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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실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다

어떻게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와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의의에 대해 많이 교통하였는데 지금 여러분은 오직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정상 인성이 있고, 오직 성실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이 방면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까? 이것은 생명 성품이 변화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난날 우리는 오직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만 진실로 회개하는 것이라고 교통하였는데 여러분은 이 인식이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게 말할까요? 여러분은 그 말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까? 우리는 한 사람의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를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바로 성실한 사람인지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라면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을 것이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그다지 합격되지 않지만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할 수 있고 충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역주: 헌신, 소비)할 수 있어요. 이것은 생명 성품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뜻하지요.”라고 말하는데, 여러분은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할 수도 있으며 게다가 매우 잘 추구하지만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복, 충심이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충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그는 자신이 구원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그는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고 실제에 진입했다고 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 아니면 실제가 조금도 없습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고, 둘째로 그가 화비하고 본분하는 것에 틀림없이 불순물이 많을 것인데, 그것은 그 본인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실한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정상 인성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진실로 회개한 것이고, 오직 진정으로 성실한 사람이라야 생명 성품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젠 이 말을 터득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당신은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는데 자신이 도대체 성실한 사람이 맞는지를 잘 반성해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간사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까? 간사한 사람이 도대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간사한 사람은 진리를 실행한다고 해도 틀림없이 뒤섞임이 있고 개인의 속셈과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사한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거래를 하고 있고, 간사한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간사함, 기만, 거짓말을 가장 혐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짓말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자를 가장 증오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일 증오하시면 바로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구원받는 사람이 되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일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시기에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버텨 낼 수 없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좋아합니다. 사람은 왜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성실한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한 조목입니다. 당신이 그와 왕래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하여 걱정이 없고 후환의 우려가 없으며 그가 당신을 기만하고 해칠까 봐 걱정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사람과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유익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성실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은 이런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 성실한 사람에게 역사하시기에 성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밖에, 성실한 사람과 왕래하면 사람됨을 배울 수 있어 사람됨을 알게 되고, 일을 할 줄 알게 되며, 진리를 실행할 줄 알게 되고, 나중에는 함께 정상 사람의 형상을 살아내고 정상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간사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왜 간사한 사람을 증오하실까요? 간사한 사람에게는 어떤 패괴된 표현들이 있을까요? 그의 본성 실질은 무엇일까요?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잘 분별해 보세요! 여러분이 보기에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의 패괴 성품의 실질은 무엇입니까? 바로 매우 이기적인 것입니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곳곳에서 자신을 위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누림만 꾀하고 다른 사람은 죽든 살든 상관치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장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만일 성실한 사람이 아닌 사람이 교회에서 권력을 잡게 된다면 하나님 선민에게 이로운 점이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 있어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 하나님 선민이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지,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는지,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 자신에게 누림이 있고 지위가 있어 남보다 뛰어나고 사람들을 관할하여 내가 만족하기만 하면 돼!’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육체 욕망을 달성하기만 하면 그만이고 하나님 선민의 생사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간사한 사람의 가장 실질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간사한 사람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므로 간사한 사람의 실질 핵심은 바로 자신을 위하고, 자신의 육체적 누림을 위하고, 다른 사람의 생사를 상관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들을 봅시다, 그들이 가장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들은 매사에서 자신을 위하고, 하나님 선민을 위해 생각하지 않으며, 교회에 어떤 좋은 물건이 있으면 자신이 먼저 누리고, 어떤 본분이 지위가 높고 권력이 크면 자신이 먼저 손아귀에 틀어잡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까?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면 바로 가장 간사하고, 가장 성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옳지 않습니까?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를 보세요, 그들은 어떤 방면에서 자녀들에게 가장 탄복하고 가장 찬성하게 합니까? 가장 주요한 것은 자신을 위하지 않고, 오직 자녀만을 위하고 모든 것을 자녀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다 자녀를 위한 것이므로 자녀들은 이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말해 보세요,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는 진심과 성심으로 자녀를 대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갖추어야 합니까? 말을 하고 일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얻게 하고, 자신만을 위하지 않고 더욱 많게는 다른 사람을 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스스로 육체를 배반할 수 있으며, 고통과 아픔을 참고 애지중지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간사한 사람은 속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모든 것에서 자신을 위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이기적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제가 도와줄 수 있고, 당신에게 진리가 없으면 제가 교통해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깨달은 모든 것을 당신에게 교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사심 없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는 보수를 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보답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간사한 사람은 어떠합니까? 다른 사람을 조금 도와주면 평생을 기억하며, 그 사람이 보답하지 않으면 계속 지켜보는데, 그 뜻인즉 “내게 빚진 걸 언제 갚을 겁니까? 왜 양심이 없어요?”라는 것입니다. 간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조금 해 주고는 영원히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데, 마치 다른 사람이 그에게 평생에 다 갚지 못할 많은 빚을 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간사한 사람의 몰골이 아닙니까? 좋은 인솔자는 마음씨가 아주 착하고 선한데 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바로 매우 성실한 것입니다. 나쁜 사람과 거짓 인솔자는 아주 나쁜데 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바로 간사하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간사합니다. 매우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의 특징은 바로 성실한 것이고, 악인의 특징은 바로 간사하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이기적일수록 더욱 간사하고, 자신을 위할수록 더욱 간사합니다.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간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한다면 간사하게 굴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아주 불쌍하여 당신이 도와주려고 하면 간사하게 굴 필요가 있습니까? 간사하게 굴면 안 되고 도와주면 그만인 것입니다. 나쁜 사람이 달성하려는 목적은 떳떳하지 못하기에 간사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가 직접 자신의 속셈과 목적을 말하면 다른 사람이 그가 나쁘다는 것을 알아볼 것이므로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좋지 않기에 ‘내가 빙빙 돌려 말해서 다른 사람이 듣기 좋아하고 나를 착하게 보고 다른 사람도 좋아하게 하고 내 목적도 달성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간사한 사람의 짓거리가 아닙니까?

성실한 사람의 말이 듣기 좋습니까 아니면 간사한 사람의 말이 듣기 좋습니까? 세상 사람들을 보면, 가장 듣기 좋게 말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가장 간사한 사람입니다. 누가 말하는 것이 직설적이고 듣기에 안 좋으면 그 사람은 비교적 성실하고 아마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당신을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말세 사역에서 나타내신 성품은 공의, 위엄, 진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단도직입적이고 한마디로 정곡을 찌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한마디로 정곡을 찔러 사람의 본성과 사탄의 진상을 직접 들춰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념이 생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람을 욕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사실은 사람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진상을 들춰내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하나님 말씀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게 되면 자신이 정말 마귀이고 분토이며, 그야말로 사탄이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그때면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이고, 사람을 욕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사람을 헐뜯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직접적일수록, 사람이 듣기에 빙빙 돌려 하지 않고 그리 부드럽지 않고 귀에 거슬리고 우아하지 않은 말일수록 더욱 성실한 사람이 말한 것이고 더욱 실제적입니다. 듣기 좋게 말할수록 속에는 사탄의 간계가 들어 있습니다. “웃음 속에 칼을 품다”는 속담이 있는데, 바로 이런 뜻입니다. 무릇 말할 때 아주 점잖고 또 매우 완곡하여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모두 매우 간사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암투를 벌이기 좋아하고, 자신을 가장하고 꾸미기를 중요시하며, 특별히 자신의 형상에 신경을 씁니다. 무릇 자신의 형상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사람의 성품을 몇 가지 단어로 형용한다면 무엇입니까? 매우 허위적이고 겉면만 중요시하고 위선적이며 위장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장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하면 언제나 적합한 말을 골라서 합니다. 첫째는 말하는 방식에 신경을 쓰고, 둘째는 언어의 풍격에 신경을 쓰고, 셋째는 꾸미는 데에 신경을 씁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속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간사하고 교활합니다. 지금 어떤 특별한 인물들이 언어를 어느 정도까지 훈련하여 한바탕 그럴듯하게 말하면 당신은 따라 할 수도 없습니다. 뜻은 약간 알아들을 듯 말 듯하지만 따라 하려면 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그 사람이 매우 간사하여 언어에 매우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한 그럴듯한 말을 사람들이 들어도 알 듯 말 듯하지만 당신은 또 결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배우려고 해도 배우지 못하며, 증거도 잡지 못합니다. 사탄에게 속하는 이런 인류는 언어에서 이렇게 큰 공을 들이는데 매우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럼 지금 여러분은 말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이 “여기 교회에서 누가 가장 좋은가요?”라고 물으면, 사실 그는 속으로 이미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할까, 말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고 궁리합니다. 보세요, 이런 사람은 생각이 많은데 생각을 많이 하면 말하지 못합니다. 그가 바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머리를 굴리는 것입니다. 그가 한참 후에야 말하려고 하니, 제가 “말하지 마세요. 말을 해도 거짓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 것이 맞지 않습니까? 만약 그가 2, 3초 내에 말하면 마음속 말인데 생각한 그대로 말한 것이고 가공을 거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성실한(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사람입니다. 만약 한참 생각한 후에 말하면 그것은 가공을 거친 것인데, 가공을 거치면 안에 거짓이 뒤섞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말하는 것도 가공을 거치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안에 속셈을 보태고 간계를 보태는데, 이것은 더욱 문젯거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감정만 보태고 말을 조금 완곡하게 하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만약 속셈과 간계까지 안에 보탠다면 달라집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 자꾸 머리를 굴리는 것이 좋습니까? (안 좋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훈련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즉시 마음속 말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훈련하면 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고 듣기 거북하게 말해도 괜찮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이렇게 훈련하면 됩니다. 당신이 늘 이렇게 훈련하면, 앞으로 또 궁리하고 가공하려고 할 때 당신은 ‘내가 가공했구나. 이러면 성실하지 않고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지고 거짓이 섞이게 돼.’라고 알게 됩니다. 가공하면 당신은 분별해 내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또 거짓말을 한다면 더욱 쉽게 분별되어 “제가 이번에 거짓말했어요.”라고 시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실행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여기 교회에서 누가 가장 좋고 진리를 가장 잘 추구합니까? 누가 비교적 성실하고 진리를 잘 교통할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당신은 바로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바로 말하려면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 그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통제도 받지 않고 아무런 고려도 하지 말며 말한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고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우선 이런 준비가 있어야 하고 남의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굴리고 가공을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의 마음속에 원래 가장 좋다고 생각한 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꿨습니다. 보세요, 사탄의 간계가 나온 것입니다. 사실, 당신은 그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 아니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라는 것을 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탄의 간계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가장 좋은 사람을 숨기고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말한 가장 좋은 사람이 대체 첫 번째입니까, 두 번째입니까? 당신은 마음 깊은 곳에서 가장 좋다고 인정하는 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이 있고 시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숨기고 알리지 않으며, 혹은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이익을 주고 당신과 마음이 맞으면 그 사람이 분명히 진리를 잘 교통하지 못하는데도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누가 진리를 가장 잘 교통하냐고 물으면 당신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말할 때 이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런 뒤섞임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감정에 따른 것입니다. 마음속에 누가 가장 좋은지 알고 있지만 감정의 속박과 지배를 받아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데, 이것은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목적은 바로 기만하기 위해서이고, 기만하는 속셈은 바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보세요, 어떤 인솔자는 자신이 보기에 좋고 자신에게 잘 순복하고 자신의 말을 잘 따르고 자신에게 잘 아첨하는 사람을 발탁하여 인솔자 일꾼이 되게 하고 자신의 조력자가 되게 하지만 자신보다 좋고 실제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억누르고 발탁하지 않습니다. 왜 발탁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발탁하면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 그보다 나아 그 사람의 지위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그런 비열한 수단으로 좋은 사람을 억누르고 숨기고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단점을 많이 말해 상면을 미혹하여 진실이라고 믿게 하며 이 사람은 안 좋고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가장 간사하고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면 이런 간사한 사람이 교회에서 권력을 잡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늘 교회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데,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고 합니다. 그는 지위와 권력을 너무 중하게 보아 결국 그곳의 하나님 선민들을 지체하고 심각하면 망치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 인솔자, 거짓 일꾼, 적그리스도는 다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진리를 투철하게 교통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늘 지위를 중요시하기에 지위와 명예로 가득 찼으며 아예 진리를 구하지 않고 아예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그들은 진리의 빛 비춤을 교통해 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 지위를 차지하려고 비열한 수단을 씁니다.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해치고 사람을 괴롭히며 억누릅니다. 마치 큰 붉은 용과 같습니다. 분명히 대중들이 큰 붉은 용을 옹호하지 않지만 자리를 지키고 권력을 잡기 위해 고압적인 수단을 쓰고 심지어 탱크, 기관총으로 사람을 학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거짓 인솔자는 큰 붉은 용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그의 권력이 그렇게 크지 않을 뿐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일단 권력을 잡으면 사탄이 권력을 잡고 큰 붉은 용이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구원받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구원받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면 사람은 여전히 사탄에게 속합니다. 이런 사람은 권력을 잡기 전에는 큰 악을 행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일단 권력을 잡으면 큰 붉은 용과 같습니다. 맞습니까? 만약 인솔자 본분을 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실행해야 합니까? 교회에서 자신에게 맞는 위치와 진정으로 자신에게 속한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인솔자 본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억지로 하지 말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발견하면 자리를 양보해야 합니다. 이야말로 진정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약 한 평범한 형제자매가 인솔자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다시 선거하려고 하니 또 적합한 사람도 없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정말로 나은 면이 있다는 것을 보고는 “저는 제가 그 인솔자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담이 있고 실제 사역을 좀 할 수 있는데, 제 자신을 선거해도 되나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선거한다면 이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러면 교만하고 독선적이지 않나요? 성경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했는데, 그러면 성실한 사람은 겸손도 구비해야 성실한 사람이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만약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보면 이것은 대체 성실한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솔직한 말을 한다면 그것은 교만하거나 독선적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교만하거나 독선적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지 못하면서 허풍을 떨면 그것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입니다. 알겠지요?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 겸손을 따집니까? 이런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실사구시를 중요시하는데 하나면 하나고, 둘이면 둘입니다. 허위는 교만보다 더욱 나쁩니다. 그것에는 간사의 성질이 있고 기만과 야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실사구시를 중요시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방금 우리는 주로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 마땅히 어떻게 실행하고 진입해야 하는지를 말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솔자를 하든, 일꾼을 하든 하나님의 선민에 대해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민에게 공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선민을 인솔할 수 없으며 기껏해야 좀 유지할 뿐입니다. 만약 사람이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확한 마음가짐, 성실한 사람의 마음가짐이 없다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다시 말해서 그가 인솔자를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사람을 인솔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그 약간의 허름한 것을 내놓는다면 완전히 자신에게 조금밖에 없는 것으로 사람을 인솔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사람을 인솔하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역안배에서 거듭 말하는데, 무릇 성령의 역사가 없는 거짓 인솔자, 거짓 일꾼은 원칙상 반드시 교체해야 합니다. 왜 교체해야 합니까? 그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없고 어떻게 인솔하든 길을 이끌어 내지 못하며 하나님의 선민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진리 실제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교체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없고 어떤 진실한 빛 비춤도 말하지 못하며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르지 못한다면 이 인솔자는 유명무실한 것이고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교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부족하고 여러분이 지금 가장 급히 진입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늘 이렇게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실제에 대해 점점 더 인식이 있게 되고 진리에 대해 점점 더 투철해지며 점점 더 진입의 길이 있게 되고 마지막에 자기도 모르게 실제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여 인솔하신 것이 아닙니까? 만약 성령의 이런 역사가 없다면 사람 안에 본래 조금밖에 없는 것으로는 사람에게 공급할 수 없고 절대로 사람을 인솔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가 없는 거짓 인솔자, 거짓 일꾼은 반드시 교체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안배에 그렇게 규정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집의 중점 사역은 바로 ‘거짓 인솔자 단속 사역’입니다.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를 제거하고 하나님 선민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앞으로 인도하여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게 하면 하나님의 사역은 곧 끝납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선민은 시련과 연단을 받게 됩니다. 지금 각지에서 매일 거짓 인솔자, 거짓 일꾼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문제가 심각한 사람, 뚜렷하게 드러난 사람, 악을 많이 저지른 사람, 민중의 원망이 큰 사람을 제거해야 합니다. 민중의 원망이 큰 사람, 민중의 분노를 일으킨 사람을 제거한 후 그다음 일반적인 거짓 인솔자,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진리 실제를 교통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조금씩 해 나가면 차츰차츰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는 다 제거되어 어느 한 사람도 버티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인솔자가 새로운 빛 비춤을 교통해 내지 못하고 아무리 교통해도 하나님의 선민이 공급을 얻지 못하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마지막에 다 듣기 싫어하고 인솔자가 말하는 것을 귀찮아한다면 그 인솔자를 해임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임시켜야 합니다.) 어떤 때에 형제자매들이 인솔자가 조금 교통한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느껴지고 듣기 싫어질 때, 만약 어떤 사람이 인솔자보다 교통을 좀 잘하는 것 같으면 교체해 보세요. 늘 그 원래 사람만 선거하지 마세요. 누가 진리를 괜찮게 교통하면 다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세요. 한 사람을 교체하여 새로운 빛 비춤을 교통하면 하나님의 선민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만약 교체한 그 사람이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점차적으로 안 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사람보다 조금 나으면 다시 교체해야지 늘 한 사람만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한 사람의 경력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 그의 조금밖에 안 되는 것들로는 인솔자를 6개월, 1년을 하고 나면 더는 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인솔자의 교통은 중복된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들이 싫증나게 들어 귀찮아하고 지겨워합니다. 나중에는 인솔자가 한 마디 하면 하나님 선민이 그다음에 할 말을 하는데, 그러면 그가 계속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성실한 사람의 모양이 도대체 얼마나 있습니까? 30%입니까 아니면 50%입니까? 아니면 70%, 80%입니까?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 아니면 사람의 앞에 설 수 없고 하나님 앞에는 더욱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여러 번 믿을 수 있고 당신에게 여러 번 속고 여러 번 기만당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이 다른 사람을 기만한 적이 있으면 그 사람이 당신을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은 당신을 죽도록 미워할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신용 가치가 제로이고 신뢰도가 조금도 없다면 그 사람은 당신에게 반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교회의 인솔자가 되기에 적합하겠습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교회의 인솔자가 되면 몇 가지 방면의 나쁜 일을 할 것인지 총결해 낼 수 있습니까? 첫째, 그가 교통하는 진리와 교통하는 간증에는 틀림없이 다 거짓이 뒤섞이고, 속셈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거짓이 너무 많고, 진리를 터득하는 것도 그릇됩니다. 둘째, 그가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고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틀림없이 속셈과 목적이 있고, 간사함과 기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신뢰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셋째, 그가 말을 하면 사람을 잘못 이끌고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는다면 절대로 바른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간사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우선, 이런 사람은 인성이 없는데, 이것은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무릇 거짓말하는 자는 모두 마귀입니다. 그 사람의 본성이 간사하다고 하면 그에게 거짓말이 많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로 많습니까? 말마다 거짓이 섞여 있고, 어느 한 마디도 신뢰할 만한 가치가 없고, 진실한 말은 한 마디도 없으며, 어떤 말은 이치에 조금 맞아도 거짓이 조금 섞여 있습니다. 그러면 거짓이 조금 섞인 것은 거짓말이 아니겠습니까? (거짓말입니다.) 그러면 언제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될까요?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일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진상을 모르게 하려고 하므로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면 어떤 일이든 다 적합하게 하여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하지 못하면서 육체의 누림도 탐하고 체면도 유지하려고 하는데, 방법이 없으면 거짓말로 덮어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또 사람들에게서 찬성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녀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데 자녀에게 하나님은 나중에 믿고 먼저 대학에 다니라고 하고는 교회에 와서 어떻게 말합니까? “아이가 대학 시험에 응시하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아이가 하나님을 잘 믿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본인이 동의하지 않고 기어코 대학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강요할 수도 없고 방법이 없어 아이를 대학에 보낼 수밖에 없네요.”  보세요, 정말로 깨끗하게 책임을 미루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까? 당신이 아이가 대학에 가는 것을 지지하면 “저는 아이가 대학에 가는 것을 지지해요. 아이의 일에 대해서는 저도 파악할 수 없네요. 아무튼 저는 아이가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여가 시간에 하나님을 믿으면 되죠. 제가 도와줄 거예요.”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보다시피,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는 데에 특별히 중요시하고, 매우 위선적이며, 누가 좋지 않다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고 누가 찬성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찬성도 받고 나쁜 일도 하려고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거짓말하는 것으로 둘러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간사한 사람에게 형제자매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겠습니까? 간사한 사람에게 교회에 대한 진실한 부담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어떤 간사한 사람이 “저는 지금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걱정됩니다! 저는 정말 우리 교회의 전망이 걱정됩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성립됩니까? 이 말은 뚜렷하게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사람은 분명히 간사한 사람인데, 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는 자신의 형상을 수립해 다른 사람들이 보고 나서 “아, 이 사람은 교회에 대한 부담이 큽니다! 하나님 선민에 대한 사랑이 진실하네요!”라고 말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그가 한 것은 모두 비열하고 하나님 선민을 해치는 것이며 교회 생활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좀 뻔뻔스럽지 않습니까? 그럼 여러분은 이 말을 들을 때 역겹지 않습니까? 그가 나쁜 일을 그렇게 많이 저지르고도 돌아서서 이런 말을 하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온몸에 닭살이 돋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는 분별할 수 있겠지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 되어 말을 하고 일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이 듣고 실제적이라고 찬성하며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은 신뢰도가 있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면 이 사람은 비로소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계속 교회를 방해하고 교회를 해치면서 스스로는 교회를 위해 걱정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큰 붉은 용이 하는 짓과 같이 듣기 좋은 말은 다 하고 온갖 나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을 미워합니까? (미워합니다!) 어떤 간사한 사람들은 하나님 선민을 곤경에 빠뜨리고 격리시키고 출교시키고 나서 나중에 그 사람을 되찾아 올 때는 어떻게 말합니까? “아, 저는 당신이 교회 생활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어요! 당신이 만일 구원받지 못하면 제 마음이 평안하겠어요?” 그는 사람을 격리시키고 출교시키고는 또 그 사람이 교회 생활을 못할까 봐 걱정한다고 말하며,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는 좋은 사람인 척하는데 이는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는 교회를 곤경에 빠뜨리고 방해하고 나서 또 무슨 말을 합니까? “저는 교회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저는 하나님 선민이 교회 생활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간사한 사람은 모두 듣기 좋은 말은 다 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합니다. 진정으로 성실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좋은 일을 조금 해도 이런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일을 하는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하지 마세요. 쓸데없습니다. 좋은 일을 한 가지만 해도 듣기 좋은 말을 백 마디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보세요, 어떤 사람은 그 ‘사랑’이란 말을 늘 입가에 달고 “저는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 선민을 사랑합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적인 일은 한 가지도 하지 않습니다. 이는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까? 성실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실제적인 일만 하는데 마치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입으로도 “내가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해야 할 일만 하는데 이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허위적인 사람에 대해 분별할 줄 모르는데,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하면 그 사람이 좋다고 여기고,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수록 그 사람에게 더욱 실제가 있는 것 같이 여기며, 누가 일은 많이 하고 듣기 좋은 말을 너무 적게 하면 그 사람이 별로이고 보통이며 실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일을 판단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에게 진리가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떤 사람에게 실제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 실제가 없는지 분별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가장 허위적이고 겉면만 중요시하며 진리가 없고 실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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