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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정결케 되는 길

미국 강강(剛强)

2007년, 저는 홀로 싱가폴에 가서 고군분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항상 기온이 높은 나라인지라 날마다 일할 때는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일이 고된 데다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이 낯선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저는 삶이 매우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퇴근 길에 복음 전단지 한 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10) 이 말씀을 보자 저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형제를 따라 교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저를 친절하게 맞아 주고 챙겨 주자 저는 마치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매주 주일이 되면 교회는 저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12월에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주님을 믿는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의 설교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21~22절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관용과 인내가 어쩌면 이렇게도 클까?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사람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지킬 수만 있다면, 사람들 사이의 다툼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사랑과 따뜻함만 남게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꼭 주님의 말씀대로 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2~3년 후, 회사 사장님은 제게 공사장 하나를 맡아 관리하게 했습니다. 저는 온 신경을 일에 쓰느라 예배에 참석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친구의 소개로 이(李) 사장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과 함께 건축 회사를 하나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무척 기뻤던 저는 크게 한 건 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돈의 함정에 빠져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일을 잘해서 능력 있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저는 점점 더 엄격하게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일을 잘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저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하지 않을 때마다 힐책했습니다. 각 팀의 팀장들도 저의 꾸중을 들을 때면 울기 일쑤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저를 보면 두려워했고, 심지어 피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가깝게 지냈던 친구조차도 저를 차갑게 대하며 더는 저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전혀 그 말씀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단 한 번도 그 말씀을 지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저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했고, 앞으로는 변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또 일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2015년 8월, 회사는 경영 부실로 잠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고,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울함과 고민으로 저는 매일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내가 술을 좀 그만 마시라고 권고하면 저는 큰 소리로 꾸짖곤 했습니다. “내가 번 돈이니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 거야...” 그럴 때면 아내는 어쩔 수 없이 그저 옆에 앉아 속상한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렇게 아내에게 화를 쏟아내고 나서는 항상 후회하며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해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에게선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의 행동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 어찌할 수 없이 다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제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너무 많이 저질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많이 내뱉었고, 늘 죄 속에서 살면서 당신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후회하며 자신을 미워했지만 여전히 제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밤에 하나님께 죄를 고하고 난 뒤에도 날이 밝으면 또 다시 같은 죄를 저지렀습니다. 주여! 저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제가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2016년, 신정에 저는 미국으로 오게 되어 뉴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 공부 모임에 많이 참여하여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청련이라는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청련 자매에게서 전화가 와서 저에게 기쁜 소식 하나를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무슨 좋은 소식이냐고 묻자, 청련 자매는 선교사가 한 분 오셨는데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좋다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청련 자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몇몇 형제자매들이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아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조 자매의 교통에는 빛 비춤이 있었고,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에게 자신이 늘 죄를 짓고 회개를 하고 있지만 또 항상 죄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조 자매는 우리가 주님을 믿은 후에도 늘 죄를 범할 뿐만아니라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회개하는 순환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그것은 저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조 자매는 저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낭독한 동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동영상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지(理智)와 양심은 이미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려면 사람의 실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사람의 사상, 사람의 본성, 사람의 정신 면모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며, 근본상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이래야 사람의 성정이 진정한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의 패괴 성정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한 해를 받고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도덕, 식견, 이지가 사탄에게 심각하게 파괴된 데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의 근본적인 것들이 이미 사탄에게 패괴되어 하나님이 만든 본래의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려면 우선 사람의 사상, 식견, 이지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하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이 말씀을 듣고 저는 정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들은 나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훈계하고 꾸짖었잖아. 도덕도 이지도 없었고, 성도의 품위도 잃었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씀들은 모두 제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말씀을 본 적이 없었고, 어느 목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늘 자신이 짓는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지만, 또 항상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죄를 벗어 버리는 길을 가리켜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신기했습니다. ‘정말 잘 말씀하셨어. 누가 쓰셨을까?’

조 자매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다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여 정결케 하시는 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갑자기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접한 저는 너무나 흥분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정말 이 땅에 다시 오신 걸까?’ 저는 조 자매에게 빨리 교통해 보라고 재촉했습니다. 조 자매는 제게 교통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이 땅에 다시 오셨습니다. 그 분은 말세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심으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셔서 사탄 본성에 얽매여 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얻어지게 합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을 통해 우리 죄를 속량하셔서 우리로 죄 사함을 받게 하시고,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과 사탄의 성정까지는 해결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즉, 사람 안에는 교만과 간사, 이기심, 탐욕과 악독 등 패괴 성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보다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고, 더 완고한 것들이죠. 이런 사탄의 성정과 사탄의 본성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하게 되는 거죠. 심지어 율법을 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죄들을 범하고 있지요. 과거에 바리새인들은 왜 주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해결하지 못한 연고가 아닐까요? 사실 우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패괴 성정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주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이며, 게다가 교만 자대하여 높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훈계하죠. 그리고 우리는 또 주님께서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서로 아귀다툼하며, 명예와 이익을 위해 싸우면서 화목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하고, 배반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현실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사탄 본성과 성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죄를 짓고 회개하고는 또 돌아서서 죄를 짓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죄에서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해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짓는 사탄의 본성 문제를 해결하시고 있습니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구원받고 하나님께 얻어지게 됩니다.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시면 자연히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

조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고 읽었습니다. 『사람이 모두 구속되어 죄는 다 사함받았지만,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사람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고, 사람의 잘못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체에 살면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짓고 끊임없이 사함받는 사람의 삶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자백한다. 그러기에 설사 속죄제가 사람에게 영원히 효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해 낼 수 없는데, 그것으로는 구원 사역의 절반만 완성하였을 뿐이다. 그 까닭은 사람에게 아직도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완성하였고 사람의 속죄제만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 성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정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정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조 자매는 교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왜 사람이 사탄 본성의 지배를 받고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이런 문제를 모두 이해하셨죠? 하나님께서는 은혜시대에 구속 사역만 하셨지, 말세의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고 철저히 구원하는 사역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고, 죄를 극복해 보려고 스스로 노력하며 금식 기도까지 해 보아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짓는 본성의 매임과 통제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겪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시는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심판 사역은 여러 방면의 진리를 발표하셔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본성을 폭로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시고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나타내시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에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자신의 진상을 아주 분명히 보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진실로 알게 됨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게 되고, 그에 따라 사람의 사탄 성정이 변화되고 정결케 되어 사탄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되는 것입니다. 위엄과 진노를 발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 속에서 우리는 마치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본 것 같고, 하늘에서 내려 온 큰 빛을 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처럼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쪼갰습니다. 즉,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우리의 사탄 본성, 심지어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사탄의 패괴 성정까지 다 폭로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본성 실질에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교활하고 간사한 것이 가득 차 있어 우리의 모습에서 인간다운 모습은 조금도 찾아낼 수 없고, 우리가 완전히 사탄의 모습으로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어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러지게 되고,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하게 되지요.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이고, 하나님의 성품과 생명이라는 것을 아주 깊이 느끼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사람이 거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도 사람이 더럽히는 것을 용납지 않으신다는 것도 보게 되죠.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때부터 온 힘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아갈수록 우리 안에 있는 사탄 본성과 사탄 성정을 더 잘 알게 되고, 더욱더 분별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아가게 되므로, 우리 안의 패괴 성정도 점차 정결케 되고,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 정말로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이 사람에게서 이루게 되는 효과입니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은혜시대의 ‘속죄’ 사역과 말세의 ‘죄 제거’ 사역은 전혀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인 것입니다. ‘속죄’는 단지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짐으로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징벌을 사해 주신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사람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완전히 정결케 되었다는 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 제거’라는 것은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철저하게 폭로하여 사람이 더 이상 패괴 본성에 따라 살지 않게 함으로 생명 성정이 변화되어 완전히 정결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패괴 성정이 완전히 해결될 수 있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의 교통을 들으니 실제 상황과 아주 잘 맞고 아주 실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는 주님을 믿은 지 이미 수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늘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했으며, 또 아주 교만하고 난폭하고 제멋대로였습니다. 회사 노동자들은 저를 보면 두려워하며 멀리 피했고, 가정에 돌아가면 저의 아내와 딸도 저를 두려워했습니다. 저와 마음을 나누고 속 얘기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어찌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자주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며 자신을 증오하기도 했지만, 또다시 옛 병이 재발하듯 죄를 지어 버렸습니다. 저는 전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저처럼 자주 죄를 짓고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너무나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오셨고, 그분은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진리를 발표하시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사역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자매는 제가 아주 갈급해하는 것을 보고 저에게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라는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저는 기쁘게 그 책을 받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면서 하나님의 3단계 역사, 성육신의 비밀, 하나님 이름의 의의, 성경의 내막, 그리고 이긴 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스도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각 사람의 결말은 어떻게 나뉘어지는지 등 이런 방면의 진리를 조금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해 더 큰 믿음도 생겼습니다.

처음에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엄하게 심판하고 폭로하시는 말씀을 보며 마음이 찔리고 고통스러웠으며, 관념도 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너무 엄하게 말씀하셨어. 왜 부드러움이라곤 조금도 없을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심판하시면 사람은 정죄받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세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에 대해 폭로한 말씀들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여러 가지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라야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심판만이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하나님께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은 무엇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느냐? 그의 공의 성품으로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공의, 진노, 위엄, 심판, 저주인데,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주로 심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여 “왜 심판, 저주를 통해야만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시면 사람이 죽지 않겠어요? 사람을 심판하시면 사람이 정죄받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또 온전케 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할 뿐만 아니라 일부 엄한 말씀으로 사람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하지만, 바로 이런 심판 방식을 통해 사람에게 육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그에 따라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자신을 인식하게 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말세에 진리를 발표하심으로 심판 사역을 하시는데, 사람의 패괴 성정, 사탄의 본성,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을 엄격하게 심판하고 폭로하고 정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자신의 패괴 진상을 분명히 알게 하고, 패괴 성정의 실질을 꿰뚫어 보게 하며, 자신의 패괴 근원과 사탄 본성에 대해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자신을 증오하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 형벌 속에서 공의와 위엄, 진노의 성품을 나타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보게 되고, 자신의 더러움과 추악과 사악을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도 우리에게 자신의 사탄 본성과 패괴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한 것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하게 사람을 심판하시지 않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사람의 패괴를 폭로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내시지 않는다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우리 이 사람들은 자신을 반성할 수도 자신을 알 수도 없으며, 자신의 패괴 진상과 사탄 본성을 알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죄성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엄하신 이런 말씀으로 있게 된 효과에서 볼 때, 이 진리에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사람을 구원하시는 고심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너무나 좋고 하나님의 사역이 너무나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런 엄한 심판만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워낙 본성이 교만 자대한 사람이었고, 특별히 저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평소에 말을 할 때 항상 남을 가르치려 하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기 좋아하며, 늘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을 따르게 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습니다. 몇 번의 예배에서, 저는 자신이 회사에서 어떻게 문제를 처리했고, 어떻게 말을 듣지 않는 직원들을 힐책하고 복종하게 했는지를 돌아보았고, 또 집에서 아내와 딸에게 어떤 일이든 다 저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할 때면 늘 “제가 보기에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언제 한번 예배드릴 때, 한 형제님이 제가 늘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정을 유로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직접 저를 지적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고 일 처리하는 것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이지가 없는 표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전에 누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를 그렇게 폭로했더라면, 저는 틀림없이 자신의 이치를 내세우며 상대방에게 반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아무런 이치도 따지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기를 권고합니다. 그래도 진리를 찾고 구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세요. 당신의 그 ‘생각’은 진리가 아닙니다! …당신은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입니다! 진리 앞에서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것들을 다 부인하지 못한다면, 전혀 하나님께 순복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아직도 ‘내 생각에’라는 말을 합니까? 이 말은 이미 없어진 말입니다. 그것은 사탄 성정의 유로입니다.”라는 이 교통에서 깨우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저는 일이 임할 때마다 항상 ‘내 생각에는’, ‘내 주장은’, ‘내가 보기에는’ 같은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항상 ‘나는’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제가 결정하려 했고, 자신이 모든 일을 다 꿰뚫어 볼 수 있고 어떤 문제든 다 처리할 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제 말을 따르도록 했고, 저에게 순종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항상 자신을 높게 보았는데, 이것은 교만한 성정의 유로가 아니겠습니까? 형제님이 지적한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에 저는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저의 관념과 상상에서 나온 것이고,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전혀 진리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혹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든 항상 왕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누가 제 말을 듣지 않거나 일을 처리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며 그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유로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높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였던 것입니다. 제가 늘 그렇게 말하고 일 처리를 했다는 것은 저의 성정이 너무나 교만하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너에게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하는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게 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나타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뜻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사람이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 사람이 나쁜 짓 하는 것을 해결하려면 먼저 사람의 본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그리스도의 좌담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실생활에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과거에 일터에서도, 동료들 사이에서도, 집안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했었는데, 그것은 다 사탄의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제가 성깔이 있거나 성격이 좋지 않거나 자신을 억제하지 못해 초래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소질도 있고, 재능도 있고, 돈 벌 줄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겨 아무도 눈에 차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겼으며, 항상 다른 사람들 위에 서려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 교만의 자본이 되었고, 제가 살아가는 밑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자신의 죄짓는 근원을 찾았고, 사탄의 패괴 성정을 해결하지 않아 생긴 위험한 결과를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교만한 본성을 심판하고 폭로하신 말씀들을 의식적으로 많이 찾아 읽으면서 그 말씀에 자신을 대조하고 반성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교통하는 것을 통해, 저는 자신의 교만한 본성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별로 나은 게 없고 저의 재능과 재산은 모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만일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지만, 그들은 왜 평생 고생하며 분주히 보냈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교만한 본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도 찾았습니다. 그 길은 바로 형제자매님들에게 책망과 훈계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 시련 연단을 많이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면서 참으로 자신을 알고 자신을 혐오함으로 더 이상 사탄의 성정대로 일 처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여러 차례의 심판 형벌과 책망 훈계, 그리고 좌절과 실패를 겪으며 자신의 사탄 본성과 패괴 실질에 대해 점차 깊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공의롭고 거룩하신 성품에 대해서도 조금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에 대해 알아갈수록 자신이 더럽고 비천하고 보잘것 없고 가련하다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저의 자본이라고 여기며 자랑으로 삼았던 것들이 이제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의 교만한 성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형제자매든, 가족이든, 동료든, 누가 말해도 옳은 말은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높은 위치에서 말하지 않으며, 일 처리할 때도 낮아지고 독단적이지 않으며,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과 상의하면서 그 중에서 가장 옳은 말대로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정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에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가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저는 갈수록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패괴 성정은 절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진실로 체험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이 저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한다는 것도 진실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모두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어떤 패괴를 유로하면 그 부분에 대해 서로 지적해 주고 도와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알아가며 진리를 찾고 구함으로 패괴 성정을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훈련하느라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단순하게 다 털어놓았으며, 누가 교통하든 진리에 부합되면 바로 받아들이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패괴 성정에는 갈수록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오시어 친히 말씀을 발표하심으로 우리를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해 주시며 구원받게 하시니 우리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결해지길 바라면서도 길이 없어 고통 속에서 살아가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짐했습니다. ‘하나님, 그 사람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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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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