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26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을 분별하는 원칙

1.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중요시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생명이 부단히 자라는지 아니면 암투를 벌이고 마구 소란을 피우며 그럭저럭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2. 진리를 깨닫고 본분을 잘하며 실제에 진입하기를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겉면의 행실과 겉면의 열정을 중요시하며 자신의 잘못된 길을 계속 가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3. 일이 닥치면 진리를 찾고 구하여 자신의 패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흐리멍덩하고 육체를 헤아리며 안일을 탐하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4. 본분을 함에 있어서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지 아니면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고 기만하며 죽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베드로가 온전케 된 것은 책망과 연단을 경력(역주: 체험)하여 도달한 것이다. 베드로는 “저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겠나이다. 제가 하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하기를 구하나이다! 설사 형벌받고 심판받을지라도 기꺼이 원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쳤다. 베드로는 사역하고 말하는 것과 모든 삶은 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었다…… 베드로가 중시한 것은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었고, 중시한 것은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자신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겠는지를 중시하였다. ……베드로는 진실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 참된 인식을 갖기 위해 경력하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실제로 살아내기 위해 경력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여러 해 동안 성령 역사를 경력하였기에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은 실제적이었고, 자신에 대한 인식 또한 깊었다…… 그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고, 자발적인 사랑이었다. 그는 보수를 바라지 않았고, 그 어떤 이익도 바라지 않았다. ……

……베드로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흡족케 하지 못하면 평안을 느끼지 못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하면 통회하곤 했다. 그 후, 베드로는 적합한 길을 찾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일상생활의 자그마한 일에서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도록 자신에게 요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옛 성정에 대해 대충 넘어가지 않고 늘 진리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였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였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에 순복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형벌,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 환난, 생활의 궁핍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피조물로서 본분을 한 것이 아닌가? 형벌과 심판이든, 환난이든 죽기까지 순복하는 데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한 성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진보하기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소극적이고 나태하기를 바라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흐리멍덩하여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을 늘 미혹하려 한다. ……그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한다. 그는 죄를 귀히 여기고 자기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가는 것마저도 가로막고 다른 사람이 진리를 사모하는 것마저도 가로막는다. 그에게 미혹된 사람은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흑암 속으로 떨어지며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진리에 대해 모호하며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진다. 그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마저도 가로막으면서 그 바보들을 다 자기 앞으로 끌어간다. 그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보다는 그가 믿는 것이 그의 옛 조상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고 자기 마음속의 우상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자신이 믿는 이가 도대체 하나님인지 아니면 사탄인지를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것이 좋겠다. 만일 너 자신이 믿는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우상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만일 너 자신이 도대체 누구를 믿는지 모른다면 자신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나를 믿는다고 말하지 말라. 그 말을 나는 이미 싫증나게 들었고 더는 듣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너희가 믿는 것은 모두 너희 마음속의 우상이고 모두 너희들 가운데 있는 불량배들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들으면 머리를 흔들고 사망의 말을 들으면 온 얼굴에 웃음을 띠는 그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자손들이고 모두 도태될 대상들이다. 교회에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을 미혹하는 일이 나타날 때면 그들은 기어코 사탄의 편에 선다. 그들을 사탄의 심부름꾼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또 너무 억울하다고 여긴다. 그들에게 분별력이 없다고 말해도 그들은 매번 언제나 비진리의 편에 서고 중요한 시기에 한 번도 진리의 편에 서지 않고 한 번도 진리를 위해 일어나서 변론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말로 분별력이 없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기어코 사탄의 편에 서는가? 무엇 때문에 여태껏 진리를 위해 공평하고 합리적인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가? 정말로 그들이 일시적으로 흐리멍덩하여 초래된 것인가? 분별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진리의 편에 설 수 없다. 이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죄악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설명하지 않는가?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사탄의 후계자임을 설명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늘 사탄의 편에 서서 사탄과 똑같은 말을 하는가? 그들의 일언일행과 표정이 곧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혐오하는 사람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그들이 사탄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은 곧 사탄이 자기를 위해 일생 동안 분투하는 이 작은 귀신들을 아주 사랑하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뻔한 사실이 아닌가? 네가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안중에 두지도 않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기색을 조금이라도 내비치기만 해도 즉시 따르는가? 이것은 무슨 문제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서 발췌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란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겉면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일이 닥치면 진리를 실행하려 하고 양심을 어겨 말하거나 일하지 않으며, 또한 일이 닥치면 지혜가 있고 어떤 환경에서나 다 일을 하는 원칙이 있다. 이는 또한 진실로 섬길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빚졌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있으면서 온종일 우거지상을 하고 거짓된 표정을 지으며 가련한 척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역겹다! 네가 만일 그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빚졌는지 얘기 좀 해 주실래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너는 겉으로 말하지 않고 너의 실제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은 모두 외식하는 사람이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겉모습에서는 알아볼 수 없지만 그의 모든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긍하게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네가 날마다 복음을 전하면서 이 사람에게 전하고 저 사람에게 전하여 이 사람을 구원받게 하고 저 사람을 구원받게 하였어도 결국 너 자신이 규례와 도리에서 살고 있다면,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종교 인사에 속하며, 역시 외식하는 사람이다.

……

사람의 겉면의 좋은 행위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육체를 대표한다. 겉면의 방식이 아무리 좋아도 생명을 대표하지 못하며, 기껏해야 사람의 성정만 대표할 뿐이다. 사람의 겉면의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한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께 빚졌다는 말만 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에 공급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는데, 너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가? 너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그것은 모두 터무니없는 것이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너의 애호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성격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너의 애호는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고, 너의 습관은 다 하나님이 증오하고 버리는 것이다. 네가 빚졌다고 느껴지면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늘 사람 앞에서 너 자신을 드러내는데,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겠는가? 네가 늘 겉으로만 행한다면 그것은 네가 가장 허황된 사람임을 뜻한다. 겉면의 좋은 행위만 있고 실제가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 속하는가? 외식하는 바리새인에 속하고 종교 인사에 속한다! 만일 너희가 겉면의 방식을 벗어 버리지 않고 변화될 수 없다면 너희가 외식하는 성분은 갈수록 많아진다. 외식하는 성분이 많아질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데, 최종에 그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되고야 말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날마다 닥치는 일에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너의 심지를 동요시킬 수 있는 것, 너의 마음을 점유할 수 있는 것, 너를 통제하여 본분을 하지 못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 이런 일을 모두 참답게 대해야 하고 모두 자세히 성찰해야 하며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 이것은 다 경력 가운데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극적이 되면 일에서 손을 떼고, 번번이 좌절을 당하면 일어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고 범속한 사람이며, 평생 동안 진리를 얻지 못하는데 어찌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는가? 똑같은 일이 너에게 10번 임하는데 네가 그중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범속한 사람이고 폐인이다. 영리한 사람, 참으로 소질이 있고 영이 통하는 사람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일이 10번 임하면 아마 8번은 그 일에서 얼마의 계시를 받고 교훈을 얻고 깨우침을 받아 성장할 것이다. 범속한 사람은 10번의 일에서 한 번도 생명에 도움을 얻지 못하고, 한 번도 변화를 받지 못하며, 한 번도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 이러면 끝장이다. 일이 임할 때마다 좌절을 당하여 다른 사람이 그를 잡아당기고 이끌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달래야 한다. 달래지 않고 이끌지 않고 때리지 않고 잡아당기지 않으면, 끝장이고 일어나지 못한다. 일이 임할 때마다 좌절당할 위험이 있고 타락할 위험이 있는데, 그러면 끝장이 아닌가? 또 무슨 구원할 여지가 있겠는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 심지가 있는 그 부분이고, 마음속으로 진리와 정의를 지향하는 그 부분이다. 사람에게 심지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정의를 지향하고,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진리를 지향하고, 양심이 있는 그 부분인데,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이 부분을 통해 네 패괴 성정의 그 방면을 변화시킨다. 너에게 만일 이런 것이 없으면 너 같은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마음속에 정의를 갈망하는 것이 없고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없으며, 사악한 일을 만나면 벗어날 의지가 없고 고통받을 심지가 없다. 그 밖에, 너의 양심이 마비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기관도 마비되어 진리에 대해, 닥친 일에 대해 민감하지 않고 무슨 일에 대해서도 분별이 없으며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면 스스로 처리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독립적 능력이 조금도 없다. 이러면 구원할 방법이 없다. 이런 사람에게는 조금도 취할 만한 부분이 없고 그 무슨 역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없다. 그의 양심도 마비되고 생각도 혼탁해졌으며, 심령의 깊은 곳에도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갈망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이 진리를 아무리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해도 그에게는 호응이 없다. 마치 이미 죽은 것과 같은데, 이러면 끝난 것이 아닌가? 네가 보라, 한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은 인공호흡을 하면 구원할 수 있고 그 의식을 회복시킬 수 있다. 만일 이미 숨이 넘어가고 영혼이 이미 떠나갔다면 아무리 인공호흡을 해도 헛수고이다. 한 가지 일이 닥쳐도 네가 뒤걸음질치고 한 가지 일이 닥쳐도 너에게 간증이 없으면 너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면 너는 철저히 끝난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리석은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너희 각 사람을 온전케 하기를 원한다. 현재를 놓고 보면, 비록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데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하나님에게서 육체적 평안을 좀 얻으려고만 할 뿐 더 많고 더 높은 계시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이는 사람의 마음이 아직도 늘 겉으로 돌고 있음을 설명한다. 비록 사람의 사역과 사람의 섬김,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뒤섞임이 좀 적어지기는 하였지만, 사람 안의 본질을 놓고 말하면, 사람의 낙후한 사상을 놓고 말하면 아직도 늘 육체가 평안을 얻고 누림을 얻는 것만 추구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조건과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지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아직도 범속하고 부패하며 변화는 조금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전혀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는데,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해 믿는 것처럼 대충대충 하고 건성으로 대하며, 다만 그날그날 되는대로 살아갈 뿐이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기를 추구하여 더 많고 더 풍부한 것을 얻음으로써 오늘의 하나님 집에서의 더 부유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더 많은 축복을 받는 사람은 매우 적다. 만일 네가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땅에서의 약속을 받을 수 있기를 추구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깨우침 받기를 추구하며 허송세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이래야 하나님께 온전케 될 자격이 있고 조건이 있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에서 발췌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은 사실 사람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사람이 본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내는 것인데, 그러면 사람이 자기의 본분을 한 것이다…… 만일 사람이 섬기는 중에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해 내지 못하고, 본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된다. 그런 사람은 바로 소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고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사람을 또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자기의 본분을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자기의 본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점차 변화를 얻고, 또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네가 자신의 본분을 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또한 네가 표현하는 것도 더욱 실제적이 된다. 그러나 건성으로 본분을 할 뿐 진리를 찾거나 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역시 도태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변화되지 못한,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의 행동에는 뒤섞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드러내는 것은 온통 악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1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자신의 패괴 정형에 결부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을 교통할 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을 교제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인식도 교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패괴를 유로(역주: 흘러나옴)했든지 다 마음을 활짝 열고 모습을 드러내어 형제자매들에게 진실한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패괴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사람을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도록 인솔하는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

2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가장 공정하고 완전히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책망과 훈계가 없으면 사람이 자신을 알기 쉽지 않으며,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것이며,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더 깊이 경력해야 더 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

3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을 때 진리를 찾고 구하여 해결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관념과 생각을 반격할 수 있으며, 설사 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진리임을 믿고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

4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대충대충 하여 속이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늘 감사의 마음이 있고,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려 하며, 자신에게 패괴가 너무 많음을 몹시 증오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상심케 하거나 고통받으시게 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는 심지를 세울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본분을 하는 중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든 달가워하고, 어떤 곤란이 닥치든 소극적이지 않고 일을 그만두거나 후퇴하지 않으며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굳게 섭니다. 그들은 패괴를 유로하면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일 수 있고, 확실히 본분을 더욱 잘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할 수 있으며, 본분을 하는 중에 자라날 수 있습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본분을 함에 충성심이 있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이 급해하시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하며 매사를 참답게 대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추구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입니다.』

<총집 (1)ㆍ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반드시 각 부류 사람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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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