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생명 공급——설교 특집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16 실제에 진입함에 있어서 반드시 규례를 지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사람을 심판 형벌하고 사람을 시련 연단하는 것에 의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에 의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데에 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때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구비하여 생명으로 하는 실제 효과에 달하게 됩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참으로 진리를 깨닫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인식하고 진리의 참뜻을 깨달아야만 진리를 실행하는 길과 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어야 하며 진리를 운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에 달해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이 실제를 구비해야만이 참으로 구원받고 온전케 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도대체 무엇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그 원인을 따져보면 아직도 진실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 어떤 심도에 이르면 진리를 실행하는 방면에서도 그만한 심도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규례를 지키기 좋아하고 규례의 통제를 받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단지 글귀 도리일 뿐 진리의 실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실행해내면 그저 규례를 지키고 형식만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공통의 문제는 바로 글귀 도리만 말하고 일을 처리할 때 규례를 지키며 언제나 규례의 통제를 받는 것입니다. 집회할 때 괜찮게 교통하지만 현실 생활 속에서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고 늘 이런저런 규례의 통제를 받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속수무책이며, 탁상공론에는 모두 고수이지만 현장에서 발휘하고 실제로 적용하라면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함에 있어서도 늘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습니다. 그 근원을 따져보면 바로 참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고 말하는 것은 다 글귀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물어봅시다, 자신도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인솔하여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참뜻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달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살아내야 할 진정한 사람의 모습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진리를 살아내는 형상만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에 대한 요구입니다. 그는 만일 규례를 지킨다면 하나님의 요구와 사람이 살아내야 할 모습에 훨씬 달할 수 없음을 더욱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규례를 지키지 않고 규례의 통제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행하면 조금도 의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귀 도리를 말하기 좋아하고 진리를 진정 깨닫지 못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가르쳐 규례를 지키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도 규례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는 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규례를 지켜야만 하나님의 요구에 달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무릇 규례를 지키기 좋아하고 늘 규례의 통제를 받는 사람은 모두 영이 통하지 않고 진리 방면에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진리를 얼마나 분명히 교통하든지 그는 도리만 깨달을 뿐이고 진리를 실행할 때 규례를 지키는데, 마치 규례를 지키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만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인 듯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두 터무니없고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며, 진리의 실질을 조금도 깨닫지 못합니다.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전혀 규례를 지키지 않고 추호도 규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사역함에 있어서 원칙만 논하고 효과만 구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방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고 하나님의 뜻을 상고하기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상면에서 사역하고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을 공포함에 있어서 규례를 지킵니까? 조금도 규례를 지키지 않습니다. 모두 교회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사역하고 적당한 기회를 잡아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내려보낸 사역안배와 설교 교통은 모두 교회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고 모두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면 사역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정황을 알아보고 문제의 근원을 분명하게 파악할 뿐만 아니라 아주 쉽게 여러 가지 정황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전혀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매사마다 원칙이 있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문제를 보아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문제를 발견하면 아주 예리합니다. 즉 다른 사람과 교통할 때나 교회 생활에 존재하는 문제에서도 교회 인솔자 일꾼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서의 어려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선민을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솔하는 체험 중에 늘 해야 할 사역이 있고 늘 교통해야 할 진리가 있고 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며, 사역함에 규칙이 없고 추호도 규칙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참으로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모두 융통성있고 정상적입니다. 만일 정말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규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본분을 하는 것도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인솔자 일꾼이 되어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규례를 지키는 것의 구별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이 진리를 예를 들어봅시다. 도대체 어떤 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모든 것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진리에 순복하며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모든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참뜻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방면에서 개인의 선택이 없고 개인의 뒤섞임이 없으며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합니다. 마치 군인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천직으로 대하듯이 하나님께 순복하는데, 이는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권병 아래에 순복할 수 있고 죽기까지 순복하고 아무런 원망도 없으면 이것은 하나님을 순복하는 최고 경지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면서 조건을 따지고 이유를 따지거나 개인의 선택을 갖고 조금 순복하는 그 사람들은 진정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흔히 모두 하나님의 어느 한마디 말씀의 표면의 뜻을 규례로 삼아 지키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요구에 달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함에 있어서 달해야 할 실제 효과를 찾고 구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규례를 지키는 것은 사람의 진실한 순복을 뜻하지 않고 더욱이 진리를 실행하여 살아낸 진정한 사람의 모습도 뜻하지 않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규례를 지키는 이런 실행법은 추호도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가련한 것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관념에 맞는 하나님 말씀만 골라 지키고 더 깊고 더 중요한 다른 말씀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이런 실행법은 더욱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추호도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또 하나님께서 이전에 역사하실 때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현시 역사의 말씀을 부인하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수단이며, 그 속에는 사탄의 간계와 존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현재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하나님의 앞 단계 역사의 말씀만 지키고 하나님의 현시의 말씀을 부인하는데, 이것은 가장 음흉하고 악독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각종 적그리스도,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이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맞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진리를 실행함에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현시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현시의 요구라야 하나님의 뜻을 대표합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어떤 배경 하에서든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요구하시든지 사람은 마땅히 아무런 조건도 없이 순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누리는 조건 하에서 하나님께 순복하는데, 순복하는 전제 조건은 반드시 사람의 관념 상상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누릴 은혜가 없다면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은혜를 누리는 것만 구하고 오히려 조금도 고생하려 하지 않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 이런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온전케 하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는 진리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어떻게 행하는 것이 규례를 지키는 것인지, 마땅히 무엇에 근거하여 분별해야 합니까?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을 품고 진리를 실행하는데,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또 실행하는 원칙을 지키는데, 이렇게 하나님께 순복하여 달하는 효과는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는 것이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단지 다른 사람에게 겉으로는 마치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일 뿐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순복하고 있는 것인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가 마치 하나님께 순복하고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실행한 후 오히려 그 사람의 생명 성정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추호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규례를 지키는 것과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의 실질적인 구별입니다. 말해보십시오, 진실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규례를 지키는 것에서 도대체 어떤 실행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떤 실행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또 예를 들어봅시다. 하나님을 섬기는 진리 방면에서 마땅히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우선 하나님의 요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바로 하나님 선민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체험하도록 인솔하여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데에 달하게 하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는 사람으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실행입니다. 실행하는 중에서 또 자신의 체험에 근거하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에 근거하여 하나님 선민들의 체험 중에 존재하는 각종 문제를 부단히 해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선민으로 하여금 점차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게 함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 달하여 나중에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할 때 이런 효과에 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실행 중에서, 매 차례의 교통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행사를 간증할 수 있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과 진실한 찬미와 경배가 생길 수 있게 하는 이런 효과에 달할 수 있으면 이것이 가장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말해낼 수 있고, 누가 하나님의 역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뚜렷하게, 가장 전면적으로 가장 투철하게 간증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으면 그가 바로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하나님을 간증하고 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진리의 참뜻입니다. 일부 교회 인솔자와 일꾼들은 사역하는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교통하지 못하고 글귀 도리만 말하면서 자기 뜻에 따라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저렇게 하게 하고 규례를 지키게 하며 추호도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없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여전히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보다시피, 그들이 한 모든 것은 조금도 하나님을 간증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까? 절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고 자신을 뽐내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섬기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이런 사역 방법은 영원히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도대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봅시다. 도대체 어떤 것이 간증을 굳게 서는 것인지? 간증을 굳게 서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선민이 반드시 진입해야 할 진리의 실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라면 바로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사람이 시종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견지하며, 얼마나 많은 심판 형벌을 체험하고 시련 연단 심지어 핍박 환난을 겪든지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견지하며 참 도를 지키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최종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 달하고 생명 성정에 변화가 생기며 갈수록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하나님이 곧 진리, 길, 생명이심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습니다. 설사 시련 연단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심할지라도 끝까지 순복할 수 있고 조금의 원망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간증을 굳게 선 사람이고 하나님을 길 끝까지 따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수십 년 더 연단하셔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고 단지 믿음이 점점 커지고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며 인성이 점점 정상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각처의 교회마다 이런 일부분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합니다. 이 사람들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간증을 굳게 선 사람들이고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간증을 굳게 서는 실질은 여러 가지 시련 연단 속에서 시종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과 한마음이고 후회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고 하나님 선민의 이익을 수호하며 죽기까지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시련 연단을 겪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큰 붉은 용이 무너질 때 이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한 체험과 간증을 말해낼 수 있고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찬미와 경배가 우러나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한 무리 이긴 자 들입니다. 그러나 간증을 서지 못한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체의 안일을 탐내고 본분을 하지 않고 아울러 마음속으로 큰 붉은 용을 두려워하며 매우 겁이 많은 사람이며,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권력과 지위만 추구하고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며, 또한 시종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중요시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늘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늘 복을 받으려 하며 늘 재난에서 벗어나 고통받지 않고 단번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 하는 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오히려 간증이 없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조금도 교통해낼 수 없고 더욱이 정상 인성,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에게 조금의 간증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실제의 간증이 없으면 간증을 서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더욱 간증이 없습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고통에서 피하도록 늘 하나님의 날이 빨리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이름만 지키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날마다 간절히 바라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규례를 지키는 사람들이고 또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무릇 진리의 실제가 없고 간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의 생명 성정도 틀림없이 조금의 변화도 없으며, 모두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또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것이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는 것인지? 무릇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모두 큰 붉은 용을 몹시 증오하고 큰 붉은 용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수록 사탄에 대해, 큰 붉은 용에 대해 매우 증오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구비한 사람일수록 사탄에 대해, 큰 붉은 용에 대해 진실한 배반이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비록 큰 붉은 용을 증오하지만 틀림없이 증오하는 것이 깊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진실로 배반하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진리가 없으면 큰 붉은 용의 사악한 본성 실질에 대해 꿰뚫어볼 수 없습니다. 그럼 큰 붉은 용에 대한 그의 증오는 단지 겉면의 증오이고 큰 붉은 용에 대한 행실상의 증오와 행위상의 증오일 뿐 큰 붉은 용의 본성 실질에 대해서는 오히려 진실한 증오가 없습니다. 만일 큰 붉은 용이 그를 박해하지 않고 또 그에게 혜택을 준다면 그는 더욱이 큰 붉은 용을 증오하지도 않습니다. 만일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큰 붉은 용의 공덕과 은덕을 찬송할 것입니다. 큰 붉은 용에 대해 겉면의 증오만 있는 것이 진정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는 것입니까? 이런 증오로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간증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추호도 생길 수 없습니다. 큰 붉은 용에 대해 도대체 몇 가지 증오가 있는지? 어떤 증오가 진실한 증오인지, 어떤 증오가 겉면의 증오인지, 어떤 증오가 배반이 생길 수 있는지, 어떤 증오가 또 쉽게 미혹당하고 이용당하여 큰 붉은 용에게 빌붙고 심지어 원수와 한패가 될 수 있는지?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는 이런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꿰뚫어볼 수 있습니까? 참으로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완전히 하나님 편에 섰습니까? 당신의 마음은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했습니까? 당신이 본분을 하면서 충심을 다했습니까?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께 얻어졌습니까? 참으로 큰 붉은 용을 배반한 이런 실제를 당신은 구비했습니까? 큰 붉은 용은 하나님의 적수이니 하나님과 큰 붉은 용 사이에는 조화가 있을 수 없고 중간 입장이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충실할 수 없으면 진정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진정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으면 진정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며, 당신이 하나님과 합심할 수 없으면 큰 붉은 용과 철저히 결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사람의 진실한 정형을 꿰뚫어볼 수 없고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았는가의 여부에 대해 꿰뚫어보기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았는가의 여부를 분별할까요? 우선 진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반드시 깨닫고 해내야 한다고 요구하신 것이고 더욱이 사람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생명 실제이며 오직 진리를 구비해야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말하면 바로 정상 인성에 구비되어야 할 생명 실제입니다. 이 생명 실제는 형상이 있는 것이고 살아낸 모양이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살아내는 사람의 형상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살아내라고 요구하신 진정한 사람의 모양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살아야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있게 됩니다. 사람이 진정한 인생의 의의를 살아내려면 진리를 구비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진리를 얻어야만 진정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보다시피,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진리에 내포된 뜻은 사람이 언어로 밝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온전케 된 사람만이 그중에서 얼마간의 비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리는 바로 생명이고 정상 인성이며 진정한 사람의 생명 성정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여 하나님의 요구 표준에 달할 수 있는지,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어떤 것을 누릴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내는 모양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보게 하는지, 이런 것은 다 진리를 깨닫는 정도와 관련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가 진리를 실행하는 표현과 살아내는 모양을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면 틀림없이 유익한 점을 얻고 도움을 얻게 할 것이며 진리도 있고 인성도 있게 할 것이며 정상적이고도 실제적이 되게 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선민들이 모두 하나님 말씀에 의해 살면서 진리있고 인성있는 사람으로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 선민이 살아내는 것은 바로 진정한 사람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규례를 지키는 것은 오히려 이런 효과에 훨씬 달하지 못합니다.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진리의 실질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가 없고 여전히 사탄에게 지배되어 육체적으로 살아가며, 마음속은 마치 고인 물과 같고 표현하는 것은 마치 죽은 사람과 같으며, 설령 얼마간 실행할지라도 로봇처럼 판에 박은 듯이 규례를 지키고 생기가 없으며,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없고 산 사람의 숨결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규례를 지키는 것과의 차이입니다. 규례를 지키는 사람도 겉으로는 본분을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고 있으며,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어긋나고 방해하고 있으며, 겉으로는 마치 진리를 교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글귀 도리를 말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뽐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사역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실질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비록 입으로는 큰 붉은 용을 증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시시로 큰 붉은 용에 대해 호감을 가집니다. 큰 붉은 용이 그에게 혜택을 줄 때면 그는 또 큰 붉은 용에게 충심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한가지 사실을 보게 하는데,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진리의 실제가 없습니다.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야 실제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깨달아야만 진리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규례를 지키기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로 진리를 실행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원칙이 있고, 실행하는 중에서 주로 원칙을 지키는 것을 표준으로 하고 절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최저기준으로 하며, 실행 원칙대로 행하고 원칙에 확실히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만이 규례를 지키고,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실행 원칙을 중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원칙있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원칙있게 일을 처리해야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입니까? 원칙은 어떻게 생기는 것입니까? 만일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면 원칙을 찾지 못하고 원칙을 잡지 못합니다. 원칙은 바로 진리의 실질을 인식하는 중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리의 실질을 분명히 알게 될 때에야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은 어떻게 확정하는 것입니까? 이러면 진리의 실질을 깨닫는 것에 관련됩니다. 실행 원칙은 진리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에 근거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참뜻에 근거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진리의 실질을 인식하게 될 때는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달해야 할 효과를 알 수 있습니다. 달할 수 있는 몇 방면의 효과에 근거하면 몇 가지 실행 원칙을 확정할 수 있으며, 그런 다음 다시 원칙대로 실행할 때 만일 효과에 달할 수 있다면 진리를 실행한 것입니다. 원칙대로 실행함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할 수 있는 것이지 행실상에서 적합한 것이 아닙니다. 즉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근본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다면 겉면의 행실이 아무리 좋아도 가상이고 또한 기만입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순복하였으면 겉면의 실행에서도 틀림없이 진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하는 주요 표현은 마음속으로 먼저 순복할 수 있고 그런 후에 원칙에 근거하여 행실에서의 실행이 더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달해야 할 효과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을 장악해야만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 것을 예를 들어봅시다. 설령 입에는 거짓말이 없을지라도 마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또 기만과 궤사와 다른 존심이 있는지, 없는지? 이러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에 관련됩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정결케 되어 단순하게 털어놓고 성실한 마음이라면 당신의 입에서 비로소 성실하고 거짓이 없는 말을 해낼 수 있습니다. 만일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 중요시하고 마음속의 궤사한 존심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면 이런 사람은 비록 입으로, 겉으로 어떤 때는 매우 잘 실행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정결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까?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입니까?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 중요시한다면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표현입니다. 설령 입으로는 잠시 거짓말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속은 오히려 궤사와 기만이 있고 또한 다른 방식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데, 이러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입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만 중요시하고 오히려 마음속에 거짓말과 기만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러 해 동안 실행해도 여전히 거짓말과 기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런 실행법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것임을 대표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성실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낸 것입니까? 이 몇 가지 효과에도 달하지 못했는데, 이것을 어찌 진리의 실제에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하 원칙을 도대체 어떻게 확정해야 합니까?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궤사와 기만이 없어지게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반드시 먼저 거짓말과 기만의 실질 문제를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궤사와 기만을 증오할 때에야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이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거짓말하고 기만하는 실질을 마음에서 인식할 수 있고, 기만과 거짓말을 증오하고 참으로 큰 붉은 용의 궤사와 기만, 진리를 혐오하고 하나님과 적대되는 사탄 본성을 증오할 수 있는 데에 달하는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전제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하고 기만하는 실질을 꿰뚫어볼 수 없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도 거짓말과 기만을 증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행하는 방면에서도 늘 효과에 달하지 못합니다. 비록 한가지 일에서는 확실히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만과 거짓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규례를 지키는 이런 실행법이 사람에게 성정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데에 달할 수 있는지, 이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함에 있어서 먼저 반드시 도대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어떤 효과에 달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실행 원칙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실행하는 첫 번째 원칙은 바로 마음에 절대로 거짓말과 기만이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바로 마음에 절대로 다른 존심이 없고 거래가 없으며 이유가 없고 선택이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칙은 바로 마음이 절대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몇 가지 원칙을 당신이 완전히 확정하면 이 몇 가지 원칙이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할 때 하나라도 부족해선 안 되고 꼭 필요한 것임을 보게 됩니다. 당신이 다시 이 3가지 원칙대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실행한다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효과에 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함에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실행할 때 원칙을 지키고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바로 진정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대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실행할 때에야 비로소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정확하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매 한가지 방면의 진리의 실행에서 정확하고 적합한 원칙을 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원칙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진입해야 할 모든 진리에서 정확한 실행 원칙을 확정할 수 있고 또한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진정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매사마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규례를 지키는 것과의 주요 구별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 분명히 아시겠죠! 이전에 자주 말했던, 실제에 진입한다는 것은 주로 매사에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당신이 어느 방면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면 그 방면에서 비로소 실제가 있게 되며, 당신이 어떤 한가지 진리를 실행할 수만 있으면 비로소 그 한가지 진리의 실제에 진입한 것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실제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인지, 무엇이 규례를 지키는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며, 심지어 또 규례를 지키는 것을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여겨 대하는데, 이런 사례는 너무도 많습니다. 현재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이방인과 함께 지내면서 부당한 이득을 챙겨도 됩니까? 돈을 주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대체 대학 시험을 치러야 합니까, 치르지 말아야 합니까? 도대체 돼지 고기를 먹어야 합니까, 먹지 말아야 합니까? 나이가 들면 배우자를 찾아야 합니까? 특수한 환경이 있어 집회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복음전도 대상이 준 선물을 교회에 바쳐야 합니까? 은혜시대 교회에서 받은 사랑의 기부를 교회에 바쳐야 합니까? 형제자매들에게 기부함에 있어서 인솔자의 동의를 거치거나 아니면 인솔자 일꾼에게 맡긴 다음 다시 형제자매들에게 전달해주게 해야 합니까? 어떤 인솔자 일꾼은 문제를 발견하면 무턱대고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자신을 알고 자신을 반성하게 할 뿐 진리를 교통하여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어떤 질병이 닥치든지 인솔자 일꾼은 “당신, 틀림없이 하나님을 거스렸을 거에요. 빨리 자신을 인식하세요.”라고 교통할 줄밖에 몰라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등등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추호도 진리에 관련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런 문제에서 아무리 잘 실행해도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좀 있다 하여 추호도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함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 작은 일을 아무리 잘 해도 그저 당신에게 인성과 좋은 행위가 좀 있음을 대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이 털끝만한 작은 일에 이렇게 관심이 있겠습니까? 주로 그들이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려면 우선 진리를 깨닫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관건입니다. 사람이 만일 참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면 영원히 진리를 실행할 수도 없습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반드시 참으로 진리를 깨닫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진리를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은 아무리 잘 해도 사람이 진리의 실제에 진입한 것임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이방인 중의 좋은 사람마저도 해낼 수 있는 이런 일은 아예 진리와 무관합니다. 현재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진입할 진리는 바로 구원에 이르는 데에 반드시 진입해야 할 10가지 진리입니다. 만일 이 10가 진리를 구비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진실한 인식도 있을 수 있으며, 사탄의 본성 실질을 꿰뚫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는 데에 달하여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있으며, 성령 역사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악령 역사도 분변할 수 있고 각종 거짓 그리스도,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분별할 수 있고 각종 악인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10가지 진리를 구비해야만 이 4가지 분별을 구비하여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서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는 데에 달할 수 있고 사탄을 이길 수 있으면 이야말로 구원받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난 사람이며, 하나님께 온전케 된 이긴 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선민들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진실한 분량입니다. 당신이 규례를 아무리 잘 지킨다 하여 악령 역사와 거짓 그리스도,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분별할 수 있음을 대표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여 간증을 굳게 섰음을 대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바른 일을 해야 하고 10가지 진리를 잡고 깨닫고 진입해야 하지 털끝만한 작은 일에서 크게 문제삼아서는 안 됩니다. 10가지 진리를 잡고 전력을 다해 추구하여 깨닫고 진리에서 실행의 길을 찾아내야 실제에 진입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할 수 있는지? 어떤 진리를 깨달으면 당신으로 하여금 분별할 수 있게 하는지? 어떻게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간증하기를 실행하는지? 어떻게 거짓 인솔자, 거짓 일꾼과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통제를 대하는지? 이런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길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가의 여부에 직접 관련됩니다. 간증을 굳게 서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의 근본 문제야말로 사람이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관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리에서 공을 들이지 않고 자꾸 털끝만한 작은 일에서 이것저것 물으며 실행의 길을 찾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시야가 좁은 눈뜬장님이며, 참으로 깨닫고 진입해야 할 진리를 조금도 잡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이 지경으로까지 가련한데, 지금까지도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가장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래도 구원받을 희망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가장 중요한 것입니까? 반드시 10가지 진리를 구비해야 하는 것이 가장 근본입니다. 털끝만한 일은 먼저 관계하지 말고 10가지 진리를 깨달으면 이런 털끝만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적합한지 자연적으로 알게 됩니다. 당신이 10가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이런 털끝만한 작은 일을 아무리 잘 실행해도 소용없고 하나님께서도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사탄에게 노략당할 수 있고 여전히 나쁜 습관이 재발할 수 있으며 여전히 계속 악을 행하고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생명 성정이 변화된 것이야말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규례를 지킨다면 너무 어리석습니다! 마치 한 사람이 암에 걸리고 또 다른 작은 병도 많이 있는 것과 같은데, 도대체 먼저 암을 치료하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작은 병을 치료하겠습니까? 당신은 먼저 암을 치료할 것입니다. 죽지 않는 것을 보장한 다음 작은 병을 치료해도 늦지 않습니다. 만일 먼저 작은 병을 치료한다면 일단 암이 발작하면 작은 병을 치료했다 해도 결국은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구원받는 문제에서 총명한 사람은 어떻게 선택해야 합니까? 마땅히 먼저 사람의 본성 중의 치명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즉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성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규례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빨리 정신 차리고 더는 흐리멍덩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10가지 진리를 깨닫고 투득해야 더는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을 것이고, 확실히 하나님을 길 끝까지 따라갈 수 있으며, 간증을 굳게 서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몇 가지 큰 문제를 해결하면 그런 털끝만한 작은 문제도 자연적으로 알기 쉽습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도대체 규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아니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어느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 성정 변화에 달하게 하고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총명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규례를 지키기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시야가 좁고 눈먼 사람입니다. 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진리에서 진실을 구하는 사람이라야 매우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진리를 교통하면서 여태껏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규례를 지키라고 알려준 적이 없습니다. 저는 늘 털끝만한 사소한 일에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언급하는 사람에 대해 아주 반감을 느끼고 여태껏 답변해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진리에 관련된 문제에 답변하고 생명진입에 관련된 문제에 답변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늘 털끝만한 작은 일에서 크게 떠드는데, 마치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찾고 구하는 것 같으나 중대한 원칙에 관련된 일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작은 일에서는 마음씨가 선량한 체하고 큰일에서는 오히려 악행을 저지르며, 작은 일에서는 손해를 입어도 되지만 큰일에서는 이익만 보려 하며, 작은 일에서는 순복하는 체하고 큰일에서는 오히려 배반하는데, 이것이 바로 외식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관건적인 큰일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원칙적인 문제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한 사람이 작은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하고 큰일에서, 관건적인 일에서 다 하나님을 만족케 한다면 이런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작은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하는 척하고 큰일에서, 원칙상에서 전부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이런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벌과 저주를 받습니다. 마치 어느 집에 자식들이 한가하고 일이 없을 때는 먹을 것을 사 들고 부모님을 찾아뵙지만 부모님이 병이 나고 어려움이 있어 도움이 필요할 때는 오히려 얼굴도 내밀지 않는데, 이는 정말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입니까? 부모가 이런 자식을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실행함에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지 절대로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진리에 관련된 일에서 반드시 틀어쥐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행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하는 이것이 원칙적인 문제입니다. 원칙적인 큰일에 관련된 일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어야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털끝만한 작은 일에서 당신이 아무리 잘 실행해도 당신에게 진리가 있음을 뜻하지 않고 더욱이 당신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임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마땅히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고 바른 일을 해야 합니다. 전력을 다해 추구하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급선무이니 한시도 늦출 수 없습니다. 매 한가지 진리를 완전하게 깨닫고 투득해야만 실행 원칙과 구체적인 실행의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진리를 대하는 방면에서 흔히 모두 대강대강 일을 끝내고 단지 도리를 조금 깨닫고 규례를 조금 지키면 진리를 실행하여 실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치 어떤 사람이 중학교의 과목만 다 배우고는 자신이 학식이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데, 이는 허황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까? 규례를 지키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렇게 황당하며, 규례를 지키기 좋아하는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실행할 줄도 모릅니다. 무릇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인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무릇 교회에서 털끝만한 작은 일에서 크게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규례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무릇 교회에서 자꾸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하고 저것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직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간증하여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달하는지, 어떻게 본분을 함에 충심이 있는지를 중요시하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리를 실행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현재 성령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 선민을 인솔하여 모든 진리에 진입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중심으로 할 뿐입니다. 목적은 바로 하나님 선민으로 하여금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 깨닫고 투득해야만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다수의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문제는 바로 규례를 지키고 규례의 통제를 받아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규례를 지키는 것을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그리하여 규례를 지키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데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되었습니다. 규례를 지키고 규례의 통제를 받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진리에 대해 제대로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규례를 지키고 규례의 통제를 받는 어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사람이 아직 참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진리를 실행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글귀 도리밖에 모르는 사람에게만이 규례를 지키는 실행법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다시피, 규례를 지키는 실행법은 글귀 도리를 아는 중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에야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무릇 참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글귀 도리만 아는 사람이라야 규례를 지키기 좋아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볼 때에야 어떻게 규례를 지키는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규례를 지키기 좋아하고 규례의 통제를 받는 사람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규례를 지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반드시 계속 진리를 추구하여 참으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인식하는 데에 달해야 합니다. 당신이 어느 정도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을 확정할 수 있을 때에야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면 당신이 규례를 지키고 규례의 통제를 받는 문제도 따라서 해결됩니다.

2010년 12월 1일

이전 말씀:진리를 장비해야만 사탄의 시험과 미혹을 이겨낼 수 있다

다음 말씀:적그리스도의 본성 실질을 꿰뚫어보아야만 사탄의 간계와 음모를 간파할 수 있다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