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60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는 원칙

1.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이지이다.

2.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사람은 자신을 장악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 주관하시게 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해야 한다.

3.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고 사람에 대해 모두 사랑이고 구원이심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죽기까지 순복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4. 시련과 연단이 임하면 생사를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단지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기만을 구해야 하며 자신의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다윗의 자손이든지 아니면 모압의 후대든지 어쨌든 사람은 피조물이므로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피조물인 이상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한다. 너희에 대해 다른 요구는 없다. 또한 너는 “하나님, 저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저는 지금 자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위가 높은 것도 당신이 높여주신 것이고 제가 지위가 낮은 것도 당신이 명정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습니다. 저는 아무런 선택도 불평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이런 국가에서, 이런 방족에서 태어나도록 명정하셨으므로 저는 오직 당신의 권세 아래에 완전히 순복해야만 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다 당신의 명정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어떤 지위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무저갱에 두시고 유황불 못에 두셔도 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저를 쓰셔도 저는 피조물이고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셔도 저는 피조물입니다.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시지 않아도 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단지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조물주께서 만드신 작디작은 피조물이고 창조된 인류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만드셨고 오늘 또 저를 당신의 손에 두시고 당신의 지배대로 하게 하시는데, 저는 당신의 도구가 되고 당신의 안받침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당신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므로 아무도 바꿀 수 없습니다. 만사만물은 다 당신의 수중에 있습니다.”라고 기도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무엇 때문에 안받침물이 되기를 싫어하는가?>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패괴 성정을 벗어 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만큼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자신의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피조된 사람인 이상 너의 창조주께 순복해야 한다. 그 까닭은 네가 근본적으로 자신을 장악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만큼, 거룩해지기를 추구해야 하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너는 피조물인 만큼, 자신의 본분을 잘해야 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너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교조적인 것으로 너를 억압하는 것도 아니라, 네가 본분을 하는 길이다. 이것은 의를 행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자 해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1 하나님, 당신을 위한 나의 간증이 필요할 때, 당신을 위해 효력을 하고 당신의 지배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간증을 마칠 때, 나를 한쪽에 버려두고 고통받게 하고 전혀 상관하시지 않는다 해도 또 무슨 원망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또 이용하려 하실 때 다시 주워들어 유용하게 쓰십시오……

2 나는 우마가 되어 주인의 마음대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설사 조금의 인신 자주권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효력을 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다 마땅한 것입니다. 전능자의 필요를 만족케 할 수 있으면 정말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물어보자, 그대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효력할 이런 심지를 세운 적이 있는가?

3 하나님, 당신이 어떻게 하시든지 어쨌든 다 좋은 것이고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과 어디까지나 구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진토이니 당신을 경배해야 합니다. 당신은 조물주이시고 나는 피조물이니 절대적으로 당신께 순복해야 하고 자신의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을 중요시하시든지 관계없이 나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당신을 만족케 하기를 원합니다.』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115 너는 하나님을 위해 효력할 심지를 세운 적이 있는가>에서 발췌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류가 존재한 후부터 하나님은 계속 그렇게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적을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에서 발췌

『조물주가 뜻대로 피조물을 움직이려고 하면, 그가 어떻게 하든지 너는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그가 하는대로 따라야 하고, 그를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사역하여 마지막에 그의 목적을 이루면 영광을 얻은 것이다. ……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하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그것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만든 천지 만물이 다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 별을 창조한 것은 다 사람을 위한 것이고, 동물과 식물을 창조한 것도 사람을 위한 것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사람을 위한 것인데, 등등 이런 것은 다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어떻게 형벌하고 심판하든 그것은 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설령 사람의 육체적 소망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은 또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사람의 귀숙이 모두 조물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형벌로 사람을 정복하는 것을 원치 않고 늘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을 원치 않으며 사람이 모두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람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늘 하나님을 거역한다. 나는 우리가 가장 간단한 길을 찾아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바로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는 것인데, 네가 참으로 이 정도에 도달할 수 있으면 온전케 된 것이다. 이것은 홀가분하고 유쾌한 일이 아닌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그렇게 많이 고려하지 말라. 전망과 운명이 너 자신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가? 네가 늘 벗어나 세상의 길을 걸으려 하는데 왜 언제나 걸어 나갈 수 없는가? 왜 네가 갈림길에서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최종에 또 이 길을 선택하였는가? 네가 오랫동안 유랑하다가 왜 오늘날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또 이 집으로 발을 들여놓았는가? 이것이 너 자신의 일인가? 이 도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이 믿어지지 않으면 나의 이런 말을 들어보아라. 가령 네가 여기에서 나가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허락하는지, 성령이 어떻게 너를 감동시켜 체험하게 하는지를 보아라. 솔직히 말해서, 설사 화를 입는다 해도 이 흐름 속에서 입게 할 것이다. 똑같이 고통받는 것이라 해도 오늘은 이 흐름 속에서 고통받게 하고 다른 곳에 가지 못하게 한다. 너는 분명히 보았는가? 네가 또 어디로 가려 하는가? 이것은 다 하나님의 행정이다. 너는 하나님이 이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한 것이 의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가? 오늘날, 하나님은 역사하면서 쉽게 노를 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그의 계획을 교란시키려 한다면 개었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는 것 같이 하나님은 즉시 표정을 바꾼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그래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여 하나님이 너를 만들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총명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7)>에서 발췌

『너 같은 피조물이 무슨 근거로 하나님에게 요구하는가? 사람은 하나님에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장 이지(理智)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해야 하면 그것을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을 권리도 있고 스스로 그런 일을 처리할 권리도 있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은 공의로운 것이다. 공의란 결코 공평하고 합리하여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일을 얼마 처리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주고 네가 일을 얼마 하면 그만큼의 돈을 주는 것은 공의가 아니다. 너는 분업 협조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하고 지불한 것만큼 얻는 것이 공의라고 여긴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한 다음 하나님이 그를 멸한다 해도 하나님은 공의롭다. 왜 공의롭다고 하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도 공의롭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말하겠는가? 공의는 이런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면 공의롭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주 쉽다. 만일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공의롭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만일 그때 욥을 멸하였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누가 말한다 해도 억지로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대로 괜찮아요……”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멸하려 한다면 사람이 패괴되었든 패괴되지 않았든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 이치를 분명하게 말해 줘야 하는가? 무엇에 근거해 사람을 멸한다고 설명해야 하는가? 필요 없겠지? 사람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해 쓸모 있으면 멸하지 않고 쓸모 없으면 멸할 필요가 있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보기에는 패괴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다 적합하고 다 그의 안배가 있다. 그의 눈에 거슬려서 간증을 다 한 다음 쓸모없다고 너를 멸한다면 그것은 공의가 아닌가? 공의이다. 공의는 바로 이런 것이다. 비록 네가 지금 사실적으로 알기는 어렵겠지만 도리상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가? 사탄을 남겨두면?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 어떻게 공의로운가? 하나님의 실질이 곧 공의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쉽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것은 다 공의롭다. 다만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틀림이 없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탄에게 넘겨줄 때 베드로가 어떻게 말했는가? “당신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지만 모두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모두 공의가 그 속에 있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로운 행사로 말미암아 찬미하지 않으리이까?”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지 않은 것은 인류에게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키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보게 하려는 것임을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최종에 이르러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정도에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멸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하고 그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음을 보게 한다. 하나님이 하는 매사는 다 공의롭다. 비록 사람이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너는 함부로 논단해서는 안 되고 부당한 것처럼 보이거나 관념이 있는 일에 대해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가장 이지 없는 행실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어떻게 요구하든 네가 전력을 다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를 바란다. 보좌 위에서 즐거운 웃음을 짓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설령 그때가 바로 네가 죽는 시각이라고 해도 너는 눈을 감을 때에 웃음소리를 내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본분을 해야 한다. 전에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너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위해 너의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지배대로 해야 한다. 사람에게 무슨 원망할 자격이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41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베드로는 형벌 가운데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저의 육체가 패역하오니 저를 형벌하시고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기쁨으로 여기나이다. 설령 당신께서 저를 버린다고 해도 당신의 심판 속에서 당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나이다. 저를 심판하실지라도 다른 사람이 당신의 심판에서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하나이다. 당신의 성품을 발표하여 모든 피조물이 다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고 또한 저도 당신의 심판을 통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순결해지고, 또 의인의 형상에 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의 이런 심판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저는 아직도 패역이 많아 여전히 당신 앞에 올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나이다. 당신께서 더 많이 심판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상황이 열악하든 환난이 크든, 당신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저에게는 다 귀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 깊나이다. 저는 아무런 불평 없이 당신의 지배를 받기 원하나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여 얻은 인식이자 하나님을 사랑한 간증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도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지금 당신의 때가 되었나이다. 바로 저에게 예비하신 때가 되었나이다. 저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오르고 이 증거를 하리이다. 저의 사랑이 당신의 요구를 만족케 하고 저의 사랑이 더 순결해지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어 저는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느끼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고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만족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칠 수 있고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어 제 마음은 더없이 기쁨과 위안을 느끼나이다.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사랑스러우시니이다. 이후에 저를 계속 살아가게 하신다면 더욱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살아 있기만 하면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더 깊이 당신을 사랑하기 원하나이다. 저는 불의와 죄로 인해 당신의 심판, 형벌, 시련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저의 복이나이다. 이는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저는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기 원하나이다. 그로 인해 제가 더욱 의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저는 지금 사는 것이 더욱 의의 있다고 늘 느끼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의 연고로 십자가에 오르기 때문이니이다.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의의 있나이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적기에 그리 만족하는 편은 아니니이다. 저는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완전히 만족케 할 수는 없고, 당신께 보답한 것이 너무나 적고, 살아 있는 동안 당신께 모든 것을 돌려드리지 못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더욱 빚졌다고 느껴지니이다. 이 한순간으로써 저의 모든 과실과 당신께 보답하지 못한 모든 사랑을 메울 뿐이니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1 하나님, 내게 역사하셔서 온전케 하고 변화시키소서. 나로 하여금 매사에 당신의 말씀에 순복하게 하소서, 매사에 당신의 마음을 만족케 하게 하소서. 하나님, 나는 이미 당신의 진실한 사랑을 보았나이다.

2 사람이 거역하고 대적하며 본성이 배반이지만 나는 지금 당신이 사람을 구원하는 마음을 깨달았나이다. 당신은 나를 정결케 하기 위해 많은 환경과 시련 고통을 더하여 고통 속에서 당신의 손길과 행사를 보게 하셨나이다. 나를 당신의 마음을 깨닫고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방탕한 자가 되지 않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 당신께 순복하게 하소서.

3 많은 시련을 내게 주셨지만 나의 분량이 작으므로 시시로 나를 이끌고 나의 분량에 따라 공급하소서. 어떤 고통을 겪든지 당신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배반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완전히 순복하여 당신을 만족하게 하소서. 심한 고통이든 경한 고통이든 당신의 안배이기만 하면 조금도 원망 없이 순복하길 원하옵나이다, 영원히 칭송하길 원하옵나이다.』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382 고통 연단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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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안받침물: 한 사물을 통해 다른 한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④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⑤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⑥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⑦게시(揭示): 쉽게 알 수 없는 것의 본질을 천명함.

⑧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