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50 교계 신학 이론을 대하는 원칙

1. 교계 신학 이론은 진리의 위조품이고 위장품이며 다 사이비한 도리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규정하고 대적하게 한다.

2. 교계 신학 이론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념과 상상, 논리 추리에서 온 것이며 사기꾼의 거짓말이다.

3. 교계 신학 이론은 진리가 아니므로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사람이 신학 지식을 추구할수록 더욱 교만하고 자대하여 진리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

4. 교계 신학 이론은 대단한 미혹의 힘을 가지고 있는, 진리 실제가 전혀 없는 텅 빈 이론이므로 반드시 진리로 드러내고 반박하며 비판하고 무너뜨려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여러 세기를 지나오면서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사람 머리의 관념으로 상상해 낸, 또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 오랫동안 많은 영적 위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참뜻’에 대해 해석했지만, 해석한 그들도 위격이 다른 삼이일(三而一) 하나님에 대해 두리뭉실하여 분명하게 해석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구조’에 대해 사람은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그 어떤 큰 인물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없었다. 대다수는 다 도리상이나 문자상으로는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내포된 뜻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삼이일 하나님’은 전 우주 위아래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버지도 아들도 없고, 더욱이 아버지와 아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성령이라는 이런 학설도 없다. 이것은 모두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그릇된 논리이다! 그러나 이 그릇된 논리 역시 ‘근원’이 있는 것이지 결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너희 사람들의 ‘머리’ 또한 결코 단순하지 않고, 너희가 구상하는 것도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합당하고 교묘하며, 심지어 어떤 사탄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쉽게도 모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그릇된 논리일 뿐이다! 너희는 사실의 진상을 전혀 보지 못하였다. 너희는 단지 추리하고 상상한 후에 일련의 이야기를 편집하여 사람들의 신임을 사취하고, 또 가장 멍청한, 머리가 나쁘고 이지(理智)가 없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어 너희의 위대하고 저명한 그 ‘전문가 학설’을 믿게 할 뿐인데, 그것이 진리인가? 그것이 사람이 마땅히 깨달아야 할 생명의 도(道)인가? 다 허튼소리이다! 거기에 합당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오랫동안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렇게 나뉘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너희가 한 세대 한 세대를 거치며 더 세밀하게 나누다 보니, 이젠 공개적으로 한 분의 하나님을 세 분의 하나님으로 나누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사람은 하나님을 다시 함께 합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을 너무 세밀하게 나누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일찌감치 이 사역을 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언제까지 제멋대로 날뛸지 모른다! 이대로 나누어 간다면, 하나님이 여전히 너희의 하나님일 수 있겠는가? 너희가 그래도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너희가 그래도 본래의 뿌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겠는가?

…………

사람의 말에는 모순되는 곳이 많이 있는데, 물론 그것은 다 사람의 관념이다. 만일 그것을 따지지 않는다면 너희는 모두 옳다고 여길 것이다. 설마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사한 그런 말들이 다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사람은 완전하게 인식하는 자가 없고 모두 뒤섞임이 있으며 사람의 뜻이 너무나 많은데, 이것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피조물은 전혀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많은데, 모두가 논리와 사유에서 온 것이므로 진리와는 서로 저촉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에서 발췌

『각 교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모두 성경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상상에 따라 해석하면서 모두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 낼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느냐? 그는 어쨌든 지식이 좀 있어 도리를 좀 말하거나 사람을 구슬릴 줄 알고 수단도 좀 쓰니까 사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너희는 베드로와 바울에게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실제를 가장 중시한 사람이다. 그가 경력한 일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지난날에 실패한 사람들의 교훈에 결부시키고 역대 성도들의 장점을 받아들여 경력하였다. 이 점으로부터 베드로가 경력한 것이 얼마나 실제적인지 볼 수 있는데, 다 사람들이 더듬어 알 수 있고 이를 수 있으며 게다가 사람들이 도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바울은 오히려 다르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다 막연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예를 들면, 셋째 하늘에 올라가는 것, 보좌에 오르는 것, 공의의 면류관이다. 그는 지위를 중시하였고, 사람을 훈계하고 관록을 내세우고 성령의 감동을 중시하는 등등, 이런 겉면의 것들을 중시하였다. 그가 추구한 것은 다 비현실적이며, 많은 것들이 다 공상이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모든 초자연적인 것들, 예를 들면, 성령은 어떻게 감동시키고, 사람은 어떤 즐거움을 누리며, 셋째 하늘에 간다거나 혹은 평소에 훈련하여 어느 경지까지 누리고 또 하나님 말씀을 보고 어떤 경지까지 누리는지 하는 이런 것들은 다 비현실적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제’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어느 날, 네가 그 종교 인사들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고 그들의 그릇된 이치도 모두 반박하게 된다면, 네가 이 단계 사역에 대해 완전히 확신한 것이고 너에게 아무런 의혹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가 만약 그들의 그릇된 이치를 반박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너를 모함할 것이고, 비방할 것이다. 그것은 수치를 당하는 일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종교적인 도리는 아예 진리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도리는 사람의 산물이며 전적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사이비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도리가 많을수록 더욱 사람을 미혹하고 해치게 되며 결국 자기 자신도 해치게 됩니다. 이것 또한 교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정죄하는 한 방면의 원인입니다.』

<좌담 기록ㆍ각지 교회 문제에 대한 답변>에서 발췌

『교계의 그 지도자들, 특히 신학박사들은 왜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장본인이 되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에게 종교 지식과 성경 지식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성경을 깨닫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사상과 사유로 성경 안의 말씀을 해석하고 성경 안의 일을 해석한 것입니다. 그들이 만든 그런 신학 이론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부 사람의 사유, 이해, 판단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계의 신학 관점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관점이며 다 진리와 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사유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두 가지 관점이 별로 차이가 많지 않네요.”라고 말하는데, 별로 차이가 많지 않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 속담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오류를 낳는다”. 이렇게 된 일이 아닙니까? 보세요, 일부 형제자매들은 종교모임에 가서 설교를 들은 후 또 하나님 집으로 와서 하나님 집의 교통을 척 듣고는 “별로 차이가 없네요. 모두 사람에게 좋은 것을 배우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라 하며 진리를 실행하라는 것이네요. 다 비슷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음을 설명합니다. 듣기에 맞는 말은 다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참으로 얼마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분별할 줄 압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분별할 줄 모릅니다.』

<설교 교통 (3)ㆍ사람의 관념과 논단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 발췌

『보세요, 이방인들은 어떤 이론을 연구하면 글귀상에서만 연구하고 도리상에서만 연구하고 묵상하여 결론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편 본 후 특히 신학을 배운 사람, 목사, 학자, 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이론상에서 연구합니다. 그들은 모두 실제적으로 경력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찾고 구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찾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상에서 연구하고 마지막에 어떤 어떤 결론을 얻어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그들이 얻어낸 결론이 실제일까요, 아니면 도리일까요? 도리겠죠? 왜냐하면 그 결론은 그들이 전문적으로 책에서 연구해 낸 것이지 그들 자신의 경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연구하고 묵상하는데, 이 일에서는 이렇게 추리하고 저 일에서는 저렇게 추리합니다. 책의 글귀에서 연구하여 얻어낸 결론, 성경에 기록된 일에서 연구하여 어떤 결론을 얻어내고 한 가지 이론을 만드는데, 이것을 신학 이론이라고 합니다. 그 속에는 경력하여 얻은 인식이 없고 성령의 깨우침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당신에게 깨우쳐 주신 더 깊은 인식은 글자 표면의 뜻을 초월하는 것이고 글자 표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당신이 경력에 진입한 후 진리를 찾고 구할 때에야 성령께서 당신을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당신에게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시는 것은 다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진실하며 성경책에서 아무리 연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가운데서 만일 성령의 깨우침을 얻었다면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진실한 인식은 당신이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에서 아무리 연구해도 연구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사유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상상해도 이 진리를 상상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솔과 깨우침과 빛 비춤을 거쳐 얻은 진리는 사람이 책에서 연구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종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종교학자, 종교전문가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진실로 알 수 없으며, 그들이 아무리 공을 들여 연구해도 쓸모없습니다. 최종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정죄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도태됩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들이 가는 길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면서 성령의 깨우침을 얻는 길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의 머리로 연구하고 상상하며 묵상하여 나중에 한 가지 이론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이론은 황당하고 실제적이 아니며 하나님에 의해 황당무계한 논리로 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임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장 황당하고 가장 그릇되고 망령된 사람들입니다.』

<설교 교통 (1)ㆍ문제 해답>에서 발췌

『종교 목사, 신학박사들이 가르치는 것이 도대체 실제입니까?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그들이 가르치는 그런 이론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많은 책을 썼는데, 쌓으면 산만큼 높습니다. 그런 말과 그런 도리는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들은 성경을 본 다음 사람의 머리와 사유로 성경의 말을 해석하고 거기에 사람의 상상, 판단, 추리를 보태어 여러 가지 결론을 얻어냅니다. 이것은 사람의 사유, 상상의 산물이 아닙니까? 이것은 사람의 사유, 상상의 산물이지 절대로 경력해 낸 것이 아니고 더욱이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도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그것이 사탄에게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여기에도 사탄에게로부터 온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시험, 논단, 규정을 띠고 있고 자신의 뜻을 억지로 하나님께 떠맡기는 것인데, 이것은 사탄 성정의 산물입니다. 왜 제멋대로 하나님을 규정합니까? 왜 자신의 뜻을 억지로 하나님께 떠맡깁니까? 분명히 그런 일이 아닌데 실제를 보지 못하고도 기어코 그렇게 말하려 하고 상상에 따라 말하려 하며,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상상과 추측으로 또한 논리로 귀납하고 추리하여 여러 가지 결론을 얻어내고 억지로 하나님께 떠맡기고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라고 말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행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표현이 아닙니까? 그들이 이렇게 사역을 하고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이 아닙니까? 만일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이라면 그들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들 안에 하나님에 대한 논단과 하나님에 대한 규정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강요가 있으며 어떤 논법은 너무 독단적이고 견강부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역은 심각하게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고 전적으로 사람의 패괴와 사탄 성정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그런 허튼소리는 대부분 다 황당무계한 논리이고 다 실제에 맞지 않는 논법입니다. 어떤 말은 사탄을 대표하고 하나님에 대한 천사장의 모독을 대표합니다.』

<설교 교통 (5)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하여 실제에 진입하는가>에서 발췌

『설마 사람의 지식이 하나님의 사역을 성취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설마 사람의 성경 지식, 과학 지식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설마 사람의 지식이 진리를 대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의 지식은 조금도 진리를 대표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은 모두 그릇된 지식이므로 진리를 전혀 대체하지 못합니다. 신학 지식, 성경 지식은 진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이고 모든 성경 지식, 신학 지식은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깨달을수록, 신학 지식을 많이 깨달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하나님을 정죄하게 됩니다. 이것을 분명히 보았겠죠? 도대체 진리란 무엇입니까? 신학 지식에 진리가 있습니까? 성경 지식에 진리가 있습니까? 이런 것은 다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 지식과 성경 안의 하나님 말씀은 서로 별개이므로 함께 논할 수 없습니다. 성경 지식은 사람이 써낸 것이고 사람의 사유에 따라 총결해 낸 것입니다. 성경 안의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지만 성경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기억하세요! ……사람이 신학 지식과 성경 지식이 있으면 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논단하며 적그리스도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무슨 원인입니까? 지식이 너무 많으면 사람을 패괴시킬 수밖에 없고 교만해지고 자대하게 할 수밖에 없으며 미친 듯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이 너무 많은 사람은 더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대교의 그 상류층 인물,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바울과 같은 사람,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봅시다. 그들은 모두 여러 세대 여호와를 믿어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성경 지식은 가장 풍부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1~2천년 연구하였지만 나중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괴수가 되었고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이 양성해 낸 한 패 또 한 패의 적그리스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 틀립니까?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도대체 맞습니까, 틀립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을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경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 역사를 경력하는 것을 통해 도달하는 것입니다. 성경만 연구하고 신학만 연구하면 점점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고 점점 진리와 멀어지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성령 역사를 경력하는 것을 통해야만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신학을 연구하여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성경 지식을 연구하여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얻을 수 없다면 당신의 그런 연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설교 교통 (2)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과의 구별>에서 발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신학을 배우고 지식을 추구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점점 더 대적하게 합니다. 신학 지식을 포함하여 지식은 다 진리와 서로 적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 지식을 중요시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심하게 대적합니다. 마지막에는 다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의 인식이 있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간파할 수 있고 지식에 대해 간파할 수 있으며 신학 이론에 대해 간파할 수 있고 또한 사탄을 배반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구원받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사탄의 철학, 사탄의 지식,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 사탄의 법칙에 대해 분별할 줄 알고 간파할 수 있으며 해부할 줄 알고 버리고 배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완전히 구원받는 데에 도달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정도에 도달했습니까? 만일 당신에게 사탄 철학을 하나 해부하라고 하면 진리로 그것을 철저히 비판하고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만일 세상의 책꽂이에서 마음대로 책 한 권을 가져온다면 거기에서 진리와 어긋나는 황당무계한 논리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까? 만약 종교에서 마음대로 책 한 권을 가져와서 당신이 그것의 황당무계한 논리를 분명히 알 수 있고 또한 그것의 잘못된 점이 어디에 있는지, 진리와 어긋나는 점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진리와 부합되지 않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이 만약 이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면 진리를 깨달은 것이고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이든, 목사든, 박사든 그 사람이 한 마디 하면 당신이 듣자마자 그 사람이 한 말이 어디가 그릇된 것인지, 어디가 틀린 것인지, 어떤 진리와 어긋나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비로소 당신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았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분량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아직 진리가 없음을 설명합니다. 진리가 없는 결과는 바로 당신이 여전히 사탄에게 미혹당할 수 있고 여전히 사람의 미혹을 받을 수 있으며 여전히 거짓 목자를 따르고 거짓 선지자를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종교의 사람이 당신에게 책을 주면 당신이 그 책이 아주 좋고 모두 사람에게 좋은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고 다 괜찮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분별이 없고 진리가 없음을 증명합니다. 언제 당신이 종교의 각종 황당무계한 논리, 무릇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교계의 모든 황당무계한 논리를 다 반박하고 해부하며 철저히 비판할 수 있다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분량이 있고 당신이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설교 교통 (4)ㆍ하나님을 알아야만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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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