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46 다른 사람에게 사과하는 원칙

1. 만약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나 타격을 주어 소극적이 되게 하였다면 반드시 주동적으로 사과하여 양해를 구해야 한다.

2. 다른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도 원칙이 있는데,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절대 적그리스도, 악인, 악령에게는 사과하지 말아야 한다.

3. 다른 사람에게 사과함에 있어서 반드시 진실해야지 가식적으로 몇 마디 얼버무리는 형식적인 말만 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한 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4.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의 패괴된 부분을 인식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사탄 본성을 해부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유익과 도움을 얻게 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만약 어떤 배경이나 어떤 환경에서 네가 하는 것이 아주 지혜롭거나 이유가 되거나 충분하다고 여겨 후에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한 후에도 여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뉘우칠 뜻도 없었다. 그러나 저녁에 성찰할 때, 혹은 어느 날 깨우침을 받고 가책을 받게 될 때면 너는 그 당시에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이유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방식은 마땅히 바꿔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 예를 들어, 네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하여 그 사람을 기만하였거나 네가 한 말에 뒤섞임이 있었거나 자신의 속셈이 있었다면, 그에게 찾아가 해부하며 말하여라. “제가 그때 당신에게 한 말속에는 제 자신의 속셈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사과를 받아주실 수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부하고 드러내야 한다. 해부하고 드러낼 때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좌담 기록ㆍ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은 어느 때든지 무턱대고 순복하고 어느 때든지 자신을 알려 하고 어느 때든지 자신의 처세 수단으로 새로운 사물을 처리하며 혹은 어느 때든지 ‘지혜’로 한 가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데, 이런 사람은 분별이 없는 사람이다. 마치 천성적으로 천대받는 자처럼 무례한 대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데, 어느 때든지 똑같고 변화될 때가 없다. 이것은 흐리멍덩하고 분별이 조금도 없으며 각 지역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적절한 대책을 세울 줄 모르고 사람에 따라 달리 방법을 세울 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경력(역주: 체험)이 있는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 자신을 아는 것이 일정한 정도에까지 이르러 악령 역사가 있는 사람을 보아도 여전히 머리 숙여 사죄하면서 감히 일어나 정죄하지 못하며 뚜렷한 성령 역사인데도 감히 일어나 순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악령도 하나님 손에 있다고 여기면서 전혀 감히 일어나 반항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존엄이 없는 사람인데, 전혀 하나님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질 수 없다. 그런 바보는 분별을 조금도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경력법은 마땅히 없애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안중에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경력에 관하여>에서 발췌

『……만약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놓으라면 네게는 아마 그런 용기가 없을 것이고 그런 심지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네가 얼굴을 내려 놓지 못하고 체면을 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행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면 자신의 패괴 실질과 자신의 궤사하고 음험한 면에 정확히 직면할 수 없고, 늘 회피하는 상태, 회피하는 정형 속에 처해 있으면서 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일에서 고통받거나 대가를 치르지 못한다. ……하나님이 실행하라고 하는 진리에서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실제적으로 하고 실행하고 경력해야 한다…… 경력을 함께 나누고 경력을 교통하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함께 나눈다는 것은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과 너의 정형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패괴 성정을 다 말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분별하게 함으로 긍정적인 것은 받아들이게 하고 부정적인 것은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함께 나누는 것이고, 진실하게 교통하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우리가 어느 방면에서 진리에 어긋나고 일을 할 때 원칙을 어겨 하나님의 선민에게 해를 가져다주었다면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여 회개하는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진실한 순복입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진실한 순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아무리 정확해도 그는 불복하며 심지어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깁니다. 그런 사람은 인성이 없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아무리 사실에 부합되고 진리에 부합되어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런 것을 이치로 이해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이치로 이해시킬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인성이 없는 사람이며 짐승이고 야수이고 마귀입니다. 어떻게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설교 교통 (7)ㆍ하나님께 순복하는 진실한 진입>에서 발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얼마를 깨닫든지 빨리 그대로 실행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역할 때에 실수하여 사실도 알아보지 않은 채 한 자매님을 한바탕 훈계하였다가 나중에 알아보고 나서 잘못 훈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은 얼른 사과하는데, 그 자매에게 “제가 잘못 훈계했습니다. 그 일을 제가 조사도 거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당신이 그렇게 한 줄로 여겼는데 미안합니다. 저를 어떻게 책망해도 좋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기꺼이 실행하려는 사람이 아닙니까? 무슨 일이든지 듣고 나서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실행하고, 좌절과 실패를 당하면 다시 바로잡는데,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잘못하여 다른 사람이 그를 잘못했다고 말해도 여전히 뻔뻔스럽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신을 위해 간사하게 변명만 늘어놓고 죽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착오를 인정할 수 없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분명히 일을 잘못하고도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 지배를 받는 것입니까? 그에게 하나의 본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체면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고 자신의 체면 때문에 아닌 것도 옳다고 말하고 틀린 것도 맞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탄의 귀신 본성이 아닙니까? 큰 붉은 용의 본성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는 만약 자신이 진짜 착오를 범했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습니까? 대담히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용감하게 잘못을 인정하면서 “제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제가 당시에 어떻게 생각해서 그런 잘못을 범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이와 같은 일에서 다시는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곧이곧대로 말한다면 이는 바로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입니다.』

<설교 교통 (7)ㆍ하나님 말씀 “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 관한 설교 교통>에서 발췌

『어떤 사람은 규례를 지킵니다. 규례는 괜찮게 지키지만 그의 마음에는 궤사함과 기만이 있고 나쁜 동기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에서 일을 저지르고 있으며 그의 속셈이 바뀌지 않고 줄곧 패괴 정형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아무리 규례를 지킬지라도 성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입으로는 듣기 좋게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달가워하지 않는데, 그것은 어찌 된 일일까요? 안팎이 모순됩니다. 그럼 그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의 마음이 정결함을 받지 못하고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진리를 실행하게 해야 그런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입은 마음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실행하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는 말해도 마음에서는 진리를 실행하려 하지 않는데,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하였다고 합시다. 입으로는 그 사람에게 사과하겠다고 말하지만 속으로 불복한다면 그런 사과는 그저 입으로 말하는 것에 불과하지 사실은 진실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이 궤사함과 기만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가상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가상을 보이고 진상을 가리는 것은 궤사함이 아닙니까?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 일에서 실행 원칙이 있고 마음이 올바르고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 것이 내심에서 우러난 것이라면 진리를 실행하기 쉽습니다.』

<설교 교통 (5)ㆍ진리를 추구하는 가치와 의의>에서 발췌

『그렇다면 무엇을 진실하게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할까요? 이 시점에서 당신의 가장 큰 과오를 말하고 하나님의 선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당신이 인정해야 할 잘못을 말하며 그런 일에서 자신을 알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선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은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몇 마디 말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허위적으로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면 백 마디를 말해도 소용없고 듣는 사람이 없기에 진실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제가 아까 누구누구를 공평하지 못하게 대했는데, 잘못했습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말하면 되고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로 자신을 알게 되면 몇 마디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설교 교통 (7)ㆍ어떤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는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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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