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52 진실로 자신을 알아가는 원칙

1.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자신의 패괴된 진상과 본성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만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2. 반드시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의 드러냄을 받아들여야만 패괴된 인류가 도대체 어떤 놈인지를 진실로 인식할 수 있다.

3.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인식해야만 자신의 추악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보잘것없는 가련한 몰골을 인식할 수 있다.

4. 자신의 과오, 실패, 좌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시켜 자신을 반성하여 자신의 사탄 본성 실질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성정이 변화되려면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드러낸 것에 근거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만이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알고, 자기 본성 안에 있는 각종 사탄의 독소를 알며, 자신의 우매 무지를 인식하고, 자기 본성의 취약함과 소극적인 요소를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밝히 알고 난 후, 참으로 육체를 배반하게 되고,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견지하게 되고, 참으로 심지가 있어 절대적으로 성령께 순복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복하게 된다면, 너는 베드로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없다면, 이 길은 걷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자신을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주로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해 낼 뿐만 아니라 일부 엄한 말씀으로 사람 안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해 내지만 이러한 심판 방식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미 사람의 육체를 정죄하였는데, 그렇다면 이런 말은 저주하는 말씀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하는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모습을 폭로하는 것인데, 이렇게 폭로하는 것으로 너를 심판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없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통회하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너무 많이 빚졌다고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도달할 수 없다고 여긴다. ……육체의 본질이 사탄에게 속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한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한 사실은 그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가 너를 저주하는 것은 너로 그를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육체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가 너를 형벌하는 것은 너로 각성하게 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이 너무나 자격이 없음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는 모두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고난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없다. 안에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이 임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겉에서 떠돌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 연단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보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이 너무 많아 어려움이 많이 닥치면 이겨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되며, 자신의 패역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서라야 참으로 자신의 실제적인 정형을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더욱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나 소극적인 방면에서나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경력(역주: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정형도 장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하였음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노래도 부를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가운데서 자신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또 훈계하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 또 형벌하는 것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으며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한 방면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고 한 방면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행한 심판과 사람에게 행한 형벌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하나님의 시련이 없고 하나님이 너희로 하여금 받게 한 고난이 없다면, 사실대로 말해서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일이 클수록, 사람이 더욱 고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역사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을 더욱 설명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의 마음이 더욱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으로 도달하는가? 만약 고난과 연단이 없고 고통스러운 시련이 없으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전부 은혜이고 전부 자비와 긍휼이라면 네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시련 속에서 한 방면으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미천하고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한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얼마의 환경을 배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환경 속에서 더욱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경력할 수 있게 한다. 비록 고통이 매우 커서 때로는 이겨 낼 수 없고 심지어 비통이 극도에 달하지만 경력한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 사역이 참으로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기초에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비로소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비, 긍휼만 있다면 사람이 진실로 자신을 알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본질을 인식할 수도 없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심판과 연단을 통해야만 연단 속에서 네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일무소유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연단과 심판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은 결코 아이들 장난이 아니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부지중에 너는 하나님의 실질을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너 자신이 더 높고 더 아름다운 경지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최종에 너는 자기의 추악한 영혼으로 인해 수치를 느끼고, 더욱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그때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너의 행위는 점점 적어지고, 너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점점 가까워지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애모(愛慕)의 마음도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간 상징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에서 발췌

『 하나님은 자신만의 소시소유가 있다. 하나님의 모든 발표와 유로(역주: 흘러나옴)는 그 자신의 실질과 신분을 대표한다. 이 소시소유와 실질과 신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위로 그리고 인류에 대한 증오도 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에는 명랑함, 활발함 혹은 마비되어 무감각함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만물의 생령(生靈)의 주재자가 구비한 것이고, 조물주가 구비한 것이다. 그의 성품은 존귀와 권세를 대표하고, 고상함과 위대함을 대표하며, 더욱이 지고지상함을 대표한다. 그의 성품은 권병(역주: 권세)의 상징이고, 모든 정의와 모든 미(美)와 선(善)의 상징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과 흑암이 압도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상징이고, 그 어떤 피조물도 범할 수 없는(또한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상징이다. 그의 성품은 최고 권력의 상징이므로, 그 어떤 한 사람이나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그의 사역과 그의 성품을 방해할 수 없고, 더욱이 방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은 단지 동물보다 약간 높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 자체에는 권병과 자주(自主)가 없고 자아를 초월하는 능력이 없으며, 오직 나약하게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지배를 받는 실질만 있다. 하나님의 ‘희(喜)’는 정의와 광명이 존재하고 탄생함으로 인한 것이고, 흑암과 사악이 훼멸됨으로 인한 것이다. 그의 ‘희’는 그가 인류를 위해 광명을 가져왔고, 인류에게 아름다운 삶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의 ‘희’는 정의로운 것이며, 모든 긍정적 사물이 존재함의 상징이고, 더욱이 길함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노(怒)’는 비정의적인 사물의 존재와 방해가 그의 인류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사악과 흑암이 존재하고 진리를 몰아내는 일이 존재하고 더욱이 아름답고 선한 사물에 저촉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는 모든 부정적인 사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징이고, 더욱이 그가 본래 거룩하다는 상징이다. 하나님의 ‘애(哀)’는 그가 기대했던 인류가 흑암 가운데 떨어졌고 사람에게 행한 그의 사역이 결코 그의 뜻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가 사랑하는 인류가 결코 다는 광명 속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무고한 인류를 위해 슬퍼하고 근심하며, 성실하지만 우매한 사람을 위해 슬퍼하고 근심하며, 선량하지만 주견이 없는 사람을 위해 슬퍼하고 근심한다. 그의 ‘애’는 그의 선량함의 상징이고, 긍휼함의 상징이고,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인자함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낙(樂)’은 물론 원수를 패배시키고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얻은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을 몰아내고 멸한 것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며, 또한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삶을 얻음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낙’은 사람의 기쁨과 같은 것이 아니라 기쁨보다 더 높은, 아름다운 열매를 얻은 기분이다. 그의 ‘낙’은 인류가 이때부터 고난을 받지 않는 상징이고, 인류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가는 상징이다. 그러나 인류의 희로애락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의나 광명 그리고 아름다운 사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늘의 은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해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무사하며, 하나님은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과 선의 기원이고, 사람은 모든 추함과 사악함을 계승하고 표현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와 아름다운 실질을 영원히 바꿀 리 없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정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에서 발췌

『네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고 네가 패괴를 보고 교만 자대의 비열함과 추함을 인식하게 되면, 역겹게 느껴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 네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일을 좀 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면 마음에 누림이 있을 것이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파헤치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면 마음이 매우 홀가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정 변화를 추구하려면 첫째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에 진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 분별력이 있게 되고, 분별력이 있어야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꿰뚫어 보아야 육체를 배반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도리 알기를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신학 지식을 얻기를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과 사람의 패괴 본성, 그리고 사람에게 참으로 부족한 점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에 도달함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다. 베드로가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정확하게 실행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가장 훌륭하게 협력한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수백 번의 시련을 겪는 가운데서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 사람을 드러내는 말씀, 사람에게 요구한 말씀이라면 자신에게 엄격히 맞추어 보고 자신을 성찰하였으며 하나님 말씀의 뜻을 더듬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하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고 마음에 새겨 아주 좋은 효과를 얻었다. 그는 이렇게 실행하여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신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을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실질과 본성도 인식하였고, 사람의 여러 가지 부족한 면도 인식하였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사역하는 가운데서 어느 누구나 편차가 어느 정도 생기는 것을 피하기 어렵기에 과오나 편차를 발견한 후 즉시 그것을 잡고 잘 반성해야 하며, 이후에 다시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점검하고 해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과오가 없을 때, 사람들은 별로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고, 자신이 매우 좋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불복합니다. 반드시 과오가 있게 된 후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겪은 후에야 진실로 반성하게 됩니다. 그때에 사람은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에 대해 마음속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대조하게 되는데, 깊이 생각하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 나 같은 사람은 정말 그렇구나.’ 한 번으로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번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철저히 인식하고 머리를 숙이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게 됩니다. 어떻게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지,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깨달아야 변화될 수 있습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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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소시소유(所是所有):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⑤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⑥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⑦무사(無私): 이기적이지 않고, 사심이 없는 마음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