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33 교만 자대를 해결하는 원칙

1.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이 진실로 자신의 사탄 본성 실질과 패괴된 진상을 인식하게 될 때면 이지가 있게 된다.

2. 반드시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 징계와 드러내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와 좌절, 시련과 연단을 겪게 되면 자신도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3. 반드시 하나님은 지고지상하시지만 도성육신 하나님은 낮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교만 자대는 바로 사탄의 본성 실질임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4.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알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경외와 두려움이 생기면 자신을 낮출 수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배반하지 않게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너에게 정말로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최후에 자신의 뜻과 자신의 사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보라,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 사람이 나쁜 짓 하는 것을 해결하려면 먼저 사람의 본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성정 변화가 없으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네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고 네가 패괴를 보고 교만 자대의 비열함과 추함을 인식하게 되면, 역겹게 느껴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 네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일을 좀 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면 마음에 누림이 있을 것이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파헤치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면 마음이 매우 홀가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성정이 변화되려면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드러낸 것에 근거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만이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알고, 자기 본성 안에 있는 각종 사탄의 독소를 알며, 자신의 우매 무지를 인식하고, 자기 본성의 취약함과 소극적인 요소를 알 수 있다.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으면 그 어떤 문제도 전혀 해결할 수 없고, 생명 성정도 절대 변화될 수 없다. 반드시 어떤 깊이까지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즉,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 안에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그런 것들이 어디에서 생겨났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리고 네가 그런 것들을 정말 증오할 수 있는지, 네가 자신의 추한 영혼과 사악한 본성을 보았는지 하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자신의 진상을 보았다면,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을 때, 네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면, 그때는 육체를 배반할 수 있어 진리를 실행할 힘이 생기며,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이전에는 왜 육체를 따랐느냐?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고, 아주 적합하고 정당하다고 여기면서 무슨 잘못한 점이 없고 심지어는 완전히 정확하다고까지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추하고 비열하고 얼마나 가련한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그 후에는 그렇게 자고(自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교만방자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렇게 득의양양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착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살 면목도 없어.’라고 여기게 된다. 그가 정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는 것을 보게 되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보게 되면, 그때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고, 사람의 모양도 비로소 어느 정도 있어 보일 것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증오할 때에야 육체를 배반할 수 있다.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육체를 배반할 수 없다. 참으로 자신을 증오하는 여기에도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빈궁하고 가련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것이며, 자신의 가련한 영혼, 더러운 영혼을 아는 것이다. 참으로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그 효과에 도달하였다면, 진실로 자신을 알게 된 것인데, 자신을 인식하는 기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때에야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고, 심지어 자신을 저주하면서 정말로 사람이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모양이 전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어느 날엔가 정말로 죽음의 위협이 임하게 될 때면, 그는 ‘아!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이야, 역시 하나님은 공의로우셔. 나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해!’라고 여기게 된다. 그때에는 그가 불평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너무나도 가련하고, 너무나도 더럽고 패괴되었으니 하나님께 멸망돼야 해. 이런 영혼은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주로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에서 발췌

『너희의 본성은 형벌과 저주가 없으면 굴복하려고 하지 않고, 탄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 없으면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고 무가치하다! 형벌과 심판을 사용하지 않으면 너희를 정복하기 어렵고, 너희의 불의와 불복을 압도하기 어렵다. 너희의 옛 성정은 정말 깊이 뿌리박혔다. 만일 너희를 보좌 위에 올려놓는다면, 너희는 분수를 모르고 무모하게 날뛸 것이고 더욱이 어디로 갈지도 모른다. 너희는 자신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조차 모르는데, 어찌 조물주를 알겠는가? 오늘의 시기적절한 형벌과 저주가 없다면 너희의 말일이 벌써 너희에게 임했을 것인데, 하물며 너희의 운명이야 더욱 위태로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기적절한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너희가 어느 정도까지 거만해질지 모르고, 어느 정도까지 타락될지도 모른다. 이 형벌과 심판이 너희를 오늘까지 이끌어 왔고, 너희의 삶을 유지해 왔다. 만일 여전히 너희의 ‘아비’가 그렇게 너희를 ‘교육한’ 것에 따른다면, 너희는 어떤 세상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모른다! 너희에게는 전혀 자기를 통제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능력이 없다. 너희와 같은 사람이 능히 따르고 순복하고 엇나가지 않고 방해하지 않으면, 나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너희는 마땅히 오늘의 형벌과 심판을 더 잘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또 무슨 선택이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6)>에서 발췌

『사람의 성정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고난, 연단이나 혹은 훈계, 징계, 책망을 거친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하며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속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 속에서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된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훈계를 겪은 사람이라야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침착하고 듬직하다.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관념을 버리고 진심으로 순복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나 소극적인 방면에서나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경력(역주: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정형도 장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하였음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노래도 부를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가운데서 자신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자신을 어느 경지까지 낮추어 이 더럽고 패괴된 사람들에게 그의 사역을 함으로 이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하여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거하면서 사람을 목양하여 사람의 필요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극도로 패괴된 이 사람들에게 그의 지극히 큰 구원 사역, 지극히 큰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큰 붉은 용의 심장부에 와서 가장 패괴된 이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모두 변화되고 새로워지게 한다. 하나님이 받는 엄청난 고통은 하나님의 육신이 받는 고통만이 아니라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받는 엄청난 굴욕이다. 그는 지극히 비미은장하여 보통 사람이 되었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육신의 형상을 취함으로 사람으로 그에게 정상 인성의 생활이 있고, 정상 인성의 필요가 있음을 보게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지극히 낮추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나님의 영은 육신에 실제화되었다. 그의 영이 그렇게 지극히 높고 위대하지만, 그는 오히려 보통 사람, 미소한 사람을 취하여 그의 영의 사역을 한다. 너희 각 사람의 소질, 견식, 이지, 인성 방면, 생활 방면을 놓고 말하면, 너희는 전혀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고, 하나님께 너희를 위해 이렇게 큰 고통을 받게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너무나 높고 크다. 하나님은 어느 경지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높지만 사람은 어느 지경에 이르기까지 비천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에게 역사하는데, 도성육신하여 사람에게 공급하고, 사람과 말씀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 하나님은 너무나 자신을 낮추고 너무나 사랑스럽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께 정복된 후 최소한 갖추어야 할 이지는 말할 때 절대 교만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분토의 위치에 서서 솔직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좋다. ……만약 이후에 각 나라, 각 지역이 모두 하나님께 정복될 때, 모두 대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미할 때, 네가 또 교만해진다면 폐기될 것인데, 마찬가지로 도태될 것이다. 이후에는 언제나 공손하고 반듯해야 하며,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잘 알아 절대로 옛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교만 자대는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인데, 이 방면에서 변화가 없다면 사람의 모양이 없고 여전히 사탄의 몰골인 것이다. 이 방면에 인식이 있다고 해도 온전하게 변화될 수 없고, 아직도 많은 연단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만약 책망과 훈계가 없고 시간이 오래되면 여전히 위험하다. ……

옛 병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성정은 결코 변화되지 않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은 뽑히지 않고 여전히 깊이 뿌리박혀 있어,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여전히 존재하고, 언제든지 침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주요한 것이 3가지 더 있다. 첫째,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 둘째, 성정 변화도 없는 것. 셋째, 아직도 사람의 모양이 없고, 좋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그래도 가장 형편없다는 것. 사람이라면 모두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은 모두 좌우명을 갖고 있어야 한다. ‘원래 마귀’ 혹은 ‘옛 병 재발’ 혹은 ‘항상 위험’ 혹은 ‘나는 분토’, 이런 말들을 새기거나 써놓아야 한다. 늘 일깨워 주면 아마 작은 효과는 좀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자신의 본성을 알아가면서 진정으로 변화되어야 안전한 것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이 최소한 갖추어야 할 이지>에서 발췌

『너희는 너희의 본성이 모두 교만하고 자대(自大)하며 사실 앞에 기꺼이 순복하기를 원치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다 반성하고 나면 차차 알려 주겠다. 그래도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행정의 내용을 잘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잘 인식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자신의 입을 봉하기 어려워 마음대로 지껄이고 탁상공론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자신도 모르게 흑암 속에 떨어져, 성령의 함께함을 잃고 광명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너희가 일을 하는 것에는 원칙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다면, 너는 상응하는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네가 말하고 일을 하는 것에는 원칙이 없지만, 하나님이 일하고 말하는 것에는 철저한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리가 없고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건성으로 대하고 얼버무리며, 더욱이 만회할 수 없는 모독만 할 뿐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아주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거스려 노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마지막에 맺는 열매는 바로 행정을 범하는 것이다. 지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도 알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동시에 행정 자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행정의 많은 내용이 모두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결코 행정 가운데 다 발표되지는 않았으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더한층 알아갈 필요가 있다.

…………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은 결코 아이들 장난이 아니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부지중에 너는 하나님의 실질을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너 자신이 더 높고 더 아름다운 경지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최종에 너는 자기의 추악한 영혼으로 인해 수치를 느끼고, 더욱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그때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너의 행위는 점점 적어지고, 너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점점 가까워지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애모(愛慕)의 마음도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간 상징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에서 발췌

『너의 속마음이 어떻든, 네가 일부러 한 것인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고 하나님의 행정을 범하기 쉽다. 이것은 사람마다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행정을 범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사태가 매우 엄중하다면, 하나님 편에서는 네가 고의적인지 아닌지를 보지 않는다. 이것은 네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틀림없이 너에게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발걸음을 크게 내딛으려고 하고, 큰일을 하려고 하고, 큰소리치려고 하고, 큰 사역을 하려 하고, 대단한 책을 내려고 하며, 예배를 크게 열려고 하고, 큰 인솔자가 되려고 한다. 너에게 늘 큰 야심이 있으면 큰 행정을 범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빨리 죽는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성실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고 신중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행정을 범하게 될 것이다.』

<좌담 기록ㆍ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만약 사람이 참으로 자신이 사탄 마귀임을 보았다면 어떤 효과가 있겠습니까? 살아갈 면목이 없고 스스로 남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낮추고 드러내지 못하면서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 만날 면목이 없으니 얼른 감추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라면 그것은 참으로 자신을 알고 도달한 효과입니다. 그가 감히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감히 뽐내지도 못할 것인데, 또 교만해지고 자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인 사람은 교만이 점점 적어지고 열등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려면 밑천이 있어야 합니다. 소질이 좋고 은사가 좀 있고 특기가 좀 있는 그 사람들을 보세요.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매우 교만방자한 성정을 드러내고 누구도 눈에 두지 않는데, 이것은 정상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참으로 자신을 알고 자신이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면 또 어찌 교만방자해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교만할 가치가 없고 교만할 자본이 없다고 여기기에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이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보다 더 우월하고 무슨 일이든 다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여기는데, 결국 어느 날엔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끄러움과 실패를 당하여 큰 좌절을 겪게 되는데, 계속 교만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는 얼굴도 들 수 없다고 여기고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 자대의 성정을 가진 그 사람들은 몇 번 실패하고 몇 번 수치를 당하고 몇 번 큰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교만한 성정이 자연히 해결됩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겪어 지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성령의 징계를 경력하고 어느 정도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 사람은 많이 솔직해집니다. 교만이 점점 적어지고, 그렇게 제멋대로 하지 않으며, 자신이 꿰뚫어 본 일이 맞다고 여기더라도 더 찾고 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만일에 착오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려 하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로 도달한 효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교만하고 독선적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고 책망과 훈계, 특히 성령의 징계를 많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천천히 변화됩니다. 이것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 성령 역사를 얻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만 하면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됩니다.』

상면의 설교 교통에 근거함

『과오가 없을 때, 사람들은 별로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고, 자신이 매우 좋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불복합니다. 반드시 과오가 있게 된 후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겪은 후에야 진실로 반성하게 됩니다. 그때에 사람은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에 대해 마음속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대조하게 되는데, 깊이 생각하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 나 같은 사람은 정말 그렇구나.’ 한 번으로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번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철저히 인식하고 머리를 숙이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게 됩니다. 어떻게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지,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깨달아야 변화될 수 있습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

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비미은장(卑微隱藏):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

④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