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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공급——설교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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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생명 체험의 4가지 단계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형벌의 역사는 ‘효력자’를 정복하는 데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심판과 게시(揭示)의 말씀으로 효력자를 시련하여 모든 하나님 선민으로 하여금 완전히 효력자의 시련 속에 진입하고 체험하게 하신 다음 비로소 정식으로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형벌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선민의 생명 체험은 효력 단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은 후에야 하나님 나라 자민으로 될 자격이 있고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으면 어떤 의의가 있겠습니까? 효력자의 시련을 겪은 사람은 모두 거기에 내포된 의의가 너무 깊으며 효력자의 시련을 겪어야만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류는 너무 깊이 패괴되어 어떤 일을 하든지 다 개인의 존심과 목적이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사람의 관념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없으며 구원받지 못하고 다 도태될 것입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은 후, 복을 받으려는 마음이 하나님의 날선 검 같은 말씀에 찔려 매우 고통스러웠고 극대한 연단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의 사치한 욕망도 따라서 없어지고 복을 받으려는 존심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설사 하나님을 위해 효력을 한다 해도 달가워하였고, 이전에 추구하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영생을 얻는다, 왕 노릇 한다’는 것도 전부 포기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는 열정이 식어졌고, 모두 부득이하여 머리를 숙이고 운명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가 우리보고 큰 붉은 용의 자손이 되라고 했나!’ 효력자의 시련은 확실히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는 사람의 욕망을 해결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큰 붉은 용 자손의 지위와 실질 및 사탄에게 패괴된 가련한 모양을 분명히 보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그제야 자신이 복을 받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이 철저히 정복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실패하고, 모진 고통과 연단을 받은 후, 하나님은 또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여 ‘효력자’를 ‘하나님 나라 자민’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때 당시에 사람은 모두 격동되어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고, ‘하나님 나라 자민’의 신분을 바라보며 매우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심리 상태가 많이 좋아졌는데, 그제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여 정식으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역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첫 시작은 너무나 의의있게 과도하였는데, 실로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을 때, 사람은 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고충이 있어도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실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생각을 하면 오히려 감미롭기 그지없습니다. 이 시련은 사람에게 너무나 큰 전변을 가져다주었고 사람에 대해 너무나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는 것은 실로 운이 좋은 일이며 참으로 너무나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세의 정복 구원의 사역은 너무나 의의있습니다. 그중의 매 절차마다 사람을 시련하고 연단하고 드러내고 변화시키는 효과에 달할 수 있는데, 완전히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을 심판 형벌하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체험하면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완전히 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의 생명 체험 단계에 따라 나눈다면 주로 4개 단계로 나누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입니다.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생명 체험 4개 단계━첫 단계는 ‘효력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본분을 하는 단계’이며,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이고, 네 번째 단계는 ‘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입니다.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의 생명 체험에서 매 단계마다 3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세 번째 단계━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의 생명 체험은 5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고,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의 생명 체험은 7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이것은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한 말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특별한 배경과 상황을 통해 특별한 시련과 연단의 사역을 하신다면 따로 논의해야 하는데, 이것은 생명 체험의 정상적인 시간 규율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습니다. 생명 체험의 함축적 의미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서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역정(歷程)을 가리킵니다. 힘써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이런 효과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밀과 가라지가 똑같이 땅에서 자라지만 밀이 다 익을 때 가라지는 여전히 가라지이어서 골라 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일 진리를 좋아하지 않으면 가라지와 같은데, 생명 체험이라 말할 것도 없고 그저 영원히 효력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에 다 도태될 것이며, 최후에 오직 ‘충성된 효력자’만이 최종까지 효력을 하여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그 사람들은 이미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와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하였습니다. 생명 체험에 진입한 사람 중에서 최종에 정의감이 있는 성실한 사람들과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 체험의 최고 경지이자 역시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단계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다 체험해야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완전히 온전케 된 사람이고, 손색이 없는,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안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정병(精兵)이고,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지기,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온전케 되는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며, 대부분 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소질이 일반적인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생명 체험의 단계에 진입하든지 다 사람의 노력과 대가를 치르는 추구에 의해야만 진입할 수 있습니다. 대가가 없이는 바꾸어 올 수 없는데, 완전히 공정한 경쟁의 원칙에 부합되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다 공의롭고 사람을 차별 대우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아래에 생명 체험의 매 단계 구체적 상황을 말해봅시다.

1. 생명 체험의 첫 단계━효력 단계

효력 단계는 주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초기에 단지 복을 받기 위해 효력을 하고, 단지 열정으로 일을 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한다는 의식이 아예 없고, 천연적인 패괴 성정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의의를 조금도 모르고, 모든 행위가 다 패괴된 존심과 목적에서 나오고, 그 실질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어서 아예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고, 완전히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기 위해 효력을 하는 상황에 근거하여 정한 것입니다. 인류는 너무 깊이 패괴되어 그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으며, 매사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되고, 단지 자신이 복만 받으면 되며,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소원이 전혀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의의가 있는지를 추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다 인생의 목표가 없고, 사람의 마음속에는 패괴 성정으로 가득찼으며, 종일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 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도 역시 복을 받기 위해 효력을 합니다. 두각을 나타내고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완전히 재난에서 벗어나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복을 받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불 ‘하나님 집을 위하여 효력을 하는’ 것을 교환 조건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초기의 기본 상황인데,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초기에 어떤 사람들은 열정이 크고 믿음이 좀 진실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천연적인 패괴 성정이 큰 타격과 파괴를 당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기 위한, 재난을 피하고 죽지 않는 결국을 얻기 위한 관념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 집을 위해 화비(花費)하는 것은 거래하는 것이고, 작은 대가로 큰 축복을 얻거나 큰 지불로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복을 받으려는 이런 존심은 사람의 본성에서 온 것이며 완전히 사탄에게서 온 뿌리 깊이 박힌 것들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만일 아주 많은 수리 대처가 없고 몇 차례의 큰 시련(예컨대 효력자의 시련, 형벌시대의 시련, 죽음의 시련)의 연단을 받지 못했다면 사람이 복을 받으려는 존심과 거래의 심리 상태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 몇 차례의 큰 시련은 사람에 대해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패괴 성정의 변화는 바로 복을 받으려는 존심과 거래의 심리 상태의 바뀜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론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고 성령 역사에 협력해야만 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의 패괴된 본성은 마치 완고한 요새와 같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엄한 말씀의 찌름이 없다면 이 사탄의 요새는 무너뜨리기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패괴된, 복을 받으려는 존심과 거래의 심리 상태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첫 번째 장벽입니다. 무너뜨리기 가장 어려운 이 장벽이 무너질 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상황도 크게 달라집니다. 효력자의 시련, 형벌시대의 시련, 죽음의 시련을 다 겪은 후, 사람 안의 복을 받으려는 존심과 사람의 거래의 심리 상태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을 믿는 관점도 따라서 바뀌었습니다. 마치 꿈에서 금방 깨어난 듯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피조된 인류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피조물이 본분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사람에게 양심과 이지가 있으면 본분을 해야 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때 사람의 상황은 확실히 비교적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효력자의 시련으로부터 형벌시대의 시련, 죽음의 시련에 이르기까지 3년이란 짧은 시간의 체험에서 사람의 복을 받으려는 존심과 거래의 심리 상태는 기본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 성정도 따라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 닿는 대로 하기를 기꺼이 원하였는데,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으면 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전에 하나님을 너무 많이 대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아프게 하고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된 자신을 통회하였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았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고, 하나님을 믿어도 만일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양심과 이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생명 성정이 바뀌는 시작입니다. 이 바뀜이 사람의 생명 체험을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초급 단계━효력 단계로부터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3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믿어도 변화되지 못하고 그저 효력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한 그 사람들을 보면, 그들도 똑같이 갖가지 시련을 겪었지만 무엇 때문에 변화가 없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곡하고 궤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간교하고 궤사한 처세 철학을 생존의 토대로 하며,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만 보는 철학을 수행하며, 사탄의 다리를 꼭 끌어안고 제 딴에는 아주 총명하다고 여기다가 결국 자신을 망쳤습니다. 사람 안에 숨어 있는 ‘복을 받으려는 존심과 거래 관점’, 이 시한폭탄이 만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 점차적으로 제거되지 않고 일단 폭발되면 자신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관건적인 시각에 원형을 드러내는 그 사람들은 크게 원망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자포자기하는데, 이것은 마귀의 원형이 드러난 것입니다. 반드시 철저히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든지 다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다 순복합니다. 비록 마음이 큰 연단을 받을지라도 각종 시련을 겪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진리를 얻고 생명 성정에 만족스러운 변화를 가져왔는데, 참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입니다. 사람도 기뻐하고 하나님도 만족해하시는데,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만족스러운 한 단계를 내디딘 것입니다. 그때부터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를 기꺼이 원하며, 정정당당하게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으며, 착실하게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각종 시련 연단에 순복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참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만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 하나님을 믿어도 달갑게 본분을 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없는 사람들, 하나님 집을 위해 힘을 내고는 늘 거래의 심리 상태를 품고 있는 사람들, 본분을 하면서 늘 보수를 요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다 효력 단계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사람 안의 패괴 성정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해 해결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패괴 성정이 영원토록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단지 몇 년 동안 고통받는 것에만 의해서는 패괴 성정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심판 형벌, 시련 연단에 순복하는 것에 의해야만 패괴 성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올바르고 달갑게 피조물의 본분을 하고 요구와 거래가 없어야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효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시종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영구한 효력자입니다. 사실상, 효력자는 바로 이렇게 생기는 것입니다. 효력자 중에서 오직 충성된 효력자만이 최종까지 효력을 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살아남게 됩니다. 이것도 효력자의 복입니다. 양심과 이지가 없고 인성이 없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그 효력자들, 즉 복을 받으려는 존심을 고집스레 품고 버리지 않는 투기하는 효력자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지루하고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여긴 까닭에 하나님을 믿는 도중에 떨어져나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록 끝까지 견지하여 효력을 하였지만 인성이 너무 나쁘고 충분한 선행이 없어 도태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갖 나쁜 짓만 일삼고 사탄 악마의 진상을 드러내어 저버림받고 제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초기의 효력 단계는 가장 위험하고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기입니다. 만일 효력 단계에서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 집을 떠나지 않는다면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진입할 희망이 있습니다.

2.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

본분을 하는 단계는 사람이 효력 단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정복된 후, 하나님의 확실한 존재를 보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위력과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고 위엄 있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의 매우 더러움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본성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이 실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고 심지어 효력을 하기에도 자격이 없음을 알게 되며, 피조물로서 사람의 본분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의리상 거절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 사람의 양심이 소생하여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것이 호전되기 시작하는데, 다시는 복을 받거나 재난을 피하고 죽지 않는 결국을 얻기 위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얻고 하나님께 구원받고 의의있는 인생을 살아내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신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고, 정식으로 달갑게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아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데, 이러면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진입한 주요 상황은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는 존심이 기본상 해결되어 다시는 복을 받으려는 존심으로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고, 다시는 복을 받기 위해 효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달갑게 사람의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달갑게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며, 이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데에 있어야 할 양심과 이지임을 알고, 만일 하나님을 믿어도 본분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라 할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일 이 경지에 이르면 곧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일 이런 인식이 없고 여전히 복을 받기 위해 효력을 하고 여전히 복받을 욕망을 고집스레 품고 있고 심지어 하나님을 믿어도 정말 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여전히 효력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구원받을 희망을 완전히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찌 된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사람이 어떻게 살면 의의있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시는지를 보았고,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느낄 수 있고, 자신이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처음으로 추구 목표가 있게 되었는데, 마치 마음속에 그제야 어떤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어떤 의의가 있는지를 깨닫고, 자신이 올바른 길에 들어선 것을 알고,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의 구원을 완전히 얻는가를 분명히 본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다시는 찾고 모색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인생의 광명의 길을 본 것입니다. 그때부터 착실하게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겪으며 생명 성정이 변화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표징입니다.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기본적인 진리를 얼마간 깨달은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데의 뒤섞임이 많이 적어졌고 본분을 하는 데의 대충대충 함과 속임이 좀 적어졌으며, 정상 인성 안의 양심과 이지가 소생되고 회복되어 양심과 이지에 의해 일을 하기 시작하며 기본상 비교적 마음 편하게 본분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비록 뚜렷하게 하나님께 요구하는 존심은 없지만 좌절과 실패를 만나면 여전히 소극적이고 연약할 수 있으며, 수리와 대처를 당하면 심지어 원망할 수 있으며, 큰 시련이 닥치면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진리를 깨달은 것이 유한하고 생명 체험이 비교적 얕고 아직 진리를 얻고 성정이 변화되는 정도에 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자주 패괴 성정의 유로가 있고 거역, 대적, 논단의 표현이 있으며 특별한 일이 닥치면 여전히 관념이 생길 수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아직도 분량이 너무 작고 체험이 너무 얕으며 하나님에 대해 아직 진정한 충심이 없고 진실한 순복이 없으며, 하나님에 대해 아직 진실한 인식이 없고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적으며 완전히 분량이 너무 작은 것에 속하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대충대충 함과 속임이 너무 많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습니다. 생명 체험의 두 번째 단계━본분을 하는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실제 체험에 진입하기 시작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자신의 패괴 정형에 결부시키는 것을 중요시하며, 자신의 본성 실질과 패괴 진상에 대해 점차적으로 진실한 인식이 있는데, 그제야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 속에 완전히 진입한 것입니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자신이 대충대충 하고 속이는 것이 너무 많고 하나님에 대한 충심이 조금도 없음을 보게 됩니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거역과 대적이 너무 많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자신에게 진리가 너무 많이 결핍하고 관념과 상상이 가득찬 것을 보게 됩니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자신이 너무 깊이 패괴되어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패괴가 너무 많이 드러나 자신이 조금도 사람의 모양이 없고 완전히 더러운 귀신 사탄의 꼴이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 쉽지 않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령 역사에 협력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효과는 다 본분을 하는 중에서 얻는 것입니다. 이런 진실한 보임과 인식이 있으면 사람이 이미 하나님 말씀의 실제 체험에 진입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깨닫기 시작하여 진실한 체험━완전히 구원받은 체험이 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길에 대해 이미 분명히 보았고,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의의에 대해 인식이 있으며, 오직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 도성육신이 사람을 심판 형벌하는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니라면 인류는 일찍이 멸망되고 침륜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며 완전히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영원히 틀릴 수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러면 생명 체험의 세 번째 단계━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후에는 자신의 패괴 실질과 본성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완전히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보게 되며, 진정한 인생의 목표가 있게 되는데, 그때부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봉헌하고 달갑게 하나님을 위해 화비합니다. 이렇게 하면 생명 체험의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일 두 번째 단계에서 사탄에게 패괴된 자신의 실질을 인식하고 자신의 패괴 정도를 진실로 인식하는 데에 달하여 추구 목표가 있다면 참으로 패괴에서 벗어나 변화가 있고 순복이 있는 데에 달하는 것은 생명 체험의 세 번째 단계━진실로 봉헌하는 데에 진입한 후 시작되는 것입니다.

3. 생명 체험의 세 번째 단계━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 이것도 진실로 봉헌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의 기본 상황은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진실한 의의를 보았으므로 달갑게 자신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얼마간의 진실한 인식이 있고,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케 할 소망도 있고, 비록 본분을 하는 중에서 패괴도 유로하고 거역과 대적도 있지만 후에 통회하는 마음이 있고, 육체에 대해 혐오감이 생기며,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대해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고, 진리를 완전히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도 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서 더 많은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기를 원하며, 매사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하고 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요구에 닿기를 원합니다. 비록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하고 속일 때도 있고 자신의 뜻도 뒤섞여 있고 제멋대로 할 때도 있지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 뜻을 더듬기를 배우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교적 큰 진보입니다. 사람이 정식으로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봉헌하고 달갑게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기 시작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이것은 생명 체험의 세 번째 단계━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에 진입한 진실한 상황이자 역시 자신을 진실로 봉헌하고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역사에 투입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온전케 함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의 5년 동안의 체험에서 처음에 달갑게 본분을 하고 하나님의 모든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받아들이려 하던 데로부터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할 수 있고 원망이 없는 데까지 달하는 이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에 진입한 5년 동안의 체험으로 달한 효과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를 체험하는 생명 체험 중에서 만일 사람이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면 이 5년 동안의 체험 중에서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 수 없고 그저 하나님에 대해 얼마간의 순복만 있는 데에 머문다면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생명 체험의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모두 진실로 하나님께 봉헌하는 사람이며, 모두 성령 역사에 협력하고 하나님의 온전케 함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이때 본분을 하는 것은 비록 거래가 없고 요구하려는 존심이 없지만 여전히 사람의 뒤섞임과 패괴 성정의 유로가 많이 생깁니다. 예컨대, 사역이 효과가 있을 때는 오만 자대하고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고, 좌절과 실패를 만날 때는 낙담하고 소극적일 수도 있으며, 수리 대처를 받을 때는 연약해질 수 있고 심지어 원망할 수도 있으며, 꿰뚫어볼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관념이 생기고 논단할 수도 있으며 자주 거역하고 대적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봉헌하려는 심지가 있기에 설사 거역과 대적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집을 떠나기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데에 토대가 있고 이상(異象)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진리에서 계속 깊이 추구하고 어떤 대가도 달갑게 치르려 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는 데에 토대는 이미 있지만 아직 온전케 되는 단계에 달하지 못하였고 안에 결함이 아직도 많습니다. 예컨대, 아직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는 데에 달하지 못하였고,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로 생각하지 못하며, 사역하는 중에 아직도 자기의 뜻과 뒤섞임이 있고, 어떤 때는 감정적으로 애호에 따라 일을 하며, 일을 할 때 아직도 사람의 틀린 선택이 있고, 섬기는 중에 아직도 많은 거역과 대적이 있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에 대해 어떤 때는 무책임하고 소극적이고 나태하며, 어떤 때는 감정에 통제받아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체하며, 어떤 때는 심지어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본분을 함에 있어서 아직도 애호와 심정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수 없으며, 심지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지 못하며, 아직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며, 어떤 때는 또 다른 사람이 밀어주고 독촉해야 사역을 합니다. 만일 상면에서 키를 잡아주지 않는다면 여전히 잘못된 길에 들어서고 돌아오지 못할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면 온전케 되지 못한 사람은 다 하나님의 쓰임에 맞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키를 잡는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가 못 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생명 체험의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그저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토대가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온전케 되기까지는 아직 거리가 멀었으며, 그저 패괴 성정에 대해 인식이 있을 뿐 패괴 성정이 아직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이 생명 체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이는 데에 달할 수 없고 하나님이 안심되게 하는 정도에 달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가 못 됩니다. 설사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훈련받고 양육받는 단계에 처해 있습니다. 비록 섬기는 중에서 생명 체험의 간증을 얼마간 말할 수 있고 진리에 대한 인식을 얼마간 교통할 수 있을지라도 각 방면 진리의 실질에 대해서는 인식한 것이 비교적 적고 밝히 교통할 수 없으며, 아직도 분량이 너무 작아 하나님을 섬기는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계속 추구하고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할 때까지 몇 년 더 체험한다면 그때에야 초보적으로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보다시피,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기 시작했으나 아직 정식으로 온전케 되는 체험에 진입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대가를 치르고 달갑게 모든 고통을 참고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할 수 있으면 틀림없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사람이며, 완전히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생명 체험의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비록 표면 행위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는 표현이 없고 인성에서 큰 결점이 보이지 않지만 심령 깊은 곳에는 아직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많고,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오만 자시(自是)하고, 장광설을 늘어놓고, 자기를 드러내고, 독선적이고, 함부로 논단하기를 좋아하고, 심지어 제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 역사를 좀 얻으면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며 누구나 다 감히 논단하고 따라서 사치한 욕망이 생기며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 하고 심지어 어떤 세력도 미치지 않는 곳이라 여기면서 패권을 차지하려 하고 어떤 사람도 눈에 두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공통 상황인데, 그저 대동소이할 뿐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과 형벌이 없고 성령 역사와 특별한 징계가 없다면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만일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 심지가 있다면 반드시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더 심한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더 심한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여야만, 반드시 더 많이 시련의 고통을 받고 징계의 고통을 받고 수리와 대처의 고통을 받아야만 심령 깊은 곳의 더 심한 거역과 대적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 초기 단계에 받는 말씀의 심판 형벌의 고통을 외과 수술에 속한다고 말하면 생명 체험의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에 진입한 사람이 받는 심판 형벌과 시련의 고통은 내과 수술이고 환골탈퇴하는 수술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네 번째 생명 체험의 단계에 진입한 사람이 받는 고통은 더욱 큽니다. 만일 진리를 얻기 위해 고통받을 심지가 없다면 안 됩니다. 게으름뱅이나 겁쟁이는 성령의 이런 역사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생명 체험의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또한 길을 선택하는 하나의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즉 베드로의 길을 걷는가 아니면 바울의 길을 걷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사역을 좀 할 수 있다 하여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자만자족한다면 여전히 도태될 위험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감히 상면의 사역안배를 어기고 다른 수단을 피운다면 적그리스도이니 반드시 징벌받을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에게 지위가 있으면 확실히 큰 시험입니다. 만일 인성이 비교적 낮고 진리를 위해 고통받을 심지가 없다면 정지될 것이고 또한 지위의 복을 탐내는 것으로 인하여 타락되고 부패해질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생명 체험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후퇴하게 되는 규율입니다. 온전케 된 사람이야말로 성정이 안정적이고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온전케 되기 전에는 다 어느 정도의 위험이 있는데, “백 리 길을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반으로 친다”는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의 5년 동안의 역정도 아주 간고합니다.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징벌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다 순복하고 따를 수 있고, 원망과 반항이 없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고, 끝까지 충성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체험에 달하면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입니다.

4.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

생명 체험이 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한 기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를 체험하여 패괴 성정에 뚜렷한 변화가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실제적이며 하나님이 요구하신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 진실한 진입이 있습니다. 섬기는 방면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령 역사에 협력할 수 있으며, 사역하고 섬길 때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미 사람을 공급하거나 사람을 인솔할 수 있고 진리로 사람의 패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에 거의 달했습니다. 매사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가를 알 수 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꿰뚫어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간증하기를 배우기 시작하며 다시는 제멋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설사 자신이 깨닫지 못하더라도 순복하고 찾고 구할 수 있으며 관념과 논단이나 대적이 없습니다. 사역하고 섬기는 것이 비교적 성숙되고 노련하여 좀처럼 일을 그르치지 않고 좌절과 실패를 만나면 소극적이지 않고 원망의 마음이 없습니다. 비록 아직도 잔존 패괴가 있지만 이미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거의 달했습니다. 이것은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한 기본 상황입니다.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한 사람은 전면적으로 각 방면의 진리에 진입하기 시작하며, 항상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진리를 실행할 것인가를 더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진실한 인식이 있기에 각종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원망과 배반이 없으며 하나님의 지배에 맡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시든,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든 다 순복하고 자기의 선택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다시는 거역하고 대적할 마음이 없습니다. 고통이든 아니면 환난이든 자신의 요구가 없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지위, 명리, 돈,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마음에서 지위가 없으며 더 이상 사람을 점유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안 되는데,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생명을 잃은 것처럼 사는 것이 재미 없고 사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합니다. 각종 악인에 대해, 진리가 없는 모든 사람에 대해 다 관심 없고 혐오감만 있는데, 그저 인내하는 마음으로 함께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좋아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호감이 있으며, 그들과 함께 오래 지내면서 왕래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본분을 할 때 최선을 다해, 전력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발휘할 수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힘써 잘하고 어떤 인사물의 통제도 받지 않습니다. 개인의 명리와 득실을 개의치 않고 그저 자기의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만 있으면 되는데, 마치 자신이 왜 피조되었는지를 속으로 알고 만일 자신의 본분을 잘하지 못하면 일생을 헛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본분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본분을 하려 하고, 살아만 있으면 하나님을 믿으려 하고 진리를 추구하려 하고 자기의 본분을 잘하려 합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온전케 된 사람이 하는 모든 본분은 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체험 간증이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데, 완전히 사람에게 공급하고 사람을 인솔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에 진입한 사람에게도 여전히 어느 정도 잔존 패괴가 있어 특별한 시련이 닥치면 아직도 어느 정도 패괴된 여독을 드러낼 수 있는데, 물론 아직도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고 계속 정결함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매 차례 시련에서 모두 서로 다른 수확이 있고 모두 패괴된 정형이 어느 정도 바뀔 수 있으며, 동시에 매 차례 시련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이고 모두 하나님이 선물하신 ‘예물’이 그중에 있으며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사람 안의 모든 것이 다 정결함을 받을 때까지 시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많이 겪을수록 사람이 얻는 진리가 더욱 많고 사람의 생명이 더욱 풍성해지고 최종에 풍부해지는 데에 달합니다. 가히 말해서, 하나님을 간증하는 생명 체험의 단계에 진입하면 참으로 수백 번의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사람의 패괴 본성이 깊이 뿌리 박혀 있기에 절대로 몇 년, 몇 번의 큰 시련을 겪어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련이면 사람은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진리의 표준에 닿기만 하고, 많이 기도하여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찾고 구하기만 하고, 자신의 패괴와 결핍함을 잘 알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고,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고,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면 됩니다. 이렇게 협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영원히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길 끝까지 갈 수 있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공과는 무한하고 성정 변화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일수록 더욱 자신의 결핍함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무지경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며 영원히 싫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추구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고 마음도 점점 환해지고 아주 충족하고 누림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간증하는 생명 체험의 단계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온전케 하는 역사를 다 체험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인식이 있게 되고, 사물을 보는 관점이 크게 바뀌며, 전체 패괴된 인류가 사악하고 황당무계한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서 어둡고 빛이 없어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보게 되며,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만물 중에서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다 의의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이 그중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해, 인류에 대해, 인생에 대해 꿰뚫어볼 수 있고, 사탄에 대해, 악령 역사에 대해, 사탄의 간계에 대해, 적그리스도 및 각종 악인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인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사탄의 미혹이나 마귀 악인의 유혹과 이용을 당하지 않을 수 있고,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서도 분명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사람의 각종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완전히 사람을 인솔하여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히 말해서 이미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달한 것이고, 완전히 하나님 집의 인솔자 사역을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케 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사람이고 참으로 진리를 얻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만일 진리를 얻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진리로 사람을 인솔할 수 있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거나 인솔자로 되는 데에 있어서 완전히 키를 잡을 수 있고 하나님이 근심하실 필요도 없으면 하나님이 안심하고 쓰시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우려와 고통을 분담할 수 있고 하나님이 급해하시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하며 각 방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지심인(知心人)이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며 마침 하나님이 얻으시려는 사람입니다.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에 진입한 사람 중에는 주로 두 부류 사람의 구별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베드로와 같은 부류에 속한 사람인데, 소질이 좋고 사역 능력을 구비하였기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 부류는 소질이 일반적이고 사역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지는 못하지만 모두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들이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민이고 똑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보다시피,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 중에도 순위 차이가 있습니다. 온전케 된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을 수 있고 온전케 된 일부 사람들은 겨우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으며 온전케 된 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민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하신 그 ‘달란트’ 비유와 같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고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은 주인의 상을 받았고 두 달란트 받고 또 두 달란트를 남긴 종도 주인의 상을 받았지만, 한 달란트 받고 땅에 감추어 둔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든 다 공의로우십니다. 사람의 소질이 높든지 아니면 낮든지 상관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 심지가 있으면 다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은 생명 체험의 네 번째 단계의 대략적인 상황입니다. 생명 체험의 각 단계마다 뚜렷한 구별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각 단계 사이의 구별을 더욱 분명히 보도록 하기 위하여 각 단계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간단히 개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효력 단계(하나님을 믿는 초기 단계)의 상황은 하나님을 믿어도 복을 받으려는 존심을 품고 하나님과 거래하여(적의와 시험의 성질을 띠지 않을 수 없음) 전혀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력 단계라고 합니다. 이것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초기에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한 후 진실로 회개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하는 과도 단계이기도 합니다. 본분을 하는 단계의 상황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의 진리를 깨달은 후 복받으려는 존심을 내려놓고 복을 받기 위해 거래하거나 효력을 하지 않고 달갑게 피조물의 본분을 하며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길을 정식으로 걷기 시작하여 완전히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런 표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본분을 하는 사실을 인정하십니다. 이것도 사람이 정식으로 본분을 할 때 하나님을 믿는 기본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자신의 패괴 성정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으며 생명 체험에 진입하기 시작하고 구원받기 위해 뿌리를 내리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단계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고, 진정한 인생을 보고, 자신을 진실로 하나님께 봉헌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여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을 걷는 단계입니다. 이것도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 체험에 진입하여 각 방면의 진리를 깨닫기 시작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이 있고 하나님 나라 훈련에 진입하고 온전케 되는 길을 걷기 시작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간증하는 단계의 상황은 진리를 추구할 심지가 있고 정의감을 가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가 온전케 된 길을 걸으면서 온갖 시련을 받아들이고 생명 성정이 진실한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간증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하고 전면적으로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상은 바로 생명 체험의 4개 단계의 진실한 상황과 뚜렷한 구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나 다 공의로우십니다. 사람이 도대체 온전케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복하는가, 도대체 얼마만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시지 않고 진리도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습니다. 많이 수고하면 많이 얻고 적게 수고하면 적게 얻으며 수고하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진리를 얻는 의의가 너무나 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결국을 정하시는 것은 완전히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가 없는가에 근거하십니다. 여기에서 완전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어떤 사람에게나 다 공의롭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어떤 생명 단계에 진입하든지 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하는 정도와 상황에 근거하여 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이 고통받았는가, 얼마나 많이 사역하였는가, 얼마나 많이 전도하였는가에 근거하여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격히 말하면,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생명 체험이라고 말할 것도 없고, 효력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얻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실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얻은 사람만이 본분을 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효과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고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진리를 얻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데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최종에 진리를 얻지 못한 그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 데에 실패한 사람인데, 도태될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핍박과 환난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하였는데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교회에서 온갖 나쁜 짓만 하여 도태되었는데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일관되게 대충대충 하며 속이고 전부 무너뜨리고 방해만 하는데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교회 인솔자로 된 후 지위의 복을 탐내고 높은 자리에 앉고 제물을 훔쳐먹고 자주 사람에게 토색하고 남을 시중들게 하는데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오만 자대하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고 극력 지위와 명리를 추구하고 패거리를 짓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무너뜨리는데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고 온갖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고 더욱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하나님을 믿어도 잘못된 길에 들어서고 자신을 망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실패는 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초래된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똑같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똑같이 패괴 성정을 유로하지만 생명 체험 중에서 끊임없는 진보와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패괴 성정의 유로도 점점 적어지고 과오도 점점 적어지며 관념도 점점 적어지고 대충대충 함과 속임도 점점 적어지고 대적과 거역도 점점 적어지는데,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여 생명 체험에 진입하는 정상적 상황입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다년간 믿어도 여전히 패괴 성정이 변화가 없고 오히려 과오가 점점 많아지고 악행도 점점 많아진다면 이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형편이 날로 악화되어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패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밀이 익을 때는 모든 가라지 즉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즉 생명이 없는 사람)도 원수가 됩니다. 그들은 진리를 얻은 사람들과 점점 맞지 않다가 적대시하기 시작하는데, 모두 도태될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 법칙입니다. 무릇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하고 패괴 성정이 조금도 변화가 없고 도리어 악행이 점점 많아지는 사람은 다 도태될 대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에서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은 이 충분한 기회를 스스로 잃은 것입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그들의 사탄 본성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기회를 얼마 주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비록 다 사탄에게 패괴되었지만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으며,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몇 년을 믿었든지 간에 여전대로 패괴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생명 체험의 4개 단계의 진실한 상황에서 완전히 볼 수 있는바,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다 생명 체험의 4개 단계에 따라 하나님께 온전케 될 때까지 앞으로 발전합니다. 생명 체험의 4개 단계는 완전히 진리를 추구하는 다수 사람들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총결하고 정리한 것인데, 완전히 생명 체험의 정상 법칙에 부합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기만 하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생명 체험의 4개 단계 안에 있습니다. 모든 형제자매들이 다 생명 체험의 4개 단계의 상황에 근거하여 자신을 대조해보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이미 어느 단계까지 체험하였는가를 보면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 상태에 만족하거나 제 딴에는 얻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고 혹은 너무 어렵다고 느껴져 자포자기하거나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 체험의 각 단계의 진실한 상황을 분명히 보아야 자신이 어느 단계까지 체험한 것인지, 아직도 무엇이 결핍한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자신에게 새로운 추구 목표를 확정하기 쉽고 체험할 길이 있게 하고 추구할 목표가 있게 하며, 생명 체험의 더 높은 경지에 순조롭게 진입하는 데에 달하여 최종에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교통을 쓰게 된 목적입니다.

2006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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