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생명 공급——설교 특집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3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

교회에서 항상 누군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감옥에 갇혀 많은 굴욕을 이겨냈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많은 수리와 대처를 당하고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을 포기하고 돈을 적게 벌어 가난뱅이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말하는 등등입니다. 게다가 다수 사람들은 ‘무릇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받는 모든 고통은 다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통이고, 무릇 하나님을 간증하기 위해 고통받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고통받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이다.’라고 모두 이렇게 여깁니다. 심지어 아무도 감히 이것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보아하니,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대부분 다 많은 고통을 받은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 몸에는 결코 생명 성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고,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봐도 진리가 없고 더욱이 하나님이 요구하신 실제를 살아낸 것도 없습니다. 만약 그들과 한동안 함께 지낸다면 그들의 패괴된 가련한 꼴을 보게 되는데, 완전히 사탄 마귀의 본모습입니다. 이런 일은 깊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이라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선량해야 하고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생명 성정이 얼마나 크게 변화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사람 몸에서 오히려 생명 성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조금의 진리도 얻지 못하고 일을 판단하는 것도 여전히 이방인의 관점이고 여전히 궤사하고 교활한 사탄의 처세 철학입니까? 이것은 진짜 불가사의합니다! 사실, 진상을 드러내면 일목요연(一目了然)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예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는 날마다 우주 위에 서서 살펴보고 또 비미은장하여 내 처소에서 인생을 겪으며 사람의 모든 행위를 자세히 관찰하였는데, 참으로 나를 위해 내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나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 앞에서 심지(心志)를 세워 본분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나를 마음속에 거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자신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것처럼 나를 중히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실제 속에서 내 신성(神性)의 모든 소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실제의 하나님 자신과 접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아하니, 하나님을 믿고서 진리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든지 만일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고통을 받아도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고통받은 사람은 그가 받은 이런 고통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받은 것인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받은 것인지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받는 고통이면 다 하나님을 위해 받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받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여러분이 보기엔 이런 말이 정확합니까? 이렇게 말하면 타당하겠습니까? 사실, 원칙대로 말해서 사람이 만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고통을 달갑게 받을 수 있고 아무런 원망도 없다면 이것은 당연히 진리를 얻어 성정 변화에 달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 몸에서 진리가 있음을 볼 수 없고 더욱이 생명 성정의 변화도 볼 수 없는데, 사람은 또 뻔뻔스럽게 “완전히 하나님을 위해 받은 고통이다”라고 허풍떨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존귀하고 얼마나 거룩한가를 보게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았다고 항상 사람 앞에서 허풍떨던 이 사람들은 다 사곡하고 궤사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아울러 위장하기를 잘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상하게도 정말로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기만 당하기를 바라면서 이 ‘고통받은 사람’들을 우상으로 삼아 숭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은 사람’들이 도리어 갑자기 변신하여 ‘영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았다고 아무리 허풍떨어도 하나님 쪽에서는 오히려 이 ‘사실’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저 사람의 일방적인 소망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기념하시는 것은 사람의 진실한 선행이고,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실한 경배이며,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것은 사람의 진실한 봉헌입니다. 오직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된 그 사람들의 봉헌과 화비,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받은 고통만이 하나님께 열납됩니다. 이로부터 보다시피,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받아야 할 고통과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받은 고통은 다 사람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고 사람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통은 전혀 다른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된 후 정식으로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온갖 고통을 받아도 여전히 죽기까지 충성하며 자기의 본분을 잘할 수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가히 말해서,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의 이런 봉헌만이 패괴와 뒤섞임이 없고 거래와 요구가 없으며 존심과 목적이 없는데, 완전히 달가워하고 기꺼이 원하는 봉헌입니다. 그들은 충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 간증을 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고통받으며,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고통받는데, 이것을 비로소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것은 완전히 사람이 구원받고 온전케 된 후에야 달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아직 진리를 얻지 못하고 생명 성정도 변화되지 않았다면 절대 하나님을 위해 달갑게 고통받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사상과 관점, 사람의 존심과 생각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성은 다 자기를 위해 도모하는 것입니다. 설사 본분을 하기를 원한다 해도 달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대충 하고 속이며, 조금의 순복도 없고 충심은 더욱 없는데, 어찌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패괴된 인류는 안에 대적과 거역이 가득하고 모든 행위는 다 자기를 위해 도모하고 자기의 존심과 목적을 위해 고통받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실제 사실입니다. 사람의 패괴된 정형에 근거해서 말하면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데에 미치지 못하고 아직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존심과 목적이 올바르지 않고 사람이 고통받는 것은 존심과 목적의 지배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진리를 얻고 구원받기 위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든지 하나님과는 무관합니다. 물론 생명 성정의 변화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많은 고통을 받으신 이것은 진실한 것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아직 완전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아직 진리를 구비하지 못하고 생명 성정도 변화가 없는데, 어찌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을 수 있겠습니까? 실사구시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받은 모든 고통은 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기 위해 고통받은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고통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뒤섞임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영생을 얻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 재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며, 어떤 사람은 재난에서 벗어나 죽지 않는 결국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는 모두 개인의 존심과 욕망의 뒤섞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고통받는 존심 목적도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악을 행하고 범죄하여 고통받은 것인데 별도로 다루어야 합니다. 악을 행하고 범죄하여 고통받은 그것은 스스로 재미없는 일을 사서 한 것이고 자기가 놓은 덫에 걸린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상관없으며, 이런 고통을 사람이 아무리 많이 받아도 의의 없습니다. 악을 너무 많이 행하면 그저 자신을 망치고 침륜을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일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인솔자 노릇 하면서 본분을 할 때 일관되게 대충 하며 속이고, 극력 지위의 복을 탐내고 육체적 누림을 추구하며, 진리에 대해 인식한 교통이 없고 도리어 가는 곳마다 형제자매들을 통제하며, 높은 자리에 서서 사람을 교훈하고, 여기저기서 부당한 이득을 챙기거나 차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태된 후에도 여전히 불복하며 늘 속으로 사역을 몇 년 동안 하여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다고 여기면서 넋두리하고, 가는 곳마다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고, 사역을 얼마 하고 고통을 얼마 받았다고 자기 자랑하여 일부 사람들의 동정과 지지를 얻었습니다. 도태된 이 인간쓰레기들은 확실히 일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그들을 위해 동정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을 위해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또 하나님 집이 불공평하다고 여기는데, 마치 하나님도 공의롭지 않다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 사람의 사탄 본성이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수리 대처를 받거나 도태되어도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고 극력 가는 곳마다 사람을 미혹하는 것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당연히 원수의 미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뜻밖에도 그들의 거짓말을 받아들였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하나님 집이 불공평하고 하나님도 공의롭지 않다.”라는 독소를 심어 놓고 화근을 묻어 놓고 이후의 추구에 장애물과 가로막음을 설치해 둔 것입니다. 많은 관념은 사람이 진리가 없고 사탄의 거짓말을 믿은 것으로 인하여 생긴 것입니다. 보아하니, 진리가 없으면 쉽게 사탄의 거짓말을 믿고 쉽게 미혹되는데, 이것은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거짓말을 아주 쉽게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것들을 아주 쉽게 받아들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 아주 어려워하고 진리에 부합되는 말을 믿기 아주 어려워합니다. 물론,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믿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복할 수 있다면 이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자기의 존심과 목적을 위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만약 최종에도 사람을 심판 형벌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최종에도 하나님 집의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는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이고 적그리스도의 종류이며 도태될 수밖에 없는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어떤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도대체 어떤 고통이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인지? 어떤 것이 생명을 얻기 위해, 진리를 얻고 구원받기 위해 고통받은 것인지? 어떤 것이 악을 행한 것 때문에 고통받은 것인지? 어떤 것이 자기를 위해 고통받은 것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은 것인지? 이런 일에 대해 모두 명확히 분별해야 하고 서로 별개의 일이니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멍청한 사람이나 황당무계한 사람은 뒤범벅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을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큰 면류관을 자기 머리에 씌우고도 부끄럽다고 느껴지지 않는지? 이런 논법은 하나님에 대해 불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기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줄곧 실사구시적이고 흑백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에 대해 이지가 좀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많이 추구하여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의 진상을 확인한 다음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이 재난을 피하거나 장래에 복을 얻기 위해 고통받는 것이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은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 집의 인솔자가 되기를 다투고 지위를 얻기 위해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이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은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본분을 대충대충 하면서 속이고 전부 파괴하고 방해한 탓에 심한 대처를 받거나 도태되어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이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받는 고통은 여러 방면이 있는데, 그 가운데의 고통과 고통도 서로 다르고, 고통받는 사람의 유별이나 정형도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받는 고통도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원칙적인 구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고통받는 이 일에 대해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면 시비를 뒤섞거나 흑백을 전도해서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래에 제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어떤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관해 교통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고통받는 것인데, 심판 형벌을 받는 고통, 수리 대처를 받는 고통, 시련 연단을 받는 고통을 포함합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를 심판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되어 이미 극도에 이르렀고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격하는 것이 이미 하나님과 적대되는 정도에 이르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뿐만 아니라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도 재차 십자가에 못 박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죄악은 하늘에 사무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습니다. 인류는 이미 거의 구해낼 수 없을 정도로 패괴되어 하나님이 심판 형벌의 방식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게 된 것입니다. 심판 형벌의 말씀인 만큼 당연히 엄격하고 조금도 사정 없고 단도직입적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성품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사탄의 성정이 가득찼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보면 당연히 불쾌감을 느끼고 심지어 고통스럽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를 회고해봅시다. 은혜를 가득 가지고 오셔서 사람의 죄를 사하셨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으며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셨고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어도 패괴된 사악한 인류는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역사를 대하는 데는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이 오셨어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하나님이 심판 형벌을 지니고 사람을 구원하시러 오셨어도 여전히 정죄당하고 저버림받습니다. 다행히도 현대 사회에 십자가에 못 박는 형법은 없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추적당하고 정죄당하고 저버림받으셨는데, 예수님의 경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패괴된 인류가 이미 어느 정도로 사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전적으로 인류의 패괴된 사악한 실질로 인하여 결정된 것이며,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키고 인류에게 해를 끼쳐 초래된 악과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가 없으며, 하나님 말씀에서 온갖 고통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엄한 심판의 말씀을 읽고는 관념이 생기고 논단하고 정죄하며 대적하고 배반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사람의 패괴된 흉악한 성정의 유로(流露)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를 드러내신 것은 사실의 진상과 완전히 부합되고 전적으로 사실에 근거하여 말씀하신 것이지 과장해서 말씀하신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의 본성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사람은 축복의 말씀, 칭찬의 말씀, 찬미의 말씀을 듣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운 것이며, 하나님은 절대로 사실을 어기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패괴된 인류가 또 구원받으려 하면서도 여전히 축복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데, 이것은 기상천외의 일입니다. 보다시피, 인류는 너무 성실하지 못하고 너무 사악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요구하며, 진리를 얻고 싶어하면서도 체면을 세우려 하는데, 마치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이 구원될 수 없음을 의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서 고통받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으로 되었습니다. 사람이 이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통을 사람이 얼마 받았든 큰소리칠 형편은 못 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어 초래된 것이니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고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으니, 말씀이 어떻게 엄하든지 전적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이 고통받아야 진리를 더 많이 얻고 생명 성정의 변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얻게 될 때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 말씀의 달콤함을 느끼고 하나님 말씀을 떠날 수 없습니다. 바로 옛 격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게 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도 더는 하나님 말씀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심판 형벌의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말씀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늘 관념이 있어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 하나님 말씀에서 고통받기를 싫어하는 그 사람들은 도태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서 고통을 얼마 받든 다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이고 다 의의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고 참으로 하나님 말씀에서 고통받지 못한다면 진짜 구해낼 수 없습니다.

둘째, 사람이 본분을 할 때 받는 고통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하면서 고통받는 것은 주로 본분할 때 대충대충 하고 기만하여 수리 대처를 받은 고통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어 본분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도 못하며 본분을 함에 있어서 모두 존심과 목적이 있고 모두 자신이 이득을 획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달갑게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본분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다면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료 봉사에 속하기 때문에 얼마를 하든 지간에 사람은 다 억울함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본분을 할 때는 다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고 기만하는 술책을 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일을 처리할 때는 매우 착실하지만 하나님 집을 위해 본분을 할 때는 대충대충 하며 속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하는 사람은 다 수리와 대처를 받아야만 변화될 수 있고 사람 같아 보입니다. 사실, 본분을 하면서 받는 고통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분주히 보내는 것은 본분을 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모두 그렇게 힘들거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의 어떤 사역이든 다 세상적 일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이 대충대충 하며 속이면 더군다나 힘들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하는 것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고 도리어 누림 있고 마음이 편안하며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어 언제나 대충대충 하며 속이는데, 대처 수리를 받은 후에야 사람은 본분을 하는 것이 고통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안이 대처를 받은 후 사람의 패괴된 심리 상태가 균형을 잃고 불평을 부릴 수 있기 때문에 좀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분을 함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입니다. 사실,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이 무게가 있겠습니까? 언급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일부 사람에게 본분을 하라고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본분을 하는 것은 하나님 집에서 돈을 들여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고 또는 하나님 집에서 돈으로 바꿔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고통을 조금 받고 무슨 큰소리칠 것이 있겠습니까? 기쁜 것은 일부 사람들이 몇 번 수리와 대처를 받은 후 확실히 어느 정도 변화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후에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하거나 속이는 것이 적어졌고, 자신도 속으로 본분을 함에 있어서 수리 대처가 없으면 안 되고 대충대충 하거나 속이는 것을 스스로는 벗어버릴 수가 없고 반드시 누군가 대처 수리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본분을 하는 다수 사람들의 공통적인 체험과 인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분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이자 역시 하나님을 믿으면서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인데, 전적으로 사람이 패괴되어 초래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할 때 고통받는 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이니,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다거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본분을 하면서 받는 고통은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유리하고 성정 변화에 유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자라나는 것이 너무 느리고 진리를 얻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하는 중에서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셋째,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겪어야 할 각종 시련과 연단의 고통은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물론, 각종 시련과 연단을 받는 고통도 역시 사람의 패괴 성정으로 인해 초래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만약 패괴 성정이 없다면 이런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도 사람을 시련하시거나 연단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최초에 체험한 효력자의 시련, 형벌시대의 시련, 죽음의 시련에서 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받아서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후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에서 연단의 고통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날에서 연단의 고통을 받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전망과 운명 때문에 연단의 고통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시련과 재난이 얼마간 닥친 것으로 인해 고통받았습니다. 이런 고통도 역시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되고 하나님을 너무 많이 대적하고 복받으려는 마음이 너무 크고 아울러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요구, 토색, 욕망이 너무 많아 초래된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데는 다 개인의 존심, 욕망, 관념, 요구가 뒤섞여 있는데,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이런 고통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강요한 고통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람의 패괴 본성 때문에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통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도 역시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믿고서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이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통이 아니고 사람이 자신을 위해 달갑게 받은 고통도 아니며, 그저 사람의 패괴 본성이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일 뿐입니다. 마치 사람이 식탐에 빠져도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해 고통받고 너무 경박해도 좋은 옷을 입지 못해 고통받는 것처럼 모두 사람의 욕망을 달성하지 못해 받는 고통이고 모두 사람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받는 고통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 너무 나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이지 전혀 하나님이 사람에게 더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연단과 시련의 고통을 얼마 받았든지 큰소리칠 것이 못 되고, 전적으로 자신이 구원받고 패괴에서 벗어나기 위해 받아야 할 고통이고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이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각종 시련과 연단의 고통을 받는 것은 사람이 진리에 진입하고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가장 유리한 것이자 역시 필수적인 것입니다. 온전케 될 사람은 반드시 더 많은 시련의 고통을 겪어야만 효과에 달할 수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각종 핍박과 환난의 고통을 받아야 하고 또 사람의 저버림이나 가족의 멀리함, 심지어 가정 파탄의 고통도 이겨내야 합니다. 이런 고통도 역시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되어 초래된 것인데, 물론 천재(天災)에 속합니다. 이 세상은 사악하고 어둡습니다. 나라에서 핍박하고 정부에서 박해하며 사람을 사도(邪道)에 빠지게만 하고 정도(正道)에 들어서지 못하게 합니다. 인류가 바로 이렇게 패악하고 사악한데, 이것은 어떤 사람도 바꿀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악마가 권력 잡은 나라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를 추구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핍박과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약 이런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악한 세상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하신 핍박과 환난은 더욱 큽니다. 하나님이 직면하신 것은 큰 붉은 용의 정권과 전체 사악한 인류의 저버림, 정죄, 핍박, 그리고 하나님 선민들의 거역, 대적과 기만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렸습니까? 사람이 고통을 조금 받고 공이 있다고 여기는데, 마치 축복을 요구할 자격이 있고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듯합니다. 사람에게 그래 조금이라도 이지(理智)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을 다 받았습니까? 진리를 얼마 얻었습니까? 성정이 변화되었습니까? 현재 구원을 받았습니까? 큰 붉은 용과 패괴된 인류가 이렇게 흉악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고 추적하여 죽이려 하는 것을 보았다면 더욱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며, 더욱더 심지를 세워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죽을 각오를 하고 마음을 다잡고 생명을 도외시해야만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관을 등에 업고’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은데, 이렇게 말해도 실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귀신 성에서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한다면 구원받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만일 위험이 두려워 탈영병이 되어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이 고난은 누구도 피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믿으면서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이 방면의 고통을 얼마 받았든지 그저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받은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통받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핍박과 환난의 고통을 받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충심을 연단할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진실하게 알 수 있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큰 붉은 용의 사악한 본질을 알게 하고 세상의 사악함과 어둠을 확실히 알게 하고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된,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악함을 숭상하는 사실의 진상을 보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큰 붉은 용을 배반하고 패괴를 벗어버려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데에 달함에 더욱 유리합니다. 각종 핍박과 환난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사람의 아름다운 간증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받아야 할 고통은 주로 이 4가지 방면입니다. 이 4가지 방면의 고통을 얼마 받았든지 가히 말해서 다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받아야 할 고통인데, 절대로 하나님을 위해 받은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또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받은 고통이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이 말을 함에는 공평해야 하고 이지가 있어야 합니다. 무릇 자신을 위해 받는 고통은 어느 때든지 다 자신을 위해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음속이 편안하고 평안합니다. 만약 자신을 위해 받은 고통을 하나님을 위해 받은 것이라 하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기념하시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사람이 궤사하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뻔뻔스럽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야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사람이 아무리 궤사해도 하나님을 기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일 말씀하신다면 사람은 또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정말 이지가 있다면 실사구시적으로 말해야 하며, 자신이 고통을 얼마 받았든지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통받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앞서 가서 면류관을 자기 머리에 씌운다면 이것은 아주 수치를 당할 일입니다. 만약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온전케 될 사람이고 틀림없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만약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고통을 받은 것이면 틀림없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물론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이 특별한 영예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이 도대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통받을 자격이 있는가는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고 사람이 본질적으로, 주요하게 도대체 누구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지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무릇 항상 자신이 어떻게 어떻게 고통받았다고 간증하는 사람은 다 진리가 없는 사람이고, 다 가장 어리석고 가장 이지 없는 사람입니다. 뻔뻔스럽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 앞에서 이렇게 자랑하고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칭찬과 동정을 얻는데, 이것은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는 성질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속합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을 심지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하여 달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을 다 받는다면 그때는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사람이 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나 지위도 다 바로잡게 됩니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으면 비로소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면 하나님도 인정하고 열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입니다. 최후에 체험할 몇 년 동안의 큰 시련 속에서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간증, 하나님께 충성하는 간증이 있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열납과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의 현재 분량에 따르면,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을 아직 다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아직 구원받는 데에 훨씬 달하지 못하였고, 자기 몸의 패괴도 해결할 수 없으며, 살아남을 수 있느냐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것이 긴요합니다. 그런 이지 없는 말을 하지 말고 그런 이지 없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또 한가지 가장 특별한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징벌받는 고통과 도태되는 고통입니다. 이런 고통을 받게 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확실히 인성이 너무 나쁘고 성정이 사악한 탓에 이런 끝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자업자득에 속하고 스스로 재미없는 일을 사서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악인의 특허이지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이 아니니, 절대로 하나님을 믿고 받아야 할 모든 고난에 열거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 집에서 도태된 사람, 제명된 사람들이 계속 자신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하나님 집이 불공평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몰이해한다고 말하며 어떤 자는 심지어 “하나님 집에서는 가루를 다 빻고 나면 나귀를 죽이는 것과 같다”, “황제 모시기는 호랑이를 옆에 두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흑백을 전도한 것입니다. 사실의 진상을 어기고 흑백을 전도하여 말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적그리스도이고 악한 종이며 마귀입니다. 오직 그들만이 이렇게 말로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사실, 무릇 온갖 못된 짓만 하여 제명된 사람들의 효력은 다 이득보다 손실이 더 많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집에 가져온 파괴는 너무나 크고 하나님 선민들에게 가져다준 방해는 너무 많으며,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을 심하게 가로막았고 사람을 미혹하여 곁길로 나아가게 하였는데, 돈 손실로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오히려 일리가 있는 것처럼 또 악인들이 먼저 고소━도리어 비난하는데, 정말로 독사와 악마의 종류입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효력자에 대해 아주 은총을 베풀어━살아남게 하시는데,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효력을 하는 것에도 합격되지 않고 달가워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효력을 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은 당연히 도태될 것입니다. 만일 좋은 나귀라면 죽일 주인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나쁜 나귀, 못된 나귀만이 맷돌을 돌릴 때 뒷발질하고 마구 물며 언제나 어지럽히고 허물며 일해도 이득보다 손실이 더 많아서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구할 수 없는 악인을 대하는 것은 그저 쫓아낼 뿐입니다. 또한 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허락하는데,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공평한 것이고, 하나님이 어느 한 사람을 대하시는 것도 다 공의로운 것인데, 이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인성이 조금도 없고 심지어 사리에 밝지 못합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대하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사탄 마귀가 가장 반동적인데 감히 하늘을 거역하여 행하고 하나님과 적대시합니다. 만약 사람이 악인의 거짓말과 사탄의 허튼소리를 믿고서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의심한다면 역시 멍청이이고 완전히 사탄에게 속하는 자이며 틀림없이 좋은 놈이 아닙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의감이 있는 사람은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는 허튼소리를 분별할 수 있고, 진리에 근거하여 악인의 간계와 음모를 폭로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 속임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서나 사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은 시시로 사람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믿고 고통받는 일도 사람을 드러냅니다. 악인이 만일 본분을 할 때 고통을 좀 받는다면 큰일 납니다. 가는 곳마다 선전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하고 싶어하는데, 그들의 존심과 간계가 무엇인지, 어떤 성품을 대표하는지, 진상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고 고통을 얼마 받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관건은 진리를 얻었느냐에 달렸습니다. 만일 진리를 얻지 못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했다면 고통을 많이 받아도 무의미합니다. 관건은 그래도 진리를 얻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고통을 많이 받아도 개의치 않고 별로 고통스러운 줄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직 진리를 깨닫는 것만 중요시하고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만 있으면 마음에 해방을 얻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달하고 구원에 이를 수만 있으면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일 어떤 고통이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인지, 도대체 어떤 것이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고통받는 것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은 것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일을 하기 일쑤이고, 더욱 사탄의 미혹을 받고 악인을 따라 하나님을 논단하고 대적하고 모독하기 일쑤입니다. 오직 사실의 진상을 분명히 알아야 우리가 고통받아도 안정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순복할 수도 있으며, 재차 하나님을 대적하고 논단하는 황당무계한 말을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상케 하는 것을 피할 수 있고, 동시에 또 자신이 받은 모든 고통을 정확히 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꿩 먹고 알 먹기 아닙니까? 참으로 양심적이고 이지적인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으셨는지, 하나님이 무고하게 얼마나 많은 핍박과 환난을 받으셨는지, 하나님이 무고하게 얼마나 많이 패괴된 인류의 훼방, 모욕, 정죄와 저버림을 받으셨는지, 하나님이 무고하게 얼마나 많이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대적과 논단과 모독을 받으셨는지, 하나님이 무고하게 얼마나 많이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의 대충대충 함과 속임과 기만을 받으셨는지를 많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다 그분을 먹고 그분을 마시고 그분을 누리는 동시에 또 마음에 관념을 품고 그분을 대적하며, 모두 그분과 거래하고 그분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 적이 있는지? 누가 하나님을 동정한 적이 있는지?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한 적이 있는지? 누가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으시게 한 적이 있는지? 하나님도 여전히 날마다 고통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진 고통과 시달림을 받으시는데 누가 알 수 있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까? 누가 또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고통을 좀 받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가 달갑게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힌 것은 누구를 위해서였겠습니까? 베드로의 마음이 어떤 상황이었겠습니까? 자세히 생각해보고 거기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2006년 2월 1일

이전:진리를 얻고 실제에 진입해야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다음: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생명 체험의 4가지 단계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