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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실한 사람인가?

지금 너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날들은 단 하루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으며 너희의 결말과 운명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살아가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시간을 확보하여 최대의 수확을 거두도록 해야 한다. 너희는 내가 뜬금없이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너희에게 기대한 바가 지금의 이런 모습이 아니기에 나로서는 너희 개개인의 행동거지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기에 너희 가운데 위험에 처하지 않은 이가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 구원을 갈구하던 목소리와 진리를 추구하고 광명을 바라던 마음의 소리도 이제는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내게 마지막으로 보답하는 표현이며, 내가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너무 실망했기에 사실과 다르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너희는 이대로 순순히 수긍하거나 진실에 직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묻겠다. 지난 몇 해 동안 너희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었느냐? 또한 누구에게 충실했느냐? 내 질문이 너무 느닷없다고,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느냐고 하지 말거라. 너희는 내가 너희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너희에 대해 너무나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너희의 일거수일투족에 너무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책망하면서도 여태껏 참고 견디었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오직 외면과 견딜 수 없는 무력함이었다. 너희가 나를 건성으로 대하는데, 진정 내가 모른단 말이냐? 만일 그렇게 여겼다면 이는 나를 진심으로 선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너희 모두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총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너희가 내게 무엇을 바칠 수 있겠느냐?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너희의 마음이 도대체 누구에게 충실한가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도대체 누구에게 충실하며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혹시라도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면, 내가 이 문제의 답을 찾도록 도와주겠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인간이 자신을 위해 살며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의 답이 100%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저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살고 각자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 충실한 것이다. 즉, 너희는 완전히 자신에게만 충실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각자가 주위 사람과 일, 사물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충실한 사람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스스로에게 충실한 것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충실할 수 있는 너희의 충성심을 폭로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너희 가운데 내게 ‘충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따른 지 그렇게 오래되었으면서도 너희는 나에게 ‘충실한’ 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는 바쁘기 그지없었으며, 심지어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이를 버린 적이 없었다. 나를 따르고 있거나 내 말을 듣고 있을 때조차도 너희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이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충성심을 이용해 너희가 아끼는 것에 충실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다소 바쳤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너희의 전부를 뜻하지 않을 뿐더러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충실했음을 뜻하지도 않는다. 너희는 더없이 아끼는 사업에 몸담고 있다. 어떤 자는 자녀에게, 어떤 자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어떤 자는 금전이나 업무에, 어떤 자는 직속상관이나 지위에, 어떤 자는 여자에게 충실하였다. 너희는 자신이 충실하던 것들에 대해 피로를 느끼거나 근심한 적이 없고, 갈수록 자신이 충실하던 것들을 더 많이 더 쉽게 가질 수 있기를 갈구하며 이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여태까지 너희는 나와 내가 한 말을 너희가 열중하는 모든 것의 끝자리에 놓아두었지만, 그것도 마지못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자는 그 끝자리마저도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충실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들은 나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너희는 어쩌면 내 요구가 너무 지나치고 내가 너희를 억울하게 한다고 여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워할 때 너희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충실한 적이 없었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그때 너희는 이로 인해 괴로워한 적이 있느냐?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 진리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낙담한 적이 있느냐? 너희는 언제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느냐? 자녀를 위해서는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애쓰면서도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자녀에게 세심하지도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다고 여기는데, 내게는 어떠하였느냐? 너희는 지금까지 나를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으며, 단지 기억의 편린으로만 남길 뿐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하지는 않았다. 너희는 지금까지 너희에 대한 나의 각별한 마음을 느낀 적도 이해한 적도 없이 단지 조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런 ‘충실’은 내가 오래도록 기대해 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증오해 온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든지 간에 너희는 여전히 아주 조금만 인정할 뿐 완전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희가 자신만만해하며 언제나 내 말을 가려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면 내게는 그 자신감을 상대할 방법이 있다. 또한, 내 말이 사실을 전혀 왜곡하지 않은 진실한 것이라고 인정하게 할 것이다.

지금 너희 각자 앞에 돈을 얼마 놓아두고서 너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진리를 버리고 돈을 선택할 것이다. 그보다 좀 나은 자는 돈을 버리고 마지못해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그 두 부류 사이에 있는 자는 한 손으로는 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리를 붙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진면목이 어떠한지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너희는 자신이 ‘충실’하게 대하는 모든 것과 진리 사이에서 다 이렇게 선택할 것이고, 너희 태도 또한 여전히 이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옳고 그름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았느냐? 가정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화목과 파탄, 부와 빈곤, 지위와 평범함, 지지받는 것과 버림받는 것과 같은 모든 정(正)과 반(反), 흑과 백의 싸움에서 너희가 무엇을 선택하였는지를 모를 리 없지 않겠느냐? 가정의 화목과 파탄 사이에서 화목을 선택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으며, 금전과 본분 사이에서 또 금전을 선택하는데, 심지어 이를 돌이켜 보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사치와 빈곤 사이에서는 사치를, 자녀와 아내와 남편과 나 사이에서는 자녀와 아내와 남편을, 고정관념과 진리 사이에서는 고정관념을 선택하였다. 너희의 온갖 악행에 나는 너무 놀랐고, 너희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으며,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누그러지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얻은 결과는 너희가 나를 포기하거나 막무가내로 대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날들이 너희 모두에게 나타나고 있기에 너희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지금도 어둡고 사악한 것을 추구하며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희의 최후가 어찌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그래도 앞의 것을 택하겠느냐? 여전히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나에게 안겨 주겠느냐? 너희의 온화한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도 작은 것이더냐? 어떻게 해야 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지금 이 순간, 너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느냐? 내 말에 순종하겠느냐, 아니면 귀찮아하겠느냐? 내 날은 이미 너희 앞에 펼쳐졌고, 너희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삶과 새로운 출발점이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번 출발점은 이전 사역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옛 사역의 마무리이자 최후의 일막이다. 나는 너희가 이 시작점이 예사롭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지않은 어느 날, 너희는 이 시작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함께 이 시작점을 지나 다음의 마무리를 맞이하도록 하자! 하지만 정의와 비정의에 맞닥뜨리면 너희는 언제나 비정의를 선택하기에 내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다 너희의 과거이다. 나 또한 너희의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리 쉽지가 않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미래로 과거를 대체함으로 너희 과거의 어두운 모습을 사라지게 하여 오늘날의 진면목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너희에게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를 주어 너희가 도대체 누구에게 충실한지를 봐야 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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