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23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을 대하는 원칙

1.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성령 역사의 동향과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대표하기에 반드시 받아들이고 순복하고 실행해야 한다.

2. 반드시 엄격히 사역안배의 원칙대로 본분을 해야지 절대 자기 뜻대로 다른 수단을 부리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

3.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을 시행함에 있어 반드시 단호하고 신속하게 하고 소홀히 하지 말며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르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4.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온 것이고 사람의 인식에 속하기에,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일꾼은 사역을 할 때, 반드시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한 가지는 정확하게 사역안배에서 규정한 원칙대로 해야지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상상이 있어서도 안 되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것에서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도 역시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범사에 주의를 기울여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하고, 엄격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역을 하는 데에는 주로 이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한 가지는 정확하게 상면의 안배대로 사역하고, 상면에서 안배한 원칙에 근거하여 일을 하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성령의 내적인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일꾼이 사역하는 주요 원칙>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상면의 사역안배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방자하다. 그들은 ‘위에서는 사역을 안배하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아래에서 실제로 하는 입장이기에 어떤 말이나 어떤 일에서는 우리가 융통성 있게 적용하면 되고, 아래로 내려오면 고쳐도 돼! 위에서는 그저 말만 하고 아래에서 직접 하는 건 우리야, 우리는 아래 상황을 알지만 위에서는 아래 상황을 잘 몰라. 그러니까 우리 마음대로 해도 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맡기면 우리는 마음대로 해도 되고 아무렇게나 해도 돼! 아무도 간섭할 권리가 없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내 생각에 맞으면 듣고 내가 보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면 듣지 않고 반항하면서 맞서도 되고 그대로 실시하지 않고 시행하지 않아도 돼. 말한 것이 적합하지 않으면 내가 좀 고치고, 내가 통과시켜야 아래로 내려보낼 수 있어. 만약 내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인쇄해서는 안 돼.’라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원칙이다. 다른 곳에서는 상면의 안배를 그대로 내려보내지만 그는 자기가 고친 사역안배를 자신이 인솔하는 구역에 내려보낸다. 그런 사람은 늘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어내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모두 자신을 따르게 하고 자신을 믿도록 하고 싶어 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이 자신보다 못하고, 하나님에게 없는 것이 자신에게는 있으니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믿어야 하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성질이다. 너희는 보고 분명히 알았느냐? 너희가 분명히 알았다면 그 사람을 위해 울겠느냐? 그 사람을 동정하겠느냐? 그리고 또 ‘상면에서 한 것이 적절하지 않고 공의롭지 못해. 그렇게 수고하고 있는 사람을 교체하다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수고한 것은 누굴 위한 것이냐? 자신의 지위를 위한 것이다. 그럼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느냐? 본분을 하고 있었느냐? 하나님께 충성했느냐? 순복이 있었느냐? 그는 순전히 사탄의 심부름꾼이다. 그가 사역한 것은 마귀가 권력을 잡은 것이고.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파괴한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 것인데, 그 사람의 믿음은 어떤 것이냐? 순전히 마귀와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에서 발췌

『보라, 사람과 사람은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상면의 안배를 대할 때, 비록 어떤 일은 잘 몰라도 순복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다 맞습니다. 우리는 꿰뚫어 보지 못해도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을 논단해서는 안 됩니다. 맞지 않아 보여도 우리는 사람이니까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틀린 것이 없고 다 의의 있습니다. 우리의 이 형편없는 머리로 무슨 의의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로지 따르기만 하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기만 하면 어느 날엔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설령 그때 깨닫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순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바입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상면에서 한 것을 보고는 먼저 연구해 본다. “하나님, 당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요구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첫 번째 것은 괜찮지만 두 번째 것은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좀 수정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느냐?』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욱 안 되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 도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실질상에서 구별이 있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실질이 있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간단한 성령의 깨우침으로 보고 사도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다. 어쨌든 너는 절대로 시비를 전도하거나 높은 것을 낮다고 하고 깊은 것을 얕다고 해서는 안 되며, 진리임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와 교통에 순복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런 원칙이 있습니다. 즉 무릇 상면의 사역안배라면 마땅히 순복해야 하고, 무릇 상면의 설교 교통이라면 마땅히 들어야 하며, 무릇 진리에 부합되는 것과 당신의 생명에 대해 덕이 되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여 구원에 이르는 데에 대해 아주 유익합니다.』

<설교 교통 (6)ㆍ하나님께 순복하는 4가지 원칙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완전히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대표하고 성령 역사의 새로운 동향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무릇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안배에 순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 외에서 사는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의 경영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확실하게 말해서, 무릇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안배에 시종 순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없으므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총집 (1)ㆍ하나님의 역사를 끝마치고 키질할 때 각 부류 사람들이 걸은 길을 본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어떤 두 가지 고리를 장악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모두 성령의 지배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나온 것인데, 당신이 순복하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하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만약 이 기초에서 성령의 내적 깨우침과 빛 비춤 즉 하나님 말씀과 각 방면의 진리 실질에 대한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순복과 실행이 없다면 철저히 폐기되고 도태될 것입니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무엇을 대표합니까? 바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선민이 반드시 진입하고 실행해야 할 바인데, 성령 역사의 흐름을 대표하고 성령 역사의 새로운 동향을 대표합니다. 확실하게 아셨습니까? 이 한 조목을 확실하게 모르면 하나님을 믿고 정상 궤도에 진입하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상면의 사역안배를 대해야 하겠습니까? 무조건 순복해야 합니다.』

<설교 교통 (7)ㆍ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면서 구원에 이르려면 가장 주요하게 무엇을 구비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인솔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절대로 수작을 부리지 말고 자기 뜻대로 하지 말며 엄격히 상면의 안배대로 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 사역에서 참답게 찾고 구하여 효과에 도달하려고 한다면 사역안배마다 큰 공을 들여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하나님께 순복하는 이 일에서 구비해야 할 이지는 바로 반드시 절대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배와 요구임을 확정하기만 하면 사람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반드시 무조건 순복해야지 절대 인위적으로 고치거나 골라서 시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사역안배 방면에서의 실행법입니다. ……무릇 하나님 집에서 사역하는 사람은 모두 반드시 이런 이지를 구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및 상면의 사역안배와 요구에 대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절대적으로 정확하게 실행해야 하며 실행하는 가운데서 더 깊이 깨닫고 이해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여 실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당신이 너무나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당신이 깨닫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시행하면 이미 하나님 집의 큰일을 지체한 것이고, 당신이 완전히 깨닫기를 기다리면 이미 사역의 손실을 초래한 것인데, 책임질 만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일에서 사람에게 이렇게 엄격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지가 없으면 인솔자가 되어도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사람이 가장 성실하고 단순하며 교활함과 궤사함이 없고 교만함과 독선적인 것이 없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써 하나님만 만족케 하기 때문입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따름에 있어 구비해야 할 이지>에서 발췌

『하나님 선민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교통과 설교는 다 성령께서 사람을 깨우치고 빛 비추고 인솔하여 경력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은 그저 사람의 경력과 진리에 대한 인식만 대표하고 그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대해 덕이 되고 유익한 점이 있을 뿐 절대 하나님 말씀을 대체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경력과 인식은 너무나 유한하여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의 교통 설교를 하나님 말씀과 동등하게 대한다면 크게 틀린 것입니다.』

<설교 교통ㆍ앞에 쓴 말>에서 발췌

『현재 우리가 보다시피 그리스도의 실질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실질은 바로 진리, 길,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신성이지 인성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비록 겉으로 보면 인성이 있고 보통 인성이지만 그분께서 역사하실 때, 그분께서 진리를 발표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신성의 면을 보게 됩니다.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실 때 우리는 또 그분의 인성의 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분께서 역사하여 우리를 심판하시고 형벌하시고 해부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신성의 실질을 보게 되고 그리스도가 확실히 진리, 길, 생명이심을 보게 됩니다. 만약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발표할 수 없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경력과 인식을 말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에게 공급하고 인솔할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때든지를 막론하고 하나님 선민에게 필요하기만 하면 그분은 수시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발표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실질이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 및 성령 역사가 있는 모든 사람과 그리스도와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비록 진리를 깨달은 것이 좀 많고 경력한 것이 좀 많은 것은 다 성령의 역사로 도달한 효과이지만 그에게 그리스도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발표하라고 하면 조금도 발표해 내지 못합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아주 적은 경력과 인식만 말할 뿐입니다. 보세요,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과 그리스도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도 아주 높이 보면서 “와! 그분이 정말 진리를 잘 깨닫네요. 그렇게 많은 경력과 인식을 말할 수 있다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비하면 그것은 바닷물의 한 방울이고, 그리스도와 비하면 그것은 천양지차이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패괴된 인류라도 영원히 그리스도와 비교하지 못하고 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는 신성 실질이 있으십니다. 그분께서 한 마디 말씀을 하시면 우리가 백 년, 천년 동안 경력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가 힘껏 해도 그런 말을 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해 낼 수 있는 그만한 경력과 인식은 사람이 몇 년 동안 경력하면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한 마디 말씀은 우리가 백 년 동안 경력하고 일생 동안 경력해야 합니다. 심지어 일부 말씀은 일생 동안 경력해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보세요, 이 신성의 실질과 사람의 실질은 확실히 다른데 천양지차입니다.』

<설교 교통 (2)ㆍ그리스도가 곧 진리, 길, 생명임을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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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②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