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48 실용적인 문화와 지식을 대하는 원칙

1. 실용적 문화와 지식은 사람이 소질을 높이는 데에 유리하며 사람이 구비해야 할 것이므로 마땅히 정확히 대하고 배워서 장악해야 한다.

2. 문화와 지식은 진리가 아니므로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다. 다만 사람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에 불과하니 미신하거나 숭배해서는 안 된다.

3. 진리를 구비해야 문화와 지식을 정확히 대하고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진리가 없고 지식만 장악하면 사탄의 패괴를 벗어날 수 없다.

4. 실용적 문화와 지식에 대해서는 배우고 장악하여 쓸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을 현실 생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간다고 이전에 언급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경로이다. 사실, 교회 생활은 다만 사람을 온전케 하는 유한한 방식일 뿐이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 주요한 환경은 그래도 현실 생활이다. 바로 내가 말한 실제 연습과 실제 훈련인데, 사람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정상적인 인성 생활이 있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게 한다. 한 방면은 지식 수준을 높여 하나님이 한 말씀을 알 수 있고 터득 능력이 있도록, 언어 지식을 배워야 한다. 다른 한 방면은 사람됨의 상식을 구비하여 정상 인성의 견식과 이지(理智)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이런 방면이 사람에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한 방면은 교회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면서 차츰차츰 진리를 투철하게 깨닫는 것이다.

…………

훈련하는 가운데서 지혜와 견식이 늘어난다고 언급하였는데, 이것에 어떻게 도달하는가?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하고 인식하기만 하면 늘어나는가? 이러면 어찌 늘어날 수 있겠는가? 반드시 현실 생활 속에서 인식하고 경력(역주: 체험)해야 한다! 그러므로 훈련이 결핍해서는 안 되고 현실 생활을 떠나서는 안 되며, 다방면으로 중요시해야 하고 각 방면에서 진입이 있어야 하는데, 문화 소질, 표현력, 일을 판단하는 능력, 분별력,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하는 능력, 인성의 상식과 규범 등등 인성 방면에 구비해야 할 것에 관련되는 것들이다. 인식한 후에는 모두 진입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 이래야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교회 생활과 현실 생활을 말해 보자>에서 발췌

『‘현실 생활’에서 주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상 인성을 구비하라는 것이다. 마땅히 구비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오늘의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현실 생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현실 생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간다”는 실제 의의이다. 지금 주로 장비(裝備)할 것은 한 방면으로는 사람이 소질을 높이고 언어 지식을 배우고 글을 배우고 독서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며, 다른 한 방면은 정상 사람의 생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2)>에서 발췌

『평소에 일부 참고 서적(어법이나 수사책 같은 것)은 봐도 된다. 사람의 사상을 너무 자극하는 책(애정 소설, 음란 서적, 잡지, 위인 전기)은 볼 필요가 없으며 너에게 유해무익하다. 너는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을 다 장악해야 한다. 소질을 높이는 목적은 바로 사람에게 사람의 실질, 사람의 신분, 사람의 지위나 사람의 몸값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아래의 교회에 대해 주로 무엇을 진입하게 해야 하는가? 지금은 사람의 소질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언어 지식을 배우는 이 진입을 꼭 지켜야지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 방면으로는 너희는 왜 사람의 소질을 높여야 하는지, 어떻게 소질을 높여야 하는지, 어떤 방면에 진입해야 하는지, 정상 인성의 의의는 무엇인지, 왜 이 사역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컨대, 언어 지식을 배움에 있어서 어떤 방면을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 이런 것이다. 너희는 마땅히 너희에게 언어 지식을 배우라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진리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소질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 위해서이다>에서 발췌

『너희는 하나님이 지식에 대해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알고 있는가? 한 자매가 방금 “하나님께서 사람의 과학이 발달하기를 바라시고 사람이 많은 것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도 물론 맞지만 하나님이 바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맞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써 효력을 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이런 것을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런 것으로써 진리를 대체하지 않고 이런 것으로써 사람의 인성을 보완하거나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좌담 기록ㆍ무엇이 성정 변화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설사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모두 온갖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도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 그것은 아무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고, 그 어떤 사회 논조도 사람으로 하여금 공허함에 시달리는 것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누림, 안일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단지 일시적인 위안이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여전히 불가피하게 죄를 짓고 있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하고 있다. 또 이런 것들이 있어도 인류가 탐색하고자 하는 갈망과 욕망은 저지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색은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번뇌만 가져다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게 하고, 이후의 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게 하며, 심지어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게 하고, 공허한 느낌은 더욱 두려워하게 한다. 이 세상에서 네가 자유국가에 있든 아니면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으며, 네가 통치자든 아니면 통치를 받는 자든 너는 인류의 운명과 심오한 비밀 그리고 귀숙을 탐색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고, 알 수 없는 공허한 느낌에서는 더욱 벗어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서 발췌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재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너는 심령의 깊은 곳이 환하고 평안하며 더없이 달콤하여 참으로 인생을 얻었다고 느껴질 것이다. 세상의 과학자들이 과학을 연구하여 성과가 얼마나 크든지 임종 시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고 여긴다. 마치 아인슈타인, 뉴턴처럼 그들이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도 공허함을 느낀 것은 바로 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뉴턴, 아인슈타인,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었고 크리스천이었으며 다 천주교의 핍박을 받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며 과학만 연구하다가 확실히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최종까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100% 인정하고 천지 만물은 하나님이 만든 것임을 100% 인정하는 데에만 그쳤으며, 과학 지식만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지 않았기에 진리를 얻지 못했고 진정한 인생을 얻지 못했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사람의 소질을 높이는 것도 너희에게 터득 능력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한 말을 너희는 다 터득하고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이다. 네가 나를 따르면서 오히려 내가 한 말을 깨닫지 못하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이 아닌가? 너희의 소질이 너무나 낮아, 즉 터득 능력이 구비되지 않았기에 내가 한 말에 대해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며 상응한 효과에 도달하기 매우 어렵다. 많은 말은 너희에게 직접 말할 수가 없으며 원래의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러면 나의 사역은 부가 항목이 있어야 한다. 너희의 터득 능력, 일을 판단하는 능력, 생활 수준이 너무나 낮기 때문에 너희에게 반드시 ‘사람의 소질을 높이는’ 이 사역을 전개해야 한다. 이것도 필연적인 추세이고 부득이한 것이다. 꼭 이렇게 해야만 일부분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한 말은 다 허사가 될 것이다…… 지금 교회에 보편적으로 어떤 정형이 있는가? 사람에게 언어 지식을 배우라고 하면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누리는 것을 방치하게 된다…… 만일 지금의 이 상황에 처해 있다면 치우친 것이다. 그럼 왜 너에게 영적 생활에 진입하라고 하겠는가? 이런 것만 배우면 너에게 요구한 것에 도달할 수 없고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생명 진입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역을 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경력 중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소질을 높이고 너에게 사람의 본성과 사람의 실질을 알게 하는데, 이런 것을 알게 하는 것은 주로 사람의 영적 생명이 자라나게 하고 성정이 변화되게 하는 것이다. 네가 옷을 입을 줄 알고 단장할 줄 알며 견식이 있고 지혜가 있어도 결국 어느 날에 가서 너에게 사역하라고 하면 오히려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소질을 높이는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너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고 소질을 높이는 것은 부가한 것이다. 소질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고 너의 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더욱 안 된다. 어느 방면도 모자라서는 안 된다. 너에게 정상 인성이 있다 하여 굳세고 드높은 간증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너에 대한 요구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소질을 높여 정상 인성의 이지(理智)와 정상 인성의 생활이 있고 생명 진입도 있는 데에 도달한 후에야 변화가 있고 간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 간증을 하게 되면 인성 생활에 변화가 있고 안에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음을 말해야 한다. 이 두 방면의 결합이야말로 진정한 간증이고 너의 수확이다. 너에게 인성의 겉면의 변화만 있고 안에 인식이 없어도 안 된다. 만일 안에 인식이 있고 진리가 있지만 결국 네가 정상 인성 이 방면의 살아냄을 홀시한다면 역시 안 된다. 오늘 너에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너는 단지 너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만 중요시하면 된다. 네가 날마다 쓰고 듣기만 하고 다른 생활이 없으면 안 된다. 어느 방면이나 다 진입해야 한다. 너는 마땅히 성도의 정상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많은 자매들은 아가씨처럼 단장하고 형제들은 도련님, 나리처럼 단장하는데, 완전히 성도의 체통을 잃은 것이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의 소질을 높여야 하는데, 이 방면은 조금만 하면 된다. 다른 한 방면의 관건은 그래도 먹고 마시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소질을 높여도 결국 써먹지 못하면 헛되게 공부한 것이 아닌가? 두 방면을 결합해야 한다. ……너희는 사탄에게 패괴되어 사탄의 독소가 너무 많다. 즉, 너에게 이런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너에게 고위급 인사나 명인이나 위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필요 없다. 너희에게서는 너희 원래의 것에 따라 한다. 사람에 대한 요구는 다 한도가 있다. 지금 만일 사람들이 다 마치 국가 엘리트처럼 그들이 말하는 그 말투를 훈련하고 국가 고위급 관원이 말하는 방식을 훈련하며 산문가, 소설가들이 말하는 방식과 말투를 훈련한다면 이렇게 해도 안 된다. 도달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의 소질에 따라 최소한 말할 때 지혜와 방식을 쓰고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면 요구에 도달한 것이다. 최소한 견식과 이지가 있으면 된다. 지금 주요한 것은 바로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네가 표현하는 추한 몰골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도 네가 아직 벗어 버리지 못하는데 또 무슨 최고의 이지, 최고의 견식을 말하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소질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 위해서이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어떤 일에는 진리가 없지만 문화가 있고 문화적 내용이 있으며 인류에 대해 유익한 것이 있습니다. 인류가 보기에는 그것이 좋은 것이고 훌륭한 문화와 훌륭한 지식이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인류의 유전, 문화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진리와 비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까? 인류가 여기는 소위 훌륭한 문화가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까? 진리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훌륭한 문화가 사람을 고칠 수 있습니까? 사람을 좋아지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착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다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보세요, 각국의 고급 학부에서 사람이 배우는 것은 다 전통문화인데, 그들이 좋아졌습니까? 그들의 패괴가 적어졌습니까?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모두 상류층 지식인들인데, 그들이 인류를 제대로 이끌었습니까? 인류가 점점 좋아졌습니까? 인류는 점점 좋아지기는커녕 도리어 점점 패괴되었습니다. 그렇죠? 사람이 배우는 문화 지식이 점점 높아지는데, 왜 인류가 점점 패괴되고 세상이 점점 어두워집니까? 이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훌륭한 문화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속하는 것이야말로 긍정적인 사물이고 안에 진리가 없는 것은 긍정적인 사물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입니다. 이 한 방면으로부터 봐도 우리는 문화와 지식이 진리가 아님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상류층 지식인, 문학가, 정치가들이 말하는 것은 다 문화이고 지식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이 한 가지를 기억했겠죠? 기억한 다음 그들이 당신에게 가장 훌륭한 문화를 전하면 이렇게 말하세요. “이 문화가 아주 좋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사람의 아마추어 감상으로 공급되고 인격을 도야할 뿐 사람의 본성 실질을 변화시킬 수 없고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문화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패괴된 인류를 좋아지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 빛난 인생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은 다 하지 못합니다. 그렇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상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이런 능력이 있고 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설교 교통 (4)ㆍ어떻게 진리를 인식하는가와 진리를 추구하는 가치>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이 “그럼 지식이 도대체 인류에게 유용합니까, 유용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배워야 합니까, 배우지 말아야 합니까?”라고 묻는데, 실제상 지식 자체는 유용합니다. 그러나 누가 쓰는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만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에게 진리가 없다면 지식은 그 사람을 교만하고 자대하게 하며 누구에게도 불복하게 합니다. 만일 지식이 악마에게 장악되면 살인 무기가 될 것입니다. 지식 자체에 죄가 있습니까? 지식은 죄가 없습니다. 지식 자체는 역시 옳은 것입니다. 정확한 지식은 옳은 것이고 괜찮습니다. 그러나 왜 사람은 지식을 추구할수록 더욱 교만해지고 자대하게 되며 진리와 더욱 멀어지고 하나님과 더욱 멀어집니까? 이것은 지식이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이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것이 일단 사람의 생명이 되면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즉, 지식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사람이 도대체 지식을 배워야 합니까, 배우지 말아야 합니까?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진리가 있은 다음 지식을 배우면 지식을 정확히 대할 수 있고 정확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상면의 설교 교통에 근거함

─────────

①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②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