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건성으로 임하는 태도를 고쳐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일본 징셴

저는 평소에 예배하거나 영 생활을 할 때, 건성으로 임하는 사람의 태도를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을 자주 읽었지만, 저 자신의 진입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제 문제에 대해 진리를 찾아 해결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제 태도 때문에 사역에 큰 문제가 생기고, 교회의 복음 사역에 손해를 끼친 후에야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제 모습과 근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지요. 또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증오와 혐오를 받게 되어 언젠가 드러나고 내쳐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건성으로 행동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고, 올바른 본분 이행을 목표로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다른 교회의 형제자매들로부터 복음 전파에 관한 좋은 실행법을 들은 저는 작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저는 그 방법이 우리의 실행법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복음 팀의 책임자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그 방법을 실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쉬운 대답이었으나 저는 그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비슷한 이야기를 듣자 그 복음 전파 방법이 정말 좋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고, 그들의 장점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책임자들과 의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 팀장 몇 명에게 제 생각과 의견을 말했지요. 하지만 그들 중 몇 명은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고, 나머지 몇 명은 그 복음 전파 방식을 실행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들이 낡은 사고방식과 관점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제 교제는 아무 성과가 없었지요. 하지만 문득 팀장들의 복음 전파 경험이 저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사역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복음 전파 경험이 그다지 많은 건 아니었으니 실질적인 방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단순히 말 몇 마디로는 그들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없을 게 분명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저들한테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게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이 방법을 실행할 수 있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고, 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제대로 교제하려면 경험이 있는 형제자매들을 더 많이 찾아가 의견을 구해야겠지.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이야기해야 할지 감도 안 오네. 하아! 내 주변에 그런 형제자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형제자매를 찾아봐야 하나? 하지만 아는 사람도 없잖아. 나한테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야. 신경도 써야 하고 시간이며 노력도 많이 들여야겠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너무 번거로워. 나한테는 해야 할 다른 사역도 있는데 이 문제에 전적으로 매달릴 여력이 어디 있어? 어쨌든 할 말은 다 했잖아. 사람들이 얼마나 받아들이든 그건 그들 문제지. 관두자. 여기에 매달리지 말자고.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이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못했기에 복음 사역은 계속 지지부진했습니다.

이후 며칠간 저는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찜찜했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구했지요.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일을 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자주 자신의 행위와 마음가짐을 성찰하느냐? 자주 성찰하지 않는다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그것은 너희의 분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만약 한 번도 스스로를 성찰한 적이 없다면, 그런 자는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 이따금 성찰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다. 많이 성찰하여라. 모든 일에서 성찰하고 자신의 상태를 성찰하여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이 올바른지, 일하는 동기와 근원이 하나님께 검증받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가끔은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럭저럭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는 사람이 일을 대하는 태도이자 본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마음가짐은 특정한 내적 상태를 반영한다. 그런 상태는 본분 이행에 책임감이 없고 건성으로 임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너희는 아직도 성찰할 줄 모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인성 안에 있는 정상적인 태도이므로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그런 모습, 그런 상태로 살아간다면 그 이면에는 너를 지배하는 성품이 있는 것이다. 너희는 마땅히 이에 대해 성찰하고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의 내면에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마음을 다하지 않고 건성으로 임하며, 쉬운 방향으로만 행동한다면 그것은 어떤 태도겠느냐? 무성의하게 행동하며 본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는 태도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애쓰며, 불성실하게 임하고 대충대충 넘어간다면, 본분 이행을 놀이처럼 가볍게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 그런 사람은 결국 “당신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형식만 갖추고 넘어가는군요.”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럼 하나님에게는 어떤 말을 듣겠느냐? 믿을 수 없는 자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사역을 맡겼는데, 너는 그것이 중요한 책임이든 일반적인 책임이든 상관 않고 마음과 책임을 다하지 않으며, 그 일을 하나님이 네게 준 일이나 사명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또한 그것을 너의 본분이나 의무로 여겨 행하지도 않았으니, 잘못된 일이다. 하나님은 너의 본분 이행을 ‘믿을 수 없는 자’라는 말로 정의 내렸다. 즉, 너라는 사람의 인품이 부족하다고 말씀한 것이다. 네게 일을 맡겼는데 너는 그런 태도로 임했으며, 그런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러니 나중에 네게 또 본분을 맡길 수 있겠느냐? 큰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어쩌면 네게 본분을 더 맡겨 보고 네 태도를 살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항상 불안감과 불만을 품고 너를 바라볼 것이니,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언제나 진리를 되새겨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 앞에서 저는 자책을 느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건성으로 임하고 교활하게 잔꾀를 부렸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처음 복음 전파와 관련된 좋은 방법을 들었을 때, 저는 인정하고 찬성하며 마땅히 그 방법을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에게 교제했다가 제대로 먹히지 않자, 진리를 교제해 그들의 낡은 사고방식과 관점을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큰 대가를 치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대대적인 작업’이며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러자 귀찮아졌고 육적인 고통을 겪는 것도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대충 형식만 갖추고 넘어가면서 ‘어쨌든 나는 시도해 봤어.’, ‘할 만큼 했다고.’, ‘이 정도면 됐지.’, ‘모든 일을 참답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관대하게 굴며 모른 척 이 문제를 넘어가려 했지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여부는 생각하지 않고 적당하게 넘어갈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일을 처리하는 일관된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만 책임자들과 교제했을 뿐, 그들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고요. 사실 그것은 한순간의 표면적인 행동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데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누군가 그 문제를 꺼내도 제대로 응대할 수 있고, 복음 성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그들이 좋은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저는 하나님께도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가 봅니다.”라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마주한 모든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뜻을 찾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함으로써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건성으로 임하며 하나님을 기만했지요. 저는 너무나도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을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않았으며, 책임을 다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육적인 고생을 피하기 위해 복음 사역이 난관에 부딪힌 것을 보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고요. 그러니 하나님 집의 사역을 우습게 여긴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양심과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너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는 너희를 만들기 전부터 이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불의를 알고 있었으며, 사람 마음속에 존재하는 교활함과 간사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의를 행하면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의가 내가 창조한 만물의 풍성함에 앞선다는 것을 알고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네가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중에서)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임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제 내면의 꿍꿍이를 아무도 몰랐지만, 하나님만은 분명히 알고 계셨지요.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잔꾀를 부렸으며, 복음 사역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 같았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속이고 기만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지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저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책임감과 성의를 가지면 많은 공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공을 들이면 네 본분 이행의 성과는 더 커지고 좋아질 것이며, 다른 이들은 물론 하나님까지도 만족게 할 수 있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에서) 또 다음과 같은 설교 내용도 보았습니다. “건성으로 임하는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간단히 말해, 대충 형식만 갖춰 사람들에게 ‘난 노력했어.’라고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해서 성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부담을 지지 않는 사람이나 그렇게 일하고 본분을 이행합니다. 그런 사람은 진실로 부담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그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안 하면 안 될 것입니다. 아예 안 한다면 사람들이 그 리더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대충 형식만 갖춰 남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은 본분 이행이 아니며, 힘만 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힘쓰는 것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의 차이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게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제대로 사역을 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 일을 할 때 어떤 다짐을 하겠습니까? 반드시 그 일을 이루겠다, 제대로 하겠다, 문제를 해결하겠다, 제대로 끝내고 해결하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것입니다. 이런 부담을 갖고 사역을 하기에 쉽게 성과를 냅니다. 이것이 바로 본분 이행입니다. 사역을 하거나 본분을 이행할 때는 성과를 내야 본분을 이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대충 넘어갔다면 그것은 힘만 쓴 것입니다. 성과가 없는 본분 이행은 힘쓰는 것에 속합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생명 진입에 관한 설교≫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통해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반드시 진심을 다하고 책임감 있는 진지한 태도로 모든 일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지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실질적인 문제를 피하고 해결하지 않으며, 대충 형식만 갖추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고 속이는 행위이므로 절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성실하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직시하고, 마음을 다잡아 본분을 이행하며 모든 어려움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라셨지요. 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심혈을 기울여 생각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저는 더 이상 복음 팀의 문제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교제로 모두의 낡은 관점을 돌려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더 이상은 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 날을 잡아 책임자인 장 형제님, 조 형제님과 함께 우리의 복음 전파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자세히 분석하고, 어떻게 합리적으로 다른 좋은 방법을 도입해 장점을 취할 수 있을지 의논했습니다. 그러자 장 형제님과 조 형제님은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고 실행 방법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의 복음 전파는 전보다 원활하게 이뤄졌고, 성과도 커졌습니다.

이 일을 겪은 후 저는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제 상태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었고, 의식적으로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며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는 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건성으로 임하는 것의 본질과 근원, 그리고 결과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다시 환경을 배치하시어 제가 계속 공과를 배우고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복음 팀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사역을 책임지는 장 형제님이 좀 교만한 것 같았습니다. 말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힘이 들어가 있었고, 형제자매들의 건의를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지요. 동역자인 조 형제님 역시 장 형제님에게 속박받아 둘이 함께 복음 사역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에 대해 상의하거나 찾고 구하며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 밖에 조 형제님은 옛것에 대한 집착이 커서 복음을 전할 때 규례를 지키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복음 사역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여러 번 교제했지만,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들에게 사이좋게 협력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현 상태를 유지만 해도 괜찮다고 여겼지요. 다른 이의 건의를 별로 받아들이지 않는 장 형제님의 문제에 있어서는 양보하기도 하고 살펴보기도 했지만, 진리를 찾아 해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몇 달 전, 조 형제님이 너무 심하게 규례를 지키다가 사역을 방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조 형제님과 교제했고 그는 받아들였지만, 얼마 못 가 그가 다른 부분에서도 융통성 없이 규례를 지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때때로 그 부분을 지적했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했습니다. 이에 저는 ‘조 형제님의 생각을 돌리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야. 원칙을 찾아서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 연관 지어 이야기해야겠지. 어쩌면 복음 전파 경험이 있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해야 성과가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인 것 같아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가게 됐지요. 저는 장 형제님과 조 형제님의 문제가 복음 사역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복음 팀에 그 사역을 맡을 만한 더 좋은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본분 이행이 아예 성과를 못 내는 것도 아니었고요.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나 상부 리더가 찾아와 이야기하는 일만 없으면 괜찮다고 여겼지요.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테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더 많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의 본분 이행이 과연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도 가늠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얼마 안 가 진행된 교회의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저는 경악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가 장 형제님에 대해 늘 다른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자기가 말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항상 높은 곳에 서서 사람을 가르치고 책망한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에 몇몇 형제자매는 그와 소통하는 것이 두려워 그의 안배를 잠자코 따르면서 속박 속에서 소극적인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장 형제님이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지요. 또 조 형제님에 대한 의견은 지나치게 규례를 지키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며, 형제자매들을 원칙에 진입하도록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전파 과정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쓸데없는 일들도 많이 시키고요. 이는 그가 영이 통하지 않고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복음 사역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방해했으며, 형제자매들에게도 큰 속박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둘 다 교체되어야 마땅했습니다.

제가 건성으로 임하며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기에 복음 사역에 손해를 끼치고 형제자매들에게도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저는 심한 가책을 느꼈습니다. 제게는 미룰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교회 사역에 이렇게 큰 손해를 끼친 것은 전부 저의 직무 유기와 불성실한 행동, 지위의 복을 탐하고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태도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께 너무도 죄스러우며, 형제자매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자 합니다.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더 깊이 깨닫고 진실로 회개하겠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설교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고 속이며 교묘한 수단으로 기만한다면, 그것은 그자가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 사탄에게 속하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상부의 교제 중에서), “모든 사람의 본분 이행에는 똑같은 문제가 존재합니다. 바로 건성으로 본분에 임하는 것입니다. 마치 누구도 사람의 ‘열정’을 얻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아주 열심히 일한다면, 그 ‘누군가’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거나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 또는 큰 은혜를 베푼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본성 안에는 ‘이익’이 제일 앞자리에 있으며, 이익만이 사람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익이 없으면 건성으로 행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자 패괴된 인류의 특징입니다. 사람은 모두 이익만을 꾀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늘 대충대충 임하며 건성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정말 본분 이행을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본분 이행을 건성으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상부의 교제 중에서) 설교 내용에 비추어 제 일거수일투족을 돌아보니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 본성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간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저는 언제나 제 이익만을 지키며 ‘이득 될 게 없으면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존 법칙을 받들어 왔습니다. 이익이 되는 일은 하고, 이익이 안 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며, 본분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 이행했습니다. 늘 대가는 적게 치르고 복은 많이 받으려 했고요. 그래서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니 장 형제님과 조 형제님의 문제를 대할 때도 저는 그들의 태도가 복음 사역을 방해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고, 또 다른 적임자가 없다는 생각에 그들과 몇 차례 교제하는 게 다였습니다. 제 교제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이상 대가를 치르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요.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그저 사람들 앞에서 그럭저럭 넘어가고, 상부 리더가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시는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지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 문제의 근원과 본질을 찾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시간을 한참이나 지체한 후에야 그들을 교체한 탓에 복음 사역에 큰 지장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높여 주셔서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맡기셨고, 제가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기를 바라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커녕 사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속이고 기만하며 하나님 집의 사역을 망쳤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인성이란 게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는, 너무나도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행동들이 어찌 하나님의 혐오를 사지 않았겠습니까?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속으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하나님은 감찰하고 있으며, 전부 볼 수 있다. 관건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이다. 사람의 협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본분을 다 이행하고, 사역을 다 끝낸 후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지 않았다가 훗날 문제가 생겨 안 좋은 결과가 초래된다면,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영원히 남는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오점이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생기는 오점이란 과오를 의미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자신이 맡은 범위의 일과 해야 할 일을 건성으로 하거나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훌륭하게 해낸다면, 네가 그 기간에 이행한 본분은 기억될 것이다. 기억되는 일을 하나님은 선행으로 본다. 그럼 기억되지 않는 일은 무엇으로 간주되겠느냐? (과오나 악행으로 됩니다.) 과오로 간주된다. 지금 ‘악행’이라고 말한다면 사람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 일로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때 너는 그것이 행위상의 과오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악행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며 후회할 것이다! 지난날,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노력했더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 영원한 오점이 네 마음속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고 영원한 죄책감으로 남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자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간사하고 이기적인 본성의 지배를 받아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잔꾀를 부리고 대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적합하지 않은 책임자를 제때 발견해 교체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복음 사역에 지장을 주었고 형제자매들을 어둠의 통제 속에서 살게 했으며, 저는 하나님 앞에서 과오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과 형벌로 제 악행의 발걸음을 제때 제지하지 않으셨더라면 이대로 나아가다가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질렀을지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실로 위험한 일이며, 언제든 악을 행해 교회 사역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초래된 심각한 결과를 본 후에야 저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데 집중하지 않으며 이런 식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면 영원히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진리를 추구하여 충성으로 본분을 이행해야겠다는 다짐과 소망이 생겨났지요.

그 후 원칙대로 적합한 책임자를 찾아 장 형제님과 조 형제님의 본분을 대신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팀에 존재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 복음 팀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이 있으며, 몇 가지 좋은 방법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마음을 다해 찾고 구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지금까지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확실하게 찾고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이끌고 인도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복음 사역 성과가 괜찮은 형제자매를 찾아 복음 전파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았고,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우리의 본분 이행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와 교제할 준비를 했지요. 그날 밤, 저는 자료를 보면서 어떻게 정리해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묵상하고 찾으며 몇 가지 문제를 간추렸습니다. 문제에 관련된 하나님 말씀도 찾았고요. 하지만 반 정도 정리했을 때, 아직도 세부적인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밤이 늦었다는 생각이 들자 대충 넘어갈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머지 문제에 대한 참고 자료를 찾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 하아… 이렇게 늦었는데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정리해야 하나. 어쨌든 대략적인 방향은 대충 정리가 됐으니 형제자매들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쯤 해 두자고.’ 그리고 쉬러 가려던 찰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지요. 『네가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마음이 분산되어 놀고 싶어질 때, ‘이렇게 하면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이렇게 하는 게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는 게 충성을 다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돌아보아라. 또 ‘나는 이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대충 넘어갔지. 그래서 아직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거야. 나는 진짜 엉망이구나!’라고 한다면 문제를 찾고 너 자신에 대해서도 얼마간 인식이 생길 것이다. 너 자신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끝난 것이겠느냐? 죄를 인정하면 그만이겠느냐?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언제나 진리를 되새겨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저는 제가 또다시 건성으로 임하려 하고 육적인 것을 좇으며 지름길로 가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중요한 문제들을 모두 찾아 집중적으로 교제하지 않으면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육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묵상하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나열해 보았습니다. 비록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지만, 마음은 매우 평안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함께 모여 현재의 문제에 대해 교제했고, 형제자매들은 새로운 길과 방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던 문제들이 마침내 해결돼 모두 홀가분해진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새로운 길과 방식대로 실행했고, 복음 사역은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직접 경험하고 나니 저 자신이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어 양심과 이성을 잃었음을 진실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버리고 헌신할 수 있고, 어떤 일들에서는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를 수도 있지만,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했기에 여전히 패괴 성품이 제 안에서 권세를 잡고 있었지요. 또 언제나 교활함과 간사함, 이익만 꾀하는 본성에 지배되어 무슨 일을 하든 이익을 우선시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면 교활한 수단으로 잔꾀를 부리며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지요. 하나님의 드러내심으로 저는 제가 너무나도 비열하고 추하며, 사람의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만 생각하면 저 자신이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존재임을, 하나님을 너무나도 마음 아프게 해 드렸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저는 스스로를 전보다 더 증오하게 되었으며, 패괴된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싶다는 소망이 더욱 커졌습니다. 하나님이 더 많은 환경을 배치하시어 저를 심판하고 형벌하심으로써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루빨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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