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28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좋은 행위를 분별하는 원칙

1.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요구와 원칙 및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 근거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정감과 애호, 관념과 상상이나 경험에 따르는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2. 사람이 깨달은 진리 실제에 근거해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규례를 지키고 형식만 갖추며 겉면의 행실을 중요시하는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3. 사람이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실제를 구비하여 효과에 도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질구레한 일을 문제로 삼아 사람에게 가상을 보여 주는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4. 사람이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진실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충대충 하여 속이고 과정만 거치고 위장하여 기만하는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며, 모든 행위에 원칙이 있고,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억지로 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그런 실행이야말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방식은 모두 규례가 아니라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한다. 그는 형제자매들을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께 빚졌다고 말하지만 뒤에서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또 다른 짓을 하는데, 이는 종교적인 바리새인이 아닌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란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겉면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일이 닥치면 진리를 실행하려 하고 양심을 어겨 말하거나 일하지 않으며, 또한 일이 닥치면 지혜가 있고 어떤 환경에서나 다 일을 하는 원칙이 있다. 이는 또한 진실로 섬길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빚졌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있으면서 온종일 우거지상을 하고 거짓된 표정을 지으며 가련한 척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역겹다! 네가 만일 그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빚졌는지 얘기 좀 해 주실래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너는 겉으로 말하지 않고 너의 실제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은 모두 외식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 빚졌다고 말하고, 아무 때나 기도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령의 감동이 없어도 울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그런 종교 의식과 관념에 점유되었다. 그들은 이런 것에 기대어 살면서 언제나 하나님이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기뻐한다고 여기고, 하나님이 겉면의 경건이나 슬퍼서 흘리는 눈물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여기는데, 그런 그릇된 자에게 어찌 장래성이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종교 내의 많은 사람들은 평생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다.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거나 십자가를 졌으며,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고난을 받고 인내하였다! 어떤 자는 죽는 날 아침까지도 금식하였고, 평생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옷을 입지 않았으며, 고난받는 것만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할 수 있었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었다. 그들이 고생하는 정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들의 의식, 그들의 관념, 그들의 정신 면모, 더 나아가 그들의 옛 성정까지 전혀 훈계를 거치지 않아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은 없었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인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으려는 심지는 그들의 열심과 그들의 인성 안에 있는 좋은 성격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도 몰랐으며, 그저 하나님을 위해 사역만 하고 하나님을 위해 고난만 받았을 뿐, 분별하는 것은 전혀 중요시하지 않았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는 중요시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는 더욱 몰랐다. 그들이 섬긴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지닌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생각해 낸,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거나 문자상에서 찾아낸 전설 속의 하나님이다. 그들은 자신의 그 풍부한 상상과 자신만의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행하려는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들이 섬긴 정확도는 너무 낮아,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사람들은 한평생 고난받기도 하였고,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항상 인내하고 사랑을 베풀며 십자가를 지고 세상 사람에게 훼방과 버림을 받으면서 어떤 고난이든 다 받았다. 그들은 비록 마지막까지 순복하기는 하였지만 정복되지 않아 정복된 간증이 없다. 고난은 적지 않게 받았지만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있는 그런 옛 사상, 옛 관념, 종교적인 행실, 인위적인 인식, 사람의 생각은 모두 훈계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내면에는 새로운 인식이 조금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조금도 없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고 인내하며 고난받는 것만 알 뿐, 옳고 그름도 모르고 더욱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면, 그렇게 실행하여 어떻게 변화가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보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 아주 많은 일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살고 있다고 여기며,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순복하고 있고 이미 하나님의 뜻을 만족케 하였다고 여긴다. 일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너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면 네가 그것을 할 수 있기에 너에게 본분을 하라고 하면 너는 머뭇거리지 않고 의연히 나아가며 반항하지도 않는다. 혹은 하나님 집에서 너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면 너는 아무런 원망도 없고 그 고통을 받을 수 있으며, 혹은 너에게 뛰어다니라 하거나 너에게 어떤 한 가지 일을 하라고 해도 너는 다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너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한다. 그러나 만일 “너는 성실한 사람인가? 너는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가? 너는 성정 변화가 있는 사람인가?”라고 진지하게 따지고, 진리로 각 사람을 맞추어 본다면, 합격될 사람은 하나도 없고 참으로 진리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 사람의 모든 행실의 근원이 무엇인지, 일을 하는 실질이 무엇인지, 성질이 무엇인지는 진리로 대조하기만 하면 다 정죄받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원인인가? 바로 사람이 자신을 알지 못하고 늘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본분을 하고 또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또한 믿음이 가득하고 도리가 가득하다고 여기고, 나중에는 자신에게 성과가 가득하다고 여기며, 부지중에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였고 이미 완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였으며 이미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였고 이미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바울을 놓고 말하자면, 바울은 지식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사역을 한 후 어떻게 여겼는가? 이미 그를 위해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여겼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그가 자신을 알고 자신을 해부할 수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의 겉면의 일부 행위, 일부 좋은 행실이나 일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좋다고 여긴 것이 그의 심령을 속였고 그의 진실한 모습을 감추었다…… 가령 네가 자신의 마음씨가 매우 착하다고 여기면서 동쪽 형제자매 집에 일이 있어도 가서 도와주고 서쪽 형제자매 집에 일이 있어도 가서 도와주며, 어느 형제자매 집에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가서 권면하되 이 사람 저 사람 다 권고해 준다. 어느 집에 일이 있으면 네가 가서 도와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일이 있을 때 해결하지 못할까 봐 매우 걱정하는데, 너는 호의가 특별히 많다. 자신의 힘이 닿는 대로 모든 사람을 도와준다고 할지라도 이것저것 많이 도와준 결과 어떠한가? 자신의 생명을 지체하고도 스스로 긍지를 느낀다. ‘봐, 내 마음씨가 얼마나 좋은지, 누구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나는 도와줄 수 있어. 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 스스로 득의양양해하며 자신의 행위에 아주 만족해하고 자신이 한 모든 것에 아주 만족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것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신이 아주 착하고 마음씨도 아주 좋으며 지금껏 사람을 미워한 적이 없고 해친 적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보기에 이것이 어떠한가? 그의 천연적인 애호와 천연적인 착한 마음이 그의 자본이 되었다. 이것이 그의 자본이 된 것은 괜찮지만 그는 이것을 당연하게 진리로 여겼다. 사실, 그가 한 것은 모두 인위적인 애호이지 아예 진리를 추구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가 한 이 모든 것은 다 헛수고이다. 왜냐하면 그가 한 모든 것은 다 사람 앞에서 한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도 아니며, 그가 한 이 모든 것은 진리를 실행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한 것이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한 것도 아니라 사람의 호의와 좋은 행위로 사람을 도와준 것이기 때문이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그가 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런 좋은 행위는 하나님이 보기에 정죄받는 것이고 기념되지 못하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려면 자신 안의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의의 있게 되는지를 알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있으며, 마음속으로 그것이 진정한 인생이고 그렇게 살아야 의의 있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사람이 살아서 이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순복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을 의식적으로 다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하고, 참으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전처럼 그렇게 다 상상으로 도리와 규례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하면 가장 힘들고, 도리와 규례를 지키면 가장 힘들며, 목표 없이 맹목적으로 일을 하면 가장 힘들다. 진리가 있어야 자유가 있게 되는 것은 참말이다. 진리가 있으면 수월하고 즐겁게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이런 정형이 있으면 진리가 있는 사람이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두 행위를 매우 중요시하기에 행위상에서는 변화가 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남과 서로 다투지 않는다든지, 남을 때리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는다든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든지, 공공단체의 물건은 못 하나라도, 널빤지 한 조각이라도 갖지 않는다든지, 심지어 손해를 보고 억울함을 당해도 소송하지 않는다든지, 확실히 행위상에서는 모두 어느 정도 변화가 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참 도를 받아들이게 되어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 그 밖에 또 성령 역사의 은혜를 체험하고 아주 열정적이며, 심지어 뭐든지 다 포기할 수 있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3년, 5년, 10년, 30년 믿은 후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않은 탓에 또 옛 병이 재발하고 본래보다 더욱 교만하고 자대하여 권력과 이익을 다투고, 교회의 돈을 탐내며, 제 욕심만 차리고, 지위를 탐하며, 누림을 탐내기 시작하여 하나님 집의 기생충이 되었다. 특히 그 ‘인솔자’들은 대부분 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행위의 변화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만일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면 조만간 흉한 몰골이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행위의 변화는 열심에서 나온 데다가 당시에 성령역사도 좀 있었으므로 사람이 열정을 내고 잠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하는 말과 같다. “한 가지 좋은 일을 하기는 쉽지만 한평생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 한평생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 해내지 못한다. 사람의 행위는 다 생명의 지배를 받는다. 생명이 어떤 것이면 행위도 그런 것이다. 자연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야 생명을 대표하고 본성을 대표하며, 위장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좋은 행위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환골탈태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며 시련하고 연단하는 것은 다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켜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하며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의 취지이다.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는 다르며,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과는 더욱 다르다. 행위상의 변화는 모두 도리에 근거해 열정으로 해낸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더욱이 성령의 인도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설사 간혹가다 성령의 지배를 좀 받는다 해도 그 사람의 생명 유로(역주: 흘러나옴)에 속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도 다르다. 행위가 아무리 좋다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증명할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증명할 수 없다. 행위상의 변화는 일시적인 허상이고 열정을 내는 표현이기에 생명의 유로에 속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있다 하여 꼭 진리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열심이 있으면 도리에 근거해 규례를 지킬 수밖에 없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실질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도리는 진리를 대체하지 못한다…… 일부 새 신자들은 하나님을 믿은 후 세속을 벗어났다고 여긴다. 이방인들과 만나면 할 말도 없고 친척, 친구들과 드물게 왕래하여, 이방인들이 “이 사람이 정말 변했구나.”라고 말하니, 그는 ‘내 성정이 정말 변했나 봐, 이방인들도 다 내가 변했다고 하니.’라고 여긴다. 사실 그의 성정이 정말 변화되었는가? 변화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겉면이 달라진 것에 불과하다. 생명을 놓고 말하면 전혀 변화가 없고 아직도 원래대로인 옛 본성이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사람에게 어떤 때는 성령 역사가 있기 때문에 좀 열정을 쏟고 겉면에 변화가 좀 있어 좋은 일을 좀 하는데, 그것은 성정 변화와는 다르다. 너에게 진리가 없으면 일을 보는 관점이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심지어 이방인처럼 너의 가치관과 인생관도 여전히 변화가 없으며, 최소한 구비해야 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마저도 없다. 그러면 성정 변화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와의 구별>에서 발췌

『아마 네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사람에게도 악담을 한 적이 없고, 한 번도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리스도와 접촉하면서 솔직한 말을 하지 못하고, 착실하게 일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말씀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너의 친척과 친구, 너의 아내(남편)와 아들딸과 부모에게는 아주 우호적이면서도 아주 충성하며, 지금까지 그 누구의 덕도 보지 않았을지라도, 네가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설령 네가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너의 부모와 가족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었다고 해도 나는 너를 악인이라고 할 것인데, 그것도 궤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 너는 네가 사람과 합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리스도와 합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고, 네가 좋은 일을 좀 했다고 해서 그것을 그리스도와 합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너는 선심을 쓰는 교묘한 방법으로 하늘이 베풀어 주는 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너는 네가 한 좋은 일로 너의 순복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너희 각 사람은 모두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서도 말끝마다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말한다. 너희의 그런 신앙은 마땅한 보응을 받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우선 너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는지, 그 일이 어떤 성질에 속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그 일이 본분을 하는 것에 속한다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이 본분을 대충대충 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까?’라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일에서 마땅히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실행의 길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겠는지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일을 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이렇게 가까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 의식이 아니고 겉면의 행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여 진리에 따라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네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하지만 일을 할 때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한다면, 그런 감사는 겉면의 행실이다. 본분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너는 언제나 ‘이 본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진리를 찾고 구하며,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사람은 지금 일이 닥치기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이런 일도 할 줄 알고 저런 일도 할 줄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자리는 없고 모두 자신의 뜻뿐이다. 또한 행실이 적절한지, 진리에 부합되는지에는 상관없이 그저 목을 곧게 세워 자신의 뜻대로 행할 줄밖에 모르고, 평소에는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것 같으나 일할 때는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일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하겠어요. 전에 종교 의식을 하던 것이 습관이 되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데에 아무런 효과가 없어 가까이하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전혀 없고 오직 그 자신뿐이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 전혀 진리대로 할 수가 없다. 진리대로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며,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뜻은 흔히 사람이 보기에 아주 좋고 다 옳고 별로 진리에 어긋나지도 않는 것 같아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사람은 그런 일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이런 참된 정형과 이런 소망이 없으면, 그것은 사람이 실행 방면에서 범하는 가장 큰 착오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계속 믿는다면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의의가 또 어디에서 실현되겠느냐?』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진리를 최대한으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겉면의 행실이 좀 있으면 ‘나는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 내가 지금 본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지 않았는가? 이 일에서, 내가 본분을 하고 있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은 “나는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한다. 그럼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일종 행실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것도 아마 정죄받고 칭찬받지 못하고 기념되지 못할 것이다. 더욱 엄격하게 해부하면 네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고, 너의 행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네가 가로막지 않고 방해하지 않으며 파괴하지 않고 그 어떤 진리도 어기지 않으며 논리에 부합되고 도리에 부합되는 것 같지만 너는 악을 행하고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대체 성정 변화가 있는지 혹은 진리를 실행하는지를 너는 하나님이 요구한 근원에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상상과 뜻에 부합되거나 너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말씀하고 하나님이 네가 한 것이 진리가 있는지,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는지를 말씀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가늠해야 정확하다. ……하나님이 칭찬하는지 칭찬하지 않는지를 어디에서부터 보는가? 최소한 네가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매우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네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거나 어떤 한 가지 사역을 할 때 또는 평소에 네가 성령이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고 성령이 너에게 역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너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말씀과 일치할 수 있다. 네가 어느 정도에 이르기까지 경력(역주: 체험)하였을 때 너는 네가 이전에 한 모든 것이 그래도 비교적 적합하다고 느낄 것이다. 만일 네가 한동안 경력하여 자신이 이전에 한 어떤 일들이 자신이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고 자신이 보기에도 만족스럽지 못하며 확실히 진리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네가 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한 것임을 증명하고, 너의 섬김에 거역과 대적이 가득하고 사람의 행실이 가득하였음을 증명한다. ……겉으로 아마 공을 좀 들일 수 있다든가, 고생을 좀 할 수 있다든가, 상면의 사역안배를 시행할 수 있다든가, 너에게 어디에 가라고 하면 어디로 가는 것은 다만 행위가 변화된 것일 뿐 성정의 변화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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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