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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진실한 회개이다

무릇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몇 년 동안 체험한 사람은 모두 이미 인류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조금도 없고 사람의 양심과 이지(理智)가 구비되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패괴된 인류의 모든 행위는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항상 거짓말하고 기만하고 가장하며, 대강대강하고 얼버무리며, 일부러 속이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하는데, 전혀 사람의 진실한 순복이 보이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보이지 않고, 사람의 충심이 보이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실한 사랑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다시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전혀 진실한 회개가 없는데, 모두 외식하는 사람이고 모두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기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기만 하면 사람은 이에 대해 논단하고 각 방면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려고 합니다. 설령 자신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화비(花費)한다 해도 복을 받기 위해서이고, 본분을 하는 것은 완전히 자기 뜻대로 하고,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며 진실한 순복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수리와 대처를 받으면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핑계를 찾아서 하나님에 대해 반항하고 논단하고 거역하고 대적하며, 심지어 사실을 어기고 사실을 왜곡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또 그가 저지른 나쁜 일이 탄로나면 하나님 집에서 도태될까봐 다른 사람을 제한하여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진상을 폭로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 집을 위해 본분을 조금 하기만 하면 자신을 위해 면류관을 쟁탈하고 하나님의 상을 받기를 몽상합니다. 보다시피, 인류가 심히 패괴되어 정말 이치로 이해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인성이 없는 패괴된 인류가 아직도 멍청히 하나님께 들림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야말로 몹시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럽습니다. 만약 인류가 정말 양심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여전히 이런 패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도 없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들림받아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천국이 이렇게 쉽게 들어가는 곳이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고 정죄하는 사람, 하나님이 발표하신 진리를 듣고도 하나님을 재차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가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이 다 들림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실한 회개가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사치스런 소원이고 일방적인 소망입니다. 온 종교계가 모두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도대체 진실한 회개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술을 마시지 않고 마작을 하지 않고 음란 행위를 하지 않고 남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도둑질하거나 빼앗지 않고 사람을 죽이거나 복수하지 않기만 하면 회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기만 하면 회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제물을 훔쳐먹지 않고 하나님 집의 돈을 탐내지 않기만 하면 회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대적하지 않고 모독하지 않기만 하면 회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약 사람이 정말로 회개가 이렇게 간단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어긋나기에 엄청난 잘못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신 회개는 죄악을 벗어버리고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정을 조금 내는 것은 진실한 회개를 뜻하지 않고, 거래할 마음을 품고 하나님 집을 위해 효력을 하는 것도 진실한 회개를 뜻하지 않습니다. 무릇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다 진실한 회개가 없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없으며, 더욱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심으로 본분을 다하며 대충대충 하거나 속이지 않는 성실한 사람 하나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만약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믿고 좋은 일을 조금 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말세에 사람을 심판 형벌하는 사역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지금 하나님을 믿는 여러 가지 표현을 본다면 모두 진실한 회개에 미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거짓말로 하나님을 속일 수 있으며, 본분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대충 대하고 속일 수 있고, 여전히 사실을 어기고 사실을 왜곡하여 말할 수 있고, 여전히 궤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고,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으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찌 진실한 회개일 수 있겠습니까? 진실한 회개는 반드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래야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됩니다. 그것은 성실한 사람이라야 정상 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정상 인성을 구비해야만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 정상적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회개이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회개입니다.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회개의 표현인데, 사람이 애써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두 달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성공하는 데에 최소한 구비해야 할 바입니다. 만약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조차도 달하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희망마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을 판 유다가 바로 아주 궤사한 사람이었는데, 늘 주님의 돈을 훔쳐쓰고 주님의 몸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그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주님을 파는 반역자가 되게 함으로써 저주받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진실한 회개가 없으면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진실한 회개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은 후에 좋은 일을 조금 한 것을 첫인사 때 주는 선물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약간의 성심만 뜻할 뿐, 사람이 회개하였다는 것을 뜻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 성정의 변화는 하나님 역사의 최종 효과입니다. 인성의 바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는가는 완전히 사람이 노력하여 달할 수 있는 것이고, 최소한 어느 정도 바뀌어 가장 낮은 표준에 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일부 사람들은 아내에 대해 아주 잔혹하여 때린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때리는데, 이것은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를 교육하는 데에 대해 인내심 없이 늘 아이를 거칠게 다루는데, 이것도 역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늘 형제자매들을 속이고 허위적이고 가식적인 말만 하여 정상적으로 함께 지낼 수 없는데, 이것도 역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회개는 바로 잘못된 행실을 버리고 육체를 배반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께 전부 듣기 좋은 말과 기만하는 말만 하였고, 궤사와 거짓말로 하나님을 대했으며, 본분을 할 때 언제나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였는데, 이것도 역시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란 바로 잘못된 행실을 버리고 아브라함과 욥처럼 정상 사람의 양심과 이지로써 하나님을 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온전한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확실히 몇 년 동안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다가 사람의 표준에도 달하지 못한다면 진실한 회개가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어도 얼마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전체 사람들이 거의 여전히 사탄에게 속한 패괴된 사람이고 이방인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어서 다른 사람과 정상적으로 함께 지낼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만 벌리는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최대의 기만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어도 성실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기만하는 사람이고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에 속하는데, 이런 인류가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은혜시대에 늘 말하기를 진실로 회개하고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역사하시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께 구원받아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사람이 어떤 본분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사람 소질의 높고 낮음에도 있지 않으며 더욱이 사람이 어떤 등급의 인솔자가 되느냐에도 있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구원할 수 없는 인류이고, 틀림없이 도태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사람도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려면 다른 선택은 없고 반드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하나님을 믿어도 반드시 실패하고야 말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회개이고, 비로소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 형벌하시고 수리 대처하시는 것을 통해 진리를 사람 안에 만듭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달을 때에야 정결함을 받고 변화되기 시작하여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 중에서 하나님은 여러 번이나 사람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모두 정상 인성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양심과 이지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사람의 마음이 갈수록 궤사하여 전부 거짓말만 하고 이익만을 꾀하고 신용이 없고 서로 속고 속이고 서로 방비하며,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 악인데, 사람의 모양을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이런 인류는 각종 법률과 교육으로도 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인류는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보응과 징벌과 통제가 없다면 인류는 일찍 뒤죽박죽이 되었을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를 멸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바로 얼마간의 구할 수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구할 수 있는 이런 인류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인류이고, 최소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는 인류입니다. 이런 인류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어떻게 말씀하시든지 다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생기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최종에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얻어져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이치에 맞고 완전히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를 체현합니다.

무엇이 성실한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실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으며, 범사에 그에 대하여 거짓을 꾸미지 않고 범사에 그에게 터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고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고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실이란 일하고 말할 때 거짓을 섞지 않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한 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너희들에 대하여 말하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몇 마디 말씀이지만 사람에게 실행하라고 시키면 정말 설상가상입니다. 인류가 얼마나 깊이 패괴되었는지 사람 모양을 조금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믿지 못하겠으면 한번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하나님 나라해보면 도대체 패괴된 인류가 얼마나 궤사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단순하게 마음 터놓고 진실을 말할 수 있고, 실사구시적으로 말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다 하나님은 사람이 불손하게 대해서는 안 될 분이고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만일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을 섬길지라도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만일 진실한 회개가 없다면 조만간 도태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 마땅히 어떻게 체험하고 진입해야 하겠습니까?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실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4가지 방면으로부터 시작하여 진입해야 합니다. 첫째, 우선 기도하는 방면에서 진입하는 것입니다. 둘째,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버리는 방면에서 진입하는 것입니다. 셋째,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께 충성하는 방면에서 진입하는 것입니다. 넷째,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방면에서 진입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4가지 방면에서 모두 실행 진입이 있고 요구에 달할 수 있다면 성실한 사람입니다. 이 4가지 방면의 진입은 다 아주 중요하고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끈질기게 노력하기만 하고 2~3년 동안의 시간만 들이면 성과가 있을 것이고, 처음으로 효과가 보이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정상 인성을 구비하고 어느 정도 사람의 모양이 있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온전케 된 후에는 완전히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때는 사람이 완전히 정상 인성을 구비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고 모두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며 더는 사탄에게 미혹되거나 패괴될 수 없습니다. 이는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 아닙니까?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주로 아래 4가지 방면에서 반드시 진실한 진입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반드시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진입의 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이 있고 어느 정도 단속을 받을 수 있기에 진실을 조금 말하는 것은 그래도 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돌파하여 진입하면 쉽게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패괴된 인류에게 거짓말이 너무나 많고 심지어 매 마디 말 속에 다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과의 기도 교제 중에도 거짓말과 궤사가 가득찼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사람이 기도할 때 흔히 듣기 좋게 말하지만 실행하지 않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심하게 기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 흔히 자신을 바친다고 하지만 실은 여전히 제멋대로 하고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심하게 기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 흔히 자신이 패괴됐다든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했다든가, 사탄 마귀에게 속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이 임하면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심하게 기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 찬미와 칭송이 넘치지만 시련이 닥치면 전부 불평이고 심지어 하나님을 부인하고 논단하고 모독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심하게 기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실행 방면에서는 자신만을 위해 타산하기에 마음에 하나님도 없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심하게 기만하는 것입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사람이 기도할 때 거짓말과 기만, 궤사와 존심이 가득찬 것입니다. 가히 말해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기만하는 고수이고 상습범이며 모두 진짜 사기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여러 가지 기만 행위에 근거하여 묻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심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인간 세상에 또 성실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에게 정상 사람의 양심과 이지가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렇게 궤사를 부리고 기만할 수 있는데 사람에 대해 성실하고 속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진지한 기도가 있는가 없는가는 사람을 최고로 드러냅니다. 궤사한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없는 것은 바로 진실하고 진지한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궤사와 기만성을 띤 기도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이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그럼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하나님께 맹세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었고 사탄 마귀와 똑같이 늘 거짓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당신께 기도할 때에도 언제나 거짓말하여 기만하였습니다. 오늘 당신께 맹세합니다. 제가 계속 거짓말하여 당신을 속이면 저를 호되게 징계하시고 엄하게 징벌하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어떠한 징벌이든 기꺼이 받겠습니다. 저는 새 사람이 되고 당신 뜻에 맞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 진실로 당신께 순복할 수 있고 경배할 수 있기를 결심합니다!” 하나님께 맹세한 후 기도하는 중에서 진실한 말과 마음속 말을 하기를 실행 훈련하기 시작하여 완전히 심령 안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언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느낌이 들면 완전히 심령에서 스스로 생긴 것이고 마음속의 필요인데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하여 속에서 생각한 대로 기도하고 마음속에 어떤 ‘요구’가 있으면 어떤 것을 기도합니다. 이것이 순리를 따르는 기도인데, 삶과 같이 진실하고 인의적인 허위와 거짓이 없으며, 전적으로 평소에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누린 것에 의해 얻어온 것입니다. 이런 기도 중에 사람 안에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연히 사실대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데, 생각한 대로 말하고 그저 하나님께 단순하게 터놓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속에 말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할 말이 없으면 제멋대로 말을 꾸미거나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사람의 말이 많고 적은가에 있지 않고 사람의 말이 성실한가의 여부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인가 아닌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오직 사람의 기도가 진실한가, 거짓이 있는가 없는가, 뒤섞임이 있는가 없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거짓되고 허위적이고 기만적인 기도를 가장 증오하십니다. 무릇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면 다 거짓말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말입니다. 무릇 기도하는 방면에서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자는 다 궤사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흉포하게 날뛰며 거리낌 없이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음을 설명합니다. 마치 공허한 하나님을 대하는 것과 같은데 이런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일 수 있습니까? 오직 사탄 마귀라야 감히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기도할 때 거짓말을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은 다 성실한 사람이 아니며, 완전히 정상 사람의 양심과 이지를 잃은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하는 중에서 표현한 것은 바로 마귀 사탄의 몰골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이 아주 경건하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니 하나님을 기만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보다시피, 사람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은 이제는 습관이 되었고 사람의 본성으로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한 기도를 해부해보면 사람은 모두 자신의 가련한 모습을 알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모두 제 딴에는 괜찮다고 느끼고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패괴된 인류의 기도는 다수가 모두 하나님을 기만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 부류의 기도를 해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기도는 어려움이 닥쳐 하나님께 구하여 일을 처리해야 하고 하나님을 필요로 해야 하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을 바칠 것을 약속하고 찬미의 말을 잔뜩 말하지만 일이 지난 후에는 마치 없었던 일과 같이 하는데, 이런 ‘봉헌’이 바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기도는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자신을 위장하고 높이며 마치 자신이 한 것이 다 하나님 뜻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님께 축복해달라고 구하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사취하려는 기도입니다. 어떤 기도는 본분을 할 때 책임을 지지 않은 탓에 대처를 받고 하나님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극력 변명하고 위장하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데,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처럼 완전히 하나님께 해석하고 궤변을 늘어놓고 반항합니다. 어떤 기도는 바로 가는 곳마다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이 받은 모든 고통, 하나님 집을 위해 한 사역을 다 하나님께 호소하여 마치 자신의 공로가 많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님께 기념해주시기를 구하는 것인데,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잊으시면 하나님의 축복을 잃을까봐 먼저 자신에게 공적을 기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도는 바로 평소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일이 닥쳐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지 않고 순복이 전혀 없지만 늘 빈말로 하나님을 찬미하며 얼마간의 죽은 글귀로 기도하는데, 완전히 하나님을 기만하는 외식적인 기도입니다. 이와 같은 부류의 각종 기도는 완전히 사람의 궤사와 기만을 드러냈는데, 완전히 하나님을 기만하고 우롱하고 대적하는 기도이며, 전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기도에서 사람의 궤사와 기만의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도대체 궤사한 사람인지 아니면 성실한 사람인지는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말에서 알아낼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의 기도는 완전히 정상 사람의 이지에 부합되고, 말할 때 성실하고 거짓이 없고, 진실한 말을 하는데, 완전히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기도이고, 틀림없이 또한 하나님께 열납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궤사한 사람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기도이고,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기도이며, 모두 하나님과 거래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궤사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든지 다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것이니, 절대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먼저 기도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입의 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만 하나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과의 기도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성실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둘째,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진실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버리는 실행에 진입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상 훈련입니다. 매일의 생활에서 사람은 너나없이 말하게 마련인데, 만약 입에 한마디 거짓말도 없게 하려면 상당히 쉽지 않은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훈련하는 사람은 모두 패괴된 인류가 매일 거짓말이 너무 많고 거짓말을 버리는 것이 확실히 아주 힘든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 자신도 매우 믿기 어려운 것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부득이한 정황 하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중에 저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심한 사람은 심지어 어디서나 거짓말하고 어떤 일에서나 거짓말하며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무시무시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보다시피, 사람은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된 정도를 상상하지 못하였고 누구도 자신의 거짓말이 이렇게 많음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래 자신이 아주 성실하여 거의 아주 적게 거짓말하고, 설령 거짓말을 할지라도 부득이한 정황 하에서라야 하는 것이고, 만약 좀 더 훈련하면 거짓말하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 이 문제를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특별히 사람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신 정황 하에서 훈련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거짓말이 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사람은 다 아주 궤사합니다! 보아하니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진입해야 할 한가지 진리의 공과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아주 성실하다고 여기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진실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버리기를 한동안 훈련한 후에는 궤사한 사람이란 어떤 것인지 발견하실 것입니다. 궤사한 사람은 전혀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지 않고 자기의 존심과 목적에 근거하여 말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말만 하는데, 전적으로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말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말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말합니다. 사악하고 이기적인 이런 처세 원칙에 근거하여 말하는데, 사람의 거짓말과 기만이 어찌 적어질 수 있겠습니까? 현재 어떻게 거짓말을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반드시 말을 하는 방면에서 엄격히 점검하고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기를 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며, 반드시 엄격히 진실을 구하고 매 한마디 말마다 사실에 근거하여 말해야 하지 절대 양심을 어겨서는 안 되며, 양심이 반드시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매 한마디 말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심사해야 하는데, 거짓이 조금도 섞여서는 안 되고, 말하는 것이 맞지 않아도 안 되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아도 안 되고, 잘못 말했으면 반드시 다시 말해야 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또 즉시 성명(聲明)해야 합니다. “저의 어느 말이 잘못 말했다면 지금 고쳐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지금 하는 말을 기준으로 할 것이니 이전의 말은 폐합니다.” 말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엄격히 대해야 하고, 마땅히 말하는 것을 다시 시작해서 배워야 하는데, 말할 때 진실을 구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실행할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고 이미 늘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여전히 저를 구원하시고 제가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오늘, 저는 당신께 맹세하는 것을 증거로 삼고, 성실한 사람이 되고 진실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을 목숨 걸고 맹세합니다. 만일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저를 많이 징계해주시고 징벌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런 후에 진실한 말을 하기를 훈련하기 시작해야 하는데, 어떤 장소에 있든지 반드시 진실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완전히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고, 자신이 장악하고 인식한 정형에 근거하여 말하며, 매 마디 거짓말, 진실하지 않은 말, 거짓이 섞여 있는 말, 부정확한 말을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릇 사실에 맞지 않는 말이라면 모두 엄격히 대해야 하고 가장 좋기는 공개적으로 성명하고 반드시 다시 말해야 합니다. 말이 맞든 틀리든 자신의 마음에 진실한 말이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이것은 바로 성실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한 것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에 관해서는 바로 진리의 인식 문제에 관련되는 것이니, 또 한가지 일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 중에서 특별한 정황(사탄의 시험을 가리킴)에 대해서는 지혜를 강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훈련하는 것과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특별한 정황에서 지혜로운 방식을 강구해야 하는 것과 진실한 말을 해야 하는 이것은 서로 별개의 일입니다. 당신이 사탄에게 속한 사람에게 말할 때는 진실한 말을 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았다 해서 이것은 불성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당신이 한 말이 의식적으로 지혜를 강구한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거짓말한 것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본성에서 나온 거짓말과 의식적으로 지혜를 강구한 말을 반드시 구분해야 하지, 함부로 거짓말하는 것을 지혜를 강구하는 것이라고 말하여 감추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또한 궤사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이 없는 데에 달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진실한 말을 하기를 훈련할 때는 서로 감독하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처음 며칠은 스스로 자신의 말을 기록하고 테스트하여 자신이 하루에 거짓말, 빈말, 거짓이 섞인 말, 과장한 말, 막연한 말, 쓸데없는 말을 얼마나 하는지, 몇살 된 아이의 말과 비교할 때 어떤 구별과 차이가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말한 진실한 정형을 완전히 보게 되면 당신은 사람의 가련한 모습을 알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높고 크다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거짓말, 빈말, 과장한 말만 잘하고 진실한 말을 하는 것조차도 달하지 못하니, 성실하게 말하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가 못 되고 말할 때 진리가 있는 것과는 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고 부족함이 너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사람이 하루에 말하는 가운데 거짓말과 쓸데없는 말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진실한 말을 몇 마디 가려낼 수 없고, 진리에 부합되는 말과 무게가 있는 말은 더욱 없습니다. 사람이 만약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훈련하지 않고 또 진리를 장비하지 않는다면 살아서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어찌 진정한 인생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보다시피,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훈련하는 것은 너무나 의의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을 향해 가는 첫걸음입니다. 말할 때 거짓말이 없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데에 달하는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말할 때 거짓이 없는 데에 달하는 것은 주로 3가지 방면을 포괄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기도할 때 거짓말이 없어야 하고 둘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거짓말이 없어야 하며 셋째, 생활 속에 거짓말이 없어야 합니다. 이 3가지 방면에 모두 거짓말이 없으면 성실하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말할 때 거짓말이 없는 데에 달하려면 2~3년의 훈련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셋째, 반드시 본분을 하는 방면에서 하나님을 대충 대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데에 달해야 합니다. 패괴된 인류의 주요 표현은 언제나 거짓말로 하나님을 기만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면에서 대충대충 하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는 말할 때이고 하나는 일을 처리할 때인데, 마찬가지로 다 사람의 패괴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하는 방면에서 합격에 도달한 후, 본분을 하는 방면에서 또 진실로 순종하고 순복하며 하나님 말씀에 의해 행하고 대충대충 함과 기만이 조금도 없으면 바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하며 하나님을 속이는 것도 몇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첫째, 무릇 본분을 할 때 힘을 덜기 위해 형식만 갖추고 효과를 강구하지 않는 것은 바로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표현입니다. 둘째, 무릇 본분을 할 때 고생할까봐, 위험할까봐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취하고 효과에 달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표현입니다. 셋째, 무릇 본분을 할 때 진리에 관련된 일, 사람의 미움을 사는 일에 대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찾고 구하지 않고 도리를 따져 대강대강 일을 끝내는 것은 바로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표현입니다. 넷째, 무릇 본분을 할 때 하나님을 향해 책임질 마음이 없고 하나님께 충성할 마음이 없고 그저 사람을 위해 하고 상면을 위해 한 것은 바로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표현입니다. 다섯째, 무릇 본분을 할때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상면의 요구에 따라 한 것이 아니라면 다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것인데, 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표현에 속합니다. 이상은 바로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5가지 방면의 표현입니다. 이 5가지로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가늠하기만 하면 사람이 본분을 할 때 도대체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본분을 해야 대충대충 하거나 속이는 것이 없고, 하나님을 마음 놓으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 본분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수리와 대처가 필요 없습니다. 궤사한 사람이 본분을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도 않으면서 늘 거기에서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자기의 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 집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보다시피, 궤사한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은 완전히 자신을 위한 것인데,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추호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궤사한 사람이 본분을 할 때는 언제나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여 하나님께 혐오받습니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아무리 온순하고 무던해도 모두 사곡하고 궤사한 패괴 성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할 때 모두 대충대충 하여 속이고 모두 하나님을 기만하는데,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완전히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구할 수 없는 궤사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본분을 하는 방면에서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본분을 하는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하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부지중에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궤사와 기만이 이미 사람의 본성이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대충대충 하거나 속이지 않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자신의 본성의 실질과 사곡, 궤사, 기만의 실질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분명히 알아야만 사람이 어떤 끔찍한 정도로 패괴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자기의 부모를 속였다면 이것이 그 무슨 엄중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늘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면 이것은 아주 무시무시한 문제이니,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여 성정 변화에 달하는 것에 의해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진심이 없는데, 사람에 대해 진심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도 감히 기만하는데 사람을 기만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인류가 이미 끔찍한 정도로 패괴되었음을 충분히 설명합니다! 인류가 언제나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는데 어찌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겠습니까? 어찌 하나님께 충성하는 데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인류가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는 것은 인류가 이미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 되어 완전히 하나님을 대립면으로 여겼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는 사람도 당연히 하나님의 원수인데, 사실이 바로 이렇게 무섭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인류는 일찍이 훼멸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성실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구해낼 수 없습니다. 본분을 하는 방면에서 만일 대충대충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성실한 사람이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반드시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여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아야 하며 또 엄격히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대충대충 하고 속이는 것을 발견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에 대해 기만이 있음을 발견하면 과오를 인정해야 하지 숨겨서는 안 되고 위장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사실을 왜곡하여 남에게 덮어씌워서는 안 됩니다. 일을 처리할 때 바로 이렇게 진지해야 하고 자신의 일언일행을 엄격히 대해야 하며,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실사구시해야 하며 거짓이 조금도 뒤섞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과오를 발견한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외에 또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하며, 부끄럽다고 자기의 체면을 고려하지 말아야 하고 마땅히 용감하게 사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하면 아주 의의있고 확실히 자신에게도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믿음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둘째,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허영심과 체면을 버릴 수 있습니다. 셋째, 용감히 사실에 직면하고 사실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일을 처리할 때 진실을 구하는 심지를 양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훈련하면 사람이 본분을 할 때 많이 성실하게 되고 일을 처리할 때 많이 실제적이 되고 거짓이 적어지는데, 몇 년 걸리지 않고도 일을 처리할 때 진실하고 진지하고 일을 할 때 책임을 지는 성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본분을 하고 사역을 하는 것은 비교적 믿을 만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이런 사람을 써야 가망이 있고 한 치의 착오도 없게 됩니다.

넷째,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마음을 진실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기에 성공하는 가장 관건적인 진입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신을 위해 도모하는데, 완전히 본성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을 주인이 되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만약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면 큰코다칠 것이고 십자가를 향해 가고야 말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하여 조심스레 방향키를 잡고 주인 노릇을 하며, 모두 자기가 주인이 되어야 믿을 만하고 그래도 자신이 자신에 대해 제일이고 자신이 자신을 주관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여깁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실제로 증명하다시피, 자신에 의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자신에 의해 패괴를 벗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자신에 의해 하나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보게 된 것은 바로 자신에 의하면 정도(正道)에서 빗나가고 잘못된 길에 들어서고 심지어 돌아오지 못할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보다시피, 사람은 자신에 의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만 자대하고 특히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그 사람들이 다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의탁하지 않고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겠습니까? 우선 반드시 자신이 너무 깊이 패괴되고 진리가 없으며 자신을 장악할 수 없고 더욱이 사탄을 이기고 죄악에서 벗어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 의하면 참 도에서 빗나가고 참 하나님을 배반하고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는데 어찌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길이 없는데 어찌 올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하지 못했는데 어찌 사람의 모양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만일 인생 광명의 길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며, 하나님의 인솔과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여야 하며, 철저히 사탄을 배반하고 자신을 배반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를 선택해야 하며,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데에 달하는 것도 몇 가지 실행법이 있습니다. 첫째, 반드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상 마땅히 하나님으로 하여금 주인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대로 해야 하며, 살든지 죽든지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해 화비(花費)해야 하며,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안배하면 그대로 순복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면 그대로 행해야 하며, 절대 다시는 자신이 주인이 되지 않고 완전히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본분을 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 주관하시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 걸어가야 할 길, 추구해야 할 목표 그리고 혼인과 가정의 선택 및 생활의 방식까지 모두 하나님으로 하여금 주관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이런 중요한 일들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으로 하여금 주인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이 허락하실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선택해야 하지, 절대 세계 조류를 따라서는 안 되고 자기 뜻에 따라서도 안 되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셋째, 마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바로 매사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유일한 실행 원칙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히 하나님으로 하여금 주관하시게 하고 주인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매사마다 진리에 따라 행해야 하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으며, 매사에 하나님 말씀에 의해 실행해야만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위의 3가지 실행에 따라 진입할 수 있으면 바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만이 진실한 봉헌이고 철저한 봉헌입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는 유일한 경로이고, 하나님을 믿는 가장 근본적인 실행법이며, 또한 성령 역사를 얻는 경로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김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을 인식해야만 진실한 믿음이 생깁니다. 무릇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이는 완전히 사람의 성심과 믿음을 대표합니다. 무릇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을 믿은 길입니다. 만약 마음을 참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데에 달할 수 없다면 절대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야말로 성실한 사람이며, 매사에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사람이야말로 성실한 사람이며, 매사에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성실한 사람이며, 매사에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없는 사람은 틀림없이 가장 궤사한 사람이며, 매사에 감히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못하는 사람,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려 하지 않는 사람은 다 성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실한 사람만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려 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나 미치광이 같고 너무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궤사한 사람은 실행해내지 못합니다. 궤사한 사람은 제 딴엔 아주 총명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아주 어리석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성실한 사람은 바보 같지만 실은 가장 총명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모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고,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 같지만 지혜가 많은 사람입니다. 궤사한 사람은 제 딴엔 지혜가 있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자신의 간계에 빠지고 자신을 실족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 궤사한 사람은 모두 도태되고 각종 재난 속에서 죽지만 성실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어 평안과 희락이 충만합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누가 총명하고 누가 우매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철학은 진리가 아닙니다. 전지(全智)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하십니다. 이것을 사탄에게 속한 인류는 영원히 인식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야말로 성실한 사람인데, 이는 참으로 총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이 바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야말로 대단히 총명한 사람입니다.

그 궤사한 사람들만이 입으로 자신을 바치고 입으로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외치지만 일이 닥치면 여전히 육체를 따라 스스로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을 선택할 수 없어 최종에는 자신을 망치고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혼인에서 실패하였는데, 이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사업에서 실패하였는데, 이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선택의 길에서 바울의 길에 들어섰거나 적그리스도를 따랐는데, 이것도 역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지위를 추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돈을 탐하고 일부 사람들은 세상을 추구하고 직업을 추구하는 바람에 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나아갔습니다. 이 사람들의 실패는 모두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주인이 되게 할 수 없었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오만 자시(自是)하고 자신을 너무 믿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망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없는 사람은 늘 고생스레 뛰어다녀도 곳곳마다 좌절과 실패를 당하여 최종에는 모두 자신을 망칠 것이고 실패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일이 닥칠 때 속으로 이렇게 자신을 단속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니 마땅히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나의 마음을 이미 하나님께 드렸으니 더욱더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추구와 선택은 사람의 믿음을 대표합니다. 만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없다면 진리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곡하고 궤사한 사람만이 관건적일 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의 길을 걷습니다. 그들은 늘 자신을 위해 퇴로를 남기다가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성실한 사람이니, 꼭 하나님께 구원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상은 바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4가지 실행법이자 역시 성실한 사람이 되는 실행 진입의 길입니다. 첫째, 반드시 기도 방면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생활 속에서 진실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반드시 본분을 하는 방면에서 대충대충 하고 속이고 기만하는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넷째,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 주로 이 4가지 실행법인데, 만일 이 4가지 방면에 진입이 있다면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틀림없이 이런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1. 마음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2. 매사마다 하나님에 대해 속임수를 쓰지 않습니다. 3. 매사마다 하나님께 마음 터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4.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의 환심만 사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6. 일을 하고 말을 할 때 거짓을 섞지 않습니다. 7.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성실한 사람을 가늠하는 7가지 표준입니다. 성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 7가지 표준으로 가늠하기만 하면 알게 됩니다.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되는 4가지 실행에서 진입이 없다면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무릇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은 다 궤사한 사람에 속합니다. 궤사한 사람은 사탄의 처세 철학을 일 처리하는 원칙과 근거로 하는데, 그들은 진리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궤사한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은 손해를 보는 일이고 자신에 대해 아주 불리한 것입니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고 개인의 이익을 모든 것보다 중요하게 보았는데, 결국 그들이 잃은 것은 바로 육체적 이익 외의 가장 좋은 모든 것━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주시려는 진리, 길,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것이 바로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진리, 길, 생명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사탄에게 패괴되어 생존의 가치와 의의를 완전히 잃고 평안과 즐거움이 없습니다. 인류가 세상을 싫어하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고, 일찍이 죽어서 다른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고, 전혀 살길이 없게 된 것은 바로 인류에게 진리가 없고 사탄에게 패괴되어 초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류가 진리를 얻고 모두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갈 수 있다면 인생의 광명의 길에 들어선 것이며, 인간 세상에는 평안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인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때에야 인류에게 행복과 즐거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시는 기간입니다.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현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아야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생깁니다. 만약 사람이 정말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현재는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을 아직 다 받지 못했고, 사람의 패괴 성정이 아직 변화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정말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심령 안에 누림이 있을 것이고 최소한 성령의 역사와 함께하심을 누릴 수 있는데, 이런 평안과 기쁨은 매우 큰 것이며, 세상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성실한 사람이 되면 희망이 있고 성실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면 희망찬 전망이 없으며,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역시 과정이 있습니다.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 성령 역사를 얻어야만 참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달할 수 있는 것은 다 유한합니다. 예컨대, 평소에 작은 일에서는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지만 큰일에서 특히 자신의 이익과 결부될 때는 부득불 거짓말을 안 할 수가 없으며, 또는 전망과 운명에 관련된 일에서는 더욱 자신도 어찌할 수 없고 무슨 궤사든 다 나오는데, 이것도 역시 생명 분량의 문제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안 되고 생명 성정의 변화가 없으면 더욱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과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 실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달해야만 최종에 완성할 수 있습니다. 생활의 작은 일에서 진실한 말을 할 수 있고 형제자매들과 단순하게 마음 터놓고 교통할 수 있고 기도 방면에서 마음속 말을 할 수 있고 거짓말과 하나님을 속이는 말이 아주 적다 하여 성실한 사람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사실 이것은 단지 초기 효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또 정말 기쁘고 축하할 일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 이런 효과에 달할 수 있는 이것은 단지 사람의 표준에 달한 것뿐입니다. 사실, 안에는 아직도 결함이 있고 아직도 숨은 기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성실한 사람을 향해 만족스러운 첫걸음을 내디뎠는데, 만일 계속 노력한다면 반드시 온전한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4가지 실행법은 아주 중요합니다. 만일 엄격히 이 4가지 방면에 훈련하여 진입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큰 수확이 있을 것입니다. 2~3년 훈련하기만 하면 초기 효과를 볼 것입니다. 그때, 사람은 더욱 믿음이 있게 되고, 정말 자신에게 큰 변화가 있고 진실한 회개가 있고 완전히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신은 이런 즐거움이 크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때는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무엇이 진정한 인생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면 인생의 광명의 길에 오를 수 있습니다.

2006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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