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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공급——설교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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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리를 추구하여 성정 변화에 달함에 있어서 반드시 포착해야 할 4가지 목표

하나님은 말세 사역에서 많은 진리를 발표하셨는데 모두 인류의 패괴를 해결하기 위해 발표하신 것이고, 전적으로 구원받는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발표하신 것이며, 모두 인류를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 발표하신 것이고, 모두 패괴된 인류가 구원에 이르는 데에 반드시 구비해야 할 바입니다. 하나님이 발표하신 각 방면의 진리는 다 의의있는 것이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조금 깨달았다 하여 구원에 이르고 생명 성정의 변화에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구원에 이르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많은 진리를 깨닫고 얻어야 합니다. 예컨대,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어떤 방면을 알아야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인지? 최소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거룩함을 알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매 단계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유를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전지(全智) 전능을 알고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실질을 알아야 합니다. 최후에는 또 반드시 하나님이 진리, 생명, 길이시고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몇 방면을 아는 데에 달한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닫고 구비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성령 역사를 필요로 해야 하는지? 하나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야 하는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얼마나 많은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를 겪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진리를 얻는 과정이 간단하겠습니까? 각 방면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다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려면 최소한 10가지 항목의 진리를 깨닫고 진입해야 하며 어느 방면의 진리나 다 체험과 진입이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만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되면 사람의 패괴 성정이 변화될 수 있으며, 진리를 많이 깨달을수록 사탄의 권세에서 더욱 철저히 벗어나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 효과에 달하며, 완전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각종 시련 연단에 순복하는 것에 의해 효과에 달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면 사람 안의 사탄의 철학, 사탄의 논리 법칙, 사탄의 인생관과 가치관 및 사람의 황당무계한 모든 관점이 저절로 무너져 없어집니다. 사탄으로부터 온 각종 독소는 빛을 보지 못합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고 진리를 만나면 그것이 저절로 무너져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되면 사람 안의 각종 패괴 성정과 사탄 독소가 점차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보게 되면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 성정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수록 더욱 세상의 사악함과 어둠을 꿰뚫어볼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을수록 더욱 인류의 패괴와 사악함, 황당무계함과 가련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달은 진리가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인식, 순복, 충심도 더욱더 많아지고 자기의 본성 실질과 패괴된 진상에 대해서도 더욱 투철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 진입과 생명 성장은 모두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말미암아 달한 효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일단 진리를 얻고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되면 사람의 모든 패괴는 자연히 정결함을 받고 생명 성정도 점차 변화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사역은 바로 그분의 말씀에 의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일수록,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참으로 정결함을 받고 진리를 얻어 생명으로 하며, 사람의 생명 성정도 꼭 변화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던 데로부터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체험하는 것에서 진리를 얻어 달한 효과입니다. 사람의 생명 체험에서 충분히 증명하다시피,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해야만 완전히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생명 성정이 틀림없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즉 진리를 추구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정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단지 한 방면의 체험과 진입만 중요시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여러 방면의 진리를 추구하여 한꺼번에 진입해야 합니다. 이래야 생명 성장이 뚜렷해집니다. 마치 사람이 밥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한가지 음식만 먹으면 영양 섭취가 고르지 못하고, 이대로 나가면 신체 성장을 지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본분을 하는 것, 진리를 교통하는 것, 진리를 실행하는 것,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는 것, 시련과 연단을 겪는 것, 어느 방면이나 다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성정 변화는 그 자연 법칙이 있습니다. 성정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지, 무엇에 의해 변화되는지, 어떻게 변화되는지, 어떤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반드시 어떤 진리를 구비해야 하는지, 이런 생명 체험의 일에 대해 반드시 대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러면 사람이 성정 변화를 추구하고 진입할 때 어떻게 파악하는가를 알게 되고 되도록 빨리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만일 성정 변화의 진실한 상황을 알려면 반드시 성정 변화의 4개 목표를 포착해야 합니다. 이러면 완전히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 구원받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성정 변화의 첫 번째 목표는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입입니다. 이것은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전제입니다. 성정 변화의 두 번째 목표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깨달은 상징입니다. 성정 변화의 세 번째 목표는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정 변화의 초보적인 효과입니다. 성정 변화의 네 번째 목표는 본분을 하는 중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간증하며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정 변화의 완성 단계입니다. 성정 변화의 매개 목표마다 성정 변화의 한 단계를 대표하고 성정 변화의 한 방면도 대표합니다. 성정 변화의 4개 목표는 곧 성정 변화의 표시 시계이고 관측기입니다. 성정 변화의 4개 목표에서 사람의 성정 변화의 진실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보다시피, 성정 변화의 4개 목표를 포착하고 장악하는 것은 성정 변화에 달함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정 변화의 4개 목표를 파악하기만 하면 성정이 변화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면 몇 년 안에는 성정 변화의 진실하고 뚜렷한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4개 목표의 진입 정도에 근거하여 가늠하면 자신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정 변화의 4개 목표를 장악하기만 하면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 실행하고 진입할 길이 생기는데, 완전히 안전하고 온당하게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성정 변화의 4개 목표의 구체적 상황과 중요성을 말해봅시다.

성정 변화의 첫 번째 목표는 곧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입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성정 변화의 전제이자 역시 성정 변화의 토대인데, 사람됨의 기본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성정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관건적이고,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첫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성정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만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무엇 때문에 성정 변화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 사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입니다. 만일 그렇게 실행하면 객관 법칙에 부합되지 않고 그저 헛수고만 할 따름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체험하고 진입하면 하나의 아주 중요한 문제에 관련됩니다. 즉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먼저 반드시 사람과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하고 피조물로써 마땅히 어떤 위치에 서야 하고 마땅히 어떤 이지를 구비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만일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고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일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궤사한 사람을 혐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올바르고 성실한 사람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고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있으며 정상적으로 본분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완전히 성실한 사람이 된 후에야 각 방면의 진리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발걸음을 떼는 실행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성정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먼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는 기초이고,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간증하는 데에 달하는 것은 모두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이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무엇을 하든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할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당신의 화비, 섬김, 간증이 성공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어떤 사람들이 몇 년 동안 하나님 집의 인솔자, 일꾼으로 있었는데, 너무 궤사하고 성실한 사람이 아닌 까닭에 온갖 나쁜 짓만 하여 하나님 집에서 도태되었습니다. 이런 실례는 적지 않습니다. 모든 도태된 사람은 주로 성실한 사람이 아닌 까닭에 도태된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데에 실패하면 무엇이나 다 실패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데에 성공하면 모든 것이 다 쉽게 성공됩니다. 무릇 하나님을 최종까지 믿어도 여전히 성실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 도태될 것입니다.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쉽게 성령의 역사를 얻고 온전케 되는 길을 걷게 됩니다.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최대의 잘못이자 역시 하나님을 믿는 데에 실패한 근원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진실한 말을 하는 문제를 중요시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저는 이 일 때문에 적지 않은 저명한 전도인들과 교통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말을 진실하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웬만하면 사실대로 말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지혜를 쓰기 위해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체험한 후,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의의를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궤사한 사람을 혐오하시며, 마귀는 거짓말을 하는 자입니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된 후 입만 벌리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패괴된 인류가 거짓말하지 않는 일은 한가지도 없고 심지어 거짓말을 섞지 않는 말은 한마디도 없는데, 모두 거짓말 전문가, 거짓말 고수로 되었습니다. 보다시피, 사탄은 인류를 패괴시켜 마귀로 되게 한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한 말에 대해 어떤 말이 참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아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신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성실한 사람으로 될 수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아주 어렵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거나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없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바로 참된 말을 하고, 실속 있는 일을 하고, 거짓말이 없고, 거짓을 섞지 않는 것이며, 본분을 할 때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차라리 수치를 당할지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표준 즉 입에서 거짓말을 찾아볼 수 없고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함과 속임이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언어와 행위가 조금도 없고 마음속에 음모 간계와 악독한 존심이 없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사탄을 경배하지 않는 데에 달해야만 성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하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그 사람들은 다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늘 패괴를 유로하고 거짓말을 하는 그 사람들은 다 성실한 사람이 아니며, 성령 역사가 없는 그 사람들은 다 성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거짓말, 궤사, 기만이 너무 많습니다. 만일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을 수가 없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도 없습니다. 가히 말해서, 설사 본분을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습니다. 궤사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대충 대하거나 속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충 대하고 속이는 실질이 하나님과 적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만일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구원받기를 추구하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든 모두 달할 수 있으며,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다 몽상일 뿐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있어서 의의가 너무나 큽니다!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입은 성정 변화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만일 자신의 생명 성정이 변화가 있는가 없는가를 알려면 먼저 자신이 성실한 사람인가의 여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아직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성정도 변화가 없으며,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된다면 성정 변화도 초기 효과를 볼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라야 쉽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실행하며, 성실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성실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간증할 자격이 있으며, 성실한 사람만이 정식으로 온전케 되는 길을 걸을 수 있으며, 성실한 사람만이 충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절대로 진실하게 진리를 추구할 수가 없고 더욱이 생명 성정의 변화에 달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되기에 성공한다면 구원받고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문제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되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고서 구원받거나 온전케 되거나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다 불가능한 일이며, 하나님을 믿어도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먼저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올바른 사람이 됩니다. 사람에게 양심과 이지가 있고 존엄과 인격이 있으면 사람의 모양이 있게 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성령의 큰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대충 대하고 속이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이 많이 감소될 것이며,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성정 변화에 달하는 전제이고 사람이 되는 근본과 토대라고 합니다. 성실한 사람으로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직접 사람의 결국과 운명에 관련됩니다. 만일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여전히 궤사한 사람이라면 철저히 실패할 것입니다. 가히 말해서 아무런 일도 해낼 수 없고 충성된 효력자마저도 될 수 없습니다. 무릇 도태된 각급 인솔자 일꾼은 다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없고 인성이 너무 나쁘고 너무 악독하여 결국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은 것으로 인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에 여러 번이나 사람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는데 보다시피 의의가 깊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등한시한 것입니다.

성정 변화의 두 번째 목표는 바로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인데, 이 목표도 역시 직접 성정 변화에 관련됩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이 마땅히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은 완전히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말미암아 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사람이 진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사람 안에 깊이 뿌리 박힌 각종 사탄의 철학과 황당무계한 관점이나 관념이 어찌 바뀔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은 사람이 바꾸고 싶다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람은 진리를 추구할 필요가 없고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각종 사탄의 철학과 황당무계한 논리는 진리로써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도 반드시 진리를 깨닫는 것에 의해 바뀌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시간이 길든 짧든 자신이 세상 사람과 일부 관점이 일치하지 않고 이미 합할 수 없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부 낡은 관점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바뀜과 철저한 바뀜이 없으면 여전히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금방 받아들였을 때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교통을 듣고서 다수 사람들이 많은 관념과 대적이 생겼고,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교통을 읽을 때는 관념과 대적이 많이 적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 안의 일부 관념과 관점이 이미 어느 정도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부지중의 일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수록 사물을 보는 관점이 더욱 크게 바뀝니다. 어느 날인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통을 읽을 때는 조금의 관념도 없게 됩니다. 아무리 보아도 다 실제적임을 느끼고 아무리 보아도 다 누림이 있음을 느낍니다. 부지중에 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점점 인식이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대해, 하나님 집의 사역안배에 대해 완전히 순복할 수 있습니다. 그때면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도 완전히 바뀝니다. 만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여 이 정도에 달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또 관념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논단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점점 적어지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사물을 보는 관점의 바뀜은 성정 변화의 한 목표라고 합니다. 만일 자신의 성정이 도대체 변화가 있는가 없는가를 알려면 먼저 자신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 얼마 바뀌었는가를 보십시오. 만일 당신 안에 아직도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관념이 있고 아직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념이 있고 당신의 사상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과 여전히 맞지 않고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점이 있고 심지어 아직도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다면 당신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 아직 얼마 바뀌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이것으로 당신이 아직 생명 성정의 변화를 얻지 못했음을 단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상징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 우선 달해야 할 효과는 바로 사물을 보는 관점의 바뀜인데, 이것은 진리가 사람 몸에서 달한 초보적인 효과입니다. 그다음 진리에 대한 인식이 심화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사람의 생명 성정을 바꿉니다. 패괴된 인류가 사탄의 관점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받아들인 후부터 패괴되기 시작하고 사탄의 거짓말을 믿고 받아들인 후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진리로써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와 사람에 대한 미혹을 제거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면 자연히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를 부인하기 시작합니다. 진리에 심화됨에 따라 진리로 사탄의 그릇되고 황당한 모든 이론을 비판하고 반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도 완전히 바뀝니다. 이전에는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킨 황당무계한 논리와 거짓말에 의해 살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의해 살며 사탄을 배반하기 시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물을 보는 관점의 바뀜에서 더 나아가 생명 성정의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가히 말해서, 사물을 보는 관점의 바뀜은 바로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시작입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의 바뀜은 완전히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말미암아 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참으로 진리를 깨달았다면 사물을 보는 관점도 따라서 바뀌며 더 나아가 생명 성정의 변화도 가져오게 됩니다. 글귀 도리를 말하기 좋아하는 그 사람들은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생명 성정의 변화는 더욱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참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결코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인식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진리는 아주 현실적이고도 심오한 것이니 사람이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몇천 년 이래 아무도 감히 무엇이 진리인지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사탄 마귀가 아무리 오만해도 자기가 진리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며, 세상의 위인과 유명 인사는 더욱 자기가 진리라고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 길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된 사람이라야 진리에 대해 조그마한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물을 보는 관점과 생명 성정은 오히려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고 진리의 위력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얻는 의의는 너무나 깊고 너무나 크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생명 성정의 변화와 하나님의 모든 구원과 은혜인데, 사람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만일 사물을 보는 관점이 크게 바뀌면 그의 생명 성정이 이미 변화되기 시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 크게 바뀔수록 그의 생명 성정의 변화도 더욱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을 보는 관점의 바뀜은 생명 성정 변화의 두 번째 목표이자 생명 성정이 변화가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뀐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관념이 없는 사람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대적과 거역이 점점 적어지고 무릇 하나님과 합하지 않는 것들이 점점 적어지는데, 이러면 이미 정결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면 사람이 이미 비교적 많은 진리를 깨달았기에 이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일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된다면 완전히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에서 온 것인데, 사람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하였음을 증명합니다. 오직 사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과 대적이 없고 하나님을 의심하지도 않을 때에야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하나님과 일치하고 완전히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면 하나님과 합하는 데에 달할 희망이 있으며, 성정 변화에 달하는 것도 머지않아 실현될 일입니다.

성정 변화의 세 번째 목표는 바로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진입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설사 하나님을 믿는 데에 가장 큰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너무나 유한하여 진실한 순복에 훨씬 달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순복은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구비해야 합니다. 진실한 순복은 완전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는 원칙은 사람의 잘잘못 시비 관념과 자기에게 유익이 있는가 없는가에 근거합니다. 사람은 생각이 있는 데다가 또 사탄에게 패괴되었으므로 만일 자기에게 유익이 있는가 없는가를 모르는 상황에서라면 어떤 사람에게도 순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을 놓고 말하자면, 대충대충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여전히 대충대충 하며 속이는데, 이것은 사람의 본성과 성정 문제입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하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을 생존 원칙으로 하고 아무도 ‘하나님을 위하고 진리를 위하는 것’을 생존 원칙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본성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입니다. 설사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하여 조금 거래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없는 근원입니다. 만일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약속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다면 그때에야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있습니다. 보다시피,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하려면 사람의 어려운 점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사람은 상상 속에서 하나님께 순복하면 감옥살이를 하고 심지어 목베임 당할 위험이 있고, 하나님께 순복하면 가정이 파탄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위험이 있으며, 하나님께 순복하면 세상의 저버림을 받아야 하는 고통과 위험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완전히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절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아주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합리적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도성육신━예수님에 대해 말하자면, 예수님께 30년 동안 성장하는 예비 시간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전히 담당하실 수 있을 때에야 사역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모두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마음속으로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고, 육체와 자기 뜻을 배반해야 할 때면 배반하며, 진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 하지 않고, 사람의 양심과 이지를 어기는 일이면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위험이 있겠습니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가장 평안한 일이고 최고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입니다.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늘 진리를 실행하면 어렵지 않고 완전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물론, 하나님도 사람의 분량에 따라 요구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고 작음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강요하신 적이 없고 억지로 일을 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진리를 만일 실행하지 않는다면 성령이 책망하고 징계하시는데, 이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이런 징계가 없다면 사람은 영원히 변화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았을 때, 만일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도 평안하지 않다고 느끼며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심하게 거역할 때는 심령의 고통은 더욱 클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면 마음에 비로소 진실한 평안과 희락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평안을 얻고 누림이 있는 일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게 하고 즐거움이 있게 합니다. 마치 일부 이방인들이 남을 돕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께 순복하는가 하는 것도 역시 진리를 깨달은 정도와 사람의 분량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든지 사람이 정상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든 또는 성령의 인도이든 아니면 하나님 집의 안배이든 다 정상적으로 순복할 수 있으면 그가 바로 성정이 변화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많이 철저히 순복할수록 그의 생명 성정 변화도 더욱 크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정도에 근거하여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은 완전히 정확합니다. 

만일 자신의 생명 성정이 변화가 있는가의 여부를 알려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사람인가의 여부를 보면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야말로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고 하나님이 얻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의 섬김에 대해 하나님이 시름 놓지 못하시는데, 사람이 아직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얻은 사람에 대해 비로소 완전히 시름 놓고 완전히 신뢰하십니다. 한 사람에 대해 신뢰할 만한가의 여부도 역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어떠한가에 근거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자라면 사람들이 그를 믿을 것이고 하나님 집에서도 비로소 그를 등용하여 쓸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없다면 그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데 어찌 신용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데에 달하는 것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진실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고 몇 년 동안의 시련과 연단을 받은 적이 없다면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데에 절대 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가 있고 모든 것을 버릴 수만 있으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닌가?’라고 여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깁니다. 사실, 사람에게 심지가 있고 열정이 있으면 그저 일시적인 일에 순복할 수 있을 뿐 진실한 순복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진실한 순복은 생명 안의 순복, 심령 안의 순복을 가리키는데, 간증을 굳게 서고 사탄을 욕되게 할 수 있는 순복이며, 육체를 배반하고 정확한 길을 선택하는 순복이며, 관건적인 시각에 주저 없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순복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세상의 저버림을 선택하는 순복이며,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니고 골고다로 향하는 것과 같은 순복입니다. 이런 순복이야말로 진정한 순복입니다. 절대로 우연히 일시적 충동으로 달한 순복이 아닙니다. 만일 진리를 구비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달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순복하는 상황에도 몇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즉 사소한 일에 대한 순복, 일시적인 일에 대한 순복, 취할 이익이 있어서 하는 순복, 복받으려는 존심 때문에 하는 순복, 자기의 뜻에 의해 선택하는 순복, 성령 역사로 감동받을 때에 하는 순복입니다. 겉으로 순복하는 이런 상황은 다 순복의 실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순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순복은 존심, 이익, 심정,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완전히 진리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근거하여 기꺼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실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어떠한 뒤섞임도 없고 어떤 인사물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완전히 생명의 본능에서 나온 순복입니다. 이런 순복은 완전히 진리를 얻고 성정이 변화된 실제 분량에 근거하여 달한 것입니다.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체험 중에서 만일 사람에게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상황에 대해 분별이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고, 자신에게 도대체 생명 성정의 변화가 있는가 없는가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정확합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목표는 성정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정 변화의 네 번째 목표는 바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간증하며 진리로 사람의 패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사람의 생명 성정 변화에 직접 관련되는 목표이며, 주로 사람의 화비와 섬김이 하나님을 간증하는 것으로 될 수 있는가의 여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정 변화의 마지막 목표이자 관건적인 목표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으면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며, 그의 사역과 섬김은 자연히 진실한 간증으로 됩니다. 이 목표에 달하면 틀림없이 성정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반드시 특별한 시련이 닥칠 때에야 사람에게 간증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평소에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높이고 간증하는지,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본다면 완전히 사람에게 진실한 간증이 있는지 없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면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를 자연히 알게 됩니다. 평소에 본분을 하는 것이 만일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간증하지 않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간증이 없고 시련이 닥쳐도 간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 본분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고 간증하며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시련이 닥쳐도 쉽게 굳게 설 수 있습니다. 평소에 진리를 교통할 수 없으면 시련이 닥칠 때 갑자기 진리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진리를 얻는 것은 평소에 체험 중에서 날마다 조금씩 쌓는 것에 의해 달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시련이 닥칠 때 완전히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아름답고 드높은 진실한 간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일부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의 핍박 중에서 본분을 하기를 회피하며 어떤 이는 심지어 떨어져나가 세상을 추구하였는데 이는 진실한 간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본분을 할 때 늘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며 사역해도 효과가 없는데, 이는 진실한 간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일이 닥치면 사탄의 간계를 철저히 까발릴 수 없고 진리의 실질을 밝히 교통하는 것으로 미혹된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데, 이는 진실한 간증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하거나 설교하는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을 밝히 교통하지 못하고 문제의 실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기에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진실한 간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글귀 도리를 좀 알고는 잘난 체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패거리를 짓고 권력과 이익을 다투는데, 이는 더욱더 진실한 간증이 없는 사람입니다. 무릇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진실한 간증이 없습니다. 만일 시련이 닥친다 해도 절대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간증이 없는 사람은 생명 성정의 변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데 어찌 진실한 간증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진리로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달하십니다. 만일 사람 몸에서 최종까지도 생명 성정의 변화를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만일 그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어떤 심판 형벌을 받았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욥이 시련이 닥쳤을 때 진실한 믿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께 진실로 경배할 수 있었고 이미 진실한 믿음을 구비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은 그가 이미 하나님이 유(有)에서 무(無)로, 무에서 유로 하실 수 있는 전능을 인식하였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힐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보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간증은 다 진실한 것이고 완전히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으면 절대로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한 간증은 완전히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실한 인식 정도를 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인식이 있으면 어느 정도의 간증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높은 인식이 있으면 얼마나 높은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싸움터에 임하여 창을 가는 것은 소용 없습니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라는 속담은 매우 적절합니다. 평소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다가 시련이 닥치면 간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사역을 책임질 때 힘들어 보입니다. 정말 마음은 충분히 있지만 힘이 모자라 그저 피상적인 사역만 할 뿐 하나님을 섬기는 실질적인 사역에는 능력이 미치지 못합니다. 만일 그들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들은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인솔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만일 무게 있는 사역을 하라고 할 때면 눈이 멍해집니다. 지금 하나님 집의 인솔자와 일꾼은 비록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비교적 많다 해도 진리의 실질을 교통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습니다. 모두 분량이 너무 작아서 아직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집에 부족한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인식이 있는 사람이고, 진리의 실질을 밝히 교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다면 여전히 오만 자대하고 잘난 체하는데, 이것은 신경이 잘못 된 것이 아닙니까? 어떤 약을 잘못 먹어 초래되었는지 모릅니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아름다운 간증이 있을 수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절대로 생명 성정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간증이 있어야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진실한 간증은 바로 진리로써 사람의 각종 패괴 문제를 해결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하고 사람을 참으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간증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모든 것에 진실로 순복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간증은 바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보고 하나님 사랑의 실질을 인식한 것으로 말미암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간증은 바로 그리스도가 진리, 길, 생명이시고 그리스도가 없으면 인류가 이미 하나님께 훼멸되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따라서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여 그리스도와 합하는 데에 달하며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시든, 어떻게 말씀하시든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간증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이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며 모든 긍정적인 사물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만 사탄과 패괴된 인류의 말은 다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황당무계한 논리이며 모든 부정적인 사물은 다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고 사탄이 모든 패괴와 사악함의 총체적 근원임을 인식하고 따라서 확고부동하게 하나님을 따르면서 영원히 하나님 편에 서고 죽을지라도 사탄을 배반하고 저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간증은 어느 때든,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단호히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며 사탄 마귀의 어떤 황당무계한 논리도 거부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이 진리이고 공의임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진실한 간증은 다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된 상징과 체현입니다. 이런 간증이 없으면 사람의 생명 성정이 진실한 변화가 있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간증은 생명의 유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한 사람은 격타를 받을수록 더욱 생명의 유로와 간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성정에 진실한 변화가 있는 사람은 어떤 시련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생사가 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음을 알고 죽음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비록 연약이 있지만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할 것입니다. 사람이 진실한 간증이 있으면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사람은 다 각종 시련을 겪는 것으로써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시련을 겪고 진실한 간증이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진실한 간증인입니다.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4개 목표는 성실한 사람이 되고,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함과 아울러 진실한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정 변화의 4개 방면의 상징입니다. 모두 아주 중요하여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 4개 목표도 역시 성정 변화에 달하는 정상 순서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진실한 간증이 있는 데까지는 완전히 성정 변화의 자연 발전 법칙에 부합됩니다. 4개 목표도 역시 성정 변화의 4개 방면인데,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성정 변화의 4개 목표에서 만일 모두 진입과 향상이 있다면 사람이 진보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만일 4개 목표에서 모두 요구에 달했다면 생명 성정이 이미 변화를 얻었음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첫 번째 목표━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성정 변화에 최소한 구비해야 할 바입니다. 왜냐하면 성정이 변화되는 사람은 그 자신이 바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했을 때는 흔히 사람에게 바보처럼 보이고 멸시당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진리를 얻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새로운 안목으로 대합니다. 사곡하고 궤사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거나 성정이 변화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궤사한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 되고 참말을 하고 다른 사람과 단순하게 마음 털어놓고 싶어도 쉽지 않은데, 본성이 바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만일 구원받고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먼저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효과에 달하지 못하면 이후의 매 단계는 더욱 효과에 달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만일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진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기는 더욱 쉽지 않으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반드시 먼저 훈련하고 진입해야 하는 것이며, 좋은 사람이 되는 시작이자 역시 좋은 사람이 되는 기본기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온전케 함을 받을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사람이라 할 자격이 없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면 궤사한 사람이고 마귀입니다.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조만간 드러날 것입니다.

두 번째 목표━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 사물을 보는 관점의 바뀜은 완전히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에 의해 달하는 것입니다. 만일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참으로 진리를 깨닫거나 인식할 수 없고,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에야 진리가 사람 마음속에서 지위가 있게 됩니다. 이때에 진리와 부합되지 않는 각종 관념과 황당무계한 논리가 비로소 부인되고 버림받고 취소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야만 참으로 진리를 인식하고 진리를 얻을 수 있으며, 진리로 하여금 마음속에서 지위가 있게 하여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하며 따라서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목표━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있는 것.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을 아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만큼 순복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것이 많으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정확하며, 곧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있으면 바로 생명 성정이 변화된 상징입니다.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선택에 직면한 시험 속에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틀림없이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좀 순복하고, 일시적인 일에 순복하고, 이익이 있는 일에 순복하고, 자기의 관념에 부합되는 일에 순복하는 등등은 모두 진실한 순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면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고 틀림없이 성정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네 번째 목표━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간증하며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간증이 있으면 이미 온전케 된 사람인데, 마치 베드로와 같은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위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간증은 만일 성정이 변화되고 온전케 된 사람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실한 간증이 있는 사람은 다 진리를 얻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는 사람이며 생존의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사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이고 그 외에 다른 요구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피조되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할 수 없다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며, 절대로 사탄에게 효력을 하지 않고 세상에 소용되지 않습니다. 진실한 간증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사람인데, 바로 하나님이 얻으시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충실한 간증인입니다.

성정 변화의 4개 목표는 다 성정 변화에 직접 관련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그중 앞의 3개 목표는 다 성정 변화의 한 단계 혹은 한 방면을 대표할 뿐 전부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네 번째 목표의 요구에 달해야 성정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예컨대 첫 번째 목표━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에 사람이 달할 수 있다면 그가 성실한 사람이고 올바른 사람임을 증명하는데, 완전히 성정 변화에 달할 희망이 있습니다. 만일 첫 번째 목표에 달하지 못하고 성실한 사람도 아니라면 절대로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 아닙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성정 변화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만일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기타의 3개 목표도 다 희망이 없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만약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기타 3개 목표에도 달할 희망이 있는데, 이것도 절대적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올바른 사람이며,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서 주로 성실한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사역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교회의 각급 인솔자로 배양해서 쓰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성정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먼저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느냐는 바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쉽게 성령 역사를 얻어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고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사람이 됩니다.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사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온전케 함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각 방면의 진리마다 병행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실제 진입이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어느 정도 바뀜이 있으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실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진리를 깨달을 때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지위가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고 간증하기 시작하며 진리로 사람의 패괴 문제를 해결하며 진실로 사람을 인솔할 수 있습니다. 이때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배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 체험은 바로 이렇게 점차적으로 심화되는 것입니다. 최후에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된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을 믿는 데에 성공한 것인데,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합니다.

2006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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