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생명 공급——설교 특집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9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는가

패괴된 인류가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탄에게 패괴된 결과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패괴된 인류의 본성으로 초래된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의 마음속에는 사탄의 독소로 가득찼는데, 이미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탄의 종류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를 사탄의 후예라고 칭하셨는데, 이는 매우 적절하고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탄의 후예는 당연히 바로 사탄에게서 난 것이고, 그 패괴된 실질은 완전히 사탄에게 속하는 것인데,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습니다. 패괴된 인류의 본성 실질이 완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패괴된 인류 중에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서 게시하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패괴된 인류의 본성 실질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마음속으로 추구하고 동경하고 좋아하는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온 부정적인 사물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부정적인 사물에 점유되어 세상의 사악한 조류를 좇고 있는데, 갈수록 심해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깨우침을 받고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유감스럽게도 패괴된 인류는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야만 하나님께 순복하는 효과에 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자신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사람의 본분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가정을 버리고 사업을 포기하면서 하나님을 따를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라고 여김과 동시에 모두 자신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누구도 이것이 사람의 본성 실질을 게시한 하나님 말씀과 완전히 어긋나는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결코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가에 대해 사람은 모두 진실한 인식이 없습니다. 모두 무엇이 겉면의 순복인지, 무엇이 실질적인 순복인지, 무엇이 조건 있는 순복인지, 무엇이 절대적인 순복인지를 확실히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쉽게 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까?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가의 여부,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지배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 하나님의 권병에 순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가의 여부로 결정하는 것이지 절대 사람이 원한다 해서 실행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사탄과의 쟁탈전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사탄을 저버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께 순복해야만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구원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에 관련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진리를 실행하는 것에 대해 인식을 높여야 합니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되었으며,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사에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또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는가의 문제를 결정합니다. 매사에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실행할 수 없는 그 사람들, 하나님을 믿어도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없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서 진리를 실행했다면 그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한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만 진리를 실행할 뿐이라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원칙에 관련된 많은 문제에서 모두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작은 일에서만 진리를 실행할 뿐 중대한 원칙 문제에서는 진리를 실행할 수 없는데, 이것은 그 사람이 아직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는 것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가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자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사람 뜻의 뒤섞임이 없어야 하는 것이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사람의 선택이 없어야 하는 것이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바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끝까지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사람의 존심과 뒤섞임이 없고 어떤 인사물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완전히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순복 안에는 패역이 없고 대적이 없고 거래가 없고 조건이 없으며 충심만 있고 순복만 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기 위해서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서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순복을 구비해야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순복을 구비해야만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고 진정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입니다. 진실한 순복을 구비한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는 것이 정말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까?

패괴된 인류는 본성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사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 대해 순복이 좀 있을지라도 아주 유한한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의 뜻을 따르고 제멋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며 모두 이익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어떻게 자기에게 유리하면 그렇게 행하고 어떻게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그렇게 행합니다. 설사 진리를 실행한다 해도 사람의 뒤섞임으로 가득찼습니다. 어떤 때는 성령 역사의 감동에 의해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개인의 존심과 욕망 때문에 존심과 욕망이 만족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개인의 취미와 필요에 맞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사람의 정형이 비교적 좋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억울해하며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순복은 진실한 순복이 아니라 다 뒤섞임이 있는 순복이고 잠시적인 순복입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구비되지 않았고 더욱이 생명 성정의 변화도 없기 때문에 사람의 순복도 다 유한하고 잠시적이지 장구적이고 불변하고 철저히 절대적인 순복은 없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한 순복은 아주 적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절대적인 순복은 더욱 없습니다. 대부분 순복하는 정형은 다 사소한 일이나 진리에 관련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지 않는 일에서 표현됩니다. 원칙에 관련되는 일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간증을 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 순복은 아주 보기 드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다음 또 진리를 찾고 구하는 가상을 만들어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으로써 자신의 패역 진상을 덮어감춥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잘 위장하고 가상을 만드는데, 이것은 이미 하나님을 기만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상투적인 수단으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만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수법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씁니다. 사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이것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낡은 수단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모두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현재 사람들이 모두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나 적고 생명 성정이 아직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게시 하에 패괴된 인류의 실질에 대해 얼마간 인식이 있고 이미 패괴된 인류의 순복이 너무 유한함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중요성을 보았지만 패괴된 인류에게 만일 생명 성정의 변화가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패괴된 인류 자체가 그 본성의 매임을 받기 때문에 모두 나쁜 욕망에 빠지고 자신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려고 하지만 부지중에 또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원하지만 부지중에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개인이 손해를 좀 보면 여전히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모두 문제의 근원이 바로 사람의 사탄 본성임을 느꼈습니다. 만약 본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반드시 패괴된 인류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성을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패괴 실질에 비추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사람이 만일 많이 상고하지 않는다면 투철히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키는 것은 주로 이 사악한 인류 중의 각종 마왕, 위인들의 교육을 통해 인류를 미혹하고 해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온 각종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가 인류를 미혹하고 해친 지 적어도 수천 년이 되고, 각종 악령들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수천 년 동안 인류를 통제하여 패괴된 인류가 완전히 사탄의 독소로 배어 있고 가득차게 되었고 나아가 패괴된 인류 가운데 많고 많은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탄에게서 온 이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들이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 사람의 본성이 완전히 변질하게 되었고 일찍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본성으로 되었습니다. 패괴된 인류의 각종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는 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의 본성에서 생겨난 것이고 다 사탄의 패괴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인류의 본성은 전적으로 사탄의 각종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의 독소로 구성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패괴 본성이 사악한 사람일수록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가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패괴 본성이 심하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종류일수록 사탄의 철학이 더 많습니다. 패괴 본성이 사탄을 숭상하는 사람일수록 생억지와 그릇된 주장이 더 많습니다. 큰 붉은 용과 각종 악마들이 바로 전형적인 예입니다. 보다시피, 사람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는 전적으로 사람의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바로 사탄의 본성이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며 패괴된 인류가 살아내는 형상이 바로 사탄 마귀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큰 붉은 용의 몸에서 표현된 것으로부터 이미 완전히 사탄 악마의 흉악한 몰골을 간파하였습니다. 우리가 큰 붉은 용의 사악한 몰골을 분명히 알면 바로 사탄의 정체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패괴된 인류의 정형을 분명히 알면 시초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한 사탄 악마의 진면목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이 만일 참으로 인류의 패괴된 본성 실질의 문제를 인식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이 사탄에게 속하는 것인지,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에 속하는 것인지의 문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만일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인지,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여 성정 변화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 성정 변화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성정 변화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매우 유한하며, 일시적인 일에서만 순복할 수 있을 뿐 안정적이고 장구적인 순복이 없으며, 겉면의 순복만 있고 실질적인 순복이 없으며, 위장하는 순복만 있고 진실한 순복이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을 때는 사람이 이미 많은 진리를 구비하였고 새로운 생명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순복이 있게 되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는 것은 주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마음속에 사탄의 독소로 가득찼고 완전히 사탄의 각종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점유되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고 더욱이 진리가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는 모두 그 본성의 매임을 받고 각종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의 통제를 받는데, 전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정상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패괴 본성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이며, 다 오만 자대한 것이고, 다 방탕하고 단속을 받지 않는 것이며, 다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헌신하거나 의의있는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전혀 없지만 모두 복을 받고 이익을 얻고 첫자리를 차지하고 권세를 부리려는 야심을 갖고 있습니다. 적합한 환경과 지위가 있기만 하면 완전히 드러날 수 있는데, 정말로 강산은 바뀌기 쉬워도 타고난 본성은 바뀌기 어려운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하는 패괴된 인류는 모두 사탄에게 속하는 야심이 있습니다. 일단 지위와 기회가 있으면 쉽게 탈바꿈하여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하나님께 구원받고 진리를 구비한 사람에게라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헌신하는 진정한 심지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지극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사람에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있기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예컨대,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대충대충 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려 해도 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의 돈을 보관함에 있어서 만일 돈을 탐하지 않으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좋은 사람을 얻기 위해 공을 좀 많이 들이고 대가를 좀 치르는 것에도 달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진리에 진입하도록 인솔하는 일에서 대가를 좀 많이 치러 사람을 실제로 이끌어들어가는 것도 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함에 있어서 원칙을 지키고 입장을 똑바로 하고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더욱더 실행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거짓 그리스도, 적그리스도를 대하는 일에서 대담히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기 위해 그 어떤 사람의 미움을 살지라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상면에 보고할 용기조차도 없는데, 마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든 자신과 무관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어찌 또 사람의 양심 이지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누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배반하며, 평소에는 듣기 좋게 말하다가도 일이 닥치면 사탄의 편에 서고 사탄에게 득죄할까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은 정말 배반하여 외부와 내통하고 양심이 없는 인간쓰레기입니다. 중대한 원칙과 잘잘못에 관련된 일에서 하나님 편에 설 수 없고 방관자로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어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 적그리스도가 나와서 사람을 미혹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할 때 문득 깨닫고 기운을 내어 힘차게 반격하는데, 이런 사람은 무조건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마음속으로 사악을 증오하고 정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실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어떤 일이 닥치든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굳게 지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하나님 말씀이 곧 진리임을 확신하고 추호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사탄의 시험이 임할 때가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낼 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탄을 반격하여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으면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며 완전히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일이 임할 때 원수의 간계를 간파하고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여 사탄과 싸우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그것의 실질을 까발려 원수의 간계를 폭로시킬 수 있다면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자 역시 사탄을 이긴 간증이며, 완전히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부탁하신 중요한 사역을 열심히 잘할 수 있고 온갖 고난을 당해도 달갑게 대가를 치르고 최종에 안전하고 타당하게 임무를 완성할 수 있다면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며, 아름다운 간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기 위해 어떠한 수리 대처도 받아들일 수 있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든지 잘못을 알면 바로 고치고, 정확하게 대할 수 있고 불평하지 않고 소극적이지도 않으며, 본분을 함에 충심이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으면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교회의 각급 인솔자들이 하나님 집의 안배를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으며 사역하면서 자주 자신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배워 하나님을 섬기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여 자신의 섬김을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달하게 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아무리 수리 대처해도 하나님에 대한 충심과 경외를 지키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하는 것을 추구 목표로 할 수 있으면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표현은 아주 많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좀 실행할 수 있지만 어떤 진리는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받아야만 실행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받아야만 실행해낼 수 있는 이런 진리를 실행해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건적인 시각에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이 수리 대처를 받을 때 언제나 이유를 대고 조건을 따지며,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늘 관념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런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의 본성으로 초래된 것입니다. 조건을 따지기 좋아하고 이유를 대기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유를 대고 조건을 따지기 좋아하는 것은 바로 그의 순복에 조건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가 순복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기에 그는 순복할 수 없습니다. 걸핏하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관념이 생기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는 것은 바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불복하는 것인데, 마치 하나님이 그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의 오만 자대한 본성, 뱃심이 얼마나 완고한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사람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당연히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얼마간의 일을 하실 것이고 당연히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얼마간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또 가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사람의 생각을 뒤집고 사람의 생각을 거스르고 사람의 생각과 어긋나는 얼마간의 일을 하여 사람을 훈련시키시는데,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기의 본성 실질을 인식하여 진실한 순복에 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의 오만 패역과 우매무지를 드러내고 사람을 진리에 진입하도록 인솔하여 사람의 순복을 온전케 하는 데에 더욱 유리한데, 여기에 뭐가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설마 하나님의 역사에도 옳고 그름이 있단 말입니까? 사람은 왜 하나님의 역사가 모두 의의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역사가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충분히 나타냈는데, 사람은 인식할 수 없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이유를 대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을 수만 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무조건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만 진정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데에 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련과 연단, 수리와 대처는 바로 이런 효과에 달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최소한 정상 사람이 구비해야 할 양심 이지를 구비해야 하고, 최소한 10가지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최소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심지를 구비해야 합니다. 이래야만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정상 사람에게 있어야 할 양심 이지를 구비하는 이것은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만일 사람이 양심 이지가 없다면 설령 대역무도한 일을 해낼지라도 지각이 없으며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도 전혀 개의치 않고 또 제 딴에는 괜찮다고 여기며 양심 이지에 어긋나도 질책과 불안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심 이지를 구비하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하기를 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그 밖에,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됨에 있어서 반드시 많은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이것은 더욱 관건입니다. 진리는 사람이 하는 일을 가늠하는 준칙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람이 일을 함에 원칙이 없으며 사람의 추구는 방향과 목표를 잃을 수 있고 절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무엇을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라 하는지, 무엇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 하는지를 모르고, 진리가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없고 절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일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없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심지가 구비되어야 하는데, 이 한가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역사 중에서 사람이 만일 심지가 없다면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구원받는 데에 달하기 위해 대가를 치를 수가 없고, 진리를 얻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위해 온갖 고난을 받을 수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온전케 하심에 있어서 반드시 체험해야 할 각종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가 없고 아름다운 간증을 할 수가 없으며, 큰 붉은 용의 박해 중에서 끝까지 인내하여 하나님을 길 끝까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일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심지가 없다면 진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를 수 없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없습니다. 이상의 3가지 조건을 구비하는 것은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함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만일 사람이 이상의 3가지 조건을 구비하였다면 상당한 대가(받아야 할 고통을 다 받음)를 치른 후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고 생명 성정이 변화를 얻을 수 있으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구비해야만 생명 성정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 성정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지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배반하여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지 만일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바로 믿을 만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자주 진리를 어길 수 있고 부지중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며 수시로 하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너무 중요하다고 합니다. 진리를 많이 깨달은 사람이야말로 생명 성정의 변화를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다년간 하나님을 믿은 적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 교회의 각급 일부 인솔자와 일꾼은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명의상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실제상 지위의 복을 탐하고 있으며 높은 자리에 있고 호령질하고 권세를 부리고 위세가 대단하고 거만을 부리는데,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순복마저도 구비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아래 몇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의 순복도 구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아주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보다시피,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저렇게 넘어지고 실패한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1 어떤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없고 세상을 탐하고 육체 누림을 탐하며 의의 없는 일을 추구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살면서 자신이 아주 총명하여 한 손으로는 돈을 잡고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잡고 둘 다 놓치지 않으면 최종에는 여전히 구원받는다고 여기는데, 참으로 헛된 공상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최소한의 순복도 없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도태될 사람입니다.

2 어떤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겉으로는 아주 추구하고 열심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에 대해 갈급해하지 않고 진리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종교 규례만 지키고 사람의 관념에 의해 일을 처리하며 사람이 보기에는 경건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관념을 품고 진리가 없으며 마음속으로 자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최소한의 순복도 없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도태될 사람입니다.

3 어떤 부류의 사람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해도 여전히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것이 너무 많고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없으며 수리 대처를 거쳐 비록 자신이 항상 대충대충 하여 속인다는 것을 알지만 진실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역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이 감독하고 감시 관리해야 하는데,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최소한의 순복도 없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도태될 사람입니다.

4 어떤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하나님 집의 수리 대처도 받아들일 수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이 달래야 하고 몰아대야 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거슬리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집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최소한의 순복도 없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도태될 사람입니다.

5 어떤 부류의 사람은 비록 자주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지만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일을 함에 있어서 자기 뜻에 의거하며 자기의 애호에 따르고 매우 독선적이고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으며 매우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는데, 마치 자기가 바로 진리인 듯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최소한의 순복도 없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도태될 사람입니다.

6 또 어떤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특히 지위, 명리를 추구하고 늘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바라지만 하나님 집의 인솔자와 일꾼이 된 후 지위의 복을 탐하고 잘 먹고 잘 입는 것을 중요시하며, 다른 사람의 숭배와 옹호를 누리기 원하며 누가 아첨할 줄 알면 그를 좋아하고 누가 자기에게 순종하고 자기를 수호하면 그를 발탁하고 그를 쓰며, 자기는 높은 자리에 있고 남을 통제하거나 명령질하기 좋아하며 교회에서 권세를 부리고 제멋대로 행패 부리며 제멋대로 행동하는데, 그야말로 못된 짓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최소한의 순복도 없으며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끝장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상의 몇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의 순복조차도 구비하지 못했고 모두 아주 위험한 사람들이며 하나님께 구원받는 데에 달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너무 크고 수시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갈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에 대해 최소한의 순복도 없는 사람이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도태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무릇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컨대, 가정을 버리고 사업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그 사람들, 본분을 함에 충심이 있는 그 사람들, 접대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그 사람들, 위험한 사역을 담당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할 수 있는 그 사람들, 그리고 직책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사역을 전력을 다해 잘할 수 있는 교회의 각급 인솔자와 일꾼들, 그들에게 모두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기간에 사람이 아직 생명 성정의 변화에 달하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고 사람이 아직 온전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설사 하나님께 순복하는 일부 표현이 있다 해도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후 온전케 될 그때에 하나님께 온전케 된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현재 무릇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는 사람이 만일 마지막까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고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다면 그때야말로 하나님께 온전케 될 때입니다. 그때는 사람이 모두 누가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지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아직 하나님 역사의 마지막 절차를 다 체험하지 못했고 자신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을지도 아직 말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일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는 것은 사람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일부 표현은 진실한 믿음을 구비하기만 하면 달할 수 있고 사람에게 추구하는 심지가 있어도 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정이 변화된 후의 순복과는 구별이 있습니다.

지금 사람의 순복과 충심 속에는 모두 뒤섞임과 배경이 있지만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의 순복은 완전히 진실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조건 아래에서든지 모두 순복할 수 있다면 비교적 믿음직하고 안정적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는 사람은 각종 시련을 체험할 수 있어 넘어질 정도까지는 아니고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어 하나님을 모욕할 정도까지는 아니며 하나님의 칭찬을 얻고 사탄을 욕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현재 겨우 있는 겉면의 순복과 온전케 된 후의 순복은 서로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다 하여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의 순복은 뒤섞임이 없고 사람의 이익과 요구가 없으며 사람의 조건과 배경이 없고 사람의 거래 원칙이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이고 전적으로 사람의 본분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죽을지라도 원망과 요구가 없다고 여깁니다. 이 부류의 사람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보스럽지만 실은 대단히 총명한 사람입니다. 큰일에서 총명해야 진정한 총명이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일에서 총명해야 진정한 총명이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총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은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오만 자대하고 똑똑한 체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기의 본분을 할 수 없고 본분을 할 때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의의 없는 사역만 하는데, 완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지위의 복을 탐하고 높은 자리에 있으며 허영 속에서 살면서 스스로 만족해하고 사탄의 패괴된 몰골을 드러내며 순복하는 실제가 조금도 없는데, 이것이 어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그야말로 못된 짓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종이어야 하고 뭇 사람의 종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반드시 먼저 훌륭한 종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을 인솔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회개할 줄 모른다면 이는 어찌 변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다른 사람을 진리에 진입하도록 인솔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제를 만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곤두박질칠 것이고 도태될 위험도 있습니다.

이상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본분을 하여 하나님을 위해 화비할 수 있고 고생을 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음을 대표하지 않고 사람의 믿음과 사람의 추구만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는 것은 주로 다음 몇 방면의 표현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심판 형벌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람이 이해한 것이 깊든 얕든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고 절대로 틀릴 수 없음을 시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받아들일 수 있고 관념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 있어야 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2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어떤 수리 대처가 임하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 거역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고통을 받아도 이유를 대지 않고 하나님 집의 수리 대처가 정확하다고 시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 있어야 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거역과 대적이 있을 때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을 반성하여 육체를 배반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 있어야 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4 어떤 시련이 닥치든지 하나님 앞에 안정하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든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고 최소한 하나님을 모욕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 있어야 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5 본분을 하는 중에서, 피조물의 위치에 설 수 있고 피조물의 직책을 지킬 수 있으며 본분을 잘하는 것을 자신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면서 본분을 함에 있어서 대충대충 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끝까지 꿋꿋이 지키고 충성을 다하며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 있어야 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6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든지 하나님의 뜻은 다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되게 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일을 위해 추구하지 않고 도망칠 뜻은 없으며 매사에서 공과를 배워 오직 진리에 진입하고 실제에 진입하기만을 구하고 육체의 안일을 구하지 않으며 고난이든 생사든 선택이 없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최소한 있어야 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이상의 6가지 방면의 표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일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이상의 6가지 방면의 표현을 구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구원받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이 6가지 방면의 표현을 구비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 순복하는 6가지 표현을 구비한 사람이 만일 계속 진리를 추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한다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을 어느 한가지도 구비하지 못한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조금도 없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히 말해서 이런 부류의 사람은 불신파이고 끼어들어 숫자만 채우는 사람입니다. 이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소용 없으며 절대로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겉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어도 아직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까? 그것은 겉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는 사람이라 해서 꼭 많은 진리를 깨닫고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는 일부 사람들이 아직 온전케 되는 정도에 달하지 못하였고 틀림없이 아직도 많은 패역이 있고 아직도 많은 패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진리를 장비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수 사람의 정형은 바로 이러합니다. 오늘은 순복할 수 있지만 내일은 또 하나님과 논쟁하고 모레는 또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는데, 언제 사람이 순복할 수 있는지 모르고, 언제 사람이 또 배반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순복하지만 내일은 또 배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바로 이렇게 안정적이지 못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만일 사람의 생명 성정이 여전히 변화가 없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다고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께 순복하는 어떤 표현이 있어도 아직은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의 본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여전히 존재하고 하나님을 떠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사람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으면 사람은 진정 평안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 자신도 마음속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무릇 교회에서 충심으로 본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만일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를 깨닫고 진실로 자신의 패괴 실질을 인식하고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를 중요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배반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어느 정도 있을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여전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얼마간의 표현이 없는 그 사람들은 바로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복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시일을 바라보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본분을 하지 않는 사람과 본분을 해도 시종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고생과 어려움이 두려워 늘 도망치려는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하나님을 연구하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매우 깊은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히려 늘 세상을 탐내고 세속에 얽매인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언제나 종교 지도자를 숭배하고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언제나 우상을 따르고 그리스도께 순복할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 언제나 사람의 통제를 받고 천한 노예에 속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매우 번거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수시로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만일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조금도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역사가 끝난다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없는 이 사람들은 도태될 사람으로 됩니다.

하나님의 매 단계 역사마다 일부 사람들을 도태시키는데,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더욱 이러합니다. 현재 무릇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희망이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을 믿으면서 시종 바른 일을 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될 대상의 운명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조금의 변화도 없는 사람은 사실 이미 성령의 역사에 도태되었고 언제 어떤 재난이 닥치면 목숨을 잃고 그 속에 죽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각종 재난이 모두 이미 내려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직면하게 될 재난은 갈수록 커지고 갈수록 많아지며 사람이 죽는 것도 갈수록 많아집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재난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즉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자주 읽지 않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안중에 다 죽은 사람이고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다 희생품이기 때문에 각종 재난이 임하기를 기다려 해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역사에 순복할 수 없는 사람 즉 하나님께 순복하는 표현이 없는 사람은 모두 도태될 대상이며 모두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각종 재난 속에서 죽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어떤 정형인지를 인식해야 하는데,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너무나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고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를 얻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어 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 안에는 하나님 말씀이 생명으로 되고 진리가 사람 안에서 권세를 잡기에 사탄에게 속하는 본성이 따라서 해체됩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고 진리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사악을 이겨내게 하고 육체를 배반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은 위력이고 진리가 권세를 잡은 능력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더 많은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늘 어떻게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는가를 상고하며 늘 무엇이 가장 의의있는 인생인지를 깨달으려 하고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인생만이 가장 의의있음을 완전히 인식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인생은 바로 사탄 마귀의 인생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바로 최대의 불효자이고 대역무도한 인간쓰레기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만이 하늘땅 가운데서 살아갈 자격이 있으며, 하나님께 칭찬받는 인류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섬김이 있어야 최대의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나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을 했다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적고 너무 얕다고 여깁니다. 만일 마음속에 꿰뚫어볼 수 없는 일이 조금만 있다면 여전히 진리를 추구하여 심화하려 하고 자신의 생명이 변화된 정도에 대해 여전히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만일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고 이것을 위해 또 계속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신의 정형이 어떠한지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만일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면 평안하지 않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 속의 진리를 상고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닥치든 하나님 말씀에서 사물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사는 정형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또 본분을 함에 있어서 직책에 충실한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중점적인 본직 사역을 포착하고 가장 가치있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만일 가치있는 사역을 하지 못하면 허송세월 보냈다고 여기며 마음속이 평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사역을 함에 있어서 효과에 달하기를 중요시합니다. 그것은 사역함에 효과가 있어야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부탁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해야만 한평생을 헛되이 살지 않게 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위해 충심을 다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추구해야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많은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우선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말씀의 모든 심판 형벌에 순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모든 수리 대처를 받아들여야 하며 자신의 패괴를 알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신의 본성 실질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하나님 말씀 속의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구비하라고 요구하신 모든 진리에 따라 자신의 현실 필요에 근거하여 점차 진입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 많은 진리를 얻을 것이고 생명 진입의 실제가 있게 됩니다. 이때에야 사람은 자신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시작하였음을 볼 수 있고 본분을 하는 정형도 갈수록 좋아지고 패역도 갈수록 적어지고 순복의 요소가 갈수록 많아지고 본분을 하는 것과 살아냄이 하나님의 요구와 갈수록 가까워지며, 최종에는 완전히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사는 데에 달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대해 갈수록 많이 깨닫고 마음속도 갈수록 환해지고 모든 일에 대해서도 꿰뚫어볼 수 있고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알고 매사마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면 이는 바로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있는 사람이며, 이미 하나님께 구원받고 즉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된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되려면 각종 시련 속에서 모두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더 깊이 추구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데, 진리가 결핍하면 안 됩니다. 각종 시련 속에서 사람에게 조금의 패역이 있어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매번의 시련마다 사람의 패역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만일 매사에서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없다면 고비를 넘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체험해야 할 크고 작은 시련들이 너무 많아 반드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에 의해 하나하나 직면해야 합니다. 진리를 얻고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얻는 것으로부터 진리가 사람의 생명으로 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진리를 찾고 구하여 해결해야 하며, 시련을 겪을수록 더욱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래야만 순조롭게 고비를 넘길 수 있고 생명 성정 변화의 더 높은 경지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단 사람의 생명으로 되고 진리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권세를 잡고 주인이 되면 사람 마음속의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는 지위가 없어집니다. 사탄의 독소와 황당무계한 논리가 제거될 수 있으면 사람의 생명 성정도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고 사탄에게 속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의 본성도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이러면 사람은 더는 사탄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전케 하신 새로 만든 사람이고 진리도 있고 인성도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오직 진리를 추구해야만 자신을 이 경지로 이끌어 갈 수 있으며, 오직 진리를 추구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2006년 9월 15일

이전:사물을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표징이다

다음:자신의 패괴된 실질을 인식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