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진입 (4) |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목차

역사와 진입 (4)

만일 사람이 참으로 성령의 역사에 따라 진입한다면 사람의 생명은 우후죽순마냥 빨리 자라날 것이다. 다수 사람들의 현재의 분량으로 보아서는 사람들이 다 생명을 아예 중요시하지 않고 일부 겉면의 하찮은 일들을 중요시한다. 또는 각처로 뛰어다니면서 아무런 목표도 없이 두서없이 사역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더욱이 누구를 위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신을 낮추고 숨기고 있을’ 뿐이다. 사실, 너희 중에 하나님의 말세의 뜻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몇 명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이 최종에 무엇을 성취하는지를 아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자기의 의지력에 의해 남의 징계와 대처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단단히 벼르면서 기를 펼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 가운데의 이런 ‘기이한 일’에 대해 여기서 어떤 평론도 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가지는 너희가 모두 깨달아야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지금 기형적[여기서는 사람의 진입이 편차적이고 경력이 편면적임을 가리킨다]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진입하는 발걸음은 이미 절경으로 향하였다[여기서는 사람이 걷는 길이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정반대임을 가리킨다]. 혹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사람이 동경하는 ‘무릉도원’이라고 여기고 ‘자유경지’라고 여기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마 사람이 이미 곁길로 향해 발전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어떻든지 그래도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말하고 많은 사람의 장점, 결점에 대해 결코 내가 이번에 말하는 주요 의제(議題)로 하지 않고, 많은 형제자매들이 모두 올바로 받아들이고 나의 뜻을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ㆍ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ㆍ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에 와서 오랫동안 역사하고 생활하였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즉 오늘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인식하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이는 영원히 하나의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에 온 것을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영의 역사하는 기세가 얼마나 엄청나게 크든지 하나님은 시종 아무 내색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내막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단계 역사가 천계에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누구나 다 볼 수는 있지만 사람은 오히려 인식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는 사람이 모두 긴 꿈속에서 깨어나 평상시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관점이 다 변함을 가리킨다]. 기억하건대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에 온 것은 마치 범의 굴에 들어간 듯하다”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번에 역사함은 육신에 왔을 뿐만 아니라 큰 붉은 용이 군거한 곳에 강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번에 땅에 와서는 더욱더 극대한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면한 것은 총칼과 몽둥이이고 직면한 것은 시험이고 직면한 것은 만면에 살기등등한 사람 무리여서 수시로 피살될 위험이 있다. 하나님이 진노를 지니고 왔지만 그는 와서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한다. 즉 와서 구속 사역의 제2부분 사역을 잇는 것이다. 이 한 단계 사역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노심초사하였고 백방으로 시험의 공격을 피하였으며 비미은장(卑微隱藏)하면서 여태껏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지 않았다. 예수가 사람을 십자가 위에서 구하였는데, 그는 다만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지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은 절반만 완료되었다. 구속의 사역을 다 끝낸 것은 다만 전체 계획 중의 절반 공정이다. 새 시대가 곧 시작되고 옛 시대가 곧 멀어져 갈 때 아버지 하나님은 그의 제2부분 사역을 짐작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제2부분 사역을 위하여 예비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에는 아마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리라고 예언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에 오는 것을 더욱 은밀히 하기 위하여 기초를 다졌다. 만인이 다 새벽을 깨닫지 못하고 날이 금방 밝아올 때 하나님이 땅에 와서 그의 육신의 생애를 시작하였는데, 이 시각의 도래를 사람은 전혀 모른다. 혹시 사람들이 다 깊이 잠들어 있겠고 혹시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겠고 혹시 많은 사람들이 하늘 위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있겠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이미 땅에 온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역을 더 순조롭게 전개하기 위해서이고 더 좋은 사역 효과를 위해서이며 또 더 많은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봄 잠에 동이 틀 때는 하나님의 사역이 벌써 끝난다. 그는 땅을 떠나 땅에서 유랑하며 기거하던 그의 생애를 끝마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고 친히 말씀해야 하고 사람이 간섭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극대한 고통을 참으며 땅에 와서 친히 역사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대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시대보다 몇천 배나 더 큰 위험을 무릅쓰고 큰 붉은 용이 군거한 곳에 임하여 그 자신의 사역을 하는데, 갖은 애를 다 써서 이 무리 빈궁한 백성들을 구속하고 이 무리 거름더미 속의 사람들을 구속한다. 설령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존재를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고민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크나큰 유익한 점을 가져왔다. 사람이 모두 극악무도한데, 어찌 하나님의 존재를 용인하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땅에 와서 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극도로 참혹하든지 하나님은 오히려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다만 하늘 위의 아버지의 더 큰 부탁을 완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다. 너희들 가운데 어느 누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안 적이 있는가? 어느 누가 아들보다 더 아버지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는가? 어느 누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가? 아버지 하나님의 하늘에 계신 영은 항상 걱정하고 있으며, 땅에 있는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항상 간구하면서 애태우고 있는데,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아버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하늘과 땅의 차이를 취사선택하기 어려워 언제나 아득히 멀리서 마주 바라보고 영 안에서 뒤따른다. 인류야! 언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겠는가? 언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은 본래 서로 의지하는데, 굳이 하늘 위아래로 갈라놓을 필요가 있겠는가? 아버지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데, 굳이 어리석게 기다리고 간절히 바랄 필요가 있겠는가? 갈라진 날이 비록 오래지 않지만 아버지가 이미 여러 날 간절히 바라면서 사랑하는 아들이 일찍 돌아오기를 오래오래 기다린 것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그가 관찰하며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것은 다 사랑하는 아들이 일찍 돌아오기를 위한 것이다. 천애지각을 떠돌아다니다가 언제 상봉할 것인지? 설령 상봉하는 시일이 영원에 이를지라도 그가 어찌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몇천 날이나 갈라져있음을 참겠는가? 땅의 몇십 년이 하늘의 몇천 년과 흡사한데, 어찌 아버지 하나님으로 하여금 걱정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창상을 다 겪고 있다. 하나님은 본래 무고한 분인데, 어찌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과 더불어 같은 고통을 받게 하는가? 그러기에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이처럼 절박한 것도 이상할 것 없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것은 너무나 많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마음에 충분히 보답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바친 것은 너무나 적다. 하나님이 어찌 이로 인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절박한 심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다. 그것은 사람의 소질이 너무 낮고 영감이 매우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 사역에 대하여 사람은 모두 본체만체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언제 수성(獸性)이 발작할지 모를 것 같아 하나님은 사람에 대하여 늘 시름을 놓지 못한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크나큰 시험을 지니고 있는 것임을 더욱 보게 된다. 하지만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만재하고 사람에게 그의 뜻을 조금도 숨김없이 전부 알려주었다. 그가 이미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려고 작정하였기 때문에 고난이든 시험이든 전부 외면하고 다만 조용히 그 자신의 사역만 할 뿐이다. 어느 날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면 사람도 하나님을 알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때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현재 누가 하나님을 시험하든, 누가 하나님을 오해하든, 누가 하나님을 원망하든 하나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임할 때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한 것이 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이고 다 인류가 더 잘 생존하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은 시험을 가지고 왔고 역시 위엄과 진노를 가지고 왔다. 하나님이 사람을 떠날 때는 그가 이미 영광을 얻었으므로 영광과 다시 돌아올 기쁨을 만재(滿載)하고 떠난다. 땅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사람이 어떻게 저버리든지 간에 그는 개의치 않고 단지 그의 사역만 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세한 몇천 년 역사(歷史)에서 땅에 와서 수없이 역사하며 이미 인간의 저버림과 훼방을 겪었는데, 아무도 하나님의 도래를 환영하지 않고 그저 냉정한 눈길로 대하였다. 이 몇천 년 불우에서 사람의 행위가 이미 하나님의 마음을 상케 하였어도 그는 더 이상 사람의 패역을 보지 않고 따로 계획을 세워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결케 한다. 하나님이 육신에 와서 겪은 조소, 훼방, 핍박, 환난, 십자가 고통, 사람의 배척 등등 이런 것을 하나님은 이미 족히 체험하였다. 육신에 온 하나님은 인간의 고난을 겪을 대로 다 겪었다. 아버지 하나님의 하늘에 계신 영은 오래 전부터 차마 볼 수 없어 머리를 들고 눈을 감고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는 다만 사람이 모두 말을 잘 듣고 순복하며 그의 육신 앞에서 몹시 부끄러워하고 그를 거역하지 않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를 바랄 뿐 사람에게 일찍부터 어떤 더 높은 것을 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치른 대가가 너무 큰데 사람은 오히려 근심 걱정 없이[여기서는 사람이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 대해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눈에 두지 않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 말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설령 ‘부질없는 소리’가[반어인데 여기서는 하는 말에 대해 사람이 전혀 근원을 더듬지 못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모름을 가리킨다] 많을지라도 사람의 진입과는 오히려 커다란 관계가 있다. 나는 그저 역사를 좀 말한 다음 진입을 좀 말할 뿐이다. 하지만 두 방면은 다 필수적이다. 이 두 방면을 결부시키면 사람의 생명에 더욱 유리하다. 두 방면은 상부상조 하고[여기서는 ‘역사’와 ‘진입’ 두 방면을 결부시켜 교통하면 하나님을 아는 데에 더욱 유리함을 가리킨다] 유익한 점이 적지 않아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하고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소통시킨다. 오늘의 ‘역사’를 말하는 것에 의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좋아지게 하고 쌍방이 서로 더욱 이해하게 하며, 하나님의 부담을 더 잘 생각할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과 동감이 있게 하고 더욱더 하나님께 변화될 신심이 있게 하여 하나님의 다시 나타남을 기다리게 한다. 이것은 오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요구━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상을 살아내는 것이다. 암흑 시대에서 하나님의 지혜로운 결정체의 빛을 번쩍이게 하고, 사람의 살아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찬란한 한 페이지를 남기고 영원히 세계의 동방에 눈부신 빛을 발하게 하여 전세계 사람들이 주목하고 만인이 앙모하는 데에 달하게 할 것인데, 이것은 더욱 당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더 좋은 진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