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생명 공급——설교 특집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26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대해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된 지 몇천 년 이래, 사탄에게 패괴된 진상과 인류의 사악하고 어두운 근원을 탐구하여 인식한 사람이 없고,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의의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탐구하여 인식한 사람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발자취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탐구하여 인식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은밀히 강림하셔서 한 무리 이긴 자들을 정복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십니다.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어둡고 사악한 곳에 참 빛이 나타났고, 하나님께서 말세의 심판 형벌의 역사 중에서 모든 진리와 비밀을 게시하셨고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 선민의 생명 체험에서 완전히 실증하다시피,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영원히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얻지 못하고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영원히 참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이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으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진리ㆍ길ㆍ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영원히 생명 성정의 변화를 얻을 수 없으며, 영원히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추구하는 유일한 경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서 정결케 되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떠나 사람의 상상대로 진리를 추구한다면 공허하여 실제가 없으며 영원히 진실한 효과에 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선민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순복하는 중에서 도대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만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관건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순복하는 중에서 진리를 추구함에는 주로 3가지 중점적인 방면이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매 마디 말씀의 심판 형벌을 고분고분 받아들여야 하고, 그중에서 자신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는 데에 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는 유일한 경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핑계를 대고 피하거나 대충대충 대하며 속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

2.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 말씀과 진리의 실제에 부합되는 모든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가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고비입니다.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는 패괴된 인류의 사탄 성정은 가장 부수기 어려운 사탄 본성의 딱딱한 껍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과 진리의 실제에 부합되는 모든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시작과 관건입니다.

3.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함에 있어서 반드시 각종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 합니다. 이것은 현실 속에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는 것이자 역시 가장 진실된 영적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연단은 패괴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진실한 사랑이고 바로 하나님의 온전케 함과 구원입니다. 각종 시련 연단의 고통을 겪고 받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고 온전케 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상은 바로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를 심판 형벌하시는 3가지 주요 방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 사역의 핵심 내용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를 심판 형벌하시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완전히 나타내셨는데, 더욱더 인류의 사랑과 경배를 받으시기 합당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다면 인류는 철저히 멸망되고 추호의 희망도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에 대해 심판 형벌을 전개하셔서야 인류는 구원받을 희망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를 심판 형벌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고, 하나님께서 공의ㆍ위엄ㆍ진노의 방식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가 바로 인류에 대한 구원과 온전케 함인데,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구원과 온전케 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3가지 방면의 실제 체험에 진입함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며,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복하여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를 깨닫는 데에 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기초적 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실행과 진입에서 공을 들이면 기필코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받을 수 있고, 기필코 성령 역사의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필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며 진리에 순복할 수 있는데, 이것은 생명이 자라나는 근본입니다. 무릇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것이 너무 적어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및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모두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니, 절대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수록 필연적으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 및 온전케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면 사람은 완전히 하나님 말씀의 인도에 진입할 수 있고, 성령 역사의 인솔 하에 진실한 생명 체험이 생깁니다. 무릇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진리를 깨닫고 진실로 생명이 자라는 효과에 달할 수 있는 체험이라야 생명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생명 체험은 시종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이 수반됩니다. 하지만 이 3가지 방면의 실제체험은 모두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과 빛비춤으로 달한 효과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에게라야 생명 체험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무엇을 체험하든지 간에 생명 체험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은 고통도 받았지만 하나님을 조금도 알지 못하고 생명 성정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실패를 당했든지 시종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실제에 진입할 수 없기에 생명 성정이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혀 생명 체험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생명 체험은 모두 성령의 역사와 인도로 생기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였든지 모두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과 생명 성정이 부단히 변화되는 효과가 따르면 최종에 모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과 순복이 있게 됩니다. 이 2가지 방면의 효과에 달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생명 체험이 있는 사람이고,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과의 관계를 도대체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및 시련과 연단을 통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목적에 달하십니다. 사람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을 겪는 것을 통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지, 전혀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은 단지 하나님 말씀에서 게시한 심판 형벌만이 아닙니다. 사실, 무릇 하나님 말씀 진리에 부합되는 수리 대처와 각종 시련 연단은 실질상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고 게다가 더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심판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기초에서 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중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추구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효과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을 떠난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공허하고 실제가 없으며 아무런 의의도 없습니다. 마치 종교계가 전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체험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공허하고 실제가 없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과 맞서면서 우쭐댑니다. 보다시피,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떠나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떠나면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범위에서 벗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떠나면 더욱더 하나님을 알 수도 없으며, 모든 것이 공허하고 무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과의 관계인데, 하나님 선민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순복해야 하는지?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수리와 대처가 임하거나 아주 심각한 과오가 있어 성령이 떠나서야 자신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중에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습니다. 패괴가 유로할 때나 문제를 처리할 때는 더욱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찾고 구할 수 있고 진리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것은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하는 것이자 성령 역사를 얻는 가장 좋은 경로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서 모두 심판 형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리를 발표하시든지, 어떤 방식으로 진리를 발표하시든지 진리 그 자체가 바로 패괴된 인류에 대한 심판 형벌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만 하면 이미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 필연적으로 자신이 패괴되고 추하고 사악하고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궤사하고 사람의 모양이 없음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미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정말 양심과 이지가 있다면 이때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패괴와 사악함을 인식할 수 있으며,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 구원받게 한 하나님 사랑에 감격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매번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는 느낌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 자신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을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체험하는 사람이고,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그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이런 체험과 인식이 없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는 느낌이 아주 적습니다. 가히 말해서, 이런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 사람은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으며 틀림없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에 대해 느낌이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양심과 이지가 없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대해 조금도 느낌이 없으므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산 사람만이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고 체험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고 여전히 마귀 사탄이니,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다시피, 일부 인솔자 일꾼들은 확실히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이든지 하나님 말씀 진리에 부합되게 교통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기만 하면 모두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으며, 자신의 패괴와 패역을 인식함과 아울러 진실로 회개할 수 있으며, 본분을 함에 있어서 늘 진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현재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아주 적게 체험하였습니다. 아무리 집회하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도 진실로 자신을 알 수 없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며 교회와 하나님 집의 사역에 대해 조금의 순복도 없으며, 오만 자대하게 말하고 심지어 버릇없이 말하고 제멋대로 날뛰며 매우 성실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이 아니며, 종교에 있는 사람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무릇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오만 자대하고 우쭐대며 누구에게도 불복합니다. 누가 말하든지 간에 자기의 비위에 맞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 맞지 않기만 하면 반박하고 논단하고 정죄하며 공격하고 배척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 모양 그대로의 옛 마귀 사탄입니다. 늘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들의 표현은 다릅니다. 매사마다 진리에 근거할 수 있고 감히 제멋대로 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 악을 멀리할 수 있으며, 확실하게 말하고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며, 말을 하든지 아니면 일을 하든지 언행은 남들이 봐도 편안하고 사람 모양이 있으며, 남과 사이 좋게 지내며, 일을 잘못하면 사과하며, 다른 사람이 패괴 유로가 있어도 포용하고 인내할 수 있는데, 확실히 사람 모양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사람입니다. 만약 누구에게 참으로 사람의 모양이 있고 진리와 인성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모두 구원받고 온전케 될 사람이고, 비로소 진정한 형제자매입니다. 만약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사람의 모양이 조금도 없고 언행에 사탄 성정으로 가득찼고 오만하고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완전히 악마이고 산 귀신이라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여태껏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 사람인데, 도태될 사람으로 이미 드러났습니다. 무릇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 사람이 만약 8~10년 믿으면 틀림없이 사람의 모양이 있고 어느 정도 진리의 실제를 구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와 접촉할 때는 느낌이 다릅니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가의 여부를 보기만 하면 완전히 알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수리와 대처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는 중에서 심판 형벌의 의의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것임을 인식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이미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초보적인 효과에 달한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수리와 대처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약 수리 대처의 말을 한마디도 받아들일 수 없고 심지어 넘어질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참으로 아주 취약하고 진리의 실제가 조금도 없는데, 틀림없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여부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완전히 확정할 수 있습니다.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고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무릇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모두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는 사람인데, 틀림없이 여태껏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진리의 실제가 조금도 없습니다. 무릇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는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는가의 여부를 가장 잘 드러내며, 사람에게 진실한 생명 체험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무릇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패괴 진상 및 육체적 체면과 허영에 대해 이미 인식하고 혐오할 뿐만 아니라 배반할 수 있으며,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별로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수리와 대처 방면에 완전히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이 확실히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사람이고, 자신의 본성과 패괴 진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는 사람이며, 진리를 실행하고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기를 원하는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은 생명 진입에 있어서 하나의 고비이고,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관건입니다. 만약 사람이 정말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여 자신의 사탄 본성 실질과 패괴 진상을 꿰뚫어보는 데에 달할 수 있다면 자연히 각종 수리와 대처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모든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은 수리와 대처를 조금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누가 말할 때 수리 대처하는 느낌이 좀 있으면 즉시 악에 받쳐 원수를 대하는 것처럼 정죄하고 공격하며, 그 사람을 해치고 원한을 풀려고 하는데, 이것은 사탄 악마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 아닙니까? 무릇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바로 사탄 악마의 이런 추한 몰골인데, 이 점은 아주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적그리스도와 악인은 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악을 행하든지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게다가 누구에게도 불복하며, 나중에 제명되고 처분될 때에도 미친 듯이 반발하여 하나님 집의 사역을 정죄하고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여 하나님 집의 각급 인솔자 일꾼들을 모두 적그리스도 세력이라 말하고, 되술래잡아 자신이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제명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에게 속한 종류는 이렇게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 집에서 이 사탄 악마들을 처분하지 않고 제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 자발적으로 교회의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거부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결국과 끝장입니다.

하나님 선민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 형벌(수리, 대처, 시련, 연단, 격타, 징계, 저주를 포함함)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하는지, 이것은 사람이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조금만 받아들일 뿐 수리와 대처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주 적게 체험하고, 시련 연단과 격타ㆍ징계ㆍ저주ㆍ형벌에 대해서는 더욱더 체험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것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단지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조금만 체험한다면 이런 체험은 너무 얕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명 성정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말씀 진리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야 하고 또 많은 수리와 대처 및 온갖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 합니다. 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고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고 체험하는 것은 주로 3가지 방면을 포함합니다. 첫 번째 방면은 하나님 말씀의 모든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사람 체험의 깊고 얕음의 차이가 큽니다. 두 번째 방면은 본분을 하는 중에서의 수리와 대처를 겪는 것인데, 이것은 더욱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만약 수리와 대처를 겪은 것이 너무 적으면 진입할 진리의 실제와 달하게 될 효과도 아주 형편없습니다. 세 번째 방면은 각종 시련 연단과 격타ㆍ징계ㆍ저주ㆍ형벌을 겪는 것인데, 이것은 가장 엄하고 가장 실제적인 심판 형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최후의 방식입니다. 이 3가지 방면의 심판 형벌을 만일 체험한 것이 깊다면 비로소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사람이고, 만일 체험한 것이 너무 적고 너무 얕다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절대 달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조금만 체험하였을 뿐, 하나님 말씀의 더 많은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 달하고는 자만자족하고 제자리걸음하면서 자신이 진실한 체험이 있어 구원에 이르렀다고 여길 뿐입니다. 이러면 너무나 천박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몇 마디만 체험한다면 참으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표준에 절대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고 그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하셨는데,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몇 마디만 체험한다면 어찌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이렇게 간단하겠습니까? 사실,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은 바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실제적인 심판 형벌이고, 격타와 시험을 띤 심판 형벌입니다. 사람이 평소에는 비교적 진리를 깨닫고 얼마간의 진리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재난과 시련이 닥칠 때는 도대체 진리의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하나님께 속하는지 아니면 사탄에게 속하는지 완전히 드러납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시련과 연단을 통해 드러나면 자신의 진실한 분량을 볼 수 있고 진실로 자신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증오하고 자신을 배반하면서 진실한 회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 성정 변화의 체험입니다. 그래서 시련과 연단은 한 방면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동시에 또 사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련과 연단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과 진실한 분량을 꿰뚫어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시련과 연단을 비교적 많이 겪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라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시련과 연단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공의ㆍ위엄ㆍ진노를 느끼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와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시련과 연단이 없으면 사람은 절대 온전케 될 수 없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시련과 연단을 겪은 후이면 다릅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연단을 많이 겪을수록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더욱 많아지고 진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실한 인식과 경외는 다 시련과 연단을 통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시련과 연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별로 깊은 생명 체험이 없습니다. 더욱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생명 체험이 있게 됩니다. 시련과 연단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새기고 영원히 잊지 않게 할 수 있고, 마치 불의 세례를 받고 거듭난 것마냥 환골탈태(換骨脫胎)하게 할 수 있어 확실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온전케 함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은 시련과 연단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이고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적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에 대해 틀림없이 진실한 인식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진실로 자신이 곤궁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는 것이 너무나 의의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의 체험이 너무 얕아 더욱 많은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자신의 성정 변화에 대해 아주 유익합니다. 패괴된 인류는 어느 때라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떠날 수 없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는 것은 구원받는 근본과 희망입니다.

무릇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사람은 자연히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면 더욱 실제적이고 더욱 효과가 있겠는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만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의 체험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을 총결해낼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대해 아주 유익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1.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에 순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는데, 이 원칙이 가장 중요합니다.

2. 진리를 추구하는 조건은 반드시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이 근본입니다. 성령 역사가 없는 자는 다 불신파입니다.

3. 진리를 추구하는 범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 속에 있어야 하고, 완전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 하지 절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서는 안 됩니다.

4.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고 순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길로 치우치게 됩니다.

5.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한 효과는 점차 하나님을 알고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검증하는 표준입니다.

6.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전적으로 구원받고 온전케 되어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참된 의의입니다.

7.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본분을 잘해야 하고 반드시 고통받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원칙을 절대 어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고통받을 수 없다면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8. 진리를 추구하는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 간증을 잘하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7가지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9. 진리를 추구하는 직책은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10. 진리를 추구하며 걷는 길은 반드시 베드로의 길이어야지 바울의 길이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아래에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에 대해 간결하게 교통하겠습니다.

1.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에 순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는데, 이 원칙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에게 심판을 시행하시는 중에서 진리를 발표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어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진실로 자신을 알고 진리를 깨닫는 효과에 달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시련 연단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더욱더 자신이 패괴된 진면목과 본성 실질을 볼 수도 없습니다. 보다시피, 수리 대처와 시련 연단은 바로 더욱 실제적이고 더욱 효과적인 심판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에 순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와 어긋난다면 사람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전부 공담이고 조금도 실제가 없으며, 마치 종교 인사들이 성경 지식을 알기를 추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과 생명 성정의 변화에 달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의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 진입은 주로 하나님 말씀 진리 방면의 실행과 진입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중의 체험과 진입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할수록 자신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에 대해 더욱 분명히, 더욱 투철히 보게 됩니다. 따라서 생기는 것은 바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증오하며 사탄 악령과 적그리스도 악마를 더욱 증오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진실한 회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여 달한 효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것이 많고 정도가 심할수록 진리를 더 환히 깨닫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더욱 진실하게 됩니다. 이러면 사람에게 진실한 회개와 변화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을 심판 형벌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완전히 체험하고 인식할 수 있다면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온전케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에 대해 가장 인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심판 형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인류의 최고의 생명 격언이고 사람 생명의 좌우명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와 시련 연단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추호도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고분고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만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기초와 경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추구하는 조건은 반드시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이 근본입니다. 성령 역사가 없는 자는 다 불신파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어야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푸대접하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을 푸대접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성령 역사가 있게 되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가의 여부는 아주 중요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은 영원히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성령 역사가 없으면 사람은 영원히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 진리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전부 성령 역사로 달한 효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양육하고 공급하든지 만일 성령 역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전부 공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역사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킵니다.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는가의 관건은 사람이 어떻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가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사람의 존심, 사람의 성정,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장악하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대하는가 하는 것은 어떻게 하나님을 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진리를 찾고 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다면 진리를 좀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데, 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실행하면 틀림없이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을 것입니다. 무릇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본분을 하는 중에서 틀림없이 늘 진리를 찾고 구하고 진리를 실행할 것입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중에서 더욱더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간증해야 합니다. 이러면 가장 쉽게 성령 역사를 얻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게 됩니다. 사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그가 하는 본분이 항상 도전에 직면하고 닥치는 애로가 비교적 많기 때문에 진리를 찾고 구하고 진리를 깨닫도록 추진합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본분을 하는 우월성인데, 성령 역사를 얻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어서 매우 유리합니다. 일부 사람들도 비록 진리를 추구하기 원하지만 사탄 성정이 심하고 늘 육체적 존심과 욕망이 있고 언제나 우쭐대고 제멋대로 하기 때문에 결국 진리를 실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수리 대처와 징계가 임해도 진실한 회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비일비재하게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비록 어떤 때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지만 어떤 때는 또 진리를 어기고 육체의 애호를 따라 일을 처리합니다. 이때 사람이 수리와 대처, 격타와 징계가 임하면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수리 대처와 징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진실한 회개가 생길 수 있고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하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는 주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가의 여부, 인솔자 일꾼이 교통한 진리에 대해 진실로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 과오가 있거나 패괴를 유로할 때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고 진실한 회개가 있는가의 여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가늠하는 표준입니다.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수리와 대처, 징계와 격타 혹은 징벌이 임해도 여전히 반항하고 자신을 반성하여 알려고 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령 역사가 있는 각급 인솔자 일꾼과 맞서고 심지어 자기를 제명하고 처리한 인솔자 일꾼을 적그리스도로 대한다면 이런 사람은 무지막지한 악인입니다. 무릇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거절하고 진리에 대항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악인이고 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제명하는 것은 100% 정확합니다. 무릇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상의 하나님 선민이고 진정한 형제자매들이니, 마땅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무릇 시종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정한 의미상의 하나님 선민이 아니니, 마땅히 조심하고 주의하여 분별해야 합니다.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성령 역사를 얻어야 합니다.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진실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실제에 진입할 수 없으며,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는가 없는가, 성령 역사가 있는가 없는가는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3. 진리를 추구하는 범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 속에 있어야 하고, 완전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 하지 절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범위는 물론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하시기 시작해서부터 전 우주를 향해 음성을 발하신 후의 모든 말씀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핵심 부분입니다. 이 일부분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깨닫고 진입해야 할 진리의 실제입니다. 하나님 선민이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은 주로 이런 말씀에 의거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에 포함된 진리는 아주 많아 충분히 하나님 선민으로 하여금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히 말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주로 이런 말씀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의 근거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에서만이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실질을 전면적으로 인식하는 데에 달하려면 하나님의 3단계 역사를 인식하는 것을 통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위주로 하고 핵심으로 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앞의 두 단계 역사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3단계 역사를 인식하는 기초와 핵심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떠난다면 영원히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에서 벗어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와 시련 연단을 겪지 못한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매 마디 말씀에 대해 반드시 받아들이고 순복한 다음 체험하고 실행해야 진실한 인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의 뜻에 대한 이해와 사람의 관념 상상에 의해 생긴 인식은 진실한 인식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대뇌 사유에서 생긴 것이지, 사람의 체험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중에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 생긴 인식이야말로 진리를 깨달은 효과이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에 속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않고 하나님의 매 마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체험에서 증명된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매 마디 말씀, 매 한가지 진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으려면 우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관념 및 사람의 상상과 애호에 부합되는가의 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받아들이고 순복한 다음 체험하고 실행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한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서는 더욱 안 됩니다. 무릇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진리가 아니고, 무릇 진리에 속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발표에서 오고 진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추구해야만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인생의 모든 비밀을 깨달을 수 있으며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체험과 실행이 만일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즉 참 도에서 벗어나면 전혀 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4.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고 순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길로 치우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세워 하나님 선민을 인솔하게 하신 것은 의의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를 수 없고 순복할 수 없다면 틀림없이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을 얻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직접 진리를 깨닫는 기관이 없고 사람 자신의 두뇌에 의해서는 사탄 본성과 각종 사탄 세력의 미혹ㆍ방해ㆍ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 역사가 있어야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성령 역사를 얻으려면 2가지 중요한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고 순복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성령 역사를 얻는 선결 조건입니다. 그 밖에, 개인적으로도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도 역시 중요한 조건입니다. 당신이 만약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할 수 없다면 성령 역사를 얻기 아주 어렵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행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할 수 있지만 자신이 오히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고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미 확정하였습니다. 사람이 만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할 수 없다면 확실히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가기 아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사람에게 지금 구비되지 않은 것이고 또한 완전히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과 인도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일 받아들이고 순복하기를 거절한다면 성령 역사의 발자취를 따를 수 없고 자연히 하나님의 역사에 도태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이렇게 여깁니다. ‘내게 성령 역사가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지 구태여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사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과 사람의 말을 곧이듣는 것은 개념이 다릅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하나님의 안배입니다. 현대인들이 과학이 발달하여 선진적인 교통 수단을 써서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만일 당신이 아직도 수레를 타고 다닌다면 너무 뒤떨어진 것이 아닙니까? 설마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굽은 길이 아니라 지름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입니까? 설마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에 순복하게 하신 것이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선민은 반드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고 순복해야 합니다. 그 밖에, 스스로도 진리를 추구하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러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깨달아야 할 기본적인 상식은 바로 절대 적그리스도, 악인, 악령을 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침륜과 멸망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약 4가지 분별을 구비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수시로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것이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맞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관건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렸습니다. 이 한가지는 사람이 인성이 있는가 없는가,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가의 여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은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쓰시며 지배하십니다. 그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다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데에 달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사람이 성령의 역사에서 나온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합니다. 사람이 만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할 수 없다면 설마 직접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릇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리에 순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사탄 본성이 있어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한다는 것을 더욱 증명합니다. 무릇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그 어떤 인솔자 일꾼도 눈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이 선택하는 길은 틀림없이 베드로의 길이 아니라 바울의 길입니다. 베드로가 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셨으면 제가 꼭 따를 것이고 성령께서 지시하셨으면 꼭 저의 마음에 들 것이나이다.” 이 말은 베드로의 이지와 베드로의 선택 및 걸은 길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할 수 없는 자는 모두 자기의 길로 치우친 사람이고 모두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는 사람이며 모두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 합니다. 만약 아직도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논단하고 미워하고 대적한다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적그리스도, 악마인데,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습니다.

5.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한 효과는 점차 하나님을 알고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검증하는 표준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서 생명 성정 변화에 달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진실한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만일 목적과 목표가 없다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과 목표는 바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고서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오직 하나님을 알아야만 사람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사람의 모든 현실적인 문제와 애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생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해야만 한결같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백절불굴하고 한평생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도 역시 이러합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인생의 모든 문제와 애로가 다 해결되고 동시에 인생의 모든 비밀도 꿰뚫어보게 됩니다. 가히 말해서, 무릇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재미를 보았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너무 가치있고 의의있으며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모두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합니다. 진리야말로 진정한 최고의 인생 격언이고, 사람 생명의 좌우명이며, 인생의 최고의 지혜이고, 전승할 수 없는 생명력입니다. 진리를 구비한 사람은 확고한 위치에 서서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의의를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면 영원히 유감이 없고 후회가 없으며,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지 절대적으로 가치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는 것과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효과는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 지혜와 전능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서 발표되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을수록 자연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주재하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 및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 점차적으로 진실한 인식이 생기게 됩니다. 도리만 깨닫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주관이 없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생겨난 진실한 인식입니다. 물론 역시 온갖 고통을 받고 심지어 죽음의 시련을 통해서야 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그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점차 심화됨에 따라 사물을 보는 관점, 인생관, 가치관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생명 성정의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보다시피, 사람이 만약 참으로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한다면 자연히 생명 성정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최종 효과이자 역시 진리를 추구하는 최종 성과입니다. 만약 사람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 변화의 효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이 제 딴에는 진리를 추구한다고 여긴 것이 거짓이고 불량품임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이런 사람은 곧 불신파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 변화의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기만 하면 참인지 거짓인지 알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검증하는 표준과 원칙입니다.

6.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전적으로 구원받고 온전케 되어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참된 의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여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서인데,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참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 얻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기본 표준은 합격되게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합격되게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없습니다. 패괴된 인류가 본분을 하는 데에는 뒤섞임이 너무 많고 효과가 형편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이 참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때에 하나님의 요구에 달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낸 것이고, 이야말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전혀 양심과 이지가 없고 인성이 없으며, 전혀 사람됨의 원칙이 없고 마음에 사람됨의 책임과 의무가 없으며, 육체만을 위해 살아가는데, 모두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이익만 탐하는 인간쓰레기입니다. 만약 정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피조물의 본분을 잘할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입니다. 진정한 인류는 모두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며, 모두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 심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지위, 권력, 명예, 돈, 육체적 애호, 사치한 욕망만 중요시합니다. 무릇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이런 것들의 통제를 받습니다. 이런 것들의 통제를 받는 사람은 바로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성정이 사악한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증오함이 어떤 지경에까지 이르러 설령 지옥에 내려갈지라도 참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설령 징벌받을지라도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복하지 않고, 설령 죽을지라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순복하지 않으며, 설령 침륜되고 멸망될지라도 진리를 시인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혀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위ㆍ명예ㆍ돈ㆍ누림을 다투어 얻기 위해서입니다. 딱 까놓고 말하면 교회에 의지해 먹고살고 밥그릇을 얻고 권세를 부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존심이 있는 사람이 바로 사탄의 간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가 또 그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을 봅시다. 그들의 본성은 바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진리를 증오함이 어떤 지경에까지 이르러 완고하게 끝까지 하나님과 적대시하면서 죽을지언정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사탄의 심부름꾼,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불신파입니다. 무릇 하나님 말씀이 곧 진리이고 하나님이 곧 진리이시고 하나님이 곧 공의이심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속하는 불신파이고 모두 하나님의 원수이자 하나님 선민의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든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얼마나 많은 길을 뛰어다니든지 결국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이 정말 양심과 이지가 조금이나마 있다면 악한 짓을 적게 하고 악한 짓을 하지 않으며, 효력을 잘하여 선행을 좀 예비할 수 있으며, 충성된 효력자로 되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를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고통받거나 대가를 치를 수 없습니다. 설사 자신이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모양이 없음을 보았을지라도 진실로 회개할 줄 모르고, 설사 진리를 조금 깨달았을지라도 실행하기 아주 어려워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무릇 시종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모두 반드시 도태시키고 제거해야 할 대상입니다. 무릇 흐리멍덩하게 믿는 사람과 마구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모두 절대로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무릇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도 틀림없이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따라 마구 소란을 피우는 그 사람들이 만약 진실한 회개가 없다면 영원히 성령 역사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도태되고 제거될 대상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비로소 성령 역사를 얻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여 진정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선민이고 진정한 형제자매이니,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7.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본분을 잘해야 하고 반드시 고통받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원칙을 절대 어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고통받을 수 없다면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인류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이미 사탄 성정이 가득차 사탄의 후손으로 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거나 하나님께 순복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본분을 잘하여 진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고, 반드시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는 것은 바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면 틀림없이 본분을 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는가의 여부는 사람이 본분을 잘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합격되게 본분을 잘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또한 사람이 구원받는가의 여부를 가늠하는 표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잘하고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고 대가를 치러야만 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르는 데는 주로 아래 5가지 고통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깨닫거나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1) 큰 붉은 용이 권력을 잡고 있는 사악하고 어두운 곳에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반드시 핍박과 환난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2) 깊이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반드시 심판 형벌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3) 본분을 잘하여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많은 수리 대처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4) 진실로 자신을 알고 생명 성정이 변화를 얻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시련 연단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5)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려면 반드시 가정의 행복과 육체의 누림을 포기하고 벗어나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피조물의 본분을 잘할 수 없는데, 이것은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본분을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지 개인의 이익만 고려하고, 보수와 좋은 점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려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야만 달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본분을 하는 데에 뒤섞임이 너무 많고 늘 거래와 존심이 있기 때문에 대충대충 하며 속일 수 있고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효력자라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본분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사람됨의 의의를 깨닫고 진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본분을 함에 있어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거래와 개인적 존심, 목적, 뒤섞임이 추호도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 진리와 사람됨의 원칙에 근거하여 본분을 하는 이것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게 된 것으로 말미암아 달한 효과입니다. 사람이 만일 진리를 추구하려면 반드시 이 5가지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 5가지 고통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데에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만약 사람이 이 5가지 고통을 받을 수 없다면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고통받을 심지가 있어야 하고, 반드시 진리를 위해 고통받는 의의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가치와 의의를 인식해야만 앞장서서 베드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8. 진리를 추구하는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 간증을 잘하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7가지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여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잘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너무나 의의있고 하나님을 알면 사람의 모든 패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볼 수 있고 참으로 가치있고 의의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아는 의의를 깨달았다면 자연히 진리를 추구하는 가치도 알게 됩니다. 사람의 모든 패괴 문제와 인생의 모든 애로는 다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야만 철저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수록 문제와 애로가 적어지며,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와 애로가 다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인생으로 통하는 길과 다리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광명한 앞날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면서 정확한 목표가 없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어떤 효과에도 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많은 고통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패괴된 인류 자체의 애로가 너무 많아 벗어버릴 수 없는데, 특히 사람의 사탄 본성이 깊이 뿌리 박혀 초월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되기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심판 형벌에 고분고분 순복해야 합니다. 이러면 자연히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정말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을 때는 진리를 얻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고, 자신감 있게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많이 받아들일수록 진리를 더욱 깨닫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됩니다. 이때면 무릇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잔치에 참여하고 모두 하나님 생명의 풍부함을 누리고 있으며 모두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 변화의 효과가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절대 홀시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몇 년 동안 분주히 보내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는 체험이 부족하면 결국은 모두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을 체험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7가지 방면의 진리를 깨닫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조물주이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유를 주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아는 방면의 진리.

2) 하나님의 3단계 역사와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아는 방면의 진리.

3)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하나님의 거룩함 및 하나님의 희로애락의 상징적 의미를 아는 방면의 진리.

4) 하나님이 곧 진리ㆍ길ㆍ생명이시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이 모든 것보다 높다는 것을 아는 방면의 진리.

5)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방면의 진리.

6)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의의를 아는 방면의 진리.

7)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사람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방면의 진리.

하나님 알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7가지 방면의 진리의 실질을 깨달아야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공허한 이론만 말할 줄 알아도 소용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도리만 말할 줄 알고 앵무새처럼 남이 말하는 대로 따라 말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재난과 시련이 닥치면 하나님이 진리이시고 공의이심을 부인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논단하는데,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가련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것은 배워 온 것이 아니고 얻어들은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 시련과 연단에 순복하는 중에서 체험해온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체험하는 중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고 달한 효과이며, 하나님 말씀을 깨달은 후 또 각 방면의 사실의 실증 하에 얻은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는 것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어떤 일에서 인식을 얻어야 하는지?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에 대해 어떤 일에서 인식을 얻어야 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전능 지혜와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모두 많은 체험의 인식과 간증을 교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감복하게 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 달하는 것은 배워 온 것이 아니라 체험해온 것이고 더욱이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으로 생긴 것인데, 하나님 선민은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9. 진리를 추구하는 직책은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릇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고, 자연히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여 본분을 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기 위해 자기의 능력을 다할 수 있습니다. 무릇 교회에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모두 인성이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비교적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사실이 바로 이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수록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 및 인도가 있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정상적이 됩니다. 만약 사람이 늘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다면 자연히 하나님에 대해 사랑과 충심이 있게 됩니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일생을 바칠 수 있고, 최종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 됩니다. 이것은 완전히 무릇 착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무릇 악인이라면 꼭 징벌받을 것임을 증명합니다.

사람이 인성이 있는가 없는가와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였는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주로 사람이 진심으로 본분을 하는가의 여부와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보아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본분을 하는 중에서 늘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다면 비로소 진실로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가장 양심적이고 가장 이지적이고 진리를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며, 틀림없이 인성이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만약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또 그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을 봅시다. 그들은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전혀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고 갖은 악을 행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며 방해하다가 최종에 드러나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가히 말해서, 무릇 늘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무릇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틀림없이 인성이 없는 악인입니다. 이것은 확고하여 의심할 바 없습니다. 사람이 늘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고 각 방면에서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을 수호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여 본분을 잘할 수 있는가,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가의 여부를 가장 잘 드러내는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10. 진리를 추구하며 걷는 길은 반드시 베드로의 길이어야지 바울의 길이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만약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달한다면 자연히 베드로의 온전케 된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수록 자신의 패괴 본성과 패괴 진상에 대해 더욱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 심지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달갑게 하나님을 위해 화비(花費)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일생을 바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대체 베드로의 길을 걷는지 아니면 바울의 길을 걷는지는 전적으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케 하기 위해 자기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 부류에 속하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자신이 상을 얻고 복을 받는 길만 선택할 뿐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거나 위로하기를 싫어합니다. 무릇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추호도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육체를 배반하고 자신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베드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정할 수 있습니다. 무릇 베드로의 길을 걷는 사람은 모두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무릇 바울의 길을 걷는 사람은 틀림없이 복을 받기를 추구하고 면류관을 얻기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베드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고 절대 바울의 길을 걸을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길을 선택하느냐가 아주 관건입니다!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가는 사람의 운명과 결국을 결정합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베드로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최소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무릇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 마구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사탄의 심부름꾼에 속하는데,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고 나쁜 놈들입니다.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모두 망할 놈들인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극력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며 방해하고 갖은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 집의 제명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는 진짜 무릇 사탄에게 속한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고, 죽음이 코앞에 닥쳐도 회개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모든 적그리스도와 악인은 다 양심과 이지가 조금도 없고 영이 없는 짐승 따위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전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무릇 바울의 길을 걷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는 것만 중요시하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는 바로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면서 죽을 때까지 효력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바울에게 그래도 양심과 이지가 조금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제명된 그 적그리스도, 악인들보다는 많이 낫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서 극력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며 방해하고 갖은 악을 행한 탓에 제명된 적그리스도, 악인은 모두 양심과 이지가 조금도 없고, 전혀 하나님을 위해 달갑게 효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곳곳마다 하나님과 거래하였으며, 극력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며 방해한 동시에 갖은 악을 행하면서도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마음은 창녀이면서 정절문 세우려는” 것인데, 바울과 비기면 너무 차이가 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간증하면서 받은 고통과 치른 대가는 아무도 비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지금 너희들은 바울의 이지마저 갖추지 못했고, 바울처럼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 그 적그리스도, 악마들을 어찌 바울과 같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한 효력을 그들이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얻었는데, 그들은 몇이나 얻었습니까? 그들은 전혀 바울과 비교할 자격도 없습니다!

이상은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인데 하나님 선민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 선민들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를 깨달았다면 자연히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에 따라 진리를 추구하면 진리를 깨닫기 쉽고 진리를 얻기 쉽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은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위해 길을 닦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기만 하면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기 쉽습니다. 지금 다수의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와 실행의 길을 어느 정도 깨달았습니다. 사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반드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비하라고 요구하신 진리와 걸어야 할 길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진리를 실행하여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는 데에 달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에 의해 살면서 점차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데에 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참뜻입니다. 하나님 선민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때는 자연히 진정한 가치관과 인생관이 생기게 되고 사람됨의 원칙이 있게 됩니다. 이때 사람은 양심ㆍ이지ㆍ인격ㆍ존엄이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진리의 실제도 구비하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의 형상 즉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낼 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의를 완전히 깨닫게 되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완전히 보게 되며, 피조물이 하나님 말씀에 의해 살아낸 진리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한 실질을 쉽게 발견하며, 마음속으로부터 조물주―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며 찬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류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인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를 심판 형벌하셔서 달한 최종 효과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참된 의의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기 아주 어렵고 더욱이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이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조금도 틀리지 않고 영원히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무릇 참답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 진실한 생명 체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릇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진실한 생명 체험이 있는 것으로 실증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번의 체험마다 진리 방면에서 부단히 진보하는 얼마간의 효과가 있는데, 1년 체험하면 1년 동안의 진보가 있으며 2년 체험하면 2년 동안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들의 체험은 항상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상면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완전히 받아들이고 순복할 뿐만 아니라 성령 역사의 인솔 하에 이미 적그리스도, 악마 사탄의 사악한 세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한 무리 사람들이 지금 하나님의 구원과 온전케 하심을 체험하고 있는데,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한 무리 사람들입니다. 각 곳의 교회에 소수만 차지하는데, 바로 하나님 집에서 비교적 인성이 있는, 단정하고 정직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본분을 잘하는,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된, 절대적으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하는, 참으로 성령 역사가 있는 그 사람들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고,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 역사에서 온전케 하시고 얻으시려는 한 무리 이긴 자들입니다.

진실한 생명 체험은 모두 성령 역사와 하나님 말씀의 인도 하에 생기는 것입니다. 무릇 자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으며, 시련이 닥치거나 애로가 있을 때는 늘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아주 적게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있는 효과에 달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하나님 말씀 진리를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찾고 구할 수 없다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많은 하나님 선민들은 시련이나 애로가 닥칠 때 모두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얻거나 하나님이 깨우쳐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된 체험이 있습니다. 최후에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고 4가지 분별을 구비하는 데에 달하여 모든 적그리스도, 악인, 악령, 더러운 귀신의 세력을 저버릴 수 있으며, 어떠한 인사물의 통제도 받지 않고 하나님 말씀 진리에만 순복하고 상면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에만 순복하며,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완전히 진입하기를 중요시하며, 많은 방면에서 진실로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표준에 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걷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는 유일한 경로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 수 없고 순복할 수 없다면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한다는 것은 영원히 공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시종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생명 성정이 조금의 변화도 없는가의 주요 근원은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라 끼어들어 숫자만 채우고 유명무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을 기회가 있으며, 최종에 하나님을 알고 생명 성정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에 달하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 선민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반드시 진리를 추구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에 대해 대체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완전히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실행 원칙과 길을 보지 못하고 찾지 못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단지 생활에 애로가 닥치고 체험에 편차가 생기거나 사탄의 시험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 말씀을 찾고 진리를 찾고 구하여 그중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여길 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는 방면에서 혹은 시련과 연단을 겪는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성품 및 인류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을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실행 방식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달할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중점을 마땅히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고 각종 수리 대처와 각종 시련 연단을 받아들이는 데에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하는 것이고 가장 근본적인 생명 진입의 길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각종 시련 연단을 겪는 것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 역사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의 생명 진입이 아주 편면적이고 아주 얕아 하나님을 아는 것과 생명 성정의 변화에 달하기 어렵습니다. 진실한 생명 체험은 바로 베드로가 걸은 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는 중에서 또 수백 번의 시련을 겪는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 변화에 달하는 길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참으로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어서는 절대 안 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서 벗어나도 안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를 착실하게 고분고분 받아들이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무릇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순복하기를 중요시하는 사람이고, 모두 각종 시련 연단을 겪는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기를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는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사실입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도 비록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주요 원인은 바로 그들이 생명 체험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았고, 각종 시련 연단 중에서도 참으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특히 수리 대처가 임할 때 더욱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체험하면 결국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 변화의 효과에 달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체험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고 하나님 역사의 핵심에서 벗어났으며 하나님 역사의 취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체험 방면의 편차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만약 이런 편차가 있다면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기 어렵고, 성정 변화의 효과에 달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마음속에서도 하나님을 존중하여 높일 수 없으며,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에 대해서도 진실한 순복이 없고 또한 지나치게 고르고 흠잡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착실하게 고분고분 본분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생명 성정이 조금도 변화가 없겠습니까? 가장 주요한 원인은 바로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지 않고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 변화의 효과가 조금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거절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사람은 최소한 아래 4가지 방면의 효과에 달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악을 멀리할 수 있고 절대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며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2.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고 감히 스스로 큰 척하지 못하고 사람을 숭배하지 않고 사람을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께만 순복하고 진리에만 순복합니다.

3.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에 순복하고 고분고분 자기의 본분을 합니다.

4. 본분을 하면서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만을 구하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 진리만 추구할 뿐 따로 구할 것이 없습니다.

무릇 이 4가지 방면의 효과에 달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순복하는 사람이고,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 몸에서 이 4가지 방면의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가히 말해서 이런 사람은 모두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또 그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을 봅시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심지어 오만하기로 감히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기까지 하며, 진리를 경시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역사를 논단하기까지 하며, 하나님이 증거하신,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 대해서도 불평하고 불복하며 심지어 함부로 논단하는지? 이런 사람은 모두 원 모양 그대로의 사탄 악마가 아닙니까? 패괴된 인류 중에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바로 이런 꼬락서니이고 이런 귀신의 몰골입니다. 우리가 만약 반성한다면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으면 확실히 다 사탄의 후손이고 큰 붉은 용의 자손이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임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누려서야 오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소유한 이런 순복, 이런 이지, 이런 사람 모양은 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체험하여 가져온 효과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요구와 아직도 차이가 너무 많아 계속 노력하여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합니다. 가장 좋기는 또 더욱 많은 수리와 대처를 겪어야만 참으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어 간증을 서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패괴된 인류는 모두 오만 자대하고 자고자시(自高自是)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는 사탄 성정이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기만 하면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일부는 소질이 비교적 좋고 일부는 소질이 비교적 낮지만 모두 자기의 본분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달하기를 원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 사람들 중에는 주로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인성이 비교적 좋지만 소질이 좀 낮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 좀 느립니다. 비록 비교적 말을 잘 듣고 순복하지만 재능이 없어 큰일을 할 수 없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효과가 좀 못합니다. 다른 한 부류는 소질이 비교적 좋지만 비교적 오만 자시하고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불복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 진리에 완전히 부합되지 않고 행하는 모든 것이 일반 사람에 비해 많이 뛰어나지 못하면 굴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매우 오만 자시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것이 좀 빠르며, 소질이 좋으므로 본분을 함에 있어서 효과도 좋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온전케 되기 쉽겠습니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온전케 된 후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무릇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구원에 이를 수 있지만 소질이 다르면 온전케 되는 가치도 다릅니다. 하나님 선민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패괴된 인류의 본성에는 모두 오만한 성정이 있습니다. 오만은 2가지 정형으로 나눕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아주 오만하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할 수 있으며 진리라고 인정하기만 하면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리에 부합되지 않으면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오만은 비교적 이지가 있고 기준이 있는데, 가장 정상적인 오만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이지가 없고 기준이 없는 오만인데, 바로 쓸데없이 제멋대로 오만하며 누구에게도 불복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진리에 부합되게 말할지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대항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을 몹시 증오하며 다른 사람이 진리에 의해 자기를 대하는 것을 증오하는데, 이런 오만은 사탄 악마의 성정에 속하며 큰 붉은 용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알면서도 불복하고 또 하나님과 동등하려고 합니다. 무릇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자는 다 이렇게 오만하여 이지가 없는 사탄 악마입니다. 무릇 이렇게 오만하여 이지가 없는 악마라면 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오만도 역시 누구에게도 불복하지만 아주 터무니없습니다. 터무니없는 데다가 불복하고 그릇된 이론만 고집하여 말하고 진리에 대항합니다. 다른 사람이 진리를 아무리 분명하게, 깨닫기 쉽게 또한 사실을 열거하여 교통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불복하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그릇된 이론을 말하고 생억지를 부립니다. 이런 오만한 성정은 악령의 성질이 있으며, 이런 사람은 더욱더 사탄 악마의 종류입니다. 적그리스도에 속하기도 하고 악령에 속하기도 하며 더욱이 원수인데, 가장 위험한 원수입니다. 오만 자대는 주로 이 3가지 정형이 있고 또한 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이지가 있는 오만이 비교적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오만입니다. 무릇 패괴된 인류는 모두 오만한 성정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참으로 소질이 좋고 능력과 특기가 조금 있는 자는 틀림없이 다 아주 오만 자시하고 절대로 오만하지 않는 자가 없는데, 이에 대해 사람은 반드시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신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오만 자시해도 마음씨가 착하고 양심과 이지가 있고 사람을 해치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기만 하면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오만 자시해도 소질이 좋고 총명하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기만 하면 완전히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려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정도의 소질을 구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소질이 너무 낮아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면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선천적으로 구비한 소질이 최소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정도에 달해야만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것은 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도록 온전케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오만 자시는 해결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깨닫고 자기의 본성 실질을 알기만 하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오만을 해결하시는 것도 너무 쉽습니다. 사람에게 여러 번 징계를 주어 여러 번 부끄럽게 하고 실패하게 하면 사람이 자연히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선천적으로 소질이 너무 낮고 혹은 매우 터무니없으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오만에 대해 반드시 구별하고 분별하여 정확히 대해야 합니다. 무릇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 심지가 있는 사람이라 해도 모두 오만 자시한 성정이 있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기만 하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절대적으로 진리에 순복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은 완전히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무릇 참으로 소질이 좋고 정말 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 선민은 반드시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아주 오만 자시하다 하여 좋은 사람이 아니고 구원받지 못하고 온전케 될 수 없다고 절대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오만해도 소질이 좋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기만 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가장 주요한 조건은 반드시 소질이 좋고 진리를 추구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약 소질이 너무 낮고 시종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면 설령 성정이 아주 온순하고 조금의 오만도 없을지라도 폐물이니, 전혀 온전케 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한 사람이 소질도 좋고 심지도 있는데 전혀 오만 자시하지 않다면 이런 사람은 확실히 없을 것이고 무조건 가장하거나 거짓의 표면 현상일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에게는 모두 오만 자대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주로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가의 여부를 보아야 합니다. 만약 정말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진실로 자기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을 알 수 있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며, 본분을 함에 있어서 양심과 이지가 있고, 틀림없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으며, 틀림없이 각급 인솔자 일꾼을 정확히 대할 수 있고, 진실한 협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고 달하는 진실한 효과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를 겪은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기필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언제나 효과가 따를 것이며, 추구하면 수확이 있고 분투하면 성과가 있습니다. 무릇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아래 7가지 방면의 효과를 구비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여 달할 수 있는 효과입니다.

1.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늘 새로운 인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단히 심화하는 효과.

2.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여 부단히 자기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을 아는 데에 달하는 효과.

3.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실행하고 늘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는 효과.

4. 4가지 분별을 구비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어떠한 인사물의 통제도 받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할 수 있는 효과.

5. 여러 가지 문제의 실질을 꿰뚫어보는 것과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달할 수 있는 효과.

6.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진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생기는 데에 달할 수 있는 효과.

7.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아는 데에 달하고 생명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는 효과.

이상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여 완전히 달할 수 있는 7가지 방면의 효과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주로 이 7가지 방면의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무릇 참으로 진리를 3~5년 이상 추구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각기 다른 정도로 이상 7가지 방면의 효과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3~5년 이상 하나님을 믿어도 이 7가지 방면의 효과가 없다면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 딴엔 진리를 추구한다고 여겨도 이 7가지 방면의 효과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면 절대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니, 하나님 선민들이 서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더욱 이 7가지 방면의 효과에 따라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에게 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진리의 가치와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각종 인사물의 통제와 속박을 받기 쉽고, 어떤 것이 진리와 무관한 일인지 확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이러면 진리를 추구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없고 자신의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지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모두 진리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사탄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사탄의 성정이 가득찬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무릇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악인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악마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의 실질입니다. 무릇 악인, 적그리스도는 전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고 하나님 말씀을 희롱하고 진리를 부인할 뿐, 전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체험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면서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통제하여 독립왕국을 세우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와 악인은 직접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로 되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않는 사람은 최종에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며 방해하고 패거리를 지으며 독립왕국을 세운다면 적그리스도 악마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 형벌하시는 말씀은 모두 진리이고 긍정적인 사물이며 모두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양약은 입에 쓴 법이지만 정확히 대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복할 수 없다면 틀림없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무릇 악인,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으며, 글귀 도리만 깨닫는 것을 중요시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며, 사역하려고만 하고 설교하려고만 하며, 다른 사람을 인솔하여 따르게 하려고만 하고 스스로 큰 척하고 패거리를 지어 독립왕국을 세우려고만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걷는 길은 다 바울의 길이고 적그리스도의 길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조금의 인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에 조금도 순복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아랑곳하지 않고 또한 진심으로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기를 싫어합니다. 설령 본분을 조금 하더라도 대충대충 하며 속이는데,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하지 않는 주요 표현입니다. 현재 하나님 집에서 교회를 정리하는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조금도 순복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며 직접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탄 악마들을 제거하고 도태시키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조금도 순복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불신파이고 원 모양 그대로의 마귀 사탄입니다. 만약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도 진실한 회개가 없다면 반드시 제명하고 처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무릇 악마에게 속하고 원형을 드러내어 제명되고 처분된 사람에게 주로 2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의 모든 악행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패괴 실질과 본성을 안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둘째, 뜻밖에도 그들을 제명한 사람을 모두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정죄하고 심지어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교회를 통제한다고 헛소리하며, 무릇 각급 인솔자 일꾼을 모두 거짓 또는 적그리스도 세력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적그리스도 악마입니다. 보다시피, 무릇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의 결국은 바로 갖은 악을 행하여 직접 하나님을 대적한 악마로 되어 제거되고 도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의 끝장과 결국입니다.

현재 하나님 선민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시작하는데, 우선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대해 실로 너무나 중요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에서 진리를 추구하여 실행하고 진입할 수 있다면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단히 진리를 추구하면 틀림없이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비록 진심으로 진리를 추구하려 하지만 패괴 성정이 심하고 소질이 비교적 낮고 경중완급(輕重緩急)을 분명히 가리지 못하고 일을 할 때 원칙이 없기 때문에 시종 진리를 추구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없고, 원칙이 필요 없는 일부 작은 일에서만 통제받고 얽매이며, 심지어 일부 무의미한 일을 다투면서 포기할 수 없어 정상적으로 본분을 할 수 없고 원칙에 따라 진리를 실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지체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이것은 실로 어리석고 무지한 표현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이 깨끗해야 하고 근본을 잡고 놓지 말아야 하며 진리와 무관한 모든 일의 속박과 통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를 추구해야 실제적 효과가 있게 되고, 본분을 하는 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거니와 사역 효과도 따르며, 하나님 집의 사역에 대해 자기의 생명 진입에 대해 모두 유익합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정도로 많은 무의미한 일의 통제를 받으면서 끊임없는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소질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흔히 어리석은 사람이 일을 하면 이렇게 원칙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위주로 하고 진리와 무관한 일에 대해서는 벗어나고 포기해야 합니다. 특히 사소한 일은 모두 한쪽에 제쳐놓아야 합니다. 이래야만 진리를 추구하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해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실제적 효과가 있게 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할 때 원칙이 없는 사람은 틀림없이 모두 소질이 너무 낮거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언제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닫고 일을 하는 데에 원칙이 있으면 이런 사람은 이미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려는 사람은 틀림없이 심지가 있고, 마음이 깨끗하고, 큰 지혜가 있고, 경중완급(輕重緩急)을 분명히 가릴 수 있고, 근본을 잘 포착하고, 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소질을 구비한 사람은 절대로 부차적인 사소한 일을 따질 리가 없고 더욱이 무의미한 일을 논쟁할 리도 없으며, 진리를 실행하여 어떠한 인ㆍ사ㆍ물의 통제도 받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만을 원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얻어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여 최종에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의 소질을 구비하여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잘 수호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피조물의 본분을 잘할 수 있으며,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아마 너희는 이런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이전에는 너희가 모두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으나, 아무도 이 말의 진정한 함의는 깨닫지 못했고, 오늘에야 이 말의 실제 의의를 깊이 알게 되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말세에 성취하려는 것이고, 또한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서, 큰 붉은 용의 잔혹한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서 성취하려는 것이다. 큰 붉은 용은 하나님을 핍박하는 놈이고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이 땅의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모욕당하고 핍박받는다. 그러므로 이 말은 너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성취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에서 사역을 전개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아주 큰 저지를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많은 말씀은 곧바로 성취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는데, 이것 또한 ‘고난’ 중의 성분에 속한다.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의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이 ‘어려움’을 통해 한 단계 사역을 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한 행사를 나타내고, 이 기회에 이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받는 고난으로 인해, 사람의 소질로 인해 그리고 이 더러운 땅에 있는 사람의 모든 사탄 성정으로 인해 하나님은 정결케 하고 정복하는 사역을 함으로써 영광을 얻고 그의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을 얻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무리 사람들에게 모든 대가를 치른 전부의 의의이다.

집회에서 이 편의 설교를 교통할 때 반드시 아래의 하나님 말씀을 결부시켜야 함:

1.『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산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런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도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살아난 사람인가?≫에서)

2.『나의 말 속에서 살지 않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간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떠도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늦가을의 낙엽처럼 도처에 떨어져 발붙일 곳이 없고, 더욱이 나의 위로의 말도 없다. 비록 그들에게는 나의 형벌과 연단이 따르지 않지만, 그 사람들이 바로 천국 밖의 곳곳에서 떠돌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그 거지들이 아닌가? 세상이 정말로 너의 안식처인가? 네가 정말로 나의 형벌을 피한다고 해서 세상의 그 기쁨의 웃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네가 정말로 너의 잠시의 누림으로 네 마음속에 있는 감출 수 없는 공허함을 가릴 수 있겠는가? 네가 너의 가족 중 누구를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너의 믿음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삶의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나는 네가 육체를 위해 무위도식하면서 일생을 보내며 모든 참기 어려운 고초를 참기보다는 나를 위해 진심으로 반평생을 바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권고한다. 구태여 그렇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나의 형벌을 피할 필요가 있는가? 구태여 나의 잠시의 형벌을 피하는 것으로 인해 영원히 난처하게 되고 영원히 형벌받을 필요가 있겠는가?』(≪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서)

3.『만약 네가 이런 진리를 중히 여기지 않고 늘 이런 진리를 피하려고 하고, 늘 이런 진리 외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한다면, 나는 너를 죄악이 극에 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를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거나 구하지 않고, 너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는 도(道)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심판을 도피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너를 희고 큰 보좌 앞에서 도주하는 꼭두각시이고 배신자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의 안중에서 도주한 반역자는 하나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더 중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4. 『만일 네가 책망과 심판을 겪지 않고 하나님을 만난다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틀림없이 멸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부터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모두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일 패괴된 상태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내게 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모든 언행에서는 틀림없이 패괴가 흘러나올 것이고, 하나님과 접촉할 때에는 모든 면에서 패역이 흘러나와 부지중에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기만하고 저버리는 대상이 될 것인데, 그때에는 사람의 처지가 더 위험하게 될 것이고, 그대로 나아가면 징벌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5.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냐?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6. 『진리는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춰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심지도 갖춰져 있지 않다. 사람이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심지는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7. 『사람이 산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아래에 달갑게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요구한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될 수 있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살아난 사람인가?≫에서)

8.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고,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알게 되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고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9. 『오늘날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또 너희를 정죄한다. 하지만 정죄하는 것은 너희로 자신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든, 저주하든, 심판하든, 형벌하든 너로 자신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모두 너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너로 자신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이 다 공의로운 것이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고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고 또한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역사한 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10. 『마지막 때의 정복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심판으로 사람이 타락한 것을 폭로하여 사람으로 회개하게 하고 분발하게 하며 생명을 추구하게 하고 인생의 올바른 길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비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심판으로 사람 속에 있는 패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인생의 바른길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런 패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구제 불능으로, 사탄에게 삼켜질 것들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11.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할 뿐만 아니라 일부 엄한 말씀으로 사람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하지만, 바로 이런 심판 방식을 통해 사람에게 육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그에 따라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자신을 인식하게 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12. 『네가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왔는데, 오늘날 하나님은 너의 모든 퇴로를 이미 끊어 놓았다. 솔직하게 말해, 너는 할 수 없이 바른길에 들어선 것이고, 하나님의 엄한 심판과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이 너를 바른길에 들어서도록 인도한 것이다. 사람은 고난과 연단을 겪은 후에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일부분 인식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묘한 역사를 더 많이 체험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배치한 모든 고난의 연단을 더 많이 겪어야만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13. 『내가 한 말은 비록 엄하지만 사람에게는 모두 구원이다. 왜냐하면 나는 말만 하고 사람의 육체를 징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 빛 속에서 살게 하였고 빛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였으며, 빛의 소중함을 알게 하였고 더욱이 이런 말씀이 사람에게 너무나 유익함을 인식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바로 구원임을 인식하게 하였다. 내가 비록 많은 형벌과 심판의 을 하였지만 사실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로지 사역을 하러 온 것이고 말을 하러 온 것이다. 말씀은 비록 엄하지만 모두 너희의 패괴와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여전히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려는 것이지 말씀으로 사람을 해치려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엄한 것은 역사 효과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렇게 역사해야만 사람이 자기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역 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14.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여러 가지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라야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심판만이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하나님께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15. 『사람의 성정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고난, 연단, 혹은 훈계, 징계, 책망을 거친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속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연단 속에서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된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훈계를 겪은 사람이라야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침착하고 듬직하다.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관념을 버리고 진심으로 순복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16.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으며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심판과 형벌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하나님의 시련이 없고 하나님이 너희에게 받게 한 고난이 없다면, 솔직하게 말해 너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클수록 사람이 더욱 고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은 마음으로 더욱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으로 도달하게 되느냐? 만약 고난과 연단이 없고 고통스러운 시련이 없으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전부 은혜이고 전부 자비와 긍휼이라면, 네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 시련 속에서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미천하고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환경을 배치하여 그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욱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비록 고통이 매우 커서 때로는 이겨 낼 수 없고 심지어 극도로 비통할지라도 겪은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 사역이 참으로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기초에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비로소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

17. 『네가 지금 심판으로 인해 고난을 조금 받고 연단을 조금 받기는 하지만, 이 고난을 받는 것은 가치 있고 의의 있다.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 연단이 되고 무정한 폭로가 되지만,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의 육체를 정죄하여 멸절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와 육체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으로 엄하게 폭로하는 것도 다 너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기 위한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많은 역사를 체험해 보았겠지만, 너희를 다 사악한 길로 이끌어 간 적은 없지 않으냐? 모든 것은 다 너로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모두 너의 정상 인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사역마다 너의 필요에 근거하여, 너의 연약에 따라, 너의 실제 분량에 따라 하는 것이지, 너에게 지기 어려운 짐을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다. 네가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해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늘 내가 너를 미워하여 날마다 형벌하고 심판하고 책망한다고 여기지만, 네가 받는 형벌과 심판은 사실 너에 대한 사랑이고 크나큰 보호이기도 하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18.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체험함에 있어서 사람은 큰 고통을 겪고 높은 대가를 치러야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최종에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을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19. 『연단을 겪은 사랑이라야 굳세어 연약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어느 때에 시련하든, 어떻게 너를 시련하든, 네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며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참을 수 있다면, 너의 사랑은 순결해질 것이고, 너의 믿음도 실제적이 될 것이다. 그때에야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진정한 사람일 것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진정한 사람일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20. 『하나님이 연단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는데, 사람이 마음으로 고통받는 것은 다 사람 생명에 유익하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더 안정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질 수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도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욥도 시련을 여러 번 겪었듯이, 너희도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연단을 수없이 겪어야 하고,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드시 이 절차를 거쳐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연단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오직 연단과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야만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우러나오게 할 수 있다.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사람에게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이 임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밖에서 떠돌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연단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보게 되고, 부족함이 너무나 많아 자신에게 많은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이겨 나갈 수 없음을 보게 되며, 자신의 패역이 너무나 많음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서라야 참으로 자신의 실제 정형을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사람을 더욱 온전게 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21.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하며,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에게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22.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패괴된 실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연단으로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23. 『지금 너희의 정형을 놓고 보면, 계속 호되게 때리고 여지없이 폭로하고 조금씩 조금씩 심판하여 숨 돌릴 틈도 없게 해야 하고, 늘 때리고 폭로해야 한다. 너희가 보기에 형벌이 너희에게서 떠나지 않고 저주도 떠나지 않았다. 엄한 심판이 너희에게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되는데, 너희에게 하나님 행정의 손이 계속 너희에게서 떠나지 않았음을 보게 한다. 그러면 더욱 좋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6)≫에서)

24.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얻음에 있어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주는 것은 모두 검과 격타(擊打)이며, 가져다주는 것은 본래 끝없는 고난이고, 불의 불사름이며, 무정한 심판, 형벌, 저주와 끝없는 시련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의 내막과 실정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을 경영하는 취지≫에서)

25. 『오늘날의 정복 사역은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이다. 왜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이 바로 끝날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라고 하느냐? 너는 아직도 이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단 말이냐? 왜 마지막 단계 사역이 정복의 사역이겠느냐? 바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형벌과 심판의 정복 사역에서 원래 모습이 드러나게 한 다음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인류를 정복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다. 사람의 죄를 심판한 다음에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어 그것으로 악한 자인지 의로운 자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정복 사역 다음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사역인데, 완전히 순복한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에 확장하는 다음 단계 사역 가운데 두고,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흑암 속에 두어 재앙이 닥치게 한다. 그러면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되는데, 악인은 악에 속하여 다시는 해의 비춤이 없고, 의인은 선에 속하여 광명을 얻고 영원한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고, 사람의 결말도 다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도 다 각기 종류대로 될 것인데, 사람이라고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는 것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을 때 드러내는 것이고, 또한 전 우주의 정복 사역(지금의 사역부터 시작되는 모든 정복 사역을 포함)을 하는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인류의 결말은 심판대 앞에서, 형벌 가운데서, 말세의 정복 사역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으로 각 부류 사람의 정체를 조금도 숨김없이 다 드러내어 사람은 모두 빛 속에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

너는 아마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이나 심판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는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과 전능자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를 만날 기회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또한 너는 인류의 근원을 영원히 모를 것이고, 인생의 의의도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 설령 너의 육체가 멸망되고 영혼이 초탈된다고 할지라도 너는 창조주의 모든 행사를 알지 못할 것이고, 더욱이 창조주가 인류를 만든 후에 땅에서 이같은 큰 사역을 했다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피조된 인류로서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기꺼이 흑암 속에 떨어져 영원히 징벌받기를 원하느냐? 네가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을 떠난다면, 너에게 닥치게 될 것은 무엇이겠느냐? 설마 네가 오늘날의 심판을 떠난다면 그 고난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냐? ‘이 땅’을 떠난다면 너에게 닥치는 것은 고통스러운 시달림이나 마귀의 참해(원문: 殘害)가 아니겠느냐? 견디기 어려운 고달픈 나날들이 아니겠느냐? 너는 오늘날의 이 심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중의 그 고통을 영원히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느냐? 장차 네게 임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래 네가 바라는 무릉도원이겠느냐? 너는 네가 이렇게 현실을 회피하면 나중의 그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느냐? 너는 이후에 이런 기회와 이런 축복을 두 번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 재앙이 임할 때에 찾을 수 있겠느냐? 모든 인류가 안식에 들어갈 때에 찾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의 아름답고 행복한 생활과 너의 그 단란한 가정이 네 훗날의 영원한 처소를 대체할 수 있겠느냐? 네게 만약 참된 믿음이 있고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 피조물인 네가 마땅히 얻어야 할 몫이고, 또한 너에게 본래부터 있어야 할 것들이다. 이런 정복은 너의 믿음에 가장 유익하고, 너의 생명에도 가장 유익하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26. 『오늘날 내가 한 말은 다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 사람의 교활과 궤사 그리고 언행을 저주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다 심판을 거치게 되고, 사람의 패역은 정죄받게 된다. 심판의 원칙을 중심으로 말하는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고 사람의 모든 추한 몰골을 폭로하는 것을 통해 그의 공의 성품을 나타낸다. 거룩은 그의 공의 성품을 대표한다. 그의 거룩은 사실 그의 공의 성품이다. 오늘날 이렇게 말하는 배경은 모두 너희의 패괴 성정을 통해 말하고 심판하는 것으로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실제적인 사역이고, 이래야만 하나님의 거룩을 완전히 부각시킬 수 있다. 너에게 패괴 성정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심판하지도 않고 너로 그의 공의 성품을 보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에게 패괴 성정이 있으면 하나님은 너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데, 그것을 통해 그의 거룩을 나타낸다. 만약 사람의 더러움이 너무 많고 패역이 너무 큰데도 그가 보고도 말씀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지도 않고 너의 불의를 형벌하지도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그가 전혀 죄를 증오하지 않고 사람과 같이 더럽기 때문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심판하는 것은 너의 더러움 때문에 심판하는 것이고, 오늘날 너를 형벌하는 것은 너의 패괴와 너의 패역으로 인한 것이지 너희들 가운데서 ‘크게 위풍을 떨치거나’ 고의로 너희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러운 곳에서 태어난 너희 이 사람들에게 오염된 더러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야말로 인격을 잃고 인성을 잃었는데, 다른 가장 더러운 곳에서 태어난 돼지 같은 것들이다. 바로 너희의 이런 것으로 인해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를 내리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심판으로 인해 너희에게 하나님이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임을 보게 하고, 바로 그의 거룩과 그의 공의로 인해 그가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를 내리는 것이다. 바로 그가 사람의 패역을 보고 그의 공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고, 사람의 더러움을 보고 그의 거룩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비록 더러운 곳에 태어났지만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 자신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2단계 정복 사역은 어떻게 효과를 보았는가≫에서)

27. 『하나님이 심판 사역과 형벌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기 위함이고, 모두 그를 증거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 성정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바뀔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경영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모든 사람에게 공포한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공개적인 나타남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정이 변화받게 되며,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훈계와 책망을 겪어 그를 알게 된 사람을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게 하는데, 성정이 변화되어 그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원하지 않고, 또한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종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에서)

28. 『형벌과 심판 사역의 실질은 인류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마지막 안식의 날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인류는 각기 부류대로 될 수 없고,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이 사역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는 유일한 경로이다. 정결케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불의한 것을 다 정결케 할 수 있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만이 인류의 패역한 것들을 다 드러내어 구원할 만한 사람과 구제 불능의 사람을 다 분별해 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을 다 분별해 낸다. 사역이 끝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다 정결함을 받고 인류의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 땅에서 두 번째로 더 아름다운 삶을 누릴 것이고, 머지않아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은 형벌과 심판을 거친 뒤에 본색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후에 다 훼멸되어 사탄처럼 더 이상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후의 인류 중에는 더 이상 이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징벌받을 대상이고 악한 자이지 의인이 아니기 때문에, 최후 안식의 땅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고, 또한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29. 『시대를 끝마치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인데, 모든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이어야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 이미 말세가 되어 만물은 각기 종류대로 나뉘는데, 모두 각기 다른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구분된다. 이때는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귀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는 다 드러날 수 없다.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야만 만물의 결말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 속에서만이 본색이 드러나게 되어 악한 자는 악한 것에, 선한 자는 선한 것에 속하게 되므로 다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것이다. 형벌과 심판으로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상선벌악(賞善罰惡)하고, 만민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킨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으로 도달해야 한다. 사람이 극도로 패괴되었고 사람의 패역 또한 너무나 심하기에,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낸 하나님의 공의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 있는데, 이것으로 모든 불의한 자들을 크게 징벌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30.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너는 다 깨달았는가? 네가 깨달았다면, 나는 네가 또한 고분고분 심판받기를 권고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이끌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심판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정결케 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즉 심판 사역에서 도망간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혐오받아 버림받을 것이다. 그들의 죄상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중하고 더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효력할 자격마저도 없는 그 사람들은 더 심한 징벌을 받을 것인데, 영구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는 충성하면서 그를 배반한 어떠한 배신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ㆍ혼ㆍ체가 모두 징벌받는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닌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을 드러내는 목적이 아닌가? 하나님은 심판 기간에, 악을 많이 행한 사람들을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에 두어 악령이 마음대로 그들의 육체를 훼손하게 하는데, 그들의 육체에서는 시체의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야 할 보응이다. 하나님은 전혀 충성하지 않는 그 거짓 신도들과 거짓 사도들, 거짓 일꾼들의 각종 죄상을 그들의 기록 책에 일일이 적어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그들을 더러운 귀신 가운데 던져 더러운 귀신이 마음대로 그들의 온몸을 더럽히게 하며, 그들로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게 하고, 더 이상 영원히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한동안 효력은 했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않고 외식하는 사람들을 악인들 가운데 두어 악인과 야합하여 오합지졸이 되게 하며, 최종에는 그들을 멸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적이 없거나 힘을 조금도 바친 적이 없는 사람들을 한쪽에 던져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시대를 바꿀 때 모조리 멸해 버릴 것인데, 그들은 더 이상 땅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고, 마지못해 대충대충 대하는 사람을 자민(子民)을 위해 효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넣어 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소부분만 생존할 수 있고, 대부분은 효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훼멸될 것이다. 최종에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자민, 뭇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으로 제사장이 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인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가운데서 얻은 결정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분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은 다 이방인의 행렬에 들게 되는데, 그들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는 너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하였으니,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는 모두 너희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너희는 이런 말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그 어떤 사람도 기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다 무정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2012년 5월 1일

이전: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간증하기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다음: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실행해야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가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