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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병 (2)

다섯 번째 관문, 자녀

사람은 결혼 후 자녀를 양육하게 된다. 어떤 자녀를 몇 명 둘지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운명과 창조주의 설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거쳐야 할 다섯 번째 관문이다.

한 사람의 출생이 자녀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두 가지 역할이 바뀌면서 인생의 각 시기를 경험하게 되고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게 된다.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면서 창조주의 변함없는 주재를 체험하게 되고, 또한 창조주가 정한 운명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1. 자녀의 일은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출생, 성장, 결혼에 불만을 가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가정이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모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성장 환경에 큰 불만을 터뜨리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결혼만큼 불만스러운 것은 없다. 출생, 성장, 결혼에 있어 여의찮은 일이 얼마나 많았든 경험자는 출생 시점과 장소, 외모, 부모, 배우자를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사람은 자녀를 양육할 때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모든 꿈을 자녀를 통해 이루고 남은 미련을 해소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자녀에게 터무니없는 욕심을 가지게 된다. 딸은 예쁘고 아들은 잘생기기를 바란다. 딸은 예술적인 재능을 두루 갖추고, 아들은 공부와 운동에 능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길 바란다. 딸은 부드럽고 현명하며 교양과 지성을 겸비하기를 바라고, 아들은 똑똑하고 유능하며 이해심이 많기를 바란다. 딸과 아들 모두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를 살뜰히 챙기는, 모두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이처럼 인생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짐과 동시에 더 많은 욕심을 부리게 된다. 변변찮은 능력 탓에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성공의 기회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자신의 못다 한 꿈과 희망을 자녀에게 맡기고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란다. 자녀가 가문을 빛내거나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라고,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녀가 출세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긴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외모,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가?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람은 자녀를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지만 어떤 자녀를 몇 명 두게 될지는 계획이나 바람처럼 되지 않는다. 즉, 무일푼임에도 많은 자녀를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부자임에도 슬하에 자식이 없는 사람도 있다. 딸이나 아들을 간절히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녀 덕분에 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를 입는 사람도 있다. 부모는 똑똑한데 자녀는 어리석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지런한 부모와는 달리 자녀가 게으른 경우도 있다. 정직하고 선한 부모가 못되고 악한 자녀를 두는가 하면 건강한 부모가 장애아를 두는 경우도 있다. 평범한 부모가 비범한 아이를 두는 경우도 있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낮지만 자녀가 대성하는 경우도 있다….

2. 다음 세대를 키운 후 사람은 운명을 새로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지만, 삶의 이 지점에서 운명에 대한 이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 역시 이전 세대의 삶과 모든 경험들을 되풀이하는 것을 목격한다. 아이들의 삶과 경험 속에 비치는 자신의 과거를 보며, 그들은 자신의 삶이 꼭 그랬듯 다음 세대가 걸어가는 길 또한 계획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실과 마주하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운명이란 이미 정해져 있음을 인정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망을 차츰 내려놓게 된다. 욕망의 불길도 조금씩 꺼진다… 이 시기는 삶의 중요한 몇 고비를 이미 지나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고,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갖게 되는 시기이다. 그 나이에 사람이 미래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아직도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50세 여성이 있을까? 50세 남성이 아직도 백설 공주를 찾고 있을까? 아직도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 되길 바라는 중년 여성이 있을까? 대부분의 나이 든 남성들이 사업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과연 젊은 사람들과 같을까? 한마디로 말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정도 나이가 들면 결혼, 가족, 아이들에 대해 비교적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 나이가 되면 거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운명에 도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경험상 그 나이가 되면 사람은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해. 자식에게는 자식의 운명이 따로 있지.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는 거야.”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세상의 갖은 우여곡절과 좌절과 고난을 겪은 많은 사람들은 종종 “다 운명이야!”라는 한 마디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총결한다. 이 표현은 일생 운명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결론과 깨달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사람의 무력함을 보여 주는데, 깔끔하고 정확하다 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창조주의 주재를 인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이를 깨달았다고 해서 창조주의 권능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3. 운명을 믿는다고 해서 창조주의 주재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긴 세월 하나님을 따른 너희는 운명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너희는 창조주의 예정과 창조주의 주재를 진실로 알게 되었느냐? 어떤 사람들은 “다 운명이야.”라는 표현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으로 느끼지만 하나님의 주재를 전혀 믿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려는 의지가 없다. 바다에서 어쩔 수 없이 파도에 떠밀려 가야 하는 사람처럼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운명이라 생각하며 단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주재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을 알아가는 삶,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 더 이상 운명에 맞서지 않는 삶,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창조주의 주재에 순종하는 것과는 다르다. 운명을 믿는 것은 창조주의 주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아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믿음은 그저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표면 현상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만물의 운명을 주재하는 근원임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며, 인류의 운명을 다스리는 그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과는 더더욱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운명을 믿고 이를 마음 깊이 느낌에도 인류의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비극일 것이며, 헛되고 공허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 돌아오지 못하고,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참다운 인류가 되지 못한다. 진실로 창조주의 주재를 알고 경험한 사람은 소극적이거나 무력하지 않고 적극적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의 운명이 정해져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삶과 운명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게 된다. 즉, 사람의 일생은 창조주의 주재 아래 있다는 것이다. 살아온 길을 뒤돌아볼 때, 그 여정을 차례차례 떠올려 볼 때, 사람은 힘들었든, 평탄했든 걸어온 모든 걸음마다 하나님이 계획하고 인도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배치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늘날까지 오게 되어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어떤 사람이 운명에 대해 수동적 태도를 가진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에 대항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순종의 태도가 없다는 증거이다. 어떤 사람이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에 능동적 태도를 가진다면,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진실로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것에 진정으로 순종하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더 이상 거역하지 않고 더욱 단호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그의 운명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주재를 분명하게 알 수 없을 때, 그 하루하루는 의미도 가치도 없으며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의 삶의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어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조차 없게 한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섭리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

4. 창조주의 주재에 순종해야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주재를 알지 못하는 탓에 늘 반항심과 패역한 태도로 운명과 마주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재, 그리고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헛된 바람일 뿐, 언제나 좌절을 맛보게 된다. 영혼 깊은 곳의 몸부림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 고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은 그렇게 낭비되고 있다. 이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재 탓인가,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쁜 탓인가? 분명히 둘 다 틀렸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이 선택한 길,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할 때, 하나님이 너를 위해 계획하고 주재한 모든 것이 큰 은혜와 보호임을 알게 될 때, 고통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자유롭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에서 벗어나 예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갖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창조주의 주재에 대해 진정으로 인정하지도, 순종하지도 못한다. 창조주의 섭리를 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과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 창조주의 권세에 진정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운명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운명과 창조주의 권능에 극력 대항하여 초래되는 고통을 떨쳐 버리기 또한 쉽지 않다. 물론 참된 자유를 얻기 어렵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쉽게 들릴지 몰라도 어려운 일이다.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기꺼이 협력하고 어떤 이는 꺼린다. 꺼리는 사람들에게는 협력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없다.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다스리고 계획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벗어나려 하고,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주재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계획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자신의 힘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권세와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 사람에게 슬픔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명예와 이익을 좇기 때문도, 운명에 맞서 안개를 뚫고 힘겹게 나아가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존재를 알고 나서도,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고집하고 수렁 밖으로 발을 빼지 못하며, 강퍅하고 끈질기게 실수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진창 속에서 허우적대고 완고하게 창조주의 주재와 겨루고 끝까지 대항하면서 전혀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다 부서지고 피 흘리며 쓰러질 때에야 포기하고 되돌아선다. 이것이 사람의 슬픔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순종을 선택한 자는 현명하고, 도망치려는 자는 완고하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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