너무 천진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몇 번이나 기도를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 기도하지 않을래. 별 의미가 없어.” 이것은 당신이 기도의 의의를 모르는 것입니다. 설령 기도해서 당신이 얻지 못했어도 당신이 하나님 앞에 안정하였으며 최소한 당신이 심령으로 하나님과 한 번 가까이했고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과 또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당신이 만약 한 가지 일에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혹시 열흘이나 보름이면 하나님의 뜻을 한 가지 깨달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수확입니까! 당신은 여기에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압니까? 이 가치가 너무나 크며 작은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떤 일에서 하나님께 여러 번 기도해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된 적이 있습니까? 이런 경력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당신의 아이가 자주 병에 걸리니 당신은 “하나님, 저의 아이를 치유해 주십시오. 하나님, 저의 아이를 당신에게 맡깁니다. 당신이 만약 치유해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돈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라고 기도만 했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정을 내려놓고 아이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보다 높은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모든 것보다 높은 것인지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선택하겠습니까? 당신이 어느 날엔가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할 수 있고 아이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면 그때 아이의 병이 아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보세요, 이 일로 당신을 시련하고 연단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남편(아내), 자녀에 대한 사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역사의 원칙이 아닙니까? 당신의 부모가 병에 걸렸는데, 당신의 본분이 아주 바쁘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하나님, 제가 본분을 잘하도록 저의 부모의 병을 치유해 주십시오. 저는 너무나 바쁩니다. 당신께 맡기고 저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럼 하나님이 이 일에서 또 무엇을 하려고 하시겠습니까? 취지는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이 당신의 부모를 버리고 원칙 있게 이 일을 대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높은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높은지, 하나님은 이 일에서 당신의 태도를 드러내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또 어떤 일에 임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과제를 배워야 하는지 압니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인ㆍ사ㆍ물을 대해야 하는지 이런 원칙을 만약 당신이 모두 확정했다면 명확한 태도가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역사의 원칙과 하나님 역사의 취지입니다. 당신의 남편이 어떤 때 당신을 구속하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저의 남편이 지금 고통스러워하기에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가 그를 보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너의 남편이 무엇보다 높다는 뜻이지? 그렇지? 네가 그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본분도 싫다는 것이다. 너는 개인의 이익과 육체의 감정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서 너를 도와달라고 만족케 해달라고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까? 부합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역사의 원칙과 역사의 취지가 무엇인지 압니까? 당신이 만약 분명하지 않다면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일이 닥치든지 모두 찾아볼 진리가 있으며 하나님 역사의 원칙과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즉 이 일에서 하나님 역사는 하나의 효과를 이루려 하기에 당신은 하나님께 드릴 말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래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당신의 몸에 있어야 할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압니까? 이렇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할 줄 압니까? 지금 길이 있습니까? 당신이 정말 이렇게 경력한다면 생명이 빨리 자라나고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데에 도달할 것입니다. 어떤 자매님은 기도를 아주 잘합니다. 아이가 병에 걸리니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아이를 거두어 가셔도 저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에 영향받지 않고 불평없이 반드시 본분을 잘하겠습니다.” 이 기도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하나님 역사의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대단합니다. 그녀는 영이 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이 통하지 않아 무작정 막연하게 구하기만 하기에 하나님께서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결국 아무리 구해도 길이 없어서 여전히 육체에 따라 하게 되는데, 하고 난 뒤에도 하나님께서 더욱 거들떠보지 않으십니다. “이놈은 여태껏 진리를 구한 적이 없는 불신파이다. 한쪽에 내버려 두어야지.” 종교인들이 다 이렇지 않습니까? 그들의 기도는 완전히 막연한 기도이고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도 이해하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구하기에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한쪽에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다음 일곱 번째 문제를 교통하겠습니다. “그가 어떻게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당신은 이 말씀에 대해 경력이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정말로 경력이 있다면 마땅히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인도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인도하시는 것은 주로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의 인도 하에서 경력하는데, 이것이 큰 원칙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저도 성령의 인도를 경력했습니다.”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 말씀의 인도에 모순이 있습니까? 모순이 없습니다. 그럼 성령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빛비춰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여 우리를 인도하는 효과에 도달하십니다. 어떤 때, 구체적인 일에서 하나님은 또 환경을 배설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생활을 안배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서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이것이 근본 원칙입니다. 구체적인 많은 일에서 성령 역사는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지에 대해 우리는 먼저 하나의 원칙상의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경력에서 각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믿게 하셨는지,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걷게 하셨는지,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셨는지 이런 세부적인 문제들을 모두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일부 사람들이 “저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따랐고 어떻게 걸어왔는지 그다지 분명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만약 당신이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음을 설명합니다. 그럼 제가 또 하나의 사실을 묻겠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확정적입니다.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른 역정은 모두 한걸음씩 진리를 깨달으면서 걸어온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단계의 경력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흑암 속에서 살게 되고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이 한걸음씩 오늘까지 따라오면서 ‘나는 길을 잃은 적이 없고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어.’라고 느낀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을 인도해 왔는지를 말해 보십시오.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정말 경력이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래도 진리가 저를 한걸음씩 오늘까지 인도해 왔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따랐는지를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또 예를 들겠습니다. 종교계의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은 글귀 속에 정체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책 속에, ≪성경≫ 속에 속박해 놓았으며 2천년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의해 내버려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무엇이라고 칭하셨습니까? 종교의 사람이라고 칭하셨는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오늘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칭하시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늘까지 인도되어 하나님 말씀의 역사와 말씀의 인도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게 되었고 한걸음씩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화제에 대해 좀 인식이 있겠죠? 하나님 말씀에서 깨달은 진리가 명확하고 투철할수록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더욱 진실하고 더욱 정확합니다. 일단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서 빛비춤이 없고 깨우침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발걸음도 정지됩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오늘 모든 하나님 선민이 왜 점점 믿음이 커지고 힘이 커지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서 점점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의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 점점 투철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점점 힘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에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이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언젠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서 정지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당신의 발걸음도 정지될 것이고, 언젠가 당신이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에서 날마다 진보가 있고 점점 환해진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당신의 발걸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셔서 오늘까지 걸어오게 하셨습니까? (하나님 말씀의 인도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대해야 할까요? 바로 전력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아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인도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이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걷게 됩니다. 최후에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은 어떻게 도달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의 인도에 따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또 한 편의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말씀을 먹고 마신 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이르는 데에 더욱 신심이 생겼습니다. 지금 길이 완전히 명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려는 신심이 가득하고 심지도 크며 모두 진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이 도달한 효과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열두 편의 최신 말씀이 발표된 후, 모든 하나님 선민은 믿음이 갈수록 커지고 모두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고 있으며 모두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위력입니다. 이전에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버리기 시작했고 이전에 믿음이 작던 사람들이 지금은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도달한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전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하실 때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은 말씀으로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따르게 하시며 말씀으로 우리의 생명이 자라나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도록 성취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해 이렇게 인식하면 됩니다. 그럼 지금 당신은 당신의 생명 경력 중에서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당신을 이끄시고 성령 역사가 당신을 인도하거나 하나님께서 환경을 안배하셔서 당신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고 어떻게 당신을 이끄시는지 사람은 세부적인 많은 일에서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수리와 징계로써 우리를 인도하시고 또 어떤 때에는 심판 형벌로써 우리를 인도하시고 또 어떤 때에는 각종 환경을 안배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이것이 모두 세부적인 일입니다. 당신은 원칙만 깨달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세부적인 경력도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고 어떻게 당신을 이끄셨는지에 관한 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 당신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당신 몸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을 구원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는지를 모른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고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 경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경력을 말할 수 있는데, 경력이 없는 사람은 어떤 정형이겠습니까?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는 모릅니다. 분량이 너무나 작습니다. 당신이 1년 정도 믿은 새신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셨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경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이이기 때문에 아직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믿고만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듯이 이것도 같은 도리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을 인도하시는지 모른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인도하시는지도 모른다면 이것은 가장 가련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습니까?

다음 문제입니다. “그가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는 것인지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음성을 발하시고 모든 진리를 발표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먹고 마시게 하고 누리게 하고 경력하도록 공급하셔서 마지막에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이것은 이론으로 말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경력에서 어떻게 공급하십니까? 한 방면으로는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진리를 교통하고 자신의 경력을 나누고 자신의 인식을 나눔을 통해 우리에게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성령 역사가 우리를 깨우쳐 주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고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또 다른 한 방면은 구체적인 생명 진입의 경력 중에서 어떤 때에 또 만사만물을 효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각종 악령, 적그리스도, 악인 및 큰 붉은 용을 통해 부정적인 면에서 효력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각종 부정적인 사물을 인식하게 하고 사탄의 본성 실질을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써 자신을 아는 데에 도달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 큰 붉은 용을 받침물로 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교회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날마다 진리를 교통하고 또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점차적으로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효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 선민에게 공급합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공급을 얼마나 얻었습니까? 하나님의 공급을 얼마나 받아들였습니까? 어떤 효과에 도달했습니까? 이런 것이 사람이 잘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을 만약 당신이 잘 알지 못하고 단지 이론만 안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협력에 의해 도달합니다. 사람에게 진실한 협력이 없고 하나님 스스로만 사람을 만드신다면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협력하는지 이것이 가장 관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에게 공급하십니까? 한 마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세의 사역을 하는 것은 만사만물을 움직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위해 효력하게 한다.” 이 사실을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이 사실을 본 후,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떻게 공급하시는지 압니까? 이 말씀에 대해 경력이 많습니까? 생명 경력이 없는 사람은 이런 말씀을 본 다음 이해하지 못하고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생명 경력이 있는 사람은 이런 말씀이 자신이 경력해 온 것이기에 너무나 실제적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 머리가 아파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항상 이런 일만 말합니까? 왜 항상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만 교통합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교통을 듣기만 하면 반감이 생기고 속으로 귀찮아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서 굳게 서지 못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날마다 진리를 교통하니 귀찮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런 교회 생활을 하지 않고 안 믿을래요. 따분해서 세상을 잡는 게 더 낫겠어요.” 그 결과 드러나고 도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아주 중요합니다. 당신은 이런 실제적인 말씀을 귀찮아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만약 이런 말씀에 대해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굳게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바로 이런 말씀으로써 당신을 일깨워 주고 깨우쳐 주셔서 진리를 깨달아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음 문제입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까? 주로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성령 역사를 통해 효과에 도달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리 대처의 방식, 심판 형벌의 방식, 그리고 시련 연단의 방식이 있는데, 당신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달아 계속 하나님을 따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으면 우리는 오늘까지 따를 수 없습니다. 이 심판 형벌의 방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때에는 시련 연단이 우리를 인도하여 앞으로 걷게 하고 시련 연단을 통해 우리를 드러내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고 또 일어나서 하나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수리 대처와 심판 형벌, 시련 연단 이런 방식은 모두 성령 역사를 통해 달하는 효과인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다음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가 네 몸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 몸에서 역사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관련됩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얻을지만 생각하고 하나님이 사람 몸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을 이기적이고 비열하다고 합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는지 상관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얻을지만 생각합니다.” 예를 듭시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지만 자녀가 철이 들지 않았을 때, ‘부모님께 뭘 달라고 할까, 부모님은 나에게 뭘 해 줘야 할까,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고 학교도 졸업시키고 직장도 찾아 줘야지. 직장을 찾은 후, 뭐가 또 부족하면 부모에게 손 내밀고 한평생 돌봐 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녀가 효도하는 자녀 맞습니까? 그가 효도하지 않는 것을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지, 부모가 자녀의 몸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약 “난 하나님께로부터 마땅히 무엇을 얻어야 하고, 하나님은 마땅히 어떻게 날 대해야 해”, 이런 것에만 관심을 두고 “하나님께서 나의 몸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고 나의 몸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패역이 아닙니까? 이는 바로 양심이 없고 이지가 없으며 인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몸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는지? 그분이 왜 이렇게 역사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려고 하시는지? “하나님이 네 몸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아는가?” 지금 분명히 알았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것이고 바로 사람에게서 사람의 마음을 얻으시고 전인을 얻으시고 그 사람을 얻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합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몸에서 이것을 얻으시려고 하고 이런 효과를 이루시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람 몸에서 이렇게 큰 대가와 많은 대가를 치르시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서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으면 양심이 없고 인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하나님 역사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교통해 줘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인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인성이 없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 선민은 믿음이 점점 커지고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큰 붉은 용의 잔혹한 탄압과 박해를 경력하고서도 쓰러지기는커녕 도리어 믿음이 전에 없이 커지고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고 한결같이 뭉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하나님 말씀의 전능입니다! 큰 붉은 용이 교회를 탄압하고 하나님 선민을 추적하고 박해하는 것이 최고봉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열두 편의 말씀이 발표되어 하나님 선민의 믿음이 전부 견고하게 되었고 하나님 선민은 생명 진입의 기초에서 더욱 높아져 믿음이 백배로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죽든 살든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한 무리의 사람 몸에서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려는 사람의 진심을 얻으셨습니다. 만약 사람이 계속 하나님의 심판 형벌, 시련 연단을 겪은 후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큰일이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은 하나님 선민의 몸에서 완전히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지금 큰 붉은 용은 어떻습니까? 철저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이 한차례의 시련을 겪은 후 하나님 선민은 간증을 굳게 서고 하나님은 정식으로 큰 붉은 용을 형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정식으로 큰 붉은 용을 형벌한다”는 것은 어떤 개념입니까? 바로 대재난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작은 재난이었지만 지금은 큰 재난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엔가 중국에 기근이 일어나게 되면 큰 붉은 용의 백성이 일어나서 반란을 일으켜 내란이 시작될 것입니다.

“너의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아는가?” 이 문제는 아주 관건입니다.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 이 말씀을 일반인들은 정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 선민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저에 대해 하나의 태도일 뿐입니다. 즉 사랑입니다. 사랑 속에 어떤 때에는 징계가 좀 있고 수리가 좀 있고 심판 형벌이 좀 있지만 모두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휴! 여기에 왜 또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있습니까?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데에 또 태도가 있어요?” 이것은 어떤 문제를 설명합니까?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을 때,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때 그는 성령 역사로 인해 좀 순복이 있고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일시적으로 진리를 실행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성령 역사로 인해 도달한 효과입니다. 어떤 때에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여전히 악을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며 대충대충 하여 속일 수 있고 특별한 환경을 만나면 여전히 배반할 수 있으며 시련 연단이 임하면 여전히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아주 많습니다. 많은 사람의 몸에서 이렇습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는 인솔자와 일꾼이 책임을 지고 부단히 하나님 선민을 위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솔자 일꾼 몸에도 문제가 존재하기에 서로 도와주고 서로 지적해야 하며 상면과 하나님 집에서도 이런 인솔자 일꾼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며 층층이 아래로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간에 이런 교회 생활로써 하나님 선민을 인도하시고 각급 인솔자 일꾼들도 동시에 모두 본분을 해야만 하나님 선민을 인도하여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성령이 각 부류의 사람 몸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하나님 선민도 모두 아주 분명히 보았습니다. 즉 각가지 환경을 통해 서로 감독하고 서로 제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각급 인솔자 일꾼과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서로 제재하지 않는다면 다수의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멀리하기 쉽고 자기의 길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만 자대하여 늘 하나님 선민을 구속하려고 하고 늘 권력을 쥐려고 여기의 사람도 관리하고 저기의 사람도 관리하려고 하면서 항상 자기의 권력이 작다고 꺼립니다. 당신이 정말로 관리할 수 있고 잘 관리할 수 있으면 더욱 좋지만 당신이 잘 관리하지 못하고 사역을 할 수 없으면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무엇이든 다 관리하려고 하고 모든 일을 도맡아하려고 하는데, 당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 당신이 사역하여 그런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왜 순복이 없습니까? 당신은 자기 주제도 모릅니까? 이런 사람이 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부류의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입니까? 혐오하고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해 혐오하고 미워하십니다. 누가 말합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당신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당신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이십니까? 당신의 순복의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이십니까? 당신이 진리를 실행하는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이십니까? 하나님을 기만하는 당신의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이십니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일에 대해 모두 하나님의 태도가 있으십니다. 당신은 두리뭉실하게 “하나님은 저에 대해 바로 사랑입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사랑하시지만 당신이 하나님을 미워하고 원망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미워하고 혐오하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에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더러움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패역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부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패괴를 유로(流露)할 때, 그분은 당신을 좋아하시지 않고 당신을 혐오하시고 당신에게 반감을 가지십니다. 일부 사람들이 어떤 때 성령 역사를 잃는 것은 바로 이 원인입니다. 당신이 아직도 “제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은 모두 저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논법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경력이 없다면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만일 패역이 있음을 보시면 마찬가지로 징계하고 노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에 대해 징계와 징벌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의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당신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이전에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는지, 이전에 어떤 일에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얼굴을 숨기신 것을 보았는지, 이전에 어떤 때에 성령 역사를 잃었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들떠보지 않으셨는지, 어떤 일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한쪽에 내버려 두셔서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함께함을 알지 못하게 하셨는지, 이런 일을 다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이런 일로부터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며 우리의 생명 진입에 대해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입니까? 반감을 가지고 혐오하십니다. 진리를 교통하기만 하면 그는 반감을 가지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은 어떤 태도입니까?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혐오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부류의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혐오하고 미워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한동안 교회 생활을 하다가 “집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외에 하나님 말씀만 교통하고 진리를 제외하고는 다시 들어봐도 진리밖에 없으니 따분해서 전혀 듣고 싶지 않아 참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떤 태도입니까?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혐오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또 한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본분하면 고생한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흔듭니다. “저는 이 본분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생하지 않는 본분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무슨 태도입니까? 대충대충 하고 속이는 표현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표현이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이런 표현에 대해 어떤 태도입니까? 반감을 가지고 혐오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충심이 없기에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몸에서 역사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이런 표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또 한 가지 부류의 사람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중임을 지지 않고 항상 이래라저래라 지휘하여 다른 사람에게 하게 하는데, 이것이 무슨 태도입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람은 쉬운 일만 골라하고 힘든 일은 회피한다. 안일만 탐내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실제 사역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반감입니다. 당신의 많은 표현에 대해 서로 다른 표현에 대해 하나님은 모두 태도가 있으시다는 이 한 가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만약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참으로 인식이 있다면 틀림없이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부류의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서로 다른 태도가 있기에 각 사람의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서로 다른 태도가 있으십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럼 이 서로 다른 태도를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이십니까? 하나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한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이십니까? 하나님 말씀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악인에 대해 어떤 태도이십니까? 하나님 말씀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모두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이 좀 더 세심하고 당신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경력이 있다면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심에도 서로 다른 태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 역사를 이 정도로 경력한다면 당신은 하나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됩니다. 당신의 경력 중에서 하나님의 여러 차례의 징계를 겪었고 어느 징계가 어떤 일로 징계받았는지를 안다면 그런 일에서의 당신의 표현으로부터 하나님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 번은 당신이 나쁜 사람을 인솔자로, 일꾼으로 발탁했거나 추천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든가, 당신이 나쁜 사람, 악인을 위해 말을 하고 궤변하여 하나님이 당신에게 노하셨다든가 당신이 본분을 함에 책임을 지지 않고 하나님 집 사역에 손실을 가져와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얼굴을 가려 당신이 성령 역사를 잃었다든가 하는 여기에서 당신의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그에게 노하시고 그의 몸에서 역사하시지 않았는데, 당신이 본분을 하지 않는 이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당신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일에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무엇인지, 당신이 늘 각급 인솔자 일꾼을 잘 논단하는 일에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당신이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를 들춰낸 일에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긍정적인 일이든 부정적인 일이든 하나님은 모두 태도가 있으십니다.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당신이 분명히 인식하고 이해했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한 것입니다. 이 방면에서 만약 당신 자신의 경력이 유한하여 인식이 조금밖에 없지만 만약 다른 사람에게 또 일부 경력이 있어서 당신이 다른 사람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력에서 하나님의 일부 성품과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보게 된다면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 하나님 성품에 대한 인식이 한 방면 많아진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진리를 교통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아주 도움이 됩니다. 사람 자신의 경력은 모두 유한합니다. 다른 사람과 진리를 교통할 때가 바로 다른 사람의 경력을 알아보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 몸에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얼마간 더 풍부해지고 얻는 것이 얼마간 더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이 이전에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합니까? 어떻게 경력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이 질문을 통해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까? 어느 방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인식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당신의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서 인식해야 합니다.

다음 문제입니다. “네가 그가 기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가?” 이 한 가지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무엇에 근거해 확정합니까? 은혜시대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한 마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로 확정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은혜시대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성령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 역사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만일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없다면 그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최소한 잠시는 아니고 지금은 아닙니다. 그가 진정 진리를 사랑하게 될 때면 성령이 그의 몸에서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진정 그의 몸에서 역사하실 때에야 그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 방면의 진리를 이론상에서 깨달았는데, 진실한 경력이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느 때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성령 역사가 없었는지 압니까? 당신에게 성령 역사가 없을 때 당신은 어떤 일에 임했었습니까? 그때 당신은 어떤 처지에 처해 있었습니까? 당신의 심령은 흑암하고 재난과 어려움이 겹쳐 늘 하나님이 당신에게 노하실 것 같음을 느끼고 일부 징계와 불순한 일이 임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육체를 위해 살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고 진리도 추구하지 않았기에 흑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거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한동안 믿다가 진리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세상에 빠져 돈을 벌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당신이 세상에 빠지면 하나님은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마음속으로 진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사람이 아직도 희망이 좀 있으면 그를 징계하여 실패하고 좌절을 겪게 하셔서 나중에 그가 돌이키도록 감동을 주어 다시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 집에 돌아온 후, 그는 “휴, 그동안 저는 하나님을 배반했고 세상을 추구했기에 마음속이 매우 흑암했습니다. 저는 많은 징계와 고통을 받고 나서야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살아갈 길이 없고 정말로 죽는 길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의 경력이 그로 하여금 무엇을 체험하게 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 본분을 하지 않을 때 받는 것은 다 고통이고 다 징계이며 흑암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기에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배반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징벌이며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은 다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체험한 모든 것은 다 고통이고 다 채찍질입니다. 이 일로부터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럼 지금 당신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마땅히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이전에 저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부터 진리를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이 지금 진리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진리를 위해 고통받을 수 있습니까?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것이 간증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이 간증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이 진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진리를 위해 고통받을 수 있습니까?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까? 본분을 하라고 하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본분을 하여 가족이 당신을 훼방하고 조소하고 세상의 친구들이 당신과 관계를 단절한다면 이 고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또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다 사람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 하고 거듭되는 좌절에도 꺾이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 세상 사람, 친구들이 어떻게 저버리고 논단하고 훼방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를 수 있고 충심으로 본분을 할 수 있어야만 당신이 진정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고 당신이 진정 마음씨가 선량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감이 있고 정의로운 사업을 위해 모든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다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있지만 진리를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 부족합니다. 정말로 고통을 크게 받고 좌절을 크게 받으면 후회하면서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그래도 진정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고통을 받을 수 없고 대가를 치를 수 없기에 신심이 부족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당신의 남은 반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여 하나님을 위해 화비(역주: 들이다, 바치다, 쓰다, 지불하다의 뜻)할 수 있습니까?”라고 요구하면 그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진정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진정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일생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고 혼인과 가정, 육체의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고 진정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일생을 화비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고 광명을 동경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사람은 정말로 심지가 있지만 정말로 이런 심지가 있으면 많은 좌절과 많은 곤란에 부딪치게 됩니다. 국도로 통하는 길은 험난함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큰 붉은 용의 박해와 추적, 세상 사람들의 훼방, 논단 이런 고비도 넘기 쉽지 않습니다. 이 고비도 사람들은 모두 견뎌 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 자녀, 친척들의 훼방, 논단, 가로막음도 이겨 내지 못하는데, 믿음이 너무 작지 않습니까? 이는 그리스도의 정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정병(精兵)”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 수많은 좌절에도 꺾이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무너뜨리지 못하고 그 무엇으로도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사탄 세력이 아무리 창궐해도 그것이 당신을 쓰러뜨리지 못하고 미혹하지 못하며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정병이고 이긴 자입니다. 이긴 자는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데, 사탄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사람이 진리를 얼마나 깨달아야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마음속에 이런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려면 어떤 심지가 있어야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모두 이것에 대해서도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그런 소망이 있고 심지가 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또 당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당신의 충심을 시험하고 각종 시험과 시련으로써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는데, 일생 동안 무엇을 지켰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킨 것입니다. 그의 이 온전함을 지켜서 이름을 날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 사람이 충심이 있으니 그에게 시험을 좀 주자!”라고 하시자 시험이 임했습니다. 이 시련이 임하여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습니다. 어떻습니까? 가정을 잃고 친인을 잃고 재산도 잃어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무엇을 얻었습니까? 여전히 그의 온전함을 지켰기에 나중에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고 하나님을 얻었습니다. 욥의 경력 간증에서 우리는 하나의 계시를 얻었습니다. 즉 우리가 진리를 얻으려면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을 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얻을 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이 아닙니까? 이것이 간증입니다! 욥이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사실 그는 가장 부유했습니다. 어디가 부유했습니까? 바로 그때, 그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 하나님의 도를 지켰고 또 이로 인해 하나님이 그와 함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욥의 그 정도에 이르렀습니까? 당신은 지금 가정, 자녀, 부모, 재산, 명예, 지위, 무엇이든 다 있습니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전부가 있을 때, 부유할 때, 당신에게 하나님이 있었습니까? 당신에게 하나님의 도가 있었습니까? 말하기 쉽지 않죠? 욥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때, 그가 가장 부유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온전함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잃을 수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도만은 지켜야 해! 다른 것은 잃어도 다 되지만 하나님의 도만은 잃을 수 없어!” 이것이 욥의 신념이고 욥의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그럼 지금 당신에게 욥의 신심이 있습니까? 만약 어느 날엔가 시련이 임하여 당신의 부모가 세상을 뜨고 친인도 죽고 재산도 없어지고 집도 다 없어진다면 당신은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겠습니까? 욥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도를 지킬 수 있으면 돼. 다른 것은 다 없어도 돼!’라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이 말에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 사람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지금 잘 알겠죠? 욥과 같은 이런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사랑하셔.”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좀 막연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느 부류의 사람입니까? 욥과 같은 부류의 사람,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설사 모든 것을 박탈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도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입니다.

다음 문제입니다. “그의 희로애락의 유래와 그 배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그의 실질을 아는가?” 이 말씀의 의의가 너무나 깊은데,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관련됩니다. 하나님의 희로애락의 유래를 알려면 먼저 사람의 희로애락의 유래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희로애락은 기본적으로 무엇에 좌우지됩니까? (이익과 감정입니다.) 이익은 명예와 지위, 돈을 포함하며 육체의 흥미도 다 포함합니다. “사람은 기쁜 일을 만나면 정신이 상쾌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것은 사람의 성품을 뜻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사랑하기에 좋은 일을 만나면 기뻐하고 정신이 상쾌해집니다. 그럼 사람의 이 성품이 어떻습니까?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진리가 있겠습니까?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희로애락은 무슨 가치도 없고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동물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봅시다. 하나님의 희로애락은 어떤 기초에서 있게 됩니까? 무엇 때문에 생깁니까? 우리는 이 일에서 또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엇을 상징하는지 봅시다. 이것은 너무나 의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읍시다. 『하나님의 “희(喜)”는 정의의 존재와 탄생이 있기 때문이고, 광명의 존재와 탄생이 있기 때문이며, 흑암과 사악이 훼멸되기 때문이다. 그의 “희”는 그가 인류를 위하여 광명을 가져왔기 때문이고, 그가 인류에게 아름다운 생활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의 “희”는 정의로운 것이며, 모든 긍정적 사물이 존재하는 상징이고 더욱이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노(怒)”는 비정의적 사물의 존재와 방해가 그의 인류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고 사악과 흑암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진리를 몰아내는 일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더욱이 미선(美善) 사물을 저촉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는 모든 부정적 사물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상징이고 더욱이 그의 본래 거룩함의 상징이다. 그의 “애(哀)”는 그가 기대하는 인류가 흑암 속에 떨어졌기 때문이고, 사람 몸에서 한 그의 사역이 그의 뜻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가 사랑하는 인류가 다 광명 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무고한 인류를 위하여 애수(哀愁)에 잠기고,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하면서도 우매한 사람을 위하여 애수에 잠기며, 선량하면서도 주견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애수에 잠긴다. 그의 “애”는 그의 선량함의 상징이고 그의 긍휼의 상징이며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인자함의 상징이다. 그의 “낙(樂)”은 당연히 원수를 패배시킨 것과 사람의 성실한 마음을 얻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며, 더욱이 모든 적세력을 몰아내고 소멸하는 것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고, 역시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생활을 얻는 것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 그의 “낙”은 사람과 같은 기쁨이 아니라 기쁨보다 더 높은 아름다운 열매를 얻는 기분이다. 그의 “낙”은 인류가 이로부터 고난을 받지 않음의 상징이고 인류가 광명한 세계로 들어감의 상징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에 아주 관건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희(喜)”가 생긴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희(喜)’는 정의의 존재와 탄생이 있기 때문이고, 광명의 존재와 탄생이 있기 때문이며, 흑암과 사악이 훼멸되기 때문이다. 그의 ‘희’는 그가 인류를 위하여 광명을 가져왔기 때문이고, 그가 인류에게 아름다운 생활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의 ‘희’는 정의로운 것이며, 모든 긍정적 사물이 존재하는 상징이고 더욱이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희”가 의의 있지 않습니까? 의의가 너무나 크고 너무나 깊습니다! 하나님의 “희”는 어떤 의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으로 인해 “희”가 생깁니까? 첫째, “정의의 존재와 탄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존재와 탄생”이 있으면 하나님의 “희”가 생기고 “광명의 존재와 탄생”이 있으면 하나님의 “희”가 생기며 그 외에, “흑암과 사악이 훼멸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희”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의 ‘희’는 그가 인류를 위하여 광명을 가져왔기 때문이고, 그가 인류에게 아름다운 생활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아주 명확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십시오, 이 사악하고 타락된 인류가 몇 천 년을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인류가 흑암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시고 마음속에 기쁨이 있으시겠습니까? 그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근심하고 고뇌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 가운데에, 인류가 있는 이 세상에 “정의의 존재와 탄생”이 없고 “광명의 존재와 탄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패괴된 인류에게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광명이 없으며 전부 흑암이고 전부 사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인류를 차마 눈뜨고 보실 수 없어 이 몇 천 년 동안 마음속으로 근심하고 고뇌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몇 천 년 이래 하나님께 언제 기쁨이 좀 있으셨습니까? 욥이 그 간증을 했을 때 하나님은 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몸에서 “이 인류는 희망이 있다. 일부분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희망을 보시고 “희”가 자연히 생겼습니다. 또 어떤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의 몸에서 하신 매 한 단계의 사역이 인류에게 광명을 가져다주었고 아름다운 생활을 가져다주었을 때 마음속으로 기쁨이 있음을 느끼셨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하시고 하나님은 마음속에 기쁨이 있으셨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때에 하나님은 마음속에 기쁨이 있으셨으며 욥이 간증을 했을 때 하나님은 마음속에 기쁨이 있으시고 위로가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단계가 지나니 또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어 진리를 발표하셔서 끝내 한 무리 사람을 만드셨기에 하나님은 마음속에 기쁨이 있고 위로가 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인류를 위하여 광명을 가져왔기 때문이고, 그가 인류에게 아름다운 생활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인류 가운데에 정의와 광명이 있기에 그분은 기쁨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엔가 또 있을 한 가지 가장 큰 기쁨이 어떤 기쁨이겠습니까? 바로 “흑암과 사악의 훼멸”입니다. 지금 큰 붉은 용과 세상의 모든 사악한 세력이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대해 탄압하고 먹칠하고 논단하는데 일단 하나님께서 이런 사악한 세력을 훼멸할 때면 하나님의 “희”가 완전히 생겨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실 때이자 하나님의 큰일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그때가 곧 오게 됩니다. 지금 큰 붉은 용, 이 사악한 세력이 곧 훼멸될 것인데, 훼멸될 때 하나님의 마음은 대단히 기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사악한 세력이 다 훼멸될 때, 하나님의 “희”가 더욱 커집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 선민이 사악하고 흑암한 세력의 공격과 포위를 당할 때, 하나님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겠습니까? 사악과 흑암이 훼멸되지 않았기에 그분의 마음속에 기쁨이 없고 단지 한 무리의 하나님 선민이 아름다운 간증을 한 것으로 인해 기쁨이 조금 있고 위로가 조금 있을 뿐이지 크나큰 기쁨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희”는 한 방면만이 아닌데, 하나님 선민의 간증이 한 방면의 기쁨입니다. 흑암과 사악한 세력이 훼멸될 때, 하나님의 큰 기쁨이 생길 것이고 하나님의 근심과 고뇌는 다 없어집니다. 지금 그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오셔서 모든 재난을 가져오셨기에 하나님께서 예정하고 선택하신 일부분 사람을 만드신 후, 모든 재난이 전부 내립니다. 사악하고 흑암한 세력이 전부 훼멸될 때, 하나님의 “희”가 완전히 생기게 되고 완전히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가 바로 크게 기뻐할 때이고 큰일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희”가 정의로운 것인지 아닌지 봅시다. 하나님의 “희”는 “정의로운 것이며, 모든 긍정적 사물이 존재하는 상징이고 더욱이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희”의 실질을 우리는 잘 알아봤습니다. 그럼 사람의 기쁨은? 그 실질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의 기쁨에는 긍정적인 사물의 실질이 있습니까? 사람의 기쁨은 단지 육체에 기쁜 일이 임해야 기뻐합니다. 어느 날 돈을 벌면 기뻐하고 어느 날 배우자를 만나면 기뻐하며 어느 날, 재산이 손해 보면 기뻐하지 않고 근심하고 고뇌하며 어느 날 병에 걸리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기쁨은 바로 이익을 조금 보고 육체가 만족스러울 때의 일종의 즐거운 태도인데, 그 기쁨에는 아무런 의의도 없고 사악함을 뜻하며 긍정적인 사물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럼 진리를 추구하는 하나님 선민은 하나님의 “희”를 대함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우리의 “희”도 하나님의 “희”로 변해야 하는데, 즉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면 우리도 무엇을 좋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희”가 어떻게 생기면 우리도 그 방면에서 “희”가 생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사물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선민 중에서 긍정적인 사물이 탄생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마음속에도 기쁨과 평안이 있고 또한 하나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불만스러워합니다. “당신이 기뻐하시는데 저는 왜 기분이 별로죠? 하나님께서 혼자 기뻐하려면 하세요. 하나님이 기뻐하니 제가 기분이 나쁘네요.” 보세요, 이런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시는 것을 보면 “저희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통받게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우리도 기쁘고 하나님께서 근심하시고 고뇌하시면 우리의 마음도 무겁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집 사역이 진전이 있고 좋은 영화가 나오니 기뻐합니다. 그가 무엇을 기뻐할까요? “아! 이번에 하나님 집에서 끝내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들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틀림없이 위로를 얻었을 거예요. 우리도 기뻐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는 이런 마음 상태입니다. 하나님 집에 배반하는 일이나 방해하는 일이 생기고 악령이 나타나 하나님 선민이 손해 보는 일이 생기면 그는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이 일 때문에 근심하고 고뇌하시니 저희들도 근심되고 고민됩니다. 우리는 사탄을 증오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 상태가 올바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합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그도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고통받으실 때 그도 고통스럽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합심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일부 사람들은 이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 부정적인 사물이 나타날수록 그는 기뻐하고 하나님 집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도 기뻐하며 하나님 집에 방해하는 자가 나타나도 기뻐합니다. 하나님 집에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악령을 무너뜨려 하나님 선민이 해방을 얻으면 그는 싫어하고 고뇌합니다. 이는 부정적인 인물입니다. 보세요, 어떤 형제자매는 하나님 집의 어느 형제자매가 큰 붉은 용에게 잡히면 “휴,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실 거야.”라고 하면서 그의 마음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는 교회 사역이 손해를 봤다고 생각되면 큰 붉은 용을 혐오하고 저주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 잡혀가서 박해를 받는 것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의 기쁨, 슬픔, 즐거움에 진리의 요소가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희로애락이 진리를 얻음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희로애락의 실질에 변화가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 집에 좋은 일이 많이 나타나면 기뻐하지 않고 육체가 조금 이익을 얻으면 기뻐하는데, 그의 희로애락은 잘못된 것이어서 사탄에 속하지 하나님께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일 참으로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마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것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근심하시는 것을 근심하여 하나님의 희로애락도 우리의 희로애락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의 희로애락이 철저히 버려지고 변화되고 정결케 되어 없어지면 우리가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 성품의 변화입니다. 사람의 희로애락의 성질이 다 변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근심하시는 것을 근심하고 하나님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슬픔을 슬퍼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참으로 안다면 당신의 희로애락에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당신의 생명 성품도 상응한 변화를 얻게 될 것이며 진실한 변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희로애락이 여전히 육체에 속하고 진리의 요소가 조금도 없고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관계가 조금도 없다면 당신의 생명 성품이 변화가 조금도 없음을 설명합니다.

계속 하나님의 “노”를 봅시다. “하나님의 ‘노(怒)’는 비정의적 사물의 존재와 방해가 그의 인류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고 사악과 흑암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진리를 몰아내는 일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더욱이 미선(美善) 사물을 저촉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는 모든 부정적 사물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상징이고 더욱이 그의 본래 거룩함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노”는 어떻게 생깁니까? 하나님 말씀에서 보다시피, “비정의적 사물의 존재와 방해가 그의 인류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고 사악과 흑암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진리를 몰아내는 일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더욱이 미선(美善) 사물을 저촉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교회에 많지 않습니까? 교회에도 존재하지만 세상에는 더 많습니다. 중국에서 큰 붉은 용을 중심으로 하는 사악한 세력이 중국 대륙에 “무신론 구역”을 건립하려고 진리를 내쫓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고 진리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으며 광명과 정의적인 사물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고 모든 정의와 광명을 다 제거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큰 붉은 용의 사악한 실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중국에 대해 끊임없이 노하시고 끊임없이 재난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이 노하시면 각종 천재가 전부 내립니다. 한 가지 재난으로 안 되면 2가지 재난을 내리시고 2가지 재난이 안 되면 3가지 재난을 내리십니다. 사악한 세력이 훼멸될 때까지 재난을 끊임없이 내리시는데, 흑암하고 사악한 사물이 다 훼멸되면 하나님께서 노를 곧 멈추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노”는 정의로운 것이 아닙니까? 공의로운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하나님 노의 근원이고 노가 생긴 유래입니다.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너무나 심하게 대적하기에 하나님이 그것에게 노를 발하시는데, 그러면 재난이 바로 내립니다. 재난이 내리면 결과는 어떻습니까? 바로 이 흑암하고 사악한 사물과 인류가 훼멸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은 노를 멈추십니다. 그러므로 한 국가가 하나님의 축복을 얻으려면 가장 주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절대로 하나님을 대적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을 노하시게 한 것인데, 당신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노”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곧 재난으로 이 인류를 훼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는 사람이 범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며 사람이 제지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세상의 재난으로부터 보면 세계 말일이 곧 오게 되고 대 재난이 갈수록 가까워집니다. “세계 말일”은 무엇을 가리켜 말할까요? 바로 이 사악한 인류가 훼멸되는 그날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 “세계 말일”은 어떤 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모든 재난을 내려서부터 세상의 모든 사악한 인류를 모두 훼멸하시기까지입니다. 그때가 바로 세계 말일입니다. 지금 그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 세계가 왜 하나님께 훼멸되겠습니까? 바로 온 세상의 인류가 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대적하고 모두 말세에 오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진리에 대항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20여 년간 발표되었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다 전파되었지만 몇 개국의 대통령이 그의 국민을 인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했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국가의 국회의원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찾아와서 “저는 정부 관원을 그만두겠습니다. 정부는 너무나 사악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환영하지 않아도 저는 하나님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도지사, 시장, 구청장 중에서 그들의 국민을 인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오게 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각국의 대통령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오신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이 훼멸될 때까지 재난을 끊임없이 내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입니다.

청조 말기를 돌이켜보면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北京)에 무엇 때문에 들어왔습니까? 바로 그때의 청조 정부가 각국의 전도사들이 중국에 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전도사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나중에 무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취하셨는데,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치는 것으로 전도사들을 중국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군대가 전도사들을 데리고 중국에 쳐들어올 때, 중국 정부는 대항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만약 군대가 중국에 쳐들어오지 않았다면 복음은 중국에 확장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은혜시대의 복음이 중국에 전파된 후, 성령이 중국에서 크게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1920년부터 1950년까지 이 30년간 하나님의 역사는 중국 하나님 선민 가운데서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습니다. 이 일에서 볼 수 있듯이 만일 어느 국가의 정부가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은 먼저 그 정부를 훼멸하시는데 그 정권이 훼멸된 후에야 복음이 확장될 수 있습니다. 훼멸하는 그 기간이 즉 하나님이 노를 발하실 때입니다. “너의 정부를 훼멸해서 무정부 상태가 되게 한 다음 나의 복음을 확장할 것이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일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지금 큰 붉은 용이 또 미친 듯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또 재난을 내리셨는데, 이번 재난은 훼멸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왜 중국이 첫 번째로 훼멸된다고 하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흉악하게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 그것도 첫 번째로 훼멸되게 됩니다. 그럼 세계 각국도 나중에 왜 훼멸되겠습니까? 왜 두 번째, 세 번째 순서로 훼멸되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들도 이후에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보십시오, 각 종파에서 모두 일어나 대적하고 각국의 정부도 일어나 대적할 것인데, 어느 국가, 어느 정부에서 일어나서 대적하기만 하면 그 국가는 화를 당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화를 당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훼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역사의 절차이고 역시 세상이 훼멸되는 법칙입니다. 어느 국가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국가가 훼멸될 것이고 어느 국가의 정부가 감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어느 국가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가장 흉악하면 그 국가가 먼저 훼멸됩니다. 이후에 어느 국가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없다면 그 국가가 먼저 재해를 입고 먼저 훼멸될 것입니다. 이 일을 이렇게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지방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있으면 그 지방의 국민이 따라서 득을 보고 따라서 복을 얻게 되고 그 국가는 상대적으로 평안할 것이며, 어느 국가 정부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 국가는 화를 입고 그 정부도 무너지게 됩니다. 바로 이 법칙입니다. 만약 누가 불복한다면 이 말을 기억하고 이렇게 관찰하다 보면 천천히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가 생긴 유래는 무엇입니까? 바로 어느 인류나 어느 정부이든 일어나서 하나님을 대적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노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노”의 산생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분을 대적하는 인류에게 노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고 거룩하기에 더럽고 사악한 것이 그분을 대적하고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희”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노”에 대해서도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애”를 봅시다. “그의 ‘애(哀)’는 그가 기대하는 인류가 흑암 속에 떨어졌기 때문이고, 사람 몸에서 한 그의 사역이 그의 뜻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가 사랑하는 인류가 다 광명 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무고한 인류를 위하여 애수(哀愁)에 잠기고,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하면서도 우매한 사람을 위하여 애수에 잠기며, 선량하면서도 주견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애수에 잠긴다. 그의 ‘애’는 그의 선량함의 상징이고 그의 긍휼의 상징이며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인자함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애”는 바로 이렇게 나타나며 바로 이렇게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 때문에 슬퍼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일로 슬퍼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제가 예를 들겠습니다. 한 교회가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되었는데, 적그리스도가 조금도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고 진리를 교통하지 않고 단지 그의 지위를 위해, 그의 명예를 위해 사람을 농락하고 사람을 구속하고 글귀 도리만 말하기에 교회의 하나님 선민이 흑암 속에 빠지고 성령 역사를 잃었다면 하나님은 이런 일에서 어떤 성품을 나타내시겠습니까? 슬퍼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슬퍼하십니까? 이 교회의 하나님 선민이 흑암 속에 떨어졌기 때문에 슬퍼하시고, 이 교회의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통제를 받아 성령 역사를 잃은 것으로 인해 슬퍼하십니다. 또 한 가지 예가 있습니다. 큰 붉은 용의 체포로 인해 몇몇 교회의 하나님 선민이 교회 생활을 잃게 되어 얼마 지나니 흑암 속에 빠져 성령 역사가 없어지고 게다가 진리를 깨달은 사람마저도 이들을 인도하지 못하니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 슬픔을 알고 이 일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 선민을 함께 조직하여 진리를 교통하고 성령 역사를 교통하고 하나님의 뜻을 교통하여 나중에 하나님 선민이 믿음이 생기고 진리를 깨닫게 되고 다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알게 되고 성령 역사를 회복하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겠습니까? (열납됩니다.) 왜 하나님께 열납됩니까? 그가 하나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을 기쁨이 되게 했기 때문이고 그가 하나님 선민을 흑암 속에서 광명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한 것은 바로 정의로운 사업이고 아름답고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희”는 무엇으로 인해 생깁니까? “정의의 존재와 탄생” “광명의 존재와 탄생”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이 한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광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긍정적인 사물의 산생으로 인해 하나님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의 사역은 하나님께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의 사역은 하나님께 슬픔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애”는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애”가 나타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곳의 사람, 흑암 속에 빠진 사람에게 아직도 긍휼이 있고 구원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분의 마음이 선량하기에 그분은 이 사람들이 흑암 속에 빠져 있는 것을 차마 보실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의 상징이 아닙니까? 미(美)의 상징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인자함의 상징이 아닙니까? 그럼 하나님의 “애”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엇을 인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성품의 미선(美善)과 인자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것을 인식한 후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면을 돌이키기에 노력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도록 흑암 속에서 이끌어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해야 합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애”가 곧 “희”로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몸에서 슬퍼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빨리 가서 하나님이 급해 하시는 것을 급해 하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하여 이런 사람들을 빨리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와 이런 사람으로 인한 하나님의 슬픔을 기쁨으로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바로 하나님께 열납되는 사람이고 당신이 바로 가장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사람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대륙에 하나님께서 슬픔을 느끼시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적지 않은 지방의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여기에 인도할 사람이 없고 좋은 인솔자가 없습니다! 여기에 거짓 인솔자가 있는데, 너무나 악하고 늘 우리를 구속하며 진리의 실제가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 빨리 사람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일부 인솔자 일꾼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일부 인솔자 일꾼은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선민의 하나님 말씀 책을 다 거두어 가는 바람에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 말씀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선민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흑암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들을 보살펴 주고 목양해 줄 사람이 없고 진리를 교통해 줄 사람이 없으며 그들에게 공급하고 부축하고 양육할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으로 인해 조급해 하시고 안타까워하시며 마음속으로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교회의 사역을 빨리 하고 교회의 이런 곤란과 이런 어려운 점을 빨리 해결해서 이런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는 슬퍼하시지 않게 해야 하고 더는 고통을 받지 않으시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일에 사람이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협력해야 합니다.) 일부 인솔자 일꾼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목숨만 생각하고 하나님 선민의 생사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너무나 양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그렇게 많은 하나님 선민으로 인해 그렇게 고뇌하고 걱정하고 슬퍼하시는데,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로 눈이 멀었습니다! 이것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낙”을 봅시다. “그의 ‘낙(樂)’은 당연히 원수를 패배시킨 것과 사람의 성실한 마음을 얻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며, 더욱이 모든 적세력을 몰아내고 소멸하는 것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고, 역시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생활을 얻는 것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 그의 ‘낙’은 사람과 같은 기쁨이 아니라 기쁨보다 더 높은 아름다운 열매를 얻는 기분이다. 그의 ‘낙’은 인류가 이로부터 고난을 받지 않음의 상징이고 인류가 광명한 세계로 들어감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낙”은 정의로운 것이고 사람의 낙은 하나님의 “낙”과 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낙은 무엇으로 인해서입니까? 만족스러우면 즐거워하고 육체가 이익을 얻으면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낙”은 전 인류가 행복한 생활이 있음으로 인해서이고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생활을 얻는 것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며 그의 낙은 또한 “원수를 패배시킨 것과 사람의 성실한 마음을 얻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패배시킨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패배시킨 것입니다. 사람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고 큰 붉은 용의 통제를 받고 있지만 나중에 하나님은 사탄과 싸워 사람을 얻고 사람의 진심을 얻음으로써 하나님의 “낙”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중국의 하나님 선민은 모두 큰 붉은 용을 증오하고 큰 붉은 용을 배반하며 진심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있고 진실된 마음이 있습니다. 진실된 마음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본분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본분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진실된 마음입니다. 사람의 진실된 마음을 얻으신 후 하나님은 “낙”이 생기고 하나님의 마음은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사람들 몸에서 한 역사가 끝내 효과에 도달했다. 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위할 수 있고 그렇게 많은 고통과 굴욕을 받으면서도 나를 따르고 있고 여전히 나를 위해 화비하고 본분을 하고 있다. 나는 사람의 진실된 마음을 얻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지금 하나님으로 하여금 진실된 마음을 얻게 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이런 사람이 많습니까?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차지합니다. 대륙에 4백만 명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진정 하나님으로 하여금 진실된 마음을 얻으시게 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4분의 1을 차지하는데, 백만 명 정도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 두려워 감히 버리지 못하고 가정도 떠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남편, 아내, 자녀의 구속을 받아 본분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몰래 믿고 있습니다. 비록 마음속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구주이심을 100% 시인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고 감히 전인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진실된 마음을 얻게 한 것입니까?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해 단지 시인만 하고 진실된 믿음만 있을 뿐 진실된 따름이 없고 하나님도 그의 진실된 마음을 얻지 못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의 몸에 하나님의 진정한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저는 당신을 믿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진심이며 영원히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하나님께서는 “너의 진실된 마음이 바로 이 한 마디 말인가? 너는 간증이 있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무엇으로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진실된 마음을 실증하겠습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버렸습니까? 당신이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뛰어넘는데, 당신의 진실된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충성할 수 없는데, 당신의 진실된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진실된 마음을 얻지 못하셨는데, 당신을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지금 하나님의 “낙”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된 마음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낙이 있습니다. “더욱이 모든 적세력을 몰아내고 소멸하는 것으로 인하여 있는 것”입니다. “모든 적세력을 몰아내고 소멸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사탄의 정권 그리고 적그리스도와 각종 악령, 교회의 모든 악인이 다 소멸되고 쫓겨남으로써 하나님의 “낙”이 완전히 생긴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단지 한 방면의 낙으로만 부족합니다. 단지 일부분의 하나님 선민의 진실된 마음만 얻었을 뿐 사탄 세력은 아직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고 이 방면의 낙이 아직 없습니다! 지금 재난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붉은 용의 모든 적세력이 다 훼멸될 때 하나님은 근심하고 고뇌하지 않으실 것이며 하나님의 “낙”도 완전히 생기게 됩니다.

지금 보면 이 세상은 너무나 사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오랫동안 증거했지만 어느 국가의 대통령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정권을 보시고 어떤 심정이시겠습니까? 혐오하고 증오하십니다. 그 사람들은 다 마귀 사탄이기에 한 사람도 와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니느웨의 사람과 비해 어떻습니까?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어떻게 정합니까? 남방 여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요원한 남방에서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이스라엘에 와서 찾느니라” 바로 참 도를 찾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이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요나가 ‘하나님이 니느웨를 훼멸하려고 하신다’고 전하는 소식을 듣고 국왕과 국민이 즉시 함께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하나님께 회개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요나가 말한 그 몇 마디 말을 듣고 회개했는데, 당신들은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듣고도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있네요!”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예언을 이제는 깨달았겠죠? 지금 세상의 모든 큰 도시가 그때의 그 소돔보다 더욱 사악하지 않습니까? 소돔, 그 성에 만약 의인 5명만 있었어도 하나님은 훼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금 세계 각 도시의 어느 도시에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도시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 지금 세상의 모든 도시가 소돔이 아닙니까? 대부분 도시가 다 소돔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 훼멸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소돔을 멸한 그 증거는 하나의 계시이고 하나의 신호이지 그 일을 다 말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희로애락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됐죠? 하나님이 만약 이 모든 사악한 세력을 다 훼멸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낙”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하나님의 희로애락의 유래”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됐고 “그 배후의 마음과 생각과 그의 실질”에 대해서도 약간의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경력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몸에서, 우리가 한 일에서 희로애락을 느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실지, 어떤 일을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어떤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노하실지, 어떤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실지 분명히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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